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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그림자의 짙기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의학 분야의 개척자인 칼 융(Karl Jung)은 “가장 위험한 심리적 실수는 자기 안의 그림자를 남들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이것이 거의 모든 분쟁의 근원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각자 개인의 삶에서 덜 구현될수록 그 그림자는 오히려 더 두껍고 짙어진다”고 했다.  
 
‘인간 본성의 법칙’ 제9장 억압의 범칙(Regression)에서 로버트 그린은 내 안의 어둠을 직시해서 그림자를 탐구하고 포용함으로써 그림자를 온전히 다 받아들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인격에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닉슨 대통령의 비극을 상세히 분석하고 닉슨이야말로 인간의 양면성이 두드러진 사람의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밝은 닉슨은 사려 깊고 유난히 사람을 잘 챙기며 감수성이 풍부하고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인 반면에 어두운 닉슨은 화가 나 있고 앙심을 품고 괴팍하며 야비한 면이 있다고 본다.  
 
닉슨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아 평소보다 심하게 초조해지면 그의 내부에 깊이 숨어있던 어둠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심한 불안과 의심, 갑작스러운 폭발, 짜증 등이 터져 나왔다. 닉슨은 자기 안의 이런 면을 완강하게 부정하고 억눌렀다. 닉슨의 어둠은 결코 유형적으로 구체화하였는데 그게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의 녹음테이프였다.  
 
닉슨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다. 우리는 결코 이 어둠을 인정하거나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사람들을 의심하고 상처 주고 싶어 한다. 이 어둠은 설명할 수 없는 우울함, 초조함, 예민함, 허전함으로 몰고 가서 결국 주변 환경이나 사람을 탓하게 된다. 우리는 이 어둠을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눌러 숨겨 놓으려 한다. 가면을 쓰고 역할을 연기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어둠은 가끔 악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인간의 삶 자체가 내 안의 어둠과 대항하는 투쟁이다. 이 어둠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당신 성격의 어두운 면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어둠이 내보내는 신호를 감지하는 법을 배우고 나면 여기서 어두운 에너지를 생산적인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보통 그림자는 무의식 속에서 활동한다. 칼 융은 억압의 수준이 얼마나 심한가에 따라 그림자의 짙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림자는 내면 깊숙한 곳에 묻혀 있다가 스트레스로 깊은 상처와 불안이 자극되면 동요하면서 활동을 개시한다. 평소에 우리는 겉모습만 보다가 내면의 그림자가 튀어나오면 삼차원적인 인간의 본성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그림자의 윤곽은 모순된 행동, 감정적 폭발, 격렬한 부정, 우연한 행동, 지나친 이상화, 투영 등으로 나타난다. 남의 그림자를 파헤치고 설교하기는 쉽다. 자기 안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기만큼이나 어렵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점은 그림자를 찾은 다음에 그 그림자를 십분 활용해서 지금의 인격에 통합할 때 우리는 성장한다. 최고의 예술은 깊이 억압되어 있던 어두운 충동에서 나온다. 당신 내면의 어둠을 풀어줄 때 당신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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