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존재하는 것들의 슬픔
소로는 호수의 아비새와 휠튼 호수가 외롭지 않듯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목장에 핀 한 송이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 자신도 외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수시로 생의 뒷덜미 치는 허무와 허리뼈 뭉개고 달아나는 바람의 실체는 무엇인가.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다. 태양도 달도 별도 생명 없는 것들도 슬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외로움의 깃발을 생의 곳곳에 꼽는다. 고목도 강물도 비 오는 날이면 슬픔의 눈물 흘린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세월이 담쟁이 넝쿨로 온 몸을 휘감으며 생채기를 남기는 동안 사랑을 하고 사랑을 떠나보낸다. 그대 품 속에 있을 때도, 그대 떠난 창가에 홀로 서 있을 때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람을 견디지 못해 세월이 조금씩 바위에 흠집을 내는 동안, 그대 향한 사랑의 꽃다발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마른 꽃잎으로 시들어갔다.
고독은 혼자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고독은 영어로 ‘Solitude’로 번역 되는데 바른 표기는 못 된다. Solitude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배제된 혼자 있는 상태로 명상이나 창작, 수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독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슬픔이다. 소중한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그려져 있지 않다. 고독은 인생의 여백이다. 보이지 않는 생의 슬픔을 담는다.
여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워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백은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주고 슬픔을 잠재운다. 공백이 생략된 공간이나 단순히 비어 있음을 뜻하는데 비해 여백은 공백이 주는 공간적 빈자리를 극복하고 고독을 견디는 새로운 장을 펼친다.
고독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수많은 위인이나 예술가들은 고독의 강을 건너 위대한 성취를 이룬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도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고독을 통해 가지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고독은 ‘나 하나로, 나 혼자’라도 충분해지는 생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개나리 세 그루를 뒷마당에 심는다. 사랑 듬뿍 주면 밝고 샛노란 꽃잎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환한 미소로 다가올 것이다. 코발트빛 봄 하늘을 병풍 삼아 봄노래 중얼거릴지 모른다. 외롭지 않기로 했다, 더 사랑하고 껴안고 가까이 가기로 한다. 고독은 외로움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존재하는 것들이 슬픔이라 해도 고독을 위해 생의 몇 부분을 남겨 놓는다.
고독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동행자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프다 해도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크고 우람한 붓질을 남겨두리라. 그대 사랑이 지나간 여백의 화선지에 사랑의 꽃 한송이 새겨두기로 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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