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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춘이다] 75세 이상현씨

"나를 있게 한 원동력…카메라 들면 나도 청년"

10년 전부터 연장자들 촬영
자녀들에 사진 보내기 도와
사고로 10년간 지팡이 신세
출사 다니다 다리 완쾌 돼
한인사회 모든 행사 현장 누벼
하루 3마일 이상 걷기는 기본


워싱턴 메트로 지역 한인사회에서는 ‘카메라 아저씨’가 어느 K-POP 스타 보다도 유명하다.

어느 장소, 어느 행사에 가도 한인들은 카메라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상현씨를 아저씨라고 부르지만 그는 이미 12살 짜리 손녀와 9살 손자를 두고 환갑은 애저녁에 넘은 할아버지다. 1936년생이니 75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야말로 산천을 누비고 다닌다.

그가 가는 곳에서는 언제나 ‘작품’ 사진이 나온다. 그의 재산목록 1호인 니콘 카메라와 각종 렌즈는 어느 사진작가 보다도 더 진솔한 우리네 모습과 아름다운 풍광이 담긴다.



그가 이처럼 카메라를 들고 다닌지는 이미 10년이 넘는다. 그렇다 보니 그는 이미 실전에서 어느 카메라 전문가들 보다 더 정교하고 훌륭한 사진을 만들어낸다.

이상현 옹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시쳇말로 요즘 좋은 카메라를 들고 폼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는 중앙장로교회 시니어 센터를 줄곳 다니면서 연장자들과 생활하다 보니 그들이 먼 미국땅에 와 살면서 늘 자식을 그리며 생활하면서도 자녀들에 자기 사진을 보내지 못해 안스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말도 안통하는데다 누구에게 부탁할 사람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언제 작별할 지 모르는 자녀들에게 사진 안부를 보내려 해도 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못한 그는 우연히 갖게된 소형 ‘똑딱이’ 카메라를 이용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진을 찍어 한국이나 타지에 사는 자녀들에게 보내주도록 했다.

결과는 의외로 호평. 사진을 보낼 수 있게된 수많은 이들은 이상현씨에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벌어졌다.

그 역시 삶이 순탄치 않았던 탓에 어려운 상황에서 작은 일이 이처럼 큰 보람을 가져다주는 것을 체험한 그는 사람사이에 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후로도 계속 카메라를 들고다니며 필요한 이들에 사진이라는 선물을 했다.

순탄치 않은 삶은 그가 행동하는데에서 이미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다. 그는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안된다. 쉽게 말해 다리를 전다. 심한 소아마비도 아니면서 그는 한 다리를 절며 다닌다.

지난 1980년 10월.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교통사고 때문이다. 36세에 육군 공병대에서 제대한 뒤 미국에 와 3년여 고생하면서 어렵사리 2베드룸 타운홈 집도 장만하고 이제 막 자동차 정비소 사업장을 시작하려 할 때 사고를 당한 것이다.

술에 취한 미국인 운전자가 그의 차를 강하게 들이받으면서 그는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다친 정도가 아니라 무려 27군데 골절상을 입는 큰 부상이었고, 경우에 따라서 다리를 절단해야 했으나 천만다행이도 신경줄과 근육은 끊어지지 않아 극단적인 절단 상황은 피했다.

그러나 그의 다리에는 아직도 수십개의 보철과 교정금속이 박혀있으며, 그는 이처럼 걸음걸이가 편치 않은 것이다.

그가 교통사고 이후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사고 이후 무려 10년만이다. 다행히 사고 전 얼마간 벌어놓은 돈으로 각박하나마 부인이 허드렛일을 하면서 삶은 이어왔으나 사고 후유증은 오래가 생활도 어려웠다.

손재주와 수리기술 등이 천부적이던 그는 지팡이를 집으며 어렵게 걸으면서도 주변의 도움으로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근근히 일을 할 수 있었고, 그 자신도 일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한 의지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걷고 또 걸었다.

그는 신실한 종교심과 천부적인 인내심을 무기로 무한걸음을 이어오다 마침내 사고가 난지 10년만에 지팡이 없이도 걷게 됐다. 그는 이 때 “움직이는 것이 나를 걷게 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이상현 옹은 “사진 찍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만족스런 사진을 찍기 위해서 나는 하루에 3마일 이상을 걷는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걷지 않으면 아마도 약값이 많이 들어갈 것인데, 약을 사서 먹는 비용보다 사진찍으면서 다니는 비용이 더 적게 든다”며 어느 장소든 가리지 않고 오늘도 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지금도 다른 사람들처럼 약봉지를 들고다니거나 건강보조제를 먹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처음에 낯선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것에 불쾌하게 여기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카메라 렌즈가 잘 보이게 만들어주니 예쁘게 웃으세요”라며 부드럽게 다가서고, 이후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고 나면 언제나 100% 고맙다는 답장을 받는다고 자랑한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워싱턴 방문시에도 대통령에 질문하는 이들을 일일히 찍어 사진을 기념하라며 보내줬다. 물론 그는 경호실 직원이 옷소매를 잡아 끌며 완력으로 그를 저지했음에도 “제발 놔주세요. 난 찍어야 합니다”고 나즉이 말하자 결국 허용했었다.

아무도 찍어주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질문장면의 사진을 받아든 이들은 이상현씨에 가보로 전해줄 보물을 선물받았다며 고마와했다.

그는 오늘도 한인사회 모든 행사장을 누빈다. 그에게 주어진 각종 협회의 홍보이사, 홍보담당자란 직함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그에게는 사진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며, 오늘을 사는 버팀목이다. 걸으면서 얻은 것은 건강과 사람들의 추억과 지금의 최고의 순간을 담은 사진들이다. 그에게 그 3가지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생을 사는 보람이 되기에 충분하다.

훌륭한 작품전이라는 돈 들이는 행사를 하지 않아도 그의 사진은 어느 작가 못지않게 많이 뿌려져 있다. 그것도 그의 사진을 가진이들이 사치품으로 가진 것이 아니라 어떤 재산보다도 아끼는 보물인 것이다.

그는 오늘도 저수지를 걸어 흰머리 독수리를 찍으러 저수지를 걷고 있었다. 인생 반 이상을 살아 이제 익숙해진 미국 땅에서 미국을 다시 찾는데 독수리가 가장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는 아마 4마일은 걸은 것같다. 그에게 청준은 바로 자기를 찾아 사진으로 담으려는 애착에 다른 말이다.

최철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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