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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마음속 ‘공간’ 만들기

바람에 담겨오는 유월의 신록 냄새가 뜰을 가득 채운다. 잠시 쉬어가도 좋으리라. 눈을 감으며 마음을 비워본다.
 
미지의 공간으로 여행을 떠났다. 낯선 곳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설레며 가방을 꾸렸다. 늘 똑같은 일상으로 잔잔하던 가슴에 파문이 일렁였다. 처음엔 간편하게 작은 가방을 선택했지만 방문하는 세 나라가 위도의 차이로 날씨 변화가 여름과 겨울을 넘나드는 지역이기에 여러 가방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야 했다.  
 
뉴질랜드를 관광하는 중이었다. 웅장한 산맥과 화산, 짙푸른 우림과 초원의 다채로운 풍경은 우리의 마음을 마구 빼앗아 갔다. 환경 오염도 없고 풍광이 빼어난 그곳에서 여유작작하게 노니는 소들을 보며 일상에서 조였던 긴장의 끈을 늦추고 있을 때였다.    
 
가이드가 그 지역의 특성을 설명한 후 기념품 매장으로 안내했다. 이곳의 특산물은 지구촌에서 한 군데 밖에 없다면서 진지하게 소개했다.  “이것은 산양의 태반으로 만든 화장품으로 피부암을 방지하는 특효가 있습니다.” “이 제품은 블루베리로 만들어 눈에 좋고요, 이 나라에는 안경을 쓰는 어린이가 없습니다.”
 


시력이 나쁜 나는 눈에 좋다는 말에 귀가 번쩍 열리며 솔깃했다. 언제 또 오겠느냐는 가이드의 설득 어린 말에 어느새 그 상품을 집어 계산대로 향하고 있었다.  
 
물건을 건네 받은 후에 내 마음 한편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물건을 담아 가지고 갈 가방의 공간 여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꾸겨 넣어 보리라. 다음 장소에서는 더는 물건을 사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이동하는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관목인 마누카꽃을 가리키며 가이드의 목소리 볼륨이 높아졌다.
 
“이 꿀은 위암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약효가 있습니다. UMF 10등급으로 식품 이상의 약품으로 인정받습니다.”
 
내 귀가 얇은 걸까? 그 말에 또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마음이 밀고 당기는 갈등이 일어났다. ‘아니야.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수고하는 여러 사람과 가족을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해. 기왕이면 면세 혜택도 받고 효능 좋은 특산물을 사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어쩌나! 그 물건을 넣을 가방에 공간이 없었다. 들어갈 여백이 없다는 사실은 마음의 넉넉함을 빼앗았다.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공간의 여유를 없앤다는 사실을 몰랐다. ‘새로 구매한 물건을 담기 위해 새 가방까지 사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번 여행에 동행한 부부가 새 가방을 사서 계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린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듯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여유의 느낌은 공간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는 욕심도 여유를 빼앗아 간다. 이제 거미줄처럼 뒤얽힌 머릿속을 비우려 한다. 생각을 비울 때 판단을 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의 공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비우는 훈련을 해야겠다. 컴퓨터 내부 구조와 같은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디스크의 저장 용량을 확인하듯이, 내 삶 속에서도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한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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