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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함께 나누는 대화

며칠 전 커피숍에서 무엇인가 아쉬운 마음으로 나오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친우들과의 대화 내용은 몸 어디가 아프다는 이야기, 자식 이야기, 손자 이야기 그리고 남 이야기가 주였다. 은퇴 후 시간 여유가 있다 보니 친구들, 또는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런데 대화를 자주 하다 보니 조심해야 할 소재들이 있음을 느낀다.   주위에 나이 든 사람이 많다 보니 몸 곳곳에 아픈 십자가들을 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문제는 본인의 아픈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변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이런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대화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본인의 과거 이야기, 자식 또는 손자들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 않게 나온다. 대부분이 자랑거리다. 하지만 아무리 자랑스럽고 좋은 이야기라도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듣는 사람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 사생활 (privacy)을 중시하는 미국 사람들은  본인의 이야기, 혹은 자식이나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잘 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 소재다. 한국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을 떠난 지도 오래되었고 우리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한국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자기주장이 강한 논쟁보다는 차라리 토론 형태로 하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논쟁은 누가 옳은지 흑백을 가리자는 대화이기에 서로 열을 받게 되지만, 토론은 무엇이 옳은지를 찾는 것이기에 언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작다.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직접 할 수일은 별로 없지 않은가. 더구나 본인이 미국 시민권자라면.     우리는 본인이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서 들은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도 많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 대부분이 좋지 않은 내용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가 주고받았다는 이야기 내용이 흥미롭다. 소크라테스는 저술이나 일기를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인 플라톤 이, 특히 크세노폰 등이 소크라테스의 일화나 행적을 많이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친우가 “네 친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들었는데 ”라고 말하자,  소크라테스가 먼저 세 가지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이러했다.     친우: “네 친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소크라테스: “나에게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네가 직접 들은 이야기인지 혹은 다른 사람한테 들을 이야기인가?”   친우: “실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소크라테스: “그러면 너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모르는구나. 그런데 그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인가, 아니면 안 좋은 이야기인가?”     그리고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다시 물었다. “자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인가? 만일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를 할 이유가 있을까?”   소크라테스의 질문에는 “사실이 아닌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전하지 말라”는 내용과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도 좋지 않은 내용의 이야기는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그리고 “만일 그 내용이 좋지 않더라도 내 생활에 경각심을 울리는 이야기”라면 듣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좋은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하고 참석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상대방의 대화를 중간에 끊지 말고, 존중하는 자세로 경청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고려와 예의를 차리는 것이 건강한 대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대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난 일보다는 오늘과 내일을 위해서 책을 읽고 나 자신이 말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명렬 / 작가문예 마당 대화 수필 이야기 자식 손자 이야기 이야기 내용

2024-03-21

[글마당] 합리적인 남자 (Reasonable man)

“굿모닝” 식당에서 옆에 앉아 아침을 먹던 노부부가 우리 부부에게 인사했다. 우리도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나는 매일 아내에게 죄의식(guilt feeling)을 가지고 살아요. 그래야 와이프 마음이 편해서 별다른 다툼없이 지낼 수 있거든요.”   뜬금없이 꺼내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했지만, 금세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다.   “죄의식을 갖고 부인에게 잘한다니 현명하시네요.”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살면서 사람들에게 사리에 맞게(reasonable) 상대하라고 키웠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나도 질세라   “어머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 우리 아버지도 사람들에게 잘해주지는 못할망정 사리에 맞게 대하라고 말했는데. 그래서 제 머릿속에 제일 먼저 새겨진 영어가 reasonable이에요.”     나는 유튜브에서 오디오북을 들으며 작업한다. 하도 많은 글을 듣다보니 작가도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끔은 이해하기 쉽고 마음을 울려 기억에 남는 글이 종종 있다. 그중 요즈음 들은 김진아 작가의 ‘강남 파출부’가 머릿속을 맴돈다.     남편 없이 외아들을 키워 결혼시킨 맛집 주방에서 일하는 윤금이씨 이야기다.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인 윤금이씨와 상의도 하지 않고 보상금을 타서 10살 손자를 데리고 사라졌다. 윤금이씨는 손자가 다녔던 초등학교 친구 엄마로부터 손자가 서울 강남 세화 초등학교로 전학 갔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녀는 손자를 만나기 위해서 세화 초등학교 근처의 가사 도우미가 된다. 그녀의 손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사업하는 부부 집이다. 남편의 바람으로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 윤금이씨는 엄마 아빠의 싸움으로 눈물 콧물 범벅이면서도 슬픔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아이를 위로하다 가까워진다. 운동회날 아이의 바쁜 엄마를 대신해 윤금이씨가 학교를 찾아간다. 행정실 직원에게 자기 손자가 몇 반에 재학 중인가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손자의 이름은 학교 기록부에 없었다. 손자가 그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을 알고 난 윤금이씨는 이 집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혼자인 아이를 닫힌 방문 뒤에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아픈 사람 둘이 서로 보듬고 치유해 가는 슬프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이런 따뜻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동안 살면서 누구를 위로하거나 도울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길티필링이 생긴다. 한편으론 아버지가 강조한 리즈너블 한 인간으로 적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합리 남자 세화 초등학교 초등학교 친구 자기 손자

2023-07-14

[독자 마당] 전우원 군

나는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군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앞날에 희망을 보았다.  전 군은 가족인 전두환 일가가 은닉한 거액의 비자금과 각종 불법 행위 등을 과감하게 폭로해 주목을 받았다.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내용이지만 가족의 치부를 드러낸 그의 용기는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거주하던 미국에서 한국으로 자진 입국해 마약 투약 혐의 등에 대해 조사를 받고 석방되기도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저지른 만행을 대신 사죄하고 싶다며 광주를 방문,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지를 참배하고 유족도 만났다.     온갖 비난을 각오하고 광주를 방문한 전 군, 그리고 부모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그를 맞이해준 광주시민들, 너무나도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 일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 옹졸한 반응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전 군처럼 양심이 있는 청년들이 많이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만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의 정치인들도 달라져야 한다.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스스로 윤리적으로 엄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특권 의식 대신 엄격한 윤리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 가운데 자기 죄는 숨기고, 자녀들의 죄는 감싸는 비양심적인 이들이 많다. 이런 정치인은 국가의 미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군의 용기 있는 행동에서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치인이 많아질 때 대한민국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을 전 군에게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기를 기도한다.   서상구·미션비에호독자 마당 전우원 손자 전우원 정치인들 가운데 전두환 일가

2023-04-04

전두환 손자 인천공항서 마약 혐의 체포

경찰이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자신의 마약 투약에 대해 폭로성 발언을 해온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27)씨를 28일(한국시간) 체포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6시 뉴욕 JFK공항을 떠난 전씨가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직후 신병을 확보했다.   전씨는 입국 직후 “마음 다치신 분들에게 사죄할 기회가 있어 축복받은 것 같다.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SNS에 항공편 예매내용을 올리고 “도착한 이후 바로 광주로 가겠다”며 “5·18 기념 문화센터에 들러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과 이 사건으로 정신적 피해를 본 모든 분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또 JFK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릴 때) 집에서는 5·18은 폭동이었고, 우리 가족이 피해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씨는 “이후 비극을 겪으신 분들의 진실한 이야기·증언을 듣고 (진실을) 깨달았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된 사죄와 회개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 법원에서 체포영장과 신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전씨를 상대로 마약류 투약 여부를 검사하는 한편 자신과 지인들이 마약을 투약했다는 발언의 진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전씨는 뉴욕에 체류하던 지난 13일부터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일가의 비자금 의혹 등을 폭로하고 본인과 지인들이 마약사범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 17일에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마약을 투약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뒤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전두환 전두환 손자 전우원 전두환 손자 전우원

2023-03-27

[독자 마당] 증손을 본 날

오늘 손녀가 여아를 순산했다. 아직 예정일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그러다보니 순산 소식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웬일이니? 산모와 아기는 건강하지? 산 구완하기로 한 네 엄마는 옆에 있었니?” 급한 마음에 두서없는 질문만 했다.   “걱정 마세요. 아기도 산모도 건강하고 지금은 병원에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는 대답이다. 그리고 돌아보니 나는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내 딸은 할머니가 되었다.     세월은 참 빠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붙잡고 늘어져도 세월의 추는 째깍째깍 각을 세우며 흐른다.     벌써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미국에 유학을 와 학위를 마친 남편이 한국의 가족을 초청했다. 그때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을 겨우 마친 상태였다.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한국어를 잊어버릴까 봐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하도록 했다. 모국어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정체성도 문화도 잃는다는 생각에 끝까지 한국어 사용을 고집했다.     벌써 50년이 지났건만 아이들은 다행히 한국어를 잘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영어를 잘 못 하는 구식 노인네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잘 성장해 다들 제 짝들을 찾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덧 이민생활 50여 년, 그동안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갔고 우리에겐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코로나에 걸려 신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후유증 없이 회복되기를 수없이 기도했다. 다행히 모두가 건강하게 코로나를 털고 일어났고 이젠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게 되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고비만 넘기면 세상은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증손녀를 본 기쁨에 오늘도 행복하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증손 한국어 사용 순산 소식 손자 손녀들

2023-03-21

전두환 손자 폭로 "가족들 '검은돈' 쓰고 있다"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미국명 제이미 전·27)씨가 가족 내부의 비위와 범죄 사실을 생방송 영상으로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뉴욕에 거주하는 전씨는 전두환의 세 아들 중에 차남인 전재용씨의 둘째 아들로 현재 P 회계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14일 유튜브 라이브 동영상을 통해 “저희 가족과 주변인들의 범죄는 물론 저 자신의 범죄도 고발하고 사죄하려고 한다”며 “탈세와 성추행, 마약 범죄까지 모두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친형 전우성(저스틴 전)에 대해서도 “오피스텔 등에서 성범죄 경력이 있다. 법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산밥캣의 임원인 이모부 박모씨에 대해서도 “저와 형을 여성들이 나오는 문란한 술집에 데려가 여성들을 희롱하고 저에게 (여성들을) 만지라고 시켰다”고 주장했다.     K모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K모 여성에 대해서는 “내게 처음으로 마약을 권했고 안 가져다준 마약이 없는 심각한 수준의 마약 딜러”라며 “나를 자살로 이끌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친형 우성씨의 지인인 B모씨에 대해서는 “한국 공군 복무 중인데 코카인 등 강력한 마약을 사용하고 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12분가량의 영상에서는 조모 이순자씨가 스크린 골프를 치는 모습도 담겨있는데 우원씨는 “어떻게 돈이 없다고 주장한 그들이 집에서 이렇게 호화생활을 하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씨는 유튜브 채낼 내 다른 영상을 통해 자신이 전씨 일가 재산의 상속을 포기했다고 서류를 내보이기도 했고, 부모인 전재용과 박상아가 과거 “한국에는 ‘일을 한다’고 거짓을 말하고 실제로는 미국에서 동거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부모 둘다 이젠 한국에서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동시에 부모에 대해 한국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돈으로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법의 심판으로부터 도망가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들이 자신에게 ‘정신이상 프레임’을 씌울까 봐 우려된다며 “저는 작년 1월부터 우울증, ADHD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나와 정상적으로 지금 몇 달간 일을 잘했다”고 밝혔다.   영상이 물의를 빚자 전재용씨는 조선닷컴과 통화에서 “아들의 우울증이 악화했다. 저는 가족이어서 괜찮은데 다른 지인들이 피해를 보셔서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해당 영상이 올라간 14일에는 350여 건의 댓글이 달리는 등 반응도 뜨거웠다. 한인들은 댓글에서 “이제야 양심선언이 나오는 것이냐, 늦었지만 다행” “이를 계기로 자금 출처를 철저히 조사하라” “명명백백히 밝힐 기회가 왔다”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전두환 검은돈 전두환 손자 가족들 검은돈 마약 범죄

2023-03-14

[수필] 손자 매튜의 홈런

외손자 매튜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멋진 선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여섯 살부터 또래 야구팀에서 세컨드베이스를 맡아 경기를 했습니다.     손자는 야구로 초청 받아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1학년 여름 방학에 남가주 집에 왔습니다. 기독교 대학 야구팀에 소속되어 운동을 했는데 그 팀과 K대학 야구팀이 경기를 가졌습니다. 두 팀이 치열하게 경기를 펼치던 중 상대 선수가 세컨드베이스 수비를 하고 있던 손자의 왼 다리 무릎을 밟으며 돌진해 왔습니다. 손자가 비명을 지르고 땅에 쓰러졌습니다. 밝은 대낮 관중석과 경기하던 양쪽 선수가 다 놀랐습니다.   무릎에서 흐르는 붉은 피가 황토 흙을 적셨습니다. 게임도 중단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무릎 수술을 하였습니다. 방학이 끝날 무렵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무릎 상처가 심해서 야구를 잠시 쉬기도 했습니다. 야구팀에서 궂은일을 찾아 선수들의 손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경기 출전하는 선수를 위해 공을 던져주고 받으면서 팀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3학년이 되었습니다. 부상 때문에 캐처 석에서 공을 받는 선수로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시즌 도중 무릎 통증이 도져서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3학년 마치고 고향집으로 왔습니다. 의사와 상담하고 2차 수술을 받았습니다. 온 가족이 피를 말리는 심정이었습니다.      졸업반이 되었습니다. 어김없이 야구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다행이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팀에서 세컨드베이스를 맡았습니다. 지난 3월에 캘리포니아에 왔습니다. 손자가 남가주에 오면 나는 꼭 게임에 참석하여 응원을 합니다.     게임에서 관중들이 손자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녀석이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을 안내하고 이곳저곳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야구팀에서는 선배 형인 손자를 많은 후배들이 좋아하고 따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팀의 부모들이 손자가 등판 할 때마다 ‘매튜, 매튜’라고 환호하며 열렬히 응원한다고 했습니다.   3월 마지막 주일, 오리건에서 원정 온 팀과 경기가 있었습니다. 이날은 경기장에 가지 못하고 TV를 보면서 응원을 했습니다. 양쪽 팀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마지막 이닝까지 게임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졌습니다. 엎치락뒤치락 할 때 손자가 멋있게 홈런을 날렸습니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서 짬봉을 먹고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서로 껴안고 난리가 났습니다. 짬봉 국숫발이 불어터지는 것도 모르고 홈런이 터진 장면을 몇 번이나 되돌려 보았습니다.   수술을 두 번이나 하면서도 기어이 홈런을 쳐내는 손자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집니다. 여든 살이 가까운 이 할머니도 손자에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즈음 글공부 교실에 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근사한 수필집 한 권을 출간하여 손자에게 선물할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신영애 / 수필가수필 손자 매튜 외손자 매튜 k대학 야구팀 또래 야구팀

2022-05-05

[이 아침에] ‘할빠’의 시간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는 ‘할빠, 할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손자 손녀의 육아를 책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할빠, 할마라고 하는 모양이다. 요즘 60대는 노인 축에도 못 끼는 시대이다. 6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랑 같이 있어도 언뜻 보면 좀 나이 든 아빠, 엄마처럼 보이니 이런 신조어까지 생겨났나 보다.     지금 세상은 어디나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기가 어렵다보니 시간상으로 좀 여유가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돌보는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다.   3년 전 첫 외손녀를 보며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이번에 둘째 손녀가 태어나면서 나도 ‘할빠’ 대열에 합류했다. 아기 아빠는 출근하고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은 아직 몸 추스르기도 어려워 큰 손녀를 돌보는 건 거의 우리 부부의 몫이 됐다.     사위 일 때문에 딸 가족이 외국에 살 때는 같이 살 기회가 생긴다면 예쁜 손녀에게  그림책도 읽어주며 재미있게 노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가끔 화상 통화로나 얼굴을 보고 동영상으로 손녀의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는 너무 아쉬움이 컸던 탓이다. 올해 초 이곳으로 딸네 가족이 이주해 오면서 손녀를 직접 안아주고 놀아주며 그림책도 읽어주는 상상이 실현되는 행복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세살이 다 돼 가는 손녀를 돌보는 게 마냥 달콤하기만 한 건 아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울고불고 떼쓰는 건 다반사인데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놀이터에서 몇 번 따라다니다 보면 체력이 금방 바닥이 난다.   요즘은 자녀들이 혼기가 지나도 결혼을 미루고, 설사 결혼하더라도 아기를 잘 가지려 하지 않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되는 일도 벼슬을 받기처럼 어려운 일이 됐다. 주위 친구들 경우를 봐도 손주를 못 본 친구가 더 많은 터라 친구들 모임에 가서도 손녀 자랑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사실 손자 손녀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나도 한때는 틈만 나면 손주 자랑하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좀 성가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들어 할빠, 할마 노릇하다가 몸도 망가지고 자녀들과 사이도 안 좋아지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늙어서 다시 육아에 시달리면서 여유롭고 한가한 노후의 삶을 즐기려던 계획이 어긋나서 당황스럽다는 노년들의 볼멘 목소리도 들린단다.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랑 노는 것도 잠깐이다.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만, 학교 들어가고 조금 지나 10대만 돼도 친구들을 더 찾지, 할아버지 할머니랑은 잘 놀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금 축복처럼 주어진 이 ‘할빠’의 시간을 즐기자. 아직은 뛰어다니고 손녀를 번쩍 들어 안아 줄 체력이 있음을 감사히 여기면서 오늘도 젊은 할빠는 놀이터로 공원으로 달려간다. 송훈 / 수필가이 아침에 시간 할아버지 할머니들 손자 손녀 주위 친구들

2022-04-24

[이 아침에] ‘할빠’의 시간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는 ‘할빠, 할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손자 손녀의 육아를 책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할빠, 할마라고 하는 모양이다. 요즘 60대는 노인 축에도 못 끼는 시대이다. 6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랑 같이 있어도 언뜻 보면 좀 나이 든 아빠, 엄마처럼 보이니 이런 신조어까지 생겨났나 보다.     지금 세상은 어디나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기가 어렵다보니 시간상으로 좀 여유가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돌보는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다.   3년 전 첫 외손녀를 보며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이번에 둘째 손녀가 태어나면서 나도 ‘할빠’ 대열에 합류했다. 아기 아빠는 출근하고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은 아직 몸 추스르기도 어려워 큰 손녀를 돌보는 건 거의 우리 부부의 몫이 됐다.     사위 일 때문에 딸 가족이 외국에 살 때는 같이 살 기회가 생긴다면 예쁜 손녀에게  그림책도 읽어주며 재미있게 노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가끔 화상 통화로나 얼굴을 보고 동영상으로 손녀의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는 너무 아쉬움이 컸던 탓이다. 올해 초 이곳으로 딸네 가족이 이주해 오면서 손녀를 직접 안아주고 놀아주며 그림책도 읽어주는 상상이 실현되는 행복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세살이 다 돼 가는 손녀를 돌보는 게 마냥 달콤하기만 한 건 아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울고불고 떼쓰는 건 다반사인데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놀이터에서 몇 번 따라다니다 보면 체력이 금방 바닥이 난다.   요즘은 자녀들이 혼기가 지나도 결혼을 미루고, 설사 결혼하더라도 아기를 잘 가지려 하지 않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되는 일도 벼슬을 받기처럼 어려운 일이 됐다. 주위 친구들 경우를 봐도 손주를 못 본 친구가 더 많은 터라 친구들 모임에 가서도 손녀 자랑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사실 손자 손녀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나도 한때는 틈만 나면 손주 자랑하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좀 성가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들어 할빠, 할마 노릇하다가 몸도 망가지고 자녀들과 사이도 안 좋아지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늙어서 다시 육아에 시달리면서 여유롭고 한가한 노후의 삶을 즐기려던 계획이 어긋나서 당황스럽다는 노년들의 볼멘 목소리도 들린단다.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랑 노는 것도 잠깐이다.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만, 학교 들어가고 조금 지나 10대만 돼도 친구들을 더 찾지, 할아버지 할머니랑은 잘 놀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금 축복처럼 주어진 이 ‘할빠’의 시간을 즐기자. 아직은 뛰어다니고 손녀를 번쩍 들어 안아 줄 체력이 있음을 감사히 여기면서 오늘도 젊은 할빠는 놀이터로 공원으로 달려간다. 송훈 / 수필가이 아침에 시간 할아버지 할머니들 손자 손녀 주위 친구들

2022-04-17

[삶의 뜨락에서] 마지막 세대

 3월 마지막 주, 그레잇넥 사우스 미들스쿨에서 열린 손녀딸의 ‘Beauty And Beast’ 뮤지컬을 관람했다. 아이는 6학년이지만 큰 역할을 담당해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다. 공연을 보면서 손자 세대가 도래했고, 나의 세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교내 백일장에 콩트로 가작 입선했다. 겨우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호된 시집살이를 시켜 지금도 느낌이 좋지 않다.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가난을 물려주었고 나는 허둥지둥 미국으로 와 50년 가까이 이 땅에서 살아왔다. 생존을 위한 어려운 시절이 있었고, 세 딸이 자라 엄마가 되었고, 손자가 넷이나 된다. 이제 그들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이민세대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깝다. 겨우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들 공부시킨 아버지, 실패한 작가, 인정받지 못한 시인으로 나의 시대를 마감하고 있다. 주변에 아픈 사람도 많은데 큰 병 없이 하루하루 지내 가족들 걱정 덜어주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해야겠다.   딸만 있는 집안의 할아버지는 어쩐지 모르게 ‘거북한 존재’로 보일 때가 많다. 아이들은 엄마와 가깝고, 딸들이 하는 영어를 빨리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 잡담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혼자 내 방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생일이 많아 그들의 집을 방문하는 때는 대충 순서가 끝나면 일어난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그저 엉뚱한 말을 안 해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아, 나의 세대는 끝나가고 있구나. 푸른 청년의 꿈을 안고, 낯선 땅에서 시작된 나의 이민세대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머지않아 집에서 한국말을 하고, 아침마다 한국신문을 뒤적이는 나의 세대는 사라질 것이다. 집안의 된장 냄새, 김치를 좋아하는 나의 시간은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손자들은 무표정한 하지(손자들은 할아버지 발음을 못 해 하지로 불려왔다)를 크게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들 아이 돌보는데 바쁜 딸들은 늙은 부모를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The Mountain Rats’는 영어로 쓴 나의 단편이다. 캐츠킬 폐가를 수리해 살다가 죽을 때 그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야생동물들에게 돌려주는 스토리다. 나는 마지막 몇 년을 혼자 떨어져 산속, 허물어져 가는 집에 살고 싶다. 집은 나와 함께 운명을 같이해도 된다. 전기가 들어오고 물만 있으면 된다. 지붕이 좀 새도, 깨진 유리창 사이로 새가 날아 들어와도 상관없다. 산길을 걷고 돌아와 밥을 끓여 먹고, 낮잠을 즐기고, 영감이 떠오르면 시나 에세이를 써서 마음에 안 들면 찢어버리고, 아쉬우면 이렇게  공유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어디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어차피 기다리지 않는 그 날은 결국은 오고야 말 것이다.   내가 다니는 산책길 벤치에 흙이 잔뜩 묻어있는 윗도리가 있었다. 조금 더 걸었더니 모자가 나무에 걸려있고, 버려진 신발이 있었다. 이들을 한데 모아 산책로 주변에 웅덩이를 파고 묻었다. 모자는 머리, 신은 발, 윗도리는 심장, 한 생명을 기억했다. 비석은 세우지 않았다. 누가 죽었는지 모르니까. 나의 이민 세대는 이렇게 사라져 거름이 될 것이다. 마지막 세대.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할아버지 발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손자 세대

2022-04-06

[살며 생각하며] 두 손 모아

두 손 모아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 살다 보니 기도할 상대가 점점 늘어간다. 안위를 빌다가 기억 못 하고 놓친 사람이 있나 걱정하다 엉망이 된다. 물론 내 마음을 다 헤아리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하지만 문제는 신이 아니다. 부족한 믿음과 나약한 성격을 지닌 나이다. 머릿속에 일일이 기도 할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힘주어 곧게 세운 손끝이 흩어지며 깍지 손이 된다.     며칠 전에 외숙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아는 주위 사람을 돌아보아도 숙모처럼 건강한 삶을 살던 분을 뵌 적이 없다. 병명도 생소하다. 독감 주사 맞고 일어난 과도한 면역력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 했다. 너무 건강해서 생긴 일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촌들이 어머니 환송 예배를 드린다 해서 남동생, 제수씨, 여동생과 같이 가게 되었다. 북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작고 아담한 교회가 보였다. 안에는 지인들과 교인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 숙모님에 대한 추억을 메모지에 적어 바구니에 담았다. 예배는 아들들과 손자 손녀들이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같이 지냈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며 인사를 했다. 웃음과 눈물 흐느낌이 범벅된 가슴 따스한 시간이 되었다.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녀는 강인했다. 뉴욕 봉제공장에서 막노동하면서도 한 마디 불평 없이 치열하게 사신 분이었다. 아들, 남편, 손자 손녀들에겐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을 제공한 요리사였다. 우리는 둘째 아들의 집으로 몰려갔다. 조카들이 와있었다. 이름을 묻고 하나하나 안아주면서 얼굴을 가슴에 새겼다. 어릴 적 보고는 십 년도 더 훌쩍 넘어가 커버린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음식을 먹으면서 사촌들끼리 재잘거리며 정 나누는 소리가 예쁘다. 슬픔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했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힘든 삼촌을 꼭 안아드렸다.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손자 손녀들이 몰려와 할아버지를 위로하였다. 그제야 삼촌은 옅은 웃음을 머금으셨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나와 여동생에게 말씀하셨다. “악처라도 며느리보담은 나아. 눈치가 보여.”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그리움으로 가득한 음성이 흔들렸다.     일 년 차이로 뒤따라온 이종사촌들과 만남은 외로운 이민생활에서 신선한 위로였다. 정신없이 뛰어놀고 다투다가 울고 웃기를 반복한 일 년 남짓. 그 세월을 가장 행복했던 인생의 한순간으로 기억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뒹굴던 그때가 그렇게도 즐거웠을까?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동생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옛 노래를 들었다.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자꾸 났다.     손을 모은다. 아직 어린 조카들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운동하라고 잔소리하시던 숙모의 모습을 그려본다. 힘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삼촌. 울먹이던 사촌들을 생각하며 부디 그들의 마음이 편해지길 기원한다. 슬프면서도 가슴 벅찬 행복한 만남이었다.   나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사랑하였기에 아픈 것이다. 이제 사순절이 온다. 혼탁한 세상을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목숨을 던지기까지 한 예수 고난 시기이다. 오늘 두 손을 모은다. 굳이 그러는 이유를 따지자면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 참으로 못 할 짓이기 때문이다. 고성순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손자 손녀들 아들 남편 어머니 환송

2022-03-08

손자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방법 [ASK미국 유산 상속법-박유진 변호사]

▶문= 자녀 대신 손자에게 재산을 상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 본인의 자녀에게 상속을 아예 원치 않고 손자들에게만 상속하고자 할 때 우선 상속해주려는 해당 손자의 현재 나이를 살펴 보아야 한다. 성년이면 상관없지만 미성년이라면 조부모 사망 후 미성년 손자가 재산을 상속받는 데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명보험을 가입하고 미성년자 손자의 이름을 수혜자로 올려놓은 후 아직 손자가 미성년일 때 사망했다면 해당 사망보상금(Death Benefit)에 대한 처리가 복잡해진다. 미성년자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기에 아무리 조부모가 수혜자로 올려놓았을 지라도 해당 보험회사에 찾아가서 사망보상금을 청구할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자의 후견인/법적보호자가 대신 청구하게 되는데 이때 손자의 부모(즉 고객의 자녀들)일지라도 바로 보험회사에 본인의 미성년 자녀를 대신해서 청구할 수는 없다. 즉 후견인 절차를 법원에서 다 끝낸후 법원에서 판사가 "아무개 군/양의 법적보호자로 아무개 군/양의 아버지/어머니를 임명한다"라는 공식적인 판결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미성년 손자의 이름을 수혜자로 올리기보다 조부모의 리빙트러스트를 수혜자로 올리고 해당 리빙트러스트에 생명보험 수혜자로 미성년자 손자를 명시해야 한다. 이때 미성년자 손자가 성년이 된 후 받도록 명시한다면 조부모가 사망 후 사망보상금은 우선 조부모의 트러스트 계좌로 입금이 되고 그 후 조부모가 명시한 나이에 맞춰 손자가 해당 금액을 받게 된다.   이때 유의할 점은 손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트러스트 계좌는 제2차 트러스티/상속집행인이 관리하게 되는 데 이 관리인이 제대로 관리를 못한다면 손자가 나중에 받을 상속금이 없어질 수도 있다. 만약 상속집행자의 관리 능력이 의심된다면 상속집행자를 당연히 다른 인물로 교체하거나 상속집행자를 추가하는 작업(Trust Amendment)을 해야 한다. 또한 손자에게 잘 전달해주기 위해 상속집행자가 살아있어야 한다. 따라서 혹여 있을 수 있는 사태를 대비해서 여러 순위 혹은 여러 명의 상속집행자를 정해놓아야 한다.   ▶문의: (213)380-9010                     (714)523-9010 박유진 변호사미국 상속법 미성년자 손자 유산 상속법 미성년 손자 박유진 변호사

2022-01-19

이혼 절차중인 아들 집서 할아버지, 손자 둘과 투신 사망(종합)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손형주 기자 = 부산 한 아파트 화단으로 60대 할아버지와 1살, 3살 손자가 추락해 숨져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13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21분께 부산 한 아파트 화단에서 A(60대)씨와 B(3)군, C(1)군이 쓰러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아파트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와 경찰이 수색해 이들을 발견했다. 세 사람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A씨와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손자 관계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해당 아파트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옥상에는 CCTV가 없어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지만, 경찰은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데리고 투신한 것으로 추정하고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인근에 사는 A씨가 아들 집인 이 아파트를 방문했고, 아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A씨 아들은 부인과 이혼 절차를 진행하며 숙려기간인 상태로, 부인과 숙려기간 절반(45일)씩 아이들을 맡기로 하고 현재 홀로 아이들을 돌보던 중이었다. 경찰은 주변 가족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10-14

[컬처 & 라이프] 게티 센터에 '봄'이 왔다

인간에게는 대부분 양면성이 있다고 하지만 석유 재벌 J 폴 게티(Jean Paul Getty: 1892~1976) 만큼 극단적으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특별히 돈과 결혼 문제에 있어서 그는 이중 인격의 모습을 보였다. 12억 달러 재산가로 1966년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으로 올랐던 게티는 돈 한푼 쓰는데 벌벌 떠는 자린고비였지만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랑을 나누는 데는 더없이 넓은 마음을 보였다. 게티는 자신의 사유지 전화기에 동전 박스를 설치해 놓았을 뿐 아니라 1973년 손자 존 폴 게티 3세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괴됐을 때는 아들에게 연 4%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줬을 정도다. 하지만 게티 센터가 입장료를 받지 않고 그 훌륭한 미술품을 공개하게 된 것은 폴 게티의 문화 예술을 향한 무한한 나눔의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게티의 양면성은 여자 문제에서도 심하게 나타났다. 20대부터 갑부가 된 폴 게티는 결혼과 이혼을 다섯 차례나 거듭하며 끊임없이 플레이보이 행각을 펼쳤으나 친구들에게는 늘 '한 여자와 오래 오래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결혼 생활만 잘 유지된다면 전 재산을 다 쏟아넣어도 안 아까울 것 같다"던 게티는 그러나 정작 아내들에게는 늘 '돈 아껴쓰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는 것. 게티가 47세 되던 해 5번째로 그와 결혼했던 루이스 더들리 린치는 2013년 펴낸 회고록에서 '참 힘든 남자였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하나 루이스 역시 회고록에서 게티의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고 인정한다. 청년시절부터 미술품 수집에 열정을 보였던 폴 게티는 콜렉션이 많아지자 1954년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말리부 저택을 뮤지엄으로 전환했다. 지금은 게티 빌라로 불리는 이 말리부 뮤지엄이 바로 현재 게티 센터의 전신이다. 뮤지엄을 오픈하며 그는 '콜렉션을 전세계 모든 이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현재 게티 뮤지엄이 보유한 미술품은 수만여점. 주로 20세기 이전의 유러피안 페인팅과 드로잉, 매뉴스크립트, 조각, 장식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최근엔 미국과 아시아 미술품에도 관심을 기울여 전세계 작품이 골고루 소장돼 있다. 미학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아름다운 건축물에 태평양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환상적 위치까지 더해 현재 게티는 연 관람객 130만명을 끌어 모으는 관광 명소가 됐다. 게티의 꿈은 이뤄졌다. 요즘 게티 뮤지엄에 가면 지난해 게티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6512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에두아르 마네의 걸작 '봄(Spring)'도 볼 수 있고 파블로 피카소의 화제작 '여인(Femme)'도 감상할 수 있다. 마네의 '봄'은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여배우 잔느 드마르시가 양산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초상화·인상주의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네는 사계절을 대표하는 파리 여성의 초상을 그리려 했으나 '봄'과 '가을'만을 완성한 뒤 2년 후 1883년 51세를 일기로 사망, 이 그림은 매우 귀한 걸작이 됐다. 피카소의 '여인'은 큐비즘을 대표하는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이 탄생한 1907년에 습작으로 그린 작품. 바르셀로나 아비뇽의 밤거리 여인을 모델로 그린 작품으로 기하학적 구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마네의 '봄'은 게티 소장품이니 언제라도 감상할 수 있지만 피카소의 '여인'은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러 재단 소장품으로 복원차 잠시 머물고 있는 작품이라 3월이 지나면 스위스로 떠난다. 서둘러야 볼 수 있다. 주차료 15달러만 내면 고상하게 봄을 하루종일 흠뻑 즐길 수 있는 곳. '힘든 남자' 게티가 우리에게는 참 좋은 일을 해 주었다.

2015-02-26

게티 뮤지엄 연초 관람객 몰린다

게티 뮤지엄이 신년 초부터 관람객이 몰려 희색이다. 1월을 통상적으로 한산하게 보냈던 게티에 사람들을 몰아주며 효자노릇 하고 있는 그림은 최근 웨스트 파빌리언에 전시 중인 마네의 '봄'(Spring·사진)과 피카소의 '여인'(Femme). 게티 뮤지엄이 지난 해 11월 6512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마네의 '봄' 전시에 이어 피카소의 화제작 '여인'을 선보이자 연일 관람객 물결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것.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1832-1883)가 1881년에 완성한 작품 '봄'은 꽃무늬 드레스에 보닛(여성이나 어린아이들이 쓰는 모자)으로 멋을 낸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잔 드마르시가 양산을 들고 있는 그림. 1882년 당시 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파리 살롬전에 처음 출품됐던 작품으로 게티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의 2배를 주면서 구매한 걸작이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의 '여인'(Femme)은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을 탄생시킨 1907년에 습작으로 그린 작품. 피카소 큐비즘의 최초 작품으로 평가되는 '아비뇽의 처녀들'과 같은 화풍의 유화다. 바르셀로나 아비뇽의 밤거리 여인을 모델로 그린 작품으로 기하학적 구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러 재단' 소장품으로 최근 게티가 복원 작업을 성료, 전시가 가능케 됐으며 게티에서는 오는 3월까지만 전시된다. 게티 소장품인 마네의 '봄'은 게티 뮤지엄 웨스트 파빌리언에서 영구 전시된다. ▶문의: www.getty.edu 유이나 기자

201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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