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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장] 갱단에 피살된 장남 죽음, 불상 기증하며 견뎌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7화>
(14) 슬픔을 기부로 승화

'한국예술 전파' 민간 외교관 체스터 장 박사

 
작은 할아버지 이름 기리려 

케임브리지대에 '천문도' 기증
  
왕실 화가 이형록 책거리 4쪽
포틀랜드서 남은 반쪽 찾아내
 
 2004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한 체스터 장 박사가 1966년 장 박사의 어머니(민병윤)가 기증한 '천문도' 앞에서 학교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체스터 장 박사 제공]

2004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한 체스터 장 박사가 1966년 장 박사의 어머니(민병윤)가 기증한 '천문도' 앞에서 학교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체스터 장 박사 제공]

 


지난해 3월 나와 아내 완다, 아들 카메론과 며느리 니콜이 소장한 예술품 1000여점을 LA카운티미술관(LACMA)에 기증하기로 한 후 벌써 1년이 넘게 소장품을 정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LACMA 수장고로 이동한 작품들은 300여점. 한국 조선 시대 중기와 후기에 이름을 날린 김득신·유은홍·김명국의 작품과 이중섭·박수근 등 한국 근대미술 작품들은 물론, 신라·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도자기, 고지도, 자개 등 공예품까지 다양하다. LACMA는 곧 각 작품의 시대와 배경 등을 정리한 내용을 도록으로 발간할 것이다.  
 
LACMA에 기증하기로 결심한 데는 중국·한국 미술부 수석 큐레이터인 스티븐 리틀 박사의 역할이 크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호놀룰루 미술관 디렉터로 부임할 때였다. 당시 그가 보여준 아시아 미술에 대한 학식과 관심, 열정은 2011년 LACMA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대로였다. 난 우리 가족이 대대로 물려받은 예술품을 그가 있는 LACMA에 맡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케임브리지에 가족 위해 첫 기증  
 
LACMA로 이사하는 내 소장품 중에는 정조 시대 이름을 날렸던 유명한 왕실 화가 이형록의 낙관이 새겨진 책거리도 있다. 원래는 8쪽짜리인데, 어머니가 남긴 건 절반(4쪽)뿐이다. 책거리는 책들과 문방용품들을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듣기로는 책을 유별나게 사랑한 정조가 옥좌 뒤를 장식하는 병풍 그림 속에 책을 그려 넣으라고 지시한 후 양반 가문들이 너도나도 이를 따라 하면서 유행이 됐다. 정조의 책거리는 주로 책이었겠지만, 대부분은 그림의 주인이 사용하던 방의 풍경을 담기에 책 외에도 도자기나 붓과 벼루, 화병, 향로 등도 볼 수 있다.
 
이형록의 책거리는 실제 책가로 혼동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구성이 간결하다. 기존의 갈색 외에도 녹색이나 청색과 같이 새로운 배경의 색을 실험해 다른 책거리보다 화려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게티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국 미술사를 다룬 도록 ‘동쪽을 보다(Looking East)’에서는 책거리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형록의 작품이 없어 아쉽다고 적었다. 그만큼 그는 유명하지만, 왕실 화가이기에 자신이 그린 작품에는 이름을 남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력을 뽐내고 싶었던 그는 몰래 자신의 낙관을 그림에 남겼다. 책거리 오른쪽 상단에 찍힌 그의 붉은 낙관을 보면 관찰력이 뛰어나고 섬세하면서도 왕의 노여움을 개의치 않는 대담한 성격이 보인다.
정조시대 책거리 화가로 유명한 이형록의 낙관이 새겨진 책거리.

정조시대 책거리 화가로 유명한 이형록의 낙관이 새겨진 책거리.

 
지난 5월 포틀랜드미술관에서 내가 가진 이형록 책거리의 반쪽(4쪽)을 갖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이다. 이형록의 책거리가 언젠가 완성된 모습으로 미주 한인들을 만날 날이 올 것이다.  
 
기억나는 또 다른 병풍 작품은 26살 때인 1966년 케임브리지 대학에 기증한 10쪽짜리 ‘천문도’. 말 그대로 우주 천체를 담은 그림이다. 조선 시대 학자들이 다루던 천체와 서양식 천체가 그려져 있는데, 어머니는 이 천문도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작은 아버지(내게는 작은할아버지)인 민규식 씨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기증하기로 결심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케임브리지를 찾아가 가족의 이름으로 기증했다. 당시 병풍을 포장하고 보험에 가입해 수송하는데 든 비용은 합쳐서 영국 돈으로 약 800파운드(약 2400달러) 정도였다. 이 비용은 학교에서 내기로 했는데 어찌 됐는지 학교는 800파운드를 지급하고 천문도를 사들였다고 기록을 남겼고 기증자 이름도 ‘무명’으로 썼다. 나는 이를 정정하기 위해 지난 10년이 넘게 학교에 이메일로 연락하고 찾아가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다행히 최근 학교에서 우리가 기증했다는 서류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현재 이 천문도는 케임브리지 대학 산하 휘플(Whipple) 과학사박물관에 있다. LACMA와의 전시 계약에 따라 내년에 LA에 찾아올 예정이다. LA를 찾아오는 천문도 옆에 ‘케임브리지 첫 한국인 졸업생 민대식을 기리는 가족들의 기증’이라고 쓴 명패가 달리길 기대하고 있다.  
 


가장 슬픈 기부
 
2005년 5월 7일 장남인 체스터 클레어런스가 LA한인타운의 한 식당 밖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가장 빛날 때인 26살이었다. 민간 항공사에서 조종사로 일하고 있던 클레어런스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하기 위해 외출 중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클레어런스는 식당 밖에서 두 아시안 갱들 사이의 싸움을 말리려 했단다. 나는 항상 큰아들에게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가르쳤다. 도망치는 삶은 살지 말라고 가르쳤다. 클레어런스는 배운대로 도망치지 않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됐다.
 
클레어런스는 숨지기 1년 전 LACMA에 20세기 도자기 항아리를 기증했다. 앞면에는 굴뚝이 달린 서양풍의 집이 그려져 있고 반대면에는 베네치아풍의 작은 곤돌라가 있는 유럽풍 정경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예술품이다. 클레어런스는 이 도자기가 평화로운 동서양 문화의 융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각별히 아꼈었다. 아들의 죽음을 겪은 후 나는 그 도자기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고통스러운 비극을 견디는 과정에서 나는 아들의 이름으로 예술품을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LA의 다양한 아시안 커뮤니티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을 해소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내가 선택한 작품은 ‘지나 부다 아미타바’로 불리는 베트남의 목각 라커 불상이었다.  
큰아들 체스터 클레어런스가 근무하던 걸프스트림 항공사는 5호 비행기를 아들의 한국이름 '장진현'으로 명명했다.

큰아들 체스터 클레어런스가 근무하던 걸프스트림 항공사는 5호 비행기를 아들의 한국이름 '장진현'으로 명명했다.

 
아들의 죽음과 나의 기증은 LA타임스에도 크게 실렸다. 나는 LA타임스에 “불상은 하나의 공통적인 종교 신앙을 상징한다. 이 불상의 기증이 베트남 이민자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해주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LACMA는 이 불상을 동남아 화랑에 전시했는데, 그 후 UCLA 인도-동남아 미술학 박사과정에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베트남계 학생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내는 한국 국립박물관에 19세기경에 제작된 ‘매치락(Matchlock)’ 장총을 기증했다. 왕궁 근위병들이 왕족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던 구식 장총인데, 아내는 이 총을 꽤 아꼈었다. 벌써 17년이 흘렀다. 아들은 하늘에서 별이 되어 빛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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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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