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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내장(內臟) 대화

- There are no facts, only interpretations: 실제는 없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다. - 니체 (1844~1900)
 
정신과 수련의 시절, 부드러우면서 날카로운 언변이 뛰어났던 지도교수가 있었다. 사람의 무의식을 예리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는 그는 나에게 환자 마음을 직감적으로 파악했다면 오래 뜸 들이지 말고 그것에 대하여 말하라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는 잘 각색된 영화에서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것. 틀려도 좋으니까 서슴없이 소견을 피력하라는 그의 조언이 지금도 흔쾌하다. 단, 환자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데면데면한 관계라면 그러지 말 것.
 
당신과 나의 의사소통은 두 저자가 머리를 맞대고 공을 들여 만들어 내는 공동작품이다. 그것은 붙박이 기념사진이 아니라 끊임없이지속하는 동영상으로서 적절한 시점에서 이야기의 맺음새가 있을 뿐, 시즌 1에 연이어 시즌 2, 3, 4로 이어지는 네버 엔딩 스토리의 연속드라마다.
 
정신과 진료는 심근경색증이나 류머티스성 관절염 같은 육체적 상황과는 달리 바람이나 기압골 같은 무형의 대상을 취급한다. 사람 마음을 X-ray로 찍을 수 없다. 정신과 의사는 꿈의 메커니즘을 답사하는 무의식을 상대한다. 인간의 언어 자체가 꿈과 무의식의 구조와 많이 닮았다는 논리를 부정하지 못한다.
 
정신분석가는 무의식을 해석하는, 즉 무의식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일에 전념한다. 사전은 ‘해석(解釋)’을 ‘사물이나 행위 따위의 내용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일’이라 일컫는다. 해석은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법이다. 풀 解. 풀 釋.
 
영한사전에 나와 있는 ‘interpretation: 해석, 설명’이라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해석과 설명이 합쳐진 ‘해설’이라는 단어를 채택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에헴, ‘꿈의 해설’이라 하면 어떨까 하는데. 풀 解. 말씀 說.
 
解: 이해, 오해, 곡해, 해체 같은 단어에서처럼 解는 그리 호락호락한 말이 아니다. 응어리를 너무 심하게 풀어주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격 자체가 일시적으로 해체되는 상황이 터지지 않기를 바랄 뿐. 정신분석가들은 무의식을 파헤쳐 갈등을 해소하는 작업을 시도할 때 매우 조심스럽다.
 
說: ①말씀 설 - 설교, 설화, 설문, 논설, 학설, 같은 묵직한 단어가 즐비하다. ②달랠 세 - 선거유세(選擧誘說), 할 때 ‘유설’이 아니라 ‘유세’로 읽는다.
 
달래다: ①슬프거나 고통스럽거나 흥분한 감정을 가라앉게 한다. ②좋고 옳은 말로 잘 이끌어 꾀다. ‘꾀다’?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서 자기 생각대로 끌다’. 꾀다=꼬시다. 선거유세는 민심을 살살 꼬드기는 작업이다.
 
한국 정치가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팩트(fact)’는 16세기 고대불어와 라틴어로 ‘행동, 해야 할 일’이라는 뜻이었다가 17세기에 ‘진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로 변했다. 환자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귀를 기울이는 환청 증세는 실제가 없이 자기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나는 힘들여 해석하고 설명한다.
 
목소리가 부드러우면서 카랑카랑한 그 지도교수 왈, 환자와 무의식으로 교감하는 연습과 능력이 환자를 제대로 해석하는 지름길이라 했다. 그 과정에서 한두 번 틀린 말을 하는 것이 환자의 마음 전체를 틀리게 해석하는 것보다 낫다는 거다. 그렇게 펼쳐지는 사람 사이의 대화를 ‘visceral conversation, 내장(內臟) 대화’라 일렀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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