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춘이다-워싱턴] 시니어센터 백발의 만학도들, "신념과 열정으로…배움에 나이는 숫자일 뿐"
“어떤 사람은 젊고도 늙었고, 어떤 사람은 늙어도 젊다.” 유태인들의 지혜의 보고인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청춘을 판단하는 기준이 물리적 혹은 육체적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과 행동에 있다는 의미다. 워싱턴 일원에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자세로 만학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곳들이 있다. 백발이 성성한 60~90대 노인들의 배움터인 시니어 센터다. 이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시니어센터는 중앙시니어센터, 메릴랜드 상록대학, 벧엘 시니어 아카데미, 열린문 평생교육 교실, 메시아 평생교육원 등 10여 개를 훌쩍 넘는다. 각 교회나 노인회, 단체 등이 운영 중인 다소 규모가 작은 배움터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또한 워싱턴 일원 한인 노인 인구가 증가세를 보이면서 앞으로 시니어센터를 개설하려는 교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가을학기에 문을 연 메릴랜드 하노버의 빌립보 평생교육원도 그 중 하나. 이 평생교육원은 남녀노소 제한 없이 개방된 곳이지만 학생층은 단연 만학도들이 앞선다. 대부분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센터의 교육 내용이 그저 시간 때우기 식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이들 기관들은 라인 및 워십 댄스, 노래, 종이 접기, 뜨개질 등 취미 활동은 기본, 영어, 스페인어, 시사, 동양화, 문예창작, 컴퓨터, 시민권 시험준비, 포토샵, 사진, 영양관리 등 세분화된 다양한 학습 과목을 두고 있다. 배우고자 하는 신념과 열정이 넘치는 이 곳이야 말로 ‘불로장생’, 영원한 청춘의 도가니다. 노인들의 학구열 뜨거워 취미부터 컴퓨터·포토샵 과목도 점점 세분화 돼 젊은이 못지 않은 춤솜씨 나눔실천 위한 사회봉사 다른 노인들 위로하기도 ◇청춘을 압도하는 만학도의 학구열=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의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워싱턴 일원 만학도들의 의지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12월 각 시니어센터에서 열린 가을학기 종강식은 이를 증명하는 장이었다. 워싱터 한인복지센터(이사장 해롤드 변)시니어 아카데미에서는 15주간 갈고 닦은 학생들의 '학예회'가 펼쳐져 보는 이들을 뿌듯하게 했다. 젊은이들 못지 않은 몸짓으로 춤 실력을 과시하는 70, 80대 어르신들부터 유창한 발음으로 팝송을 선사하는 60대의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메릴랜드 상록회(회장 박희규) 산하 상록대학 종강식에서도 300여명의 학생들은 그 동안 배운 솜씨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시니어센터 관계자들은 “배울 기회를 놓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어르신들에게 학문의 길을 터주는 것은 보람된 일”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자세 는 두뇌활동을 도와 기억력 감퇴나 치매예방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등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입을 모았다. 고령일 수록 배움의 속도는 느리지만 반복을 통해 습득할 수 있고, 취향과 관심도에 맞는 것을 배울 때 효과는 배가 된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중앙시니어센터 문예반 학생들이 몇 해 전 시집을 펴내면서 한인 사회를 깜짝 놀래 켰었다. 당시 시인의 꿈을 이룬 11명의 학생들은 평균 70대가 넘은 늦깎이 문학도들이었다. 그 이후로도 문예반의 창작 열기는 수필과 소설 등 장르를 넘다 들며 여전 히 뜨겁다. 지난해 12월 한 시니어센터의 가을학기 종강식에 참석해 70, 80대의 후배들을 격려한 송양림 할머니도 만학도의 산 증인. 1916년생인 송 할머니는 올해로 96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시민권 준비반, 영어반 등에서 수학하며 10년 개근상을 받는 등 모범생의 위력을 과시했다. ◇배움 이루며 나눔과 봉사까지= 워싱턴의 만학도들이 배움만큼이나 열정을 쏟는 부문은 나눔 실천을 위한 사회 봉사다. 지난 여름 중앙시니어센터의 이혜성 디렉터는 미국 노인들의 자원봉사를 권장하기 위한 백악관 초청 행사에 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초청되기도 해 화제가 됐다. 이 행사에서 그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지원을 받아 운영해온 한인 노인 식사배달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종강식에서도 이 시니어센터는 90세 전후의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잔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하워드 카운티 한인 노인회는 지난해 10월 카운티 노인국에 아름다운 기부를 해 훈훈함을 더했다. 어르신들이 고이 간직해 온 장신구와 옷가지, 귀금속 등 2000여 점의 물품을 선뜻 바자회에 내놓고 그 수익금 약 3600달러를 모았다. 이 수익금은 응급상황에 처한 카운티 내 노인들에게 약품이나 전기세, 개스비 등을 무료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인 비비안 리드 펀드에 사용됐다. 노인국의 문성희 이중언어담당관은 “소수계 중에서는 한인 커뮤니티가 유일하게 노인응급 구호기금인 비비안 리드 펀드에 관심과 열정을 보내주고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시니어센터 학생들은 직접 양로원을 찾아 다니며 함께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노인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워싱턴 한인복지센터의 시니어 아카데미 학생들은 지난해 연말 애난데일의 리우드 너싱홈을 방문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연말연시의 정을 나눴다. ◇직접 찾아가는 시니어센터= 마음은 청춘이지만 몸이 안 따라줘 답답한 노인들을 위한 ‘움직이는’교육 현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미주한인노인봉사회(회장 윤희균) 회원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30분 버크 노인아파트를 찾아가 에어로빅과 요가 수업을 실시한다. 총 150여명의 거주자 중 절반 이상이 한인 노인들이다. 자신 역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지만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앞장서 온 윤희균 회장은 “아파트 청소 봉사를 하던 중 몸이 불편해 시니어센터에 가지 못한다는 할머니들의 사연을 듣고 움직이는 배움터를 만들기로 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에어로빅 강사인 조미경 씨는 “어르신들이 천천히라도 몸을 움직이면 당연 건강에도 좋지만 무료한 일상에 즐거움을 더할 수 있다”며 “이제는 한인뿐 아니라 인도, 필리핀 등 타민족 어르신들도 참여하실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