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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언덕에 대한 소회

[신호철]

[신호철]

새벽 언덕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언덕 위로 펼쳐진 안개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만큼 뒷걸음질친다는 것을. 언덕 끝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념 속에 있었다는 것을. 삼척 정라진 언덕을 오르면서 알 수 없는 황홀에 잠겼었다. 땅이 겹쳐 천천히 내게로 다가와 이마를 만지며 뒤로 물러섰고, 작고 투명한 물방울 입자가 온몸을 향해 친구의 이름 위로 날아 올랐다. 풀섶 위로 나지막히 내려 앉은 유리구슬의 유희. 풀벌레 노래하는 새벽 언덕은 한창 무르익은 학예회 무대 같았다. 그날 우리는 언덕을 넘어 작은 통통배를 탔다. 그리고 12시간의 거친 항해 끝에 친구가 기다리는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밤 부두를 걸으며 오징어잡이 배들이 켜놓은 휘황찬란했던 집어등의 수만큼이나 그리움이 조각들이 밤 하늘 별만큼 가득히 저미어 왔다.
 
소학교를 가기 위해 언덕 두 곳을 넘어야 했다. 학교 가까운 언덕은 눈 오는 날이 장관이었다. 사내 아이들은 종이 널판지를 깔고, 책가방을 깔고 눈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단발머리 여학생들은 장갑 낀 손을 호호 불며 언덕 가장자리 돌담을 의지해 느린 등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허연 입김을 뿜으며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나는 언덕에는 유년의 기억들이 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이제는 모두 지나가 버린 유년의 기억 속엔 눈 덮힌 하얀 언덕과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한 소녀의 활짝 웃는 모습이 아직도 아롱진다 “퍼얼펄 눈이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져 온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쿼렌시아가 된 Quintin 길의 작은 언덕. 출근 길, 퇴근 길에 들려 먼동을, 노을을 사랑하게 된 언덕. 1990년 초 미국에서 개봉된 시네마 천국(Niobe Cinema Paradiso)의 main theme을 들으며 새벽 언덕에 오르고 있다. 에리오 모리코내가 작곡해 아카데미 영화 음악상을 수상한 곡이다. 호흡을 잃어버릴 만큼 피아노와 Cello의 하모니가 가슴을 쓸어내듯 아프다. 소학교 때 하얗게 눈으로 덮힌 언덕의 소회며, 대학 일 년 때 삼척 정라진 언덕길을 넘으며 새벽 안개처럼 아롱졌던 기억이며, 고향을 뒤로 두고 이제 편해져가는 Quintin 길의 언덕에 피어나는 들풀들의 작은 흔들림마저 모두 나를 지탱해온 의미가 되었다.
 
내가 아직 노래할 수 있는 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를 지으신 이의 사랑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짓에 무릎 꿇지 않은 그의 품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인, 화가)
 


 
시카고, 이곳에서도 먼 위스컨신 / 아득한 언덕 두려움 깨는 울림 / 시월의 Holy Hill 붉게 피어 난다 / 휘영찬란 불빛 없고 종소리 사라진 오지 / 다만 그 곳 풀잎 스치는 소리 / 보금자리 찿아 드는 새들의 날갯짓 / 먼 발치 Holy Hill 고요로 가득해 / 한 알이 썩어 많은 열매 맺는 텅 빈 들녘 / 고요의 소리 시월의 Holy Hill / 광야의 나지막한 기도소리 / 아무도 찾지 않는 좁은 길 / 든든히 세워 지는 하늘소리 // 낙엽도 내리고 / 별빛도 내리고 / 하늘 고요도 내리는데 / 광야의 울음 소리 올라가네 / 텅 빈 들판의 손길 기도의 향 올라가네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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