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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별 연습

신호철

신호철

성경 전도서에 보면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건강할 때가 있으면 아플 때가 있고, 재물을 얻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고, 좋을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사랑을 받을 때가 있으면 사랑을 받지 못할 때가 있고, 인정을 받을 때가 있으면 인정을 받지 못할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가 있고, 평안할 때가 있으면 근심할 때가 있고, 행복할 때가 있으면 불행할 때가 있고, 성공할 때가 있으면 실패할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죠.
 
우리는 즐거운 상황을 만나기도 하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그 상황을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문제의 열쇠가 되겠지요.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호라티우스가 지은 시 가운데 죽음과 삶을 나타내는 두 개의 격언이 있지요. 그 하나가 메멘토 모리이고 다른 하나가 카르페 디엠이지요. 메멘토 모리는 자신이 언젠가 죽는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진지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뜻이겠지요. 카르페 디엠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라는 의미로 지금 접해있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겠지요.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잊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현재에 충실하며 오늘을 살라는 말이지요.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어요. 한 주 전 시카고에 폭설이 온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큰 눈은 내리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던 폭설은 그냥 이야기로 묻혀 버렸네요. 그런데 나는 폭설이 기대 되었어요. 폭설에 푹 묻히고 싶었어요. 나는 하늘이 하얗게 내려앉은 폭설에 깊이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를 그려보는 상상을 했어요. 생각도 잠기고, 시간도 잠기고, 미세한 움직임마저 잠겨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를 기다렸다고나 할까요?
 
정오가 지나갈 무렵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이내 세상은 하얗게 물들고 나무 가지마다 눈꽃이 피었어요. 눈이 쌓일수록 마음 속은 거추장스런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린 수묵 산수화처럼 흑백의 단순한 세상 속으로 나를 이끌고 갔지요. 데크 위에 설치한 카노피 위에 쌓인 눈을 털어 내듯 마음속 상념을 털어내었어요. 차가 끊기고 사람의 발길이 사라진 거리에는 바람이 실어다 주는 희끗한 눈발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죠. 눈으로 시작된 하루가 온 종일 눈으로 꽃을 피우고 눈으로 채워져 갔지요. 높은 나무 잔가지가 눈 무게에 견디다 못해 툭 툭 부러졌지요. 쌓인 눈 위로 마른 나뭇잎들이 바람에 미끄러지듯 빠르게 구르고 있어요.
 
이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나 봐요. 돌아보면 그 길 끝에서 힘들었던 시간들이 보이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넘어 문득 아픔의 시간들도 다가 오고 있어요. 늘 바쁘게 살았고 걷기보다는 뛰어야 할 시간이 더 많았던 한 해. 서로를 돌아보지 못한 분주함으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기 보다 내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온 순간들이 많았어요.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야 함’이 마땅함에도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간들이 후회가 되네요.
 
Fireplace에 불을 집히고 깊숙이 앉아있어요. 한 해를 돌아 보는 시간, 스치는 모든 일상이 내게는 스승이었고, 다정한 친구였고, 따뜻한 연인이었어요. 내게 다가왔던 모든 순간의 일들은 생각하고 다짐해야 할 삶의 화두였고, 헤쳐 나가야 할 하루의 과제였어요.  
 
나무가 불 길을 내며 타오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어요. 우리 인생도 이처럼 훨훨 타오를 때가 있었지요. 누구도 말리지 못할 만큼 쉬지 않고 달려 갔던 시간이 있었지요. 불꽃이 시들어 가면서 나무는 마침내 재가 되어 가고 있어요. 이 작은 몸에 지나간 모든 일들을 채워놓을 수 없어 장작이 꺼져가듯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간. 슬프고도 행복한 추억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내 이별을 고하고 있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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