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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친절은 불편을 동반한다

동네 헬스클럽에 사람이 붐빈다. 매서운 아침 추위에도 운동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수영장 줌바 클래스가 시작되는지, 라커룸에 덩치가 커다란 중년 여자들이 가득하다. 락커 룸은 만남의 장소다. ‘딸 식구들과 할리데이 같이 지냈어.’ ‘크루즈 다녀왔어.’ ‘체크 업 갔더니 닥터가 어쩌꾸저저꾸….’
 
수영장 벽에 그려진 빨간 문어가 나를 반긴다. 그 옆에 그려진 연두색 거북이가 웃고 있다. 나는 배영을 좋아한다. 배영은 누워서 가므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딴생각하고 마냥 가다가 레인 끝에 있는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꽝 부딪쳤다. 얼마나 아팠는지 머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끝나기 2m 전에 공중에 쳐진 깃발을 주시한다. 수십 개의 자잘한 깃발이 한 줄로 늘어져 있다. 이 지점을 지나면 두 팔을 머리 뒤로 뻗치고 천천히 들어간다. 두 손에 벽이 닿는 순간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지난해 어느 날, 배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깃발을 지나고 끝까지 거의 왔다. 곧 뒤로 뻗친 팔에 단단한 콘크리트가 만져지겠지. 그런데 갑자기 흐물거리는 것이 내 머리에 닿았다. 나는 놀라서 허우적거리며 몸을 뒤집었다. 똑바로 서서 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내 머리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오시는 분이다.  
 
“네가 머리 부딪힐까 봐 걱정돼서….” 그분이 말했다. 나는 팔을 뒤로 뻗치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며칠 후, 노인은 또 벽에 손을 대고 계셨다. 나는 다시 한번 중심을 잃었고, 의아함이 밀려왔다. 분명히 괜찮다고 말했는데… 노인들은 항상 걱정이 많지 않나. 내가 말한 것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친절을 친절로 받아들이자.  
 
오늘은 연휴에 찐 살을 빼기 위해서 그런지 레인마다 두 사람이 들어가 있다. 물개처럼 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 레인의 폭은 2m 정도다. 원래 혼자 하면 제일 좋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한 사람이 1m 정도 차지하면 두 사람은 같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이 하기에는 무리가 좀 있다. 돌아가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머뭇거리며 잠시 서 있었다. 누가 나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 찬 바람에 나왔는데, 돌아가기에는 억울하다. 답답한 마음으로 사방으로 튀는 물거품을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물속에 있던 어떤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기 레인에 들어오겠냐고 묻는다. 세 사람이라서 타원형으로 돌아야 한다고 한다. 세 명이 한 레인에서 도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특히 나는 천천히 하므로, 뒤에 오는 사람을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얼른 답했다. 고맙다고 들어가겠다고.  
 
두 여자와 거리를 살피면서 레인을 돌기 시작했다. 나 같으면 들어오라고 했을까? 절대로 안 했을 것 같다. 먼저 차지한 것에 만족하면서 멋쩍게 서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내 수영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날이 매우 찼다. 수영장 물은 더욱 따뜻했다. 나는 먼저 보드를 잡고 몸을 풀었다. 자유형이 제일 숨이 차다. 몇 바퀴를 돌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어떤 남자가 관람석에 앉아서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모른 척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제 받은 친절이 생각났다. 감격하면서 감사했던 것도….
 
“제가 5분 후에 나가니 이 레인을 쓰세요.” 마음속 갈등과는 다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젊은 남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의 새해 희망은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친절도 자꾸 연습하면 몸에 밴 습관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 머리를 잡아주던 배려심 많던 할아버지가 요즘 보이지 않는다. 자녀 집에 방문 중인가? 혹시 아프신가? 아니면 노인 홈에라도 들어가셨나? 뜬금없이 그분이 생각났다. 나는 라커룸으로 향하면서 수영장을 둘러보았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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