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문장으로 읽는 책] 물속의 철학자들

“신은 보이지 않잖아요. 산소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신은 산소 아닐까요.” 재미있는 의견이었다. 그 학생은 신이 만든 우주에 왜 산소가 없을까 의아한 모양이었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신은 지구에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산소가 있다. 그러니까 신은 산소인 것이다. “그러면 신은 몸속에도 있는 거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학생은 “하지만 토하면 나가버려요”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나가이 레이 『물속의 철학자들』   학교·기업 등에서 ‘철학 대화’를 이끄는 저자의 책이다. “신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한 여중생이 내놓은 답이다. 저자는 “어째서 엉뚱한 말은 미움을 받을까, 어째서 그런 건 철학이 아니라고 여겨질까”라고 묻는다.   “의외로 아이들은 엉뚱한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모범답안, 부모에게서 이어받았을 법한 사상, 사회에 널리 퍼진 상식을 입에 담는다. 질문에 대해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철학자들은 이상한 말, 꽤나 비상식적인 사고실험을 하는 존재다. 정답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우리 삶 속 철학의 쓰임새를 묻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질문이 있다.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골머리를 앓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질문이. 언제까지 계속 일해야 하는 건가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보통이란 뭔가요? 나는 태어나도 괜찮았던 걸까요? 질문 때문에 쓰러질 듯해도 질문과 함께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을 나는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자 물속 철학 대화 모범답안 부모 나가이 레이

2024-04-10

[문예 마당] 함께 나누는 대화

며칠 전 커피숍에서 무엇인가 아쉬운 마음으로 나오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친우들과의 대화 내용은 몸 어디가 아프다는 이야기, 자식 이야기, 손자 이야기 그리고 남 이야기가 주였다. 은퇴 후 시간 여유가 있다 보니 친구들, 또는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런데 대화를 자주 하다 보니 조심해야 할 소재들이 있음을 느낀다.   주위에 나이 든 사람이 많다 보니 몸 곳곳에 아픈 십자가들을 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문제는 본인의 아픈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변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이런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대화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본인의 과거 이야기, 자식 또는 손자들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 않게 나온다. 대부분이 자랑거리다. 하지만 아무리 자랑스럽고 좋은 이야기라도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듣는 사람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 사생활 (privacy)을 중시하는 미국 사람들은  본인의 이야기, 혹은 자식이나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잘 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 소재다. 한국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을 떠난 지도 오래되었고 우리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한국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자기주장이 강한 논쟁보다는 차라리 토론 형태로 하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논쟁은 누가 옳은지 흑백을 가리자는 대화이기에 서로 열을 받게 되지만, 토론은 무엇이 옳은지를 찾는 것이기에 언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작다.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직접 할 수일은 별로 없지 않은가. 더구나 본인이 미국 시민권자라면.     우리는 본인이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서 들은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도 많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 대부분이 좋지 않은 내용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가 주고받았다는 이야기 내용이 흥미롭다. 소크라테스는 저술이나 일기를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인 플라톤 이, 특히 크세노폰 등이 소크라테스의 일화나 행적을 많이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친우가 “네 친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들었는데 ”라고 말하자,  소크라테스가 먼저 세 가지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이러했다.     친우: “네 친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소크라테스: “나에게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네가 직접 들은 이야기인지 혹은 다른 사람한테 들을 이야기인가?”   친우: “실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소크라테스: “그러면 너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모르는구나. 그런데 그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인가, 아니면 안 좋은 이야기인가?”     그리고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다시 물었다. “자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인가? 만일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를 할 이유가 있을까?”   소크라테스의 질문에는 “사실이 아닌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전하지 말라”는 내용과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도 좋지 않은 내용의 이야기는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그리고 “만일 그 내용이 좋지 않더라도 내 생활에 경각심을 울리는 이야기”라면 듣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좋은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하고 참석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상대방의 대화를 중간에 끊지 말고, 존중하는 자세로 경청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고려와 예의를 차리는 것이 건강한 대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대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난 일보다는 오늘과 내일을 위해서 책을 읽고 나 자신이 말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명렬 / 작가문예 마당 대화 수필 이야기 자식 손자 이야기 이야기 내용

2024-03-21

[취재 수첩] 무연고자와 라면 한 봉지

무연고자 박철언(64)씨의 삶은 늘 쓸쓸했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 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지난 7일 세인트제임스교회 김요한 신부가 열어준 장례식은 조촐해도 온정이 가득했다. 〈본지 12월21일자 A-1면〉   노숙자, 무연고자와 같은 소외 계층은 우리 주변에 늘 있다. 중요한 건 박씨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또다시 생겨나선 안 된다는 점이다.   취재가 끝나고 셸터를 운영 중인 김 신부에게 물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구체적인 방안을 듣는가 했는데,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라면이랑 생필품이 필요하죠. 아, 담배도….”   김 신부는 “이 사람들 돌보는 건 사실 별것 없다”며 “일반인이 가진 ‘의지’라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데리고 살면서 사고 안 치고 잘 먹고 잘 자는 일이 가장 중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인타운에서 셸터 사역을 펼친 지 15년 째다. 지금까지 약 300명 정도의 노숙자가 김 신부의 셸터를 거쳐 갔다.   그 중 살아보겠다고 의지를 갖고 취직까지 한 사례는 30명이 채 안 된다. 갱생 비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나머지는 뚜렷한 목적 없이 하루를 그냥 살아가는 이들이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거나, 다른 이들과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셸터에서의 삶이 답답해서 다시 거리로 뛰쳐나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신부는 돈 얘기를 꺼내는 것도 싫어했다. 오히려 재정 지원을 받는 게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돈을 받게 되면 도움을 주는 이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니까 그보다 음식이나 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LA시의 노숙자 정책도 슬쩍 꼬집었다.   김 신부는 “노숙자 문제라는 건 돈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어쩌면 셸터가 이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감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현실을 파악하고 어느 정도 유연한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정부와 달리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는 “굳이 돕겠다면 셸터에 와서 여기 사람들과 몇 마디 대화나 좀 해주고 잠시라도 시간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이들은 가족도 없지 않나. 사람 간에 어떤 인정을 느끼게 되면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무연고자에게 필요한건 거창한 지원이 아니다. 라면 한 봉지, 대화 몇 마디면 충분할 수 있다. 제2의 박철언씨가 나와선 안 된다. 장열 기자취재 수첩 무연고자 봉지 노숙자 무연고자 무연고자 박철언 봉지 대화

2023-12-22

[문장으로 읽는 책] 물속의 철학자들

“신은 보이지 않잖아요. 산소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신은 산소 아닐까요.” 재미있는 의견이었다. 그 학생은 신이 만든 우주에 왜 산소가 없을까 의아한 모양이었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신은 지구에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산소가 있다. 그러니까 신은 산소인 것이다. “그러면 신은 몸속에도 있는 거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학생은 “하지만 토하면 나가버려요”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나가이 레이 『물속의 철학자들』   학교·기업 등에서 ‘철학 대화’를 이끄는 저자의 책이다. “신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한 여중생이 내놓은 답이다. 저자는 “어째서 엉뚱한 말은 미움을 받을까, 어째서 그런 건 철학이 아니라고 여겨질까”라고 묻는다.   “의외로 아이들은 엉뚱한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모범답안, 부모에게서 이어받았을 법한 사상, 사회에 널리 퍼진 상식을 입에 담는다. 질문에 대해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철학자들은 이상한 말, 꽤나 비상식적인 사고실험을 하는 존재다. 정답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우리 삶 속 철학의 쓰임새를 묻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질문이 있다.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골머리를 앓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질문이. 언제까지 계속 일해야 하는 건가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보통이란 뭔가요? 나는 태어나도 괜찮았던 걸까요? 질문 때문에 쓰러질 듯해도 질문과 함께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을 나는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자 물속 철학 대화 모범답안 부모 나가이 레이

2023-12-06

“한인·흑인·라티노 이민 애환은 하나”

“한인, 라티노, 흑인사회의 이민 역사와 고민을 비교하며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세 개의 커뮤니티가 지나온 100년 동안의 미국 이민 역사를 소개하고 함께 이해하는 자리가 마련돼 학생들에게 뜻깊은 시간이 됐다.   LA총영사관(총영사 김영완)은 7일 오전 LA한국교육원에서 200여 명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 기념 타커뮤니티와의 대화’ 행사를 열었다. 연사로는 한인사회에서는 제프 김 애너하임 통합교육구(AUHSD) 교사, 라틴 커뮤니티에서는 카탈리나 리프 이민법 변호사,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세나잇 아두마스 아프리칸 코얼리션 대표가 초대됐다.   김 교사는 한인사회의 이민 시기를 50~60년대, 70~90년대 그리고 이후로 구분해 선배들의 특징과 애환을 소개했다.   그는 “한인사 수업을 주도하면서 50~7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난 부모 세대들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를 겪은 부모들을 이야기는 실제로 엄청난 것이며 여러분들이 크게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프 변호사도 “주로 국내 노동력을 위해 시작된 라틴계 이민의 역사는 200년을 넘어서면서 아픔과 고통을 여전히 품고 있다"며 “아직도 라틴계 이민자의 권리와 행복은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소개했다.   아두마스 대표는 “흑인의 개념은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개별 출신 지역을 망라해 흑인 이민자들이 이민 과정은 매우 힘겨운 것이었다”며 “흑인 사회는 정신 건강과 세대간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한인 사회와 이런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진행을 맡은 김도형 이경원리더십센터 소장은 학생들에게 도산 안창호, 안수산 여사, 찰스 김, 김영옥 대령 등에 대한 퀴즈를 내 관심을 유도했으며, 답을 맞춘 학생들에게 한인 사회와 인물들을 다룬 책을 나눠주기도 했다.     환영 메시지를 전한 김 총영사는 “모든 이민자 사회는 고유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오늘 세 커뮤니티가 나눌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다면 바로 선열들의 소중한 경험과 이를 통한 깨달음이 아닌가 싶다”며 “동시에 우리가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청년 여러분들을 통해 마련된다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는 이경원리더십센터, 파바 월드, 라틴장애인연합회(UDLA), 한인타운청소년회관 등이 후원했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이민자 스토리 라틴계 이민자 흑인 이민자들 대화 행사

2023-10-09

[잠망경] 독백

옛날 정신과 수련의 때 뉴저지 큰 정신병원에서 주말 문라이팅,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노인 병동에서 두 노인이 하는 대화를 엿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쪽이 자기는 변비가 심하다고 투덜댄다. 다른 쪽은 수십 년 전 취중운전으로 아들이 감옥에 갔던 이야기를 한다. 둘은 서로 말을 오버랩하지 않고 상대가 말을 멈추면 자기 말을 한다. 상대의 말에 대한 반응은 없다.   계속해서 웃는 표정으로 독백을 이어가는 그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가 말을 ‘주고받는’ 행위를 대화(對話)라 하지 않는가. 자기 말만 열심히 할 뿐 상대가 하는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그들이다.   그룹테러피 중 환자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혼잣말을 하는가. ‘멘탈 체크, mental check’를 하기 위해서라고 누가 답한다. 나도 가끔 그런다. 할 일이 많을 때, “가만있자, 무엇부터 먼저 하지?” 하며 자신에게 소리 내 묻는다. 멘탈 체크는 자신에게 짧게 물어보거나 좌절감에서 내뱉는 욕지거리처럼 순간적인 이벤트일 때가 대다수다.   환청증상이 있는 환자가 병동을 걸어가며 길게 하는 혼잣말은 뭐냐, 하는 질문이 터진다. 환자와 환청 목소리와의 대화인 경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안개 자욱한 새벽에 선친의 유령과 나눈 대화는 참으로 리얼한 장면이다. 맨해튼 한복판을 홀로 걸어가면서 허공을 향하여 크게 소리쳐대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숙자의 독백 또한 리얼한 대화로 보아야 한다. 두 경우 다 대화의 상대자는 실상이 아닌 완전 허상이다.   중학교 때 끄적거렸던 내 시(詩)는 노골적인 독백이었다. 이윽고 대담한 시인들이 대화체의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차츰 문어체가 구어체로 바뀐다. 우아한 아어(雅語)보다 투박한 구어(口語)가 판을 친다.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의 시 ‘눈’(1956)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중략) …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줄담배를 피는 문학청년의 만성 기관지염을 들먹이며 시인의 기백을 부추기던 김수영!   환자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진다. 환청이 있으면 조용히 듣고 있을 일이지 꼭 그렇게 큰 소리로 대화를 해야만 하느냐? 누군가 언론의 자유를 내세운다. 언론의 자유라는 건 남들 앞에서 말도 안 되게 소리치는 행동이 아니라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내 행동은 다 옳으니까 비판하지 말아라, 하는 논조가 있고, 이유야 어쨌든 남들을 괴롭히는 행동은 나쁘다, 하는 ‘원칙과 상식’을 강조하는 유파(流派)가 몇 있다. 한국 정치판과 비슷한 데가 있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깔려야 할 기본 도덕을 역설한다. 환자들은 그런 고상한 발언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대화, conversations’는 어원학적으로 당신이 어머나, 하며 놀랄 정도로 이상한 말이다. 14세기에 라틴어로 ‘거주하다’라는 뜻과 ‘성교하다’의 명사형으로 거의 동시에 쓰인 적이 있었다가, 18세기경 ‘대화’라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의미로 변천된 말이다. 독백은 중이나 수도승이 하는 말이고 대화는 친근한 남녀들이 ‘주고받는’ 말이라는 학구적 견해가 있다. 어떤가. 좀 이상한가.   엊그제 ‘독백’이라는 제목으로 쓴 내 단시(短詩)의 전문이 이렇다. “캄캄한 방에서 내가 너를 대면하는 동안/ 너는 내게 무슨 말이든지 한다/ 그래요 당신도 그러잖아요/ 제3자인 저도 이 대화가 참 재미있습니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독백 대화 conversations 환청 목소리 노인 병동

2023-09-05

[살며 생각하며] 며느리 단상

거의 30년을 어머님 며느리로 살았다. 26년간은 우리 집에서였다. 이민 초기, 첫아들을 낳고 난 뉴욕 브라이언트 하이스쿨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남편은 한 교회의 교육전도사로 일했다. 우리의 작디작은 월급을 아무리 합쳐도 매월 생활비를 맞추기 힘들던 시절, 집 앞 가게 1불짜리 도넛을 들고 살까 말까 고민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큰아들 돌이 될 무렵, 어머님이 다니러 오시겠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어머님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드려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상대를 해드려야 할 것이 가장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님은 아들 여섯과 딸 하나를 기르신 씩씩한 내공으로 시간을 나름 잘 보내셨다. 그리고 둘째까지 두 아이를 다 길러주시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오랜 기간을 우리와 함께 사셨다.     나는 어떤 며느리였을까. 여름이면 여행도 모시고 다니고, 틈나는 대로 백화점, 공원 등에도 모셔다드렸다. 괜찮은 쿨한 며느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님이 우리 집에 계속 계시는 거라고,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한국에 못 돌아가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님이 사실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시어머니가 되고 손주들이 생기면서였다. 정신을 홀딱 납치할 정도로 귀여운 손주들, 글을 쓰는 지금도 7개월 막내 자는 모습을 카메라 앱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몰입해서 놀아줄 수 있는 내 체력의 한계가 딱 두 시간이라는 것이다. 두 시간 지나면 걍 집에 가서 쉬고 싶어진다.     그러니, 남편과 내가 정신없이 바쁘게 밖으로 나돌아야 했던 그 긴 하루하루를, 어린 두 손자를 데리고 어머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젊은 시절은 찬란하지만 그 빛 때문에 못 보는 것도 많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힘드시겠지 했지만 이 정도로 힘드실 줄을 몰랐다. 어머님이 우리 집이 편해서, 미국 생활이 좋아서 우리와 사시는 거라고 생각했던 철없음도 내 나이의 한계였다. 힘듦을 알아드리지 못한 미안함을 말씀드릴 수 있게 된 나이, 어머님은 옆에 계시지 않는다.     ‘고부’ 하면 ‘갈등’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지난 칼럼에 시어머니들이 기대를 내려놓고 자녀의 가정을 존중해주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때 좋은 관계가 된다고 썼다. 요즘 현명한 시어머니들, 진짜 많이 그렇게 사신다. 아주 그렇게 사시려고 발버둥을 치신다. 그 길만이, 자신들의 기대치와 경계(boundaries)를 확실히 가지고 있는 것이 요즘 자녀들과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들 하신다. 하지만 이런 자세가 꼭 시어머니에게만 필요한 걸까. 며느리들도 같은 마음으로 시어머님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젊은 며느님들이여, 무리한 기대일랑 내려놓자. 어머님에게도 어머님의 삶이 있다. 강해 보여도, 두 시간이면 급 피곤해지는 체력 약화와 노년기에 대한 불안은 기본이다. 이 어머님의 행복한 남은 삶에 대한 필요성을 존중해주자. 어머님이 해주시는 작은 것에도 격하게 감사해보자. 감사를 표현해보자. 현명한 그대들에게 몇 배로 돌아올 것이다.     어느 날 선물처럼 내 삶에 들어온 내 아들의 소중한 여자 며느리, 그리고 또 하나의 어머니로 내 인생에 찾아오신 내 남편의 소중한 엄마 시어머니,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찐 가족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며느리 단상 어머님 며느리로 며느리 단상 어머님과 대화

2023-06-07

[특별기고] 대화만이 이해로 가는 유일한 길

필자는 36년 전 퍼시픽 센추리 인스티튜트(PCI) 설립에 참여했다. 광대한 태평양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해의 가교’ 역할을 하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다음 세기는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 예상처럼 이제 태평양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태평양 지역 국가·국민 사이에 상호이해의 폭은 넓어졌는가? 아니면 오히려 분노와 공포, 불신으로 인해 위험한 충돌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울러 그동안 PCI가 주도적으로 지원했던 노력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아니면 헛수고였는지도 궁금하다.     지난달 LA 베벌리힐스 호텔에서 열린 PCI의 연례 ‘빌딩 브리지 어워드(Building Bridges Award)’ 시상식장에서 스스로 던졌던 질문들이다.     ‘빌딩 브리지 어워드’는 태평양 지역 국가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한 개인과 단체에 주는 의미 있는 상이다. 올해는 탁월한 학문적 업적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한국의 이화여자대학교가 단체 부문에서, 그리고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가 개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으로, 또 전 PCI 의장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성대한 식장에 앉아 문득 생각했다. 이건 그저 쇼에 불과한 것일까? 현실에선 적대적 무시와 종종 오만하기까지 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게 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그동안 이룩한 발전과 성숙을 후퇴시키진 않을까?   식장에서 그레그 전 대사의 수상 소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그의 핵심적인 지론을 다시 떠올렸다. 서로를 모르는 상황에서 잠재적인 적대 관계에 빠지면 상대방을 악마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악마화는 충돌의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그런 악마화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대화다. 대화를 통해서만 서로 무지에서 벗어나 이해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잠재적인 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설령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상대라 생각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상대방 역시 당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한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협력이 가능하다.   현재 태평양 지역 상황을 보면 매우 유동적인 요소들이 많다. 중국의 적극적인 확장 전략, 북한의 핵무기 개발, 북한 핵무기에 대한 한국의 우려, 일본의 재무장, 남중국해에서의 갈등, 타이완의 미래, 미국·영국·호주 3국의 군사 및 정보 협력 강화,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 ASEAN 국가들의 부상, 기후변화의 충격 등 다양하다.   따라서 지금은 이 지역 모든 국가가 대화 채널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다. 또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쉽게 악마화해 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서로 얘기한다는 것은 부드럽게만 진행되어야 하는 것도, 항상 합의로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화는 원하는 것(want)과 필요한 것(need)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 충돌을 피해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번 PCI 이사들의 모임에선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한반도 핵 문제와 이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 등에 관해 미주중앙일보와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     핵 문제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로버트 칼린, 로버트 갈루치가 인터뷰에 응했고, 역시 PCI 이사인 글렌 포드는 특별기고를 통해 의견을 전했다. 인터뷰와 기고문은 한글과 영문으로 동시 게재됐다.     이들의 주장은 두 가지 결론으로 귀결된다. 첫 번째는 남북 모두 상대방과 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국의 독자 핵무기 보유에 대한 우려다.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핵무기 확산 위험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와 국제적 위상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해의 가교’ 역할이라는 PCI의 설립 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 우리가 서로 외면하고 악마화하는 데 매몰된다면, 위대한 태평양의 세기는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외부의 힘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줄 해법으로 인도해 주는 게 대화인데, 이를 지속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영어 원본 칼럼 보기   ◇스펜서 H. 김     항공우주 제품 제조판매사 CBOL Corp 대표. PCI 공동창립자이자 미국 외교협회 회원. 2006~08년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APEC 기업인자문위 미국대표로 활동. 2012~13년 하버드대 애쉬센터(Ash Center) 레지던트 펠로.   스펜서 H. 김 / PCI 공동창립자특별기고 대화 유일 태평양 지역 핵무기 개발 현재 태평양

2023-03-22

[이 아침에] ‘빈 방 있습니까’ 연극을 보고

최근 연극 한 편을 보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LA카운티 한 교회에서 공연된 ‘LA, 빈 방 있습니까?’라는 연극이었다.     잘 아는 아이가 출연한다 하여 시간을 내어 관람했다. 극장은 관객 50여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소강당이었다. 출연 배우는 20대로 보이는 청년 여덟 명이었고, 그중 한 명은 지체장애인이었다. 처음 출연하는 장애인 아들의 연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객석에서 바라볼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보았다.        연극은 두 시간여에 걸쳐 몇 가지 메시지를 차례로 던지면서 진행되었다. 극의 정점은 마지막 부분 반전에 있었다. 성모 마리아가 방이 없어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낳게 되는 성서 이야기를 뒤집고, 여관 주인이 성모님에게 자기 방을 비워주는 장면이다. 지체장애인 역할을 맡은 여관 주인 덕순이 연기가 압권이었다.      말과 행동이 어눌한 여관 주인 덕순이는 계산하지 않는다. 만삭인 마리아와 함께 온 요셉이  여관 문을 두드릴 때, 묻지 않고 제 방을 내준다. 제 몫을 먼저 챙기는 잘난 사람들과는 달리 장애인 덕순이는 힘들고 어려운 입장에 있는 한 여인의 처지를 먼저 생각한다. 빈 방 있냐고 물을 때, 따지지 않고 방문을 열어준다. 예수님께서 바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 지체장애인를 출연시킨, 핵심 배우 역할을 장애인으로 설정한 연출자의 의도와 선택이 돋보였다.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덕순이가 남몰래 혼자서 수십 번 같은 말을 되풀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체장애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 되어왔다. 그들을 지켜보며 평생을 함께해야 할 부모의 심정까지도 가늠해보게 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사회적 인식이 일정 수준에 올라와 있는 미국과는 달리, 한인 사회가 장애인을 제대로 인식하고 돌보아주고 있는가, 새삼스럽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스무 살 정도의 청년들이 한국어와 영어, 두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극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들이 보기에 참 좋았다. 젊은이의 발랄함과 재기 넘치는 대화, 연극이 의도하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무리 없이 스며들게 하는 자연스러움도 좋았다. 연극 한 편이 전해주는 울림이 컸다.      먹고 살기 힘든 이민생활 중 이만한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적 활발한 음악이나 미술, 문학과는 달리 종합예술인 연극 공연 횟수가 많지 않은 이유일 터이다. 화면을 통해 느끼는 영화와 달리 연극은 한 공간 안에서 배우가 온몸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그래서 감동이 배가된다. 이민사회에 좋은 연극이 더 많이 무대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건 과한 욕심일까.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는 예수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빈 방 있냐” 고 누가 물어올 때, 머리 굴리지 않고, 계산하지 말고, “네, 빈 방 있습니다”라고 흔쾌히 내 방을 내줄 수 있는, 여관 주인 덕순이 같은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 그런 한 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연극 종합예술인 연극 지체장애인 역할 대화 연극

2023-01-04

한국인 유니콘 기업 1호 '센드버드' 존 킴 대표와의 대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회장 김영기)가 세계 1위 기업 간 채팅 플랫폼 센드버드(Sendbird)의 존 킴(한국명 김동신) 창립자이자 CEO를 초청해 내달 11일 새해 첫 온라인 행사를 개최한다.     센드버드는기업 간 소통 플랫폼으로, 2021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1호를 기록했다. 현재는 음식 배달앱도어대시(DoorDash), 미국 초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 야후, 월그린, 일본의 종합서비스 제공업체 라쿠텐(Rakuten) 등을 비롯한 세계적 기업들을 통해 채팅 사용자 3억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과학기술명사와의 대화' 행사에서는 김 대표가 센드버드의 CEO가 되기까지의 인생 여정과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강연하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가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할 예정이다.     행사는 내달 11일 오후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되며, 6일까지 KSEA 웹사이트에서 신청하여 온라인 줌 링크를 받을 수 있다. 참석은 무료로 KSEA 회원만 참석할 수 있지만, 비회원일 경우 회원 가입을 할 수 있다.     신청=ksea.org 에 접속하여 구글폼으로 제출 문의=itm@ksea.org   윤지아 기자센드버드 대표 대화 행사 스타트업 기업가 온라인 행사

2022-12-21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에 공정성 점수를 매긴다면

나는 공정한 사람인가? 아마도 누구나 자신이 공정하다고 여길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질문을 바꿔보자. 내가 얼마나 공정한지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답하기 어렵다. 당장 공정성을 점수로 매길 수 있는 것인지부터 의문이 든다. 공정성에 점수를 매기기 어려운 까닭은 아마도 사람마다 공정성을 정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은 행동을 두고도 사람마다 평가가 갈린다. 그런데도 한 가지 척도를 들이대 누가 얼마나 공정한지 수치화하기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면 인공지능은 어떠한가. 어떤 인공지능이 공정한지 판단할 수 있을까. 그 인공지능이 얼마나 공정한지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현학적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실무상으로도 무척 중요한 문제다. 예컨대 금융기관이 신용도를 평가하는 인공지능을 도입하려면 그 인공지능이 공정한지 평가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인공지능의 공정성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수치화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공정성과 같이 모호한 개념에 점수를 매기는 일은 만만치 않다.   비록 어떤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주관적이라서 측정하기 어렵더라도 비슷하게라도 추정해야 하는 경우는 많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재기 어렵지만,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는 여러 기준을 이용해 점수를 매긴다. 국내의 한 경제학자는 기회 불평등의 척도를 재기 위해 ‘개천용’ 지수를 만들기도 했다. 이 지수는 우리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측정한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이 얼마나 공정한지 측정하는 지표를 열심히 개발해 왔고, 이미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 방법은 인공지능의 정확성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예컨대 회사 출입구에 얼굴인식 인공지능이 설치되어 출입을 관리한다고 생각해 보자. 직원이 안경을 꼈는지, 아니면 머리카락이 얼마나 긴지에 따라 정확도에 차이가 있다면 이는 불공정한 것이다. 정확도가 낮은 직원들은 더 자주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공지능이 여러 집단에 대해 정확도 차이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해 공정성 점수를 매길 수 있다.   하지만 딱히 정답이 없는 경우에는 그러한 방법을 쓰기 어렵다. 챗봇 같은 대화 인공지능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여러 인간 평가자들을 뽑아 인공지능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점수를 매기도록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들고, 객관화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대화 인공지능의 공정성은 평가하기 쉽지 않다.   사실 인공지능에 공정성 점수를 매기는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 세상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학습 데이터로부터 배운다. 그런데 그 학습 데이터에는 이미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부정의한 세상이 반영되어 있다. 불공정한 학습 데이터로 배운 인공지능이 공정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그래서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정하지 못하더라도 인공지능에는 마치 세상이 아름다운 것처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인공지능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인공지능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 그대로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 세계와는 다른 내용을 학습시키면 오히려 인공지능의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가 편향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편향을 고치기 위해 인공지능의 정확성을 크게 훼손해서도 안 된다. 그 중간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문제다.   인공지능에 공정성을 가르치는 문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흔히 겪는 고민과 비슷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인공지능이라는 갓 태어난 아이를 다 함께 키우고 있는 셈이다. 아이가 잘못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엄격한 공정성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 줄 필요도 있다. 인공지능이 공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애써야겠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태도도 함께 필요하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 공정성 공정성 점수 인공지능 학습 대화 인공지능

2022-10-10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