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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비자유 속에서 살아가기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언어, 사물, 세계가 몹시 낯설어 힘들어지는 순간이 온다. 이 때문에 나는 자신을 지키는 방편으로 책을 몇 권 챙겨간다. 수많은 유적지와 예술작품을 단번에 해독하지 못하고, 이미지에 압도되며 불완전한 이해 속에서 비틀거릴 때 현실감각을 되돌려주는 것은 책이다. 끊임없이 외부 세계를 탐험하는 책이라도, 신기하리만큼 그것은 내면과 대면하게 만든다.   얼마 전 나는 열흘간 그리스로 떠났다. 여행지에서는 그 나라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 가장 좋지만, 사전 준비로 그리스 비극과 미술책을 읽은 터라 고민이 됐다. 이럴 때 대안은 숙제로 남아 있던 책을 읽는 것이다. 올해 들어 넉 달 동안 내가 읽었던 작가는 블랑쇼, 바르트, 베케트인데 이들은 모두 한 작가의 이름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다.   나는 김창석 번역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 11권)를 갖고 있었고, 10여 년 전 읽으려고 두 번 시도했다가 1권을 넘기지 못했다. 마침 소설가 김연수가 어느 지면에서 자신이 프루스트를 읽으려다 부딪힌 좌절을 털어놔 나름 위로가 됐지만, 이것은 ‘가짜 위로’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일의 실패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어물쩍 다른 사람의 경험까지 끌어다가 마치 그 대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치부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프루스트의 경우는 분량). 그러던 중 조지 스타이너의 비평집을 읽는데, 그가 결정적인 말을 했다. “프루스트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토록 뛰어난 비평가의 삶을 빚은 작가로 또다시 언급됐기에 최신 판본인 김희영 번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 13권)를 샀고, 여행 가방에 1, 2권을 담았다.   독서 행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비(非)자유적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기다. 운율법에 속박되면 뛰어난 시어가 나오듯이, 한 가지에 구속되면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된다. 비행기와 숙소에서 다른 어떤 선택지 없이 나는 오직 프루스트만 읽어야 했다. 19세기 파리 사교계와 귀족들의 세세한 관습에 현대의 시민인 나는 가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지만, 프루스트라는 거대한 세계를 향한 마음이 그 어떤 것도 방해물로 여기지 않게 만들었다. 놀라운 사실은, 10여 년 전의 나는 간데없이 이 책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독자는 늘 과거의 자신과 대면한다. 내가 어떤 검증된 거대한 세계에 섣불리 몸 담그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세계의 문제라기보다 나 자신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수많은 외부 세계에 시선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이 거절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거부당하는 쪽은 우리다.   프루스트의 책 1권을 조금 읽은 사람들은 늘 홍차에 적셔 먹은 마들렌이 불러일으키는 향수를 언급하고, 좀 더 전체적인 틀을 논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기억’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근대 역사의 면면, 침윤하는 현대성, 알록달록한 계급사회의 풍속, 예술과 미학에 대한 비평적 관점, 반유대주의, 사랑과 동성애, 신경증의 발견, 언어의 변질, 기후와 공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드리우는 시대 상황까지 모두 담고 있어 결코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다. 이 커다란 세계에 들어선 나는 솔직히 말해 이제야 독자의 자격을 얻은 것 같다. 그 전에 읽은 책들은 이 자격증을 얻기 위한 관문이었던 셈이다.   이를 통해 깨달은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한 허가증과 자유를 손에 쥐려면 반드시 ‘비자유’를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고는 습관과 버릇의 결을 재정돈할 수 없다. 일상에서 원심력을 일으키는 요소는 사방에 있어 ‘자유’와 ‘의지’(의욕)라는 말로 꾀기에 우리는 구심력을 갖기가 무척 어렵다.   구석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독자만이 커다란 세계를 얻는다. 거기에는 포기된 수많은 세계가 있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작 하나둘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나만 접한 것이 아니어서 수많은 인생 선배가 표식을 남겨둔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누구나 볼 수 있어도 그 넓고 깊은 세계로 들어갈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샛길이 많을 뿐 아니라, 얼마 안 가 뒤돌아 나올 만큼 우리의 성정은 늘 성마르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책을 읽어온 뒤 비로소 최근에야 나는 독자의 역량을 조금 갖췄다고 느낀다. 물론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전집의 7권을 읽기 시작하려는 지금, 이 힘을 유지해주는 것은 새벽과 밤, 주말이라는 ‘시간’임을 안다. 시간은 결국 공간을 만들어낸다.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기억 속, 마음속 공간. 거기서 자아는 하나의 통합된 상을 갖게 되고, 삶이 연장되는 것은 단순히 길이를 늘이는 게 아니라 수직의 깊이를 얻는 것임을 알아차린다.마음 읽기 어려움 재정돈 외부 세계 마음속 공간 자유적 상황

2024-06-02

[마음읽기] 환한 세상에서 살다 가야 해

그저께와 어제 제주에는 찬바람이 불고 싸라기눈과 함박눈이 내렸다. 산죽 푸른 잎에 싸라기눈이 떨어지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다. 바람에 회오리가 있어서 담장 아래 수선화의 꽃대는 꺾여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서 버팀목으로 받쳐주었다.   시골 마을의 겨울밤은 더 적막하다. 그래서 작은 소리 하나도 벼락이 치는 듯이 크게 들려온다. 육지의 고향집에서 호두를 보내온 것이 있었는데, 어젯밤에는 호두를 깠다. 호두는 껍데기가 울퉁불퉁하고 단단해서 깨기가 쉽지 않았지만, 속이 꽉 차도록 잘 여문 것을 볼 적에는 흐뭇함이 있었고 또 그걸 겨울밤에 하나씩 까고 있으니 한적한 마음이 찾아왔다. 그러면서 한가한 마음의 한구석에는 이런저런, 소소하지만 인상적이었던 지난 일의 무늬가 만져지기도 했다.   개중의 하나는 “환한 세상에서 살다 가야 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제주도 출신인 문충성 시인의 시집을 읽다 ‘생명(生命 1)-콩밭에서’라는 제목의 시에서 발견한 시구였다. 시인은 우리가 “차가움 속에 나자빠져 얼마만 한 세월을 속 썩혀 왔나”라며 탄식했다. 그러면서 마치 한 알의 콩이 어둠의 땅속에서 “눈부신 빛”을 기어코 찾으려고 하듯이 그리하여 싹트듯이 “자그마한 기쁨의 씨앗들”이 깨어나게 하라고 당부했다. 이 시구를 접했을 때 혹시 나는 나를 스스로 비탄과 절망의 흙 속에 자꾸자꾸 가두려고 하지 않았는지를 자문했다.   다른 일화도 떠올랐다. 지난달에 초등학교 동기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날은 몇몇 동기가 송년회 모임을 갖고 난 며칠 후였다. 송년회에 참석했던 친구 가운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송년회에 안 나온 사람 안부를 묻지 말고, 나온 사람 안부를 물어야 되는 거 아냐?”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송년회를 갖자고 모여선 정작 모임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 안부만 묻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친구의 말은 모임에 오지 않은 사람의 안부를 묻는 것이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었다. 그런 의미보다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인사와 반가움을 표현하는 일을 뒤로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누군가를 만나 내 앞에 그 사람을 마주하고서도 그와 속마음을 더 충분하게 얘기하지 않은 탓에 그와 헤어지고 돌아올 때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가령 내게 큰 기쁨이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온 큰 기쁨을 내 마음이 온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그 시간을 넉넉하게 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여기 있으면서도 딴 데를 자꾸 서성이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생각난 것은 얼마 전 모임에 갔다 주고받는 대화 중에 우연히 들은 말이었다. 연장자인 그 어른은 글을 쓰는 분이었는데, 연세가 팔순이 넘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이가 드니까 심심해져요. 바다를 보아도 세 해 전 바다와 달리 이제 아무 느낌이 없어요.”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그게 잘 사신 겁니다. 나이가 들면 감정과 욕망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 어른께서 말씀하신 심심하다는 것의 의미가 어쩌면 요즘에 도통 감흥이 적어 시심(詩心)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걱정의 고백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감정의 동요 없이 만사를 그저 예사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안목을 얻은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노경(老境)에 성취할 만한 높은 경지의 시심이기도 할 테니 분명 부러운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바라봄은 수평선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앞서 소개한 문충성 시인은 ‘수평선(水平線)’이라는 시에서 “인간이 사는 땅을 자애(慈愛)의 손길로 재우고 있는 수평선(水平線)”이라고 멋지게 썼다. 격랑 너머에서 한 줄 흰 줄로 세상의 둘레가 되는, 자애의 둘레가 되는 수평선처럼 감정과 욕망을 덜어낸 그 묵묵한 자리, 덤덤하게 된 그 마음씨라면 지혜와 깨달음의 식견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마음이 한적한 때에 이르러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에 새겨진 여럿의 무늬를 읽기도 한다. 그 무늬는 흐릿하고 잔잔한 것도 있고 짙고 격렬한 것도 있다. 화로의 불씨 같은 것도 있고 요즘의 바깥처럼 차가운 얼음 같은 것도 있다. 어젯밤에 나는 이 무늬 몇 개를 손으로 쓸어 어루만졌다. 그리고 기억의 무늬를 쓰다듬고 있노라니 무늬는 삼가게 하고 엄숙하게 해 삶에 성스럽게 머무르게 했다.   밤이 제법 깊어서야 호두를 까는 일이 끝났다. 바람 소리는 비탈이 쏟아지는 듯이 훨씬 거칠어졌다. 그러나 앞의 세 가지 일을 떠올리고 나니 내 마음도 집도 환한 빛이 감싸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면에 천리향 화분 하나를 기르고 있는 듯이 그윽한 향기가 감돌았다. 문태준 / 시인마음읽기 가야 마음속 송년회 모임 문충성 시인 사람들 안부

2024-01-28

[열린광장] 평화와 행복 그리고 사랑

성탄절은 평화의 축제다. 천사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선포한다. 이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사람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마음에 깃드는 평화는 평온과 화목함이며,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은 마음속에 평화를 얻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평화를 가져야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탄절에 새로운 희망과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문학 작품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꼽을 수 있다.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 소설은 한 늙은 어부의 희망과 불굴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다. 끈질긴 노력과 투지를 통해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신념을 지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한 노인이 3일간의 사투 끝에 대어를 잡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결국 고기의 뼈만 끌고 항구로 돌아와 자신의 오두막에서 곤히 잠든다는 이야기다.     한 늙은 어부의 일화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풍부한 상징과 깊은 사상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내적 평화와 만족에 관한 주제가 훌륭히 표현된 작품이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자신의 열망을 좇아 어려움을 극복하며 잡은 대어를 잃었지만, 그 경험으로 얻은 내적 성취감과 평화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행복은 외적 성공이 아닌 내적 성장과 만족, 그리고 마음속에 평화를 갖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작품을 통해 행복은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행복은 먼바다에 나가 대어를 잡듯이 잡을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 어쩌면 행복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행복은 자신의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서 피어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 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행복이 가장 완벽한 행복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도 하나의 기술이다. 자신 속에서 행복의 샘을 파는 기술인 것이다.     올 한 해를 돌이켜 볼 때, 우리도 먼바다에 나가 사투를 벌이며 잡은 대어를 상어 떼에게 빼앗기고 앙상한 뼈만 끌고 항구로 돌아온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허무함만 남는다.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좌절의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면 평화가 머물 수 없다. 우선 평안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속 행복의 샘에 맑은 물이 고이면서 평화가 찾아온다.     평화는 이웃과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화합과 일치를 가져다준다. 그러기에 더욱 성숙한 삶을 위해서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삶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자신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과의 화합을 통해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열린광장 평화 행복 마음속 행복 내적 평화 노벨 문학상

2023-12-21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언덕에 대한 소회

새벽 언덕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언덕 위로 펼쳐진 안개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만큼 뒷걸음질친다는 것을. 언덕 끝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념 속에 있었다는 것을. 삼척 정라진 언덕을 오르면서 알 수 없는 황홀에 잠겼었다. 땅이 겹쳐 천천히 내게로 다가와 이마를 만지며 뒤로 물러섰고, 작고 투명한 물방울 입자가 온몸을 향해 친구의 이름 위로 날아 올랐다. 풀섶 위로 나지막히 내려 앉은 유리구슬의 유희. 풀벌레 노래하는 새벽 언덕은 한창 무르익은 학예회 무대 같았다. 그날 우리는 언덕을 넘어 작은 통통배를 탔다. 그리고 12시간의 거친 항해 끝에 친구가 기다리는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밤 부두를 걸으며 오징어잡이 배들이 켜놓은 휘황찬란했던 집어등의 수만큼이나 그리움이 조각들이 밤 하늘 별만큼 가득히 저미어 왔다.   소학교를 가기 위해 언덕 두 곳을 넘어야 했다. 학교 가까운 언덕은 눈 오는 날이 장관이었다. 사내 아이들은 종이 널판지를 깔고, 책가방을 깔고 눈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단발머리 여학생들은 장갑 낀 손을 호호 불며 언덕 가장자리 돌담을 의지해 느린 등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허연 입김을 뿜으며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나는 언덕에는 유년의 기억들이 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이제는 모두 지나가 버린 유년의 기억 속엔 눈 덮힌 하얀 언덕과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한 소녀의 활짝 웃는 모습이 아직도 아롱진다 “퍼얼펄 눈이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져 온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쿼렌시아가 된 Quintin 길의 작은 언덕. 출근 길, 퇴근 길에 들려 먼동을, 노을을 사랑하게 된 언덕. 1990년 초 미국에서 개봉된 시네마 천국(Niobe Cinema Paradiso)의 main theme을 들으며 새벽 언덕에 오르고 있다. 에리오 모리코내가 작곡해 아카데미 영화 음악상을 수상한 곡이다. 호흡을 잃어버릴 만큼 피아노와 Cello의 하모니가 가슴을 쓸어내듯 아프다. 소학교 때 하얗게 눈으로 덮힌 언덕의 소회며, 대학 일 년 때 삼척 정라진 언덕길을 넘으며 새벽 안개처럼 아롱졌던 기억이며, 고향을 뒤로 두고 이제 편해져가는 Quintin 길의 언덕에 피어나는 들풀들의 작은 흔들림마저 모두 나를 지탱해온 의미가 되었다.   내가 아직 노래할 수 있는 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를 지으신 이의 사랑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짓에 무릎 꿇지 않은 그의 품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인, 화가)     시카고, 이곳에서도 먼 위스컨신 / 아득한 언덕 두려움 깨는 울림 / 시월의 Holy Hill 붉게 피어 난다 / 휘영찬란 불빛 없고 종소리 사라진 오지 / 다만 그 곳 풀잎 스치는 소리 / 보금자리 찿아 드는 새들의 날갯짓 / 먼 발치 Holy Hill 고요로 가득해 / 한 알이 썩어 많은 열매 맺는 텅 빈 들녘 / 고요의 소리 시월의 Holy Hill / 광야의 나지막한 기도소리 / 아무도 찾지 않는 좁은 길 / 든든히 세워 지는 하늘소리 // 낙엽도 내리고 / 별빛도 내리고 / 하늘 고요도 내리는데 / 광야의 울음 소리 올라가네 / 텅 빈 들판의 손길 기도의 향 올라가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언덕 소회 새벽 언덕 언덕과 마음속 언덕 위로

2023-10-23

[이 아침에] 마음의 주름살을 펴는 법

“얘! 오랜만에 만났는데 마스크 좀 벗어봐.” “마스크는 왜? 안 돼.” “안 되긴 왜 안 되는데, 잠깐만 벗어봐 예쁜 얼굴 좀 보자.” “예쁘긴 뭐가 예뻐, 다 늙어빠졌는데.” “그래도 너는 나보다 젊잖니.” “젊으면 뭐 주름살이 피해 가나, 얼굴이 자글자글한 데.”     90세 된 선배 언니가 80대 중반을 지나는 후배에게 마스크를 벗으란다. 주름살 보이기 싫어 못 벗겠다는 후배는 선배의 집요한 설득과 강요에 결국 마스크를 벗으면서 말했다. “봐 주름 많잖아.”     주름살 실랑이를 옆에서 듣는데 불똥이 나에게 튈 것 같았다. 얼른 자리를 피하는 데 아니나 다를까 후배는 고개를 돌리면서 나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목사님! 나 주름 많죠?” 있는 주름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나이 들면 주름이 다 생긴다고 해봐야 정답은 아닐 것 같아 그냥 못 들은 체하고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다행히 나의 몸은 이미 반쯤 움직이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도외시되었지만,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후배는 도망칠 곳도 없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 “얘! 나 주름 많지?” 무슨 답이 나올지 자못 궁금해 내빼던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기습 질문을 받은 후배의 난처해 하는 마음이 몇 발짝 떨어진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일찍 빠져나오길 잘했지’ 하면서 답을 기다리는데 ‘그놈의 주름살이 뭐길래’라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에 주름이 잡혔다.   사실 주름살 좀 있다고 그리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리 주름살이 인생의 품위와 경륜이라고, 웃음과 울음이 빚어낸 삶의 흔적이요 세월이 만든 작품이라고 말한들 주름살을 반가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얼굴에만 주름살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주름살은 또 어쩔 것인가? 인생길에 마주치는 좌절과 실패가 상처가 되어 마음에 주름 한 줄을 더 새겼고, 오해와 편견이 또 하나의 깊은 주름살을 마음에 수놓았다. 이민 생활의 갑갑함이 스트레스가 되어 마음의 잔주름을 그었고, 사고와 재해, 갈등과 다툼을 겪을 때마다 짙은 주름살이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았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주름을 싫어했다. 손빨래한 옷감을 다듬잇방망이로 두들겨 주름을 폈다. 숯을 올린 조그만 쇳덩이가 옷감 사이로 휘젓고 다닐 때면 아무리 심하게 구겨졌던 옷이라도 반듯하게 펴졌다. 우리 조상들은 없는 살림에도 옷과 이불 홑청의 주름을 펴면서 삶의 주름도 함께 펴지기를 바랐다.   얼굴의 주름살은 수술로 펴고, 구겨진 옷감은 다듬이질로 펼 수 있다면 마음의 주름살은 어떻게 펼 것인가? 이민 생활이라는 다듬잇돌 위에 위태롭게 선 인생에 고난이라는 방망이가 사정없이 내리칠 때가 있다. 아프지만, 참다 보면 그 방망이질이야말로 인생의 주름을 펴는 흥겨운 가락이 된다. 세월이 아로새긴 마음속 주름살이 고난의 다듬이질로 펴질 때쯤이면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은 더 잘 알게 된다. 철이 드는 게다.   ‘얘! 나 주름 많지?’ 아까 주름살 실랑이에서 선배의 난처한 질문을 받은 후배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눈이 안 좋아서 잘 안 보여.” 그렇다, 얼굴이나 마음에 새겨진 주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주름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이 문제였다. 주름살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적당히 눈감고 살다 보면 마음의 주름살도 넌지시 펴질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주름살 마음 마음속 주름살 주름살 실랑이 사실 주름살

2023-05-0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별 연습

성경 전도서에 보면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건강할 때가 있으면 아플 때가 있고, 재물을 얻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고, 좋을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사랑을 받을 때가 있으면 사랑을 받지 못할 때가 있고, 인정을 받을 때가 있으면 인정을 받지 못할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가 있고, 평안할 때가 있으면 근심할 때가 있고, 행복할 때가 있으면 불행할 때가 있고, 성공할 때가 있으면 실패할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죠.   우리는 즐거운 상황을 만나기도 하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그 상황을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문제의 열쇠가 되겠지요.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호라티우스가 지은 시 가운데 죽음과 삶을 나타내는 두 개의 격언이 있지요. 그 하나가 메멘토 모리이고 다른 하나가 카르페 디엠이지요. 메멘토 모리는 자신이 언젠가 죽는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진지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뜻이겠지요. 카르페 디엠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라는 의미로 지금 접해있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겠지요.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잊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현재에 충실하며 오늘을 살라는 말이지요.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어요. 한 주 전 시카고에 폭설이 온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큰 눈은 내리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던 폭설은 그냥 이야기로 묻혀 버렸네요. 그런데 나는 폭설이 기대 되었어요. 폭설에 푹 묻히고 싶었어요. 나는 하늘이 하얗게 내려앉은 폭설에 깊이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를 그려보는 상상을 했어요. 생각도 잠기고, 시간도 잠기고, 미세한 움직임마저 잠겨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를 기다렸다고나 할까요?   정오가 지나갈 무렵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이내 세상은 하얗게 물들고 나무 가지마다 눈꽃이 피었어요. 눈이 쌓일수록 마음 속은 거추장스런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린 수묵 산수화처럼 흑백의 단순한 세상 속으로 나를 이끌고 갔지요. 데크 위에 설치한 카노피 위에 쌓인 눈을 털어 내듯 마음속 상념을 털어내었어요. 차가 끊기고 사람의 발길이 사라진 거리에는 바람이 실어다 주는 희끗한 눈발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죠. 눈으로 시작된 하루가 온 종일 눈으로 꽃을 피우고 눈으로 채워져 갔지요. 높은 나무 잔가지가 눈 무게에 견디다 못해 툭 툭 부러졌지요. 쌓인 눈 위로 마른 나뭇잎들이 바람에 미끄러지듯 빠르게 구르고 있어요.   이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나 봐요. 돌아보면 그 길 끝에서 힘들었던 시간들이 보이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넘어 문득 아픔의 시간들도 다가 오고 있어요. 늘 바쁘게 살았고 걷기보다는 뛰어야 할 시간이 더 많았던 한 해. 서로를 돌아보지 못한 분주함으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기 보다 내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온 순간들이 많았어요.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야 함’이 마땅함에도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간들이 후회가 되네요.   Fireplace에 불을 집히고 깊숙이 앉아있어요. 한 해를 돌아 보는 시간, 스치는 모든 일상이 내게는 스승이었고, 다정한 친구였고, 따뜻한 연인이었어요. 내게 다가왔던 모든 순간의 일들은 생각하고 다짐해야 할 삶의 화두였고, 헤쳐 나가야 할 하루의 과제였어요.     나무가 불 길을 내며 타오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어요. 우리 인생도 이처럼 훨훨 타오를 때가 있었지요. 누구도 말리지 못할 만큼 쉬지 않고 달려 갔던 시간이 있었지요. 불꽃이 시들어 가면서 나무는 마침내 재가 되어 가고 있어요. 이 작은 몸에 지나간 모든 일들을 채워놓을 수 없어 장작이 꺼져가듯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간. 슬프고도 행복한 추억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내 이별을 고하고 있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별 연습 이별 연습 마음속 상념 나무 잔가지

2022-12-29

[룩킹포맘-뉴욕주 오성민씨] "집 밖에 혼자 나왔다가 길 잃어"

“멋진 가족의 가장으로, 엔지니어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만, 마음속 한켠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항상 있었어요. 이젠 채울 수 있을까요?”     내년에 쉰이 되는 오성민(크리스 성 페돌레스키·사진)씨는 한서린 눈물을 흘렸다. 스튜디오에는 아내와 딸이 지켜보고 있었다.     1978년 그는 서울 노량진에서 길거리를 헤매다 발견됐다. 어렴풋한 기억에는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있는 상태였다. 어린 성민은 사자 얼굴 모양의 쇠문고리가 달린 대문을 나가 길거리 음식 냄새를 쫓아가다 결국 길을 잃게 됐다. 그는 동작경찰서에서 미아로 신고돼 성로원(고아원)으로 인계됐고 동방사회복지회를 거쳐 뉴욕으로 가게 된다.     서류에는 그가 1973년 9월 10일생으로 적혀있지만, 이는 추정이며 그의 이름도 보육원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혼자 길거리를 헤매다 고아가 됐으니 부모님의 잘못은 전혀 없어요.     제가 행복하게 살아온 것처럼 부모님도 행복하게 잘 살아오셨으면 좋겠고, 제가 힘겨웠던 것 보다는 덜 힘드셨다면 좋겠어요.”  그는 40여년 내내 쉽지 않은 시간을 태권도로 이겨냈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과 딸도 태권도인이 됐다.       “아이들이 ‘아빠의 가족’을 찾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어서 고마워요. 그리고 입   "입양인들에 귀 기울여준 아동권리보장원과 미주중앙일보에도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어요.”     ‘룩킹포맘 투게더’는 미주중앙일보와 한국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공동 제작하고 있으며 ‘농심 아메리카’가 후원한다.     최인성 기자룩킹포맘-뉴욕주 오성민씨 동작경찰 엔지니어 미주중앙일보 유튜브 길거리 음식 마음속 한켠

2022-12-08

[독자 마당] 마음안의 소리

자연의 소리는 굳이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 물소리만이 아니다. 더 원초적인 자연의 소리는 내 마음 안에서 울려오는 소리일 거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관(觀)이라 한다.     자신의 마음을 관(觀)하는 정진이 일상의 모든 행위를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아무리 험난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살더라도 올바른 자신의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오늘날 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온갖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다 보니 본래의 자신은 잃어버리고… 남의 눈을 위해 거짓과 허상의 옷을 걸치고 살아가고 있다.   의식주도 자신을 위한 것보다 남을 먼저 의식한다. 그러나 보니 제대로 취사선택도 하지 못하고 분별없어 받아들이는 무리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즐거운 삶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진 고달픈 삶이 된다.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여 자신 마음의 관(觀)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 속에서 허둥대며 뛰고 있다. 헛된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삶에서 빨리 벗어나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찾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온갖 종류의 소유의 얽매임을 벗고 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내 마음속 자연의 소리인 나의 관(觀)을 찾을 수 있다.   행복이란 많이 소유하는 삶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 즐거움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삶을 살아야 가능하다.     마음 안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밖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살고 있는 현대인의 지나친 욕망은 스스로의 삶을 힘겹게 만든다.     아름다운 삶이란 자연과 함께 하는 일상이다. 이산하 / 노워크독자 마당 마음 소리 마음속 자연 바람소리 물소리 자신 마음

2022-07-31

[이 아침에] 마음속 ‘공간’ 만들기

바람에 담겨오는 유월의 신록 냄새가 뜰을 가득 채운다. 잠시 쉬어가도 좋으리라. 눈을 감으며 마음을 비워본다.   미지의 공간으로 여행을 떠났다. 낯선 곳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설레며 가방을 꾸렸다. 늘 똑같은 일상으로 잔잔하던 가슴에 파문이 일렁였다. 처음엔 간편하게 작은 가방을 선택했지만 방문하는 세 나라가 위도의 차이로 날씨 변화가 여름과 겨울을 넘나드는 지역이기에 여러 가방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야 했다.     뉴질랜드를 관광하는 중이었다. 웅장한 산맥과 화산, 짙푸른 우림과 초원의 다채로운 풍경은 우리의 마음을 마구 빼앗아 갔다. 환경 오염도 없고 풍광이 빼어난 그곳에서 여유작작하게 노니는 소들을 보며 일상에서 조였던 긴장의 끈을 늦추고 있을 때였다.       가이드가 그 지역의 특성을 설명한 후 기념품 매장으로 안내했다. 이곳의 특산물은 지구촌에서 한 군데 밖에 없다면서 진지하게 소개했다.  “이것은 산양의 태반으로 만든 화장품으로 피부암을 방지하는 특효가 있습니다.” “이 제품은 블루베리로 만들어 눈에 좋고요, 이 나라에는 안경을 쓰는 어린이가 없습니다.”   시력이 나쁜 나는 눈에 좋다는 말에 귀가 번쩍 열리며 솔깃했다. 언제 또 오겠느냐는 가이드의 설득 어린 말에 어느새 그 상품을 집어 계산대로 향하고 있었다.     물건을 건네 받은 후에 내 마음 한편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물건을 담아 가지고 갈 가방의 공간 여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꾸겨 넣어 보리라. 다음 장소에서는 더는 물건을 사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이동하는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관목인 마누카꽃을 가리키며 가이드의 목소리 볼륨이 높아졌다.   “이 꿀은 위암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약효가 있습니다. UMF 10등급으로 식품 이상의 약품으로 인정받습니다.”   내 귀가 얇은 걸까? 그 말에 또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마음이 밀고 당기는 갈등이 일어났다. ‘아니야.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수고하는 여러 사람과 가족을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해. 기왕이면 면세 혜택도 받고 효능 좋은 특산물을 사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어쩌나! 그 물건을 넣을 가방에 공간이 없었다. 들어갈 여백이 없다는 사실은 마음의 넉넉함을 빼앗았다.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공간의 여유를 없앤다는 사실을 몰랐다. ‘새로 구매한 물건을 담기 위해 새 가방까지 사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번 여행에 동행한 부부가 새 가방을 사서 계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린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듯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여유의 느낌은 공간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는 욕심도 여유를 빼앗아 간다. 이제 거미줄처럼 뒤얽힌 머릿속을 비우려 한다. 생각을 비울 때 판단을 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의 공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비우는 훈련을 해야겠다. 컴퓨터 내부 구조와 같은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디스크의 저장 용량을 확인하듯이, 내 삶 속에서도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한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마음속 공간 공간 여부 마음 한편 산맥과 화산

2022-06-22

[이 아침에] 마음속 ‘공간’ 만들기

바람에 담겨오는 유월의 신록 냄새가 뜰을 가득 채운다. 잠시 쉬어가도 좋으리라. 눈을 감으며 마음을 비워본다.   미지의 공간으로 여행을 떠났다. 낯선 곳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설레며 가방을 꾸렸다. 늘 똑같은 일상으로 잔잔하던 가슴에 파문이 일렁였다. 처음엔 간편하게 작은 가방을 선택했지만 방문하는 세 나라가 위도의 차이로 날씨 변화가 여름과 겨울을 넘나드는 지역이기에 여러 가방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야 했다.     뉴질랜드를 관광하는 중이었다. 웅장한 산맥과 화산, 짙푸른 우림과 초원의 다채로운 풍경은 우리의 마음을 마구 빼앗아 갔다. 환경 오염도 없고 풍광이 빼어난 그곳에서 여유작작하게 노니는 소들을 보며 일상에서 조였던 긴장의 끈을 늦추고 있을 때였다.       가이드가 그 지역의 특성을 설명한 후 기념품 매장으로 안내했다. 이곳의 특산물은 지구촌에서 한 군데 밖에 없다면서 진지하게 소개했다.  “이것은 산양의 태반으로 만든 화장품으로 피부암을 방지하는 특효가 있습니다.” “이 제품은 블루베리로 만들어 눈에 좋고요, 이 나라에는 안경을 쓰는 어린이가 없습니다.”   시력이 나쁜 나는 눈에 좋다는 말에 귀가 번쩍 열리며 솔깃했다. 언제 또 오겠느냐는 가이드의 설득 어린 말에 어느새 그 상품을 집어 계산대로 향하고 있었다.     물건을 건네 받은 후에 내 마음 한편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물건을 담아 가지고 갈 가방의 공간 여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꾸겨 넣어 보리라. 다음 장소에서는 더는 물건을 사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이동하는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관목인 마누카꽃을 가리키며 가이드의 목소리 볼륨이 높아졌다.     “이 꿀은 위암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약효가 있습니다. UMF 10등급으로 식품 이상의 약품으로 인정받습니다.”     내 귀가 얇은 걸까? 그 말에 또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마음이 밀고 당기는 갈등이 일어났다. ‘아니야.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수고하는 여러 사람과 가족을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해. 기왕이면 면세 혜택도 받고 효능 좋은 특산물을 사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어쩌나! 그 물건을 넣을 가방에 공간이 없었다. 들어갈 여백이 없다는 사실은 마음의 넉넉함을 빼앗았다.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공간의 여유를 없앤다는 사실을 몰랐다. ‘새로 구매한 물건을 담기 위해 새 가방까지 사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번 여행에 동행한 부부가 새 가방을 사서 계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린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듯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여유의 느낌은 공간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는 욕심도 여유를 빼앗아 간다. 이제 거미줄처럼 뒤얽힌 머릿속을 비우려 한다. 생각을 비울 때 판단을 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의 공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비우는 훈련을 해야겠다. 컴퓨터 내부 구조와 같은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디스크의 저장 용량을 확인하듯이, 내 삶 속에서도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한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마음속 공간 공간 여부 마음 한편 산맥과 화산

2022-06-19

[잠망경] 내장(內臟) 대화

- There are no facts, only interpretations: 실제는 없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다. - 니체 (1844~1900)   정신과 수련의 시절, 부드러우면서 날카로운 언변이 뛰어났던 지도교수가 있었다. 사람의 무의식을 예리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는 그는 나에게 환자 마음을 직감적으로 파악했다면 오래 뜸 들이지 말고 그것에 대하여 말하라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는 잘 각색된 영화에서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것. 틀려도 좋으니까 서슴없이 소견을 피력하라는 그의 조언이 지금도 흔쾌하다. 단, 환자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데면데면한 관계라면 그러지 말 것.   당신과 나의 의사소통은 두 저자가 머리를 맞대고 공을 들여 만들어 내는 공동작품이다. 그것은 붙박이 기념사진이 아니라 끊임없이지속하는 동영상으로서 적절한 시점에서 이야기의 맺음새가 있을 뿐, 시즌 1에 연이어 시즌 2, 3, 4로 이어지는 네버 엔딩 스토리의 연속드라마다.   정신과 진료는 심근경색증이나 류머티스성 관절염 같은 육체적 상황과는 달리 바람이나 기압골 같은 무형의 대상을 취급한다. 사람 마음을 X-ray로 찍을 수 없다. 정신과 의사는 꿈의 메커니즘을 답사하는 무의식을 상대한다. 인간의 언어 자체가 꿈과 무의식의 구조와 많이 닮았다는 논리를 부정하지 못한다.   정신분석가는 무의식을 해석하는, 즉 무의식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일에 전념한다. 사전은 ‘해석(解釋)’을 ‘사물이나 행위 따위의 내용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일’이라 일컫는다. 해석은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법이다. 풀 解. 풀 釋.   영한사전에 나와 있는 ‘interpretation: 해석, 설명’이라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해석과 설명이 합쳐진 ‘해설’이라는 단어를 채택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에헴, ‘꿈의 해설’이라 하면 어떨까 하는데. 풀 解. 말씀 說.   解: 이해, 오해, 곡해, 해체 같은 단어에서처럼 解는 그리 호락호락한 말이 아니다. 응어리를 너무 심하게 풀어주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격 자체가 일시적으로 해체되는 상황이 터지지 않기를 바랄 뿐. 정신분석가들은 무의식을 파헤쳐 갈등을 해소하는 작업을 시도할 때 매우 조심스럽다.   說: ①말씀 설 - 설교, 설화, 설문, 논설, 학설, 같은 묵직한 단어가 즐비하다. ②달랠 세 - 선거유세(選擧誘說), 할 때 ‘유설’이 아니라 ‘유세’로 읽는다.   달래다: ①슬프거나 고통스럽거나 흥분한 감정을 가라앉게 한다. ②좋고 옳은 말로 잘 이끌어 꾀다. ‘꾀다’?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서 자기 생각대로 끌다’. 꾀다=꼬시다. 선거유세는 민심을 살살 꼬드기는 작업이다.   한국 정치가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팩트(fact)’는 16세기 고대불어와 라틴어로 ‘행동, 해야 할 일’이라는 뜻이었다가 17세기에 ‘진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로 변했다. 환자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귀를 기울이는 환청 증세는 실제가 없이 자기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나는 힘들여 해석하고 설명한다.   목소리가 부드러우면서 카랑카랑한 그 지도교수 왈, 환자와 무의식으로 교감하는 연습과 능력이 환자를 제대로 해석하는 지름길이라 했다. 그 과정에서 한두 번 틀린 말을 하는 것이 환자의 마음 전체를 틀리게 해석하는 것보다 낫다는 거다. 그렇게 펼쳐지는 사람 사이의 대화를 ‘visceral conversation, 내장(內臟) 대화’라 일렀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내장 대화 conversation 내장 환자 마음 자기 마음속

2022-04-19

[삶의 뜨락에서] 다락방 청소

 한옥의 여러 공간 중 다락방은 무척 재미있는 공간이다. 대부분의 방이나 마루 부엌 등이 모두 드러나 보이는 공간이지만 다락방은 닫혀있는 문을 열고 굳이 힘들여 올라서야 눈앞에 열리는 숨어있는 장소다. 공개된 집안에 보이게 놓아둘 수 없는 것들이 숨어드는 곳이다. 지극히 비밀스럽게 숨겨 놓을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띄지 않게 감추어 놓고 싶은 물건들이 자리 잡는 곳이다.   때로는 아이들의 은밀한 놀이장소가 되어주는 곳이다. 어른들의 눈에 띄지 않고 방해받지 않으며 소곤소곤 아이들만의 가지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런저런 물품들이 살짝 먼지를 머금고 자리 잡고 있어 아이들 혹은 어른들도 먼지를 털고 찾아내는 아련한 기억과 상상을 불러오는 그래서 재미있는 공간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어느 시절 요긴했고 어느 날에는 반짝거릴 수 있는 그런 물건들이 다락방에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가끔 마음이 질서 없어질 때 다락방에 올라 그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때 애틋했던 애장품을 만지고 바라보고 하며 마음을 추스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특별한 공간이다. 별로 방해받지 않고 어둠 속에 앉아 어떤 멍한 생각에 잠겨 있기에 좋은 곳이다. 살다 보면 우리의 삶이라는 어떤 공간 속에도 다락방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은 아니야” 하며 마음이 향하지만 잠시 숨겨놓기도 하고 지난날 잊히지 못하는 혼자만의 무엇을 넣어두는 곳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드러내 말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귀중한 추억이나 희망이나 바램 그리고몰래한 사랑 같은 것을 마음속 어느 한 쪽에자리 잡게 하는 다락방 같은 것이 있어 때로는 그것으로 힘든 세상살이를 견디어 낸다.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특별한 것 저장소가 다락방이 되어 마음속에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어 그래서 재미있는 다락방이 된다.   3월의 시간 속에 있으면서 봄이라는 계절과 만난다. 수북하던 삭아버린 낙엽 더미를 헤치고 봄꽃의 새싹들이 쑥쑥 자라 오르고 있다. 지난해의 묵은 것들을 보내고 새로운 기운이 새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먼지를 청소하고 반짝반짝하게 하여 새날을 준비하는 모양새이다. 봄이라는 계절은 청소를 해야 하고 청소하기 좋은 시간이 된다. 움츠리며 저 구석에 던져놓았던 소망의 보자기를 펼쳐보는 시간이다. 다락방 그곳의 작은 창문을 열고 봄냄새를 들이고 먼지를 털고 숨어있던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해야 한다. 지난해에 이런저런 제약으로 잠시 던져놓았던 것들을 찾아내어 제 모습 제 숨결을 찾아주어야 하는 때가 돌아왔다. 마음속 다락방에 숨겨 놓았던 우리의 소망과 꿈을 깨워서 싹을 내고 푸른 기운을 담아 새롭게 잊었던 세계로 나가야 하는 다락방 청소의 계절이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다 보면 마음이 개운해지고 집 안 구석구석이 새로운 기운으로 채워지고 우중충하던 집이 제 색깔을 찾고 빛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락방은 더욱 그렇다. 일 년 내내 햇빛 한번 들기 어렵지만 봄맞이 청소를 거치면서 햇볕을 담아와 뿌린 듯 환해지고 보다 쓸모있는 공간이 되어버린 기분이 절로 든다. 실제로도 그렇다. 정말 쓸데없는 것은 버리고 “아 이것이 여기에 있었네” 하며 뜻밖에 발견한 것을 닦고 광내고 하여 집안에 요긴한 물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직은 아니야” 하며 미루어 놓았던 다락방 물건 같은 어느 날의 꿈을 꺼내어 세상을 향하여 나서게 하는 마음속 다락방 청소도 봄날을 맞아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한옥 다락방이 재미있는 공간인 것처럼 우리 마음속 다락방이 정말로 우리들의 재미있는 곳이 되어야 봄날이 재미있어 질듯하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다락방 청소 다락방 청소 마음속 다락방 다락방 물건

2022-03-21

[살며 생각하며] ‘No 여기까지!’

 요즘 두 살 찰리 말이 한창 늘고 있다. 장난감 타일로 만든 집을 부순 후 엄숙한 얼굴로 내게, “다쉬만둡씨다” 할 때는 정말 요절 복통이다. 데이케어냉냉님(선생님)께 배운 말임에 틀림없다. 요새는 콩글리시에 빠졌다. “No 찡찡 to 엄마(엄마가 주문한 것 같다!)” “No 푸푸 to 기저귀” (잘 때만 차는 기저귀에 푸푸를  않겠다는 굳은 결심!) “No 때려 누나(이것은 나의 주문!)” 이렇게 찰리 두 살 인생에 “No” 시리즈가 늘어 간다.     사막을 건너는 마지막 방법인 여섯 번째에는 유일하게 ‘No’가 들어간다.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Do not stop at false borders).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Shifting Sands)의 저자 스티브 도나휴와 친구 탤리스는, 니제르로 넘어가는 국경이 다시 열렸다는 말에 트럭을 얻어타고 니제르 국경을 향한다. 하지만 첫 번 도착한 국경에서 어느 여자가 부탁한 편지로 인해 보초에게 붙들린다. 머뭇거리며 위험에 빠질 찰나, 친구 탤리스의 급박한 외침에, 떠나려는 트럭을 간신히 잡아타고 진짜 니제르의 국경을 향해 가게 된다. 그가 멈출 뻔했던 곳은 진짜가 아닌 허상의 국경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사막 같은 인생을 잘 건너기 위한 마지막 방법은, 실제가 아닌 국경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허세 가득한 보초 때문에 머뭇거리며 붙잡혀 있지 않은 것이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우리는 수 없는 국경과 보초를 마주하게 된다. 이별, 만남, 퇴직, 새로운 일, 투병, 새로운 공부 등이, 그 너머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 불안하기만 한 새로운 국경이다. 이 국경에서 내 마음속 보초는 이렇게 말한다. “과연 혼자 잘할 수 있겠니? 너무 이기적인 결정 아닐까? 이제 와서 새로운 일을? 그러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거 아냐? 여기까지인 거야!” 그 앞에서 머뭇거리다, 스스로 그어 버린 허상의 국경에 갇혀버리기엔 삶의 모든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     65세 임기종씨는 설악산 최후의 지게꾼이다. 마라토너가 꿈이었다. 아무리 뛰어도 숨이 가쁘지 않은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3일을 굶고 뛰니 별이 보였다. 16살 때부터 설악산에서 짐을 나르며 생활하다 첫눈에 반해 결혼한 아내는 지적장애인이다. 하나뿐인 아들은 심한 자폐를 가지고 태어났다. 여기까지구나 하고 포기할 법도 한데, 그때부터 임기종씨는 아들이 사는 시설과 다른 장애인 기관들에 기부를 시작했다. 동네 노인들 효도관광도 시켜드리고, 쌀과 라면도 정기적으로 갖다 드렸다. 이렇게 한 기부가 1억원이 넘는다. 그의 꿈은 시설에 있는 아들을 데려와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없는 분’들 도와주고, 소년소녀 가장들 장학금 주는 게 소원이시란다. 158cm 키에 60kg 작은 체구로 130kg짜리 냉장고까지 산으로 날랐던 임기종씨는, 설악산에서 차가 더는 못 들어가는 사인인 ‘여기까지’에서부터 빛나는 분이시다.     삶이 국경처럼 다가올 때, 멈추지 않고 이렇게 계속 나아가는 분들의 삶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인생이라는 그 사막길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허상의 국경에 붙들려, 여기까지인가 하며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찰리 표현으로, No 여기까지, Yes 이제부터다. 무엇이 우리를 붙들던, 허상의 국경에 멈춰 서지 않는, 호기심에 찬 여행자의 자세로 한 번 살아볼 일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니제르 국경 마음속 보초 설악산 최후

2022-03-02

[전문가 기고] 군중심리의 3가지 특성

“혼자 있으면 교양 있는 사람일지라도 군중에 속하면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야만인이 된다.” (귀스타브 르봉)   1960년도 후기에 히피 문화가 미국을 휩쓴 적이 있었다. 히피들은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면서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전쟁반대 시위를 벌였다. 공동집단 생활(communal living)을 하고 프리섹스를 주장 했다.   젊은 시절 열성파 히피였던 중년 백인 여자를 옛날에 진료한 적이 있다. 심한 우울증과 염세주의가 주요 증상이었다. 아버지를 모르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가 전혀 공부를 안 하는 통에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y college)에 갈 것이라고 그녀는 씁쓸히 말했다.   아들은 가끔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하다며 알아볼 방법을 강구한다. 엄마는 당시에 워낙 많은 남자가 있었고 다 뿔뿔이 헤어졌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모자(母子)는 좁은 아파트에서 별 의사소통(communication) 없이 무덤덤하게 살았다.   표정이 상냥했던 것 말고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그 환자 이야기를 하면서 ‘com-’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세 개나 들먹이는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com’이라는 라틴어 접두사가 지닌 ‘together, 함께, 같이’라는 의미에 신경이 예민해지기 때문이리라.   한자어로 ‘공(共)’ 실로 공포스러운 뉘앙스가 숨어있는 컨셉트이다. 공산주의는 재산을 공유하려 하고 히피들은 남녀의 사랑을 여럿이 공유했던 것이다. 인간은 왜 남의 돈과 사랑을 공유하려고 덤벼드는가.   귀스타브 르봉(1841~1931)은 파리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물리학, 고고학, 인류학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1895년에 발간한 저서 ‘군중심리’로 정신과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재능있는 프랑스인이었다.   그의 군중심리에 대한 뛰어난 저술을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를 위시하여 히틀러,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들이 애독했다 한다.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켜 러시아 공산주의를 설립한 레닌(1870~1924)이 르봉의 군중심리 이론과 연계돼 있다는 보고도 있다.   르봉은 군중심리의 특징으로 개인의 정체성 상실을 첫 번째로 손꼽는다. 개인의 특성이 귀신처럼 사라지고 단체적인 감성과 행동이 난무하는 경지다. 개인의 특수성이 부재한 대신에 익명성(anonymity)이 사람을 송두리째 지배한다.   두 번째 특징은 한 무리의 군중이 생겨난 후 그 단체요원들이 서로에게 끼치는 막강한 전염성(contagion)이다. 독자적 생각을 하지 못하는 군중 마음속으로 얼토당토않는 슬로건이 전파력 강한 바이러스처럼 일파만파 퍼져간다.   세 번째는 암시성(suggestibility). 눈의 초점이 흐리멍덩한 사람들이 떼거리로 최면술에 걸린 듯 바보천치 같은 행동을 한다. 독재자들은 그런 현상을 호시탐탐 이용한다. 넷플릭스 TV쇼 전 세계 1위를 기록한 한국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처럼 좀비는 전체주의적 행동에 휩쓸린다.   이런 군중심리는 거리로 뛰쳐나온 군중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입춘이 지난 겨울날 집안에 편안히 앉아 시시때때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취향에 맞는 인터넷 신문을 애독하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비일비재하게 터지는 이벤트들이다. 서 량 / 정신과 의사전문가 기고 군중심리 군중심리 이론 군중 마음속 전체주의적 행동

2022-02-10

[잠망경] 군중심리

-혼자 있으면 교양 있는 사람일지라도 군중에 속하는 동안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야만인이 된다.- 귀스타브르봉   1960년도 후기에 히피 문화(hippie culture)가 미국을 휩쓴 적이 있었다. 히피들은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면서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전쟁반대 시위를 벌였다. 공동집단 생활(communal living)을 하고 프리섹스와 혼음(混淫)을 일삼았다.   젊은 시절 열성파 히피였던 중년 백인 여자를 옛날에 진료한 적이 있다. 심한 우울증과 염세주의가 주요 증상이었다. 아버지를 모르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가 전혀 공부를 안 하는 통에 근처 ‘community college, 공동대학(?)’에 갈 것이라고 그녀는 씁쓸히 말했다.   아들은 가끔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하다며 알아볼 방법을 강구한다. 엄마는 당시에 워낙 많은 남자가 있었고 다 뿔뿔이 헤어졌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모자(母子)는 좁은 아파트에서 별 의사소통(communication) 없이 무덤덤하게 살았다.   표정이 상냥했던 것 말고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그 환자 이야기를 하면서 ‘com-’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세 개나 들먹이는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com’이라는 라틴어 접두사가 지닌 ‘together, 함께, 같이’라는 의미에 신경이 예민해지기 때문이리라.   한자어로 ‘공(共)!’ 실로 공포스러운 뉘앙스가 숨어있는 컨셉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는 재산을 공유(共有)하려 하고 히피들은 남녀의 사랑을 여럿이 공유했던 것이다. 인간은 왜 남의 돈과 사랑을 공유하려고 덤벼드는가.   귀스타브르봉(Gustave LeBon, 1841~1931)은 파리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물리학, 고고학, 인류학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1895년에 발간한 저서 ‘군중심리’로 정신과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재능이 부글거리는 프랑스인이었다.   그의 군중심리에 대한 뛰어난 저술을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를 위시하여 히틀러,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들이 애독했다 한다. 볼세비키 혁명을 일으켜 러시아 공산주의를 설립한 레닌(Lenin, 1870~1924)이 르봉의 군중심리 이론과 연계돼 있다는 보고도 있다.   르봉은 군중심리의 특징으로 개인의 정체성 상실을 첫 번째로 손꼽는다. 개인의 특성이 귀신처럼 사라지고 단체적인 감성과 행동이 난무하는 경지! 개인의 특수성이 부재한 대신에 익명성(匿名性, anonymity)이 사람을 송두리째 지배한다.   두 번째 특징은 한 무리의 군중이 생겨난 후 그 단체요원들이 서로에게 끼치는 막강한 전염성(傳染性, contagion)이다. 독자적 생각을 하지 못하는 군중 마음속으로 얼토당토아니한 슬로건이 전파력 강한 바이러스처럼 일파만파 퍼져간다.   세 번째는 암시성(暗示性, suggestibility)! 눈의 초점이 흐리멍덩한 사람들이 떼거리로 최면술에 걸린 듯 바보천치 같은 행동을 한다. 독재자들은 그런 현상을 호시탐탐 이용한다. 2022년 1월 28일 이후 2월 첫 주말에 걸쳐 넷플릭스 TV쇼 전 세계 1위, 한국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처럼 좀비는 전체주의적 행동에 휩쓸린다.   이런 군중심리는 거리로 뛰쳐나온 군중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입춘이 지난 겨울날 집안에 편안히 앉아 시시때때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취향에 맞는 인터넷 신문을 애독하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비일비재하게 터지는 이벤트들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군중심리 군중심리 이론 러시아 공산주의 군중 마음속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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