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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2024년, 한인 세대간 소통 넓히는 한 해로

#. 뉴저지주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서 모씨는 지난해 큰맘 먹고 대학동문모임을 찾았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왔다. 그는 “세대차는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지만, 막상 가 보니 한국 특유의 선후배 문화가 있었고 후배를 일꾼으로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독서그룹에도 참여했는데, 후배들에게 영문 책을 안겨주며 ‘번역을 해 오면 그걸 토대로 토론하자’고 제안하셨다”며 황당해했다.   #. 한인단체에서 오래 일한 김 모씨는 젊은 층에 대한 이민 1세대의 마음이 짝사랑처럼 느껴져 안쓰럽다고 했다. 그는 “1세대들은 모이기만 하면 단체를 물려줘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는데, 정작 함께 봉사할 차세대 한인은 없다”며 “한인이민 역사를 모르는 경우도 많고,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아 소통이 어렵다”고 말했다.   한인사회의 오랜 숙제 ‘세대 간 화합’. 하지만 늘 말만 나올 뿐, 제대로 된 소통은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각종 한인 단체장의 신년 목표가 ‘차세대 영입과 육성’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왜 차세대 한인은 한인사회에서 점점 멀어질까. 어떻게 하면 올해엔 한인들 간 소통을 넓힐 수 있을까.   ◆젊은 한인들은 어디에= 뉴욕한인회·동문회·각종 경제단체협의회…. 주요 단체장들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말은 ‘차세대 영입’이다. 안타깝게도 20~30대 한인들은 단체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뉴욕한인회 존재조차 몰랐다는 컬럼비아대 한인 유학생은 “홍보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자은행(IB)에서 일하는 조 모씨(38)는 젊은 한인들이 참여할 프로그램이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행사가 재미있든, 아니면 네트워킹 기회가 있든 해야 하는데 한인단체 행사는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에 참여하려다 상처만 받은 경우도 있다. 뉴욕시 공립교 교사로 일하는 30대 한인 여성은 “모임에 나갔더니 어르신들께서 타민족 학생 비하 발언을 하셨는데, 다양한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한인회 활동을 하고 있다는 한 한인은 “할아버지와도 소통이 안 되는데, 거길 들어가면 얼마나 답답할지 벌써 상상된다”고 밝혔다.   ◆1세대 “젊은층도 우리를 존중해줬으면”= 하지만 1세대 한인들도 할 말은 많다. 공들여 꾸려놓은 단체, 커뮤니티를 마치 ‘꼰대 집합소’로 여기는 분위기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수십년째 아티스트 활동을 하고 있는 강 모씨는 “젊은 학생들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한국어로 말을 걸었고, 한인 아티스트 단체를 소개했지만, 확 경계하며 선을 긋는 느낌을 받았다”며 “나도 모르게 ‘요즘 젊은 아티스트는 절실하지 않구나’라는 옛날식 사고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뉴욕 한인 이민역사와 함께한 단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최윤희 뉴욕한인학부모협회 회장은 “여기서 나고자란 한인들의 언어적, 태도적 장점도 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1세대 한인들의 강한 면모도 분명한 장점”이라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땐 커뮤니티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예 세대 차이를 인정해버린 안타까운 경우도 많아졌다. 문용철 롱아일랜드한인회장은 “저희 행사에선 우리 세대 유행가를 떼창하곤 하는데, 젊은층이 와도 섞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세대구분보단 시스템 만드는 게 우선= 세대교체를 화두로 삼다 한인사회가 양분된 사례도 있다. 바로 지난해 치러진 제38대 뉴욕한인회장 선거다. 1세대와 2세대 후보가 치열하게 맞붙으면서 일각에선 ‘구세대가 모두 물러나야 한다’는 극단적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많은 한인은 극단적 세대교체나 구분은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최 회장은 “소모적 세대교체 언급은 그만하고, 다져놓은 기반을 정비해 젊은 층이 자연스럽게 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 친목모임보다는, 커뮤니티에서 어젠다를 갖고 외부로 목소리를 내야 젊은 층도 유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퀸즈에 거주하는 이수진씨는 “공직 등 주류사회에 진출한 차세대도 그 다음세대를 끌어주는 리더 역할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활동을 뒷받침할 개인·기업의 펀딩도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김재연 이노비 사무총장은 다양한 행사를 조성해 여러 차례 섞이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김광희 뉴욕가정상담소 설립자는 “‘세대’라는 단어 자체가 세대간 벽을 더 만든다”며 “너무 의식하지 말되 내 자신이, 내 옆 사람이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편집국 취재팀신년기획 한인 소통 한인단체 행사 뉴욕한인회 존재 최윤희 뉴욕한인학부모협회

2023-12-31

[우리말 바루기] ‘김치소’

김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중 하나인데, 무를 채 썰어 파·젓갈·마늘·생강 등의 고명과 고춧가루에 버무린 뒤 배춧잎 사이사이에 넣어야 한다.   김치를 담글 때 배춧잎 사이에 넣는 양념을 이를 때 이처럼 ‘김칫속’이라고 알고 있는 이가 많다. 절인 배추의 ‘속’을 채우는 양념이라서 ‘김칫속’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김칫소’가 바른 표현이다.   ‘김칫소’를 ‘김칫속’이라 잘못 알고 쓰는 이유는 ‘소’라는 단어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소’는 통김치나 오이소박이김치 등을 담글 때 속에 넣는 여러 재료로, “소를 많이 넣어서인지 김치 맛이 좋다”같이 독립된 단어로도 쓸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고기, 두부, 숙주나물을 다져 넣어 만두속을 만들었다”처럼 만두의 속에 들어가는 재료를 ‘만두속’이라고 쓰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만두소’가 바른 표현이다.   ‘소’라는 단어가 낯설고 어색하다 보니 ‘김칫속’ ‘만두속’과 같이 잘못 알고 쓰는 경우가 많다. 소는 김치나 만두뿐 아니라 송편이나 찐빵과 같은 음식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가리킬 때도 쓰인다.     팥을 삶아 으깨 찐빵 속에 넣는 것을 ‘앙꼬’라 부르는 경우도 많지만, ‘앙꼬’는 일본어에서 온 말로, 순우리말로는 ‘팥소’라고 한다.우리말 바루기 김치소 배춧잎 사이사이 존재 자체 고기 두부

2023-12-18

[이 아침에] 사막에서 만난 순백(純白)

대륙을 섭렵하는 묘미의 으뜸은 대자연의 진수와 만나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맛보는 것이다. 드넓은 평야와 우람한 협곡, 그 안에서 나름의 형태로 존재하는 온갖 사물들의 의미를 음미하고 일체감을 얻을 때의 깨달음과 기쁨은 가히 희열에 가깝다. 감정은 맑고 순수하며, 성찰의 계제에 세상의 어지러움과 사악함이 파고들 틈새는 없지 싶다.       1980년대 미국에 온 이후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101번 고속도로를 기회 있을 때마다 수없이 애용했는데, 너무 익숙해져서 근래에는 5번 고속도로를 더 선호한다. 몇 시간씩 달려도 동쪽으로는 끝없는 광야가 펼쳐져 있고, 서쪽에는 희끄무레한 화강암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줄곧 따라온다. 뜨거운 햇볕에 메말라 죽은 풀들, 생물들이 살 것 같지 않은 박토, 구불구불 이어지는 구릉, 용암이 융기한 날카로운 바위산과 계곡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차를 세우고 들여다보면 뜨거운 돌과 건초 사이로 이름 모를 벌레들이 스멀거리고, 선인장이 앙증스러운 꽃잎으로 반기며, 스프링클러로 연명하는 과수원에는 다람쥐가 쭈뼛거린다.     광대한 황야와 태산을 바라보고 있거나 죽음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력을 만날 때면 그 장엄함과 신비함에 매료돼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새삼 반추해 보게 된다. 매료되는 순간에는 마음이 백지처럼 깨끗하다. 세상살이의 난삽함은 모두 지워지고, 앞에 펼쳐진 자연의 현실과 진실만이 눈부시게 다가온다.     존 스타인벡의 명작 ‘분노의 포도’의 마지막 무대인 베이커스필드 갈림길에서 고속도로를 나와 자동차 연료를 채우고 나서 요기를 하러 바로 옆의 ‘인 앤 아웃(IN-N-OUT)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점심때라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기다렸다. 언뜻 한 백인 부부가 음식을 들고 줄 너머 반대편으로 건너가려고 틈을 찾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좁은 공간임에도 얼른 뒷걸음질 쳐 간신히 길을 열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친절하시군요.” “천만에요. 당연하지요.”  정중한 감사 표시에 맞게 미소를 띠며 깍듯이 답례했다.  그들의 평소 삶의 자세가 매우 바르고 성실하겠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졌다. 흔한 인사지만 양측의 표정과 음성에도 진정성이 묻어 있었다.  차례가 되어 음식을 받아 아내가 잡아 놓고 있는 자리에 앉는데 아까 그 백인 부부의 옆자리였다. 그들이 파안대소하며 먼저 반겼다. 우리는 자연히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서로 여행에 관해 물었고, 여러 이야기 중에 자신들이 UC머세드 교수라는 소개가 나왔다. 낮 가리지 않고 소박한 열린 자세의 향기가 맑디맑고 향긋하게 전해졌다. 아마도 캠퍼스와 자연에서 형성된 청아한 성정이리라.     우리는 미소가 가득한 환담을 하고 교차 포옹으로 작별했다. 떠나는 그 부부의 뒷모습이 긴 여운을 남겼다. 눈빛이 형형한 두 사람의 자태가 자연의 진수가 조각한 형상이라고 여겨졌다. 인상파 화가들이 사막과 산맥을 배경으로 그 형상을 그린다면 어떤 명화가 나올까?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이 아침에 순백 사막 백인 부부 존재 의미 베이커스필드 갈림길

2023-10-16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소유냐 존재냐

‘가진다’고 하는 것이 실제로 가지는 것일까? 인간은 모두 죽기에 무언가를 가져봐야 한평생에 불과하다. 그래서 ‘소유’라고 하는 양식을 버리고, ‘존재 양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안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에 번창하는 기업들 중에는 이렇게 ‘소유’라는 개념을 버리고 대신 ‘플랫폼’을 제공하거나 ‘공유’의 가치를 사업화한 기업들이 많다. ‘존재 양식’을 이용한 것이다.   택시회사인 우버(Uber)는 정작 택시를 한대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승객과 택시를 연결만 해준다. 온라인에 새로운 소식을 매일 업데이트하는 메타(Meta)는 어떤가? 페이스북(Facebook)이라는 이름으로 정작 자신들의 사이트에 올라오는 콘텐츠를 자신들은 하나도 만들지 않는다. 모두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매일매일 만들고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유튜브, 역시 사용자들이 내용을 올리고 다른 사용자들이 그것을 보면서 서로 공유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Amazon) 이나 알리바바(Alibaba)도 물건을 제작하는 회사가 아니다. 자신들은 상품을 중개만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Netflix) 역시 영화관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용자들이 영화를 집에서 텔레비젼으로 보든지, 전화기로 본다. 이런 기세를 몰아 넷플릭스는 요즘 직접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처음에 넷플릭스는 영화사로부터 영화를 구매해서 회원들에게 공급하는 역할만 했다. 이렇게 성공하자 이제는 영화를 제작해서 보급한다. 한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컴퓨터를 판매했던 델(Dell), 역시 매장이 없다. 구매자들이 온라인으로 컴퓨터를 주문하면, 중국에서 들여온 값싼 부품들을 창고에서 조립해서 바로 배달을 한다. 휴가철에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숙박을 위해 이용하는 에어비앤비(Airbnb) 역시 자신들은 숙박시설을 하나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 회사 역시 빈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 집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미 현대 시장을 지배하는 많은 기업들이 존재 양식 또는 공유라는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직원 고용도 점차 이 존재 양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예가 늘고 있다.   영국의 한 소프트 웨어 개발 회사에는 유능한 직원이 한명 있었다. 그는 프로그램 개발 실력을 인정받아 회사에서 12만 파운드 이상 고액의 연봉을 받아 왔다. 그런데 이 회사의 감사팀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한다. 이 회사의 감사팀에서 이 직원의 인터넷 접속 기록들을 살펴 보니, 이 직원은 평소 근무 시간에 늘 페이스 북이나 뉴스를 보고 이것 저것 잡다한 개인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 직원은 회사가 시킨 소프트 웨어 개발을 언제 하는 것이었을까? 이 회사의 감사팀에서 발견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이 직원은 회사에서 개발 업무를 맡기면 자신이 맡은 일을 인도나 중국에 있는 아웃소싱 회사에 의뢰를 했다. 중국이나 인도에는 값싸고 뛰어난 인력들이 많이 있었기에 이 직원이 의뢰한 업무를 아주 싼 값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했던 것이었다. 이 직원은 연간 대략 2만파운드 정도의 싼 값에 자신의 업무를 외부에 맡겨 왔던 것이다. 그는 회사에서 12만 파운드의 연봉을 받았으니 자신은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매년 10만 파운드를 남겨왔던 것이다. 게다가 이 직원은 이 회사에 다니면서 동시에 다른 소프트 웨어 회사와도 계약을 맺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었다. 프리랜서로서 맡은 일도 그는 역시 중국이나 인도에 있는 아웃소싱 회사에 의뢰했고, 자신은 수수료 차익을 가져갔다.     이 직원은 정규직원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어 이 회사에서는 결국 해고되었다. 하지만, 그가 만일 자신이 고용된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했다면, 그가 한 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 많은 회사들이 이 직원과 같은 정규직원을 고용하는 대신, 아웃소싱으로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소유 존재 존재 양식 아웃소싱 회사 직원 고용도

2023-10-05

[우리말 바루기] ‘한 끝 차이’는 없다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나 팀의 경기를 보며 마음을 졸여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응원하는 팀이 이길 듯 말 듯 애태우다 질 때가 있다. 이럴 때 “한 끗 차이로 져서 너무 아쉽다”고 말하곤 한다. 이처럼 ‘한 끗 차이’는 아슬아슬한 차이를 나타낼 때 관용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이를 막상 글로 적으면 ‘한 끝 차이’로 쓰는 사람이 많다.   ‘한 끗 차이’를 ‘한 끝 차이’로 잘못 적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끗’이라는 단어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끗’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 생각된다.   ‘끗’은 화투나 투전과 같은 노름 등에서 셈을 치는 점수를 나타내는 단위를 뜻한다. 즉 ‘끗’은 화투를 친 뒤 점수를 계산할 때 ‘한 끗, 두 끗, 세 끗…’과 같이 셈을 하기 위한 단위라 할 수 있다.   ‘끗’이 점수를 세는 단위이므로 ‘한 끗 차이’는 승부를 가르는 점수 차이가 단 1점밖에 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매우 아쉬운 상황이나 아주 적은 차이를 나타낼 때 습관적으로 ‘한 끗 차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비슷한 현상은 “끗발 좋다”는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끗발 좋다” 대신 “끝발 좋다”고 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 역시 ‘끗’과 ‘끝’을 구분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 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점수 차이 스포츠 선수 존재 자체

2023-06-12

[삶의 뜨락에서] 잡초도 해내는데

추위가 가시기도 전에 햇볕이 따스하다 느껴지면 울타리 밑에서부터 잡초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넓은 잔디밭과 나무울타리로 되어있는 우리 집은 잡초의 전시장이다. 물이나 비료를 따로 주는 것도 아닌데 이른 봄부터 거친 땅을 비집고 알아서 깊숙이 뿌리 내리는 잡초를 보면 그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잡초는 땅속 깊숙한 곳에서 영양분을 표토층으로 길어 올리고 흙이 유실되거나 마르지 않게 덮어주는 멀칭의 역할을 해줄 뿐만 아니라 퇴비를 만들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농사의 적인 줄만 알았던 잡초가 농작물의 생육 기반이 되는 토질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 모든 것을 그냥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 존재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자신만의 특기로 증명한다. 잡초마저도 이렇듯 한순간의 어긋남 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낸다. 가만히 살펴보면 잡초도 위계질서가 있다. 추위에 떨면서도 이른 봄 땅을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고 시들어버리는 유채화 같은 꽃이 있는가 하면 그 뒤를 이어 쑥과 같이 땅 밑으로 뻗어놓은 줄기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아 세상 밖으로 나오고 토끼풀처럼 넓은 줄기를 잔디 위에 뻗으면서 영토를 넓히는 잡초도 있다. 일찍 나왔다가 희생양처럼 시들어 다른 잡초들이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양보하고 거름으로 쓰인다.   달리는 기차에 무작정 올라탄 것처럼 목적지를 정하기도 전에 인생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결국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끝없는 욕망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결코 채워지는 법이 없는 욕망의 굴레 자체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남보다 좀 더 부유할 것인지 아닌지의 차이만 있는 뻔한 인생을 이리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게 가끔은 허무하고 기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한 번쯤은 의심이 들 만도 하다. 잡초에 있는 특기가 하물며 인간은 없으랴. 잡초에도 있는 존재 이유가 인간에게만 없으랴. 인간의 가치나 존재 이유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를 고민한다고 하면 사회 부적응자 취급이나 받을지도 모른다.   가게 일을 마치려고 하는데 새내기 젊은 백인 남성이 들어왔다.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자기 할머니 같다며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보스와 심하게 언쟁을 벌였다고 했다. 너무 억울한데 말할 사람도 없고 참고 왔는데 나를 보고 가게에 들어왔다. 성실하고 잘생겼고 다른 주에서 왔는데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 가게 손님이다. 농담도 하고 어떻게 회사에 적응하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가끔 말을 섞었다. 순진하고 때 묻지 않아서 가게에 들어오면 반갑게 인사한다. 그런데 어려운 일이 생겨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에 안 들고 너하고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지라도 절대로 보스하고 언쟁은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처음 직장이고 패기도 있고 자기주장도있겠지만사회생활인 걸 어쩌랴. 참고 참아서 견뎌내야 한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을 해주었는데도 눈물을 감추고 이제는 속이 편해졌다며 웃는다.     인간관계는 미묘하다. 누가 잘하고 잘못한 게 없어도 사이가 벌어지고 잘 지내다가 틀어지곤 한다. 잡초들처럼 밟아도 비가 내리고 나면 또 살아나 기꺼이 다른 풀들이 살아나도록 돕고 산다. 우리 집 잔디밭에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도 잡초라고 뽑아버리면 어디서 또 나타난다. 우리가 겪는 사회생활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면 마음에 상처를 조금 덜 받지 않을까.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잡초도 잡초도 위계질서 필연적 존재 사회 부적응자

2023-05-04

[이 아침에] 존재하는 것들의 슬픔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고독만큼 같이 지내기에 좋은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외롭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항상 혼자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독’ 중에서   소로는호수의 아비새와 휠튼 호수가 외롭지 않듯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목장에 핀 한 송이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 자신도 외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수시로 생의 뒷덜미 치는 허무와 허리뼈 뭉개고 달아나는 바람의 실체는 무엇인가.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다. 태양도 달도 별도 생명 없는 것들도 슬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외로움의 깃발을 생의 곳곳에 꽂는다. 고목도 강물도 비오는 날이면 슬픔의 눈물 흘린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세월이 담쟁이 넝쿨로 온몸을 휘감으며 생채기를 남기는 동안 사랑을 하고 사랑을 떠나보낸다. 그대 품속에 있을 때도, 그대 떠난 창가에 홀로 서 있을 때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람을 견디지 못해 세월이 조금씩 바위에 흠집을 내는 동안, 그대 향한 사랑의 꽃다발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마른 꽃잎으로 시들어갔다.     고독은 혼자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고독은 영어로 ‘Solitude’로 번역되는데 바른 표기는 못 된다. Solitude 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배제된 혼자 있는 상태로 명상이나 창작, 수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독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슬픔이다. 소중한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그려져 있지 않다. 고독은 인생의 여백이다. 보이지 않는 생의 슬픔을 담는다.     여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워도 혼자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여백은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주고 슬픔을 잠재운다. 공백이 생략된 공간이나 단순히 비어있음을 뜻한 데 비해 여백은 공백이 주는 공간적 빈자리를 극복하고 고독을 견디는 새로운 장을 펼친다.   고독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수많은 위인이나 예술가들은 고독의 강을 건너 위대한 성취를 이룬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도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고독을 통해 가지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고독은 ‘나 하나로, 나 혼자’라도 충분해지는 생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개나리 세 그루를 뒷마당에 심는다. 사랑 듬뿍 주면 밝고 샛노란 꽃잎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환한 미소로 다가올 것이다. 코발트빛 봄 하늘을 병풍 삼아 봄노래 중얼거릴지 모른다. 외롭지 않기로 했다, 더 사랑하고 껴안고 가까이 가기로 한다. 고독은 외로움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존재하는 것들이 슬픔이라 해도 고독을 위해 생의 몇 부분을 남겨 놓는다.     고독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동행자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프다 해도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크고 우람한 붓질을 남겨두리라. 그대 사랑이 지나간 여백의 화선지에 사랑의 꽃 한 송이 새겨두기로 한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존재 슬픔 동안 사랑 그대 사랑 담쟁이 넝쿨로

2023-04-1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존재하는 것들의 슬픔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고독만큼 같이 지내기에 좋은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외롭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항상 혼자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독’ 중에서 소로는 호수의 아비새와 휠튼 호수가 외롭지 않듯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목장에 핀 한 송이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 자신도 외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수시로 생의 뒷덜미 치는 허무와 허리뼈 뭉개고 달아나는 바람의 실체는 무엇인가.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다. 태양도 달도 별도 생명 없는 것들도 슬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외로움의 깃발을 생의 곳곳에 꼽는다. 고목도 강물도 비 오는 날이면 슬픔의 눈물 흘린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세월이 담쟁이 넝쿨로 온 몸을 휘감으며 생채기를 남기는 동안 사랑을 하고 사랑을 떠나보낸다. 그대 품 속에 있을 때도, 그대 떠난 창가에 홀로 서 있을 때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람을 견디지 못해 세월이 조금씩 바위에 흠집을 내는 동안, 그대 향한 사랑의 꽃다발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마른 꽃잎으로 시들어갔다.     고독은 혼자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고독은 영어로 ‘Solitude’로 번역 되는데 바른 표기는 못 된다. Solitude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배제된 혼자 있는 상태로 명상이나 창작, 수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독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슬픔이다. 소중한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그려져 있지 않다. 고독은 인생의 여백이다. 보이지 않는 생의 슬픔을 담는다.     여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워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백은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주고 슬픔을 잠재운다. 공백이 생략된 공간이나 단순히 비어 있음을 뜻하는데 비해 여백은 공백이 주는 공간적 빈자리를 극복하고 고독을 견디는 새로운 장을 펼친다.   고독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수많은 위인이나 예술가들은 고독의 강을 건너 위대한 성취를 이룬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도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고독을 통해 가지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고독은 ‘나 하나로, 나 혼자’라도 충분해지는 생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개나리 세 그루를 뒷마당에 심는다. 사랑 듬뿍 주면 밝고 샛노란 꽃잎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환한 미소로 다가올 것이다. 코발트빛 봄 하늘을 병풍 삼아 봄노래 중얼거릴지 모른다. 외롭지 않기로 했다, 더 사랑하고 껴안고 가까이 가기로 한다. 고독은 외로움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존재하는 것들이 슬픔이라 해도 고독을 위해 생의 몇 부분을 남겨 놓는다.     고독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동행자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프다 해도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크고 우람한 붓질을 남겨두리라. 그대 사랑이 지나간 여백의 화선지에 사랑의 꽃 한송이 새겨두기로 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존재 슬픔 동안 사랑 그대 사랑 헨리 데이비드

2023-04-04

[중앙시론]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

필자의 이민생활 초기였던 1988년만 해도 한국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기 어려웠다. 당시 한국은 통일 문제와 노조 관련 이슈들로 시끄러울 때였다. 그 당시 이곳에서도 사회변혁을 고민했던 젊은이들은 한국의 상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청년기에 들어선 필자 역시 한반도 통일과 노동자 권리에 대해 다소 빨간(?)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만난 또래들과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LA한인타운의 한 교회로 향했다. 그날 우리가 그 교회로 갔던 이유는 한국에서 상영 금지된 ‘파업전야’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 보면 그 영화가 상영금지라는 게 코미디라고 웃어 넘길 정도지만 당시 기준으론 체제에 위협을 준다고 느낄 수 있는 반자본가적인 영화다.     영화 스토리는 뻔했다. 지금 기억이 나는 것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인간적 권리를 위해 노조를 결성하고 마지막 수단인 파업을 강행한다는 줄거리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노조파괴 전문가로 ‘재미동포’가 등장하는 웃긴 설정. 영화는 노동자들이 손에 연장을 들고 뛰어나가고 웅장한 전투적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막을 내린다. 청년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만했다. 그 당시 필자는 노동자는 약자로 착취당한다고 믿으며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옆쪽의 한 무리 청년 중 한명이 “김윤상?” 하고 물어오는 거였다. 중3 때 필자가 반장을 할 때 부반장이었던 친구였는데 중3을 마칠 무렵 미국에 이민을 간다고 해 잊혀졌던 친구였다. UC버클리에 다니고 있던 그 친구는 같은 학교의 1.5세 한인대학생그룹과 함께 온 것이었다. 필자는 동네 칼리지에 다니던 이민 1세, 1.5세 친구들과 함께였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버클리 청년들과 필자 친구들중 지금 노동운동을 하거나 사회변혁 운동에 뛰어든 사람은 한명도 없다. 모두 학업을 잘 마치고 지금은 자본주의를 최대한 만끽하면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35년 전 우리가 갖고 있었던 노동자와 사회변혁에 대한 생각이 결코 잘못이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한국은 산업화의 모순이 극을 향해 달릴 때였고 산업현장의 최일선에 있던 노동자들은 분명히 착취당하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노조가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자의 삶은 나아졌고 노동자의 권리도 상상 이상으로 향상됐다. 악덕 고용주의 비율도 현저히 줄었다.       노조도 힘이 과해지면 부작용을 낳는다. 경영환경과 수익창출에 마이너스를 주는 건 공멸하는 것임에도 사상적인 것에 함몰된 노조 활동은 노조의 필요성에 의문도 갖게 한다.  노조의 경영권 참여는 아니라고 본다.  노조는 존재 이유는 정치투쟁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 향상에 있다.     미국의 경우 노조가 아니더라도 2인 이상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보호해 주는 법과 그걸 맡아 집행하는 기관이 있다. 이 기관을 NLRB라고 부르는데 가끔 관련 케이스들을 맡을 때가 있다.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도 있지만 법을 악용하는 노동자도 있다. 얼마 전 의뢰인의 사업장에 NLRB 케이스가 들어왔다. 확인해 보니 고발 내용의 90%가 사실과 맞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법을 해석하는 NLRB도 사실관계가 너무 틀리기 때문에 증거 부족으로 케이스를 기각시켰다.  노동자는 항상 착취당하고 고용주는 항상 악덕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킬 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김윤상 / 변호사중앙시론 노동조합 존재 노동자 권리 노조파괴 전문가 사회변혁 운동

2023-03-07

[이 아침에] 추억의 별 잔치

밤하늘의 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많은 사람이 평생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고 들었다.     싱가포르에서는 한밤중에도 하늘은 훤한 채로 남아 있어, 깜깜한 밤하늘을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산업화된 나라의 큰 도시의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은하수가 도시의 하늘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인 것은, 전기 없이는 잠시도 일상생활을 영위해 갈 수 없는 현대인의 생활양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겠다.     이제는 잃어버린 밤하늘의 은하수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산업화에 편승한 채 무대책으로 있으면 도시나 근교에서는 밤하늘을 장식하는 ‘장엄한 별 잔치(Starry Majesty)’를 감상할 기회를 영원히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40억 년 전에 무한한 질량과 밀도를 가진 하나의 점이 폭발하여 생겨난 우주가 팽창을 계속하면서 신비롭고 황홀한 억겁의 여정을 시작하게 됐다고 천체 과학자들은  말한다. ‘빅뱅’으로 생겨난 원소는, 수천억 개의 별과 은하수의 탄생을 가져옴으로써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세계를 낳은 것이다.     미국 우주항공국과 유럽 입자연구소가 공동으로 확인한 암흑물질(Dark Matter)이, 우주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으로 알려지면서 과학계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우주 질량의 1/4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암흑물질은, 아무런 빛도 발하지도 않고 반사하지도 않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암흑물질은 적외선, 자외선, 감마선, X선, 전파 등으로도 관측되지 않고 오직 중력을 통해서만 인지되는 신비의 물질이라고 하는 칼럼을 ‘타임’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1933년 캘텍 교수로 재직 중이던 스위스의 천체 물리학자인 프리츠 츠비키가 중력을 지닌 암흑물질의 존재를 인식하고 은하가 중력을 바탕으로 은하계의 중심을 공전한다고 처음으로 주장하였는데, 이 암흑물질의 존재 가능성은 또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원리로도 검증될 수 있다고 한다. 높은 질량의 물질 옆을 지나는 빛은 휜다고 하는데, 이는 암흑물질의 존재 가능성을 예측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으로, 이의 규명이 곧 우주생성의 신비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 암흑물질이 어느 순간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기 시작한다면, 우주는 다시 하나의 조그만 점으로 환원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수축 팽창의 과정은 우주를 정적인 것이 아닌 역동적인 흐름으로 인식하게 하며, 이는 은하수도 영원히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 별들도 예외는 아니다. 천체 과학자에 의하면, 수명을 다한 별이 엄청난 폭발과 더불어 최후를 맞게 되면 우주 공간에 뿌려진 원소가 이합집산을 거쳐 또 다른 새로운 별로 태어나게 된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는 수많은 별은 이미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사라진 다른 별들의 후신인 셈이다.     잃어버린 은하수를 언제 다시 찾게 될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무더운 여름밤에 고향 집 앞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엄마와 함께 수박을 잘라먹으며 밤하늘에 펼쳐진 황홀한 별 잔치의 장관에 넋을 잃던 추억이 어제의 일처럼 떠오른다.   나만섭 / 전회계사이 아침에 추억 잔치 은하수가 도시 평생 밤하늘 존재 가능성

2023-02-26

존재 가치와 의미, 예술로 답하다

      예술이라는 순도 짙은 영역에서 진정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찾아보는 전시회가 열린다.   미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 전시 기획사인 다녹(대표 강다영·홍한나)이 한국의 유망한 신진 및 기존 작가들을 조명함과 동시에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 ‘존재(Existence)’를 갤러리 웨스턴(관장 이정희)에서 다음 달 3일부터 9일까지 개최한다.     다녹은 미국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다양한 개인전 또는 그룹전을 기획한 전문가들이 모여 LA 중심가에 위치한 갤러리를 위주로 새로운 작가들을 미국 미술계에 소개하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과 미주지역에서 각각 다양한 국제 공모를 진행하고 역량 있는 최종 12인을 선정해 이번 전시회를 준비했다.     참여작가는 구본근, 채정은(작가명 블루문), 개리정, 이라금, 김수영, 임수민, 나은혜(작가명 릴리 대즐링), 매튜 맥휴, 이본 펫커스, 로널드 곤잘레스, 데이브 핸슨, H.레드 등이다.     다녹은 “세상이라는 무한의 공간 속에서 ‘나’라는 것이 있어 ‘너’가 있고 ‘우리’가 있으며 세상이 있다”며 “하지만 현대 사회의 혼돈 속에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순수한 행위는 미약하고 불분명해져 여기서부터 이번 전시회 기획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전시회 참가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의미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한다.     강다영 다녹 대표는 “앞으로도 동시대 미술계의 동향을 추적해 더 다양한 필드의 현대 작가들을 조명할 수 있는 전시를 계속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홍한나 공동 대표도 “이번 전시회가 동시대 작가들의 다양한 예술 세계를 탐험하고, 지친 일상 속에 가려진 순수한 가치를 들여다보게 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프닝 리셉션은 다음 달 3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열린다.       ▶주소: 210 N Western Ave # 201, LA   ▶문의: (213)437-3238   이은영 기자 lee.eunyoung6@koreadaily.com존재 가치 존재 가치 예술 세계 동시대 미술계

2023-02-26

[중앙시론]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

필자의 이민생활 초기였던 1988년만 해도 한국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기 어려웠다. 당시 한국은 통일 문제와 노조 관련 이슈들로 시끄러울 때였다. 그 당시 이곳에서도 사회변혁을 고민했던 젊은이들은 한국의 상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청년기에 들어선 필자 역시 한반도 통일과 노동자 권리에 대해 다소 빨간(?)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만난 또래들과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LA한인타운의 한 교회로 향했다.  그날 우리가 그 교회로 갔던 이유는 한국에서 상영 금지된 ‘파업전야’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 보면 그 영화가 상영금지라는 게 코미디라고 웃어 넘길 정도지만 당시 기준으론 체제에 위협을 준다고 느낄 수 있는 반자본가적인 영화다.     영화 스토리는 뻔했다. 지금 기억이 나는 것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인간적 권리를 위해 노조를 결성하고 마지막 수단인 파업을 강행한다는 줄거리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노조파괴 전문가로 ‘재미동포’가 등장하는 웃긴 설정. 영화는 노동자들이 손에 연장을 들고 뛰어나가고 웅장한 전투적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막을 내린다. 청년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만했다. 그 당시 필자는 노동자는 약자로 착취당한다고 믿으며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옆쪽의 한 무리 청년 중 한명이 “김윤상?” 하고 물어오는 거였다.  중3 때 필자가 반장을 할 때 부반장이었던 친구였는데 중3을 마칠 무렵 미국에 이민을 간다고 해 잊혀졌던 친구였다.  UC버클리에 다니고 있던 그 친구는 같은 학교의 1.5세 한인대학생그룹과 함께 온 것이었다. 필자는 동네 칼리지에 다니던 이민 1세, 1.5세 친구들과 함께였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버클리 청년들과 필자 친구들중 지금 노동운동을 하거나 사회변혁 운동에 뛰어든 사람은 한명도 없다. 모두 학업을 잘 마치고 지금은 자본주의를 최대한 만끽하면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35년 전 우리가 갖고 있었던 노동자와 사회변혁에 대한 생각이 결코 잘못이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한국은 산업화의 모순이 극을 향해 달릴 때였고 산업현장의 최일선에 있던 노동자들은 분명히 착취당하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노조가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자의 삶은 나아졌고 노동자의 권리도 상상 이상으로 향상됐다. 악덕 고용주의 비율도 현저히 줄었다.       노조도 힘이 과해지면 부작용을 낳는다. 경영환경과 수익창출에 마이너스를 주는 건 공멸하는 것임에도 사상적인 것에 함몰된 노조 활동은 노조의 필요성에 의문도 갖게 한다.  노조의 경영권 참여는 아니라고 본다.  노조는 존재 이유는 정치투쟁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 향상에 있다.     미국의 경우 노조가 아니더라도 2인 이상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보호해 주는 법과 그걸 맡아 집행하는 기관이 있다. 이 기관을 NLRB라고 부르는데 가끔 관련 케이스들을 맡을 때가 있다.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도 있지만 법을 악용하는 노동자도 있다. 얼마 전 의뢰인의 사업장에 NLRB 케이스가 들어왔다. 확인해 보니 고발 내용의 90%가 사실과 맞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법을 해석하는 NLRB도 사실관계가 너무 틀리기 때문에 증거 부족으로 케이스를 기각시켰다.  노동자는 항상 착취당하고 고용주는 항상 악덕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킬 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김윤상 / 변호사중앙시론 노동조합 존재 노동자 권리 노조파괴 전문가 사회변혁 운동

2023-02-2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또 하루가 열리고

또 하루가 열리고       하얀 도화지   손도 없고 물감도 없는데 시간이 그림을 그립니다 하루가 그려집니다   파란 하늘 희망 한 줄 길게 연두 초록 생명 파릇이 피고   노랑 보라 붉은 꽃봉오리 신비한 생명 태어나는 하루가 눈물겹습니다   파란 하늘을 향해 푸른 소나무 그 키를 키우고 이팝나무 하얀 꽃잎   눈처럼 내려와 쌓이는데   외줄 곡예 시선을 이으며 하얀 도화지 위로   시간이 그림을 그립니다 어느 날 기도처럼 하루가 눈물겹습니다     며칠째 겨울 날씨답지 않게 비가 내렸다. 잠깐 내리다 그친 비가 아니라 하루 종일 내렸다. 쌓였던 눈들이 비에 녹은 후 드러난 푸릇한 잔디는 봄을 재촉 하는 듯 보인다. 분명 시카고의 겨울은 처음 기억할 때처럼 혹독한 겨울은 아닌 듯하다. 그저 서너 일 춥고 폭설도 몇 차래 오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더니 그 말이 현실로 눈앞에 펼쳐 지고 있다   겨우내 마음은 춥고 공허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두렵다기보다는 마음 한 구석을 어느새 차지해 버린 그를 향한 그리움이라 표현함이 맞을듯하다.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걸음 거리, 웃는 표정, 기분 좋은 목소리와 함께 배경의 풍경과 음악과 커피 내음과 걸었던 거리의 발걸음 모두가 기억된다. 그 뿐 이겠는가? 그가 나를 대했던 따뜻한 마음과 태도, 도와주려는 배려와 솔직한 표현이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 마음속의 한 부분을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마음을 다 알 순 없지만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나의 맘속에 집을 짓고, 함께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하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함께 잠들고 깨어나기 때문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오랜만에 뒤란을 둘러 보았다. 눈이 녹은 탓인지 잔디는 축축 했지만 파랗게 살아나고 있었다. 봄이 되면 솟아날 싹들이며 꽃 대궁들이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나무 잔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드나드는 새들의 지저귐도 햇살의 틈새로 살아 나고 있다. 청청한 소나무 주변엔 릴리와 옥잠화의 싹이 언 땅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내고 그 언저리마다 땅이 불룩히 솟아나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어야 한다. 정지돼 있다는 것은 죽어있다는 말과 같다. 희미해진 것들이 선명해지고, 기대할 수 없었던 마른 가지에 싹이 트고, 움이 솟는다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미미한 실개천 이 강이 되고 그 강 줄기가 마침내 바다로 만나는, 낮은 곳을 찾아 흐르고 흘러 마침내 더해져 지구의 반대편까지 길이 되어 만나게 되는 것. 사람의 일도 그러하리라. 하루 하루의 삶이 모아져 내가 되어지고, 나의 삶이 되는 것이다. 숨쉬지 못하는 하루를 살고 있지는 않은지, 포기하고 잠들은 하루하루가 무료하게 지나가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간의 개념은 보여지는 현상, 존재의 의미로 해석할 수 없기에 때로 언어가 불러오는 오해에 직면하기도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있다는 명징한 사실이어야 하기에 시간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므로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입증하려고 하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한다. 설명을 하면 할 수록 봄이 오는 의미는 사라져갈 것이기에 나는 오늘 만남과 헤어짐의 문제도 침묵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엄연히 품고 있는 나이테를 성근 껍질로 감싸고 있듯이, 소리 없이 흐르고 흐르는 물줄기가 끊임 없는 깊은 바다의 품에 안기듯이, 언 땅을 헤집고 나온 싹이 제 몫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후에 소리 없이 제 몸을 꺾듯이, 나는 그의 생각과 그리움을 내 몸에 키우며 가꾸다 어느 날 홀연히 날 부르시는 음성에 본향으로 돌아가리라. 다만 살아가는 동안 꽃을 피우고, 그 향기에 즐거워하는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리라. 그리고 산산히 부서지고 뿌려지리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며칠째 겨울 현상 존재 소나무 주변

2023-02-13

‘인간 존재의 회복’ 꿈꾸다

완전히 일상이 회복되지 않은 팬데믹 속에서 인간 존재의 회복을 열망하는 수준 높은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LA 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과 남가주 한인 미술가협회(KAASC·회장 양민숙) 공동 주최로 제53회 남가주 한인 미술가협회 정기 전시회가 23일까지 LA 한국문화원 2층 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인간의 소중한 존재의 회복’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이번 정기전에는 총 70명의 회원작가가 회화부터 3D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LA 한국문화원 정상원 문화원장은 “코로나 이후 LA 전역 한인 갤러리에서 한인 작가 전시회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며 “미국에서 한국 음악과 드라마, 영화에 이어서 K-아트 미술 한류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정기전 참여작가는 강영일, 고경호, 권주경, 김경애, 김다니, 김성일, 김소문, 김연숙, 김연희, 김영식, 김운옥, 김원실, 김인철, 김종성, 김진실, 김진희, 김천애, 나모나, 남궁경, 문미란, 박미연, 박영구, 박정근, 박향자, 박다애, 박미경, 배정연, 백혜란, 서자넷, 서진호, 성수환, 손영숙, 송문영, 시제시카, 심혜경, 양민숙, 양승성, 오미셀, 오지영, 유기자, 윤영은, 윤태자, 이로버트, 이미정, 이부남, 이사베리아, 이상훈, 이정미, 이종남, 이혜숙, 임혜경, 장사한, 장제인, 장정자, 전미영, 전종무, 정니나, 정선화, 정은실, 정인옥, 조현숙, 조민, 주선희, 최윤정, 최성호, 최재우, 홍정화, 홍한나, 황수잔, 황영아 등 총 70명이다.   남가주 한인 미술가협회(KAASC)는 1964년 발족해 정기전 외 회원들의 그룹전과 타민족과의 교류와 화합을 위한 그룹전, 차세대 젊은 작가 발굴 위한 대학공모전 등 미주 한인 작가들의 작품활동과 전시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또, 해를 거듭할수록 젊은 작가들의 수가 늘어가면서 원로작가와 중견작가, 신인 작가들이 함께 어우러져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양민숙 KAASC 회장은 “수준 높은 예술적 기량으로 창작된 조각, 설치, 회화 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선보인다”며 “작품을 통해 작가와 관람객이 함께 공감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주소: 5505 Wilshire Blvd, LA     ▶문의: (323)936-3014 이은영 기자존재 회복 작품 전시회 남가주 한인 인간 존재

2022-09-18

"신의 존재 증거 넘쳐…무신론 증명이 더 어려워"

고 이병철(1910~1987) 삼성 회장이 죽음과 대면했을 때 가톨릭 신부에게 물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게 신과 종교에 관해 던진 질문들은 모두 24개였다.   최근 조희철 목사(67ㆍLove&Faith 네트워크)가 그 질문들에 개신교적 답변을 담은 책 '위대한 무신론자의 믿음'을 냈다. 답변의 도구로 '변증(apology)'을 사용했다.   그를 지난 11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조 목사는 "지금 시대는 기독교에 대한 비난이 높았던 초대교회 당시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라며 "지금이야말로 기독교에 대한 변증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고 이병철 회장의 생전 질문 평범하게 답할 수 없는 물음    신의 존재 관한 변증책 발간 "기독교 변증 필요한 시대"     세상이 하나님 존재 물을 때 어설픈 답변으론 설득 안 돼      -왜 변증이 필요한가   "밖을 봐라. 기독교가 바닥에 떨어졌다. 교회에는 청년들이 사라졌다. 캠퍼스 전도 활동이 거의 없다. 오히려 이단들이 판을 친다. 교회가 '안으로 안으로'만 외친 결과다.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교회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떠난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답변해야 하겠는가. 어설픈 답변으로는 이제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고 이병철 회장의 질문을 왜 선택했나.   "어떻게 보면 매우 평범한 질문 같지만 절대로 평범하게 답할 수 없는 물음들이다. 성경은 성경을 통해서도 증명되지만 그 외에도 역사적 과학적 논리적으로도 증거가 차고 넘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되레 이런 부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의례적 형식적으로만 답한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를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집필했다."   -책 제목이 '위대한 무신론자의 믿음'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신론도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나. 오히려 무신론자들이 내세울 수 있는 증거는 거의 없다. 신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게 사실 더 어렵다. 그걸 믿기 때문에 위대한 건데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증거는 모든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들에게 도전하는 마음으로 제목을 결정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였다. 한 예로 세계적인 고고학자 헨리 레이어드는 1853년에 앗수르 유적을 발견했다. 거기서 발견된 오벨리스크에 적힌 내용을 보면 성경에 적힌 역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성경의 내용들이 사실이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   -요즘 젊은층은 기독교를 외면한다.   "통계를 보면 70% 이상은 어렸을 때 교회를 가봤는데 대학에 진학하면서 떠난 것이다. 요즘 대학에서 받는 교육이 완전히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진화론 빅뱅 등 반기독교적인 가르침들이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젖어들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그렇게 안 배웠는데…'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 의문에 대해 답해줄 부모 교회 멘토가 없었다."   -그들은 어떤걸 물어보나.   "이제는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늘날 세대의 특징은 생각을 싫어하고 단답형을 선호한다. 자기 위주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 중 하나다. 객관적 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도 없다. 그래서 내가 오히려 질문을 유도한다. 우리가 생각을 일깨워줘야 한다. 뇌에서 활동하지 않는 부분을 열어줘야 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들도 생각하기 시작한다."   -부모들은 기독교적 변증에 관심이 있나.   "사실 30~40대가 나서줘야 한다. 그들이 젊은 세대에게 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자녀를 둔 부모들을 만나보면 다들 당황해 한다. 자녀의 의식이 서서히 변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에 답답해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변증'을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변증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교회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 교회가 초대교회 역사를 교인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그때부터 기독교에 대한 비방이 많았다. 예를 들어 '셀서스'란 인물은 당시 크리스천들을 비판하는데 앞장섰다. 그때 오리겐이라는 인물이 그러한 비판에 모두 변증으로 대응했다. 저스틴 마터 같은 경우는 초대교회 시대의 탁월한 변증가였다. 변증은 늘 기독교와 함께했다. 우리가 기독교적 변증을 지금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어떤 계획이 있나.   "이 책을 바탕으로 각 교회를 대상으로 기독교적 변증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려고 한다. 기독교적 변증을 알리고 싶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에 대한 사실을 증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것을 꼭 전하고 싶다. 관심 있는 교회들은 연락을 달라."   ▶강의 문의: (213) 210-1062     ☞조희철 목사는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했다. 파리제6대학 미주리대학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했다. 이후 엔지니어로서 의류업체 등에 패턴 마킹 그레이딩 등을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판매하다가 뒤늦게 목회자가 됐다. 미주총신 미주캘빈바이블칼리지 등에서 목회학 석사를 취득했다. 가주 교도소 채플린 봉사 목회자로서 재소자 전도 사역도 해왔다. 또 LA시티칼리지 패서디나칼리지 등에서 '2달러 코리안 바비큐' 사역을 통해 학생들에게 덮밥을 주면서 캠퍼스 전도사역도 감당했었다. 나중에는 대학 내 기독교 기숙사 사역을 진행하는 것도 목표다. 조 목사는 인터뷰에서 간단하게 변증의 예를 들었다. 첫째 논리적 변증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작이 있다. 우주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주는 반드시 시작이 있다. 둘째는 과학적 변증이다. 유전자 정보는 고도로 정밀하게 이루어져 있다. 복잡한 유전정보 코드의 배합은 절대로 저절로 이루어질 수 없다. 동물과 인간은 염색체의 수와 구조가 다르다. 염기의 서열을 통해 정보를 만들고 이를 통해 단백질이 합성된다. 셋째 과학의 한계 증명하는데 빅뱅이론의 모순과 진화론의 모순을 설명했다.   장열 기자무신론 존재 초대교회 역사 기독교적 변증 기독교 변증

2022-09-12

[사설] 존재 이유 망각한 ‘미주총연’

얼마 전 통합을 발표했던 미주한인회총연합회(미주총연)가 또 내분에 휩싸였다. 일부 회원들이 현 회장단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새 회장 선출 작업에 나섰다. 통합 절차와 공동회장 임명 과정에서 회칙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다. 이미 자체 선거관리위원회까지 구성해 후보 등록을 받았으며 내달 총회를 열어 새 회장을 뽑겠다는 입장이다.  7년간의 분규 사태를 겨우 봉합했던 미주총연이 다시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주총연의 분란 사태는 2015년부터 시작됐다. 회장 선출 방식을 둘러싼 마찰이 발단이었다. 이후 내분은 7년간이나 지속했고, 단체가 3개로 쪼개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지난 2월 가까스로 통합을 발표했고, 이어 5월 초 임시총회를 열어 공동회장 체제로의 출범을 알렸다. 지난달에는 한국 외교부로부터 분규단체의 오명도 벗었다. 이제 겨우 제 역할을 하나 싶은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미주총연은 스스로를 한인사회 대표 단체라고 주장한다. 미국 내 170개로 추산되는 각 지역 한인회의 전·현직 회장단이 회원이라는 이유다.  단체 설립 목적도 미국 내 한인사회 권익 신장이다. 그러나 내분 사태 원인과 이후의 수습 과정을 보면 ‘대표단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내부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한인들의 권익을 위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내분 사태의 본질을 따지고 보면 회장직을 둘러싼 자리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한인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 이유다. 결국 ‘그들만의 단체’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미주총연은 한인사회의 명예만 실추시키고 있다. 감투싸움에 매몰돼 단체의 존재 이유조차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설 존재 망각 한인사회 권익 한인사회 대표 내분 사태

2022-08-24

[살며 생각하며] 까칠함에 대하여

친구에게 까칠한 말 한마디를 던졌다. 친구의 상황보다 내 상황을 먼저 챙기는 말이었다. 이기적인 생각이 한순간에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밖으로 나왔다. 당황한 친구는 심하게 언짢아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밤새워 뒤척였다.     무더웠던 밤이 물러가고 희뿌연 대기가 냉장고처럼 시원하다.     “카약 카약카야약….” 새 한 마리가 소프라노를 내지르면서 머리 위를 휙 날아간다. 간밤의 어지러운 생각을 좇으려고 어디 낯선 곳에 캠핑왔다고 일부러 상상한다. 덱의 우산이 텐트이고 부엌에서 내린 커피가 가스버너에서 끓인 커피인 척한다. 우연히 잠이 일찍 깨어 다른 세상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삐죽한 나무가 하늘을 가린 곳을 쳐다본다.     “삐익 삐익 삐삐 삐 삐” 새가 또 목청 질을 한다. 이번에는 다른 새인가? 문득 지난봄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은 아침에 나가보니 새끼 새 두어 마리가 드라이브 웨이에 축 처진 채로 죽어 있었다. 자살은 아닐 테고, 어미 새가 그랬을 리 없고, 누가 그랬을까? 치우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난감해하고 있는데, 앞집 할아버지가 나와서 말해준다. “메이트를 구하지 못한 엉큼한 수컷 짓이야.”     내가 사는 골목에는 새가 많다. 잎이 촘촘한 소나무 안에 새들이 여기저기 들어가 산다. 아직 짝짓기하지 못한 수컷은 깊숙한 가지에 알을 깔고 앉은 암컷을 호시탐탐 엿본다. 일부일처제가 아니니, 누구의 암컷이든 상관치 않는다. 음흉한 수컷은 어미 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기 새를 땅에다 떨어뜨리고 빈집으로 만들어버린다. 다음 수순은 비통해하는 암컷을 꼬여서 짝짓기하고 집까지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골목에서 오랫동안 사는 할아버지는 봄이면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말해주었다.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도 그런 비슷한 묘사가 나온다. 반딧불은 꽁무니의 불을 깜박여 짝짓기 신호를 보낸다. 불빛 언어가 종마다 다르다고 한다. 한 암컷이 점, 점, 점, 줄(dot, dot, dot, dash) 이렇게 자신의 언어로 깜박이니 수컷이 날아들었다. 메이트를 끝낸 암컷이 언제부턴가 신호를 바꾸었다. 줄, 줄, 줄, 점(dash, dash, dash, dot)으로 바꾸어 가짜 암호를 내보낸다. 다른 종의 수컷이 자기 종의 암컷인 줄 알고 다가왔다. 암컷 반딧불이는 자기 위를 배회하는 수컷을 잡아먹는다. 여섯 다리와 날개 두 쌍을 모조리. 팜므파탈이 무색할 정도의 권모술수다.   생존에는 선 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야생은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새, 나무, 구름을 쪼개다 보면, 분자에서 원자로 귀결된다. 산소, 수소, 탄소 같은 원자는 미친 듯이 움직이다가 우연히 옆에 있는 원자와 찰싹 붙어서 물질을 만들어 낸다. 원자의 본성이 살고자 하는 것이니, 만물의 본성도 그렇겠지. 그러니 저 새도 새벽부터 저리 요란히 울어대는 것일 테지. 새벽 캠핑이라도 온 것 같던 좀 전의 평화로운 마음이 싹 가신다.     태곳적 동굴인들은 자신과 다르게 생긴 존재를 보면 일단 죽이고 봐야 했다. 적인가 동지인가 생각하는 동안에 화살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물과 산소와 수소로 요동치고 있는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태생적으로 숭고한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무심코 나갔던 까칠했던 말에 너무 속을 끓일 필요도 없다. 혹은 누구에게 섭섭하더라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생각은 늘 나중에 오는 후발 선수이다.     “아아 아아 아아” 또 다른 새가 머리 위로 휙 지나간다.     나는 자신을 물질이 아닌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반성은 늘 뒷북을 친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암컷 반딧불이 정신적 존재 앞집 할아버지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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