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나는 청춘이다] 이창수·김진협씨

팔순 앞두고도 8년째 경찰악대서 왕성한 활동

KBS·MBC 출신 연주자
연주음반도 내놓은 프로급
해병대 군악대에서 만나
50년 넘게 음악동무 지내
젊음 유지하는 비법은 음악
나이 들수록 더 깊어져


"난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야. 민간 외교관이지. 이 정도의 연륜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 하하하"

은근슬쩍 자랑하는 말투가 밉지 않다.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호칭이 익숙한 팔순을 맞았지만 경찰 유니폼을 입고 악기를 손에 잡으니 청년 못지 않은 에너지가 넘친다. LA경찰국(LAPD) 경찰악단에서 8년째 봉사하고 있는 이창수씨와 동갑내기 친구 김진협씨 말이다. 이씨는 이곳에서 트럼펫을, 김씨는 색소폰을 연주한다. 트럼펫도 색소폰도 모두 긴 호흡을 요구하는 악기들이라 폐활량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의 연주에는 숨이 차거나 흔들림이 없다.

이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건 2004년 5월부터다. LAPD 경찰악단에서 활동하던 한인 후배 연주자가 김씨에게 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영어를 잘 모르는" 김씨는 "영어가 유창한" 이씨를 함께 끌고 갔다. 몇 년 후 이들의 입단을 권유했던 후배는 봉사활동을 그만뒀지만 이들은 8년째 남아 왕성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경찰악단 멤버는 모두 75명. 처음 입단했을 때만 해도 흑인 멤버 2명과 후배 1명을 빼고는 모두 백인이라 낯설고 서먹했지만 지금은 이들이 불참하기라도 하면 모두 안부를 묻고 걱정할 만큼 주요 멤버로 자리 잡았다.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우리를 본 멤버들 모두 실력을 의아해했지. 나이 먹은 아시안들이 무슨 연주를 할 수 있겠느냐는 거겠지. 하지만 음악을 듣더니 눈빛이 달라지던 걸. 역시 실력을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은근슬쩍 자랑하는 이씨는 MBC와 KBS 악 단원 출신의 전문 연주자. 트럼펫뿐만 아니라 악보 없이도 즉흥 반주가 가능한 피아노 연주 실력에, 가끔은 악보 편곡도 한다. 김씨 역시 미국에서 색소폰 연주 음반을 발매했을 만큼 프로다.

이들은 해병대 군악대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후 50년이 넘게 음악 동무로 함께하고 있다.

김씨는 "우리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곡을 연주하고 싶어하는지 다 알거든. 이렇게 서로 호흡이 척척 맞는 친구가 없어."

“가끔 초청받아 연주하는 이벤트 행사 때는 장소를 둘러보기만 해도 청중들에게 무슨 곡을 들려줄지 머릿속에 악보가 떠오른다”는 이들은 활짝 웃었다.

◇순수 자원봉사단 LAPD경찰악단

1914년 창단해 90년 가까운 역사가 있는 LAPD 경찰악단의 다른 이름은 '로스앤젤레스시 홍보대사'이다. LA와 뉴욕경찰국에만 경찰악단이 있다 보니 국가의 중요한 행사에는 꼭 초청을 받는다. 또 다른 도시에서도 초청받아 가끔 주말에는 장거리 공연을 떠나기도 한다.

연주자들은 50대 후반부터 순수한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돼 있지만 규칙은 엄격하다. 다저스 스타디움 근처에 있는 LAPD 경찰학교 오디토리엄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3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연습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연주 스케줄도 빽빽하다. 한 달 평균 2~3개의 이벤트를 소화해야 한다. 매달 열리는 경찰학교 졸업식은 기본이다. 졸업식 행사가 오전 8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행사 날은 새벽부터 서두른다. 또 매년 독립기념일에는 시미밸리에 있는 레이건도서관에서 공연을 한다. 이처럼 빡빡하고 힘든 연습과 공연 스케줄에 지쳐 대부분의 한인들은 중단한다.

이씨와 김씨는 "한인 연주자들이 여러 명 들어왔지만 오래 머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자원봉사자의 삶을 즐기는 백인들과 달리 한인 이민자들은 아무래도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며 "그래도 다행히 우리 뒤에 후배(김창훈·71·클라리넷)가 한 명 있어 맘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씨는 항상 신앙생활을 위해 주말 장거리 공연만큼은 경찰악단에 '양해'를 구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6월 21일부터 4박5일 동안 워싱턴D.C.에서 진행된 공연에는 참가했다. 한국전 기념행사에서 연주하기 위해서다. 공연 기간 동안 이씨는 연방의회에서 열린 6.25 참전 기념식 행사와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있는 케네디 센터의 밀레니엄 극장 등에서 공연을 펼쳤다. 케네디 센터에서는 후배 김창훈씨가 톱을 켜고 이씨는 피아노를 치는 듀엣곡을 연주해 관객들의 힘찬 박수를 받았다.

"이래 봬도 내가 해병대 출신에 6·25 참전용사거든. 한국전 기념행사를 한다는 데 빠질 수가 없었지. 연주가 끝나는 데 진심으로 손뼉을 치는 관중을 보니까 뿌듯하고 지금까지의 봉사활동에 보람이 느껴지더라고."

◇청춘의 비결은 "열정"

이씨의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악단 외에도 4년 전부터는 LA카운티 정부 소속의 '해롤드 재즈 밴드'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멤버 13명 중 절반이 경찰악단 멤버들이라 손발이 척척 맞는다는 이씨는 매주 화요일마다 올림픽과 커슨가 인근의 웨스트사이드유태인커뮤니티센터에서 두세 시간씩 연습한다.

목요일 오후에는 또 해피밴드의 연습을 위해 집을 나선다. 해피밴드의 연습실은 후배 김씨의 고등학교 후배가 운영하는 음악학원이다. 특별히 이 밴드는 멤버들이 한인과 미국인들이 섞여 있다. 주로 한인교회에 다니면서 찬양을 들려준다는 이씨는 "멤버 가운데 내가 가장 고령이지만 젊은 음악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아 열심히 연습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나이를 먹으니 음악이 더 깊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며 "같은 곡을 연주해도 젊었을 때와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연습시간이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치지 않고 하루하루 왕성한 연주활동을 하는 이씨에게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을 공개하라고 재촉했다.

"물론 운동하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집 앞의 공원을 한바퀴 걸어. 하지만,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하는데 고민이 생길 수 있나.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삶을 적극적으로 사니까 나도 모르게 젊어지네. 자네도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사랑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게, 나처럼. 알츠하이머도 없다고. 하하하."

장연화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