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이름 건 골프대회, 12년 쌓은 인맥 있어 걱정 안 한다"
3년 전부터 준비…더 미룰 수 없어 마음 굳히니 골프 술술 풀리더라 해외 유명선수들도 참가 밝혀 자원봉사자·지역 함께 발전할 것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 대회를 만들기로 결정한 최경주(41·SK텔레콤)를 만났다. 최경주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인 지난달 2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에서다. 최경주는 인생 후반전의 설계도를 그리면서 “내 이름을 딴 대회를 만들겠다고 결정한 것과 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지난달 12일 시작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앞두고 최경주는 대회장인 플로리다주 잭슨빌로 날아갔다. 그러나 캐디백이 오지 않았다. 큰 대회라 월요일 오후부터 신경 쓰고 연습을 해야 했는데 할 수가 없었다. 평소라면 화가 났을 터였다. 그런데 짜증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제발 오기만 해라, 덕분에 그 시간에 잘 쉬는 것도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최경주는 말했다. 경기 전날인 수요일에도 마음이 평화로웠다고 한다. “코스는 매우 어려운데, 사실 무서운데, 이런 코스에서 어떻게 언더파를 칠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던 코스였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니 경기가 술술 풀렸다”고 최경주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연장전을 벌인 끝에 우승했다. 최경주가 마음이 편했던 이유는 대회 직전 ‘KJ Choi 인비테이셔널’ 대회를 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3년 전부터 준비하던 것인데 올해를 넘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폰서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계속 미루다가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대회 직전 개최 결정을 했다. 나머지는 천천히 풀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말했다. 평온한 마음으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란 커다란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KJ Choi 인비테이셔널은 더욱 빛이 나게 됐다. 그는 “가진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니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특정 선수의 이름을 건 대회에 나갔을 때 매우 보람이 컸다고 한다.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아널드 파머 등 쟁쟁한 선수들이 만든 대회는 선수로서의 긍지도 크지만 지역 사회와 대회가 함께 발전하는 커다란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란다. “지역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로 나서 대회장에 로프를 친다든지 쓰레기를 줍는다든지 스코어보드 관리 등 궂은 일을 도맡는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회가 짜임새 있다. 악천후로 대회 일정이 바뀌면 자원봉사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도 전혀 짜증을 내지 않는다. 대회를 마친 뒤 수익금이 발생하면 지역의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그걸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그런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잭 니클라우스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만든 대회에는 유명 선수들이 앞다퉈 참가한다. 최경주가 만든 대회에도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올까. 최경주는 “내가 12년 동안 투어를 뛰면서 적어도 인심을 잃지 않았다. 미국에서 아주 멀지만 유명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고 했다. 그가 PGA투어의 유명 스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매너다. “동반 선수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다들 매너를 지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선수들은 일부러 욕을 하고 카메라가 안 보이면 가방을 걷어찬다든지, 서 있는 가방을 일부러 넘어뜨린다든지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자기 화를 못 이겨 하는 측면도 있지만 상대방을 어수선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다. 마찬가지로 나도 경기를 하다 보면 클럽을 해저드에 던져버리고 싶고, 발로 뭔가를 차 버리고 싶은 충동도 있다. 그러나 상대의 그런 모습이 싫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그런 행동으로 이득을 보는 것도 원치 않고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내 마음만 곪아 간다. 그런 행동을 한다면 내가 어떻게 나눔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겠는가. 나와 함께한 선수들이 나를 통해 축복을 받고 반대로 그 선수를 통해 내가 축복을 받고 싶다. 안 되면 내가 가서 등도 두드려주고, 이번 주로 끝나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도 해주고. 그런 친분이 있어서 행복하게 산다.” 최경주는 프레지던츠컵(미국 대 다국적 연합 팀 골프 대항전)에서 만난 선수들과 특히 친분이 있다고 한다. 최경주는 “팀워크를 다지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한국에서 내 이름을 딴 대회를 열겠다고 했더니 모두들 참가 의사를 밝히더라. 미국팀에서 뛴 선수도 부를 것이다. 스케줄이 괜찮아 유명 선수가 몇 명 올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골프계에 변화를 주는 좋은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민감한 질문도 했다. 최경주는 PGA 투어에서 8승을 거뒀지만 메이저 우승은 없다. ‘메이저 무관이 불운 때문일까, 실력 탓일까’ 하고 물었다. 그는 “아직 실력이 안 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최경주는 “깊은 러프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나, 딱딱한 그린에 세우는 능력, 그린 주위 쇼트게임 등 메이저 대회에선 다른 대회보다 고난도 기술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이 해 보지 못한 것들이고, 실수했을 때 벌이 크기 때문에 경기 중에는 불안하다. 특히 US오픈은 러프에 가면 매우 피곤한 상황이 생기니 티샷이 무척 부담스러워진다. 그린을 놓치면 또 파 세이브가 굉장히 어려우니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12년차가 되어서도 이런 불안감을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 우승은 다른 것이고, 그래서 메이저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라고 했다. 전망은 밝다. 불안감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 US오픈이 열리는 미국 메릴랜드주 콩그레셔널 골프장은 최경주가 2007년 AT&T 내셔널 초대 대회에서 우승한 코스다. 브리티시 오픈이 열리는 영국 로열 세인트 조지에서도 좋은 추억이 있다고 최경주는 말했다. 마스터스는 특히 자신감이 있다고 한다. 그는 “오거스타엔 러프도 거의 없고 한 번 실수를 해도 내 실력으로 복구가 가능하다. 내가 빠른 그린을 아주 좋아하고, 갤러리 수준이 높아 경기하기도 편하다. 아무런 부담이 없다. 의욕과 코스 수준이 맞아떨어져 긍정적인 상승작용이 일어난다”고 했다. 최경주는 “하나님이 나에게 퍼트의 재능은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만큼 노력을 한다. 그러다 보니 이만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메이저 대회에 대처하는 자세도 조금씩 달라졌다고 한다. “무리하게 코스를 도는 것보다는 연습일 중 하루는 칩샷 연습만 한다. 퍼트는 두고4가지 웨지를 가져가 그린을 놓쳤을 때 완벽하게 파 세이브 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하루는 웨지 없이 퍼트만 한다. 하루에 9홀씩 두 번 라운드를 해준다. 모든 코스를 다 돌아봤기 때문에 무리한 연습보다는 세밀하고 침착하게 준비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KJ Choi 인비테이셔널 같은 선수의 이름을 딴 대회는 한국에서 처음 생기는 대회다. 그는 “시작은 미약할지 모르지만 30~40년이 지났을 때, 엄청나게 큰 대회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스윙을 개조하고 몸을 다시 만들 때 많은 사람이 ‘슬럼프다’ ‘지는 해다’ ‘한물갔다’는 등 다양한 표현으로 나를 힘들게 하더라. 그러나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가 세상을 바꾼다. 칭찬하는 한마디, 격려하는 한마디가 동료를 살린다. 주위 사람을 격려하고, 감싸안아야 한다. 그런 생각들을 가진 것이 내가 이 자리에 오게 된 비결”이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앞으로 5~6년은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최경주는 “최경주 재단을 통해서, 또 KJ 인비테이셔널 같은 대회를 통해서 어두운 곳에 있는 아이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