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무명씨
물 아래 그림자 지니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섰거라
너 가는 데 물어보자
손으로 흰 구름 가리키고
말 아니코 간다
-청구영언 진본
그리운 탈속의 경지
작가를 알 수 없는 이 시조는 문맥을 초월한 즉흥적 직관적 세계와 만나게 한다. 즉 다리 위에 중이 가니까 물 아래 그림자가 지는 게 아니라, 물 아래에 그림자가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모순 어법이지만 자연을 앞세우고 인간을 뒤로 세운 것이다.
저 스님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물어보아도 말 아니하고 손으로 흰 구름을 가리키니 그야말로 탈속의 경지라고 하겠다. 이 스님은 혹시 안거(安居)에 들 수행처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거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생긴 것인데, 인도에서는 우기(雨期)에 땅속의 작은 동물들이 기어 나오기 때문에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그것들을 밟아 죽일 염려가 있고 또 각종 질병이 나도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기의 3개월은 다니는 것을 중지하도록 설하신 것이 안거의 시작이다.
우리나라는 혹서기와 혹한기가 있는 나라여서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를 하안거, 시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를 동안거로 해서 스님들이 산문 출입을 자제하고 수행에 정진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다.
유자효 /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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