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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꿈속의 대화

나와 크게 다름없어 보이는 환자 열 대여섯을 앉혀 놓고 담론을 펼친다. 오늘은 ‘agitation, 동요(動搖)’에 대하여 얘기할까 하는데, 이 어려운 라틴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아느냐. 이태리 태생 젊은이가 자신 있게 말한다. ‘acid indigestion, 위산과다’에서 왔습니다.
 
1980년대 뉴욕 이태리 이민자들이 ‘agita’라는 슬랭을 쓰기 시작했다. 산(acid)을 뜻하는 이태리어 ‘acido’의 사투리. 1990년 중반쯤 정신적 동요까지 포함해서 누구나 알아듣는 슬랭이 됐다 한다. 그러나 ‘agita’와 ‘agitation’는 스펠링이며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서 그치고 만다. ‘agitation’는 워낙 ‘흔들림’이라는 뜻이었단다.
 
‘agitation’의 뜻은 현대어에서 크게 셋으로 나뉜다. ①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흥분한 상태 ②정치적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행동(예: 유튜브로 느끼는 요즘 한국 정치 판국) ③액체를 섞어서 심하게 흔드는 행동(예: 바텐더가 손님 앞에서 폼나게 과시하는 칵테일 셰이킹).
 
일단 ‘agitation’을 동요(動搖)라 처음에 옮겼지만 요동(搖動) 혹은 요동질이라 번역하면 어떨까 싶은데. 아니면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지x’이라 할까나. 어쨌거나 위에 열거한 ①②는 올데갈데없이 ‘지엑스’스럽지만③은 절대 그렇지 않다.
 
병동에서 환자와 직원이 한결같이 겪는 요동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①육체적 요동 - 다른 환자나 직원을 애매한 이유로 때리거나, 못이나 배터리 같은 이물질을 삼키거나, 모종의 수법으로 팔목에 상처를 내는, 또는 벽에 머리를 쾅쾅 부딪치는 자해행위, 몸을 날려 ‘exit’ 사인, CCTV 카메라를 떼어내거나 공중전화를 부수는 기물파손 등등 육체를 사용해서 물리적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
 
②언어적 요동 - 아침 조회 시간에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든 후 질문은 하지 않고 일장연설을 하는 행동. 모두 고만하라고 거듭거듭 종용하면 금방 끝내겠다 해 놓고 그러지 않는 작태. 다른 환자는 또 다른 수법을 쓴다. 옛날 우리 슬랭으로, 기차 화통(火筒)을 삶아 먹었는지견딜 수 없이 큰 목소리로 영화, ‘Star Wars, 별들의 전쟁’에 나오는 짧은 대사를 주절대는 본때를 보여준다. 결과? 물리적 고통이 아닌 감각적 고통.
 
③두뇌적 요동 -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 두뇌가 부글부글 작동하는 상태. ①②처럼 직접적으로 남들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이 부류에 속하는 환자는 왕성한 환상과 환각 상태를 애써 감추면서 겉으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처신하려 노력한다. 이들의 특징은 남들 앞에서 독백을 가끔 혹은 자주 하는 데 있다. 여차직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심한 논쟁이 터지기도 한다. 관광객티를 내며 맨해튼에 가보시라. 당신은 혼잣말을 크게 뇌까리며 걸어가는 노숙자를 여럿 만날 것이다.
 
③을 좀 공들여 설명한다. ‘Internal world, 내면세계’와 ‘external reality, 외부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큰 이유라고 해석한다. 꿈속에서 누구와 격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잠꼬대하는 것이 좋은 예라고 덧붙인다.
 
그룹테러피가 끝난 후 내게 두뇌적 요동현상이 일어난다. 우리의 모든 대화가 꿈속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나는 남에게 내 내면세계를 서술하는 독백을 삼가는 데 익숙할 뿐, 다른 사람 앞에서 잠꼬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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