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37> 미국의 3대 등산로

  한국에 백두대간이 있다면 미국에는 PCT와 애팰래치안 트레일, 그리고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이 있다. 나라 자체가 크니 등산로도 엄청 많은데 그중 3대 등산로가 이들 세 트레일이다.     3대 등산로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동부의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이다. 그다음은 태평양 연안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다. 보통 줄여서 PCT라고 부른다. 나머지 하나는 로키산맥을 따라 올라가는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Continental Divide Trail)이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3대 등산로 중 가장 짧은 데도 도전하는 사람은 가장 많다. 조지아 북쪽 스프링어 마운틴에서 시작되는데 메인주 캐터딘 피크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는 2150마일. 테네시주의 그레이트 스모키 국립공원과 블루리지 파크웨이를 지나 애팔래치안 산맥 정상 양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음미하며 버지니아주의 섀넌도 국립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백미로 꼽힌다.       필자는 애팔래치안 트레일 종주는 못 했지만 시작점인 일찍이 스프링어 마운틴과 종착점인 캐터딘 피크에는 올라가 보았는데 지금도 캐터딘 피크에 오를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의 다른 높은 산에 비하면 그다지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계절을 잘못 선택한 탓으로 추위에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으리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은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 서부 태평양 연안을 따라 캐나다령 매닝 파크(Manning Park)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다. 총 길이는 2050마일. 이 트레일은 필자도 한 번쯤 종주 도전을 해 보고 싶었지만 약 7~8개월간을 산속에서 지내야 하는 그야말로 극한의 지옥과 같은 여정이기 때문에 쉽게 결행하진 못했다.     PCT를 종주하기 위해서는 필히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어렵게 퍼밋을 받은 뒤 종주에 나선 하이커 중에도 절반 정도는 중간에 포기한다고 한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겠다.     PCT는 남쪽에서부터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3개 주를 차례로 지나며 시에라 네바다 산맥 정상으로 달려나간다. 도중에 미국 본토에서 제일 높은 휘트니산 정상 옆으로 해서 세쿼이아 & 킹스캐년,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통과한다. 이어 오리건 주의 단 하나밖에 없는 국립공원인 크레이터 레이크(Crater Lake) 옆을 지나 스키장으로 유명한 오리건주 최고봉 마운트 후드(Mt. Hood)의 8부 능선을 지난다.  그래도 진짜 험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콜롬비아 강을 건너 3개 주 가운데 가장 난이도가 심하기로 악명 높은 워싱턴주로 들어서면 레이니어 국립공원과 노스캐스케이드 국립공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미국의 국립공원이란 곳은 거의 다 다녀 봤지만 가장 감탄을 많이 쏟아낸 곳이 바로 노스 캐스케이드 국립공원(North Cascades National Park)이다.       필자는 PCT 역시 출발점과 도착점을 모두 가봤다. 출발점은 멕시코 국경 지역캄포(Campo)라는 동네에 있는데 미국 쪽 국경검문소 앞길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국경선 상에 목조 표지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 매닝까지 2650마일(To Manning Park 2,650 Miles)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도착점인 캐나다의 매닝 파크에는 등산로 입구에 PCT 끝이라는 조그마한 표시가 있고 완주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조그마한 오피스도 있다. 이곳에 갈 때는 반드시 여권을 챙겨야 한다. 캐나다로 들어가서 등산로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려는 밀입국자들이 많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미국 재입국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데 총 길이가 3천 마일이 넘는다. 험준한 로키산맥 정상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라 여간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도전 자체가 어렵다고 봐야 한다. 필자는 몇 년 전 몬태나주에 있는 글리시어 국립공원 안의 세이트 메리 방문자센터 바로 맞은편 구간을 걸으며 살짝 맛만 본 기억이 난다.      이들 세 등산로는 종주하는 데 몇 개월씩 걸리기 때문에 구간별로 나누어 도전하기도 한다.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고 체력이 자신 있어도 혼자서는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데 그럴 땐 마음 맞는 두세 명이 팀을 이뤄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김평식 신유 애팔래치안 트레일 등산로 종주 요세미티 국립공원

2022-01-16

김평식 신 미국유람 <36> 오로라 탐험

캐나다 최북단 옐로나이프 나사가 공인한 오로라 명소   한식당 육개장 추위 달래고 최북단 맥도널드도 이색적   오로라는 일반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대기권의 천문 현상이다. 주로 북극권이나 남극권에서만 관측할 수 있는 기상 현상인데 오로라가 발생하는 원인이나 과학적인 현상에 대하여는 플라즈마 입자라든지 태양풍 등 전문 용어조차 제대로 모르는 처지에 거두절미하고 오로라를 가본 현장만을 소개드리겠다.       필자가 10여년 전 신년 여행으로 오로라를 보기 위해 다녀온 적이 있다. 옐로나이프(Yellowknife)라는 캐나다 최북단의 작은 도시다. 물론 북유럽 핀란드나 아이슬란드 또는 노르웨이, 러시아, 알래스카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지만 옐로나이프는 지구상에서 가장 황홀한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는 지역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이 추천해서 발표한 곳이다. 그래서 이왕에 오로라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경비가 약간 더 들고 가는 길이 좀 어렵더라도 이곳을 가 보라고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옐로나이프를 가기 위해서는 일단 캐나다의 캘거리까지 가서 비행기를 바꿔 타야 한다. 캘거리에서도 북쪽으로 약 1000 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동토 옐로나이프에 내리면 밤인지 낮인지 도저히 분간조차 할 수 없다. 추위는 또 어떠한가. 떠나기 전부터 짐작은 하고 왔지만 그야말로 살을 도려내는, 지금까지 내 생애에 처음 경험하는 강추위다. 조금 속된 표현으로 소변을 보면 얼음으로 변한다는 말이 완전 거짓말은 아닌 듯싶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가는 5분 정도도 참기 어려운 추위이니 대략 짐작은 하리라.     오로라는 1년 내내 나타나지만 사람 눈으로는 어두운 밤에만 보인다. 해가 지지 않는 6~7월 백야 때 오로라 관측이 힘든 이유다. 대신 이 시기만 피해 8월 중순부터 10월 초 사이에 오로라 여행을 떠나도 된다. 북극의 한파를 피하고 싶다면 이 때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호텔에 투숙하고도 호텔 밖이 궁금해 밖을 나가보려 했지만 추위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 10여분 정도 걸어 나가면 방문객 안내소가 있다 하여 무슨 정보라도 얻을까 하여 나갔다가 5분 정도 걸었는데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다시 호텔로 와서 택시를 타고 다녀와야 했다. 그것도 현지 여행사에서 나누어 준 우주복처럼 생긴 방한복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서 말이다.   이런 오지에도 한국 식당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오로라 투어는 다음날 저녁에 있다는 통보를 받고 호텔 옆에 있는 한국 식당에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가 따뜻한 육개장으로 속을 덥히니 뱃속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여행객 중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온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아 보이는데 아마 그래서 한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살지 않는 이런 곳에도 한국식당이 있겠지 싶다.   전 세계에는 맥도널드 매장이 수 만개가 있다. 그중 위도 상으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 맥도널드가 이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튿날 아침을 거기서 먹기로 하고 찾아 나섰다. 맥도널드 건물을 사기 위해 간 것도 아닌데 들어가면서 한 번, 나오면서 한 번, 두 번 씩이나 맥도날드 정문 앞 빙판에서 넘어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두꺼운 방한복 덕분에 엉덩이뼈가 온전했지 안 그랬으면 오로라 구경은 물론 집에도 무사히 오지 못할 뻔 했다.   이곳은 저녁 8시경 어두운 밤 시간인데도 대낮같이 밝다. 관광객들은 버스에 나누어 타고 오로라를 보기 위해 어디론지 한없이 달려간다. 나지막한 야산 분지에 내리니 어림잡아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고깔모자같이 생긴 하얀 텐트들이 있다. 관광객은 여행사에서 지정해준 조별 번호와 텐트를 꼭 기억해야 한다. 특히 조별 번호를 모르면 돌아올 버스를 탈 때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똑같은 방한복에 오로라 발광으로는 아는 사람도 몰라볼 정도로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바깥은 살을 에는 엄동설한이지만 텐트 속은 장작불 난로가 있어 따뜻하다. 와~와~ 함성 소리에 깜짝 놀라 밖을 나와 보니 하늘에서 벌어지는 형형색색의 우주 쇼에 그저 넋을 잃고 만다. 오로라다. 분홍, 초록, 진홍, 푸른 빛 등 오색 등이 하늘을 이리 저리 휘저으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순식간에 다시 나타나는 등 하늘이 마치 굿판 같다.     초고층 대기권에서 벌어지는 폭발적으로 벌어지는 오로라의 장관을 보고 온 지도 이미 오래 되었지만 지금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미 전국에 좋다는 곳은 거의 다 보았다고 자부하는 필자지만 오로라 구경만큼은 평생 잊히지 않을 영원한 추억꺼리가 되고 있다.   임인년 새해 첫 기고문을 오로라로 장식하면서 올 한 해도 더 좋은 정보과 글로 만나 뵐 것을 약속드린다.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면서.     김평식 등산여행 전문가   #여행 메모 옐로나이프는 북위 62도 쯤에 있는 캐나다 최북단 도시다. 오로라로 유명하지만 극한 추위를 견디며 살아온 원주민들의 역사를 보존한 노던 헤리티지 센터(Prince of Wales Northern Heritage Centre)도 둘러볼 만하다. 옐로나이프 남쪽에는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호수인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Great Slave Lake)’가 있다. 최고 수심이 600미터가 넘어 북미에서 가장 깊다. 오로라 관광 패키지가 있다.    미국 김평식 최북단 맥도널드 캐나다 최북단 동토 옐로나이프

2022-01-02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35〉시대의 반항아 '제임스 딘'

청바지에 골초 이미지로 1950년대 젊은이의 우상  포르셰 몰다 숨진 현장엔 지금도 애틋한 추모 물결   “영원히 살 것처럼 꿈꿔라. 그리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영원한 청춘 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1931~1955)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굵고 짧게 불꽃처럼 살다 간 영화 같았던 그의 생애가 이 말 속에 다 담긴 듯싶다.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사라진 제임스 딘은 195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지독한 스피드광이기도 했던 그는 팬들의 여망을 저버리고 고작 24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할리우드의 남자 배우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는 경우는 많았지만, 제임스 딘은 이례적으로 남녀 구별 없이 두루 인기를 누렸다. 연기력도 빼어나 영화 역사 최초로 사후에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제임스 딘은 1952년도 출연한 첫 작품 ‘에덴의 동쪽’으로 무명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53년엔 ‘이유 없는 반항’과 1954년에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자이언트’로 불멸의 스타가 되었다.    흰 와이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오토바이 아니면 포르셰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제임스 딘을 흠모하지 않은 당시 젊은이들이 없었다. 지금도 오토바이와 청바지 하면 그를 떠올릴 정도로 영화계 아이콘이 되었다. 제임스 딘은 담배회사 말보로의 전속 모델이었다. 그만큼 담배를 늘 입에 물고 다녔던 골초였다.    조금만 멀리 있는 물체는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눈까지 나빴다. 물론 안경을 쓰고 다니긴 했어도 그런 눈으로 스포츠카를 몰며 스피드를 즐겼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옆을 보는 듯한 특유의 곁눈질도 시력이 나빠 생긴 버릇이었지만 나중에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외곽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불꽃 같은 한창 젊은 나이에 돈과 명예를 원 없이 거머쥐고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니 얼마나 아깝고 원통했을까. 그가 죽고 난 뒤 그가 탔던 독일산 포르셰 550 스파이더는 불길의 상징 또는 대명사로 회자하면서 모델 자체가 완전히 없어졌다.   그가 숨진 현장은 캘리포니아 중가주, 포도밭 와이너리로 유명한 파소 로블스(Paso Robles)에서 46번 하이웨이 동쪽으로 27마일 지점이다. 사고는 1955년 9월 30일 오후 5시 25분경에  발생했다. 이곳은 46번과 41번 도로가 Y자 형으로 만나는 삼거리인데 46번 도로에서 달려오던 제임스 딘이 프레즈노로 가는 41번 도로로 좌회전하는 순간 46번 맞은편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포드 자동차와 정면충돌했다.   이 사로고 두 차량 모두 산산조각이 나며 제임스 딘은 현장에서 바로 사망했고 상대방 차량 운전자는 한쪽 다리만 부러지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사고 현장 삼거리 목장 철조망에는 66년이 지난 지금도 애도하는 팬들의 애절한 슬픔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조화를 비롯해 차량 번호판, 사랑한다는 하트 모양의 태양광 전등과 촛불 등 스타는 가고 없지만, 팬들의 애석한 추모는 끊이질 않는다.   그의 데뷔작인 ‘에덴의 동쪽’의 원작자인 존 스타인벡의 생가는 사고 현장에서 125마일 북쪽에 있는 살리나스에 있다. 제임스 딘은 사망 당시 인디애나주에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아무 연고도 없는 캘리포니아 시골길을 왜 운전하고 지나갔을까? 필자의 추리로는 혹시 첫 번째 데뷔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하늘 높은 줄 모를 인기를 얻었으니 원작자인 존 스타인벡에게 인사라도 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제임스 딘은 ‘에덴의 동쪽’에 출연할 때 소개받은 피어 안젤리라는 이탈리아 배우와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부모의 결사반대로 둘의 결혼은 이뤄지지 못하고 피어 안젤리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나 그녀 역시 30대의 젊은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단명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가 죽으면서까지 마지막 한 말이 “내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는 이 세상에서 제임스 딘 하나뿐이었다”고 하니 맺지 못한 사랑은 이렇게 애절하다.     이 세상 모든 남정네들이여. 당신은 피어 안젤리 같은 여인을 단 한 사람이라도 두어 봤는가?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   # 여행메모 제임스 딘 사망 현장 교차로는 현재 제임스 딘 추모 교차로(James Dean Memorial Junction)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주소는 19215 CA-46, Shandon, CA 93461. 사고 후 그의 유해는 고향 인디애나 페어마운트로 옮겨져 파크묘지(Park Cemetery)에 묻혔다.         김평식 제임스 반항아 제임스 포르셰 스포츠카 하이웨이 동쪽

2021-12-26

김평식 신 미국유람 <34> 치리카후아

애리조나-뉴멕시코 접경 억겁 화산재가 빚은 절경    원주민 흔적 간데없지만 몇번을 가도 색다른 느낌     몇 번을 가도 또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접경에 있는 치리카후아 준국립공원(Chiricahua National Monument)이 그렇다.    필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이곳을 열 번도 더 가보았다. 언젠가는 LA에서 그 먼 길을 자동차로 찾아갔다가 산불 때문에 못 들어간 적도 있었고 눈이 많이 와서 못 들어간 적도 있었으며 관광버스로 갔다가 대형버스 출입금지 규정에 걸려 못 들어가고 초입에서 머뭇거리다가 아쉬운 발걸음으로 되돌아온 적도 있다. 그렇지만 매번 찾을 때마다 한 번도 후회 않고 돌아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     치리카후아라는 말은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 아파치 인디언의 한 분파를 말한다. 이 부족은 1400년 무렵부터 이곳에서 평화스럽게 살았는데 16세기 들어서면서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인의 공세에 시달리다가 결국 1886년에는 백인들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이후 그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는데 그 후손들은 사우스타코다주로 강제 이주시켰다는 얘기가 있다.     이 지역은 2700만년 전 엄청난 규모의 화산이 터지면서 자그마치 2000피트 두께로 화산재가 쌓인 곳이라 한다. 그때 분출된 화산재가 2700만 년 동안 눈과 비바람을 맞으면서 딱딱하게 굳어 돌로 변한 뒤 가로 세로로 균열이 되면서 지금 같은 온갖 형태의 형상으로 변모하게 됐다는 것이다.       공원 입구부터 8마일의 시닉(Scenic) 드라이브 길은 여기가 마치 금강산 골짜기를 미국으로 옮겨놓은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경관이 좋다. 마치 수십만 명의 군인들이 펼치는 열병식 같은 바위의 향연은 이 세상 그 어떠한 형용사를 다 붙여 놓아도 모자랄 정도다. 중국 진시황릉의 병마용 병사 조각들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평양에 있는 김일성 광장에서 장엄한 퍼레이드를 보고 있는 느낌 같기도 하다.   치리카후아엔 여러 등산로가 있지만 가장 볼 만한 곳은 에코캐년과 하트 오브락스 트레일, 인스퍼레이션 포인트 등이다. 에코캐년으로 들어가는 길은 세상에 이럴 수가 싶을 정도로 처음부터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촛대 바위, 코끼리 바위, 거북 바위,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모자 바위, 비스듬히 옆 바위에 기대어 마치 연인들이 입맞춤하는 것 같은 모양의 키싱바위, 수백 년 면벽 수도하는 수도승 모양의 바위, 바위에 얹혀 묘하게도 중심을 잡고 서 있는팽이바위 등등. 천차만별 바위들은 제각기 하나하나가 다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사찰에나 있음 직한 3층 석탑 5층 석탑 모양의 바위들도 빼곡하다.   겨우 두 시간 정도의 에코캐년 등산길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갈기갈기 흔들어 놓는데 치리카후아 공원의 심장이라는 하트 오브락스 루프 트레일(Heart of Rocks Loop Trail)은 얼마나 더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을까. 한고비 돌면 절경이요, 또 한 골짜기 넘어서면 비경이며 다시 한 고개 넘어서면 선경이다.      빅 밸런스 록 트레일(Big Balanced Rock Trail)도 신기하긴 매한가지다. 저렇게 큰 몸통의 바위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어떻게 저렇게 중심축을 잘 가늠하여 홀로 서 있는지 이 또한 자연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연출해낼 수 없는 절묘함이 아닐까 싶다. 인스퍼레이션 포인트(Inspiration Point)를 향해 가는 길은 또 다른 맛이다. 청아한 목소리를 자랑하는 이름 모를 산새들이며 인고의 세월을 딛고 바위 틈바귀에 초연히 서 있는 청송들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고 이름 그대로 무엇인가 영감이 떠오를 것만 같다.   문자가 없었던 탓에 치리카후아 인디언의 역사를 밝혀내기는 쉽지가않지만, 후손들은 지금 자신들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한다. 손가락도 안으로 접어든다고 그들이 우리와 두상이 같고 홍문반점도 있어 그런지 자꾸 마음이 쓰인다. 이곳이 마치 우리 조상이 머물렀던 땅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 여행메모   치리카후아는 애리조나 동남부 뉴멕시코주 접경지역에 있다. LA에서 가자면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동쪽으로 애리조나주 투산을 지나 윌콕스(Willcox)라는 마을에서 내려 186번을 타고 40마일 정도 가면 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공원 출입이 제한한다. ▶ 주소 : E Bonita Canyon Rd, Willcox, AZ 85643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김평식 신유 천차만별 바위들 촛대 바위 바위 거북

2021-12-18

김평식 신유람<33> 나파밸리 와이너리

가주 유명 와이너리 투어  비애호가도 점점 많이 찾아    조지아에도 와이너리 많아  하루 나들이 이색경험 선사      와인 하면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이고 나파밸리 하면 와인이다. 미국에서 매년 제일 많은 와인을 생산해 내는 곳이 나파밸리이고 또 제일 좋은 양질의 고급 와인도 나파벨리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와이너리가 많은 곳은 나파밸리 말고도 101과 46번 도로가 만나는 파소 로블스(Paso Robles)와 LA 남쪽테미큘라(Temecula)도 있다. 특히 테미큘라는 클린턴 대통령이 가주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을 접대했다 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다른 농작물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포도는 과일 중에서도 일조량에 가장 예민하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50개 주 중에서 일조량이 제일 많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비는 오지 않고 온종일따뜻한 햇볕이 비추기 때문이다. 특히 나파밸리는 최고의 포도주로 숙성되는데 필요한 모든 지형적 조건을 다 갖추었다. 일조량 외에도 포도 품질과 숙성 조건에 큰 영향을 끼치는 토양과 안개와 해풍 등이 그것이다.       최근 나파밸리의 유명 와이너리 중 하나인 팔마즈(Palmaz) 와이너리를 다녀왔다. 650에이커나 되는 큰 포도밭을 가진 와이너리로 14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이다. 650에이커라면 100만평 가까운 면적으로 여의도 크기의 절반 정도로 넓다. 나파밸리에는 1881년부터 와이너리가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은 총 375군데나 되는 와이너리가 있다. 이번에 방문한 팔마즈 와이너리는 그 중  10번째 규모 정도 된다고 한다.      와이너리 뒤로는 나파마운틴이 병풍처럼 받쳐주어 해무의 정체 시간을 조절해 준다. 또 사방으로 끝도 안 보이게 넓은 포도밭에서 매년 수확되는 엄청난 포도는 X-레이 자동 선별 기계로 품질 등급에 따라 자동으로 선별된다. 포도주로 가공된 뒤에는 참나무(Oak) 원목 통에 담겨 몇 년에 걸쳐 동굴 속에서 숙성된다. 동굴 속은 일정한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는 것은 물론이다.    와이너리 건물 지하에는 엄청나게 큰 스테인리스 탱크가 있는 양조장이 있다. 이곳에서 포도를 기계로 압축해서 포도주를 만든다. 수확기에는 좀 더 많은 일손이 필요하겠지만, 이 모든 생산 과정을 관장하는 와이너리 종업원은 평상시 35명이 전부라고 해서 놀랐다.       필자는 전에도 몇 번 여기저기 와이너리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와인에 대한 상식은 거의 없다. 와인 애호가들도 식사 전후에 한 두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좋아 보여 가끔은 흉내를 내 보는 것 정도라고나 할까. 그조차도 붉은 것은 레드와인, 투명한 것은 화이트 와인이라는 것만 아는 수준이니 흉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어떤 때는 와인 공부를 좀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와인의 종류만 해도 만 개가 넘는다 하고 또 와이너리마다 자기네 상표를 붙여 나오고 있으니 그 많은 와인을 무슨 재주로 구별하나 싶어 공부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와인이 몸에는 좋다니까 가끔코스트코에서 24개 들이 한 박스씩 사다 놓고 마시곤 한다. 옛날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 선대 분들이 식사 때 반주 한 잔씩 곁들여야 밥맛이 더 난다고 했듯이 말이다.    중독 중에는 도벽만 있는 게 아니다. 술을 못 끊는 주벽도 고약한 중독인데 과유불급이라고 와인이 제아무리 좋다 한들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은 문제다. 나처럼 몸에 좋은 약주가 되려니 하면서 반주로 한두 잔 마시는 것 정도가 오히려 가장 행복한 와인 애호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여행 메모 와이너리는 와인 애호가가 아니어도 이색적 경관이나 분위기가 좋아 누구든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조지아 북쪽 교외에도 꽤 많은 와이너리가 있어 하루 나들이로 다녀올 만하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팔마즈 와이너리는 드넓은 포도밭과 와인 제조시설 등을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 1시간 반 정도 둘러보았는데 와인 시음까지 포함해 1인당 40불 정도였다.  ▶주소 4029 Hagen Rd, Napa, CA 94558 .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와이너리 김평식 와이너리 포도밭 와이너리 종업원 와이너리 건물

2021-12-11

김평식의 신 미국 유람〈32〉 유타주 신들의 계곡

  온천지가 온통 붉은 황톳빛 사암이다. 울퉁불퉁 포장도 안 된 거친 흙과 돌 더미 자갈밭 길을 따라간다.  17마일이나 되는 고행의 길은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험난한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것만 같다.     설마 당국이 돈이 없어 포장하지 않았을까. 예수가 만백성을 위해 험난한 길을 걸었음을 상징하기 위해 그냥 내버려 둔 게 아닐까. 자동차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먼 길의 성지에 왔다는 자부심과 위로는 느낀다.     이곳은 유타주의 숨은 보석 ‘신들의 계곡(Valley of the Gods)’ 이다. 원래 이곳은 아나사지 인디언 원주민들이 살았던 곳이다. 36만 에이커의 광활한 계곡 속에는 수많은 바위가 군상을 이루며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곳은 개발 자체가 안된 곳이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모뉴먼트 밸리가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 명성에 가려진 탓도 있다. 그래도 알음알음으로 알려져 한인들은 꽤 많이 찾는다. 이곳을 다녀간 한인들은 원래 영어 이름에서 나온 ‘신들의 계곡’보다는 그냥 편하게 ‘하나님의 계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마 한인 중에 크리스천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필자 역시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하면서 함께 왔던 크리스천 일행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이곳을 하나님의 계곡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털털거리며 계곡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보면 성경에 나오는 열두 제자가 일렬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또 ‘최후의 만찬’ 그림과 비슷한 장소도 있고 사도 바울 상, 성모 마리아상 같은 바위도 보인다. 기기묘묘한 바위 틈새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어떤 곳은 골고다 언덕이 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이 된다.     일행은 그런 곳마다 멈춰 서서 사진 좀 찍고 가자고 난리들이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생전 처음 성경의 무대 같은 곳에 왔으니 흥분되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예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의식이 성찬식인데 그렇다면 사진만 실컷 찍고 갈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찬 의식이라도 하고 간다면 그 또한 큰 은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들의 계곡 바로 옆에는 구스넥 주립공원(Goosenecks State Park)이라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유타주 남쪽을 굽이굽이 흐르는 샌 후안 리버 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멕시칸 햇(Mexican Hat)이라는 곳에서 멀지 않다. 이곳은 구스넥이란 이름 그대로 거위 목처럼 구불구불한 전망이 기가 막힌다. 하지만 이곳 역시 유명한 홀스슈벤드(Horseshoe bend) 보다는 덜 알려져 있다. 그래도 주변 풍광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계곡은 억겁 세월 동안 깎이고 씻겨 내려가면서 수천 피트 벼랑을 만들었고 그 아래로 마치 커다란 구렁이가 구불구불 기어가듯 깊은 강이 흐르는데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현기증을 자아낸다.       신들의 계곡 서쪽 입구에는 집 한 채가 외롭게 있는데 그런 곳에서 하루쯤 묵어도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숙박비는 10년 전에 170불이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받는지 알아보고 가는 게 좋겠다. 하느님의 계곡은 교통이 아주 불편한 오지 중의 오지여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대신 어렵게 찾아갈수록 은혜도 더 많이 받는다고 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 여행메모 신들의 계곡 멀지 않은 곳에 서부 영화의 성지가 된 모뉴먼트 밸리가 있다. 인디언 원주민들이 관리하는 그곳은 워낙 유명해서 관광객도 많고 입장료도 내야 한다. 이에 반해 신들의 계곡은 모뉴먼트 밸리의 축소판 같은 곳이어서 입장료도 없고 인적도 드물어 색다른 맛이 있다. 유타주 261번 도로와 163번 도로가 만나는 곳 10마일 언저리에 작은 출입구 사인이 있다.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김평식 신유 계곡 일대 계곡 서쪽 구스넥 주립공원

2021-12-05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31> 66번 국도

  ━   전에는 눈물의 길…지금은 낭만과 추억의 길    시카고서 샌타모니카까지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도로    한때 퇴락했다가 다시 복원 주요 경유지 옛 정취 그대로      66번 국도(Historic Route 66). 이 길은 곧 미국의 역사다.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애환이 서려 있는, 아픔의 길이자 희망의 길이었다.    출발점은 시카고 다운타운 리처드 토머스 웨이(Richard L Thomas Way)와 조지 솔티플레이스(Georg SoltiPl) 사거리 옆에 있다. 종점은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바다 끝 피어 위다.     옛말에 서러움 중에 가장 큰 서러움이 배고픔이라고 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가 그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클라호마주의 중부지역에는 초대형 토네이도로 모든 농작물과 가축이 모래와 자갈밭으로 뒤덮여 버렸다.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는 재기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곳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서부로 떠나기 시작했다.     이주 행렬은 1950년 후반까지 이어졌다. 그 속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도 있었다. 그의 유명한 소설 ‘분노의 포도’는 이 길 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게이트웨이 아치도 이때의 서부로 간 사람들이 지나갔던 곳이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아기 때는 엄마 젖을 먹어야 하고 그 후에도 엄마가 무엇인가 먹여줘야 살 수 있다. 이 길을 거쳐 간 당시 이주자들도 이 길 위에서 먹고 마시며 버텼다. 그래서 이 길은 일명 어머니 길(The Mother Road)라고도 한다.      66번 국도는 1926년 개통됐다. 총 길이는 2448마일, 비포장 상태였다. 비록 모래와 자갈이 뒤섞인 흙길이었지만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도로였다. 66번 국도는 미국의 실크로드라고도 불리고 문학과 음악 같은 예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노벨 문학상 수상 가수 밥 딜런 말고도 엘비스 프레슬리, 넷킹 콜, 폴 엥카, 척 베리 등 많은 가수가 이 길을 노래했다.     66번 국도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부산 간 경부 국도와 같다. 한국도 비포장 시절에는 비만 오면 도로가 움푹움푹 패어 모든 도로에 자갈을 깔아 놓기도 했는데 필자도 학창시절 자갈 부역을 한 기억이 난다. 또 유성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갈 때 타고 가던 버스가 타이어 펑크가 나 2시간여 동안이나 흙먼지 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기다리면서 신랑의 체면이 말이 아닌 곤욕을 치른 추억도 있다.   66번 국도는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오클라호마, 캔자스, 미주리, 일리노이 등 8개 주를 관통한다. 지금은 대부분 프리웨이로 편입이 되었지만 여전히 66번 국도의 정취를 잘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곳 하나가 애리조나주 콜로라도 강 근처에 있는 오트맨( Oatman)이라는 도시다. 이곳은 골드러시로 번성했던 곳이다.      66번 도로는 이 마을 중심을 관통하는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당시 미국 최고 배우 클라크 게이블이 신혼 여행을 와서 며칠 밤을 묵고 간 호텔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 영업은 하지 않고 있으나 그들 부부가 사용했던 침대는 문밖에서 볼 수 있다.   아래층 식당 내부 벽에는 방문객들이 자기 사인을 해서 붙여놓은 돈으로 빈틈이 없다. 길거리에는 야생 조랑말들이 여행객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또 어떤 놈은 실컷 얻어먹었는지 길바닥에서 차가 오든 말든 낮잠을 즐긴다. 그러다 해가 넘어가면 산속으로 들어가고 아침에 해가 뜨면 다시 마을로 출근한다.   66번 국도는 별칭도 많다. 앞서 말한 ‘마더 로드’ 외에도 타운과 타운을 잇는 중심 도로라 하여 ‘메인 스트리트’, 피 끓는 정열이 넘치는 도로라 하여 ‘블러디 66’, 길 자체의 대명사란 의미로 ‘더 루트’ 등으로도 불린다.      시카고 방문 길에 출발점에서 사진을 찍었다. 또 66번 국도에 대해 글을 쓰고 쓴다 하니 바쁜 중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까지 날아와 오랜만에 부자지간에 친구도 되어주고 많은 정보도 들려준 아들에게 감사한다.      # 여행메모 66번 국도(US Route 66)는 시카고에서 샌타모니카까지 이어지는 약 2500마일의 대륙 횡단 도로다. 대부분 고속도로에 흡수됐다가 한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2003년 전 구간이 다시 복원되었다. 애리조나 오트만 외에도 66번 국도가 지나가는 주요 도시마다 기념품 가게나 오래된 상점, 작은 여관 등이 있어 외국 관광객들은 물론 옛날 정취를 맛보려는 미국인들도 일부러 이 길을 이용한다.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김평식 신유 경부 국도 시카고 다운타운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2021-11-28

김평식 신 미국유람 <29> 시카고 알 카포네

  ━   악명 높았던 마피아 두목의 삶과 죽음의 자취    1920~30년대 암흑가 제왕 살았던 집은 의외로 소박    쓸쓸히 서있는 묘비 보며 평범한 일상의 행복 생각    알 카포네(Al Capone, 1899~1947)는 옛날 시카고를 주름잡던 마피아 갱단의 두목 이름이다. 알 카포네의 행적을 찾기 위해 10월의 마지막 날 이른 아침 시카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탈리아계의 성격 급하고 다혈질인 알 카포네는 젊어서부터 교도소를 밥 먹듯 드나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비정의 주먹과 잔혹성 그리고 과시욕은 당시 그를 따를 경쟁자가 없을 정도였다. 못된 놈은 떡잎부터 안다고 14살 초등학생 때에 선생의 얼굴을 가격해 퇴학당하고 학업도 중도 하차했다. 그러나 19살에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외아들을 두었는데 가족 사랑은 남달랐다는 후문이다.   부전자전이라는 말대로 알 카포네의 아버지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거대 갱단의 두목이었다. 카포네는 1899년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16살에 처음으로 갱단에 가입했다가 리더 스타일인 그는 조직에 맞지 않아 1919년 뉴욕을 떠나 시카고로 갔다.    거기서 갱단의 거물 조니 토리오를 만나고 얼마 뒤 조니 토리오로부터 조직을 물려받은 그는 단시간에 시카고 전역을 장악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 경찰까지 영향력을 넓혀갔다. 그 과정에서 라이벌 갱단의 습격을 받아 얼굴 한쪽 볼이 떨어져 나가는 흉터가 생기기도 해 스카페이스(Scar Face)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밀주, 매음, 도박 등으로 돈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쓸어 담아 1927년 한때 한 해 총수입이 1억 달러에 이르며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악당 갑부가 되었다.  알 카포네는  암흑가의 제왕으로 밤의 세계를 지배했지만 불경기가 닥쳤을 때는 동네 주민들에게 하루 3번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등 선행도 종종 베풀었다고도 한다. 악명 높은 의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시카고대학 남서쪽 파크 매너 지구(7244 S Prairie Ave. Chicago IL 60619)에 있는 그의 집은 생각보다 허름했다. 1905년에 지어진, 100년도 더 된 2층짜리 평범한 빨간 벽돌집이었는데 알 카포네가 24세이던 1923년에 아내와 어머니 공동명의로 매입했다고 한다. 집 뒤쪽으로는 2개의 차고가 보였는데 차고에서 본채까지는 지하 비밀 통로가 있었다고도 한다.      알 카포네는 시카고에서 1931년 탈세 혐의로 기소되어 11년을 선고받고 샌프란시스코 알카트레즈 섬을 비롯해 플로리다 등 여러 교도소를 전전하다가 8년 만에 모범수로 풀려났다. 하지만 수감 전 걸렸던 매독의 후유증 등으로 고생하다 1947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플로리다 저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죽을 당시 그의 재산은 무려 13억 달러로 추산되었는데 돈이 없어서 죽은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인생무상의 단면을 보는 듯하여 씁쓸해진다. 그가 비록 돈은 많아 억만장자였을지 모르지만 방탕한 사생활과 갱단끼리의 목숨 건 경쟁으로 인해 항상 불안하고 쫓기는 생활을 했을 것을 생각하면 역시 행복은 돈과는 무관하다는 것도 한 번 더 되새기게 된다.       알 카포네의  집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살피고 있는데 필자처럼 방랑벽 심한 또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나보다 한 수 위인 듯 알 카포네의 묘지까지 다녀왔다고 해서 귀가 번쩍 뜨였는데 바쁜 와중에도 동행해 준 아들에게 자세한 정보까지 주고 가니 이런 행운이 있으랴 싶다.    마침 아들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묘지도 가 보시지요”라고 해서 “네가 바쁠 텐데"라며 형식적으로 한마디 내뱉긴 했으나 내심 어찌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그렇게 찾아간 알 카포네 묘가 있는 공원묘지는  지금까지 필자가 다녀본 공원묘지 중 가장 커 보였다. 214에이커의 넓이의 이곳엔 무려 22만6275기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다고 했고 미국에서 비석이 제일 많기로도 유명한 곳이라 한다.    그 넓은 곳에서 찾아낸 알 카포네 묘지는 제법 큰 입석 비문으로 되어 있어 다른 묘지들이 대개 가족 장지로 되어 있고 비문도 거의 평석인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알 카포네 무덤은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30여분 떨어진 교외지만 찾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가 비록 악명 높았던 희대의 범죄자였지만 그래도 한때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젊은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뽑히기도 했다니 사람의 심리는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악당도 유명해지고 볼 일이다.    # 여행 메모 알 카포네가  살았던 시카고 집은 지금은 주인이 바뀌어 몇 년 전 매물로 나오기도 했는데 주소는 7244 S Prairie Ave, Chicago, IL 60619이다. 알 카포네 무덤은 마운트 카멜 공원묘지(Mount Carmel Cemetery)에 있는데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서쪽으로 차로 약 30여분 거리에 있다. 묘지 주소는 1400 S Wolf Rd., HIllside IL60162 이며 알 카포네 무덤은 섹션 35 구역에 있다.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김평식 시카고 시카고대학 남서쪽 아침 시카고행 옛날 시카고

2021-11-14

김평식 신 유람 (28) 미네소타 1만개 호수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28〉 미네소타 1만 개 호수   망망대해 닮은 오대호 옆 100마일 환상 드라이브     맑고 깨끗한 물, 물의 고장  산 속엔 취나물 널려 있어   주 최고봉 마운틴 이글도 1만개 호수 사이에 '봉긋'   미네소타주는 중북부의 주로 캐나다와 국경이 접해있고 오대호 중에서도 가장 큰 슈피리어 호수와도 150마일이나 맞닿아 있다. 이곳엔 크고 작은 호수가 1만개가 넘는다. 미국은 어느 주든 그 주의 가장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것을 자동차 번호판에 표시하고 있는데 미네소타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10000 Lakes’라고 표시되어 있다. 1만개의 호수가 있는 주라는 말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1만개 호수가 아니라 1만2000개쯤 된다고 한다.    이들 호수는 슈피리어 호수의 서북쪽에 대부분 오밀조밀 밀집해 있다. 생명이 있는 동식물들은 번식을 위해 서로 모여 산다고 하지만 생명이 없는 호수나 바위 같은 것들도 이렇게 한곳에 모여있다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할 뿐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많은 호수가 다닥다닥 붙어있으면 일반적으로 여기가 저지대로구나 생각하겠지만, 미네소타주에서 가장 높은 최고봉도 이 오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하긴 필자는 처음부터 1만 개의 호수를 가보겠다고 작정하고 간 게 아니었다. 과거 미국 50개 주 최고봉을 모두 오를 때 미네소타주 최고봉 마운틴 이글(Mt. Eagle)을 찾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만 개의 호수 속을 두더지마냥 헤매고 다녔기 때문에 1만 개 호수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슈피리어 호수 서북쪽에 있는 61번 도로를 한 번 달려보시라. 100마일이 넘는 호안 길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환상적이다. 오른쪽으로 망망대해 같은 호수에 한가롭게 떠 있는 돛단배, 왼쪽으로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배기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 빚어내는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자 가히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이 호수 서남쪽에는 둘루스(Duluth)라는 도시가 있다. 애틀랜타 한인타운 귀넷 카운티의 둘루스와 똑같은 이름이다. 노벨상 수상 가수 밥 딜런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약 60마일 정도 캐나다 국경 쪽으로 올라가면 1번 하이웨이가 나오는데 이 길로 들어가면 미네소타주  최고봉에 이른다. 미네소타 최고봉인 마운틴 이글은 이 많은 호수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명색이 최고봉임에도 정상에 서면 온통 침엽수에 가려 호수라곤 몇 개밖에 안 보이고 온통 진한 청색뿐이다  마운틴 이글이 있는 곳은 슈피리어 국립삼림(Superior National Forest) 지역인데 한인들이 알면 또 하나 놀랄 게 있다. 이 지역에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 먹는 취나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필자가 갔을 때도 완전 무공해에 잡풀 하나 섞이지 않은 곳에, 크기는 마치 호박 이파리만큼 큰 취나물이 꽉 박혀있는데 낫으로 대충 후려도 5분이면 한 짐은 싸겠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언젠가 어떤 산에 고사리가 많다더라는 소문이 처져서 고사리가 남아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 당국의 단속에 걸려 많은 한인들이 벌금을 물기도 했었는데 미네소타에 이렇게 취나물이 많다는 것을 알면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미네소타에는 수많은 호수가 있고 그 호수들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오대호도 만들고 미시시피 강물도 만들고,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도 만들고 캐나다와의 국경선도 만든다.    미네소타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더 하자면, LA에는 NBA의 유명한 농구팀 레이커스(Lakers)가 있다. 원래 이 팀은  미네소타 연고였다. 1947년 미니애폴리스에서 창단되어 17번이나 NBA 우승까지 한 팀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만 개의 호수를 버리고 LA로 이전해 갔다. 그게 1960년이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필자도 아는 바는 없는 무식쟁이다. 내 이름이 평식이지만 그 점에선 맹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여행메모 미네소타라는 이름은 깨끗한 물이라는 뜻의 원주민 인디언 말에서 유래됐다.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크지만, 인구는 600만명이 채 안 된다. 주도 세인트폴은 경제 중심지인 미니애폴리스와  인접해 있는데 두 도시를 함께  ‘트윈 시티(Twin Cities)’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한국 아이들을 가장 많이 입양한 주도 미네소타주인데 약 2만명 정도 입양인이 있다.   〈사진설명〉  -미네소타 1만개 호수 -미네소타 최고봉 마운틴 이글 (Mt. Eagle) -오대호 중에서도 가장 큰 슈피리어 호수. 미네소타에 거의 반이 접해 있다.  -미네소타주 자동차 번호판. 1만 개의 호수(10,000 Lakes)가 쓰여 있다.    배은나 기자미네소타 김평식 미네소타주의 자동차 슈피리어 호수 호수 망망대해

2021-11-07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27〉유타주 콜롭캐년

  ━   직접 안 걸어보면 평생 후회할 '숨은 보석'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오고 가는 계절을 확인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때다. 필자도 이 가을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모처럼 지인들과 애리조나주 자이언캐년을 다녀왔다. 더 정확하게는 자이언캐년의 한 부분인 콜롭캐년(Kolob Canyon)이다.    자이언캐년은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한 국립공원이다. 그랜드캐년에 버금가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간직한 곳으로 절벽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공원 안에는 수억 년 풍상에 씻긴 형형색색 바위와 계곡, 산들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같은 자이언캐년 국립공원의 한 부분임에도 콜롭캐년이란 이름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너나없이 성격들이 급해 뒤에서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는지 처갓집 벌초하듯 자이언캐년도 대충 휙 둘러보고는 인근 브라이스캐년 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옆에 콜롭캐년이라는 숨은 보석이 있는 줄은 잘 모를 수밖에. 자이언 국립공원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8933피트 높이의 콜롭피크도 사랑채인 콜롭캐년에 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콜롭캐년은 자이언캐년의 사랑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들어가는 입구도 달라 안방마님이 기거하는 자이언캐년 본채와는 완전히 분리되어있다. 사랑채는 대감 나으리가 기거하면서 손님도 맞고 친구들과 담소도 하던 곳이다. 그러니까 본채 외에 이 사랑채까지 통틀어서 자이언캐년 국립공원이라 하는 것이다.     유타주를 가로질러 올라가는 고속도로가 15번 프리웨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 27번 출구에서 내리면 본채 격인 자이언캐년으로 들어간다. 콜롭캐년은 조금 더 올라가 40번 출구에서 내려야 한다. 콜롭캐년으로 들어가는 길 이름은  콜롭캐년 로드( Kolob Canyon Road)인데 5마일 정도 끝까지 올라가면 뷰포인트,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건너편으로는 웅장한 거봉들이 시선을 압도하고 화장실 뒤로는 피크닉 장소도 넉넉히 있어 쉬기에 좋다. 맞은편에 보이는 8000피트가 넘는 팀버 마운틴의 위용도 장엄하다.       자이언캐년에는 깎아지른 듯한 준봉들이 즐비하다. 그 사이사이 협곡에는 버진리버라는 강이 흐르고 그 강물이 자그마치 400만년 전부터 깎아 만든 형세가 숨이 막힐 정도다. 콜롭캐년에도 이와 비슷한 협곡이 이어진다. 왕복 5마일의 테일러 클릭(Taylor Creek) 트레일을 걸어보면 협곡의 맛을 알 수 있다.    자작자작 흐르는 냇물을 무려 50번이나 넘나들며 막다른 골목 끝까지 들어가면 더블 아치 알코브가 나오는데 하늘을 향해 붉은 암벽 끝을 볼라치면 목이 아파서 다 올려다볼 수가 없을 정도다. 좁은 계곡 양쪽으로는  암벽이 수직으로 서 있어 눈이 내려도 걸터앉을 자리가 없다. 계곡에는 단풍나무들이 적당한 거리에 사철나무들과 섞여 있어 가을이면 단풍 감상도 나쁘지 않다.       여행과 관광의 차이를 말하자면 여행은 걸으면서 구경하는 것이고 관광은 차 안에 앉아서 편하게 보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이왕이면 관광보다 여행을 해보자는 말이다. 아무리 명승지라도 직접 속살까지 걸어 들어가 직접 맛을 봐야 짠지 싱거운지 참맛을 알지 않을까 싶다.    콜롭캐년이 정말 그런 곳이다. 바쁜 사람들은 차로 와서 경치만 봐도 좋지만 제대로 보려면 조금이라도 하이킹을 해 보라는 것이 그래서이다. 주변 트레일을 따라 가볍게 걸어볼 수도 있고 팀버마운틴 남쪽 절벽 밑으로 돌아 유명한 콜롭아치(Kolob Arch)까지 왕복 13마일 트레킹을 경험해 보면 더 좋다.    등산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이언캐년깊숙이앤젤스 랜딩(Angels Landing)까지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웬만한 등산 전문가도 하루에는 할 수 없는 고난도 여정이라 잘 계획하고 도전하는 것이 좋다.   #여행 메모   콜롭캐년은 자이언캐년 국립공원의 북서쪽 귀퉁이에 자리한다. 자이언캐년보다 지대가 높아 산세가 더 험하고 절벽도 아찔하다. 이곳에 있는 콜롭아치는 폭이 310피트에 달하는 세계적인 자연 아치로 유명하다. 자이언캐년은 라스베이거스 북쪽 110마일, 차로 2시간 반쯤 거리다. 유타주 첫번째국립공원으로 연간 300만 명이 방문한다.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김평식 신유 김평식 등산여행 자이언 국립공원 국립공원 일부

2021-10-31

동굴 위로 강물, 아래도 강물… '신기해요'

켄터키주 유일 국립공원 매년 200만명 찾는 명소   현재 발견된 곳만 365마일 주변 경관도 좋아 가 볼 만      미국에는 동굴 국립공원이 세 군데 있다. 뉴멕시코주 칼스배드, 노스다코다주의윈드케이브, 그리고 켄터키주의 매머드 동굴 국립공원(Mammoth Cave National Park)이다.   194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매머드 동굴은 그 넓이만 5만2800 에이커에 이르는 미국 최대의 동굴이다. 뉴멕시코주 칼스배드 동굴 안의 초대형 광장을 보고도 놀라 자빠질 뻔했는데 그보다 더 큰 동굴이라고 하니 가 보기 전에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매머드라는 이름도 거대하고 복잡하게 얽힌 미로로 인해 붙여졌다고 한다. 동굴 속 온도는 1년 내내 화씨 54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제일 큰 방은 폭이 약 200피트, 천장 높이가 192피트이고 제일 깊은 구덩이는 105피트나 된다니 그 규모가 더욱 궁금할 수밖에.    공원 입구 방문자 센터에 가면 동굴 내력을 설명한 비디오를 볼 수 있다. 동굴 관람은 먼저 비디오를 보고 난 뒤 가이드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가야 한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대략 3억 5000만년 전 이곳은 바닷속이었는데 죽은 물고기 뼈와 함께 500피트 두께로 석회암이 쌓이기 시작했다. 현재 발견된 동굴 길이는 총 365마일이나 되는데 지금도 계속 탐사 중이라 앞으로 더 발견된다면 총 길이가 600마일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니 가히 그 길이가 세계 제일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 덕분에 이곳은 연간 200만명 이상이 찾는 켄터키 최고 명소가 됐다.       매머드 동굴은 다른 지역 동굴과는 다른 특징들이 있다. 우선 이곳은 비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고 인근에 흐르는 그린(Green) 강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석회석 바위(Limestone)를 녹이고 있다. 수백만 년에 걸친 그 용해 과정에서 동굴 천장과 바닥에 수많은 종유석과 석순이 생겨났고 기기묘묘한 석회암 기둥도 만들어졌다. 실제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면 입이 딱 벌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자연이 만든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어떤 천재 조각가나 거장이 와도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성싶다.     또 하나는 이 동굴이 다층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표면에서 약 200피트 아래에 거미줄같이 얽힌 동굴이 2층으로 되어 연결되어 있고 또 그 아래 360피트 부분에는 사방에서 흘러온 물이 에코 리버(Echo River)라는 동굴 속의 강을 만들어  흐르고 있다. 그러니까 동굴 위 지표면에는 그린강이 흐르고 그 밑에 동굴이 있으며 또 그 아래로 400피트쯤에 또 다른 에코강이 흐른다는 말이다.     동굴 안과 에코강에는 어둡기 때문에 눈이 필요 없는 맹안 귀뚜라미를 비롯해 각종 가재와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또 동굴은 입구가 마치 벌집처럼 250군데나 있어 1816년부터 세간에 알려지기 이전에도 이미 많은 사람이 개인 집 마당이나 뒤뜰에 난 구멍을 통해 동굴 안으로 마구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국립공원이 된 지금은 어림없는 일이다.      한편 이 일대를 가로지르는 그린강 주위의 경관도 빼어나다. 봄에는 무성한 나무마다 돋는 새순이 좋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강물 위로 고즈넉한 물안개라도 얕게 깔리면 금방 신선이라도 나올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 설경 또한 일품인데 다만 고속도로가 막힐 정도로 눈이 많이 올 때가 있으니 겨울 방문엔 일기 예보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린강에서는  카누, 카약, 보트, 낚시 등의 다양한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김평식 여행 등산전문가    #여행 메모 켄터키주는 원래 버지니아의 일부였으나 1792년 분리 독립했다. 테네시주 북쪽에 있으며 동쪽은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와 접하고 있다. 크기는 남한과 비슷하며 최대 도시는 루이빌로 유명한 경마대회 ‘켄터키 더비’가 열리는 곳이다. 매머드 동굴은 켄터키주 유일의 국립공원으로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매머드동굴 김평식 켄터키 매머드 동굴 국립공원 매머드 동굴

2021-10-24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25>캔자스시티 트루먼 도서관&박물관

   옛말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을 뒤집어 약 주고 병 줬다면 어떻게 될까?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겠지만 트루먼 대통령을 떠올리며 필자가 생각해 본 말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지만 한 때는 국토가 채 손바닥보다도 작게 남은 풍전등화 같던 때가 있었다. 6·25 때 이야기다. 그런 나라를 살려준 사람이 트루먼이고,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정전협정으로 한반도를 두 동강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분단의 고통을 주고 있는 장본인도 트루먼이다. 그러니 약 주고 병 주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1884~1972)은 청렴과 강직한 직업윤리로 표상되는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고, 한국전쟁 참전도 결정했다. 그는 6.25가 발발했던 1950년 6월 24일(미국시간)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더스에 있었다. 이곳은 캔자스시티 바로 인근이다.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뮤지엄 (Truman 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은 이곳에 있다.      그는 북한의 전면 남침 소식을 듣고 참전을 반대하는 참모들의 의견을 뿌리치고 곧바로 파병을 결정했다. 이후 전쟁을 치르면서 맥아더 장군과 수많은 이견과 갈등을 겪었다. 그는 특히 중공군이 참전할 때 원자폭탄을 사용하자는 맥아더의 주장에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참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맥아더를 해임하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한마디로 원폭 투하를 반대했다.     트루먼 뮤지엄에 가 보면 트루먼과 맥아더와 당시 주고받았던 편지가 여러 장 벽면에 붙어있다. 젊은 생명을 수만 명씩 죽여가며 계속 전쟁을 해야 하는지 고뇌하는 그의 사진 앞에 서니 저절로 숙연해지는 심정을 가눌 수가 없다.     트루먼은 부통령이 된 뒤 82일 만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시어머니한테 제대로 살림 배울 시간도 없이 대통령직을 승계받았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바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받았고 태평양 전쟁에서도 일본의 쇼와 천황(지금은 일왕이라 부름)부터도 항복을 받았다. 그 과정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명령을 내려야만 했던 고뇌의 결단이 있었다.     트루먼은 어렸을 때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시력이 극도로 나빠졌으며 집안이 어려웠을 때는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기도 했다. 결혼 후 옷 가게를 하였으나 3년도 못 가 망하고 1922년부터 12년간은 판사로, 이후 1944년까지 10년은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했다. 그의 사주팔자는 필자가 알 수 없지만 성격이나 외모로 봐서 장사나 사업을 할 사람은 아니고 관직으로 승승장구할 팔자였던 것 같다. 그러니 사업 실패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게 아닐까.      트루먼 뮤지엄과 그의 생가는 인디펜던스에 있지만 캔자스시티 방문자들은 꼭 들러보는 캔자스시티의 명소가 되었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뮤지엄에 들어가면 트루먼 대통령이 타고 다녔던 승용차와 사용했던 집기 비품,  그리고 그가 소장했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트루먼 대통령 집무실 말고도 그의 부인 집무실도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부인이 워낙 사업수완이 좋아 모든 비즈니스와 재정문제는 그녀가 도맡아 했다고 한다.    트루먼 로드와 델라웨어 애비뉴 코너에 있는 그의 생가는 면적이 9000스퀘어 피트 크기로 별채나 2층은 방문객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본채 아래층만 관람이 가능하다. 그것도 보존 문제 때문에 카펫 위로만 통행이 가능한데 당시 쓰던 냉장고, 오븐, 히터 등을 보면 미국  대통령으로서 참으로 검소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좌절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포기한 적은 없었다.” “우리의 목표는 당대의 평화가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다.”  트루먼 대통령이 남긴 말들인데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만난 이 구절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 여행 메모   캔자스시티는 미주리주와 캔자스주 두 곳에 있지만 나고 자란 곳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다. 더 정확히는 이곳 인근 인디펜던스라는 작은 도시다. 캔자스시티는 재즈와 바비큐가 유명하며 200개 이상의 분수가 있는, 로마 다음으로 분수가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10-17

[김평식 여행칼럼 '미국은 넓다'] 치프 조셉 댐(Chief Joseph Dam)

9.11 사건이 터진 후로는 미국의 모든 중요 산업시설에는 보안이 철저해졌다. 치프 조셉 댐(Chief Joseph Dam)도 예외는 아니다. 오전 10시에 투어가 시작돼 입구에서 검사를 받는다. 사진기 휴대전화 핸드백과 백팩 등은 모두 휴대 금지란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본넷트와 뒷트렁크까지 검사가 철저하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댐은 일자형이나 약간 곡선을 그리는 초생달 형인데 비해 이 댐은 가운데 작은 바위섬을 깃점으로 기억자로 만들어져 있다. 전면의 일자댐은 980피트 길이에 19개의 대형 수문에서 담수와 방류 역할만 한다. 댐 위의 수문앞에 서니 방류시키는 물보라와 진동에 그야말로 혼비백산 직전이다. 오른쪽에 있는 파워하우스는 그 길이가 전면의 댐 길이에 곱절이 넘는 2039피트에 28기의 초대형 발전기가 일렬로 꽉 들어차 있다. 하루에 100만달러 이상씩 전기를 생산해 내는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발전소다. 들어올 때 철저히 검색을 해서인지 또 다른 투어 손님이 없어서 인지 2시간 동안 구석 구석을 친절하게 다 보여준다. 대형 발전기 위에 올라서 보게도 하고 심지어 발전기 안으로 들어가서 1분에 100바퀴나 회전한다는 중심축을 손바닥으로 시범을 보이며 만져 보게도 한다. 이렇게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을 줄 몰랐는데 기대 이상이다. 참으로 미국이 자랑스럽고 이런 나라에 와서 살게 되었음을 마음 뿌듯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거대한 발전기의 터빈을 돌리기 위해서는 175피트 위에서 낙차되는 물의 힘으로 가동이 되는데 그 파이프의 크기에 또 한번 아연 실색하지 않을수 없다. 옛말에 6척 장신이라는 말이 있다. 6척이라면 꽤나 큰 사람을 지칭하는데 파이프 하나의 직경이 6척 장신의 네 곱절이 넘는 25피트라니 어디 상상이나 될 말인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는 이런 모든 것을 통크게 설계한 사람의 배짱을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 이곳 조셉(Joseph)이라는 주인공은 인디안 추장의 이름이다. 그는 18세기 말경 아이다호 주에 있는 원주민 중에 연방정부의 인디안 이주 정책을 거부하는 750명을 이끌고 몬태나 주까지 2700km에 달하는 거리를 행군한 인디안 추장이다. 그러나 그들은 1877년 목적지인 캐나다 국경을 불과 64km 남겨두고 연방군에 붙잡혀 다시 보호구역으로 옮겨졌다. 조셉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용맹함과 친화력을 높이 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붉은 나폴레옹'이라고 부르게 됐다. 행군 당시 입고 있던 조셉의 사슴 가죽으로 만든 전투복 상의가 인디언 역사상 경매에 나온 가장 유명한 유물로 꼽힐뿐 아니라 그의 인물상이 우표로도 제작이 되었고 초상화는 현재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아무리 적군이라도 적장 등에는 칼을 안 꽂는다는 말이 있다. 칼은 고사하고 그의 이름을 이렇게 웅장한 발전소에 새겨 놓았으니 미국이라는 나라가 더욱 자랑스럽다. 조셉이라는 큰 대어를 낚으며 단촐하게 2시간 동안 가장 인상 깊게 본 댐이다. 가는 길은 워싱턴주 중앙에 사과 단지로 유명한 레이크 첼런(Lake Chelan)에서 97번 북쪽과 17번 남쪽으로 40마일을 가면 된다. 방문자센터: (509)686-5501 ▶여행 등산 전문가: 김평식 (213) 736-9090

2012-10-04

[김평식 여행칼럼 '미국은 넓다'] 블루 리지 파크웨이 (1)…스카이라인만 장장 469마일 절경

천상인지 구름 위에 떠 있는지 분간이 잘 안된다. 대서양에서 시작해 미시시피강까지 흙 한번 밟지 않고 구름위 산 위로만 갈 수 있단다. 서부쪽에 비하면 산들도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가장 높은 산만을 골라 가장 높은 능선 위로만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 길이가 자그마치 469마일에 달한다. 바로 블루 리지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다. 섀낸도(Shenandoah) 국립공원이 끝나는 락피시갭에서 64번과 250번을 막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안내센터가 있는데 그곳 안내 직원이 거기서부터 남쪽으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트(Great Smocky Mt)까지 전구간을 제대로 구경을 하려면 5일이 넘게 걸린다고 말했다. 지긋이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평지도 아닌 험한 산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쏟았을까. 건설이 시작된 미국의 1930년대는 대공황 직후로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웠을 때이다. 1950년대 한국의 보릿고개를 떠올리게 한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도 겪었다. 실업자들이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미국 정부는 후버댐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여 실업자를 줄이는 정책을 펴 나갔다. 그게 블루 리지 파크웨이를 만들게 된 동기다. 현대와 같이 최신식 장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인력을 줄이기 위한 공사가 아니라 오히려 인력을 늘리기 위한 공사이기 때문에 무려 50년에 가까운 1987년에야 전구간의 공사를 마친 대장정의 역사였다. 그후 이 도로는 미국내에서 레저용 도로로는 가장 손꼽히는 명소로 알려졌으며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매년 1000만명이 넘는다. 봄철에는 철쭉을 비롯해 각종 꽃들이 만발할때도 좋고 가을에도 단풍이 제 빛깔을 낼 때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여기가 바로 천당 도로는 인산인해로 말미암아 주차장으로 변하고 만다. 그렇다고 돈을 받는 유료 도로도 아니다. 이곳을 방문할적마다 내심 후회가 많다. 왜 진작에 작문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 곳이 연출해 내는 멋진 풍경을 잘 묘사하여 칼럼만 읽어봐도 현장의 생생하게 감동을 느낄수 있도록 글을 쓰지 못할까하는 후회말이다. 앞으로 몇주에 걸쳐서 소개할 블루 리지 파크웨이는 버지니아주에서 시작 노스 캐롤라이나주까지 산정상의 스카이 라인으로만 장장 469마일을 달리는데 볼만한 곳만 41곳이고 터널은 16개나 있다. 중요한 부분만을 골라 소개한다. 방문자 센터는 17곳이 있다. 문의전화는 (828) 298-0358이다. ▶문의: (323) 731-3451

2011-05-26

[김평식 여행칼럼 '미국은 넓다'] 걸어야 제맛 '에스칼란트 스테어케이스'

걷지 않으면 좋은 볼거리를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차만 타고 다니면서 명품들을 직접 두 발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곳도 마찬가지다. '에스칼란트(Escalante) 스테어케이스 내셔널 모뉴먼트'를 다 구경하려면 하숙집 하나 정해 놓고 한 달 이상을 섭렵해도 구경할 게 무한정으로 많은 곳이다. 지구의 생성과정이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골짜기마다 억겹의 세월 동안 풍수에 씻겨 내려간 정교한 바위들의 무늬와 흔적들만 봐도 탄성이 절로 난다. 계단식으로 깎여나간 골짜기의 장엄한 모습은 글자 그대로 계단일 뿐이며 지질학적으로도 연구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한다. 에스칼란트의 광활한 지역을 대충 보려해도 비포장 도로가 많아 4륜 자동차가 필수다. 타운을 관통하는 12번 선상에서 '홀인락'이라는 사인대로 100마일 정도를 비포장 도로로 들어가면 유명한 레이크 파월을 병풍처럼 둘러친 검붉은 샌드스톤 바위들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푸른 물과 1000피트가 넘는 수직으로 떨어진 붉은 바위 그리고 파란 하늘의 조화가 장엄하면서도 한 폭의 그림이다. 길목의 바위에는 철판 비문이 붙어 있는데 몰몬교도들이 길을 잘못들어 먼 길을 돌아 갈 수도 없어 수 많은 역마차와 말들을 수직으로 떨어진 홀인락 절벽 밑으로 해서 콜로라도강을 건너가는 대역사를 했노라고 적혀 있다. 12번과 24번이 만나는 토레이(Torrey)에서 12번 서쪽으로 9600피트 높이의 하얗게 눈이 덮힌 딕시 내셔널 포리스트를 넘어 올 때는 풍치림과 경관도 훌륭하지만 '보울더'에서 키바 커피 하우스까지의 길은 좁고 커브도 많은데다 양쪽으로는 절벽이 마치 칼날 위를 가는 것같아 스릴이 넘쳐 차 안 사람들조차 숨을 멈춘듯 조용하다. 스펙터클의 경관도 양옆이 조마조마하여 마음놓고 쳐다볼 수가 없다. 바람이 잔잔하니 망정이지 겨우 이 곳을 빠져나와 12번 선상에 있는 '키바 커피 하우스'라는 식당에 앉았다. 반달형으로 생긴 식당 안에서 아름드리 통나무 기둥 사이로 의자의 방향만 이리저리 틀면서 기암괴석의 골짜기를 바라보는 맛이란 그야말로 환상이다. 더우기 시장한 판에 구수한 커피 향내와 잘 구워진 빵까지 식욕을 돋아주니 이것이야 말로 금상 첨화가 아니겠는가? 인적도 없는 이런 곳에 식당을 차려 놓은 것은 돈벌이인지 풍류객의 시심을 풀어주기 위함인지 주인의 배려가 감사할 뿐이다. 근처에 자이언 국립공원을 비롯해 브라이스 국립공원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 딕시 국립산림 레이크 파월 등 굵직굵직한 볼거리들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더부살이로도 다녀올만한 곳이다. 브라이스에서 캐피톨 리프까지 12번 도로로 딱 중간에 위치해 있는 에스칼란트는 50개 주에 있는 명승지 중에서 필자가 가장 선호하는 곳 중의 하나다. ▶문의: (323) 731-3451

2011-05-19

[김평식 여행칼럼 '미국은 넓다'] 원자탄 실체 과시한 투산 지하 핵무기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때문에 전세계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우리는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자세히 몰라서 담담할 뿐이지 그러나 그 내용을 대충이라도 알고 나면 핵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미국은 인류사 최초로 일본의 두 도시에 원자폭탄을 하나씩 투하했다. 이로 인해 일본은 항복 문서에 서명하므로써 제2차 대전은 막을 내렸다. 원자 폭탄 하나로 일본의 대도시인 히로시마는 순간적인 섬광과 함께 도시 전체가 하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으며 그나마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후일 방사능 낙진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크게 고통을 받았다. 원폭 하나로도 일본이 두 말 없이 항복하고 말았는데 지금의 핵무기는 그 위력이 일본에 투하했던 원폭의 위력이 600배나 된다니 전세계가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밖에 없음을 가히 이해할 만하다. 한때는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다 너무도 엄청난 위력의 무기인지라 지구 종말론까지 대두되면서 점차 핵무기를 감축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핵 보유 국가들은 핵발전 핵에너지 등 핵을 평화적으로만 사용하자는 조약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는데 북한이 불쑥 나타나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소련은 몰라도 미국은 한 순간에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가공할 무기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냉전 당시의 잔재인 지하 핵무기 실체를 현재 애리조나 투산과 사우스다코타주에 있는 배드랜드(Bad Land) 국립공원 안에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남가주에서 가까운 애리조나 투산에 있는 지하 핵무기가 서 있는 곳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발사할 때 생기는 엄청난 열기를 식혀 주기 위한 냉각수 장치가 핵무기를 둘러싸고 있다. 또 열기의 팽창으로 부터 둘레를 보호하기 위해 콩크리트 벽 두께가 자그마치 8피트이며 그 옹벽조차 뒤로 물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버팀시설 중앙 통제실을 가려면 문 하나의 무게가 3톤이 넘는 방열문을 3개나 통과해야 하는 엄청난 시설에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투어는 다섯가지 종류가 있는데 맨 처음 영화를 보며 안내원이 설명을 하는 것은 다 같지만 140피트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볼 수 있는 것과 90분짜리 60분짜리 등 안내가 다양하다. 55개의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 3층 정도에 있는 중앙 통제실까지 보는 투어를 일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 같다. 성인입장료는 6~10월엔 8.50달러이고 11~5월엔 9.50달러. 62세 이상은 1달러가 저렴하다. 입장 시간은 11~4월은 오전 8시 45분~4시 30분 5~10월엔 오후 4시까지다. 타이탄 미사일 뮤지엄 문의는 (520)625-7736나 웹사이트 titanmissilemuseum.org. 가는 방법은 투산시에서 19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20마일 정도 가다가 69번 출구인 그린 밸리에서 우측으로 내려 타이탄 뮤지엄 사인쪽으로 0.5마일 진행하면 된다. ▶문의: (323)731-3451

2011-05-12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