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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생은 아는 만큼 보인다

한국 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신달자 시인의 이야기다. 언젠가 그분이 라디오 대담 프로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9년간 시부모 병시중하다가 24년 동안 남편 병시중했고, 끝내 남편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일생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창을 통해 우연히 밖을 내다보며 ‘어머! 비가 오네요’ 하고 뒤돌아보니 그 일상적인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존재가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함,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대상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동안엔 깨닫지 못하지만, 떠나고 나면 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진솔한 삶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생이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복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과정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지난해 다녀온 17박 18일간의 북미주 대륙횡단여행 역시, 나에게는 그런 의미를 지녔다.
 
2022년은 우리 부부가 미국에 와 산지 만 50년이 되는 해였다. 마침 한 관광사의 북미주 대륙횡단 특별 여행 상품 광고를 보고 무작정 신청했다. 55인승 관광버스를 32인승으로 개조한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18일간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본래 여행이란 것이 이런저런 상황 따지다 보면 웬만해선 떠나기가 쉽지 않다. 며칠 정도가 아닌, 18일간의 긴 여행일정이다 보니 큰맘 먹지 않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거기다가 내일모레 80을 바라보는 나이 탓인지 무엇보다 건강부터 걱정된다. 과연 아프지 않고 미전역을 잘 다닐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어 엄두가 안 났다. 그저 눈 질끈 감고 떠난 여행이 다행히도 많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LA에서 출발한 여행단은 12명의 소그룹이다. 더욱이 모두가 부부여서 완전 가족여행 분위기였다. 여행사 측에서는 손님이 적어 수익이 많지 않았겠지만 VVIP 32인승 최고급 대형 관광버스에 12명만 타다 보니 눕다시피 하며 18일간을 대륙을 누비고 다녔다. 이건 정말 달리는 궁전이었다. 거기다 가이드까지 최고여서 정말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누가 지난번 북미 대륙횡단 여행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런 답을 해주고 싶다. 미국이란 나라는 엄청나게 넓고, 크고 아름다운 축복의 땅이어서, 이곳에 사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사실을 보았노라고.
 
주마다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황홀한 특성들을 지녔다. 도시는 도시대로, 산과 강과 호수, 그리고 중서부의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서 느낀 거대한 자연의 ‘기’를 받다 보면,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된 느낌이다. 부족함도 없고, 경쟁심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함이 가득찬  잔잔한 평화가 행복감으로 밀려들곤 했다. 그래서 여행은 축복인가 보다.
 
알고 보면,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까지도 소중함을 느낄 때 비로소 나의 기쁨이 되어 준다. 사람의 탐욕 때문에 작은 것과 큰 것, 많은 것과 적은 것, 못남과 잘남, 성공과 실패의 구별이 보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여행 동안 시인 김춘수의 ‘꽃’이 자주 떠올랐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너는 단지 하나의 몸짓이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자 너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어 주었다.”  과연, 그 누가 존재의 의미를 이처럼 쉽게 일깨워줄 수 있을까!
 
이번 여행 내내 나는 아이다호와 사우스다코타 주의 경계 어느 시골 마을에서 6달러를 주고 산 인디언 후예가 색실로 짠 조그만 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그 안에 수 놓인 십자가 모양 때문일까?  부제인 나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와 이번 여행의 소중한 기념품이 되어 주었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부부나 가족, 친구마저도 의미를 갖고 대하면 대할수록 그 소중함이 커간다. 40년 전 우연히 참가했던 부부사랑 운동(Marriage Encounter)피정 세미나에서 처음 듣고 알게 된 “부부는 작은 교회다”란 사실 앞에서 우리 부부는 결혼한 삶의 소중함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난번 대륙횡단 여행길에서 부부들이 서로 손을 잡고 무언가 저마다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며 인생의 순례길을 묵묵히 걷고 있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다가온다.
 
본래, 인생이란게 아는 만큼 보여서 그런 것일까.  한번 와서 한세상 ‘함께’ 살다가는 내 이웃들에 대한 소중함이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 깊은 곳에서 기지개를 핀다. 뒷마당의 목련나무 가지마다 꽃망울을 틔우는 것을 보니, 어느새 봄이 소리 없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김재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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