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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장] 17시간 비행내내 '보트 피플' 식음전폐…울면서 수송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7화>
(11) 여권 3개로 세계를 누비다

'한국예술 전파' 민간 외교관 체스터 장 박사



'사막방패' '사막폭풍' 작전 참여

홍해서 케네디항공모함 근무도

때·장소마다 여권 다르게 이용
부시 대통령 등 고위직도 만나
 
1975년 4월 29일 남가주에 도착한 첫 베트남 난민들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는 모습. [OC레지스터 제공]

1975년 4월 29일 남가주에 도착한 첫 베트남 난민들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는 모습. [OC레지스터 제공]

 
 
체스터 장 박사가 걸프전 당시 미 해군 케네디 항공모함에서 근무하던 모습. [체스터 장 박사 제공]

체스터 장 박사가 걸프전 당시 미 해군 케네디 항공모함에서 근무하던 모습. [체스터 장 박사 제공]

 
나는 연방정부가 발급한 3종류의 여권을 갖고 있다. 짙은 남색의 개인 여권, 빨간색의 공무 여권, 검은색 외교관 여권이다. 정부를 대리해 여행해야 할 때는 검은색 여권을 제시했다. 이 여권은 우리가 외교관 신분이며 그에 상응하는 외교관 면책권과 특혜를 누릴 수 있음을 증명한다. 빨간색 여권은 공무상 여행이지만 외교적인 이유가 아닐 경우 썼다. 물론 개인적으로 여행할 경우엔 당연히 개인 여권을 사용했다. 

 
여러 나라를 방문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나는 때와 장소에 따라 이들 여권을 구별해서 사용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을 입국할 때는 빨간색 공무 여권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입국할 때는 검은색 외교관 여권을 제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부 다른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매우 적대적이라 내 여권에서 이스라엘 입국 기록을 발견하게 되면 당장 영구 입국 금지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또 사법제도가 엄격한 외국을 다닐 때는 외교관 면책특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검은색 여권을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별일 아닌 일도 해당 국가에서는 매우 중대한 범죄로 간주하는 일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트 피플'을 수송하다  
연방 항공청(FAA)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사건이 꽤 있는데 그중 하나가 1983년에 진행한 베트남 난민 수송 프로젝트다. 워싱턴DC의 FAA 본부로부터 받은 지시였다. '보트 피플'로 불리는 베트남, 캄보디아와 라오스 출신 난민들을 괌에서 LA국제공항까지 수송하는 일이다. 중간 기착은 없었다. 수송 수단은 연방 정부가 브래니프 항공사에서 전세 낸 B-747기였다. 이런 노선의 비행은 하와이 호놀룰루 아니면 힐로에 기착했다가 LA로 향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명령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괌에서 출발한 비행기 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자녀들을 안거나 손을 잡고 있는 부모들로 만원을 이뤘다. 나와 조종사팀은 최대한 북쪽 루트를 따라 비행했다. 소위 '그레이트 서클'로 불리는 북위 노선은 지구의 둘레가 상대적으로 짧아 비행 거리를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료를 절감하기 위해 최대한 높이 비행했다. 하나님이 도우셨는지 날씨가 좋았고 연료를 많이 소비시키는 맞바람도 거의 없었지만, 우리 모두의 눈은 잔여 연료량을 보여주는 계기판에만 꽂혀 있었다.
 
식음 전폐로 화장실도 안 써
장장 17시간의 비행이었지만 난민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조종실에서 나와 승객실로 갔다. 어두운 객실 안에는 공포로 가득한 커다란 눈동자들뿐이었다. 2층 조종실로 돌아가기 전에 여승무원에게 난민들의 상황을 물었다. 그녀는 어른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있고 아이들도 함부로 먹거나 마시지 못하게 부모들이 단속하고 있다며 자신도 이런 장면은 생전 처음이라고 들려줬다. 아마 너무 겁에 질렸기 때문에 음식도 의심했을지 모른다고, 모국에서 경험한 잔학성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비행기 뒤쪽으로 걸어가 오물 추출장치를 점검했다. 그런데 비행기에 오물이 전혀 없는 것이다. 화장실이 고장 났기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정비기록도 점검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 뒤를 쫓아온 여승무원은 "배설물이 없는 비행기는 난생처음 봤다"며 놀라워했다. 나는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부산에서 겪은 난민 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이들처럼 수많은 불확실성으로 불안해했던 시간을 보냈기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초조함과 불안감으로 긴 비행시간을 견디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가슴 아팠다. 우리 가족이 그랬듯, 이들은 LA에 도착하자 곧장 버스에 실려 다른 곳으로 떠났다.  
 
걸프전 '사막 폭풍' 참여도
또 다른 기억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할 때다. 1987년 12월부터 1992년 6월까지 FAA 사업국장과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미국대사관의 수석 자문관을 겸하고 있을 때였다.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군이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매장량이 많고 미국과 가까운 자신들이 이라크의 다음 침공 목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군 및 연합군이 자국 영토에 주둔할 수 있도록 즉각 합의했는데 자국민들은 분노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막아야 했다.
 '독수리팀'으로 불리는 외교단이 가동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미국 대사와 7~8명의 고위 대사관 직원들로 구성됐는데 나는 독수리팀 구성원의 한 명으로 사막 방패(Storm Shield)와 사막 폭풍(Desert Storm) 작전에 참여했다. 걸프전 기간에는 며칠간 홍해에서 케네디 항공모함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 군함은 전쟁 발발 직전 이라크 바그다드를 향해 서쪽으로 항해하던 중 지원 요청을 받았다. 
 
부시 대통령과 조종 경험 나눠
걸프 전쟁 중에 '부시 41'로 불렸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만났다. 제다에 있는 파드 국왕의 왕궁에서였는데 그곳에서 본 홍해의 아름다운 전망을 나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다. 동화에서나 나올 듯한 황홀한 경관이었다. 
 파드 국왕이 주최하는 만찬은 최고급이었다. 다른 공식 만찬과 달리 국왕의 근위병들도 참석했다. 부시 대통령, 파드 국왕과 함께 만찬을 즐기는 동안 아내는 다른 방에서 파드 왕비와 부시 영부인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만찬 후 부시 대통령은 내게 FAA가 중동전에 참여한 이유를 물었다. 내가 민간 항공국 관리와 관련 업무 협력 지원이라고 설명하자 굉장히 만족해했다. 짧게 만났지만, 부시 대통령은 대단히 정중했다. 말씨도 부드럽고 다른 사람의 말도 경청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토피도(공중어뢰) 폭격기를 조종한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 밖에도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딕 체니 국방부 장관 등과도 업무 보고차 수차례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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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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