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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25>캔자스시티 트루먼 도서관&박물관

한국 6·25 때 '약 주고 병 준' 미국 대통령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인근 고향 인디펜던스에 기념관
맥아더 장군과 원폭 갈등 등 당시 기록·사진 등 생생 전시

트루먼 대통령의 나잇대별 초상화. 사진 / 중앙포토

트루먼 대통령의 나잇대별 초상화. 사진 / 중앙포토

 
 옛말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을 뒤집어 약 주고 병 줬다면 어떻게 될까?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겠지만 트루먼 대통령을 떠올리며 필자가 생각해 본 말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지만 한 때는 국토가 채 손바닥보다도 작게 남은 풍전등화 같던 때가 있었다. 6·25 때 이야기다. 그런 나라를 살려준 사람이 트루먼이고,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정전협정으로 한반도를 두 동강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분단의 고통을 주고 있는 장본인도 트루먼이다. 그러니 약 주고 병 주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1884~1972)은 청렴과 강직한 직업윤리로 표상되는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고, 한국전쟁 참전도 결정했다. 그는 6.25가 발발했던 1950년 6월 24일(미국시간)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더스에 있었다. 이곳은 캔자스시티 바로 인근이다.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뮤지엄 (Truman 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은 이곳에 있다.  
 
 그는 북한의 전면 남침 소식을 듣고 참전을 반대하는 참모들의 의견을 뿌리치고 곧바로 파병을 결정했다. 이후 전쟁을 치르면서 맥아더 장군과 수많은 이견과 갈등을 겪었다. 그는 특히 중공군이 참전할 때 원자폭탄을 사용하자는 맥아더의 주장에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참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맥아더를 해임하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한마디로 원폭 투하를 반대했다. 


 
 트루먼 뮤지엄에 가 보면 트루먼과 맥아더와 당시 주고받았던 편지가 여러 장 벽면에 붙어있다. 젊은 생명을 수만 명씩 죽여가며 계속 전쟁을 해야 하는지 고뇌하는 그의 사진 앞에 서니 저절로 숙연해지는 심정을 가눌 수가 없다. 
 
 트루먼은 부통령이 된 뒤 82일 만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시어머니한테 제대로 살림 배울 시간도 없이 대통령직을 승계받았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바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받았고 태평양 전쟁에서도 일본의 쇼와 천황(지금은 일왕이라 부름)부터도 항복을 받았다. 그 과정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명령을 내려야만 했던 고뇌의 결단이 있었다. 
 
 트루먼은 어렸을 때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시력이 극도로 나빠졌으며 집안이 어려웠을 때는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기도 했다. 결혼 후 옷 가게를 하였으나 3년도 못 가 망하고 1922년부터 12년간은 판사로, 이후 1944년까지 10년은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했다. 그의 사주팔자는 필자가 알 수 없지만 성격이나 외모로 봐서 장사나 사업을 할 사람은 아니고 관직으로 승승장구할 팔자였던 것 같다. 그러니 사업 실패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게 아닐까. 
 
트루먼 라이브러리 & 뮤지엄. 한국전 참전, 마셜 플랜 , NATO 창설,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맞선 공수작전등의 업적이 기록, 보존되어 있다. 사진 / 중앙포토

트루먼 라이브러리 & 뮤지엄. 한국전 참전, 마셜 플랜 , NATO 창설,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맞선 공수작전등의 업적이 기록, 보존되어 있다. 사진 / 중앙포토

 
트루먼 뮤지엄과 그의 생가는 인디펜던스에 있지만 캔자스시티 방문자들은 꼭 들러보는 캔자스시티의 명소가 되었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뮤지엄에 들어가면 트루먼 대통령이 타고 다녔던 승용차와 사용했던 집기 비품,  그리고 그가 소장했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트루먼 대통령 집무실 말고도 그의 부인 집무실도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부인이 워낙 사업수완이 좋아 모든 비즈니스와 재정문제는 그녀가 도맡아 했다고 한다.
 
 트루먼 로드와 델라웨어 애비뉴 코너에 있는 그의 생가는 면적이 9000스퀘어 피트 크기로 별채나 2층은 방문객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본채 아래층만 관람이 가능하다. 그것도 보존 문제 때문에 카펫 위로만 통행이 가능한데 당시 쓰던 냉장고, 오븐, 히터 등을 보면 미국  대통령으로서 참으로 검소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좌절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포기한 적은 없었다.” “우리의 목표는 당대의 평화가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다.”  트루먼 대통령이 남긴 말들인데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만난 이 구절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트루먼 뮤지엄 내부. 트루먼 재임시기 미국인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중앙포토

트루먼 뮤지엄 내부. 트루먼 재임시기 미국인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중앙포토



# 여행 메모
 
캔자스시티는 미주리주와 캔자스주 두 곳에 있지만 나고 자란 곳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다. 더 정확히는 이곳 인근 인디펜던스라는 작은 도시다. 캔자스시티는 재즈와 바비큐가 유명하며 200개 이상의 분수가 있는, 로마 다음으로 분수가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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