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리뷰] 험악한 인생
악의 핵심은 강한 자기중심성
고난은 자신을 알아가는 여행
인간은 고상하고 천박한 존재
고통의 해석에 인생 해답있어
정말 괴로운 건 뭐니 뭐니 해도 사람으로부터 받는 깊은 상처다. 모욕과 배신, 비방과 누명 등 ‘막장 드라마’ 못지않은 현실이 꽤 많다. 피해자·가해자가 뒤바뀌기도 하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도 난다. 절망에 둘러싸여 우울증에 시달리는 의뢰인이 꽤 많았고, 집요한 비방과 모함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다. 때론 후한 선의를 독한 악의로 돌려받은 사람도 만난다. 배은망덕과 적반하장, 가끔은 나도 의뢰인과 같이 운다.
나는 인간의 선과 악에 얼굴을 맞대고 살다 보니 인생의 부조리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인간은 가장 고상하고 고결할 수 있는 동시에 가장 천박하고 잔인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악의 핵심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강한 자기중심성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아’라는 감옥에 갇혀 지낸다. 하다못해 중독이란 감옥에서 한평생 노예로 살기도 한다. 갇힌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갇혀 있는 걸 알아도 출소하는 방법을 모른다. 의외로 인간은 자기 자신도 잘 모른다. 한데, 길이 없진 않다. 고통의 해석에 인생의 해답이 있다. 고통은 감옥을 벗어나는 열쇠고, 자신을 알아가는 각성이다. 나를 쇠사슬로 동여맨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나를 꼼짝 못 하게 옥죄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는 지름길이다.
나의 일상은 송사에 휘말려 고통받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사람마다 고통에 대처하는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조그만 고통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극히 드물지만, 엄청난 고통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돌파해 나간다. 가장 큰 특징은 절대 남 탓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마저 인생의 스승으로 여긴다. 내 경험이 알려준 건,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삶이 피동적이니 희망도 적다. 그러나, 말문이 딱 막히는 억울한 상황도 ‘나’로부터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람은 고통을 아름답게 뛰어넘는다. 이들이 인생의 고난을 통과한 후 달라진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보통은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깨어진 과거를 털어낸다. ‘나’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내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 의붓딸을 강간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사람이 있었다. 누명을 썼으니 접견이라도 해달라는 노모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눴다. 진실은 신의 영역이지만, 죄를 뒤집어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 문턱은 높았다. 긴 세월, 편지를 주고받고 안부를 물었다. 고통이 처절해 보였지만, 원망과 분노는 입에 담지 않았고, 작은 호의도 크게 감사했다. 그리고 ‘고통이 낭비라 생각하지 않는다. 눈물을 통해 본 세상은 보이지 않던 게 많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근 출소해 노모를 모시고 산다.
나는 이제 고통이 ‘신의 축복’이란 말을 조금 이해한다. 인간은 확실히 잘 변하지 않는다. 잔소리로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변하는 건 결국 고난에 반응하면서다. 보통 2가지다. 더 피폐해지거나, 더 고결해진다. 주어진 상황을 확 받아들이고, 고통을 잘 해석하는 사람이 후자에 속한다. 이런 사람의 뒷모습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고통이 신비스러운 이유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고통 곁에 의뢰인과 같이 머문다. 이들이 고통을 통과할 때 변호사가 하는 일도 다양하다. 고통을 잘 해석할 수 있게 돕는 건 변호사의 특권이기도 하다. 살아보니 인생이 험악한 건 상수(常數)였다. 그러나 실존의 고통에 대한 나의 답은 이것이다.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이은경 /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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