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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화해와 관용이 필요한 시대

지난 23일 막을 내린 제106회 일본 전국교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에서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정상에 올랐다. 교토국제고는 재일동포들이 민족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1947년에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전신이다. 2003년 일본 정부의 정식 학교 인가를 받아 현재의 교토국제고로 이름을 바꿨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동해 바다 건너서”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제창했다. 이날 교가 제창 장면은 TV로 일본 전국에 생중계됐다.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조국을 떠나 터전을 잡은 700만 해외동포에게도 감격의 순간이었다.   기원전 2333년 한반도에 고조선이 세워진 후 한반도 역사는 유구한 문화와 전통을 자랑한다. 하지만 때론 내전과 외세의 침탈로 압박과 설움의 역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은 인접한 반도와 섬나라로 갈등과 충돌이 빈번했다. 그중 35년간의 일제 강점기는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치욕과 수치였다. 그러나 한민족의 은근과 끈기, 그리고 지략과 용맹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동포도 이러한 민족의 자긍심이 있었기에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이제는 조국의 위상을 높이는 존재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K-팝이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며 주목받는 것도 민족 우수성의 발로이다. 일본에서 K-팝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보라. 두 나라 사이의 ‘문화 국경’을 무너트리는 일대 혁신이다. 한·일 젊은이들은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문화를 공유하며 양국이 가진 앙금의 벽을 뛰어넘고 있다. 교토국제고의 위상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한국과 일본은 문화뿐만 아니라 안보와 경제에서도 서로 협력하는 대등한 동반자의 관계로 발전했다. 각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1966년에 1인당 국민소득(GDP) 1000달러를 돌파하며 아시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이 1인당 GDP 1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그로부터 11년 뒤인 1977년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IMF(국제통화기금)이 발표한 1인당 GDP를 보면 한국은 3만4164달러로 일본의 3만3138달러에 앞섰다. 60년 전만 하더라도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일본이 더는 우리에게 위협의 대상이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아직도 정치권에선 일제 강점기에 매몰되어 ‘친일파’를 소환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거나 친일행위를 찬양한 사람은 공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하니 흐르는 역사를 일제 강점기에 멈추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여기에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고 훼손하는 행위도 엄격히 금지하고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할 것이라고 한다. 독도는 엄연히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국제법상으로 우리 영토가 아닌가. 그래도 민주당하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한 정당으로 인식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것인지, 또 벌어지지도 않은 독도 문제를 소환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다.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역사를 정치화하여 권력의 도구로 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치 성향에 따라 자기 입맛에 맞게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국민을 양극화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광복 후 7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젠 한국도 역사의 진실 앞에 화해와 관용으로 포용하며 암흑기의 갈등을 승화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대담한 민족의 기상을 높여보자.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화해 관용 한국계 민족학교인 한반도 역사 일제 강점기

2024-08-27

[기고] 8·15광복은 절로 오지 않았다

올해는 대한민국이 해방된 지 79년째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 자유와 독립을 되찾은 민족적 기념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끈질기게 버티던 일본은 드디어 이날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8월15일은 대한민국 광복의 날이다.     일제 치하에서 한국인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일제는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악랄한 민족 말살 통치 방식을 택했다. ‘내선일체’와 ‘일선동조론’ 등을 강조하며 황국 신민화 정책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일제는 한국인들에게 신사 참배와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였다. 전국에 조선인 애국반을 만들어 생활 전반을 통제하였는데 학교에서는 한글과 한국어 교육이 중단되고 한국의 역사도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라며 강압적으로 창씨개명을 요구했다.     급기야 수많은 청년들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끌려갔다. 또 전쟁 시설물 건설과 군수 물자 생산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끌고 갔다.  더욱 천인공노할 일은 젊은 여성들을 남양군도 등의 일본군 성노예로 끌고가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우리의 8·15 광복은 절로 오지 않았다. 일제의 패망을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른 결과다.  8·15 광복은 비록 우리의 힘만으로 얻은 결과는 아니지만 한국은 일제의 강압과 약탈, 멸시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자유 해방, 바로 빛을 다시 찾은 광복이었다. 농민들은  징용과 공출에서 해방되었고, 노동자는 강제 노동에서 풀려났으며, 학생들은 한국의 혼을 말살하려던 황국신민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징병과 징용, 위안부로 끌려갔던 수많은 사람이 풀려났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의 역사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아직도 A급 전범들인 도조 히데끼와 야마모토 이소로꾸 같은 인물을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조는 군국주의 일본의 국가권력을 장악한 전시 대본영의 수상이었다.  그는 육군대장의 계급장을 단 장군으로 죽어서도 ‘천황폐하 만세’를 외칠 인물이었다. 그는 일본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기소됐고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교수형에 처해졌다.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역임한 해군대장아먀모토 이소로꾸는 진주만 공격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그는 부친이 56세에 얻은 아들이라고 한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유학한 그는 주미 일본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미국통이었던 그는 미국의 압도적인 국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미국과의 전쟁을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명령에 따라 진주만 공격에 나섰고 이로 인해 일약 전쟁 영웅이 됐다. 그는 이후에도 일본 해군 최고 사령관으로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 등을 지휘했다. 그도 패전 후 체포됐다면 사형선고를 면할 수 없었겠지만 종전 전 미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그는 전쟁이 치열했던 1943년 4월 18일 쇼틀랜드, 라바울 등 남방 전선을 시찰하기 위해 공군 폭격기로 이동했다. 그런데 미군이 이 정보를 입수했고 출동한 미군 전투기들이 부건빌 섬 상공에서 야마모도가 탑승한 비행기를 격추했다. 이 작전의 성공은 일제의 패전을 예고한 사건이다.    8·15 광복이 일본 패전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지만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이라는 주체적 요인도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역사 학계의 시각이다. 아무튼 8월15일은 민족의 기쁨으로 자유 세계와 함께 한 연합군의 전승일, 최대의 경축일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광복 대한민국 광복 일제 강점기 자유 해방

2024-08-14

[독자 마당] 일본의 만행

악랄했던 일제 강점기에 수도 없이 많은 한국인이 학병으로, 징용으로, 위안부로 끌려가 목숨을 잃고 수모를 당했다. 나라를 잃은 백성의 설움을 말과 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해방의 기쁨을 맞은 지도 어언 78년이 흘러 거의 모든 희생자가 세상일 떠났다. 우리 가정도 그 피해자 중 하나다. 3대 독자였던 외삼촌은 20대 초반 강제 징용으로 탄광에 끌려가 온갖 고생과 굶주림에 병들어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 후유증으로 일평생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그러나 어디에도 하소연 한번 해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늘 말씀하셨다. “나라가 없어 당한 고생이다. 힘은 길러야 한다. 나라가 없으면 백성도 없다.”     독일을 보라. 지금도 유대인을 학살한 선조들의 죄에 부끄러워하며 사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어떠한가. 그들은 전쟁 중에 위기가 오면 전원 옥쇄하는 독한 민족이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땐 정직하고 깨끗한 민족이나 그들이 국가라는 우산 속에 속할 때는 대화가 되지 않는 편협하고 옹졸한 족속이다.     그들 조상의 부끄럽고 옹졸한 죄에 대해 자손 대대 참회하도록 역사의 심판에 맡겨야 할 것이다.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입에 발린 몇 마디의 말이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되겠는가?      하지만 현재 상황은 이웃으로서의 일본이다. 언제까지 불화와 단절로 지낼 수만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어느 때 보다 한·미·일의 공조와 단합이 시급한 시기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은 엄청나다. 지구촌 어디를 가도 코리아를 알고 한국 제품과 문화가 인기다. 오늘의 승자는 대한민국인 셈이다. 협력은 하되, 일제 강점기 일본의 만행과 사죄를 모르는 뻔뻔한 일본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일본 만행 일제 강점기 고생과 굶주림 한국 제품

2023-04-02

[우리말 바루기] ‘설’과 ‘구정’의 차이

설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설을 구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정 선물세트, 구정 연휴처럼 ‘설’과 ‘구정’이란 말이 함께 쓰이고 있다.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설은 추석·한식·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이다. 설날은 정월 초하루, 즉 음력 1월 1일이다. 구한말 양력이 들어온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날에 설을 쇠어 왔다.   그러나 설은 일제 강점기 시련을 겪는다. 일제는 우리 문화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 명절을 부정하고 일본 명절만 쇠라고 강요했다. 특히 우리 ‘설’을 ‘구정’(옛날 설)이라 깎아내리면서 일본 설인 ‘신정’(양력 1월 1일)을 쇠라고 강요했다. 이때부터 ‘신정(新正)’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일본에는 음력설이 없다. 일찍부터 서양 문물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음력을 버리고 양력만 사용해 왔다. 이때부터 설도 양력 1월 1일로 바꿨고 지금도 양력설을 쇠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원래 ‘신정’ ‘구정’이란 개념이 없었다. 이들 이름은 일제가 설을 쇠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설을 ‘구정’이라 격하한 데서 유래했다. 따라서 ‘구정’ 대신 가급적 ‘설’ 또는 ‘설날’이라 부르는 게 좋다.우리말 바루기 구정 구정 선물세트 구한말 양력 일제 강점기

2023-01-17

[J네트워크] 세계는 지금 주 4일제 실험 중

영어권 직장인들이 주말을 앞두고 늘상 외치는 표현이 있다. ‘TGIF! (Thank God It’s Friday!)’다. 신에게 감사드릴 만큼 금요일이 신난다는 의미다.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문구이지만 머지않아 이 말이 ‘TGIT!’로 바뀔 조짐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Thank God It’s Thursday!’로 말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뿐 아니라 호주·아일랜드·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 금융은 물론 요식업과 의료 서비스까지 다양한 업종에서 주 4일제가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주당 근로시간을 40에서 32시간으로 줄이고 임금은 그대로 유지했더니 대다수의 경우 생산성이 오히려 좋아졌다는 결과를 보인 것이다. 채찍보다 당근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증명된 셈이다.   미국과 비교해 노동생산성이 약 20%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진 영국에서도 전례 없는 규모의 주 4일제 시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73개의 기업의 3300여 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올 6월부터 급여 삭감 없는 주 32시간 근로제를 시범 도입하고 있다. 중간평가 설문결과를 보면 영국인이 만족스러울 때 쓰는 ‘러블리(lovely)’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참여한 고용주와 기업 86%는 시범 기간이 끝나도 이 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 프로젝트는 뉴질랜드의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글로벌(4 Day Week Global)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미국 보스턴 칼리지 등과 함께 준비 단계부터 집행 및 평가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참여 업체들의 직원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진 것이 기업의 생산성과 창의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부수적이지만 주중 하루를 출퇴근하지 않아 탄소배출량 감소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교통비도 월평균 270파운드 절약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는 내년 2월 발표될 예정이다.   지금은 당연한 주 5일 근무제 역시 서구 사회에 처음 도입될 당시 우려가 컸다. 96년 전 1926년에 미국 포드자동차 설립자 헨리 포드가 세계 최초로 주 6일제에서 주 5일제를 선언한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여유 시간을 가져야 자동차를 비롯한 소비재를 구매한다는 사업가의 ‘혜안’이 그 변화의 시작이었고 그의 과감한 결정은 기업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유가 어찌 됐건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계속 진화해 왔다. 또 변화를 맞닥뜨릴 때마다 거세게 저항하는 무수히 복잡한 변수와 조건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지금 또 다른 변화의 기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안착히 / 글로벌협력팀장J네트워크 세계 일제 4일제 실험 4일제 시범 세계 최초

2022-12-16

[글로벌 아이] 세계는 지금 주 4일제 실험 중

영어권 직장인들이 주말을 앞두고 늘상 외치는 표현이 있다. ‘TGIF! (Thank God It’s Friday!)’다. 신에게 감사드릴 만큼 금요일이 신난다는 의미다.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문구이지만 머지않아 이 말이 ‘TGIT!’로 바뀔 조짐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Thank God It’s Thursday!’로 말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뿐 아니라 호주·아일랜드·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 금융은 물론 요식업과 의료 서비스까지 다양한 업종에서 주 4일제가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주당 근로시간을 40에서 32시간으로 줄이고 임금은 그대로 유지했더니 대다수의 경우 생산성이 오히려 좋아졌다는 결과를 보인 것이다. 채찍보다 당근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증명된 셈이다.   미국과 비교해 노동생산성이 약 20%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진 영국에서도 전례 없는 규모의 주 4일제 시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73개의 기업의 3300여 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올 6월부터 급여 삭감 없는 주 32시간 근로제를 시범 도입하고 있다. 중간평가 설문결과를 보면 영국인이 만족스러울 때 쓰는 ‘러블리(lovely)’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참여한 고용주와 기업 86%는 시범 기간이 끝나도 이 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 프로젝트는 뉴질랜드의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글로벌(4 Day Week Global)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미국 보스턴 칼리지 등과 함께 준비 단계부터 집행 및 평가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참여 업체들의 직원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진 것이 기업의 생산성과 창의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부수적이지만 주중 하루를 출퇴근하지 않아 탄소배출량 감소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교통비도 월평균 270파운드(약 43만원) 절약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는 내년 2월 발표될 예정이다.   지금은 당연한 주 5일 근무제 역시 서구 사회에 처음 도입될 당시 우려가 컸다. 96년 전 1926년에 미국 포드자동차 설립자 헨리 포드가 세계 최초로 주 6일제에서 주 5일제를 선언한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여유 시간을 가져야 자동차를 비롯한 소비재를 구매한다는 사업가의 ‘혜안’이 그 변화의 시작이었고 그의 과감한 결정은 기업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유가 어찌 됐건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계속 진화해 왔다. 또 변화를 맞닥뜨릴 때마다 거세게 저항하는 무수히 복잡한 변수와 조건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지금 또 다른 변화의 기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안착히 / 한국 글로벌협력팀장글로벌 아이 세계 일제 4일제 실험 4일제 시범 세계 최초

2022-12-14

스트레스 줄고 효율 높아…'주 4일제' 높은 만족도

주 4일 근무하는 근로자가 스트레스가 적고 직업 만족도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옥스퍼드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보스턴 칼리지는 미국과 아일랜드의 33개 회사를 대상으로 4~10월, 약 6개월간 근무 시간을 20% 단축했을 때 직원들의 스트레스, 일의 효율, 회사 내 생산성 등의 변화를 공동 연구했다.     단축 근무를 경험한 회사 33곳 전부 설문에서 ‘다시 주 5일 근무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평소 근무 시간의 80%만 일한 900명이 넘는 직원들의 97%가 '압축된 근무 시간을 유지하고 싶다’고 답했다. 해당 업무 경험에 대해 그들은 10점 만점 중 9.1점의 압도적인 긍정을 표명했다. 직원들은 보고서를 통해 근무시간 업무 효율이 향상됐고 번아웃과 피로는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대면 업무가 늘었음에도 스케줄 관리는 쉬워졌으며 매주 1시간가량의 통근시간을 절약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 또한 긍정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33개 회사는 시범 운영 기간 평균 8%의 수익 증가를 경험했다.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한 수치다.     주 3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크라우드 펀딩 업체 킥스타터의 존 리랜드 최고전략책임자는 “회사 내 생산성이 크게 향상했다”며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줄고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직원들의 이직률이 감소했고 채용 공고의 지원자 수도 크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연구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단축 근무 시범 운영 후 피드백을 제공한 회사 27곳 중 18곳은 ‘주 4일 근무제를 이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나머지 9곳은 '도입 고려 중’이라고 대답했다.   리랜드 최고전략책임자는 “업무 시간이 길다고 해서 그 시간만큼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20%의 업무 시간 감소는 적정한 효율 증진”이라며 주 4일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제조업 등 지정된 생산량 달성이 필요한 분야에서 단편적인 근무시간 감소는 직원들의 필요 업무 시간 부족, 작업 품질 저하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연구의 자료에 의하면 주 4일 근무한 직원들의 3분의 1은 업무량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같은 양의 업무를 짧아진 시간 안에 완료해야 하는 부담감 또한 단축 근무 도입의 어려움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훈식 기자스트레스 일제 근무시간 업무 근무시간 감소 업무 시간

2022-12-11

[우리말 바루기] 으악새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은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로 시작되는 ‘짝사랑’이란 노래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제 강점기 고복수가 부른 노래로 지금도 애창되는 곡이다. 그렇다면 이 ‘으악새’는 과연 억새가 맞는 것일까?   억새의 옛말은 ‘어웍새’이며 사투리가 ‘웍새’ 또는 ‘으악새’다. 한때 사전에도 ‘으악새=억새의 사투리’라고 돼 있었다. 따라서 이 노래에 나오는 ‘으악새’가 ‘억새’라는 게 대체적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 노래의 2절 ‘뜸북새 슬피우니~’에 비춰 ‘으악새’를 새로 보아야 한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더욱이 왜가리의 방언이 ‘왁새’이므로 ‘으악새’는 ‘왁새’를 길게 발음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990년대 들어 대부분 사전이 ‘으악새=①억새의 사투리 ②왜가리의 사투리’라고 올렸다.   하지만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엔 ‘으악새’가 아예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따라서 사전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졌다. 다만 작곡가인 손목인의 저서엔 작사자에게 ‘으악새’가 뭐냐고 물었더니 “고향 뒷산에 오르면 ‘으악, 으악’ 하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 그냥 ‘으악새’로 했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만약 이게 맞다면 최소한 노랫말에 나오는 ‘으악새’는 새가 되는 것이다.우리말 바루기 으악새 현재 표준국어대사전 일제 강점기 한때 사전

2022-11-04

NYT, 유관순 열사 부고 실은 이유는…

유관순 열사의 부고 기사가 29일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에 게재돼 관심을 끌었다. 뉴욕타임스는 1851년 창간 이래 부고 기사가 압도적으로 백인 남성 위주였다고 스스로 반성하면서 최근 '간과된 사람들(Overlooked)'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과거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으나 사망 당시 부고 기사가 실리지 못한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도 소설 '제인 에어'의 작가 샬롯 브론테 혼자서 무산소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앨리슨 하그리브스 등의 생애가 부고 기사 형태로 소개됐으며 이날은 유 열사의 일대기가 소개됐다. 기사는 유 열사가 16세의 이화학당 학생 신분으로 일제 점령기 한국의 대표적 독립운동인 3.1만세운동을 평화적으로 이끌었으며 17세에 사망한 후 민족의 영웅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한 달 이상 지속돼 7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유 열사를 포함한 4만6000여 명이 투옥된 평화적 독립운동이었다는 점이 상세히 소개됐다. 유 열사의 업적에 대해서는 33인의 민족대표가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3.1운동이 시작된 후 3월 5일 남대문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일 이후 선교사 도움으로 석방되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일 등을 소개했다. 또 기독교 집안이었던 유 열사 가족 9명이 모두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점과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독립을 외쳤던 점 등이 부각됐다. 유 열사는 계속된 고문에 따른 부상으로 1920년 9월 28일 1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으나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리며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고 기사는 덧붙였다. 이어 2015년 8월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유 열사가 수감됐던 감옥을 찾았으며 무릎을 꿇고 과거 일본 제국의 만행에 대해 사죄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이날 유 열사 부고 기사는 오전 한때였지만 뉴욕타임스 웹사이트의 메인 기사로 게재돼 타민족으로 보이는 독자들이 수십 개의 댓글을 다는 등 유 열사와 한국 독립운동을 세계에 소개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박기수 기자 park.kisoo@koreadaily.com

2018-03-29

헌재, 한일청구권협정 헌법소원 각하

헌법재판소는 23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헌재는 “한일청구권 협정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 지급과 관련한 재판에 직접 적용되는 법률이 아니어서 심판청구가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날 함께 선고된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법률(‘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대일항장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미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제 조항은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헌법소원의 청구인인 이윤재씨의 아버지는 군무원으로 일본에 강제징용됐다가 사망해 돌아오지 못했다. 이씨는 2007년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법이 제정되자 아버지가 일하고도 받지 못한 돈 5828엔을 지급해 줄 것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위원회) 에 신청했다. 위원회는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법의 규정에 따라 45년 해방 당시 1엔을 2005년 기준 2000원으로 환산해 1165만6000원의 지원금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그러자 이씨는 “미수금의 현재가치를 반영하지 못해 부당하다”며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구했다가 기각당하자 행정법원에 재심의 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 진행중 이씨는 65년 6월22일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과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법의 관련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구서에서 이씨는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협정 2조 1항과 3항에 따르면 협정일 이전에 사유로 인한 어떤 청구권도 주장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법에 대해선 “1945년과 2005년은 금값 기준 14만배, 쌀값 기준 47만4206배의 화폐가치 차이가 있다”며 “정당한 보상을 가로막아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과 관련된 법률에 대해 이들 법률에 따른 위로금이나 지원금은 "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지급되는 시혜적 성격의 급여"라며 "따라서 그 대상을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사람으로 제한한다거나, 급여의 산정방식이 화폐가치를 완전하게 반영하지 못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자의적인 입법이라거나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2015-12-23

미국 거주 위안부 피해자 박유년 할머니 별세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유년 할머니가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박 할머니의 별세로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7명으로 줄었다. 올해 들어서만 8명이 숨졌다.  9일 여성가족부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따르면 박유년 할머니는 지난 7일 오전 11시25분(현지시간)쯤 애리조나주에 있는 양아들의 집에서 숨을 거뒀다. 박 할머니는 폐와 심장에 물이 차는 증세를 보이며 올해만 네 차례 입원하는 등 위험한 고비를 넘겨 왔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박 할머니는 최근 병세가 깊어져 2주 전 아들 집으로 옮겨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박 할머니는 19세였던 1941년 친구와 함께 부산에 놀러갔다가 일본군 간호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한국 여성 6명과 함께 일본 관동지역으로 동원돼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이후에도 싱가포르로 강제 이송돼 위안부 생활을 하다 45년 일본 패전 후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 후 부산에서 생활하다 경기도 파주로 옮겨 산나물 등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93년 8월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박 할머니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생활해 왔다.  발인은 12일 오전으로, 고인은 유족 자택과 가까운 공원 묘지에 안장된다. 정대협 관계자는 “70주년 광복절을 며칠 앞둔 시점에 박 할머니가 돌아가셔 안타깝다”며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2015-08-10

위안부 할머니 그림 전시회

뉴저지주 유니온시티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광복 70주년과 유니온시티 위안부 기림비 건립 1주년을 기념해 오는 14일부터 9월 15일까지 한 달간 유니온시티 윌리엄 무소 문화센터(420-15스트리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주제는 ‘평화와 자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한 전시로 종군위안부 초상화가로 저명한 스티브 까발로 작가 등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특별히 초·중·고 어린이들이 그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그림도 함께 놓인다. 이번 전시회를 이끈 허드슨문화재단(대표 김자혜) 주최의 ‘평화와 자유’ 어린이 미술 대회 입상작이다. ‘평화와 자유’ ‘광복’이란 주제에 더해 학생들이 인식하는 여성 인권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통해 그린 작품들이다. 전시회 오프닝 리셉션은 오는 14일 오후 7시에 전시회장에서 진행된다. 같은 행사의 일환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한 헌정 음악회도 열린다. 오는 15일 오후 6시 유니온시티 퍼포밍아트센터(2500 케네디불러바드)에서 열리며 유니온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한·중·미 음악 대회에서 입상한 예비 음악가들이 협연을 펼친다. 전시회와 음악회는 모두 무료다. 이조은 기자 lee.joeun@koreadaily.com

2015-08-07

3-A 프로젝트 백덕열·심용석씨 “위안부 문제 알리러 미국왔습니다”

한국 독도경비대 출신으로 위안부 문제를 현지사회에 알리기 위해 미 대륙횡단에 나선 두 청년이 시카고에 도착했다. 백덕열(22·경희대 체육학과)씨는 함께 독도경비대에서 군 생활을 한 심용석(22·인천대 중어중문학과)씨와 동해바다를 보며 제대 후엔 뜻 깊은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제대한 백씨와 심씨는 지난 6월 20일 미 대륙횡단을 위해 한국을 출국한 뒤 LA를 시작으로 라스베가스,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오클라호마, 캔자스, 미주리, 일리노이를 거쳐 동부 뉴욕까지 총 6천여km 거리를 자전거로 횡단하는 ‘3A-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들은 LA출발 후 45일 만인 지난 4일 시카고에 도착했다. 7일 본사를 방문한 백덕열(사진) 씨는 “용석이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보고 이 문제에 대해 알리고 싶다고 했을 때 솔직히 깊게 아는 문제가 아니어서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꼭 이 프로젝트를 시행시켜야한다는 마음이 굳건해졌다”며 “일본 정부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부정하며 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을 단순 인신매매의 희생양으로 언급하는 일본 정부를 보며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무엇을 하지 않으면 피해자 할머니들은 우리를 기다려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일본 정부의 시인과 사죄를 받을 수 있는데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미국 횡단의 이름을 ‘3-A 프로젝트’로 결정한 이유도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인정(Admit)하고, 사과(Apologize)하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동행(Accompany)하자는 취지다”며 “국제적인 여론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미국에 오기로 결정했고 또 무모할 수도 있는 라이딩을 결심했다. 우리가 가진 열정과 할머니들의 진심을 자전거에 싣고 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씨와 심 씨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주말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난 겨울 졸업철에는 꽃을 판 돈으로 항공권을 구입했다. 재학 중인 경희대와 인천대 교수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고 또 친구들과 함께 기금 운동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기업 협찬과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을 통해 소셜펀딩을 하는 등 이번 프로젝트의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또 체력을 점검하고 팀워크를 위해 5월부터 인천부터 부산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미국인들에게 위안부 실상을 알리기 위해 역사 내용을 담은 구절을 외우고 또 인쇄물을 준비했다. 미국에 도착한 뒤에는 들리는 도시마다 시민들을 상대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알리고 LA를 시작으로 시카고, 워싱턴, 뉴욕 등에서 집회를 준비했다. 이들은 8일 낮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이후 한인 축제로 이동,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릴 예정이다. 백 씨는 “갓길엔 동물들 시체도 많고 터진 타이어 잔해물들, 유리 파편들이 많아서 펑크가 자주 난다. 하지만 이번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리플 A는 마이너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야구를 뜻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마이너에 있는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서 메이저 이슈로 끌어올리는데 힘이 되고 싶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일본 정부의 시인과 사죄를 받을 수 있도록 한인들도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페이스북(www.facebook.com/bikeforcomfortwomen) 김민희 기자 kim.minhee@koreadaily.com

2015-08-07

홀로코스트 박물관서 위안부 전시회 연다

내년 3월 롱아일랜드 나소카운티에 있는 홀로코스트박물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 뉴욕을 방문하고 있는 나눔의 집 관계자들에 따르면 스티븐 마커위츠 홀로코스트 센터장은 6일 센터를 찾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7)할머니와 나눔의 집 관계자들 면담에서 "세계 각지의 인권침해를 알리는 각종 전시와 강연이 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내년 3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주제로 특별전을 하는데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나소카운티 정부의 소유 건물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센터 내에 있다. 이에 강 할머니는 "우리도 유대인처럼 전쟁 피해자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문제는 독일의 사죄로 해결됐지만 위안부의 경우 일본 정부가 사죄하지 않아 문제 해결이 안됐다"며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강력 비판한 뒤 "홀로코스트 센터에서 일본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더 많이 다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홀로코스트 센터는 뮤지엄 형태로 운영되며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찾는 곳이다. 홀로코스트 센터에 최초로 마련되는 위안부 특별전시관은 인류 최악의 전쟁 범죄로 꼽히는 홀로코스트 사건과 일본군 강제위안부 이슈가 동등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를 담게 된다. 특히 일본이 아직까지 공식 인정과 배상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 주류사회에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유대인 커뮤니티와 함께 공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전망이다. 이날 홀로코스트 센터 관계자들과 강 할머니는 나소카운티 아이젠하워 공원 베테란스 메모리얼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를 찾아 참배했다. 강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미국에 더 많은 위안부 기림비와 소녀상이 세워지기를 희망한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강 할머니는 7일 2013년 뉴욕주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주도적 역할을 한 찰스 라빈(민주.13선거구) 주하원의원 10일에는 그레이스 멩(민주.뉴욕 6선거구) 연방하원의원과 면담을 하며 일본의 사죄 촉구를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서승재 기자 seo.seungjae@koreadaily.com

2015-08-06

시카고시 위안부결의안 채택 관련 “주요 도시 중 첫 결의안 통과 큰 의미”

시카고 시의회가 미국내 주요 도시로는 처음으로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본지 6일자 1·2면 보도>하자 한인들이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특히 위안부기림비건립위원회에서는 향후 부지 선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고 있다. 시카고 시의회가 지난달 29일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대다수의 한인들은 한인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위안부기림비 건립에 동참한 한인들도 크게 반겼다. 위안부기림비건립위원회 루시 백 위원장은 “주의회와 함께 시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선 미국 주요 대도시 시의회 차원에서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시카고가 처음일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 위안부 관련 이슈를 알릴 수 있다. 아울러 부지 선정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 위원장은 이어 “아직도 위안부 이슈에 대해서 반대하는 한인들이 꽤 많다. 어두운 과거 역사를 왜 꺼내느냐는 것이 그분들의 입장”이라며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침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한인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건립추진위원회는 현재 5만달러 이상을 모금했고 건립 후 운영비용까지 포함해 7만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립 장소는 시카고와 서버브를 대상으로 물색하고 있고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알바니팍커뮤니티센터의 이진 디렉터도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인사회와 친밀한 마가렛 로리노 시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한인사회 주요 이슈를 제기하고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선출직 공직자와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위안부기림비건립위원회에 기금을 전달했던 시온회의 김문주 회장도 “시의회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은 전체 한인사회가 반길만한 일이다. 위안부 피해를 겪었지만 용기를 내어 증언을 하신 할머니들의 뜻이 널리 알려진 것 같아 기쁘다. 위안부기림비도 하루빨리 건립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개인 자격으로 기금을 납부했던 이신애씨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어머니 세대의 분들이 피해를 겪어야만 했던 위안부의 역사를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이들에게는 정확한 역사를 알려야 한다. 이번 결의안에서 이같은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다음 세대에게 전해서 나라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당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20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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