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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미나리를 다듬으며 거머리를 대담하게 떼어버리던 어머니의 야무졌던 손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다듬고 난 미나리 뿌리를 버리지 않고 예쁜 항아리에 물을 받아 담가두셨지. 그게 다시 잎이 올라와 겨울의 방 안을 연두색으로 생기 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끊어서 먹기도 했다. 알뜰했던 어머니, 아니 그 시절 엄마들은 다 그러셨지. 뿌리의 생명력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던 마음이 읽힌다.
 
호원숙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박완서 작가 10주기를 맞아 그의 딸 호원숙 작가가 쓴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다. 음식 만드는 일에 정성스러웠던 박완서의 부엌은 문학의 산실이었다. 딸은 미나리를 다듬던 어머니를 기억하며 그 생명력을 닮은 박완서 소설 ‘창밖은 봄’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자고 깨면 춥고, 자고 깨면 여전히 춥건만 설마 내일은 풀리겠지, 설마 겨울 다음엔 봄 안 올까, 하는 끈질긴 낙천성만이 그들의 것이었다.”
 
딸은 오늘도 어머니를 쫓아 부엌에서 음식을 만든다. 경건한 의례처럼 쌀을 씻는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부엌의 물을 내리면서 전원을 켜듯이 하루를 시작했다. 아무리 곤고한 날에도, 몸이 찌뿌드드한 날에도, 눈이 게슴츠레 떠지지 않을 때도, 부엌 싱크대 앞에만 서면 살아났다. 쌀을 꺼내어 물에 씻으면 그 감촉과 빛깔이 질리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것이 무슨 힘인지는 나도 모른다. 밥심으로 산다고들 하지만 나는 쌀 씻는 힘으로 사는 것도 같다.” 매일 반복되는 뻔한 일, 쌀 씻는 일, 그게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얘기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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