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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핵을 만든 인간의 공포와 광기를 고뇌했다

냉전 이후 사라지는 듯했던 핵무기 공포가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황이 불리할 때면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선거 기간인 지난 3월에도 “핵무기는 항상 전투 준비 태세에 있다”고 공개적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한반도에서도 핵 위협은 더 커졌다. 지난 1월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는 지난 6일 “한국의 핵 무장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발언까지 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핵무기를 둘러싼 고뇌는 다시 대작 영화의 소재가 됐다. 2023년을 지배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작품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었다. 대작으로 유명한 드니 빌뇌브 감독(듄·블레이드 러너 2049)도 핵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원작인 애니 제이콥슨의 소설 ‘Nuclear War: A Scenario’의 내용상 ‘오펜하이머’를 이을 영화로 꼽힌다.     영화에서 핵무기는 인류의 종말을 의미했다. 핵전쟁이 당장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문명과 생태계의 파괴자였다. 핵이 불러올 수 있는 종말은 그 자체로 공포였고 영화는 핵무기의 탄생과 함께 핵의 공포와 부조리를 고민했다.   ‘오펜하이머’가 발표되기 60년 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핵을 주제로 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를 발표했다. 허무주의, 절망, 광기에 대한 큐브릭의 심화된 고찰이었으며 전쟁과 정치가들의 정쟁을 조롱한 당대 최고의 핵전쟁 영화였다.     핵무기 위협이 재부상한 지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함께 다시 한번 상기해볼 만한 영화 2편이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함께 1964년에 발표된 ‘페일 세이프(Fail Safe)’, 그리고 1965년 발표된 ‘베드포드 사건(the Bedford Incident)’이다. 두 편 모두 냉전 시대가 낳은 영화들로 영화사에 등장한 핵 관련 영화 중 보석 같은 작품들이다.     ▶‘페일 세이프’의 경고   1962년 출판된 유진 버딕의 베스트셀러 ‘페일 세이프(한국 개봉명 ‘핵전략 사령부’)’는 1964년 시드니 루멧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 월터 매튜, 헨리 폰다가 주연한 이 영화는 1960년대 초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을 배경으로 한다. 버튼 하나로 도시 하나를 파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의 위력과 급박해진 핵전쟁 위협을 실감케 하는 영화였다.     모스크바에 핵폭탄을 떨어뜨리기 위해 죽음의 비행을 하는 미 공군 폭격기 편대에 본부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지만 시스템 오작동으로 모스크바를 공격하라는 명령으로 잘못 전달된다. 훈련된 조종사들은 암호화된 명령만을 믿고 모스크바 상공에 도달한다.     미 대통령(헨리 폰다)은 미소 간의 전면전을 막기 위해 최후의 카드를 꺼낸다. 그것은 바로 소련과 협조하여 모스크바 상공의 미 폭격기를 추락시키라는 명령이다. 적을 도와 동료를 추락시켜야 하는 공군은 거역할 수 없는 명령과 동료애 사이에서 고뇌한다. 자신들을 격추하려는 아군의 공격을 피해 모스크바로 돌진하는 폭격기 편대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냉전 종식 이후에도 핵 위협은 사라진 적이 없다. 2000년 조지 클루니는 ‘페일 세이프’를 CBS 화면을 통해 ‘생방송 연극’으로 재연한다. 35년 전 핵 앞에 무력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냈던 영화의 엄중한 메시지를, 1950년대와 1960년대 황금시대를 누렸던 TV 라이브 드라마 ‘플레이하우스 90’의 형식을 빌려 30년 만에 생방송 영화를 흑백으로 재연해 냈다.     영국 출신의 스티븐 프리어스가 연출을 맡았고 조지 클루니, 리처드 드라이퍼스, 하비 카이텔 등이 출연했다. 월터 크롱카이트가 작품의 배경을 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연극은 NG를 허용할 수 없는 생방송이라는 점 때문에 오랜 기간의 리허설을 걸쳐 촬영에 들어갔다.     ▶‘베드포드 사건’의 광기   ‘베드포드 사건’은 1965년 영미 합작으로 제작됐다. 스탠리 큐브릭의 초기작에서 제작자로 활동하던 제임스 B. 해리스의 첫 번째 연출작이었다. 미 해군 구축함 베드포드가 그린랜드 연안에서 소련 잠수함을 발견한다. 기자 벤 먼스포드(시드니 포이티에)와 나토 해군 고문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U보트 함장을 지낸 볼프강 슈렉 준장(에릭 포트만)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함장 에릭 핀랜더(리차드 위드마크)는 사령부의 명령을 무시한 채 소련 잠수함을 사냥감으로 삼아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소련 잠수함이 핵 어뢰를 발사한다. 결국 함장의 고집은 베드포드호를 엄청난 위기에 빠트린다.     해리스 감독은 원작 소설과 달리 잠수함이 등장하지 않는 ‘잠수함 영화’로 개작했다. 전쟁의 물리적 액션보다는 마지막 파국까지 몰고 가는 심리적 압박감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핀랜더의 집착은, 지옥까지 쫓아가서라도 고래를 잡겠다는 ‘모비 딕’의 에이허브 선장을 연상시켰다. 그는 고래 대신 소련 잠수함을 쫓는다. 이 때문에 원작은 실제로 ‘모비 딕’의 표절작이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영화가 만들어졌던 1960년대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핵과 3차 세계대전에 대한 공포감을 공유하고 있던 시대였다. 영화는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정치가의 애국심이 진정 인류 평화를 위한 마음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폴아웃’ 핵전쟁 그 이후   현재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스트리밍되고 있는 TV 드라마 ‘폴아웃(Fallout)’은 핵이 지구를 뒤덮은 미래의 참혹상을 ‘미리’ 경험하게 한다. 2077년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가 200년 후인 2296년에 맞게 되는 핵전쟁의 여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핵은 어느덧 인류를 종말로 몰아넣었다. LA는 황무지로 변해 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세상, 국가는 사라지고 ‘볼트(Vaults)’라는 생존 지향 집단들이 황무지의 권력 지형을 이루며 서로 투쟁한다. 종말이 가까운 시기에 벌어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자원 전쟁 … . 과거는 차라리 신비하다. 그들의 과거는 우리의 오늘이다. 200년의 간극, 이제나 그제나 핵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도덕, 인본주의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루시 매클레인은 자신의 2세들이 미국을 재건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핵이 없는 세상, 과연 인류에게 가능한 희망일까.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공포 영화 핵무기 공포 영화 제작 대작 영화

2024-05-15

[기고] 북한 독재자가 핵개발 목 매는 이유

요즘 SNS 등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뉴스가 김정은의 사진과 함께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올해 11세에 불과한 딸 김주애를 열심히 데리고 다닌다. 마치 어린 딸에게 벌써 독재자의 길을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 김정은의 누이동생 김여정도 오빠의 권력을 등에 업고 설치는 모습이다. 전형적인 독재자 일가의 행태를 보는 듯하다.     독재자의 공통점은 철권통치다. 국민에게 공포심을 갖도록 해 저항 의식을 억누른다. 이미 3대 권력 세습을 한 김정은 일가도 전형적인 독재자의 통치 방식을 보여준다.   최근 김정은은 군부대를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과 실험, 그리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대회적으로 무력을 과시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한 것에서 비롯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행동이다.     북한 미사일의 장사정화(長射程化) 기술이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로 진입했다고는 볼 수 있다. 미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형 시험 발사 성공이 이를 말해준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5월 사거리 4500㎞급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를 포함해 6번 연속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하기도 했다. 북한의 장사정화 기술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위성 발사체를 빌미로 발사했던 장거리 로켓 시험을 포함하면 20년 이상의 개발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이 핵무기 개발에 결사적인 이유는 유일하게 가진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심각한 경제 붕괴 상황을 맞고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주민도 많은 실정이다. 이런 위기에 핵무기 개발은 대외 과시용뿐 아니라 주민 불만을 잠재우는 데도 유용한 수단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김정은은 지난 10년 동안 북한을 통치했다. 그의  통치 스타일 역시 극도로 강압적이고 무시무시한 공포 정치다.  그런데도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등으로 국제 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통상 독재 정권의 첫째 목표는 권력의 유지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을 지켜주고 옹호해 줄 수 있는 연합 세력이 필요하다. 북한에서는 군부와 충성파 집단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김정은은 권력 승계 이후 자신의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 통치 시스템에 많은 변화를 주기도 했다. 그의 강압적인 지배와 극도의 공포 분위기 조성은 북한 주민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생존 문제에 대한 걱정과 함께 권력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가야만 했다.   한국에서 진행 중인 한미연합편대군종합훈련(KFT), 연합공중침투훈련 등은 북의 핵 공격에 대비, 핵반격 가상전술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자 김정은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적대 세력들의 끊임없는 군사적 도발”이라고 악을 쓰며 대들었다.   지구 한편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북한의 핵 도발 가능성도 여전한 상태다.  핵무기는 전쟁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다. 그리고 현대전에는 전선이 따로 없다. 미사일과 드론, 그리고 거기에 얹혀진 핵탄두까지 전후방을 가리지 않는다. 또 막다른 길에 몰린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말이다.     독재자의 일상은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너 죽고 나 죽자’는 막가파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현재로썬 북한의 김정은이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오로지 핵무기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북한 독재자 미사일 시험발사 독재자 일가 핵무기 개발

2024-04-29

[기고] 북한 핵무기 개발 막아야 하는 이유

지난주 대만 동해안에서 규모 7.4의 강진이 발생해 대만은 물론 인근 국가에서도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다. 지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대만에서 25년 만에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원자탄의 32배 위력이었다고 한다. 지진은 마침 출근 시간대에 발생해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10명이 넘고, 부상자도 1000명 넘게 발생했다. 건물도 100여 채가 무너졌다. 이번 강진은 150㎞ 가량 떨어진 타이베이에서도 강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전이 발생해 8만 7000여 가구의 전기 공급이 끊기기도 했다. 강진으로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 지진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이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빈번해지고 있다. 지진의 원인과 안전 대책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지진이 천재지변으로 인한 자연재해라고 한다면, 핵폭탄은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인재라고 볼 수다. 특히 요즘 기승을 부리고 있는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실험은 전쟁 위협의 마지막 광기로 보인다. 이로 인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국제사회에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강진 발생으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핵폭탄으로 인해 겪게 될 고통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듯하다.  지진은 지구의 지각이 움직이는 현상으로, 강도는 ‘리히터 규모’로 측정되며 건물, 교량, 도로 등의 구조물을 파괴하고 인명 피해를 초래한다. 또한 산사태, 해일 등의 재난도 일으킨다.    반면 핵폭탄은 최악의 무기다. 핵폭탄은 원자핵 분열 반응을 이용하여 발생하는 무기로, 폭발력은 킬로톤(KT) 또는 메가톤(MT)으로 측정된다. 핵폭탄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어 도시 전체를 파괴하고 수많은 인명 피해를 불러온다. 그 뿐만 아니라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장기적인 피해도 동반해 핵폭탄은 가공할 전쟁의 마지막 무기로 여겨지고 있다.     방사능 오염은 환경 파괴, 기후 변화 등을 유발해 생물 다양성 감소, 특히 생태계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식량 공급 등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인류는 일본에 투하돼 세계 2차 대전의 종지부를 찍은 15kt급 원자폭탄의 엄청난 위력을 이미 경험하기도 했다.   군사학에서는 핵폭탄의 3대 기본 요소로 열,폭풍, 방사능을 꼽는다. 우선 핵폭탄 폭발 시 엄청난 고열이 발생한다. 2차 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15kt급만 해도 반경 2.5Km 이내 지역이 최고 섭씨 4000도까지 올라간다. 또한 주변 5Km 이내는 미세 먼지까지 휩쓸고 갈 만큼 강력한 폭풍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후에도 방사능 낙진에 오염된 지역은 인명 피해는 물론 풀 한 포기 남지 않고 20년 이상 오염된 땅으로 변하게 된다. 이같은 핵폭탄 공포로 인해 2차 대전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요즘 북한이 핵무기 개발로 한국은 물론 자유 세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만약 현실화하더라도 한국과 미군의 군사 ‘작전계획 5015’에 의해 초장에 저지될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전력 면에서도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핵무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을 상대로 핵전쟁을 시도하는 것은 자살 행위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몽둥이 들었다고 돌팔매에 안 맞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피아를 막론하고 핵무기는 인류를 파멸로 이끌 마지막 병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북한 핵무기 핵무기 개발 방사능 오염 인명 피해

2024-04-15

씹다 버릴 껌 취급…영화사 최대의 핵무기 조롱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그리고 3일 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후 역사의 주도권은 더 이상 인류가 아닌, 핵으로 넘어간다. 그들은 신무기가 전쟁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점차 인류를 위협했고, 세상은 지금까지 멸망의 기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에서 전쟁이 중단된 적은 한번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는 동안, 원로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그들에게 원자폭탄은 껌과 같은 존재이다.     올해로 개봉 60주년을 맞은 스탠리 큐브릭의 매스터피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연신 껌을 씹고 있다. 껌의 역할은 불안을 완화하는 일이다. 단물이 빠지면 뱉어 버리면 그만이다. 껌은 일회성이라는 본질에 반해 사라지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고 있을 때, 핵무기를 껌 정도의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있던 늙은이들이 모여 앉아 인류 평화를 논한 결과다.   큐브릭 감독은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나면 뱉어 버리는 책임감 없는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의 도구로 껌을 사용했다. 영화의 부제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걱정할 필요 없어. 폭탄 하나만 있으면 돼)은 큐브릭 감독이 인류사에 던진, 영화사상 최대의 조롱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허무주의, 절망과 광기에 대한 심화된 고찰이며 전쟁과 정쟁을 유머로 승화한 최고의 영화로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개발로 위기감이 고조되던 냉전 시대에 발표됐다. 그러나 핵에 관한 인류의 우려는 60년이 지났어도 본질적으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영화에 담겨 있는 메시지와 많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영화의 모든 설정은 큐브릭의 우스꽝스러운 상상에서 시작한다.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기반하지만 그 설정을 완전히 뒤틀어 버린다.     인류는 언제부터인가 폭격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냉전시대 미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커티스 르메이는 “We're going to bomb them into the Stone Age”(폭격으로 석기시대로 되돌려 보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사일과 폭탄이 눈앞에 당면한 문제 해결의 최선책이라고 믿는 사람은 르메이 뿐만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반공주의자 잭 D. 리퍼 장군은 전형적인 폭격 만능주의자다. 그는 성기능 장애의 원인이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불소로 미국 남성들의 힘을 빼고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리퍼 장군이 난사하는 기관총은 남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증류수와 빗물만 받아 마시는 그는 마침내 소련을 응징하기 위해 핵폭탄을 실은 폭격기를 발진한다.   리퍼 장군의 망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의 게르만 우월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에 가서야 등장하는 나치 독일의 망명 과학자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성을 중심으로 국가를 세우고 남녀 비율은 1 대 10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이러한 제안은 나치의 '히틀러 유겐트'를 연상케 한다. 나치는 제1제국을 신성로마, 제2제국을 독일제국으로 보고, 나치 지배의 제3제국 수립을 선포했다. 유소년과 청소년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엘리트들을 양성한다는 '인류 계획'이었다.     큐브릭은 영화를 통해 결과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본질적으로 나치, 소련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기득권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얼마나 희생되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저 껌처럼 씹고 뱉으면 그만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인들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종국에는 실패로 돌아간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으로는 절대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 머플리미 대통령이 전쟁 상황실에서도 서로 싸우는 참모들에게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이라는 대사를 던지는 장면은 상징하는 바 크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전쟁에서 아이러니를 찾고 비참한 코미디로 마무리된다. 영화가 최고의 정치 풍자극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피터 셀러스라는 위대한 천재 배우의 연기 때문이다. 출세작 ‘핑크 팬더’와 1인 다역으로 유명한 그는 3명의 중심 캐릭터 라이오넬 맨드레이크 영국군 장교, 머킨 머플리 미국 대통령 그리고 스트레인지 박사를, 돌아가면서 시니컬한 익살과 씁쓸함으로 연기해낸다.     영화는 핵이 폭발하는 몽타주와 함께 노래 ‘We’ll meet again'으로 끝이 난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위를 우선시하는 자들이 전쟁 상황실에 모여 앉아 있는 한 전쟁은 반복될 것이다. 3차대전 이후 인류는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60년 전큐브릭이 경고한 인류의 섬뜩한 미래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핵무기 영화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영화사상 최대 핵무기 개발

2024-02-02

[커뮤니티 액션] 2045년까지 핵 없는 세상 만들자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100주년을 맞는 2045년까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해는 제가 90살이 되는 때입니다.”   최근 뉴욕을 방문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증언단 이대수 목사(아시아평화시민넷)의 꿈이다. 이 목사와 원폭 피해자 1세, 2세들로 구성된 증언단 6명은 유엔에서 한국인 피폭자 실태를 알리며 ‘핵무기 없는 세상’을 외쳤다.   이들은 2017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ICAN)이 유엔에서 주최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실태와 시민법정’에 참여했다. ICAN은 지난 11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를 ‘뉴욕 핵 금지 주간’으로 정하고 여러 행사를 진행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미국에 와서 증언하는 것은 피폭 7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증언단은 이렇게 외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된 약 70만 명의 10%인 7만여 명은 코리안이었다. 20만여 명이 피폭 현장에서 사망했고 이 가운데 4만여 명이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은 피폭 후 구호와 치료 과정에서 철저하게 차별당했다. 1945년 8월 종전 뒤 2만3000여 한국인 피폭자들은 귀국했으나 일본과 미국, 그리고 한국 정부의 외면과 냉대 속에서 방치됐다. 2016년 5월에 겨우 ‘한국인 원폭 피해자 지원법’이 제정됐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피폭자 1세만 인정되고 2, 3세는 제외됐다. 미국이 핵폭탄을 투하한 지 78년이 지났다. 핵무기가 잔인한 것은 가공할 살상 파괴력과 피폭의 후유증이 유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방사능이 유전자에 영향을 줘 2세, 3세, 나아가 4세까지도 각종 질환의 고통이 대물림되는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다. 대를 이은 피폭 후유증이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원폭 피해자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핵무기에 대한 포괄적 금지와 책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TPNW(핵무기금지조약)이 NPT(핵확산금지조약)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ICAN을 비롯한 세계 각국 반핵평화운동 단체들의 핵무기 반대 운동을 지지하며 핵무기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한다. 핵과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핵무기 투하 78년이 지나도록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핵무기 투하로 민간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고 후대에까지 불필요한 고통을 가중하고 있는 현실의 책임을 인식하고 사과와 배상을 할 것을 촉구한다.”   증언단은 또 뉴욕주 허드슨 강 핵 발전소 폐기수 방출을 성공적으로 막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 등과 함께 일본 영사관 앞에서 일본의 TPNW 가입과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에도 참여했고, 1일 뉴욕 동포 간담회도 열었다.   ‘2045년까지 핵 없는 세상’이란 꿈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내버려 두고 꿈도 꾸지 않는다면 암울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꿈을 꾸는 이들이 있기에 인류는 전진한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이 꿈을 위해 힘을 보탠다면 세상은 더 빨리 밝아질 터이다. 2045년 우리의 아이들이 몇 살이고 이들이 살아갈 세상도 생각해보자.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한국인 원폭 핵무기 투하 피폭자 실태

2023-11-30

한·미·일, 원폭 피해 2만3천명 한국인 외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무기는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 1·2세 등 방미증언단 5명이 지난 18일 LA에서 간담회를 열고, 그날의 참상을 전하고 핵무기 금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했다.     이날 방문단장인 이대수 아시아평화시민넷(ACNP) 대표는 히로시마·나카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건의 제2의 피해자인 한국인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했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핵무기 금지조약(TPNW)’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한국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비난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과 그의 ‘핵우산’을 제공받는 한국은 올해 68개국이 비준한 TPNW에 불참을 선언했다.     이대수 대표는 “TPNW는 핵확산금지조약에서 더 나아가 핵무기의 사용, 보유, 생산 등을 완전히 금지하자는 내용의 조약으로, 큰 발을 내디딘 국제법이지만 미국과 한국은 동참하지 않고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주술처럼 얘기하는 한국의 이와 같은 태도는 역설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뉴욕(11월 27일~12월 2일)에서 진행될 TPNW 당사국 회의 등에 참여해 다시 한번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촉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방미증언단에 따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된 약 70만 명 중 10%인 7만여 명이 한국인으로 추정된다. 또 20여만 명이 피폭 현장에서 사망했고, 이 가운데 4만여 명은 한국인으로 알려졌다. 1945년 8월 종전 후 2만3000여 명의 한국인 피폭자들이 귀국했지만, 일본, 미국, 한국 정부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고 방미증언단은 전했다.     이날 참석한 원폭 피해 1세대인 강윤자씨는 “히로시마에서 2살 무렵 폭탄이 떨어지면서 집이 무너져 12시간 동안 갇혔었다. 당시 일을 나가셨다가 피해를 본 아버지는 강가에 머리만 둥둥 떠 있는 상태에서 외삼촌에 의해 발견돼 피해자들이 모이는 수용소로 옮겨졌지만 24시간 만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원폭 피해자들은 겉으로 멀쩡해 해보지만 여러 정신적 건강상 문제를 안고 있고, 2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며 “나 역시 원인 모를 건강 문제와 계속 씨름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어머니를 둔 원폭 피해 2세대 김미미씨는 “어머니가 10살 무렵 피해를 보셨는데 하늘에 섬광이 번쩍이더니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폭발음이 연속해서 들렸다고 말했다”며 “당시 피해를 본 어떤 사람이 온몸의 살이 다 축 늘어진 채 실성한 상태로 어머니에게 길을 물어봤다는데 그 끔찍한 모습에 어머니께선 평생을 악몽에 시달리시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원자폭탄을 제조하기 전 이것이 당대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2, 3세까지 영향을 미칠 걸 알았어도 그들이 핵무기를 개발했을까 생각해본다”며 “세계 인류를 수십 번 몰살시킬 수 있는 살상 무기인 핵을 당장 저지하고 중단하는 일에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수아 기자미국 한국인 한국인 원폭피해자 2만3천명 한국인 핵무기 금지조약

2023-11-19

[열린광장] 우리의 환상적인 미래

우리의 삶은 기쁨과 슬픔이 한데 어울려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시인 괴테는 “미래는 기쁨과 슬픔을 그 속에 숨겨놓고 있다”고 말했다. 괴테가 한 말처럼 미래가 기쁘게 다가올지 슬프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또한 우리의 미래가 어떠한 모양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 초조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테너 김호중의 세종문화회관 공연 노래를 들었다. 김호중은 고교 시절 이른바 불량학생이었는데 지금처럼 훌륭한 음악가로 변할 줄은 본인도 몰랐다고 한다.     나는 6·25 한국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몇 달 전 배재학당에서 열린 서울 중고교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했다. 그런데 성악가가 되고 싶었던 꿈이 음악선생의 반대로 깨졌다. 그 후 나는 박태준 박사가 교수로 있는 연대 신과대학에서 신학과 음악을 공부했고 교회 성가대 지휘자와 목사가 나의 미래의 삶이 되고 말았다.     아주 오래전 조지 오웰이 쓴 ‘1984년’이라는 예언적 책이 출판되면서 세상이 뒤숭숭했던 적이 있었다.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어 모든 물품에 바코드가 새겨질 뿐 아니라 사람의 이마에도 바코드가 찍히는 세상이 온다는 내용이었다.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믿는 사람도 무척 많았고 설사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해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물론 모든 상품에 바코드가 새겨지는 세상이 된 것은 오웰의 예언이 맞았다.         그런가 하면 1999년 말에는 뉴밀레니엄버그 (Y2K) 문제 때문에 세상이 또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러시아의 핵탄두가 컴퓨터 오작동으로 워싱턴DC로 날아올까봐 러시아의 미사일 전문가가 미국 펜타곤에 머무는 소동까지 벌어졌었다.     이 밖에 우리는 전쟁 무기나 자연의 재앙 때문에도 미래에 대해 불안한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고 있고 북한의 핵무기 실험도 지속하고 있는가 하면 홍수·폭염 등 엄청난 자연재해가 발생해 생명과 재산을 잃는 슬픔을 겪고 있다. 아무튼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적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그가 펴낸 ‘혁명적 부’ 란 책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제3의 물결인 ‘지식혁명 세대’가 완성되는 새로운 문명시대가 될 것이라고 매우 희망적인 전망을 했다. 그는 미래의 경제와 사회가 형태를 갖추어감에 따라 개인과 기업, 조직, 정부 등은 미래로 뛰어드는 가장 격렬하고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무튼 예측하지 못한 비극적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미래에 대해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환상적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올 날이 머지않을 것이란 부푼 꿈을 간직할 때 우리의 가슴은 뜨겁게 뛰게 되는 것이다.     이제 2023년도 절반을 지나버린 이 순간, 아니 가쁜 숨을 쉬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이 순간, 아직 숨겨져 있는 기쁨의 그 모습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기쁨을 찾아 2023년의 절반을 희망차고 환상적 미래가 되도록 우리 모두 힘써 보자.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열린광장 환상 미래 환상적 미래 컴퓨터 오작동 핵무기 실험

2023-07-27

AI 위험성 “핵무기에 비견”…과학자·경영자 350여명 경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AI의 위험성에 대해 IT기업 경영자와 과학자 350여명이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 “비영리단체 ‘AI안전센터’(CAIS)가 인류의 절멸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AI 기술 통제 필요성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CAIS는 성명에서 “AI로 인한 인류 절멸의 위험성을 낮추는 것을 글로벌 차원에서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AI의 위험성을 핵무기와 신종 전염병에 비견했다.   또 성명은 “AI 기술 위험성에 대해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해결책이 논의돼야 한다”며 공개적인 토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성명에는 챗GPT의 창시자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미라 무라티 CTO가 서명했으며, 케빈 스콧 마이크로소프트(MS) CTO와 구글의 AI 분야 책임자인 릴라 이브라힘, 메리언 로저스도 이름을 올리는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동참했다.   앞서 올트먼 오픈AI CEO의 경우 AI의 잠재적 위험을 통제하고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달 초에는 백악관이 오픈AI와 구글 등 핵심 기업을 초청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주관으로 대책 회의를 열었고, 이어 열린 상하원 청문회에서는 AI의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규제와 개입, 국제 표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편 CAIS는 서명에 동참할 전문가들을 추가 모집하고 있다.   윤지혜 기자위험성 핵무기 ai 위험성 it기업 경영자 과학자 350여명

2023-05-30

[독자 마당] 핵무기의 위험성

군사전문가들은 대략 미국이 5000개, 러시아가 7000개, 중국이 500개 정도의 핵탄두를 보유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만 해도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를 여러 번 죽이고도 남는 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 외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더 있다.     핵무기는 보유국이라고 해서 쉽게 사용할 수는 없다.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강대국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견제 목적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군사전문가들은 이미 북한도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북한이 감히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한국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있을까? 나는 이런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첫째, 북한이 한국에 핵 공격을 할 경우 북한도 초토화되는 것은 물론 북한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의 핵무기 사용은 중국의 묵인 내지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미국의 핵무기도 한국에 배치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으로서 이는 환영할만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만일 한국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북한은 물론 거리상 가까운 중국도 자극할 수 있다. 한국의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중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구 소련이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하려 하자 미국은 전쟁을 각오하고 핵무기를 실은 선박을 막지 않았던가. 서효원·LA독자 마당 핵무기 위험성 핵무기 사용 만일 한국 기술 개발

2023-05-16

[글로벌 포커스] 윤석열과 바이든, 그리고 핵무기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미국의 동맹국 도·감청 의혹이 불거졌지만 지난달 말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대성공이었다. 반도체 수출 통제와 민주주의 지지는 물론이고, 역내 외교에 대한 양국 협력을 증진했다. 많은 미국인은 윤 대통령의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 노래로 이번 정상회담을 기억할 것이다. BTS 멤버가 당장 될 순 없다 해도 윤 대통령의 노래 실력은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K팝과 대중문화 강대국 위상을 미국인에게 각인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지정학적 핵심 의제는 핵무기였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대한민국과 한국 국민에 대한 약속은 지속적이며 철통 같고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은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확장 억지(핵우산)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대한 한국의 의지를 재차 밝혔고, 두 정상은 차관보급 ‘핵 협의 그룹’(NCG)을 창설해 핵 공격에 대비하고 핵 억지 접근법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일본 또는 호주 정상회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왜 그럴까. 가장 명시적인 이유는 북한이 를 계속 고도화하고 군축을 위한 외교적 관여를 거부한 데 있다. 북한은 지난해에만 100여 건이 넘는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했고 고체연료를 포함하는 미사일의 다각화, 잠수함 발사 미사일, 핵탄두 소형화 움직임까지 보였다.   한국에서는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LA를 희생할 미국 대통령이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일본과 호주에서도 미국의 확장 억지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지만 두 나라 모두 독자적 핵무기 개발에는 반대 여론이 대세다. 한국은 그 반대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다수 한국인은 핵무기 개발을 지지하고, 일본·호주와 비교할 때 핵 무장을 주장하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이 존재한다.   한·미 정상이 이런 우려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윤 정부 입장에서 최선의 카드는 독자적 핵 무장 여론에 호응하기보다 미국의 핵무기 및 확장 억지 의사결정 과정에 최대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다. 자체 핵무장론이 매력적이겠지만, 윤 정부는 이런 주장이 위험할뿐 아니라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반대한다.   독자적 핵 무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임시방편은 있다. 바로 미국이 한국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 사용 장치의 열쇠를 한국과 나눠 갖는 ‘이중 열쇠(Dual Key)’ 체계에 합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양국은 서로의 동의 없이는 핵무기 사용을 할 수 없으며 양국 군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또 다른 선택지는 1991년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철수한 미군의 전술 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 두 가지 옵션 모두 장단점을 따져 고려해 볼 만하지만 두 가지 모두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다.   따라서 한·미 정상의 NCG 창설 합의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NCG는 억지 전략에 있어서 미국의 의사 결정 과정에 한국의 의견을 반영할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국내 여론을 달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핵 탑재 전략잠수함이 한반도에 출격할 예정이라는 발표야말로 NCG이 향후 함께 발전시켜갈 수 있는 핵무기 작전 배치의 좋은 예다.   일각에서는 NCG가 나토의 ‘핵 기획 그룹’(NPG)에 못 미친다고 지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고위 정책 당국자들은 비공개 자리에서 필자에게 오바마·트럼프·바이든 행정부에 걸쳐 실시된 세 번의 ‘핵 태세 검토’(NPR) 보고서 준비 과정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 가장 크게 비중을 두고 목소리를 반영했던 동맹국을 순서대로 보면 일본·영국·프랑스·한국이라고 한다. 이번 NCG 창설로 한국은 다른 동맹국을 앞서는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설 기회를 확보하게 됐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점증하는 도전 과제를 볼 때 매우 적절한 것이다. 마이클 그린 /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글로벌 포커스 윤석열 핵무기 핵무기 개발 윤석열 대통령 호주 정상회담

2023-05-07

[기고] 종말을 재촉하는 북한의 핵도발

북한이 지난달 19일 북한판 ‘핵반격 가상 종합훈련’을 공개하자 한·미 군은 즉시 프리덤실드(Freedom Shield) 연합훈련과 연계한 대규모 연합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을 개시하면서 여단급에서 사단급으로 규모를 확대해 훈련의 강도와 실전성을 높였다. 그런데 북한은 핵공격 명령 하달과 접수, 핵무기 취급, 모의 핵탄두를 탑재한 전술탄도미사일을 발사해 800km 거리의 목표 상공 800m 공중에서 폭발시켰다고 한껏 과시했다.     또 최근엔 수중 핵폭발로 방사능 쓰나미를 일으켜 우리 항구나 해군 기지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신무기 ‘해일’의 폭발 시험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핵어뢰’로 유사시 미군의 증원 전력과 물자가 집결하는 부산과 우리 해군 기지에 커다란 위협이 됨은 물론이다. 최후의 극약처방인 것 같다.     언젠가 모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핵전쟁을 가상해 우리의 피해 상황을 대충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그 교수는 한마디로 요즘 정부와 군 수뇌부에서 강조한 것처럼 김정은 정권은 핵과 더불어 최후의 종말을 맞이할 것이지만 북한이 ‘너 죽고 나 죽자’는 발악적 핵미사일 선제공격에 나설 경우 한국의 대비 및 방호태세는 미약하다는 점을 심각하게 지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하철과 지하 주차장 등을 최소한의 대피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생고에 시달리는 북한은 잃을 게 없지만 선진국 대열에 선 경제대국 대한민국으로선 너무나 큰 인적·물적 손실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바로 그 점을 노린 게 아닌가 싶다.     북한의 주장은 전술핵무기 능력의 기술적 고도화와 함께 이미 핵공격 실전 태세를 갖추고 가동 단계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핵미사일을 목표 거리의 상공까지 날려 특정 고도에서 정확하게 폭발시키는 기술의 확보를 과시한 점이다. 핵타격 지휘체계 관리 연습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핵공격 명령 전달부터 핵무기 결합, 발사에 이르기까지 핵지휘통제 체계를 구축해 숙달 훈련을 했다는 점이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북한은 작년 9월 지도부가 위험에 처하거나 전쟁 판도가 불리해지면 핵공격을 감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 핵무력 정책’을 법령화했다. 언제든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고 심지어 지휘부 유고 사태 땐 자동적으로 핵무기 발사가 가능하도록 한 위험천만한 ‘최후의 날’ 기계 작동을 사실상 제도화한 것이다. 그에 따라 핵 지휘통제 체계가 ‘임의의 시각, 불의의 정황에서’ 신속하게 작동한다지만 거기에 오판이나 사고에 의한 우발적 핵전쟁을 막는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춰졌을 리 없다는 게 전문가의 평이다.   지난번 북한이 진행한 전술탄도미사일 시연은 모의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사전 입력한 높이에서 정확히 터지는지를 실험한 것으로 북한의 향후 도발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북한은 올해 들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는데 조만간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의  정상각도(30~45도) 발사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처럼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만 믿는 북한의 ‘핵 광신’이 한반도를 아슬아슬한 위기로 몰아가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과거 일부 정치인들은 “북은 핵을 개발할 능력도 없다” “북핵은 남한 공격용이 아닐 거다”, 심지어 “김정은은 핵폐기 할 의사가 있다”는 등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했지만 이는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상 과거 미국 전략자산 전개나 한미 연합훈련 중에는 긴장하며 숨죽였던 북한이지만 이번엔 ‘죽음의 백조’  B-1B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작전구역에 진입하기 직전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대담한 도발을 감행했다. 한미는 보다 치밀한 감시망과 압도적 응징 능력을 갖춰 김정은의 무모한 도박이 낳을 종말적 결과를 단호히 경고해야 한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북한 핵도발 전술핵무기 능력 접수 핵무기 핵공격 명령

2023-04-09

[특별기고] 대화만이 이해로 가는 유일한 길

필자는 36년 전 퍼시픽 센추리 인스티튜트(PCI) 설립에 참여했다. 광대한 태평양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해의 가교’ 역할을 하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다음 세기는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 예상처럼 이제 태평양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태평양 지역 국가·국민 사이에 상호이해의 폭은 넓어졌는가? 아니면 오히려 분노와 공포, 불신으로 인해 위험한 충돌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울러 그동안 PCI가 주도적으로 지원했던 노력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아니면 헛수고였는지도 궁금하다.     지난달 LA 베벌리힐스 호텔에서 열린 PCI의 연례 ‘빌딩 브리지 어워드(Building Bridges Award)’ 시상식장에서 스스로 던졌던 질문들이다.     ‘빌딩 브리지 어워드’는 태평양 지역 국가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한 개인과 단체에 주는 의미 있는 상이다. 올해는 탁월한 학문적 업적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한국의 이화여자대학교가 단체 부문에서, 그리고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가 개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으로, 또 전 PCI 의장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성대한 식장에 앉아 문득 생각했다. 이건 그저 쇼에 불과한 것일까? 현실에선 적대적 무시와 종종 오만하기까지 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게 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그동안 이룩한 발전과 성숙을 후퇴시키진 않을까?   식장에서 그레그 전 대사의 수상 소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그의 핵심적인 지론을 다시 떠올렸다. 서로를 모르는 상황에서 잠재적인 적대 관계에 빠지면 상대방을 악마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악마화는 충돌의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그런 악마화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대화다. 대화를 통해서만 서로 무지에서 벗어나 이해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잠재적인 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설령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상대라 생각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상대방 역시 당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한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협력이 가능하다.   현재 태평양 지역 상황을 보면 매우 유동적인 요소들이 많다. 중국의 적극적인 확장 전략, 북한의 핵무기 개발, 북한 핵무기에 대한 한국의 우려, 일본의 재무장, 남중국해에서의 갈등, 타이완의 미래, 미국·영국·호주 3국의 군사 및 정보 협력 강화,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 ASEAN 국가들의 부상, 기후변화의 충격 등 다양하다.   따라서 지금은 이 지역 모든 국가가 대화 채널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다. 또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쉽게 악마화해 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서로 얘기한다는 것은 부드럽게만 진행되어야 하는 것도, 항상 합의로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화는 원하는 것(want)과 필요한 것(need)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 충돌을 피해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번 PCI 이사들의 모임에선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한반도 핵 문제와 이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 등에 관해 미주중앙일보와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     핵 문제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로버트 칼린, 로버트 갈루치가 인터뷰에 응했고, 역시 PCI 이사인 글렌 포드는 특별기고를 통해 의견을 전했다. 인터뷰와 기고문은 한글과 영문으로 동시 게재됐다.     이들의 주장은 두 가지 결론으로 귀결된다. 첫 번째는 남북 모두 상대방과 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국의 독자 핵무기 보유에 대한 우려다.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핵무기 확산 위험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와 국제적 위상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해의 가교’ 역할이라는 PCI의 설립 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 우리가 서로 외면하고 악마화하는 데 매몰된다면, 위대한 태평양의 세기는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외부의 힘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줄 해법으로 인도해 주는 게 대화인데, 이를 지속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영어 원본 칼럼 보기   ◇스펜서 H. 김     항공우주 제품 제조판매사 CBOL Corp 대표. PCI 공동창립자이자 미국 외교협회 회원. 2006~08년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APEC 기업인자문위 미국대표로 활동. 2012~13년 하버드대 애쉬센터(Ash Center) 레지던트 펠로.   스펜서 H. 김 / PCI 공동창립자특별기고 대화 유일 태평양 지역 핵무기 개발 현재 태평양

2023-03-22

[기고] '로켓맨'의 실수를 막는 방법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을 ‘로켓맨’이라 불렀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에 집착해 얻은 별명이다. 만약 김정은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도발을 감행한다면 본인은 물론 조선인민공화국도 종말이 온다는 것쯤 알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최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자국 내 핵무기 배치 가능성을 시사해 주목을 받았다. 양국 총리는 지난 1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핵무기 배치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우리는 미래를 위한 어떤 문도 닫아두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도 “스웨덴과 핀란드는 핵무기 배치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할 것이며 똑같은 형식을 취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놀란 스웨덴은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NATO) 합류를 선언한 데 이어 핵무기 반입까지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국가 안보에 대한 스웨덴의 이런 단호한 태도는 조만간 예상되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을 앞두고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만약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통해 전술핵무기 개발까지 성공한다면 한국의 안보엔 끔찍한 재앙이 될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 기습발사 능력을 갈수록 고도화해 한국의 킬 체인(Kill Chain, 선제타격)을 무력화하고 있으며, 낮은 고도로 날아오다 비행 막판에 튀어 오르는 ‘풀 업 기동’을 하는 신형 미사일을 개발해 요격도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다 김정은이 전력을 다하는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까지 실전 배치되면 그야말로 한국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서게 되는 악몽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상대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려면 우리도 핵무장을 해 ‘공포의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게 군사안보의 영원한 진리다. 물론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쓰면 미국이 핵으로 보복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겠냐”고 따졌던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이 유사시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LA를 기꺼이 북핵 위협에 노출할 것이란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미국의 핵우산은 미국 정치 사정과 내부 여론에 따라 얼마든지 번할 수 있는 불확실한 공약이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독자 핵무장을 위한 장기 플랜을 세우고, 장기간에 걸쳐 미국을 끈질기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해제할 경우 한국도 그에 맞춰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하면 된다. 그동안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 및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 핵 개발 잠재력 확보 등도 검토해야 할 대목이다.     언젠가 한국의 야당 대표는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반도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책임한 얘기”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 4일엔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한미 연합훈련 연장에도 반대하고 대북특사를 제안했다. 북한 정권으로부터 그토록 욕을 듣고도 야당은 아직 대북 대화에 미련이 남은 모양이다. 마치 김정은에게 핵무기 좀 포기해 달라고 사정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모름지기 독재정권이 알아듣는 건 힘의 논리밖에 없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후퇴하고 있는 건 젤린스키의 연설에 감동해서가 아니라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에 세게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또 시진핑이 대만 침공을 망설이는 건 민간인 피해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대만을 신속하게 제압할 확신이 아직 없어서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핵 무력 사용을 포기하는 건 핵무기로 공격하면 자신도 핵무기로 반격을 받아 끝장이 난다는 게 아주 명백해질 때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로켓맨 실수 전술핵무기 개발 핵무기 배치 핵무기 사용

2022-11-28

[디지털 세상 읽기] 보안의 최종 단계

지지난주 초 FBI가 전직 대통령인 트럼프의 플로리다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큰 논란이 있었다.     한국은 전직 대통령을 재판에 회부하고 수감도 불사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낯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인 부담에도 FBI가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은 그만큼 사안이 위중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핵무기 관련 자료를 백악관에서 빼내어 가져갔다고 한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요청으로 공개된 수색 영장에는 간첩법 위반 혐의가 포함됐기 때문에 보도에 신빙성을 더해줬다. 의혹이 커지면서 트럼프가 핵무기 자료를 사우디아라비아에 넘기려 했다는 추측도 나도는 상황.     그런데 개인자료를 컴퓨터 파일로 옮기면서 실수로 가져 나왔을 가능성은 없을까. CIA 국장을 지낸 존 브레넌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핵 관련 기밀은 일상적인 일급비밀을 넘어서기 때문에 일급비밀 서버에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악관 내 특별한 장소에 보관되고, 대통령이 보고 싶다고 하면 담당자가 직접 들고나와야 하며, 보는 동안에도 문서 옆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트럼프가 가지고 나왔으면 의도적으로 훔친 것이지 절대 실수일 리 없다는 게 브레넌의 생각이다. 달리 말하면, 디지털 보안은 아무리 철저해도 궁극적으로 뚫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미군이 2019년까지 핵미사일 통제 프로그램을 1970년대식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했던 것과 비슷한 방법이다. 보안의 최종 단계는 자료를 물리적으로 보관하고 이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것이라는 마인드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보안 디지털 보안 전직 대통령 핵무기 자료

2022-08-28

[시론] 수위 높아지는 북의 핵공격 위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5일 밤 북한군 창설 90주년 열병식에서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며 핵 보유 의사를 분명히 했다.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보증 선 지난 5년간 북한은 집중적으로 핵무기를 고도화했다. 북한 핵무기의 위력과 숫자가 늘어난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한이 핵무력 사용 범위를 크게 넓혔다는 점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열병식에 김정은은 원수계급장을 어깨에 붙인 군복을 입고 나타나 연설했다. 최근 연이은 성명을 통해 기존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공세적 핵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18년 4월 20일 북한은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 선제 불사용의 입장을 공언했다.     하지만 2022년 4월 25일 김정은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며 핵무기 선제사용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게 김정은의 속 마음이다.     핵보유국 중 가장 공세적이고 위협적인 북한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전에는 핵 개발 목적을 미국으로 지목했지만 김여정은 2022년 4월 4일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 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 국민을 겨냥한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고 있다.     북한식 쇼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병력 2만 명을 동원한 최대 규모의 열병식은 그야말로 광란의 행진이었다. 인민은 허기로 굶어 죽든 말든 전쟁을 향한 집착이 절정에 이른 것 같다.     때마침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 및 발사 후 비행궤적을 추적하는 미국 공군의 코브라볼(RC-135S) 정찰기가 동해로 전개돼 북한의 도발이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미 코브라볼 정찰기가 엿새째 동해에 출격해 북에 ‘선 넘지 말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의 정치권에서 법치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검수완박으로 여야 정당이 소모적인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전쟁 억지의 수단인 핵무기를 언제든지 사용하겠다는 협박으로 대외 위협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선제타격까지 경고한 새 한국 정부를 향한 대결 선언이 심상치 않다.     새 정부는 국가안보에 최우선 정책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시론 핵공격 수위 핵공격 위협 핵무기 선제사용 핵무기 사용

2022-05-11

[시론] 김정은 10년, 발전한 건 핵무기뿐

2012년 4월 많은 이들이 이 젊은 스위스 유학파 지도자가 북한의 새 시대를 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후 10년, 희망은 실망으로 변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북한의 변화와 현대화를 시도한 것만은 사실이다.     김정은은 무엇을 이뤘고, 북한은 어떻게 변했나.   집권 초기 그는 수차례 경직된 북한 경제를 개혁하려고 시도했다. 협동농장의 처분 작물량을 조금씩 늘리고, 시장과 장마당도 용인했다. 일부 주민의 생활 수준도 나아졌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개혁은 뒤집혔고 통제경제가 재천명 됐다. 2021년부터 북한 지도부는 계획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경제 자유화 측면에서 2012년과는 딴판이고, 식량 문제도 훨씬 나빠졌다. 김정은은 집권 후 첫 연설에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지금 유엔 기구들은 북한의 식량 사정을 경고하고 있다. 굴뚝에서 연기가 안 나면 이웃들이 생사 확인에 나선다는 보고도 나온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돌이켜보면 애초 실패할 운명이었다. 먼저, 경제 자유화와 엄격한 정치 통제 병행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 둘이 충돌할 때마다 북한은 정치 통제를 택했다.     둘째, 경제 자유화 조치는 늘 엄청난 부패를 불러왔다. 사상(思想) 강국을 강조하는 연설들로 미뤄 북한 내 부패 문제는 심각한 것 같다.     북한은 또 먹여 살려야 할 거대한 군대가 있다. 설상가상, 코로나19로 문을 걸고 식량 수입을 중단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김정은은 대외정책 기조의 변화도 시도했다.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실패하긴 했지만, 김정은이 회담에 나올 용기를 낸 건 사실이다. 북한 원로들의 만류에도 회담하러 왔다던 김정은의 말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실패할 경우 국내 위상이 치명상을 입는다는 걸 김정은 자신이 잘 알았을 테다.     하지만 김정은은 도박에 나섰다. 그리곤 잃었다.   애초 협상 성공에 절대적인 양측의 접점이 없었다. 제재 완화, 핵 사찰, 영변 원자로 등을 둘러싼 디테일보다 중요한 건 북한이 미국의 공격에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그런 공격이 없을 거라는 미국의 약속이 있기 전엔 핵 포기 프로세스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초기에 김정은은 내부 조직도 개혁했다. 노동당 규칙을 재정립해 당 대회를 복원했고 당의 활동과 단체도 부활시켰다. 이 덕에 북한의 정치 절차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모습을 장기간 감추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런 안정성은 손상됐다. 북한 같은 나라에서 지도자의 부재는 혼란과 의구심을 낳는다. 북한 체제는 실제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북한 바깥 세계를 알거나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도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중국으로 넘어가기도 어려워졌고 외국인 접촉도 크게 줄었다. 2012년 평양에는 외교관, 국제기구와 비영리기구(NGO) 인사 등 서방 출신 수백 명이 주재했지만, 코로나로 국경을 봉쇄한 지금은 거의 없다.   김정은 체제에서 유일하게 발전한 부문은 무기 분야다. 집권 후 4차례나 핵실험을 했고 추가 핵실험 우려도 제기된다. 미사일 기술 진전도 엄청나다. 북한군 장비도 개선됐다. 국제사회가 기대한 ‘발전’은 아니다.   향후 10년 북한이 나아지길 기대하긴 10년 전 시점보다 더 어렵다. 북한은 해답 없는 문제에 직면해 있고 김정은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 이어지고 그가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일도 거듭된다) 가장 나쁜 건 실패를 경험한 김정은이 다시는 경제 개혁과 탈냉전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건 도전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지난 2년간 행보로 볼 때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사회·정치·외교적으로 경직된 보수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한때 젊은 개혁가로 비친 김정은의 이런 변화 과정이 씁쓸할 따름이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시론 김정은 핵무기 경제 자유화 정치 통제 식량 문제

2022-05-02

[시론] 김정은 10년, 발전한 건 핵무기뿐

2012년 4월 많은 이들이 이 젊은 스위스 유학파 지도자가 북한의 새 시대를 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후 10년, 희망은 실망으로 변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북한의 변화와 현대화를 시도한 것만은 사실이다.     김정은은 무엇을 이뤘고, 북한은 어떻게 변했나.   집권 초기 그는 수차례 경직된 북한 경제를 개혁하려고 시도했다. 협동농장의 처분 작물량을 조금씩 늘리고, 시장과 장마당도 용인했다. 일부 주민의 생활 수준도 나아졌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개혁은 뒤집혔고 통제경제가 재천명 됐다. 2021년부터 북한 지도부는 계획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경제 자유화 측면에서 2012년과는 딴판이고, 식량 문제도 훨씬 나빠졌다. 김정은은 집권 후 첫 연설에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지금 유엔 기구들은 북한의 식량 사정을 경고하고 있다. 굴뚝에서 연기가 안 나면 이웃들이 생사 확인에 나선다는 보고도 나온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돌이켜보면 애초 실패할 운명이었다. 먼저, 경제 자유화와 엄격한 정치 통제 병행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 둘이 충돌할 때마다 북한은 정치 통제를 택했다.     둘째, 경제 자유화 조치는 늘 엄청난 부패를 불러왔다. 사상(思想) 강국을 강조하는 연설들로 미뤄 북한 내 부패 문제는 심각한 것 같다.     북한은 또 먹여 살려야 할 거대한 군대가 있다. 설상가상, 코로나19로 문을 걸고 식량 수입을 중단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김정은은 대외정책 기조의 변화도 시도했다.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실패하긴 했지만, 김정은이 회담에 나올 용기를 낸 건 사실이다. 북한 원로들의 만류에도 회담하러 왔다던 김정은의 말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실패할 경우 국내 위상이 치명상을 입는다는 걸 김정은 자신이 잘 알았을 테다.     하지만 김정은은 도박에 나섰다. 그리곤 잃었다.   애초 협상 성공에 절대적인 양측의 접점이 없었다. 제재 완화, 핵 사찰, 영변 원자로 등을 둘러싼 디테일보다 중요한 건 북한이 미국의 공격에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그런 공격이 없을 거라는 미국의 약속이 있기 전엔 핵 포기 프로세스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초기에 김정은은 내부 조직도 개혁했다. 노동당 규칙을 재정립해 당 대회를 복원했고 당의 활동과 단체도 부활시켰다. 이 덕에 북한의 정치 절차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모습을 장기간 감추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런 안정성은 손상됐다. 북한 같은 나라에서 지도자의 부재는 혼란과 의구심을 낳는다. 북한 체제는 실제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북한 바깥 세계를 알거나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도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중국으로 넘어가기도 어려워졌고 외국인 접촉도 크게 줄었다. 2012년 평양에는 외교관, 국제기구와 비영리기구(NGO) 인사 등 서방 출신 수백 명이 주재했지만, 코로나로 국경을 봉쇄한 지금은 거의 없다.   김정은 체제에서 유일하게 발전한 부문은 무기 분야다. 집권 후 4차례나 핵실험을 했고 추가 핵실험 우려도 제기된다. 미사일 기술 진전도 엄청나다. 북한군 장비도 개선됐다. 국제사회가 기대한 ‘발전’은 아니다.   향후 10년 북한이 나아지길 기대하긴 10년 전 시점보다 더 어렵다. 북한은 해답 없는 문제에 직면해 있고 김정은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 이어지고 그가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일도 거듭된다) 가장 나쁜 건 실패를 경험한 김정은이 다시는 경제 개혁과 탈냉전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건 도전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지난 2년간 행보로 볼 때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사회·정치·외교적으로 경직된 보수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한때 젊은 개혁가로 비친 김정은의 이런 변화 과정이 씁쓸할 따름이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시론 김정은 핵무기 경제 자유화 정치 통제 식량 문제

2022-04-29

[시론] 워싱턴 정가의 핵우산 논쟁

 냉전 종식 이래 다섯 번째 핵태세검토 보고서(NPR)가 올해 초 발간된다. 여름부터 검토 중인데 미국의 진보 좌파 진영은 잠재적인 핵무기 사용의 추가 제한 발표를 촉구하는 반면 전통적인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중국의 위협이 증가하는 시기에 핵 억지력 약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맞서, 정치적 시선을 끄는 사안이 됐다. 한국 또한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군축을 주장하는 측과 진보 좌파 진영이 보고서에 추가하려는 두 가지의 오랜 목표가 있다. 무력 충돌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 소위 ‘선제 핵 불사용’(No First Use, NFU) 원칙과 단일 목적(sole purpose), 즉 미국은 자국이나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핵을 사용한다는 선언이다.   이들 옹호론자의 논리는 실로 단순하다. 미국 정부가 핵무기 사용 제한을 발표하면 다른 나라들도 뒤따른다는 것이다. 잘못된 분석일 뿐더러 위험할 정도로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미사일 기술을 확장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중국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실험 전에 발표된 미 국방부의 연례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전략적 핵무기에 대한 투자를 4배 확대하고 미·러에 필적하는 수준의 전력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중국군의 현대화 속도를 저평가했다고 본다.   미국이 NFU나 단일 목적 원칙을 선언하면 어떤 식으로든 위험성이 감소할까. 물론 아니다. 중국은 자체 NFU 정책을 갖고 있다고 오랫동안 주장했지만 중국군이 이에 구속된다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NFU 선언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 보호 의지가 약해진 증거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생·화학무기를 보유한 북한엔 역효과를 미칠 수 있다. 북한이 위기 상황에서 미의 핵 보복이 없다고 믿고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시나리오는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다. 북한엔 더 위험한 옵션을, 우리 편엔 더 적은 대응 수단을 주는 셈이다.   조 바이든 정부가 전략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할까. 미 국방부는 두 제안에 모두 반대하지만 군축은 의회 주요 인사들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어쩌면 바이든 대통령까지 포함해서다.   군축 지지자들은 지난해 미 대선 때 자신들의 질의에 바이든 후보가 서면으로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는 오로지 핵 공격 억지와 필요시 보복 사격하는 목적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했다는 점을 언급한다. 선거용 수사였을 수 있지만 누가 알겠나. 진보 진영은 일본 비영리단체를 통해 히로시마 출신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두 제안에 반대하지 않도록 하는 로비도 하고 있다.   현재로선 그래도 핵 억지력을 강조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몇 달 전 미 국방부는 보고서 작성에 관여하던 핵심 인사를 교체했다. 의회 내 군축파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인물로 대외적 교체 사유는 능력 부족이었지만 진보 진영은 믿지 않고 있다. 이후 국방부는 NFU 원칙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이런가 하면 상·하원의 공화당 인사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핵 원칙 변경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만일 원칙을 변경한다면, 공화당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에 관대한 증거라고 활용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로선 달가운 일이 아니다. 기시다 총리의 지지 파벌 중 어디도 억지력을 약화하는 변경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도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논쟁에서 한국은 의당 내야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90%의 외교적 에너지를 종전선언에 회의적인 바이든 정부를 설득하는 데 쓰고 있다. 한국은 핵 억지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한국이야말로 어떤 나라보다도 이해 당사자 아닌가. 마이클 그린 / 전력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시론 워싱턴 핵우산 워싱턴 전문가들 핵무기 사용 전략적 핵무기

2022-01-03

[시론] 워싱턴 정가의 핵우산 논쟁

냉전 종식 이래 다섯 번째 핵태세검토 보고서(NPR)가 내년 초 발간된다. 여름부터 검토 중인데 미국의 진보 좌파 진영은 잠재적인 핵무기 사용의 추가 제한 발표를 촉구하는 반면 전통적인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중국의 위협이 증가하는 시기에 핵 억지력 약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맞서, 정치적 시선을 끄는 사안이 됐다. 한국 또한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군축을 주장하는 측과 진보 좌파 진영이 보고서에 추가하려는 두 가지의 오랜 목표가 있다. 무력 충돌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 소위 ‘선제 핵 불사용’(No First Use, NFU) 원칙과 단일 목적(sole purpose), 즉 미국은 자국이나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핵을 사용한다는 선언이다.     이들 옹호론자의 논리는 실로 단순하다. 미국 정부가 핵무기 사용 제한을 발표하면 다른 나라들도 뒤따른다는 것이다. 잘못된 분석일 뿐더러 위험할 정도로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미사일 기술을 확장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중국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실험 전에 발표된 미 국방부의 연례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전략적 핵무기에 대한 투자를 4배 확대하고 미·러에 필적하는 수준의 전력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중국군의 현대화 속도를 저평가했다고 본다.   미국이 NFU나 단일 목적 원칙을 선언하면 어떤 식으로든 위험성이 감소할까. 물론 아니다. 중국은 자체 NFU 정책을 갖고 있다고 오랫동안 주장했지만 중국군이 이에 구속된다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NFU 선언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 보호 의지가 약해진 증거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생·화학무기를 보유한 북한엔 역효과를 미칠 수 있다. 북한이 위기 상황에서 미의 핵 보복이 없다고 믿고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시나리오는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다. 북한엔 더 위험한 옵션을, 우리 편엔 더 적은 대응 수단을 주는 셈이다.   조 바이든 정부가 전략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할까. 미 국방부는 두 제안에 모두 반대하지만 군축은 의회 주요 인사들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어쩌면 바이든 대통령까지 포함해서다.     군축 지지자들은 지난해 미 대선 때 자신들의 질의에 바이든 후보가 서면으로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는 오로지 핵 공격 억지와 필요시 보복 사격하는 목적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했다는 점을 언급한다. 선거용 수사였을 수 있지만 누가 알겠나. 진보 진영은 일본 비영리단체를 통해 히로시마 출신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두 제안에 반대하지 않도록 하는 로비도 하고 있다.   현재로선 그래도 핵 억지력을 강조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몇 달 전 미 국방부는 보고서 작성에 관여하던 핵심 인사를 교체했다. 의회 내 군축파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인물로 대외적 교체 사유는 능력 부족이었지만 진보 진영은 믿지 않고 있다. 이후 국방부는 NFU 원칙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이런가 하면 상·하원의 공화당 인사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핵 원칙 변경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만일 원칙을 변경한다면, 공화당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에 관대한 증거라고 활용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로선 달가운 일이 아니다. 기시다 총리의 지지 파벌 중 어디도 억지력을 약화하는 변경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도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논쟁에서 한국은 의당 내야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90%의 외교적 에너지를 종전선언에 회의적인 바이든 정부를 설득하는 데 쓰고 있다. 한국은 핵 억지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한국이야말로 어떤 나라보다도 이해 당사자 아닌가. 마이클 그린 /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시론 워싱턴 핵우산 워싱턴 전문가들 핵무기 사용 전략적 핵무기

2021-12-23

[시론] ‘핵 선제 불사용’과 한반도 평화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 선제 불사용(NFU)’ 원칙이 세계를 들끓게 하고 있다. 핵무기 선제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하거나 적대국에 보복할 경우에만 사용하고, 적이 재래식 무기로만 공격할 경우 핵폭탄으로 반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소규모의 충돌로 일어난 국지전이 자칫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를 피하고자 하는 발상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북한의 도발 속셈이다.   일본어에 ‘후이우치’라는 단어가 있다. 일본 폭력배들이 싸움할 때 즐겨 쓰는 용어로 우리말로 ‘갑자기’란 뜻이다. 상대가 긴장을 놓고 있거나 부주의 상태에 있을 때 점잖게 대하는 척 하다가 갑자기 급소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싸움패 간의 술수로 손자병법에도 나온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에 의한 재래식 전투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안다. 북한은 언젠가 단숨에 치명타를 가한다는 속전속결을 노리고 있다.     핵 무기는 먼저 공격하는 측이 유리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에 15kt 원자탄을 투하해 곧바로 일본의 무조건적 항복을 받아냈다. 만약 일본이 그 같은 핵무기를 보유했더라면 먼저 사용했을 것이란 후세 사가들의 주장도 있다. 가공할 무기는 일격에 승부를 가르는 수단이다. 약자는 선제 핵사용에 승부를 건다.     미국의 핵방어 산하에 있던 동맹국들은 ‘핵우산’에 구멍이 났다며 미국의 NFU 원칙에 불안해 하고 있다. 적의 핵 공격에 아군의 핵무기가 아니면 이를 방어하거나 반격할 뾰족한 수가 없다. 바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처럼 핵은 핵으로만 억제할 수 있고 실제 방어가 가능하다는 전략전술 이론이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동맹국 안보전략이 적국에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이 피격 위협을 느낄 때 선제 타격을 가하고 적으로부터 공격 당하는 경우 몇 배로 보복하는 반격 논리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은 상대하는 적국과의 협약에서 상호 신뢰가 보장돼야 가능하다는 게 상식이다.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경우 적 앞에 무방비 상태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전술핵 개발 의지를 밝힌 북한이 최근 한반도를 사정거리로 한 무기체계를 선보이며 대규모 선제 타격을 준비하는 동향을 보이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한국은 대북 위험 대비를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다. 일방적인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은 자칫 북에 도발 유혹을 주어 안보 위험이 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관련 보도에서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이 핵 선제 불사용을 채택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에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의 안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인 이 원칙이 채택된다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혼란은 커지게 된다. 당장 북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한국 일본만 해도 핵 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북핵 협상 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당연히 미 국방부도 반발하고 있는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지금은 단합된 국민의 목소리를 낼 때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시론 불사용 한반도 선제 불사용 핵무기 선제 선제 핵사용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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