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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그림자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네 /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거기 보이네 / 그리움을 하나씩 숨기고 있네 // 그림자 속에는 // 흔들리는 들꽃의 반가움도 있고 / 나비의 날갯짓도 노을 속에 사라지네 / 들길을 걷는 한 사람의 발걸음도 / 창가에 앉은 그의 심장 뛰는 소리도 들리네 // 그림자 속에는 없는 것이 없어서 /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 그 몸에 그림자를 달고 다니게 되네 / 자동차 바퀴는 그림자로 달리고 / 구름도 땅 위에 그림자를 그리고 있네 / 나무는 그림자 밑으로 뿌리 내리고 / 꼬리 흔드는 강아지는 흔들리는 그림자를 물고 가네 // 그림자는 시작도 되지만 끝도 되어 / 점 아래로 모이는 정오엔 사라지기도 하네 / 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은 순식간이어서 / 한 번도 그 순간을 바라본 사람은 없네 / 그 순간 그림자는 제 몸으로 돌아가 제 몸이 되네 // 숨바꼭질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 제 발밑의 그늘을 찾지 못하네 / 빛이 있어야 그림자로 살아나고 / 내 생각이 네 생각과 다를 때에는 / 서로의 자리를 바꿔 나타나기도 하네 / 그림자 속에 있지 않은 것은 없기에 / 붉은 해 수평선으로 기울고 긴 여운을 만드네 / 사람들도 그림자로 살아가네 / 온종일 그림자로 살다가 어둠이 오면 / 그림자를 어둠에 숨기기도 하네 // 이제 너는 내 그림자로, 나는 네 그림자로 살기로 하네       빛이 있고 사물이 있으면 그 사물은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 빛이 눈부신 햇빛이 될 수 있고, 달빛이나 별빛이 될 수도 있습니다. 희미한 초롱불이나 촛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미한 빛만 있으면 그림자는 어느새 생겨납니다. 어쩌면 사물속에 저마다의 그림자를 품고 사는 것이 아닌 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신기한 것은 그 사물이 흔들리면 그림자도 같이 흔들리고 사물이 뛰기 시작하면 그림자도 같이 뛴다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본체보다 몇 배나 크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로데스크한 모습으로, 본체를 삼켜버릴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림자를 보면 사물의 모습이나 상태가 그대로 투영된다는 말이 됩니다.     사물과 그림자는 한 뿌리에서 나온 한 몸입니다. 사람도, 동물도, 움직일 수 없는 식물도,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미한 생물체 모두 다 그림자를 가집니다. 하늘의 구름도, 낙하하는 낙엽도, 달리는 자동차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림자는 사물의 배경으로 살아가는 듯 보여집니다. 철저히 사물의 움직임대로 가고 순순히 사물이 가고자 하는 의지대로 함께 따라갑니다. 그림자는 처음부터 자기를 내려놓아 사물의 배경으로 만족합니다.     누군가의 배경으로 살아간다는 것.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림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의 뜻대로, 자기의 방향대로 걸어갈 뿐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막무가내의 삶 모두는 자기 뜻과 성취를 위할 뿐입니다. 내가 없어지는 배경이 되려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림자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살아가는 지혜를 배웁니다. 배경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이요, 자기를 내려놓는 삶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어두운 새벽이었는데 어느새 안개가 자욱한 초겨울 아침이 왔습니다. 햇빛이 없어 그림자가 없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비추면 그림자와 함께 모두 행복하시길요. 커피 조금 더 내려야겠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그림자 순간 그림자 자동차 바퀴 시인 화가

2024-12-16

[문예마당] 추석의 그림자

  추석은 모두 들뜬 기분으로 마음도 몸도 분주한 명절이다. 옛날의 추석 분위기를 혼자 상상하노라면 흘러간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에 빠져든다. 내가 출석하는 LA 한인타운의 새한 교회에서도 극성스러운 권사님들이 추석인데  섭섭하게 보낼 수 없다며 송편과 부침질을 준비해 점심 먹거리가 푸짐하다. 조용했던 교회가 추석 기분에 모처럼 활기가 넘친다. 고희가 넘은 권사님들이 사명감으로 먹을거리를 많이 준비하는 것을 보니 너무나 감사하다. 노 권사님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노라니 추석이 되면 부엌에서 바쁘게 일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연상된다. 아무튼 보기 좋은 풍경이다.     추석은 한가위,중추,중추절,가배일 이라고도 부른다. 설날과 더불어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전통 명절이다. 미국에서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명절이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풍성한 햅쌀과 햇 과일로 조상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가족끼리 모여 파티를 열고 칠면조 고기를 비롯해 여러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보낸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추석을 맞으면 으례  할머니, 할아버지의 차례를 지낸 후에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그때 아버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시종일관 추석 대목 이야기만 하셨다. 청계천 6가에 자리 잡은 평화시장은 50~60년대에는 의류 도매상이 밀집해 있어 지방 도시 상인들은 모두 그곳에서 도매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해 갔다. 어른들은 고객에 대한 이야기, 판매 수익 등의 이야기로 끝날 줄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장사 이야기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 외 가족들은 지난 이야기들을 하느라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     그런데 미국에 이민 와서 나도 장사를 하다 보니 형제들을 만나기만 하면 장사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모두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가다 보니 이제는 장사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모두가 아쉬운 지난날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두 형제는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고, 남은 형제들도 머리에 염색해야 될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장손이라 추석이면 작은아버지들과 사촌 형제들이 모두 큰집인 우리 집으로 모였다. 집안은 떠들썩해지고 완전히 도떼기시장이 되고 말았다. 가족 간에도 빈부의 차가 있고 처지가 다르다 보니 모두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의 마음을 격려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는 누구 하나 상처받지 않도록 무척 애를 쓰셨다. 사람을 차별 없이 고루고루 인격을 존중하는 것도 리더십의 일부가 아닌가.  쉽게 말해 개개인의 비위를 잘 맞추셨다. 공짜로 생긴 것도 남의 것과 비교해 적으면 불평이 먼저 나오게 마련이다. 받은 것에 감사보다는 남보다 적은 것만 생각한다. 이것을 소위 ‘상대적 가치관’이라고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행복이 온다는 것을  인간은 종종 망각한다. 제사가 다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어머니는 한 사람 한 사람 음식과 과일 등을  챙겨 한 보따리씩 쥐여 보낸다. 당시는 모두 살기 힘들고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장남이라 동생들을 비롯해 모든 가족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모두 돌아간 후 텅 빈 집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그러나 뒤처리는 어머니 몫이다.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화가 나고 안타까워  그저 옆에서 어머니를 도왔다. 어머니는 화가 나면서도 “이렇게 사람 꼬일 때가 좋은 거란다”하시며 열심히 치우신다. 그런 생활도 끝낸 지가 수십 년 지났고 모두가 추억의 그림자가  되고 말았다. 그것이 사람 사는 거지. 과거는 모두가 아름답다. 미국으로 건너온 후부터 그런 추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국생활  수십여년이 훌쩍 흘러갔다. 사랑하는 부모님도 멀리 가시고 세월은 무자비하게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바람도 아닌데 세월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꽃잎들을 떨어뜨렸다.   미국에서 추석을 지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인 마켓에는 여느 날보다 많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처럼 추석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지만 아이들도 만나기 힘들고 모든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하지만 보름달 만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변함이 없다.   옛날 송강 선생이 사모하는 여인을 생각하며  쓴 시 한 수가 생각난다, 추석날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고운 임이 보고 싶어 쓴 시인 것 같다.     ‘내 마음 도려내어 둥근달 만들어서/ 구만리 높은 하늘 덩그러니 걸어놓고/ 고운 님 계신 곳에 비쳤으면 싶구나.’   슬그머니 엄습해 오는 외로움에 싸여 지난날 온 가족들과 오손도손 지내던 추석의 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일뿐  잡을 수가 없다. 모든 식구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훌쩍 왔다 훌쩍 가버리는 추억의 그림자라도 붙들고 싶다. 세월을 뒤로 움직일 자 누구랴. 세월을 거꾸로 되돌려 내 마음 도려내어 보름달 만들어서 서울 하늘에 드높이  걸어놓고 지난날 추석의 그림자라도 구석구석  보고 싶구나.     백인호 / 수필가문예마당 그림자 추석 추석 분위기 추석 기분 시종일관 추석

2024-09-1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수의 얼굴

수직 수평의 선들이 지나간다 / 길게 둥글게 연결되어 한 선처럼 / 당신은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눈을 뜬다 // 흔들리는 풀같이 고단한 하루 / 앞으로 다가서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 평면의 그녀는 일어나 입체로 접어진다 / 빛의 방향으로 그림자가 길게 눕고 / 지우는 것도 그리는 것이어서 / 어둔 그림자 속에 빛의 존재가 어렴풋하다 / 양 면으로 팔을 뻗어 하늘을 들이 마시면 / 풍경은 저 멀리서 빠르게 눈 앞으로 다가온다 / 빠른 손 끝의 움직임에 호수는 멀고 가까워진다 // 호숫가 잘려나간 나무 밑둥에 앉는다 / 오른쪽 끝을 만지다 왼쪽 끝으로 / 머리를 매만지다 턱밑이 깊어진다 / 눈 가장자리를 바라보다 귀 매무새를 정리하고 / 눈동자, 코끝의 정점을 콕 찍는다 / 눈매가 살아나고 갸름한 양볼, 돌출 같은 웨이브 / 지울수록 섬세히 그려지는 호수의 얼굴 // 지우는 것도 그리는 것이어서 / 호수는 당신 얼굴로 깊어 간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진다’로 시작되는 시입니다. 이어서 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저기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대지가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허지만 이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 내는 어느 한 사람이 있다’로 이 시는 끝나고 있습니다. 이 깊은 가을 떨어지는 것들을 두 손으로 받아 내는 사람이 된다는 것. 턱을 고이고 당신의 문 앞에서 당신의 문이 열리길 기다릴 수 있다는 것. 창조주의 눈 속에 담겨있는 깊은 가을의 의미, 떨어진다는 의미는 살아야 하는 마지막 결단이었으리라 생각 됩니다. 모든 것을 떠나 보내지 않으면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없기에 보이는 것들을 떠나 보이지 않는 아래로 더 깊이 뿌리내리는 것이다. 윗잎이 자신의 위치를 내려 놓을 때 봄이 되면 새잎이 그 위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호수의 얼굴은 평온합니다. 잔잔한 물결위로 가을이 짙게 묻어납니다. 호숫가 잘려진 나무둥지에 앉아 있습니다. 호수의 표면에 겹쳐오는 한 사람의 얼굴이 거기 있습니다. 길다면 긴 생을 통해 한결같은 몸짓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무릎으로 하루를 마감하신 당신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손잡음이 벌써 9년째로 접어듭니다. 안녕 하신지요?   누군가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한 본향에서의 삶을 위하여 준비된 경기장 같다’란 말이 생각납니다. 어떤 분은 험난하고 치열하게, 어떤 이는 미래가 없다는 듯 자신의 욕망을 위해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길게 살아가고 어떤 분은 짧은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당신의 삶은 잔잔하고 고요했습니다. 불현듯 밀려오는 두려움과 절망을 따뜻한 손으로 받아 내며 속으로 속으로 울음을 삼켰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늘 평온했고 손은 늘 따뜻했습니다.   기다린다는 것. 그곳에 도달할 순 없지만 눈을 감아도 뵈고 귀를 막아도 들려옵니다. 몇 날, 몇 밤이 지나고, 또 한 달, 한 해가 지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당신을 손잡을 수 있는 순간이 오겠죠.     나에게는 편안하게 몸을 기댈 수 있는 나만의 쿼렌시아가 있습니다. 거리에 가로등이 줄지어 켜집니다. 저마다 저 가로등의 끝을 향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깁니다. 퀸튼 길을 따라 가다 팔레타인 길을 지나면 언덕길을 오르게 됩니다. 오른쪽으로 동산이 보이고 그 길로 접어들면 양쪽으로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노을이 하늘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때나, 눈송이가 펄펄 유희를 즐길 때, 언덕 위 나무가 오랜지 빛으로 변해가는 요즈음엔 자연히 발걸음이 옮겨집니다. 그곳에서 종종 밤을 맞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네 주변에 있는 작은 호수. 수 백 번도 더 찿아간 호수의 얼굴은 항상 다른 얼굴을 띄고 있습니다. 호수의 얼굴은 내 마음의 얼굴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늘 반갑게 맞아줍니다.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들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시 한 편을 물결처럼 마음에 전해 주기도 합니다. 호수의 얼굴이 당신의 얼굴과 겹쳐져 올 때면 내 속에서 나직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당신 이름을 부릅니다. “엄마~~”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수 얼굴 당신 얼굴 물결위로 가을 어둔 그림자

2023-11-20

[신 영웅전] 위안스카이의 그림자

도봉산에 올라가면 망월사(望月寺)가 있다. 탁 트인 풍광도 좋지만, 구한말 청국 공사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의 대웅전 현판도 볼만하다. 1891년 가을에 썼으니 32세 때다. 악명과는 달리 위안스카이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원소(袁紹)의 명문가 출신이다. 본디 무사 출신이었던 위안스카이는 임오군란(1882)을 진압하러 온 오장경(吳長慶)의 하급 무사였는데, 그때 나이 23세였다.   위안스카이가 거친 성격으로 조선 왕실을 휘어잡자 그를 기특하게 여긴 이홍장(李鴻章)이 25세이던 그를 조선 공사로 발탁했다. 말이 공사였지 ‘총독’과 같았다. 하마비(下馬碑) 앞에서도 가마에서 내리지 않고 대전까지 들어갔다.   1882년 조·미 수교로 1887년 전권 공사 박정양(朴定陽)이 미국으로 출발할 때 위안스카이는 속국의 사신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 즉 영약삼단(?約三端)을 지시했다. ①조선 공사는 청국 공사관을 방문해 안내를 받아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출하고 ②외교 모임에서 조선 공사는 중국 공사보다 아랫자리에 앉으며 ③외교 업무를 청국 공사와 상의하라는 것이었다.   위안스카이는 인삼을 밀수했고, 인사에도 개입했다. 김씨 성을 가진 조선의 미녀를 첩으로 들였다. 청·일 전쟁이 일어나자 야반도주하면서 데리고 간 그 여인이 시인 위안커원(袁克文)을 낳았다. 손자가 물리학자 위안자류(袁家?)인데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우젠슝(吳健雄)의 남편이다.   조선과 일본의 강화도조약(1876년)으로 청과 조선의 종속 관계가 사라진 지 14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은 한국을 함부로 하대한다. 중국을 등지는 것이 과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바람직한지는 더 고민해야겠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주한 중국 대사의 얼굴에는 아직도 위안스카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위안스카이 그림자 조선 공사 청국 공사관 청과 조선

2023-06-18

시웰 시경국장 돌연 사의

뉴욕시 경찰국(NYPD) 첫 여성 수장이 12일 돌연 사직 의사를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키챈트 시웰(51·사진) 경찰국장은 이날 NYPD 구성원들에게 짧은 이메일을 보내 사직의 뜻을 전했다. 작년 1월 1일 취임 이후 18개월 만이다.   시웰 국장은 이메일에서 “당신은 도시의 안전에 헌신하는 근면한 공무원”이라며 “당신과 당신의 전임자들로 인해 NYPD가 법 집행 기관의 표준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고 적었다.   다만 그는 사임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시웰 국장은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의 임명으로 지난해 NYPD의 첫 여성 수장이자 세 번째 흑인 수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아담스 시장은 이날 트위터에 “뉴욕시를 더 안전하게 만들려는 행정부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에 있어 (시웰은)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올렸다.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전현직 고위 경찰 관계자들을 인용해 시웰 국장이 임기 초부터 줄곧 아담스 시장과 필립 뱅크스 3세 공공안전 부시장 등 고위 보좌관들에게 시달려왔다는 점을 짚었다.   최근 시웰 국장과 대화를 나눴다고 밝힌 한 뉴욕시 공무원은 뱅크스 부시장이 막후에서 ‘그림자 국장’인 양 행세했고, 시웰 국장은 이로 인한 불만을 호소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은별 기자시경국장 사의 공공안전 부시장 뱅크스 부시장 그림자 국장

2023-06-13

[수필] 님 그림자, 곰 그림자

“아아악, 아아아아악.”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곧바로 이어지는 남자의 우렁찬 소리에 즉각적으로 곰이 출현했다는 위협을 느꼈다. 그리곤 함께 함성을 지르며 비명 난 곳으로 뛰는 우리 회원들의 발자국 소리들. 적진을 향하는 대군의 함성이라 착각을 하며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망설였다.   내 작은 심장이 빠개지는 소리를 듣는다. 이어지는 가슴 통증에 머리가 압박을 받으며 가눌 수 없이 무거워 땅에 떨어진다. 떨리는 두 손을 꽉 잡고 엉거주춤 몸을 반으로 접은 채, 이럴 때 난 어찌해야 하나 하늘에 묻고 도움을 청한다. 순간 엄청나게 큰 물체의 그림자가 내 텐트로 다가오며 덮치려는 환상이 보인다.         메모리얼 데이 롱 위크앤드. 한국의 현충일 연휴인 셈이다. 석 달 전 인터넷을 통해 회원이 되고, 초심으로 돌아가 기타를 배우며 즐기는 7080 기타동호회에서 주최한 2박 3일 캠핑에 참석했다. 석 달이 되었지만, 아직 회원들 이름도 다 파악 못 한 상태다. 서먹한 분위기에 내가 어떤 위치로 참석해야 좋을지 모르면서도 용기를 내어 어울리기로 작정을 했다.   한솥밥을 먹고 한곳에서 자고 산에서 내어 주는 넉넉함을 함께 받아 벌거숭이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서로가 편안함을 느끼게 된 마지막 밤이다. 각자의 삶에 나름대로 꽁꽁 싸매고 지퍼 채워서 감추고 있던 부분들을 슬며시 풀어 놓기도 했다. 경계 풀린 모습들이 마치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처럼 느껴졌다. 서로 챙겨 주고, 먹여 주고, 감싸 주는 따스한 마음들이 되어 활활 타는 모닥불 주위가 정겹던 시간들. 더러는 자리를 떠 각자의 텐트로 들어가고, 더러는 아직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남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   모닥불 바로 곁에 있는 내 방으로 제일 먼저 돌아와 두런두런 그들이 나누는 지난날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에 취하여 잠이 들었다. 어느덧 깊이 빠진 단잠에서 나를 깨운 비명. 분명 남은 음식들 안전하게 치웠고, 모닥불 또한 곰이 피해 가야 할 엄청난 화력이다. 모인 사람도 결코 곰이 다가올 수 없는 숫자인데 왜 우린 산처럼 커다란 곰의 무리가 출현했다고 단정했을까.   다른 아무런 상황을 설정하지 못한 채 오직, 곰, 곰, 곰의 존재에 겁을 먹고 팽팽한 긴장 속에서 새벽을 기다렸다. 아무도 저만치 떨어진 자기 텐트로 갈 생각을 못 한다. 나약한 식구들 마음을 재빨리 눈치챈 폴 선생님이 드문드문 세워진 텐트들을 번쩍번쩍 들어 옮기고, 끌어 옮기며 모닥불 주위로 모아 놓았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 하나둘 취침에 들어갔다.   그 중, 아주 나약한 여인네 하나는 아직도 무서워 텐트 안으로 들어가기 싫단다. 사실, 막상 곰이 나타나면 텐트 안에 있는 편이 안전하다. 이틀을 함께 잔 친구는 벌써 들어가 꿈나라에 있는데 새삼 텐트 안이 무섭다니? 그렇다면 여인 홀로 두고 그 자리를 뜰 수 없는 남정네 하나. 뜻하지 않게 난 밤새 이어지는 그 둘의 대화에 흠뻑 젖어 새벽을 맞았다.   밤이 떠나고 해가 뜨면서 밝아 온 아침을 맞아, 아직도 놀란 가슴 진정이 안 된 우리 식구들이 하나 둘 기지개를 켜며 모습을 보인다. 밤새 타며 지친 모닥불을, 다시 바람을 내어 일으키며 모두 본대로 느낀 대로 어젯밤 곰의 출현을 정리해 본다.   시간은 새벽 1시 10분 전쯤. 사건 직후 확인 한 시간이다. 내가 일착으로 텐트로 들어왔고, 기분 좋게 달콤한 와인으로 정담을 나누다가 키보드 주자가 남편에게 들어가기를 청했다. 남편께선 잔에 남은 와인을 보며 먼저 자라고 했다. 막상 와인 잔을 비우고 나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서 자리를 뜬다. 낮에 떠난 식구들이 있어서 빈 텐트를 옮겨 왔으니, 거리는 멀지 않다. 먼저 들어간 아내가 깰세라 발소리를 죽이며 텐트 쪽으로 걷다가 헛발을 딛고 넘어진다. 숨이 가빠졌다. 등 뒤로 비춰주는 모닥불로 자신의 그림자가 텐트에 비친다. 그러다 또 뭔가에 걸려 넘어지며 더 크게 숨을 몰아쉬게 됐다.   한편, 먼저 들어간 아내는 아직 눕지도 않고 있었는데, 형상을 구분 못할 큰 그림자를 보게 된다.  기겁해서 신경을 곤두세우던 찰라, 아주 큰 짐승의 숨소리를 듣는다. 초긴장 상태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더니, 이번엔 좀 더 커진 숨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아내는,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르고 남편을 부른다.   바로 텐트 근처에서 두 번 넘어지며 숨이 가빠진 남편, 텐트를 향해 걸어가던 자신의 그림자. 넘어졌으니 그림자는 사라지고 소리 죽이려 애쓰는 숨소리는 더 거칠게 들린 거다. 넘어진 상태에서 일어서기도 전 냅다 지른 아내의 비명에 그만 곰이 내 아내를 물었구나 판단하고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곰을 쫓으려 낸 소리가 우리에겐 함성처럼 우렁차게 들렸던 거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린 깔깔대며 그 상황을 추리해서 재현하며 찐하게 끈끈해진 회원들의 정을 듬뿍 나눠 안고 산에서 내려왔다. 노기제 / 수필가수필 그림자 남편 텐트 텐트 근처 자기 텐트

2023-06-08

[글마당] 레몬 나무 그림자

“너 요즈음도 신문에 글 쓰니?” 나와 전화 통화하던 친구가 물었다.   “글 쓸 소재가 없어서 끙끙대고 있어.”     “너 옛날에 차 타고 가다가 화가 난 네 남편이 너를 길가에 버리고 간 글이 기억에 생생하다.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써라.”     “처음 신문에 글쓰기 시작할 때는 고생했던 기억의 쓴 물이 솟아나서 토해내듯이 썼는데. 다 뱉고 나니 더는 그런 소재가 없어. 나이 들고 먹고살 만하니까 남편과도 싸울 일도 없고. 크루즈 타고 여행한다는 글을 가끔 쓰긴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인 듯 편치 않고 고민이야.”   나의 넋두리가 길게 이어지는 중, 전화선 너머로 친구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너 지금 산책하니?”   “아니, 뒤뜰로 나왔어.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옛날 이야기하니까 담배가 땅기네.”   우리의 대화 중 젊은 날의 즐거움과 회한이 그녀를 자극했나 보다. 나는 친구를 닮아 밝게 빛나는 그녀의 집 뒤뜰에 있는 200개의 레몬이 열린다는 나무가 생각났다.   “너 레몬 나무 아래서 담배 피우고 있지? 여기까지 레몬 향을 품은 담배 냄새가 난다.”   대학 다닐 때는 친하지 않았던 LA에 사는 친구다. 학교를 졸업한 그해, 늦가을 나는 직업, 결혼 등을 고민하며 안국동 돌담길을 걷고 있었다. 길 가다가 우연히 나를 본 이 친구가 내 모습이 가련했는지 큰소리로 나를 불러세웠다.   “야 반갑다. 너 어디 가니?”   “그냥, 근처에 왔다가 집에 가는 중이야.” 소심한 나는 활달한 그녀를 약간 경계하며 소리죽여 말했다.   “내 화실이 이 근처야. 이왕 이렇게 만났는데 함께 가서 한잔하자.”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반응에 나는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갔다. 화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정리되지 않은 어두운 화실 안을 살피려고 눈동자를 확장하려는 순간, 훤하게 빛을 발하는 덩치가 큰 잘생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 남자 친구라고 소개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두 청춘 남녀 사이에 끼어있자니 무척 불편했다. 조금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들이닥칠 거라며 더 놀다 가라는 그녀의 친절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친구는 화실에서 작업도 하고  잘생긴 애인도 있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젊음을 한껏 즐긴다’는 것에 더욱 위축된 나는 안국동 돌담길을 걷다가 저녁놀이 뜨고 지고 어스름한 밤이 올 때까지 광화문 정류장에 마냥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아 이끌어주길 기다리듯이.   우리는 우연히 같은 해 미국에 왔다. 친구는 그 멀쩡하고 덩치 큰 남자와 결혼하고 LA에 이민을 왔다. 나는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 뉴욕으로 왔다. 그녀와 나는 전화 통화만 하다가 가물에 콩 나듯 LA와 뉴욕을 오가며 만난다. 고민 많던 그 시절, 나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준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내 기억에 각인되어 나는 그녀와의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듯하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그림자 레몬 레몬 나무 안국동 돌담길 담배 냄새

2023-02-10

[독자마당] 빛과 그림자

‘내게 소망이 있다면 죽기 전 꼭 3일 만이라도 눈을 뜨고 세상을 보고 싶다. 눈을 뜨는 순간 첫 번째로 나를 가르쳐주신 애니 술리반 선생님을 찾아가겠다. 내 손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에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모습과 웃음을 기억하고, 들로 산으로 산보하고 싶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나뭇잎, 예쁜 꽃과 풀을,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빛에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을 보고, 오전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저녁에는 밤하늘에 빛나는 보석같은 별들을 보며 또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 길가로 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오전에는 오페라, 오후에는 영화를 보고 싶다.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된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 순간 3일 동안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함을 드리겠다.’   미국 출신 시각장애인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헬렌 켈러가 죽기 전 단 3일 만이라도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싶다고 한 ‘빛’이라는 애절한 글은 읽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잊고 살아온 지금 새삼 하느님의 큰 은혜에 감사함을 갖도록 해준 감동적인 글이다.   ‘나는 눈과 귀 혀마저도 빼앗겼지만 영혼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 낙천적인 그녀는 시름을 성공으로 이끄는 훌륭한 말을 남겼다.     90평생을 암흑 속에 살면서도 만인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안겨주고 떠나간 그녀의 생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의 생애였다. 당신은 초인의 대표적 표상입니다. 당신을 정말 존경합니다. 이산하 / 노워크독자마당 그림자 미술관 저녁 출신 시각장애인 거리 쇼윈도

2023-01-1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문 턱에서

어느 한 사람은 열정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집착이라고 했다 / 그리움은 무어라고 말해도 다 맞고 또 다 틀리다 / 말에도 온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온도가 있기 때문이다 / 그 온도의 높낮음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아나기도 한다 // 길을 걷는 것도 때로는 허망한 생각이 들 때 /서로의 동선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부터 / 이야기는 작은 골목 끝까지 퍼져나갔고 / 나는 그곳에 집 한 채를 지으려 매일 잠을 설쳤다 / 쌓다가 허물고 허물어 내린 기억들을 모아 다시 집을 지었다 / 발 뻗으면 닿을 만큼만 불편한 집을 지었다 / 사람들은 손을 들어 손가락질을 했다 / 살아가려면 삶의 목적이 있어야겠는데 / 그 목적은 다른 세계의 숨겨진 길이 되었다 // 사람들은 뭐라든, 겨울 문턱에서 집을 짓는다는 것 /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이 후에도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데 / 나는 무대를 등진 힘 없는 관객일 뿐 / 버리고도 함께라는 대단한 의미는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 호수는 언제나 잔잔한 물결을 살려내듯 / 언젠가 꺼져가던 작은 불꽃이 타오르고 / 그 불꽃을 보듬으며 사는 것도 삶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 하늘이라도 끌어 내려 뿌옇게 변해가는 이 새벽 / 지은이의 속삭임으로 앞을 가름할 수 없는 안개는 내리고 / 겨울 문턱에서 길을 잃은 늦가을 깊은 심연의 기억들 /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 왜 그렇게  서둘러 갔냐고 나에게 묻고 있다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한 길에 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다. 안으로 더 깊이 안개 속으로 걸어가 보았다. 안개는 나를 두고 뒷걸음을 쳤다. 옷이 안개에 젖을 때까지 나는 안개 속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시간은 때로 살 같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느린 움직임으로 천천히 지나가기도 한다. 시간이야 말로 나를 움직이는 마음의 속도인 것 같다. 안개는 걷힐 것이다. 바람이 불면 더 빨리 걷힐 것이다. 안개 속에서는 불투명한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헤메이는 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목적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집을 지을 것이다. 언제인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었을 때 그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선 지금의 쓸쓸함을 안고 갈 것이다. 마음 속 일렁이는 흔들림의 차이이려니 생각하고, 새벽을 기다리는 이유이려니 생각하고, 언덕 너머 지는 석양 앞에 한없이 앉아 있고 싶은 이유이려니 생각 하면서…. 그곳엔 늘 나를 다독이는 당신의 음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음성은 고요함으로 다가오기에 더 마음에 오래 남는다. 존재했던 사실은 소멸될 수 없기에,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에….   내가 기대어 사진을 찍던 안개 속 우뚝 선 나무 한 그루를 바라 본다. 나무는 올 겨울에도 속으로 속으로 가지를 키울 것이다. 나무는 자신을 아는 만큼 믿음이라는 스스로의 가치를 가지를 뻗음으로 이루어 갈 것이다. 작은 씨앗으로 땅에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이렇게 큰 나무로의 성장을 꿈꾸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그 키를 키우면서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해 보지 않았던 믿음이란 가치를 지금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예쁘고 아담한 담 당신이 내게 만들어준 담 넘을 수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날마다 눈을 뜨고 해 저물어 긴 그림자 지면 이곳에서 서성거린다 당신의 향기를 맡으며 당신의 음성을 들으며 당신의 모습을 훔쳐보며 예쁘고 아담한 담 너머 나의 별이 떠오르면 당신이 잘 보이는 곳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우리의 삶도 서로에게 믿음을 보이며 키가 자라고 깊고 높게 가지를 뻗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 겨울 내내 새 가지를 꿈꾸며, 침묵으로 새 길을 발견해내는 나무에게 배운다. 안개 속은 여전히 고요하다. 그립다는 것은 분명 외로운 길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겨울 문턱 아침 안개 그림자 지면이곳

2022-12-12

[오픈 업] 방사선의 빛과 그림자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하는 가운데, ‘핵전쟁’이라는 단어가 뉴스를 통해서 자주 들리고 있다. ‘핵전쟁’이라면 전쟁에 핵무기를 썼다는 의미이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몰락했던 1945년 이후 핵무기를 의도적으로 쓴 전쟁은 보고된 바 없지만, 크고 작은 핵 관련 사고는 있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와 2011년 지진으로 발생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 외 미국의 스리마일 섬, 영국의 윈드스케일, 소련의 마약에서도 사고가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있었던 날, 내과 동료 의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종양 방사선학과는 방사선을 이용해서 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알기에, 필자가 방사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에게 별일 아닐 것이라고 단순하게 내 생각을 설명했다. 왜냐하면, 방사선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해당 정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지켜야 할 기준과 지침이 있고, 이에 따라서 방사선은 통제되고 관리되는 환경에서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고가 났어도 빨리 대처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방사선 연구에 몰두했던 큐리 부인과 그녀의 딸, 아이린이 악성빈혈, 백혈병으로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난 120여 년 동안 방사선 사용에 대한 방대한 지식, 사고 방지를 위한 시스템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나의 대답은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이 틀렸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많은 자료가 아직도 은폐되어 있다. 결함이 있는 원전(nuclear reactor)에서 발생한 사고에 부실하게 대처한 러시아 정부, 무지한 관리들의 방관과 날조된 내용으로 방사선 피해자들을 빨리 돕지 못했다.     우리가 보았던 핵 관련 사고들은 자연을 훼손하고 동물과 해양생물의 방사선 오염을 초래해 결국 사람에게도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당시 28명이 급성 방사선 중독으로 사망했다. 만성 방사선 중독의 영향으로 갑상선 종양, 백혈병, 뇌종양, 정신이상 등등이 보고된 바 있다.     방사선 폐기물로 더럽혀진 체르노빌에는 아직도 방사능이 남아 있다. 지금은 폐허지만, 올해 우크라이나를 침범한 러시아 군대가 2월에서 4월까지 체르노빌에 주둔했었다고 한다. 참호를 파던 군인들이 방사선 중독에 걸렸고, 한 명은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핵이 위험하다면 왜 만드는지,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해진다. 답은 세 가지로 대충 정리할 수 있다. 핵을 이용해서 발전기를 돌리고, 전기를 생산한다. 만들어진 전기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우리 삶 곳곳에서 쓰인다. 둘째로, 질병이 의심될 때 진단의 수단으로 쓰일 뿐 아니라, 암 치료에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핵은 전쟁 무기로 쓰인다.   방사선은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 있다. 독일인 뢴트겐이 엑스레이(X-Ray)를 발견한 지 3년 후인 1898년에 프랑스 사람 피에르 큐리와 폴란드 출신인 그의 부인 마리 큐리가 동위원소 라듐을 발견했다. 그 후 우리는 자연에 존재하는 배경 방사선(background radiation)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어디에나 있지만 높은 산이나 산맥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검파된다. 네바다주와 콜로라도주 덴버가 그 예이다. 또 배경 방사선은 우리 몸 속에서도 저절로 만들어지는 데 아주 소량이다.     방사선을 이용한 진료와 치료는 의학에 획기적인 이바지를 했다. 또 핵폭탄 발명은 2차 대전 종전에 기여했지만 앞으로 핵무기의 사용은 없어야 한다. 물론 전쟁이 없어야 하는 것이 전제이겠지만 말이다. 방사선은 우리에게 필요한 빛이지만, 잊기 쉬운 어두운 그림자도 거느리고 있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방사선의 그림자 종양 방사선학과 방사선 오염 방사선 연구

2022-11-07

[오픈 업] 방사선의 빛과 그림자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하는 가운데, ‘핵전쟁’이라는 단어가 뉴스를 통해서 자주 들리고 있다. ‘핵전쟁’이라면 전쟁에 핵무기를 썼다는 의미이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몰락했던 1945년 이후 핵무기를 의도적으로 쓴 전쟁은 보고된 바 없지만, 크고 작은 핵 관련 사고는 있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와 2011년 지진으로 발생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 외 미국의 스리마일 섬, 영국의 윈드스케일, 소련의 마약에서도 사고가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있었던 날, 내과 동료 의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종양 방사선학과는 방사선을 이용해서 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알기에, 필자가 방사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에게 별일 아닐 것이라고 단순하게 내 생각을 설명했다. 왜냐하면, 방사선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해당 정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지켜야 할 기준과 지침이 있고, 이에 따라서 방사선은 통제되고 관리되는 환경에서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고가 났어도 빨리 대처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방사선 연구에 몰두했던 큐리 부인과 그녀의 딸, 아이린이 악성빈혈, 백혈병으로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난 120여 년 동안 방사선 사용에 대한 방대한 지식, 사고 방지를 위한 시스템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나의 대답은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이 틀렸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많은 자료가 아직도 은폐되어 있다. 결함이 있는 원전(nuclear reactor)에서 발생한 사고에 부실하게 대처한 러시아 정부, 무지한 관리들의 방관과 날조된 내용으로 방사선 피해자들을 빨리 돕지 못했다.     우리가 보았던 핵 관련 사고들은 자연을 훼손하고 동물과 해양생물의 방사선 오염을 초래해 결국 사람에게도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당시 28명이 급성 방사선 중독으로 사망했다. 만성 방사선 중독의 영향으로 갑상선 종양, 백혈병, 뇌종양, 정신이상 등등이 보고된 바 있다.     방사선 폐기물로 더럽혀진 체르노빌에는 아직도 방사능이 남아 있다. 지금은 폐허지만, 올해 우크라이나를 침범한 러시아 군대가 2월에서 4월까지 체르노빌에 주둔했었다고 한다. 참호를 파던 군인들이 방사선 중독에 걸렸고, 한 명은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핵이 위험하다면 왜 만드는지,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해진다. 답은 세 가지로 대충 정리할 수 있다. 핵을 이용해서 발전기를 돌리고, 전기를 생산한다. 만들어진 전기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우리 삶 곳곳에서 쓰인다. 둘째로, 질병이 의심될 때 진단의 수단으로 쓰일 뿐 아니라, 암 치료에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핵은 전쟁 무기로 쓰인다.   방사선은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 있다. 독일인 뢴트겐이 엑스레이(X-Ray)를 발견한 지 3년 후인 1898년에 프랑스 사람 피에르 큐리와 폴란드 출신인 그의 부인 마리 큐리가 동위원소 라듐을 발견했다. 그 후 우리는 자연에 존재하는 배경 방사선(background radiation)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어디에나 있지만 높은 산이나 산맥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검파된다. 네바다주와 콜로라도주 덴버가 그 예이다. 또 배경 방사선은 우리 몸 속에서도 저절로 만들어지는 데 아주 소량이다.     방사선을 이용한 진료와 치료는 의학에 획기적인 이바지를 했다. 또 핵폭탄 발명은 2차 대전 종전에 기여했지만 앞으로 핵무기의 사용은 없어야 한다. 물론 전쟁이 없어야 하는 것이 전제이겠지만 말이다. 방사선은 우리에게 필요한 빛이지만, 잊기 쉬운 어두운 그림자도 거느리고 있다. 오픈 업 방사선의 그림자 종양 방사선학과 방사선 오염 방사선 연구

2022-11-02

[삶의 뜨락에서] 그림자의 짙기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의학 분야의 개척자인 칼 융(Karl Jung)은 “가장 위험한 심리적 실수는 자기 안의 그림자를 남들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이것이 거의 모든 분쟁의 근원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각자 개인의 삶에서 덜 구현될수록 그 그림자는 오히려 더 두껍고 짙어진다”고 했다.     ‘인간 본성의 법칙’ 제9장 억압의 범칙(Regression)에서 로버트 그린은 내 안의 어둠을 직시해서 그림자를 탐구하고 포용함으로써 그림자를 온전히 다 받아들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인격에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닉슨 대통령의 비극을 상세히 분석하고 닉슨이야말로 인간의 양면성이 두드러진 사람의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밝은 닉슨은 사려 깊고 유난히 사람을 잘 챙기며 감수성이 풍부하고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인 반면에 어두운 닉슨은 화가 나 있고 앙심을 품고 괴팍하며 야비한 면이 있다고 본다.     닉슨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아 평소보다 심하게 초조해지면 그의 내부에 깊이 숨어있던 어둠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심한 불안과 의심, 갑작스러운 폭발, 짜증 등이 터져 나왔다. 닉슨은 자기 안의 이런 면을 완강하게 부정하고 억눌렀다. 닉슨의 어둠은 결코 유형적으로 구체화하였는데 그게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의 녹음테이프였다.     닉슨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다. 우리는 결코 이 어둠을 인정하거나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사람들을 의심하고 상처 주고 싶어 한다. 이 어둠은 설명할 수 없는 우울함, 초조함, 예민함, 허전함으로 몰고 가서 결국 주변 환경이나 사람을 탓하게 된다. 우리는 이 어둠을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눌러 숨겨 놓으려 한다. 가면을 쓰고 역할을 연기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어둠은 가끔 악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인간의 삶 자체가 내 안의 어둠과 대항하는 투쟁이다. 이 어둠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당신 성격의 어두운 면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어둠이 내보내는 신호를 감지하는 법을 배우고 나면 여기서 어두운 에너지를 생산적인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보통 그림자는 무의식 속에서 활동한다. 칼 융은 억압의 수준이 얼마나 심한가에 따라 그림자의 짙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림자는 내면 깊숙한 곳에 묻혀 있다가 스트레스로 깊은 상처와 불안이 자극되면 동요하면서 활동을 개시한다. 평소에 우리는 겉모습만 보다가 내면의 그림자가 튀어나오면 삼차원적인 인간의 본성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그림자의 윤곽은 모순된 행동, 감정적 폭발, 격렬한 부정, 우연한 행동, 지나친 이상화, 투영 등으로 나타난다. 남의 그림자를 파헤치고 설교하기는 쉽다. 자기 안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기만큼이나 어렵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점은 그림자를 찾은 다음에 그 그림자를 십분 활용해서 지금의 인격에 통합할 때 우리는 성장한다. 최고의 예술은 깊이 억압되어 있던 어두운 충동에서 나온다. 당신 내면의 어둠을 풀어줄 때 당신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그림자 보통 그림자 닉슨 대통령 행동 감정적

2022-10-07

[음악회 가는 길] 젊은 지휘자의 빛과 그림자

약관의 핀란드 지휘자가 세계 음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의 이름은 클라우스 메켈레(26). 최근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결정됐다. 2020년부터 오슬로 필하모닉, 2021년부터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메켈레는 31세가 되는 2027년부터 RCO의 제8대 수석지휘자 임기를 시작한다. 취임 전까지는 ‘아티스틱 파트너’로서 현재 음악감독이 공석 중인 RCO를 지휘하게 된다. RCO는 영국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선정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에서 1위에 올랐던 명문악단이다.     젊은 지휘자가 세계 유수의 악단을 책임진 사례가 드물지는 않다. 당장 RCO의 역사를 살펴봐도 빌럼 멩엘베르흐가 24세 때 수석지휘자로 부임했다. 라파엘 쿠벨릭은 25세 때 체코 필하모닉, 사이먼 래틀도 25세 때 버밍엄 시향, 에사 페카 살로넨은 26세 때 스웨덴방송교향악단,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는 29세 때 버밍엄 시향을 맡았다. 우리나라 정명훈도 31세 때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로 커리어를 쌓았다. 그런 정명훈이 “60세 정도 돼야 조금 지휘를 알 것 같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 지휘는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한 통찰이 필요한 자리다. 젊은 지휘자의 앞에는 숱한 미지의 시간이 놓여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젊은 시절 없이 곧바로 원숙한 지휘자는 없다. 회사에서 ‘신입’을 뽑을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게 ‘경력’이라는 아이러니는 젊은 지휘자들도 체감하는 현실이다. 청중도 오케스트라 단원도 검증된 지휘자를 원하지만 젊은 지휘자도 지휘대에 서야 한다. 이는 양해와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에 부임한 김은선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재학 시 한 학기에 최소 세 번 프로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할 수 있었고, 이때 많이 ‘깨지며’ 배운 경험이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 제도도 경험 많은 지휘자로 성장하는 궤도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김은선 지휘자는 리옹 오페라에서 키릴 페트렌코(현 베를린 필 음악감독)의 부지휘자로 일한 경험이 지금의 성장에 큰 도움과 영감이 됐다고 말했다. 정명훈도 LA필하모닉에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있으면서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안전한 경험을 담보하는 익숙하고 검증된 무대만 찾는 청중의 보수성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부딪쳐서 깨지며 성장하는 젊은 지휘자들의 무대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마침 비올리스트 겸 지휘자 이승원(32)이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의 부지휘자로 선정돼 오는 9월부터 활동한다는 소식이다. 젊은 지휘자, 부지휘자들의 건투를 빈다. 그들이 향후 좋은 지휘자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점검하고 확충해 나갈 때다. 류태형 / 음악 칼럼니스트음악회 가는 길 지휘자 그림자 부지휘자 제도 수석지휘자 임기 김은선 지휘자

2022-07-31

[J네트워크] 젊은 지휘자의 빛과 그림자

약관의 핀란드 지휘자가 세계 음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의 이름은 클라우스 메켈레(26). 최근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결정됐다. 2020년부터 오슬로 필하모닉, 2021년부터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메켈레는 31세가 되는 2027년부터 RCO의 제8대 수석지휘자 임기를 시작한다. 취임 전까지는 ‘아티스틱 파트너’로서 현재 음악감독이 공석 중인 RCO를 지휘하게 된다. RCO는 영국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선정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에서 1위에 올랐던 명문악단이다.   젊은 지휘자가 세계 유수의 악단을 책임진 사례가 드물지는 않다. 당장 RCO의 역사를 살펴봐도 빌럼 멩엘베르흐가 24세 때 수석지휘자로 부임했다. 라파엘 쿠벨릭은 25세 때 체코 필하모닉, 사이먼 래틀도 25세 때 버밍엄 시향, 에사 페카 살로넨은 26세 때 스웨덴방송교향악단,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는 29세 때 버밍엄 시향을 맡았다. 우리나라 정명훈도 31세 때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로 커리어를 쌓았다. 그런 정명훈이 “60세 정도 돼야 조금 지휘를 알 것 같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 지휘는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한 통찰이 필요한 자리다. 젊은 지휘자의 앞에는 숱한 미지의 시간이 놓여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젊은 시절 없이 곧바로 원숙한 지휘자는 없다. 회사에서 ‘신입’을 뽑을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게 ‘경력’이라는 아이러니는 젊은 지휘자들도 체감하는 현실이다. 청중도 오케스트라 단원도 검증된 지휘자를 원하지만 젊은 지휘자도 지휘대에 서야 한다. 이는 양해와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에 부임한 김은선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재학 시 한 학기에 최소 세 번 프로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할 수 있었고, 이때 많이 ‘깨지며’ 배운 경험이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 제도도 경험 많은 지휘자로 성장하는 궤도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김은선 지휘자는 리옹 오페라에서 키릴 페트렌코(현 베를린 필 음악감독)의 부지휘자로 일한 경험이 지금의 성장에 큰 도움과 영감이 됐다고 말했다. 정명훈도 LA필하모닉에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있으면서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안전한 경험을 담보하는 익숙하고 검증된 무대만 찾는 청중의 보수성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부딪쳐서 깨지며 성장하는 젊은 지휘자들의 무대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마침 비올리스트 겸 지휘자 이승원(32)이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의 부지휘자로 선정돼 오는 9월부터 활동한다는 소식이다. 젊은 지휘자, 부지휘자들의 건투를 빈다. 그들이 향후 좋은 지휘자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점검하고 확충해 나갈 때다. 류태형 / 음악 칼럼니스트J네트워크 지휘자 그림자 부지휘자 제도 수석지휘자 임기 김은선 지휘자

2022-07-10

[시조가 있는 아침]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무명씨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섰거라   너 가는 데 물어보자 손으로 흰 구름 가리키고   말 아니코 간다   -청구영언 진본   그리운 탈속의 경지     작가를 알 수 없는 이 시조는 문맥을 초월한 즉흥적 직관적 세계와 만나게 한다. 즉 다리 위에 중이 가니까 물 아래 그림자가 지는 게 아니라, 물 아래에 그림자가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모순 어법이지만 자연을 앞세우고 인간을 뒤로 세운 것이다.   저 스님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물어보아도 말 아니하고 손으로 흰 구름을 가리키니 그야말로 탈속의 경지라고 하겠다. 이 스님은 혹시 안거(安居)에 들 수행처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거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생긴 것인데, 인도에서는 우기(雨期)에 땅속의 작은 동물들이 기어 나오기 때문에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그것들을 밟아 죽일 염려가 있고 또 각종 질병이 나도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기의 3개월은 다니는 것을 중지하도록 설하신 것이 안거의 시작이다.     우리나라는 혹서기와 혹한기가 있는 나라여서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를 하안거, 시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를 동안거로 해서 스님들이 산문 출입을 자제하고 수행에 정진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다. 유자효 / 한국시인협회장시조가 있는 아침 그림자 무명씨 아래 그림자 정월 보름 석가모니 부처님

2022-05-18

정숙자 시인 ‘그림자의 눈’ 출간

정숙자(윤숙자) 시인이 시집 ‘그림자의 눈’(사진)을 출간했다. 뉴욕에 거주하는 그는 매일 출퇴근하는 맨해튼 거리에서 천태만상을 보며 영감을 받아 시를 써 왔다. 센트럴파크 부근 일터를 오가며 거리와 소음, 자연 등을 시로 표현했다.   그의 시 ‘그림자의 눈’에서는 “휘파람 새와 솔새가 위아래를 차지하듯, 삶은 가치가 충만하고 정확해야 하나요”라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또 ‘돌의자 위에는’에선 “후덥지근한 대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나그네의 길은 어느쪽에 있을까, 세상은 아직 이른아침이다. 돌의자 위에는 햇빛이”라며 돌의자 위에서 꽃길을 상상하는 내용을 담았다.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추천한 김정기 시인은 “그림자의 눈을 가지고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의 눈을 찾는, 선명하지만 조용한 정 시인의 상재를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 시인은 뉴욕에서 향토성 짙은 서정 잔치, 동포의 고향 상실의 근원적 방황, 힘찬 미래로의 방향전환 등을 함께 시 세계에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시인은 “꿋꿋하면서도 사랑을 앓아온 수선화를 닮고 싶었다”며 “생활 속에서 넘쳐 흐름들과 아쉬움들을 시어로 표현해보고자 했고, 고치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언어들을 세상 밖 빛을 볼 수 있게 하려 한다”고 전했다.   1976년 이민한 정 시인은 2013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뉴욕 중앙일보 문학동아리 회원이다. 2014년엔 시집 ‘물고기의 집’을 출간했다.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정숙자 그림자 정숙자 시인 시집 그림자 김정기 시인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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