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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대강절, 회고와 소망의 계절

척박한 지구 저편 오지에 최근 다녀온 선교팀의 얘기를 듣는 중 큰 감동을 입었다. “편안한 땅에 살면서 왜 이런 황무지에 찾아 왔나요?” 라는 현지주민의 질문에서 얘기는 시작되었다.     선교팀 한 분의 대답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나의 소명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라 생각해요”라는 것이다.   다녀와서 뒤돌아보니, 자신이 계획하고 시간 내어 다녀온 선교여행 이지만 그 이상의 영적 경험이었다고 한다.     험한 세월을 겪은 성서의 인물 중 하나는 요셉이었다.   어려서 형제들에 의해 타국에 노예로 팔려가, 그곳 타향에서 20년의 길고 말할 수 없는 고생의 세월이 지나 마침내는 타국의 지도자가 되었다. 주변 국가에 기근이 계속되는 때에, 형제들이 식량을 구하려고 멀리 와서 그들이 알지못하는 지도자 앞에 엎드렸을 때, 요셉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했다.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형제들이여.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나의 하나님이 당신과 후손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나를 먼저 이곳으로 보내셨나이다.”   고생의 날들을 뒤돌아보며, 그때 그는 어려서 본 꿈이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해 냈다.   12월 첫주에 금년도 대강절(The Advent)이 시작되었다. 한 해 동안의 세월을 뒤돌아보는 시간이다. 성탄을 앞두고 마음과 영으로 4주간 성탄을 맞을 준비 하며 기다리는 시간이라 하겠다.   이 기간 가정과 교회는 대강절을 기념하여 매주 촛불을 하나씩 밝히며 순례의 삶을 회고하는 동안 성탄의 의미를 새롭게 빚어 가게 된다.   병원원목으로 근무하기 위해 인증받는 과정인 임상목회교육(CPE)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가 있는데, 질병의 종류에 따른 슬픔, 장기치료 환자가 겪는 슬픔, 상실에 따르는 슬픔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슬픔의 모양 이해’가 있다. 삶의 여정 가운데 찾아오는 크고 작은 슬픔은 개인적 삶의 배경과 연령, 문화와 영성 등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찾아오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왜냐하면 슬픔은 하나의 단어임에도 그 슬픔과의  대면은 단순하지 않으므로 잘 견디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건강하게 회복하는 데는 ‘슬픔의 모양’을 인식함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올해 대강절에는 ‘회고와 소망의 모양’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자문해 본다. 성탄의 좋은 소식이 없었다면 우리 자신과 후손들의 삶은 과연 어떤 모양일까, 성탄의 희생적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의 여정은 어떤 모양일까. 성탄의 기쁨이 없었다면 우리의 마음과 영은 어떤 모양일까.   지난 한해 뒤돌아보며, 나의 여정에서 성취와 돌봄의 수고가 있었다면 소명을 계속 이루어 가게 하심을 노래하자. 지난 한해 고생과 슬픔, 힘든 트라우마와 질병이 있었다면, 가장 초라한 곳으로 임하신 성탄의 희생을 통해 금세기를 사는 우리들과 후손들에게도 가장 경이로운 성육신의 선물이 임할 것을 함께 소망하자.   이 회고와 소망의 계절에 우리 모두 ‘나의 가족, 나의 생업,  나의 소명, 나의 꿈을 위해  하나님이 나를 먼저 이곳으로 보내셨다’는 영적 회복과 가정마다 작은 기적을 경험하는 올해 성탄이 되기를 반짝이는 불빛 가운데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디렉터·미주장신 교수열린광장 대강절 회고 대강절 회고 올해 대강절 슬픔 장기치료

2024-12-17

[삶의 뜨락에서] 마중물

얼마 전에 한 지인과 대화 중에 ‘마중물’이란 단어를 배웠다.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 눈이 번쩍 떠졌다. 아주 어렸을 적 우리 집 뜰에 펌프가 있었다. 물이 필요할 때 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를 시작하면 물은 한없이 올라왔다. 그 한 바가지 물이 물을 마중 나간다는 뜻에서 마중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물은 지하수여서 엄청 시원했고 냉장고가 없던 시절 큰 함지박에 수박과 참외를 둥둥 띄워 먹으며 더운 여름을 나곤 했던 시절이었다.     그동안 소원했던 시 쓰기에 맥이 끊겨 그 맥을 찾고 끌어올리는 데 힘이 들었다. 나에게 마중물이란 시심을 일으키기 위해 시집을 읽는 일이다. 몇 번이고 같은 시를 읽고 또 읽다 보면 나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어떤 단어가 낚싯바늘에 걸린 듯 올라온다. 나의 그다음 작업은 그 단어와 관련된 의미를 유추하고 연구하며 키워나가는 일이다. 한 예로 ‘절실하게 되면 날개가 돋는다’라는 표현에 나는 완전 감동이다. 무엇인가 절실하게 갈구하는 순간 바로 그 절박함과 간절함은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희망을 보여준다.     언젠가 박완서 평전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가 글을 쓸 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그물을 던져 필요한 것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라고 쓰셨다. 그처럼 우리는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얻은 경험을 우리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두게 된다. 이 모든 경험 중 하나둘씩 필요할 때마다 건져 올려 삶을 재창조할 수 있지만 찾지 않으면 영원히 사장될 수도 있다.     옛 어른들은 화로에 불씨가 꺼지면 안 된다고 하셨다. 불씨가 남아 있어야만 쉽게 불을 지필 수가 있고 사람 사이의 인정이 훈훈하게 피어오른다고 하셨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환자실에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이 환자들은 모두 무슨 연유에서든지 자가호흡이 불가능한 경우이다. 이 인공호흡기는 폐의 기본 세포인 허파꽈리에 공기를 약 25% 정도 항상 채워 놓는다. 그래야만 호흡이 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람이 완전히 빠진 고무풍선보다 공기가 조금 남아 있는 풍선이 불기가 훨씬 쉬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 비록 일시적인 순간에 불과하다 해도/ 누구나 자신만의 무수한 과거를 지니고 있으니/ 토요일이 오기 전에는 자신만의 금요일이 있으며/ 유월이 오기 전에는 자신만의 오월이 있게 마련//…’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의 ‘제목이 없을 수도’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비록 일시적인 순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이 있기까지 누구에게나 무수한 과거가 있고 토요일 전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금요일이 있고 유월이 오기 전에는 자신만의 오월이 있다는 인간 고유의 경험을 강조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시다. 1996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녀는 시단의 모차르트로 불린다. 그녀는 세상과 삶에 대해 경이로운 눈빛과 호기심, 슬픔을 갖고 ‘영원의 시각에서 사물을 보는 재능을 가진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끝과 시작’이란 시집 제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시작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끝에서 시작한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받아들이지만, 그녀는 그 현상이 있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까지 살펴보는 예리한 통찰이 있다.     세상은 곳곳에서 또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당신의 마중물을 기다리고 있다. 물의 씨, 불의 씨, 또 호흡의 씨가 발아되지 않은 채 그대로 소실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모든 것의 끝은 새로운 것의 시작점이다. 니체의 영원회귀설과 통한다. 주어진 운명을 탓하지 않고 힘에의 의지를 믿고 모든 순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사는 부단한 노력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용기와 결단으로 부정적인 삶도 받아들이고 그 순간의 영원회귀를 바랄 만큼 삶을 사랑하라는 자세가 아닐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마중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호기심 슬픔 우리 내면

2024-07-15

[음악으로 읽는 세상] 광대여 그 슬픔을 웃어라

자신이 처한 현실과 상관없이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관객을 웃겨야 하는 것이 광대의 운명이다.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광대’는 이런 애환을 그린 오페라다. 주인공 카니오는 유랑극단의 광대이다. 그에게는 네다라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 하지만 네다는 실비오라는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고, 이번 공연이 끝나면 실비오와 함께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카니오는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지만,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아직 모른다. 그래서 네다에게 연인의 이름을 대라고 다그치지만, 네다는 끝내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네다와 카니오가 출연한 공연의 내용이 그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네다가 맡은 컬럼비나 역은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역이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카니오는 극 중 상황과 실제의 상황을 혼동한다. 그래서 컬럼비나가 정부 아르레치노에게 “나는 항상 당신의 것이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이성을 잃고 만다.   카니오는 무대에 등장해 네다에게 애인의 이름을 말하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나 네다는 자신은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친다. 분노한 카니오는 칼로 네다를 찌른다. 네다는 죽어가면서 “도와줘요, 실비오”라고 말하고, 그제서야 실비오가 정부라는 것을 안 카니오는 실비오도 칼로 찔러 죽인다. 그리고는 객석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희극은 끝났소.”   이것은 정녕 희극일까? 아니면 희극의 외피를 입은 비극일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광대라는 존재 자체가 그런 것이니까. 카니오가 부르는 ‘의상을 입어라’는 이런 광대의 처지를 토로한 것이다. “이제 공연이 시작된다. 의상을 입어라. 그리고 얼굴에 분칠을 해라. 아! 웃어라! 광대여! 그대의 깨어진 사랑을! 네 가슴을 쓰라리게 하는 그 슬픔을 웃어라!”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광대 슬픔 이번 공연 입고 관객 존재 자체

2024-05-0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슬픔이 깊어질 때 물결은 잦아들고

하늘이 흐려 빌딩 뒤로 붉게 번져오는 일출을 볼 수 없습니다.   인사동 나인츄리 15층 객실 통유리를 통해 종로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천년을 세우는….’ 조계종의 화려한 꽃등이 보이고 가끔 느리게 차가 움직입니다. 5층 라운지에서 커피 두 잔을 내려왔습니다. 한잔은 이곳에 없는 당신에게 드리려구요. 이른 아침 커피향은 늘 정신을 가다듬게 합니다.     지난 밤 수런대던 인사동은 침묵 속에 있습니다. 시화집을 내러 시카고에서 이곳까지 왔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마음 같기만 해서 내려다 본 가로수의 행렬이 왠지 쓸쓸해 보이는 아침입니다.     키를 키우지 못한 생각의 매듭을 풀고 이른 아침 출근하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작게만 보입니다. 탐스럽게 피어난 꽃들의 대화보다 여린 어깨로 아침을 걷고 있는 발자국소리가 들리는 듯해 정겹습니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르고 의연해 보이는 걸음입니다.     꽃이 필 때 우리는 환호하지만 꽃이 져야 열매를 맺거늘 지는 꽃을 바라보며 당신은 마음조리지 말기를, 부디 마음 상하지 않기를. 인생이란 희극도 비극도 아닌 것을.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을. 눈가에 잡힌 주름이 어색하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질 때, 아득히 흘러간 시간도 한때 피었다 지는 한송이 꽃인 것을, 남겨질 씨앗인 것을. 나무숲에 앉아 지저귀던 한 마리 새도 노을빛 하늘로 사라지거늘, 통속하는 세월의 한 풍경이거늘. 스치고 간 자리마다 작은 떨림으로 흔들리는 당신, 부디 아프지 마시라. (시인, 화가)     슬픔이 깊어질 때 물결은 잦아들고     한 웅큼의 말을 땅에 뿌렸다 / 긴 세월 잊혀진 말들은 / 씨가 되어 싹을 내었고 / 대지는 얼굴을 바꾸었다 / 이야기가 되어 자라나고 / 그 자리마다 채워지는 / 바람의 소리며 / 모로 눕는 햇살의 따가움이며 / 들녘의 눈물들이며 / 손짓하는 자유가 되었다 / 슬픔 이라는 말은 꽃으로 피어나고 / 외로움이란 단어는 바람으로 다가왔다 / 절망이란 손짓은 푸른 잎으로 돌아와 / 먹먹히 아파 붉어지는 시간 / 걸음마다 길이 되어 오는 / 당신의 속말은 십자가로 세워지고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숙연해진 물결은 잦아들고 / 고개들 수 없는 무거움 / 그대 안으로 한없이 세워지는 / 기억은 망각 중이거나 / 끄집어내는 거울이거나 / 보라노을은 슬픔이 깊어질 때라도 / 행복하기 위해 아픈 계절 / 높이든 빈 잔에 빨갛게 담겨지는 / 당신의 숨결 / 당신이라는 십자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슬픔 물결 노을빛 하늘 희극도 비극도 아침 커피향

2023-06-12

[기고] 아, 잊으랴! 6월에 만난 슬픔을

누가 6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슬픈 옛날을 더듬으며 우거진 녹음 속에 숨을 죽이면서 피해 다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간다. 해마다 현충일엔 너댓명의 노병들이 죽은 전우의 이름 앞에 둘러앉아 그 치열했던 전장 속으로 빠져든다.  새파랗게 젊은 육군 소위들이 이름 모를 산야에서 적의 포탄 속을 헤매다 피투성이가 되어 고지에서 내려올 때 그래도 살아 있음을 감사했던 이야기로 시작한다.     세월의 증표인 백발마저 거의 다 빠진 나이 90이란 신분증에 이마의 주름살 계급장과 가슴에 단 낡은 훈장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죽은 전우 곁에 자신의 이름이 빠져있음을 미안해하면서 통곡한다. 벌써 73년째, 6·25한국전쟁은 아직도 슬프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눈시울을 젖게 한다.       나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서울의 한 중학교(당시 6년제) 재학생이었다. 갑자기 터진 전쟁에 북한 인민군을 피해 남으로 향했다가 가족과 헤어졌다. 어디 나 혼자 뿐이랴. 갈 곳 없는 서울의 중학생들이 떼 지어 군번도 계급도 없이 무작정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전세가 호전됐을 때 국방부장관 명에 의해 나도 학교로 복귀했다. 하지만 어차피 입영할 몸, 졸업 무렵 다시 육군간부후보생 (OCS)에 지원해  6개월 만에 소정의 과정을 거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소모 소위’란 소리를 들으면서 전방부대에 배치돼 치열한 전투에 참전했다. 휴전 직전의 전투 상황은 전쟁 중 가장 많은 전·사상자가 발생했을 정도로 치열했다.     휴전 후 1957년, 미국에서 얻은 엄청난 무상 군사원조 덕에 한국군은 항공기부터 해군함정, 그리고 지상군에 절대적 장비인 전차도 갖추게 되었다. 또 군사 교육 목적으로 초급장교들의 미국 유학도 많았다. 나도 그 중 한명으로 선발돼 영화나 뉴스로만 보고 듣던 미국 땅을 밟아보는 행운을 1년간 누렸다.     뉴저지에서 유학 중이던 6월 어느 주말 오전, 시내 관광에 나서려는데 숙소 앞에 젊은 부인이 어린 자녀 2명을 차에 태운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굳모닝” 하고 인사하며 지나가려는데 그 부인은 “웰컴어보드” 하며 차 문을 열어주는 게 아닌가. 얼떨결에 그 차를 타고 말았다. 그 부인은 나를 본인이 다니는 교회로 데려갔다. 처음으로 미국교회에 출석해 예배드렸고 부인 집에 초대되어 점심 대접도 받았다. 그날 관광 계획은 당연히 포기했다.   부인은 쌀밥에 채소를 버무려 김치처럼 만든 샐러드와 푸짐한 프라이드치킨, 커피와 아이스크림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부인의 7세 아들, 5세 딸과 함께 식사했다. 그런데 식사 도중 미군 정복을 입고 육군 상사 계급장을 단 건장한 남성 사진을 발견했다. 부인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사랑하는 남편이고 애들의 아빠”라고 소개했다. 지금 어디서 근무하고 있냐고 되물었더니 그 부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남편은 한국전쟁 휴전 한 달 전에 한국전에서 전사했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순간순간 나는 “오 마이 갓”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온몸이 굳어버리는 듯했다. 그 부인은 이어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지만 분명 남편이 그나라를  도와줬다는게  감사한 일이죠” 하면서 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선하신 하나님, 어쩌면 저렇게 마음씨 착하고 어린 자녀를 둔 행복한 가정에 슬픔을 주십니까?” 나는 신앙심도 없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했다. 전쟁의 유물은 과부와 고아라는 말이 실감 났다. 그리고 “하나님, 이 잔인한 6월에 저토록 큰 슬픔일랑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슬픔 한국전쟁 휴전 육군 소위들 주름살 계급장

2023-05-31

[이 아침에] 존재하는 것들의 슬픔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고독만큼 같이 지내기에 좋은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외롭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항상 혼자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독’ 중에서   소로는호수의 아비새와 휠튼 호수가 외롭지 않듯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목장에 핀 한 송이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 자신도 외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수시로 생의 뒷덜미 치는 허무와 허리뼈 뭉개고 달아나는 바람의 실체는 무엇인가.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다. 태양도 달도 별도 생명 없는 것들도 슬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외로움의 깃발을 생의 곳곳에 꽂는다. 고목도 강물도 비오는 날이면 슬픔의 눈물 흘린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세월이 담쟁이 넝쿨로 온몸을 휘감으며 생채기를 남기는 동안 사랑을 하고 사랑을 떠나보낸다. 그대 품속에 있을 때도, 그대 떠난 창가에 홀로 서 있을 때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람을 견디지 못해 세월이 조금씩 바위에 흠집을 내는 동안, 그대 향한 사랑의 꽃다발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마른 꽃잎으로 시들어갔다.     고독은 혼자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고독은 영어로 ‘Solitude’로 번역되는데 바른 표기는 못 된다. Solitude 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배제된 혼자 있는 상태로 명상이나 창작, 수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독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슬픔이다. 소중한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그려져 있지 않다. 고독은 인생의 여백이다. 보이지 않는 생의 슬픔을 담는다.     여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워도 혼자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여백은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주고 슬픔을 잠재운다. 공백이 생략된 공간이나 단순히 비어있음을 뜻한 데 비해 여백은 공백이 주는 공간적 빈자리를 극복하고 고독을 견디는 새로운 장을 펼친다.   고독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수많은 위인이나 예술가들은 고독의 강을 건너 위대한 성취를 이룬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도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고독을 통해 가지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고독은 ‘나 하나로, 나 혼자’라도 충분해지는 생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개나리 세 그루를 뒷마당에 심는다. 사랑 듬뿍 주면 밝고 샛노란 꽃잎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환한 미소로 다가올 것이다. 코발트빛 봄 하늘을 병풍 삼아 봄노래 중얼거릴지 모른다. 외롭지 않기로 했다, 더 사랑하고 껴안고 가까이 가기로 한다. 고독은 외로움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존재하는 것들이 슬픔이라 해도 고독을 위해 생의 몇 부분을 남겨 놓는다.     고독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동행자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프다 해도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크고 우람한 붓질을 남겨두리라. 그대 사랑이 지나간 여백의 화선지에 사랑의 꽃 한 송이 새겨두기로 한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존재 슬픔 동안 사랑 그대 사랑 담쟁이 넝쿨로

2023-04-1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존재하는 것들의 슬픔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고독만큼 같이 지내기에 좋은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외롭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항상 혼자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독’ 중에서 소로는 호수의 아비새와 휠튼 호수가 외롭지 않듯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목장에 핀 한 송이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 자신도 외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수시로 생의 뒷덜미 치는 허무와 허리뼈 뭉개고 달아나는 바람의 실체는 무엇인가.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다. 태양도 달도 별도 생명 없는 것들도 슬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외로움의 깃발을 생의 곳곳에 꼽는다. 고목도 강물도 비 오는 날이면 슬픔의 눈물 흘린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세월이 담쟁이 넝쿨로 온 몸을 휘감으며 생채기를 남기는 동안 사랑을 하고 사랑을 떠나보낸다. 그대 품 속에 있을 때도, 그대 떠난 창가에 홀로 서 있을 때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람을 견디지 못해 세월이 조금씩 바위에 흠집을 내는 동안, 그대 향한 사랑의 꽃다발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마른 꽃잎으로 시들어갔다.     고독은 혼자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고독은 영어로 ‘Solitude’로 번역 되는데 바른 표기는 못 된다. Solitude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배제된 혼자 있는 상태로 명상이나 창작, 수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독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슬픔이다. 소중한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그려져 있지 않다. 고독은 인생의 여백이다. 보이지 않는 생의 슬픔을 담는다.     여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워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백은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주고 슬픔을 잠재운다. 공백이 생략된 공간이나 단순히 비어 있음을 뜻하는데 비해 여백은 공백이 주는 공간적 빈자리를 극복하고 고독을 견디는 새로운 장을 펼친다.   고독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수많은 위인이나 예술가들은 고독의 강을 건너 위대한 성취를 이룬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도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고독을 통해 가지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고독은 ‘나 하나로, 나 혼자’라도 충분해지는 생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개나리 세 그루를 뒷마당에 심는다. 사랑 듬뿍 주면 밝고 샛노란 꽃잎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환한 미소로 다가올 것이다. 코발트빛 봄 하늘을 병풍 삼아 봄노래 중얼거릴지 모른다. 외롭지 않기로 했다, 더 사랑하고 껴안고 가까이 가기로 한다. 고독은 외로움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존재하는 것들이 슬픔이라 해도 고독을 위해 생의 몇 부분을 남겨 놓는다.     고독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동행자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프다 해도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크고 우람한 붓질을 남겨두리라. 그대 사랑이 지나간 여백의 화선지에 사랑의 꽃 한송이 새겨두기로 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존재 슬픔 동안 사랑 그대 사랑 헨리 데이비드

2023-04-04

"'화재' 슬픔 딛고 '희망'으로 이겨낼 것"

      버지니아 애난데일 한인 상가에서 12일 발생한 대형 화재 사건에 대한당국의 사고 조사가 한창인 가운데, 수십 명 한인들이 '생활의 터전'을 잃고 신음하고 있다.    화재를 당한 업주들은 피해 규모 확인과 업소 이전, 보험 및 보상 요구 작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들 업소에서 일해왔던 직원들과 그 가족들은 당장 '실직'과 '생활고'라는 암담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됐다.   사고 이틀째를 맞은 13일, 버지니아 페어팩스 소방당국은 정확한 사고 경위와 원인 파악을 위해 분주하다.     이번 화재 사고의 현장에서 당국과의 연락 및 지휘를 담당하고 있는 총영사관 김봉주 영사는 본보에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다행인 가운데 한인업소 4곳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발생한 피해규모를 현재 파악중”이라고 알렸다.  김 영사는 “건물주와는(13일 오후 현재) 아직 연락이 안 닿은 상태이고 업주들과의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부분 업주들이 화재보험에 가입을 한 상태이긴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경우 영사관 차원의 서류발급 및 법률 자문 변호사 지원의 조력을 해 나갈 방침이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이번 화재로 피해를 입은 한인 업체 관계자들은 망연자실한 가운데서도 피해규모 산출과 업소의 새 시작 여부를 가늠하느라 여념이 없다.   워싱턴 지역 수백개 한식당 중에서도 '숨은 맛집'으로 유명했던 '토속집' 식당 업주 캐빈 대표는 “오늘이 직원들 월급 주는 날인데... 화재로 10년이상 함께 일 한 9명이 일자리를 잃어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고 말 끝을 흐렸다. 캐빈 대표는 “고객들이 위로 전화와 함께 새 가게 자리를 알아봐 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고객들 성원에 보답하고 다시 함께 우리 직원들과 일하기 위해 곧 애난데일 다른 장소에 가게를 재오픈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미택배 애난데일점 김 진 대표는 “일요일 아침 화재 사실에 대한 연락을 받고 매우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대표는 “고객들의 택배가 접수되면 당일 챈틀리 본사로 이송되는 시스템이라 다행히 큰 피해는 없는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수의 피해고객에 대해서는 화재원인을 파악한 후 보상 청구에 대해 보험회사와 논의할 것”이라며 “애난데일점 한미택배 이용 고객들은 웰빙모아 내 대리점을 이용해 줄 것을 알려달라”고 기자에게 당부했다.   한편, 정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으나 이번 화재가 최초 시작된 곳으로 추정되는 한국식 치킨 전문체인 '본촌' 측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해당 업소의 직원들은 '출근 불가' 통보를 받았으며, 차후에도 매장 재개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본촌'은 지난 2021년에도 당시 버지니아 페어팩스 지점이 화재로 전소돼 매장을 이전한 바 있다.     박세용 김윤미 기자      화재 슬픔 이번 화재 대형 화재 가운데 한인업소

2023-03-13

시카고 한인사회도 이태원 참사에 충격•슬픔•애도

시카고를 비롯한 미국 동포사회는 지난 29일(한국시간) 할로윈을 앞두고 한국의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에 충격과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시카고 한인 사회는 고국에서 전해지는 뉴스는 물론이고, 미국 언론이 보도하는 실시간 뉴스를 지켜보면서 슬픔과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사망자 다수가 20대 젊은이로 알려지면서 그 나이 무렵의 조카나 사촌을 둔 동포들은 한국에 연락을 취해 안부를 물었고, 일부는 연락이 되지 않자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최은주 시카고 한인회장은 31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이가 없는 사건이라 더욱 마음이 안타깝다. 20∼30대 젊은이들이 큰 사고를 당했다니 그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이번 사고를 교훈 삼아 철저한 계몽 시간을 가져 예방할 수 있는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애선 여성회 임원도 “고인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국을 떠난 지 오래 돼 그런 행사가 있는지도 몰라 사고를 들었을 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마음이 그저 송구스럽다”고 전했다.     이태영 목사도 “외국 명절 행사에 수 많은 청년들이 참사를 당했다는 소식에 더욱 가슴이 아리다. 인구 감소 현상이 있는 한국에서 소중한 젊은이들의 생명이 희생을 당해 더욱 마음이 안타깝다.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태원이 고향이라는 권 모씨(엘크그로브)는 “살던 곳에서 가까운 해밀턴 호텔 옆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많은 젊은이들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참사로 20대 사촌 여동생이 숨진 것을 확인했다고 알린 한 미주 동포의 게시글에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젊은 나이에 숨지다니 너무 안타깝다"며 희생자의 명복을 기원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미주 한인유권자단체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은 "조국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슬프고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며 철저한 사고 수습과 안전 대책 마련을 당부했다.   박우성 위원한인사회 시카고 시카고 한인사회 이태원 참사 충격 슬픔

2022-10-31

[시로 읽는 삶] 생각의 가치, 시의 가치

“생각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노래할 가치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찬양의 노래, 사랑의 노래, 슬픔의 노래가/ 있는 거지.// 너무도 많은 이름을 가진 신들에게 바치는/ 노래들.// 쓸쓸한 산속에서, 양들이/ 풀을 먹는 행위로 풀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안/ 목동이 부르는 노래.// 아침의 빛 속에서, 별안간, 피어난/ 꽃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벌들의 춤-노래.   메리 올리버의 ‘그리고 밥 딜런도’ 전문       지인 한 분은 유명기업의 CEO로 마케팅분야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몇 달 전 한국에 갔을 때 함께 식사했는데 요즈음 시를 공부하고 시인들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시로 자서전을 쓰려고 한다고도 하며 몇 편의 시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분은 산업 일선에서 많은 경영성과를 냈고 그래서 아직도 현역으로 이름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경영일선에서 체감되는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는 산업경영에서도 시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대임을 강조하며 낯설지만 다가올 미래 가치에 대해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밥 딜런의 음악과 인생의 무한한 가치에 대해 새롭게 다가간다고 했다. 밥 딜런이 동시대 뮤지션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기업인들에게도 창조적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바이다.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밥 딜런이라고 공식 석상에서 말하기도 했다.   밥 딜런이 큰 아티스트로 꼽히는 이유는 그의 노랫말이라고 할 것이다. 깊이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대중가요에 접목했다. 그의 노랫말을 텍스트로 하는 학위 논문이 제출되기도 했고 문학계 일부에서도 그의 음악을 시로 인정하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2016년 노벨문학상이 밥 딜런에게 주어졌을 때 뜨악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선정위원회는 “미국 음악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라고 문학상을 받을만한 이유를 전했다.   그는 어릴 때 시인 랭보를 좋아했고 이름도 영국 시인인 딜런 토머스에서 따올 정도로 시와 친숙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의 노래들은 저항정신을 담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함을 잊지 않았다고 평가받는다.   한 방송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가수라고 생각하십니까, 시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자신을 노래하고 춤추는 남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저항 가요를 부르시냐?”는 질문에는 “내 노래는 다 사랑 노래요”라고도 했다.   그는 은유와 상징으로 노랫말을 쓰지만 어깨에 힘 얹지 않고 사랑에 몰입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자유로운 영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표명인 듯하다.   밥 딜런은 올봄 지금까지 녹음된 곡들과 앞으로 내놓을 신곡에 대한 음원 녹음 저작권을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사에 매각했다고 한다. 2021년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의하면 밥 딜런의 음악 저작권 가치는 3억2500만 달러라고 한다. 매각 대금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짐작하고도 남는다.     왜 하필 소니냐며 저작권 매각을 놓고 말이 많았던 모양인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할아버지’라는 범퍼 스티커를 자랑스럽게 자신의 차에 붙이고 있는 할아버지라고도 하니, 보통의 할아버지처럼 자녀들을 사랑하고 돈도 좀 물려주고 싶었던 것 아닌가 싶다.   “생각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노래할 가치가 있다.” 시의 첫 행은 밥 딜런의 말이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가치 생각 미래 가치 노래 슬픔 딜런 토머스

2022-10-11

[법률리뷰] 험악한 인생

내 친구 중 뇌수술이 전공인 외과 전문의가 있다. 뇌를 수시로 열어야 하니 정말 힘들겠다고 했더니 “상담이 수술보다 더 힘들다”라고 말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외상을 치료하는 것보다 마음을 다루는 게 더 힘든 모양이다. 공감이 갔다. 변호사가 힘든 이유도 분노, 슬픔, 수치, 혐오, 절망, 두려움의 6가지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나도 타인의 인생에 깊이 개입하고, 처절한 고뇌 가운데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다. 인생은 생각보다 험악하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숨어 있고, 돌파해야 할 난관은 끝이 없다.   정말 괴로운 건 뭐니 뭐니 해도 사람으로부터 받는 깊은 상처다. 모욕과 배신, 비방과 누명 등 ‘막장 드라마’ 못지않은 현실이 꽤 많다. 피해자·가해자가 뒤바뀌기도 하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도 난다. 절망에 둘러싸여 우울증에 시달리는 의뢰인이 꽤 많았고, 집요한 비방과 모함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다. 때론 후한 선의를 독한 악의로 돌려받은 사람도 만난다. 배은망덕과 적반하장, 가끔은 나도 의뢰인과 같이 운다.   나는 인간의 선과 악에 얼굴을 맞대고 살다 보니 인생의 부조리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인간은 가장 고상하고 고결할 수 있는 동시에 가장 천박하고 잔인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악의 핵심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강한 자기중심성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아’라는 감옥에 갇혀 지낸다. 하다못해 중독이란 감옥에서 한평생 노예로 살기도 한다. 갇힌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갇혀 있는 걸 알아도 출소하는 방법을 모른다. 의외로 인간은 자기 자신도 잘 모른다. 한데, 길이 없진 않다. 고통의 해석에 인생의 해답이 있다. 고통은 감옥을 벗어나는 열쇠고, 자신을 알아가는 각성이다. 나를 쇠사슬로 동여맨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나를 꼼짝 못 하게 옥죄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는 지름길이다.   나의 일상은 송사에 휘말려 고통받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사람마다 고통에 대처하는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조그만 고통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극히 드물지만, 엄청난 고통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돌파해 나간다. 가장 큰 특징은 절대 남 탓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마저 인생의 스승으로 여긴다. 내 경험이 알려준 건,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삶이 피동적이니 희망도 적다. 그러나, 말문이 딱 막히는 억울한 상황도 ‘나’로부터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람은 고통을 아름답게 뛰어넘는다. 이들이 인생의 고난을 통과한 후 달라진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보통은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깨어진 과거를 털어낸다. ‘나’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내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 의붓딸을 강간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사람이 있었다. 누명을 썼으니 접견이라도 해달라는 노모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눴다. 진실은 신의 영역이지만, 죄를 뒤집어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 문턱은 높았다. 긴 세월, 편지를 주고받고 안부를 물었다. 고통이 처절해 보였지만, 원망과 분노는 입에 담지 않았고, 작은 호의도 크게 감사했다. 그리고 ‘고통이 낭비라 생각하지 않는다. 눈물을 통해 본 세상은 보이지 않던 게 많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근 출소해 노모를 모시고 산다.   나는 이제 고통이 ‘신의 축복’이란 말을 조금 이해한다. 인간은 확실히 잘 변하지 않는다. 잔소리로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변하는 건 결국 고난에 반응하면서다. 보통 2가지다. 더 피폐해지거나, 더 고결해진다. 주어진 상황을 확 받아들이고, 고통을 잘 해석하는 사람이 후자에 속한다. 이런 사람의 뒷모습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고통이 신비스러운 이유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고통 곁에 의뢰인과 같이 머문다. 이들이 고통을 통과할 때 변호사가 하는 일도 다양하다. 고통을 잘 해석할 수 있게 돕는 건 변호사의 특권이기도 하다. 살아보니 인생이 험악한 건 상수(常數)였다. 그러나 실존의 고통에 대한 나의 답은 이것이다.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이은경 /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법률리뷰 인생 험악 배은망덕과 적반하장 혐오 절망 분노 슬픔

2022-08-2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그때는 알게 될 거야

그때는 알게 될 거야       때의 마지막은 있나니 모든 것의 마지막은 있나니 그때엔 우리의 모름조차도   사랑이 되어 빛나게 되리라는 것을 희미하지 않고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모든 걸음은 순간 이었고 허락되었던 기쁨과 슬픔,   감사와 원망, 눈물까지도   귀한 사랑이 되어 힘겨웠던 허리를 곧게 세우게 되리라는 것을 은혜의 강물로   흐르게 되리라는 것을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일을 놓을 때쯤에서야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뒤돌아 보니 굽이굽이 걸어왔던 길이 보입니다. 저 모퉁이에서 한발만 멈추고 숨을 고르다 언덕을 올랐다면 저 길고 험한 길을 걷지 않았을 텐데, 저 내리막 길에서 너무 빨리 내달리지만 않았다면 상처와 아픔으로 많은 세월을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훤히 보입니다. 무엇을 깨달았다기보다 지나보니 그 때가 보이고 그때 내게 닥쳤던 일의 소중함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았다면, 저렇게 살지 않았다면 하는 후회가 앞서기도 합니다. 많이 넘어진 때도 있었고, 여러 번 실패한 적도 많았습니다. 많이 넘어진 만큼, 여러 번 실패한 만큼 넘어진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보니 예상치 않은 기회가 찿아오기도 했습니다. 무리하게 성공을 향한 지름길을 찿아 헤맨 날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그런 때일수록 지척에 놓인 소중한 때를 비껴 지난 날들이 더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잘 견디어내면 견디어 내는 수고에 비할 수 없을만큼 소중한 꿈들이 영글어 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봅니다. 그 때의 소중함을 소홀히 여기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면 결코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꽃이 피는 것도 보기에는 그저 막 피어나는 것 같지만 그 때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은 간절함, 그 간절함이 결국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 때를 놓쳐 조금만 게으르면 새는 둥지의 알을 부화시키지 못할 겁니다. 때 맞춰 알을 굴려야 하고 따뜻한 날개품에 일정 온도로 알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하지 말아야 할 그 때, 그 때 삶의 가치는 최고의 가치가 됩니다. 그 소중함을 그때 알았더라면 현재의 나는 과연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 지금의 때로부터 과거의 시간을 되돌아 보는 일만큼, 지금의 시간으로부터 맞이해야 할 시간을 준비하는 시간은 더욱 소중한 시간입니다. 때마다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길의 끝은 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었던 희노애락의 순간들은 거울을 보듯 선명하게 되어 힘겨웠던 허리를 펴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를 지나쳐 갔던 모든 순간들이 사랑 안에서 은혜와 감사의 강물로 흐르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하루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 만나는 사람과 그 배경의 풍경과, 시간 따라 바뀌는 계절과, 쉼 없이 흐르는 강물과, 소리 없이 우는 법과, 오래 참고 의연하게 견디어낸 그 신비의 사랑 앞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슬픔 감사 일정 온도 원망 눈물

2022-05-23

[독자 마당] 슬픔의 무게

슬픔에도 무게가 있을까. 사람이 살면서 겪는 고통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가족을 잃는 슬픔일 것이다. 오랜 지인이 외아들을 잃었다. 훌륭한 안과의사로 장래가 촉망되던 청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아 종합검사를 했는데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아들은 곧바로 입원해 치료에 들어갔지만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가족들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슬픔을 덜어 줄 수 있을까. 정말로 난감했다. 슬픔도 나누면 이겨나갈 수 있으려만… 그러기에는 슬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궁리 끝에 옛 이야기가 생각났다. 석가세존이 기원정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3대 독자를 잃은 한 미망인이 삶의 의욕을 잃고 부처님을 찾아가 울면서 자신의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부처는 지금 마을로 내려가 사람이 죽지 않은 일곱 집을 찾아 쌀 한 움큼씩 얻어 오면 슬픔을 견딜 수 있는 방책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여자는 부처님 말씀대로 마을로 내려가 온종일 돌아다녀 봤지만 어느 한 집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을 찾지 못했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 부처에게 전후 사정을 말했다.     부처님은 누구나 한 번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면서 그 여자 스스로 체험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인생은 탄생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의 삶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모두 한 번은 죽는다. 다만 조금 일찍 또는 조금 늦게 죽는 차이일 뿐이다. 죽음에는 차례가 없다. 그럼에도 아깝게 일찍 죽는 것과 천수를 다하는 차이에 따라 슬픔의 무게도 크게 달라지는가 보다.  이산하·노워크독자 마당 슬픔 무게 부처님 말씀 정신적 공황상태 급성 백혈병

2022-03-18

[독자 마당] 슬픔의 한 자락

지난주 수요일에 세탁소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사실 하루에 세탁소로 걸려오는 전화가 한 두 통이 아니건만 그 전화는 특별했다. 세탁소로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비즈니스에 관한 것이다. 자기가 맡긴 옷이 다 되었는가를 묻는 일부터 가게 위치며 세탁비에 관한 내용이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러니 세탁소에서 전화 통화할 때 내 목소리는 늘 메말라 있는 편이다.   그러나 수요일에 걸려온 전화는 내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게 하는 그런 종류의 사사로운 것이었다. 수화기를 들면서 발신처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주 낯이 익은 이름이었고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석 달을 훌쩍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론의 아내의 것이었다. 론과 그의 아내는 그저 손님이 아니라 잠깐씩이라도 개인적인 마음을 나누는 나의 친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론의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나중에 확인해본 결과 작년에 마지막으로 세탁소에 들르고 일주일 후에 세상을 뜬 것이다.   10여 년 전에는 그의 아내로부터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한 기억이 있어서 론의 사망 소식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쓰리고 아렸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은 작년이지만, 늦었어도 내게 그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저 ‘So sorry’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건조하던 내 목소리에서 울음이 묻어 나왔다. 나는 어떻게 그 전화 통화를 마무리 지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 남편과 아들의 기억 때문에 무척 아팠을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더는 사랑을 전할 수 없는 그 아픈 마음 한 자락을 꺼내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김학선·자유기고가독자 마당 슬픔 자락 전화 통화 사망 소식 자기 남편

2022-03-11

[건강 칼럼] 코로나19 상실감 해소 중요

팬데믹의 장기화로 “코로나19로 지난 2년여는 잃어버린 시간, 없는 시간이 됐다”는 말을 흔하게 듣게 됐다. 코로나19로 시간의 상실, 일상의 상실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상실(Loss)의 사전적 의미는 1.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2. 어떤 것이 완전히 없어지거나 사라짐이다. 상실감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후의 느낌이나 감정 상태를 말한다. 영어로 상실감을 뜻하는 Grief는 한국어로 깊은 슬픔, 비탄, 비통 등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정신건강의학에서는 대상을 상실에 따른 심리, 생리적 반응이라고 본다.     동반되는 반응에는 애도와 비탄이 있으며 애도(mourning)는 심리적 과정을, 비탄(grief)은 상실로 인해 수반되는 정서적 반응을 가리킨다. 상실감의 요인은 사별, 이별, 이혼, 유산, 실직, 사업실패, 은퇴, 이직, 건강악화 등처럼 관계, 역할, 상황, 환경, 신체·건강 등 다양하다. 이렇듯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상실과 상실감을 경험하게 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더 많아지고 더 커졌다.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팬데믹 동안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재난이나 매우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서, 상실감을 느끼는 사례가 늘었고 이를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상실감은 정신건강 장애는 아니지만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상실감에 반응하는 감정과 이로 인해 나타나는 심리적 증상은 사람마다 다른데 충격, 고통, 슬픔, 불안감, 죄책감, 안도감 등의 감정으로 인해 수면장애와 우울증, 불안증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상실은 심리학적으로 보통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과 회복의 5단계를 거치면서 해소되지만, 사람마다 어떤 단계에 머물거나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감정과 증상을 일단은 어떤 변화(상실)에 대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과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힘들다면 표현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것을 권한다.     상실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를 무시, 부정, 회피하거나 숨기거나 담아두기보다는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표현, 발산하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에게 얘기하거나 사람을 자주 만나거나 요리 등 취미생활 또는 자아실현 활동을 하는 등 각자에게 맞게 해소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수용과 회복에 이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도 분노, 슬픔, 우울 등의 감정이 옅어지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문의: (213)235-1210 문상웅 / 심리상담전문가 이웃케어클리닉건강 칼럼 코로나 상실감 상실감 해소 우울증 불안증 슬픔 비탄

2022-03-0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이 오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눈이 녹은 뒤 파랗게 살아나는 잔디 위를 걸으면 발끝부터 봄 기운이 올라온다.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차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른 가지속에 움츠리고 앉은 싹들이 이제 곧 기지개를 펼 것이다. 뒤란의 여기 저기에서 봄기운이 커피향만큼이나 진하게 느껴온다. 상상만 해도 봄은 벌써 내 안에 피어나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의 오감을 통하여 우리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을 일상에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눈이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사물과 풍경, 사람들은 모두 독특한 모양과 저마다의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 시각으로 인해 삶은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다.     우린 매일 세끼의 식사를 하고 주전부리를 한다. 음식을 먹고 느끼는 단 맛, 쓴 맛, 매운 맛, 신 맛, 떫은 맛, 고소한 맛의 다양성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다. 우리의 입을 통해 들어오는 음식으로 그 맛과 냄새를 느낄 수 있듯이 우리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로 인해 감사와 불쾌감과 배려와 사랑 등 다른 감각을 느끼게 될 것이다.     눈을 감고 무엇을 만져보라. 손끝에 느끼는 다양한 감각들이 전달될 것이다. 딱딱함, 부드러움, 차가움, 따뜻함, 섬찟함, 위기감 등 때론 얼굴에 부딪혀 오는 바람의 촉감도 온몸으로 느껴오는 봄 볕의 따스함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른 아침 창가로 들리는 새소리에 잠을 깨는 행복은 어디에서도 창출 수 없는 청각의 기쁨이다.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도마소리는 편안함과 함께 가족의 소속감을 자연스레 유발해 내기도 한다. 좋아했던 팝송의 선율은 지나간 젊음을 소급해 내기도하고 마른 눈에 눈물을 글썽이게도 한다.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치열한 오감의 기능은 우리 삶의 질을 가늠해준다. 오감 중 어느 하나의 기능이 미비할 때는 나머지 감각들이 더 살아나 부족함을 메워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처럼 봄은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고, 오감은 봄의 다양한 맛과 소리와 냄새 그리고 풍경과 느낌으로 깊이 만날 수 있다.     봄이 오고 있다 / 강을 따라 흐르다 멈춘 / 고목이 누운 발 끝 열 마디  / 은빛 비늘처럼 살아나는 물고기 눈 / 긴 세월 흐르다 서로 만나 / 거역할 수 없는 걸음을 재다 / 오늘은 뒤 돌아 얼마나 걸었을까 /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마다 /  뿌리로부터 멀어져 / 숲길에 누이는데 우리는 / 어디쯤에서 무엇이 되어 만나려나 / 서로 발끝을 건드리며 / 채워지는 두런거림으로 / 연애편지를 읽는 설레임으로 / 먼 거리를 두고 너는 오고 있구나     봄은 그렇게 오고 있다. 내 옆구리를 녹이고, 고목의 발가락을 간지르며 저리도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한 토막을 강물에 띄운다. 먼 거리를 유유히 강물처럼 흐르며 너는 물고기의 눈처럼 미끄러져 오고 있다.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밀려가는 시간처럼, 한 걸음을 떼면 다른 걸음이 따라오는 페달 달린 기계처럼, 만났다 헤어지고 또 부딪치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봄은 오고 있다. 소리 없이 담장을 뛰어넘는 자객처럼 차갑고 딱딱한 벽을 사뿐히 넘어 연둣빛 편지를 소중히 허리춤에 감추고 사랑방 문지방을 넘고 있다.     오감을 잔뜩 긴장해 너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너의 향기와, 너의 미세한 소리와, 꿈틀대는 생명의 축복. 혹 모르고 지나치지 않게, 행여 너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후회하지 않게, 반짝이는 비늘이 되어 강을 가로지르는 너를 목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무엇이 되어 미세한 소리에 귀 기울여 서로의 발 끝에 채워지는 두런거림으로, 연애편지를 받아든 두근거리는 설레임으로 벅찬 봄을 맞이하자. 봄은 저리도 아프게 살아나고 있는데…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사랑방 문지방 슬픔 행복 청각 촉각

2022-03-07

[살며 생각하며] 가슴은 클수록 좋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가지를 흔든다. 우수수 잎사귀들이 비처럼 내린다. 가슴이 철렁한다. 가을은 좀처럼 나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나무들은 언제나 이때 즈음이면 이별을 고한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지만, 나약한 우리 인간들은 정서를 이야기한다. 푸른 하늘 아래를 서성거리며 시를 읊기도 하고 종종 어둑해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눈시울도 적신다. 마음이 생겨서 그런 것이다. 쓸쓸함, 그리움, 슬픔, 그런 마음들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며칠 전 꿈을 꾸었다. 기억나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사람들을 몇 모아 놓고 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시란 생각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마음을 건드려야 글이 나온다고 했다. 시도 못 쓰는 내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나? 참 알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이다.     살면서 세상일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작아진다. 마음을 담아두는 가슴도 쭈그러진다. 나는 종종 용서란 말을 한다.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어려운 숙제이다. 미워 죽겠는데 용서하라니 미칠 노릇이다. 주기도문을 바치다가 문득 주위의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 결코 신에게서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모순투성이인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을 꺼린다. 인간답게 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생각과 말과 행위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생각과 말은 그럴듯해도 올곧은 마음이 없으면 아무 쓸 데가 없다.    선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마음에 온통 탐욕만 담아두면 가슴은 좁아진다. 나의 가슴은 신성한 곳이다. 그런 좋은 곳에 온통 욕심과 분노와 이기심과 자만으로 가득한 마음을 담아둘 수는 없다. 노래 부르다가도 눈물 흘리고 바람 부는 대로 흩어져버리는 낙엽을 보고도 울컥하는 마음이 차라리 났다. 세상 모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미국 인디언(American Indian)의 마음은 참 아름답다. 그런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기독교 신앙을 앞세워 개척정신을 부르짖으며 인디언들을 무차별 학살한 초기 이민자들의 마음은 고귀하였을까? 교리를 가르치며 신을 믿으라 한 그들에게 한 족장의 추장은 말한다.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의 형제자매를 죽이고, 우리를 핍박하는 것을 허락한 신을 믿으라니요. 저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의 형제이고 고귀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는 저의 신을 믿겠습니다.”     사랑도 마음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분노하고 강요하며 상대방을 바꾸려 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별을 헤아리며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어린아이들을 아끼는 하는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을 가슴에 담아 두었으면 좋겠다. 나의 좁은 가슴을 넓히려면 스스로 변해야 한다. 필요 없는 걱정. 끊임없는 욕심들은 다 꺼내 버리고 강한 의지로 나의 나약함과 게으름을 이겨내야겠다. 노력 없이 어찌 스스로 바꿀 수 있겠는가? 새해가 오기 전 미리 마음을 다져야 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했던가? 그 행복을 위해서 가슴을 크게 만드는 것은 나의 앞으로 목표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되 생각이 가슴으로 내려 마음을 건드리는 시인의 마음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거듭 말하지만 가슴은 클수록 좋다. 여성 폄하의 뜻으로 말한 것이 결코 아님을 눈치챘을 것으로 믿는다. 고성순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가슴 기독교 신앙 초기 이민자들 그리움 슬픔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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