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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반세기 만에 트인 대화 물꼬

이희숙 수필가

이희숙 수필가

메시지를 받았다. “밥솥을 사서 밥을 했더니 고두밥. 우리 입맛에 맞을 쌀, 월마트에서 살 수 있는 걸로 추천 바랍니다.”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지만 모르는 사람 같았다. 알고 보니 50년 전 대학 클래스 동기였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인 서울교육대학에서 국어과 교수로 재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뿐이다.
 
친구 소개로 전화번호까지 주고받았지만, 우린 피차 서로의 인성이나 취향 등에 관해 아는 게 없다. 살아온 환경과 생활 방식조차 다를 텐데. 풋풋했던 젊은 날의 애틋함이나 설렘 같은 건 없다. 어떻게 어느 선까지 대접해야 할까? 사람 교제를 좋아해 으레 손님방을 제공하고 있지만, 운전대까지 내려놓은 상태라 관광 안내도 자유롭지 못한 터. 여러 방법을 모색해 보았지만, 답을 못 찾았다.
 
그는 블로그에 올린 ‘플로리다 마이애미비치 거리에서 여경을 만나다’라는 글을 보냈다. 이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아이 러브 텍사스!’라는 글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들은 덮쳐 왔다 … 마치 훈련병이 무서운 교관에게 기합받지 않겠다는 듯 “아이 러브 텍사스!” 엉겁결에 사랑한 텍사스를 내일 떠난다.’  
 
난 혼잣소리로 웃었다. 미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 중 모텔 화장실에서 썼단다. 글을 읽으며 옛 친구를 재발견한 듯했다.
 
졸업 후 50년 만에 대학 동기를 대면했다. 이상과 현실 차이가 너무 커서 방황했던 그 시절이 가까이 다가온다. 사라진 것이 아니고 나를 만들어준 중요한 요람이었다는 걸 뒤늦게라도 깨달은 게 다행이지 않을까. 그 동기를 잘 대접하고 싶은 건 그 시절 나를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제 칠십이 넘어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다른 세계를 열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는 우버를 이용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리 집을 찾았다. 탁 트인 뜰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깃주머니를 꺼냈다. “어떻게 모교 교수가 될 수 있었어요?” 첫 질문을 시작으로 대화는 누에고치 실 풀리듯 이어졌다. 출생부터 대학 시절을 넘어 어렵고 힘들었던 10년 간의 강사 생활, 모교에서 후배 양성의 어려웠던 점, 은퇴 후 수필 쓰기와 강의에 빠졌단다. 둘은 공통점을 찾았다. 충남 홍성, 성장한 지역이 같고 수필을 쓴다는 점이다. 가로막혔던 무언가가 스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반세기란 간격과 우려를 몰아내고 공감대를 형성한 게다. 자연스레 거실 겸 작업실로 안내했다. 서로 출판한 책들을 소개했다. 보유한 수필 강의록과 수필 학 책도 보여주었다. 미국 수필가 협회 활동상과 방문해 강의했던 한국 교수들도 소개했다.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수필 창작을 위한 열강을 쏟아냈다.  
 
7시간 동안 만남이었다. 숙소로 돌아간 그가 쓴 글을 보내주었다. ‘그녀와 나는 대학 동기다. … 그녀와 나는 노는 물이 달랐다. 지금 기억으로는 둘은 대화한 적이 없다. 그녀가 특별히 관심 영역 안에 있지 않았다. 그저 이름과 안면을 익힌 채 각자 삶의 바다로 일엽편주처럼 떠돌기 반세기 만에 대화 광장에 손잡고 입장한 셈.… 그녀 소식은 우연히 알게 되었다. 미국을 여행하는 도중에 필연처럼’이라고 묘사했다.
 
수필은 정직하다, 수수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진정성이 있는 산문이다. 수필가라는 교집합이 우리 대화 물꼬를 트이게 했다. 글의 힘이 아닐는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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