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무시, 무시하다
무시하다는 말을 한국말로 하면 못 본 척이 아닐까 합니다. 봐도 못 본 척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겠습니다. 나를 본 것이 분명한데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면 기분이 상합니다. 인사는 사람의 일이라는 뜻인데, 인사를 안 했다는 것은 사람의 일을 안 한 것이고, 나를 사람 취급 안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저 사람은 무시해도 좋다는 말을 들으면 참을 수가 없을 겁니다. 저를 없는 사람 취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방식으로 말하자면 투명 인간 취급한 겁니다.
무시하다에 해당하는 우리말인 ‘업신여기다’는 방언에 ‘업시여기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은 ‘없이 여기다’로 볼 수 있습니다. 무시하다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본 척도 안 하고, 들은 척도 안 하고, 아는 척도 안 하는 것은 모두 무시하는 겁니다. 무시하는 게 안 좋은 거죠.
그런데 무시해도 좋은 게 있습니다.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것을 무시하면 좋을까요? 우선 상대가 숨기고 싶은 것이라면 못 본 척해주는 게 좋을 겁니다. 혹시라도 봤다면 아예 잊으면 더 좋을 겁니다. 굳이 아는 척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줄 필요는 없을 겁니다. 내가 본 것을 상대가 알아차린다면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여도 좋습니다. 모르는 척도 배려입니다.
저는 무시의 상반되는 상황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다’에 해당하는 우리말 표현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깔보다와내려다보다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올려보다나치켜뜨다도 있습니다. 반항의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화가 났을 때는 노려보다, 째려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보는 게 감정을 싣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보는 것 중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살펴보다와돌보다입니다. 살피는 것도 보는 것이기에 살펴보는 것은 같은 의미의 단어가 겹쳐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조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살피는 것과 두리번거리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무엇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살펴보는 것은 혹시 불편한 점이 있는지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보다는 돌아보다가 줄어든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말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돌보다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찾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을 돌아보거나 건물을 돌아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살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돌본다는 말에서는 세밀한 관심이 느껴집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그런 느낌의 표현입니다.
무시하지 않는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보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화가 나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살피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돌보는 삶이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세상은 달라집니다. 내 눈의 온도를 생각해 보세요.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