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터 장] 야간 정찰비행 작전 참여하며 CIA 업무 지원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7화>
'한국예술 전파' 민간 외교관 체스터 장 박사
(9) 모험을 즐기다
한국 예술 알리는 '민간 외교관'
일본 공군 자위대 지원하고
인도·남미 등에 항공기 수출
위장신분 조종사들과 일하며
남중국해서 비밀 임무 수행
스튜어드-데이비스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 새로웠다. 특히 스튜어드-데이비스는 전 세계 고객들에게 비행기를 판매.지원했기에 나는 원하던 항공 여행을 마음껏 즐기며 일할 수 있었다. 1965년부터 1970년까지 하와이주 호놀룰루 지사에 배치돼 근무하는 동안 나는 알로하 항공사가 보유한 2대의 바이스카운트 항공기에 필요한 여분의 부품들을 확보했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일본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일본 공군 자위대와 스튜어드-데이비스간의 업무를 조정하는 담당자였다. 당시 일본은 대잠수함 폭격기인 록히드 P2V ‘넵튠’ 비행기를 여러 대 갖고 있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했기 때문에 공격용 무기는 소유할 수 없었지만, 이 비행기는 자국 보호 명목으로 보유할 수 있었다. 일본 공군은 스튜어드-데이비스사의 웨스팅 하우스 J34 제트기들을 P2V에 추가시켜 일본 공군의 전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나는 일본 공군이 제트 엔진의 조작 매뉴얼을 이해하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남미와 인도도 그 무렵 내가 자주 다니던 출장지였다. 나는 ‘플라잉 박스카’로 불리던 C-82를 비롯해 C-82 제트기종과 C-119 제트기종에 J.34를 추가해 판매하는 일도 했다.
이 밖에 미군 부대와 국내 항공사 및 항공기 제조업체와 일본 자위대 같은 외국 군부대도 거래했다. 그 무렵 C-82는 남미 국가들과 인도에 많이 인도됐는데 나는 이들 비행기를 수송하러 여기저기 다녔다. 한 예로 인도 공군에만 C-82 60대나 전달했으니 얼마나 많이 오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후지 중공업이 신제품 F100과 F200 모델을 제작했을 때는 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역할도 맡았다. 나는 수출 가능성 타진을 위한 예비조사를 진행하고 시험비행 안전기준 통과 여부를 확인했으며 후지 소속 조종사들과 함께 일했다. 규모 면에서 후지는 제너럴모터스 못지않았다. 나는 후지가 생산한 신제품 비행기들이 시장성을 갖췄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들 비행기를 조종하고 성능을 분석했다.
에어 아메리카로 옮기다
에어 아메리카 항공사가 중앙정보부(CIA) 소속 항공회사라는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46년에 여객 및 화물 항공사로 설립된 에어 아메리카는 1950년부터 1976년까지 CIA가 비밀리에 소유하고 운영했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 내 마약 밀수 지원 등 동남아 내 비밀 작전을 공급하고 지원한 일은 유명하다.
에어 아메리카의 뿌리는 2차 세계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6년 클레어 체놀트와 휘팅 윌라우어가 중국 국가구호재활국(CNRRA)의 항공운송으로 창설한 민간 항공 수송사(CAT)였다. 하지만 숨겨진 진짜 목적은 장제스와 그의 국민당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마오쩌둥 치하의 공산주의자들과의 내전에 투입돼 보급품과 식량을 공수하고 비밀리에 정찰하는 역할이었다.
최초의 조종사 중 다수는 일반적으로 플라잉 타이거즈로 알려진 제2차 세계 대전 전투 그룹의 베테랑들이었다. 1950년 장쩌민 군대가 패배하고 타이완으로 퇴각하면서 항공사가 재정난에 직면하자 CIA는 체놀트와 윌라우어를 인수했다. 이에 CAT는 1953년 에어 아시아로 이름을 변경해 민간 항공사가 됐다.
에어 아메리카의 임무는 연방 정부가 월남전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공식으로 발표하던 때에도 계속됐다. 미국은 공산군 대항 세력들에게 은밀하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고 그 최전선에는 민간 항공사로 위장한 에어 아메리카가 있었다.
CIA의 업무를 지원하다
스튜어드-데이비스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던 내게 스튜어드가 휴 그런디를 만나보라고 했다. 에어 아메리카에 PBY ‘카탈리나’ 해상 비행기를 보급하는 일 때문이었다. 스튜어드는 내가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가 연방항공청(FAA)의 복수 엔진 해상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의 근무지가 대만에서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 내가 함께 일한 조종사 중 상당수가 ‘세양(sheep-dipping)’ 상태를 거친 상태였고 내가 발급 책임을 지고 있던 FAA 상업항공기조종사 자격증을 갖고 싶어하기도 했기에 일하기도 수월했다.
‘세양’은 정보계통 사람들이 쓰는 용어로 쉽게 말하면 다른 신분으로 대체하는 행위다. 마치 양을 강물에 담그면 몸에 붙었던 벼룩 따위의 벌레가 없어지듯이 특정 개인을 세양시키면 신원 조회할 때 원래 신분의 흔적은 일체 사라지고 전혀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나온다. 군대에서는 은밀한 작전 수행에 임하는 군인을 민간인으로 위장시킬 필요가 있을 때 세양을 허용한다. 좋은 예가 U2기 조종사였던 프란시스 게리 파워스다. 그는 공군 대위 출신이지만 민간인 신분으로 CIA의 정보수집 비행기인 U2기를 구소련 영공에서 조종하다가 1960년 격추당했다.
그런디는 당시 에어 아메리카의 사장이었다. 그는 키가 훤칠한 신사였는데 사려가 깊고 신중한 지도자였다. 직원들의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자유와 생명을 잃을 위험에 직면하는 조종사들이 많다는 사실을 늘 기억했다. 그런디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운전사가 달린 쉐보레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즐겼다. 나 역시 대만 날씨가 후덥지근할 때는 그 차에 동승하는 것을 즐겼다.
그런디가 CIA 업무 지원을 얼마나 철저하게 비밀리에 지원했는지 그의 부인은 그런디가 은퇴한 후 30년 뒤인 2001년 CIA로부터 표창을 받을 때까지 까맣게 몰랐다. 에어 아메리카의 슬로건이 ‘모든 것을, 어디서나, 언제든지, 프로페셔널하게’였는데 그런디와 에어 아메리카는 언제 어디서나 프로페셔널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비밀 정찰부터 화재진압까지
PBY는 1969년 또 다른 독특한 임무 수행을 위해 남가주 롱비치의 스튜어드-데이비스 본사로 돌아왔는데 바로 산불을 진압하는 것이었다. 이 비행기는 호수 표면에서 물을 신속하게 퍼 담은 후 화재현장으로 날아가 쏟아부었다. 그 복수 엔진 해상 비행기의 조종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였다.
장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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