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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향만리] 誾誾 行行 侃侃 (은은 행행 간간)

『논어』에는 제자들이 공자를 모시는 태도에 대한 기록도 많다. 스승을 모실 때 민자건은 온화했고, 자로는 실천적이었으며, 염유와 자공은 강직했다. 제자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공자는 즐거워했다(樂). 혹자는 원문이 ‘즐거울 락(樂)’이 아니라 ‘자(字)’였을 것으로 여겨 각각의 태도에 맞게 ‘자(字:관례 때 지어주는 또 하나의 이름)를 지어주셨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은은(誾誾)’의 ‘誾’은 말소리(言)가 문(門) 안에 있는 형상의 글자이니 조용하고 온화한 태도를 표현한 말이고, ‘행행(行行)’은 글자 그대로 행동으로 실천함을 묘사한 말이다. 간간(侃侃)은 대개 ‘신(信)+천(川:내 천)’으로 구성된 글자로 여겨 ‘믿음이 냇물처럼 이어질 정도로 강직하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각기 특성과 장점이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는 스승 공자의 따뜻한 눈길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다만, 공자는 자로가 지나치게 행동적인 점을 보면서 제명에 죽지 못할까 봐 염려하기도 했다.   장점이 넘친다면 그 장점을 잘라다가 단점을 보완하는 ‘절장보단(折長補短)’의 노력으로 세 제자의 장점인 은은, 행행, 간간을 다 갖출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구절을 쓴 서예작품을 걸어두고 보면서 늘 그 뜻을 음미하면 도움이 되리라.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NYT 피아니스트 스승 공자

2024-10-30

[필향만리]

일부분만 전하는 『시경』의 일시(逸詩) 중에 “아름다운 꽃이여! 펄펄 날리는구나. 어찌 그대를 생각지 않으랴만 집이 너무 머오이다”라는 시가 있다. 이에 대해 공자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움에 어찌 멂이 있겠는가!”라고 평했다. 진정으로 그리워한다면 멀다 해서 못 찾아갈 리가 없을 테니 멀다는 것은 핑계이고, 실은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게 공자의 풀이인 것이다. 공자는 사랑에도 통달했던 것 같다. 진정한 사랑에는 핑계를 댈 틈이 바늘구멍만큼도 없음을 꿰뚫어 보았으니 말이다.   “하늘이 땅에 이었다 끝 있는 양 알지마소. 가보면 멀고멀고 어디 끝이 있으리오. 임 그림 저 하늘 위에 그릴수록 머오이다.…” 시조 시인 이은상이 작사한 가곡 ‘그리움’의 제2절이다. 그리움이 뻗히는 그 가없는 거리를 물리적으로 계산하여 멀다고 생각하는 순간, 순수하고 아름다운 먼 그리움은 사라지고 만다. 1년에 단 한 번 만나지만 어떤 핑계도 없이 마음은 항상 네게 있는 견우와 직녀의 그리움은 애가 타도 오히려 행복한 그리움이다. 허나, 하늘 끝보다도 더 먼 곳 북한 땅. 이산가족의 그리움에는 실지로 ‘멂’이 있다. 내 잘못 아닌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도 먼 그리움이 있다. 핑계마저 댈 수 없이 먼.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시조 시인

2024-09-25

[필향만리] 未之能行 唯恐有聞 (미지능행 유공유문)

공자 제자 자로는 “배우고서도 아직 실천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가르침을 또 들을까 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더러 지나치게 과감하여 스승으로부터 지적을 당하곤 한 자로였으니 실천력도 남달리 강했던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의식주에 소용되는 물건도 그렇지만 지혜로운 삶에 필요한 ‘말씀’도 실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 한마디 말, 한 가지 진리라도 제대로 터득하여 ‘남의 말’로 듣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내 것’으로 소화하고 실천하는 삶이라야 알차고 행복하다. 좋은 말씀과 유익한 정보를 많이 듣겠다며 이곳저곳 허덕이듯이 돌아다니는 삶은 오히려 불행하다. 그래서 독일 시인 칼 부세(1782~1928)는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기에 남의 말을 믿고서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왔네’라고 읊었다.   잡다한 ‘검색’으로 허겁지겁 때우며 사는 삶이 아니라, 진지하게 ‘사색’하며 착실하게 실천하는 삶이라야 아름답다. 사색도 실천도 없이 챗봇의 생성만 기다리는 삶은 삭막하고 무의미하다. ‘지식을 검색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조차 모르는 채 실천 없이 거푸 배우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한 자로의 시대가 부럽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유공유문 사색도 실천도 공자 제자 너머 저쪽

2023-12-10

[필향만리] 聞一以知十 (문일이지십)

 공자가 자공에게 “너와 안회 중 누가 더 낫느냐?”고 물었다. 자공은 “제가 어찌 안회를 넘볼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데 저는 하나를 들으면 겨우 둘을 알 정도입니다”라고 답했다. 여기서 각각 작은 재주와 큰 재주를 일컫는 ‘문일지이(聞一知二)’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자공의 답을 들은 공자는 “암 그렇지. 나도 네가 안회만 못함을 인정한다”고 했다. 언뜻 듣기에 자공을 완전히 무시한 말로 들리지만 실은 큰 애정으로 격려한 말이다. 안회보다 14살 어린 자공도 공자로부터 “지나간 것을 말해주니 다가올 것까지 아는구나(告往知來, 학이편)”라는 칭찬을 들은 제자이다. 이런 자공이 스스로 안회만 못하다며 매우 겸손한 답을 하자, 공자는 대견하게 여기며 “그래, 내 눈에도 네가 아직 안회만 못한 것 같구나”라고 하면서 선배 모범생을 들어 후배 제자를 면려(勉勵)한 것이다.   공자가 만약 오늘날 한국의 학교 선생님이었다면 자공의 부모로부터 ‘학생인격모독’이라며 고소당했을 것이다. 속 깊은 격려는 아예 헤아리지도 못한 채, 입에 붙은 칭찬만 원하는 학부모가 고작 하는 일이라곤 그런 고소뿐이다. 빈 칭찬에 헛춤을 추는 코끼리가 가엽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문일 자공의 부모 후배 제자 하자 공자

2023-11-29

[필향만리] 朝聞道 夕死可矣 (조문도 석사가의)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을 것이다.” 『논어』 이인(里仁)편 제8장 구절이다. 공자님 말씀치고는 적잖이 과격하게 들린다. ‘사생유명(死生有命)’ 즉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천명(天命)’이라고 한 공자가 불쑥 죽음을 거론하며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고 했기에 과격하게 들리는 것이다.   대부분 “그만큼 공자는 바른 도를 듣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라는 의미로 풀이하지만, 일부 연구자는 이 말이 공자의 의지를 표명한 말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영웅을 자처하는 자들이 날뛰고 하극상이 발생하여 도가 땅에 떨어진 당시 상황을 한탄하며 ‘도다운 도’ ‘말다운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오늘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탄식을 한 것으로 이해하자는 주장이다. 의지 표현이든 탄식이든, 분명한 것은 당시에 도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요즈음 우리도 도를 담은 바른말 듣기가 쉽지 않다. 사술(邪術)이 도로 둔갑하고, 편견이 정론인 양 퍼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난세일까. 진실은 제구실을 못하고, 거짓말이 횡행하고 있으니 우리는 어느 아침에나 도를 들을 수 있을까. 이진위사(以眞爲師)! 파사현정(破邪顯正)! 진실을 스승 삼고, 삿됨을 깨뜨려 바름을 드러내자!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석사가 조문 공자님 말씀 바른말 듣기 오늘 저녁

2023-10-01

[필향만리] 盡美盡善(진미진선)

공자는 순임금 시대의 음악인 ‘소(韶)’에 대해서는 “지극히 아름다우면서 지극히 선하기도 하다(盡美矣又盡善, 矣 어조사 의, 又 또 우)”고 평하였다. 그러나 주나라 무왕 때의 음악인 ‘무(武)’에 대해서는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선하지는 않다”고 평하였다. 순임금의 음악은 평화로운 시대에 순후한 본성에 바탕을 두고서 발생한 음악이지만, 무왕의 음악은 정벌과 징계로써 천하를 얻는 무력 시대의 음악이기 때문에 소리는 아름답지만 내용이 선하지는 않다고 평가한 것이다.   음악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에는 망국의 한을 담은 “울밑에선 봉선화야…”가 유행했고, 새마을운동 때에는 ‘건설의 의지’에 반한다고 판정받은 음악은 금지곡이 되기 일쑤였으며, 5·18 당시에는 분노가 서린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류의 운동권 노래가 유행하였다.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이 왜 K팝에 열광하는지를 안다면 그들이 갈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세계의 음악이 된 K팝이 훗날 ‘진미진선(盡美盡善)’, 즉 지극히 아름다우면서도 지극히 선한 음악으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진미진선하게 살면 그런 소망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주나라 무왕 정벌과 징계 운동권 노래

2023-08-25

[필향만리] 旣往不咎(기왕불구)

공자의 제자 재여(宰予)가 큰 실수를 했다. 노나라의 왕 애공이 토지신에게 제사 지낼 때 신주로 사용하는 나무에 대해 묻자, 재여는 “하후씨는 소나무를 사용했고, 은나라는 잣나무, 주나라는 밤나무를 사용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말재주가 좋은 재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밤나무 율(栗)’이 두려움을 뜻하는 ‘전율(戰慄)’의 ‘율(慄)’과 발음이 같음에 착안하여 “주나라가 밤나무를 사용한 까닭은 토지신에 대한 전율을 조성하기 위해서입니다”라는 근거 없는 자의적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선 그런 설명을 한 것을 자랑삼아 공자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공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고, 끝난 일이니 재삼 언급하지 않겠으며, 지난 일이니 더는 탓하지 않겠다만…”이라면서 제멋대로 근거 없는 답을 한 재여를 엄하게 꾸짖었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기왕지사 탓하지 말고”라는 식으로 사용하는 ‘기왕불구(旣往不咎)’라는 말이 나왔다.   잘못을 반성하는 경우 ‘기왕불구’는 새 출발의 양약이 되지만, 반성하지 않는 자를 반성한 것으로 간주하여 ‘기왕불구’의 관용을 베풀면 더 악한 새로운 악을 낳게 된다. 진정한 사과가 없는 일본에 대해 ‘기왕불구’를 적용하지 못하고 또 안 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기왕불구 기왕 잣나무 주나라

2023-08-20

[필향만리] 其爭也君子 <기쟁야군자>

잘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경쟁은 필연적이며 역사와 문화발전의 필수동력이기도 하다. 경쟁은 본래 나쁜 게 아니었다. 좋은 쪽, 잘하는 쪽을 가리는 아름다운 선택의 과정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경쟁이 시기와 질투, 모함과 배신으로 변질되고 방법마저 나빠지면서 ‘사회악’의 하나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즉에 이런 변질을 염려한 공자는 “군자는 다툴 일이 없으나 반드시 활쏘기에서는 다툰다”라며 활쏘기를 사례로 예(禮)를 갖춘 군자의 아름다운 경쟁에 대해 설명하였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나라를 구할 만한 인재가 없기 때문이고, 인재가 없게 된 이유는 과거시험과 같은 인재선발제도가 화석화(化石化)한 경쟁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남 잡아 나 살기’라는 악성 경쟁은 교육을 망치고, 망가진 교육으로는 절대 인재다운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결국 나라가 위기에 처해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망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경쟁 마당인 대학입시가 군자다운 경쟁의 장이 되어 진정한 인재를 선발하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한다. 아름다운 경쟁이 나라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악성 경쟁 우리나라 최고 질투 모함

2023-07-23

[필향만리]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공자는 “예전에 배운 것을 잘 익혀,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면 능히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배우기→익히기→(깨달아) 알기→배우기’의 순환 활동을 평생 정체됨 없이 반복하는 사람이라야 스승 자격이 있다고 본 것이다.   스승이란 먼저 깨달은 사람을 이름이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익혔어도 새로운 깨달음이 없으면 스승이 될 수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옛것만 반복한다면 배웠어도 깨달은 게 없으니 가르칠 게 없고, 가르칠 게 없으니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온고(溫故)’, 즉 이미 세상이 나온 지식과 지혜를 배우고 익혀서(而) ‘지신(知新)’, 즉 새로움에 눈을 떠야 한다. 그게 바로 ‘온고이지신’이다. 흔히, 줄여서 ‘온고지신’이란 4자성어로 사용한다. 온고지신의 의지와 노력이 ‘승선계후(承先啓後, 앞의 것을 이어 뒤의 것을 열어나감)’와 ‘계왕개래(繼往開來, 과거를 이어 미래를 개척함)’의 발전을 낳는다. 그러므로 ‘지신’이 없는 ‘온고’는 무의미하고, ‘온고’가 없는 ‘지신‘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溫’은 ’따듯할 온’이자, ‘익힐 온’이다. 따뜻하게 데우는 시간을 들여야 지식이 지혜로 익는다. 익힐 시간이 불필요한 ‘빠른’챗GPT는 모래성 ‘지신(知新)’이다. 빠른 검색보다 익히는 ‘사색(思索)’이 필요한 이유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온고이지신 스승 자격 다람쥐 쳇바퀴 순환 활동

2023-06-14

[필향만리] 공근어례(恭近於禮)

공자는 “공경함이 예(禮)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라고 했다. 모실 사람에게 집중하여 정성을 다하는 것이 공경인데, 자신이 하는 공경이 예에 부합하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정도면 치욕은 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벗어난 공경은 추한 ‘아부(阿附)’로 전락한다. 공경과 아부의 차이는 행하는 사람 본인이 이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굳이 객관적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찬물이지 더운물인지는 손을 담가본 사람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도연명은 “내가 다섯 말의 쌀을 얻기 위해 아무에게나 허리를 굽실거리랴”라고 하며 부패한 시대의 관직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갔다. 자신에 대해 아름다운 예우를 한 것이다. 조선 말기 항일 의병장 유인석(柳麟錫) 선생은 바른 삶을 “대안(大眼·깊고 넓은 안목), 활흉(活胸·살아있는 가슴), 경척(硬脊·꼿꼿한 허리), 건각(健脚·튼튼한 다리) 등 촌철살인의 네 단어로 요약했는데, 그중 경척이 바로 예에 근접한 공경의 태도이다. 경척은 힘 좋은 튼튼한 허리가 아니라, 아무에게나 굽실대지 않은 꼿꼿한 허리를 말한다.   예에서 멀어진, 공경 아닌 공경인 ‘아부’는 하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문제다. 썩은 고기에 쉬파리가 꾀는 법!필향만리 공경과 아부 의병장 유인석 조선 말기

2023-05-03

[필향만리] 행유여력즉이학문 <行有餘力則以學文>

행하고 남는 힘이 있거든 ‘문(文)’을 배워라.   공자는 철저히 실천을 우선시하였다. “널리 사람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과 친하라”라며 ‘어짊’ 즉 ‘인(仁)’도 실천의 항목으로 제시하였다. 실천한 후에 남은 힘이 있거든 그때 비로소 ‘仁’을 ‘文’으로 배우라고 하였다.   ‘文’은 본래 가장 간단한 무늬인 ‘교차(爻)’를 형상화한 글자이다. 야생의 자연에 인간의 공력이 작용하면 흔적으로서 무늬가 남는데 이처럼 무늬화(化)한 것이 바로 ‘문화(文化)’이다. 인류는 야생보다 나아지기 위해 문화를 창조하지만, 실천이 없는 문화는 오히려 원시의 야생만도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문화를 몸으로 실천한 후, 여력이 있을 때 이론적으로 배우라고 한 것이다.   우선 알아야 실천도 가능하다는 논리로 보자면 이론 공부가 우선일 수 있다. 그러나 이론만 배우는 것은 허망하다. 찬란하다고 여기는 문화를 쌓은 결과가 책과 머릿속에만 있고 실행하는 몸에는 없다면 그 문화가 오히려 문화 이전부터 존재한 원시 자연의 질서마저 깨버리기 때문에 더 불행한 세상을 초래할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능력주의는 공정한가”라는 문제를 이론적으로 잘 따지는 것이 실천의 힘을 배가할 수도 있지만, 따지기에 앞서 이미 알고 있는 문화로서의 정의와 공정을 본연의 양심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문화 이전 이론 공부 원시 자연

2023-04-09

[필향만리] 삼성(三省)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에 주안점을 두고서 나를 살핀다. 다른 사람과 일하면서 최선을 다했을까? 친구들과 사귀면서 믿음을 사지 못한 일은 없었을까? 배운 것을 다 익히지 못했으면 어쩌지?” 『논어』 ‘학이편’ 제4장의 말이다.   사람이 매일 하는 일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직장에서 남과 더불어 일하고, 여가엔 친구와 어울리고, 뭐가 됐든 날마다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 외에 별다른 게 없다. 증자는 우리 삶이 본래 그러함을 간파하고 반성할 항목을 셋으로 잡은 것 같다.   반성을 게을리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장에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없이 제 이익만 챙기는 얄미운 사람이 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신망이 없는 사람으로 찍히게 된다. 그리고 날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정보를 간과하면 서서히 도태당한다. 증자의 시대나 지금이나 직장 내의 화목, 친구 간의 신의, 그리고 자기계발을 위해 끊임없이 반성하며 정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상은 사실 달라진 게 없다.   반성은 부끄러움을 낳고, 부끄러움은 겸손을 낳고, 겸손은 평화를 낳고, 평화는 행복으로 직결된다. 반성이 행복으로 향하는 첫 관문인 것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삼성 제자 증자 화목 친구 친구들 사이

2023-03-27

[필향만리] 열락(悅樂)

우리는 ‘기쁘다’와 ‘즐겁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悅(기쁠 열)’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마음(心)’의 작용으로 인하여 ‘사람(人)’의 ‘입(口)’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빙긋이 벌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로 본다. 독서나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미소와 함께 찾아오는 희열을 표현한 글자인 것이다. ‘悅’과 ‘說’은 상통하는 글자이다.   ‘즐거울 락(樂)’은 대부분 ‘나무받침대(木)’ 위에 ‘큰북’과 ‘작은북’을 얹혀 놓은 모습을 그린 글자로 본다. 원형의 큰 북 모양이 해서로 변하면서 白자 형태가 되었고, 두 개의 작은 북 모양이 해서에 이르러 ?자 형태로 변했다. ‘樂’자는 원시시대 사람들이 타악기를 두드리며 즐기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인 것이다.   기쁨은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희열이고, 즐거움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느끼는 쾌락이다. 그래서 공자는 배우고 익혀 안으로부터 깨닫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은 ‘열(悅=說)’로 표현하고, 외지로부터 찾아온 친구를 맞아 즐기는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는 ‘락(樂)’으로 표현하였다. 열(悅)과 락(樂)의 조화가 아름다운 삶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열락 백자 형태 원시시대 사람들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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