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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바운더리 제로 증후군

“엄마, 시간 되면 이거 좀 해줄 수 있어? 이그, 우리 아이들 존댓말을 못 가르쳐서 삼십이 넘어도 말이 이 모양새다. 어~~ 알았어. 얘야, 엄마 좀 바쁜데 소리는 차마안 나온다. 선생님, 상담 시간 좀 바꿀 수 있나요?어, 네, 알겠어요. 사실 시간 바꾸면 나 좀 힘들어진다. 하지만 벌써 내 입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사모님, 같이 식사해요! 오, 그래요. 하지만, 먹는 거보다 그냥 쉬는 게 더 좋은 때도 사실 있다. 언니, 지금 시간좀 돼요? 물어볼 게 있어요.어, 그럼. 뭔데? 거참, 지금 나 바쁜 중 아님?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이미 다 중단하고 이야기 듣고 있다. 아니, 언니 바빠, 정확히 14분 30초 후에 전화해. 이래 본 적 한 번도 없다. 난 헌신적인 엄마에다 친절한 썬 킴이니까.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걸.”
 
내 책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에 나오는 내 모습이다. 완전 바운더리 제로다. 바운더리는 원래 경계(선)이라는 뜻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Yes와 No를 분명히 하는 것이 건강한 바운더리다. 기질적으로, 또 사모로 오래 살았던 나는 이 바운더리에 아주 약한 사람이었다. 동료 치료사들이 “Sun has no boundaries”라고 나를 놀려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바운더리가 제로였으니까.
 
요즘 Henry Cloud 박사님과 John Townsend 박사님이 쓰신 ‘Boundaries’라는 책을 금요 북클럽에서 읽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When to Say Yes, How to Say No, to Take Control of Your Life’이다. 성경 구절이 많이 인용된 이 책은 한국어로는 ‘No라고 말할 줄 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다섯 북클럽 중 거의 5년 전 시작한 가장 오래된 금요모임 회원들이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이 변하는 사람은 바로 인도자인 나다!  
 
이 바운더리 문제는 동반의존(Codependency) 현상과 큰 상관이 있다. 동반의존이라는 말은 원래는 예를 들어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자의 부모가, 힘들어하면서도 무의식중 자신의 가치를 자녀의 문제를 돌봐주는 데서 찾는 그런 관계에서 나온 말이다. 요즘은 이 말이 다른 모든 인간관계나, 일 등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일 중독도 일종의 동반의존으로 본다.  
 
동반의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주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꼭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누구와 알고 지내는지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디까지 해주어야 할지 한계(boundary)를 정하는 게 어렵다. 인간관계에 연연한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분은 건강한 바운더리를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동반의존 끼가 있는 바운더리 제로 분들, 완전 착하고, 나보다 남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힘쓰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좋은 분들이다. 하지만 그러다 자신이 힘들어지면서,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마저 생길 수 있어, 결국 양쪽 모두에게 해로운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 문제이다.  
 
바운더리 제로이던 내가, 요즘은 상담 의뢰가 올 때, 조금 기다려야 상담해드릴 수 있다는 말도 곧잘 한다. 당장 필요하신 분에게는 한인 심리치료사들 리스트를 전해드린다. 구체적인 바운더리와 No의 미학에 대해서 다음 칼럼에 소개하도록 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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