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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 꽃눈

하얗게 덮인 눈 속에서도 움을 트려고 / 몸을 뒤척이는 나목이 되자 /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 / 죽은 자 같지만 살아있는 자 /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 같이 보이지만 / 모든 꿈을 다 가진 한 그루 나목처럼 살아가자 / 버리면 얻게 되고, 낮아지면 높아지는 빈들 / 겨울나무가 속으로 속으로 뿌리내리며 / 찬바람에 울었던 것처럼 / 속으로 속으로 우리도 울자   눈 덮인 창가에 앉아 편지를 쓴다 / 썼다 지워버린 편지를 다시 쓴다 /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가슴으로 쓰고 있다 / 눈이 녹고 봄이 오면 / 그때도 편지를 쓸 수 있을까 / 연두의 잎눈이 보석처럼 어리울 때 / 목련이 긴 목을 내리고 / 슬피 나를 바라볼 때도 나 그대 앞에 / 엎드려 목 놓아 울 수 있을까 / 호흡으로 겨울 숲은 잠드는데      새해를 맞은 지 두 주가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면 내게 허락된 삶의 마지막이 코앞에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멍해졌다. 창밖엔 가는 눈이 벌써 몇 시간째 내리고 있다. 나무의 잔가지를 채우고 차가운 땅을 부드러운 손길로 덮어 주고 있다. 저기 먼 하늘도 건너편 집 지붕도 멀리 보이는 숲도 언덕으로 오르는 좁은 길도 하나같이 하얀 풍경 속에 잠겨 있다. 사람의 마음속보다 더 깨끗하고 환한 눈이 내리고 있다. 무엇을 덮으려 하는 것일까? 상처 나고 주름진 깊은 골을 천천히 어머니의 손길처럼 쓸어내리고 있다.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 속에는 작고 큰 상처들로 인해 깊은 흔적들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상처는 때로 나를 혼돈과 방황 속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때로는 그 고난을 극복하고 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스티그마라는 단어는 성경 갈라디아 6:17에 단 1번 나오는 단어이다 ”흔적“으로 번역되어 나오지만 ”낙인“이란 말로도 옮겨져 있다. 흔적이나 낙인이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바울이 그 스티그마란 말을 통해 자신이 예수의 종이요. 예수가 그의 주님임을 생생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닥친 견딜 수 없는 고난 그 자체가 바로 스티그마라는 단어이고 그리스도의 흔적이 고난이라는 삶의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도 깊은 골로 새겨져 있다는 말이다. 바로 그 고난은 오히려 축복이 되어 견디어내고 마침내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있게 됨을 말하고 있다. 여전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세상은 온갖 아픔과 고통의 깊은 골을 하얀 눈에 맡기고 있다. 내 안에 새겨진 스티그마, 그리스도의 흔적 같이.     지쳐 잠드는 것이고   흔들려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다   짜맞추는 게 아니라   가슴을 치는 일을   받아 적는 일이다   깨달음을 위해 애쓰기보다   길을 걷다 눈에 띈 들꽃을   노래하고 그리는 것이다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쓰이는 것이다   지나온 걸음 속에서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를   그저 부르는 것이다   사랑과 그리움, 절망을   아파하고 안아주는 일이고   널 보내지 못한 나를   꾸짖는 일이다   세상을 향한 날 선 독백마저   오늘 부딪치며 살아가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요   당신께 드리는 용서인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성경 갈라디아 시인 화가 보호 아래

2025-01-1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 올려다보고, 가끔 내려 보기도 하면서

1 한없이 가라앉았던 날이 있었네 / 여름이 막 시작되었고 초록의 세상이었지 / 귀 언저리 초록의 작은 기포 떠다니고 / 침잠해 가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네 / 맑은 유리잔에 물 한 잔 건네주었네 / 물 한 모금의 삼킴이 목 너머 흐를 때 / 너는 내게로 와 출렁이는 호수가 되었지     2   꽃이 진 곳에 빨간 열매 맺히고 있었네 / 바람에 꽃잎처럼 떨어지던 가을이 오고 있었고 / 손잡으려다 놓쳐버린 날들도 가고 / 새장을 빠져나온 가슴이 아픈 새들은 / 긴 날개 펼치며 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네 / 내려다보이는 호수 위, 푸른 실핏줄 같은 은하 / 너는 내게로 와 흐르는 푸른 별이 되었지     3   창밖엔 눈 내리고, 찬 바람 불고 / 맑고 향기로운 언덕은 흰 눈을 쓰다듬고 / 손이 얼고 발이 붙어도 파도치는 미시간 호수가 좋았네 / 홀로여도 외롭지 않은 빈 해변 동무 되어 놀다가 / 너를 담고 돌아오는 길, 올려다본 하늘 가장자리 / 한 편의 시가 눈처럼 날리며 가슴을 파고들었지 / 너는 내게로 와 선물처럼 흰 눈으로 뿌려졌지     4   봄은 고양이 걸음처럼 살며시 오고 / 뿌리로 자란 만큼 손톱만큼씩 움튼 새싹 / 무채색 세상 속에서 연둣빛으로 변해가는 언덕 너머 / 긴 얼굴 목련이 서럽고, 널 향해 살기로 작정한 / 꽃이 피던 그날, 꽃잎 떨어지던 아픈 날도 / 널 가슴에 품고 걸었던 / 나의 숨 쉬는 동안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었지 하늘 향해 뻗은 소나무야, 움츠린 솔잎아 / 그 푸른 정수리, 빨간 열매, 찬 바람 겨울 오면 / 흰 눈 위 각혈처럼 쏟아놓은 후회 같아 / 거울 앞에 서면 나이 먹는 것들의 이유가 서러워 / 그중 깊은 주름 몇 개, 깊은 발자국 따라 / 썰물처럼 눈물 지우며 네게로 간다     또 한 살이라는 명패와 함께 푸른 뱀의 해를 맞은 지도 여러 날이 지나간다. 살처럼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었지만 바라볼 수는 있었다. 이제는 쉼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좇아 뛰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땀 흘리는 내게 물 한 잔 건네주던 손길이 있었다. 쉬어 가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자유라는 명제를 슬며시 내 손에 쥐여주고 뒤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을 보고 알았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시간을 거슬리는 삶은 바른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시선을 시간에만 집착해 있다면 시간은 우리와 함께 걷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시간을 놓아준다? 그리고 내 삶에 자유 한다? 시간에 얽매이면 마음도 초조해져서 되는 일도 그르칠 때가 많이 있다. 시간을 잃어버릴 때가 나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지난 며칠 써 놓았던 시들을 정리했다. 이곳저곳에서 시를 찾아 모으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저물어왔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귀담아들어 본 적이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나를 밀어 넣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무료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놓아주어 자유케 하라 그리하면 하루는 내게 기대하지 못한 선물을 준비하고 나의 걸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루는 나에게 한송이 꽃으로, 쏟아 내리는 비로, 출렁이는 호수로, 흩날리는 흰 눈으로, 밤하늘 흐르는 푸른 별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깊은 숲, 작은 집에 불이 켜질 것이다.    깊은 숲,   작은 집엔   너의 별,   너의 음악,   너의 눈물,   너의 떨림,   너의 웃음 가득하고    나를 비추고,   나를 설레이고,   나를 토닥이고,   나를 재우고,   나를 안아주는,   같은 하루가 아닌   새날을 맞이한다     하얗게 내려지는   기대와 설렘으로 받은 도화지   산을 보다 산이 되고   호수를 보다 호수가 되고   별을 보다 별이 되어지는   도화지 가득 하루가 담겨   깊은 숲,   작은 집에   불이 켜진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미시간 호수 하늘 가장자리 언저리 초록

2025-01-0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눈꽃 향기

시간을 촘촘히 채우며 / 나비가 꽃에 앉듯 사뿐이 내렸다 / 마른 갈대 숲에도, 앞집 지붕 위에도 / 우리집 벚나무 붉은 열매 위에도 / 잠들은 당신의 창가에도 소리없이 내렸다 / 어디에나 누구에든 / 소음과 함성과 절제된 어느 상황에도 / 공평히 내렸고 같은 무게로 쌓였다 // 하늘 가득 흰 꽃이 내렸다 / 사랑이 떠나고 미움이 가득한 세상 / 아무것도 모르는듯 흐트러짐 없이 내렸다 / 우리 모두는 제 길로 떠나 갔지만 / 같은듯 다른 생각으로 멀어졌지만 / 너에게도 나에게도 눈이 내렸다 / 거리에도 나무에도 소복이 쌓였다 / 들에도 언덕에도, 저 편백 나무 숲에도 / 하얀 하늘이 내려 앉았다 / 솜털같은 포근한 세상이 내렸다 // 눈을 뜨고 나갈 채비를 한다 / 먼길 떠나는 새들의 울음도 멈친 새벽 / 어둠은 채 가시지 않았는데 / 검은 때를 벗고 하얀세상으로 걸어야겠다 / 너의 향기 가득한 눈꽃 세상으로      창가에 앉아 바깥 세상을 바라 본다. 온 땅을 덮은 하얀 눈은 바라보는 나의 마음까지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하얀색은 무색이 아니다. 어느 곳에 칠해져도 하얀색은 새로운 여백을 창출해낸다. 답답한 풍경을 시원한 한폭의 수묵화로 바꾸어 놓는다. 색이 아니면서도 가장 강렬한 색이기도 하다. 나무를 온통 눈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지붕의 색을 순식간에 하얗게 바꾸어놓아 온 동네를 눈세상으로 만들어 놓는다.     잠 못 이루는 당신의 창가에도 소복히 쌓인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당신의 시야에서 색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온통 백색의 세상이다. 이렇듯 단번에 세상을 바꿔 놓는 것은 아마도 눈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유기적인 힘도, 어떤 힘센 사람의 노력도, 첨단 장비의 효과도 아닌 그저 부드럽고 소리 없이 천천히 세상을 바꾸어 놓는 하얀 눈. 참으로 놀랍다. 패인 웅덩이를 덮어주기도하고, 꺾인 가지를 감싸기도 한다.   하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의 미움도, 상처도 하얗게 차유되는 듯하다. 높낮이도 없고 밝고 어두움도 없는듯, 눈은 우리에게서 공평과 절제와 겸손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다. 저기 서 있는 편백나무도 새롭게 흰꽃을 피웠다. 가지마다 소담히 피워낸 눈꽃은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도 꽃을 피운다. 잠깐 피었다. 사라질 꽃이지만.그 꽃이 우리에게 주는 편안함과 고요함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서 찌든 불신과 허망한 묵은 때를 하얀 눈으로. 씻어야겠다. 하얀 눈꽃향기로 가득 채워야겠다.      어떤 말은 굴러 가는 말이 있고   어떤 말은 마음에 와 박히는 말이 있더라   어떤 말은 생각 위로 떠 다니는 말이 있고   어떤 말은 생각 속으로 잠겨오는 말이 있더라   어떤 말은 숨겨 지는 말이 있고   어떤 말은 꿈에서라도 들려지는 말이 있더라   셀 수 없는 말을 내뱉고 돌아오는 길   가슴에 남겨진 말 하나 거둘 수 없더라   창가에서 마주한 눈꽃세상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 주더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눈꽃 향기 눈꽃 향기 눈꽃 세상 우리집 벚나무

2024-12-2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그림자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네 /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거기 보이네 / 그리움을 하나씩 숨기고 있네 // 그림자 속에는 // 흔들리는 들꽃의 반가움도 있고 / 나비의 날갯짓도 노을 속에 사라지네 / 들길을 걷는 한 사람의 발걸음도 / 창가에 앉은 그의 심장 뛰는 소리도 들리네 // 그림자 속에는 없는 것이 없어서 /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 그 몸에 그림자를 달고 다니게 되네 / 자동차 바퀴는 그림자로 달리고 / 구름도 땅 위에 그림자를 그리고 있네 / 나무는 그림자 밑으로 뿌리 내리고 / 꼬리 흔드는 강아지는 흔들리는 그림자를 물고 가네 // 그림자는 시작도 되지만 끝도 되어 / 점 아래로 모이는 정오엔 사라지기도 하네 / 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은 순식간이어서 / 한 번도 그 순간을 바라본 사람은 없네 / 그 순간 그림자는 제 몸으로 돌아가 제 몸이 되네 // 숨바꼭질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 제 발밑의 그늘을 찾지 못하네 / 빛이 있어야 그림자로 살아나고 / 내 생각이 네 생각과 다를 때에는 / 서로의 자리를 바꿔 나타나기도 하네 / 그림자 속에 있지 않은 것은 없기에 / 붉은 해 수평선으로 기울고 긴 여운을 만드네 / 사람들도 그림자로 살아가네 / 온종일 그림자로 살다가 어둠이 오면 / 그림자를 어둠에 숨기기도 하네 // 이제 너는 내 그림자로, 나는 네 그림자로 살기로 하네       빛이 있고 사물이 있으면 그 사물은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 빛이 눈부신 햇빛이 될 수 있고, 달빛이나 별빛이 될 수도 있습니다. 희미한 초롱불이나 촛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미한 빛만 있으면 그림자는 어느새 생겨납니다. 어쩌면 사물속에 저마다의 그림자를 품고 사는 것이 아닌 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신기한 것은 그 사물이 흔들리면 그림자도 같이 흔들리고 사물이 뛰기 시작하면 그림자도 같이 뛴다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본체보다 몇 배나 크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로데스크한 모습으로, 본체를 삼켜버릴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림자를 보면 사물의 모습이나 상태가 그대로 투영된다는 말이 됩니다.     사물과 그림자는 한 뿌리에서 나온 한 몸입니다. 사람도, 동물도, 움직일 수 없는 식물도,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미한 생물체 모두 다 그림자를 가집니다. 하늘의 구름도, 낙하하는 낙엽도, 달리는 자동차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림자는 사물의 배경으로 살아가는 듯 보여집니다. 철저히 사물의 움직임대로 가고 순순히 사물이 가고자 하는 의지대로 함께 따라갑니다. 그림자는 처음부터 자기를 내려놓아 사물의 배경으로 만족합니다.     누군가의 배경으로 살아간다는 것.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림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의 뜻대로, 자기의 방향대로 걸어갈 뿐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막무가내의 삶 모두는 자기 뜻과 성취를 위할 뿐입니다. 내가 없어지는 배경이 되려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림자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살아가는 지혜를 배웁니다. 배경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이요, 자기를 내려놓는 삶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어두운 새벽이었는데 어느새 안개가 자욱한 초겨울 아침이 왔습니다. 햇빛이 없어 그림자가 없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비추면 그림자와 함께 모두 행복하시길요. 커피 조금 더 내려야겠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그림자 순간 그림자 자동차 바퀴 시인 화가

2024-12-1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기대어 살아야 하지

새벽이 깨어날 때면 / 꽃 한 송이 피어나듯 / 어둠의 뒤로 아침이 오네 // 힘들 때마다 우리 기억해야 하지 / 소리 없이 들길을 걸었던 일 / 바람이 우리를 마구 흔들었던 기억 / 내어준 팔의 따뜻함에 꿈꾸었던 시간 / 기억해야 하지 사는 게 쓸쓸해지면 / 마주 보며 웃음을 되찾았던 일을 // 다시 태어난다면 / 이 땅에 다시 태어난다면 // 들꽃 만개한 일몰의 언덕에서 손잡고 / 붉은 노을로 스러지는 밤하늘 가득 / 서로를 지키는 별빛이 되어야하지 / 살아있는 날 동안 눈동자같이 바라보며 / 기대어 설 서로의 든든한 등이 되어 / 기쁘거나, 슬프거나, 외롭더라도 / 새벽이 깨어나듯, 꽃 한 송이 피어나듯 / 그렇게 우리 기대어 살아야 하지 // 야윈 팔소매 걷으며 웃어줄 당신이기에       기대어 산다는 것은 서로의 등을 내어 준다는 말이다. 등을 내어 준다는 것은 나를 지탱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준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연약한 한 사람의 등이 다른 사람의 등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스스로 서서 버틸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온몸을 의지하여 맏길 수 있는 어느 한 사람을 만났다면 그는 인생을 잘 산 사람이다. 어떤 사람의 입은 마음에 있어 생각을 마음에 담지만 어떤 사람의 마음은 입에 있어 생각을 무심코 내뱉기도 한다. 확인 되지 않은 말 확신이 없는 말들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해서 좋았던 기억 보다 단 한 번의 서운함으로 오해하고 실망하여 멀어지기도 한다. 서운함보다 함께 한 좋은 기억을 떠올려 먼저 고마웠다고, 미안하다고, 손 내밀 수 있다면 세상은 아름답게 바뀌어 질 것이다.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기대어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진정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언제인가 산행 중에 지쳐 있는 몸을 큰 나무 등에 기대어 본 적이 있다. 편안함과 안락함이 내 등을 통해 따뜻하게 전해 왔었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힘을 얻고 정상을 향해 걸었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땅을 딛고 살고 있다. 내 발을 지탱해주는 것은 우리가 인식 하든, 인식하지 못 하든 우리가 눈을 뜨면 걷는 이 땅이 자기의 등을 내어 준 것이다. 바람이 더위와 땀을 식혀주는 것도 바람이 자기에 등을 내어 준 것이다. 나무도 서로의 등을 기대고 의지하여 든든히 가지를 뻗는다. 뿌리는 가지에게, 가지는 뿌리에게 든든한 등이 되어준다.     자세히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서로의 등을 내어 주고 서로의 약함을 보듬어주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상대방의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방이 나의 든든한 등이 되어 주기도 한다.   슬플 때도, 외로울 때에도, 한없이 깊은 수렁 속에서도 지친 어깨를 안아주며, 눈동자같이 지켜 주자. 어둠의 뒤로 아침이 오듯이 서로의 손을 끌어 빛나는 아침을로 이끌어주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어둠은 사라지고 한송이 꽃이 피어나듯 우리의 마음 속에도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날 것이다.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진다는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청춘은 너무도 짧고 아름다웠다.“라고 박경리 작가는 말했다. 그렇다. 버리고 갈 것만 남기고 나머지 모든 것들은 서로의 등이 되어 주자.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감사하며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주자. 서로의 마음 속에 꽃 한송이 피워 보자.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동안 눈동자 시인 화가 박경리 작가

2024-12-0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어슴새벽

첫눈 내리고 찬 바람이 불어 / 나무에 기대어 사는것도 숨이 차올 때 / 촛불 하나 불 밝히면 그게 온 세상 다인 / 당신이라는 호주머니 속에 살고 싶었네 /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픔으로 눈길을 걷네 / 낯선 어둠이 길을 막고 서 있네 / 내안에 흔들리는건 내가 아니었네 // 얼어붙은 단풍잎 하나 집어들다가 /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꿈에서 깨었네 / 맞은편 하늘도 내려앉아 새벽이 아파 오네 / 손에서 바스러지는 낙엽의 마지막 숨 / 하늘이 발밑에 무너져 내린 것이네 // 막다른 길위에도 바람이 스쳐 오네 //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맞이한 별빛도 / 하늘을 나르는 새의 깃털같은 자유도 / 뒹그는 붉은 나뭇잎 하나만도 못해 / 새벽길을 더듬으며 너의 흔적을 찿네 // 빛처럼 내리는 고요의 숲길을 걸으며 // 마지막 길을 함께 못한 회한이 나무처럼 서있네 / 창가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아침은 오는데 / 먼발치로 바라 보는, 가지 못한 길이 서럽네 // 별빛 영롱해지고 파도 잔잔한 날 / 지나온 시간과 함께 다가올 시간도 꼭꼭 싸매 / 당신 바라보는 별빛아래 놓아두기로 했네 / 안녕, 그 고통의 아름다움을 껴안네 // 내려오는 발길에 선물처럼 먼동이 트는데       설명하는 지인의 눈은 밝고 빛이 났다. 그 표정이 얼마나 진지했던지 그의 말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들어 보았음직한 단어이었음에도 한 번도 내 입을 통해 말해 본 적 없는 정겨운 단어였다. “맞아, 걷기 좋은 날이면 맞은편 언덕으로 달려 갔던 그 시간” 바로 그 시간이 *어슴새벽이었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어스레하게 밝아오는 길은 하루를 여는 가슴뛰는 시간이었다. 기대 하지 못한 풍경을 만나고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마지막 한 생명의 호흡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가지에 붙어있는 마지막 잎새는 바람에 떨고 있었지만 기꺼이 가지로부터 떨어져 봄에 피어날 새싹을 위해 썩어질 준비를 마친 후 같이 비장해 보였다.     빈들이 되어버린 언덕에 첫눈이 내렸다. 순식간에 세상은 하얗게 변해 버렸다. 보이는 풍경이 하나로 되어 세상의 불협화음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나도 소리없이 입을 막고 눈길을 걸었다. 발밑에 뽀득이는 소리가 좋아 일부러 눈길을 찿아 걸었다. 고요가 맞은 편 숲길에서 걸어 나왔다. 이 고요는 벌거벗은 나무를 껴안고, 까만 씨앗을 품은 들꽃을 쓰다듬고 있었다.     하루의 시간 중 어슴새벽은 늘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깨어나는 시간이고, 품어주는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시간이고 용서하는 시간이었다. 이 순간을 거슬릴 수 없다면 나의 모든 것을 내어 주어 나도 하얀 풍경으로 남아 이시간에 머무르고 싶었다.       창가에   목련노을이 지면   하루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숨쉬듯 반짝이는   별이 뜨고   내 마음 가득 담은   널 닮은 달도 오르고 말지   빈들엔 고요의 축제   하얀 풍경의 시간이   거기 멈추어 섰네 (시인, 화가)     *어스레하게 밝아오는 새벽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남아 이시간 맞은편 하늘 맞은편 언덕

2024-12-0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빌려온 시간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붙네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잘못된 시간이 사라지고 있네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는 일이란   내 마음의 잡초를 걷어낸 후에라도   서로의 발자국을 확인해야만 했네       꽃향을 따라 나비가 길을 내듯   불 밝힌 오두막을 향해 길을 내어야했네   머물 수 없는 어둠의 울타리를 넘어야 했네       “괜찮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네   비장한 가을 하늘은 높아만 가는데   한 걸음 발을 뗄때마다 이명은 사라지지 않네       내게는 빌려온 시간이 있네   그 시간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네   지나 보니 내 것이 아니었네       내가 어둠의 청색이 가라앉는 동안 길을 내었네   먼동이 트고, 하루가 밝아오는 언덕에 서네   바람은 지나온 시간을 밀어내고 있네         창밖을 봅니다. 희끗희끗 눈발이 날립니다. 먼 나라, 꿈도 꿀 수 없는 하늘에서 빈들로 여린 동작으로 눈이 내립니다. 시야에 꽉 찬 풍경은 하얀 눈의 여백으로 일상의 풍경을 한 폭의 동양화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첫눈입니다. 밖으로 나가 눈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목적도 없이 발끝이 닿는 곳으로 갑니다. 발자국이 찍힌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았습니다. 이 발로 그 긴 시간을 걸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제자리인데 나는 눈길을 걸으며 다시 태어납니다. 내 볼을 만지는 눈은 어느새 녹아 눈물이 됩니다.     내 것이라 여겼던 시간이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담을 쌓고 작은 창문을 내고 그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던 바깥세상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함께라는 말을 잊어 버리고 살아왔던 시간이 거기 있었습니다. 함께라는 말. 그 말은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함께였던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차마 그 손을 놓아줄 수 없을 겁니다. 눈길을 걸으며 지나온 나의 시간으로 눈을 돌립니다. 나의 시간이 아닌 시간을 살아온 날들이 보입니다. 그 시간이 낯설어집니다. 꼭 빌려온 시간같이 느껴집니다.     그리운 사람과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함께 뜨거운 커피를 나누고 싶습니다.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짙은 회색의 하늘을 보고, 서로의 걸어온 길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이 번쩍 뜨이는 반가운 사진을 찍고, 아쉬워 돌아오는 밤길을 함께할 수 있는 그런날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 좋아요” 활짝 웃는 그리운 얼굴이 차창을 따라옵니다. 다시 아침은 오고 또 날이 저물어 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신기한 별 하나 떠 있습니다. 잠든 나를 비추는 그 별은 아침이 되면 하얗게 부서져 무너집니다.     이별이란 단어와 이별하는 날을 꿈꾸어봅니다. 어느 날 함께였던 모든 것들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 위로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새하얀 눈이 내리고,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의 밤이 지나고 나면 동쪽 하늘 언저리에 당신의 아픔을 덮어줄 푸른 새벽이 올 것임을 압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동쪽 하늘 가을 하늘 위로 바람

2024-11-2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찬 바람이 불기 전에 Rosehill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비석 주변에 쌓인 낙엽도 쓸어주고 얼마 전에 묘 옆에 심은 작은 도장 나무 묘목에 물도 줄 겸 어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무언의 대화였지만 역시 어머니는 내 속에 살아계셨다. 나를 안으실 땐 늘 내 손을 잡으시고 다른 손으로 등을 어루만져주셨다. 그 손이 무척 그립다. 어머니를 닮은 작고 동그란 돌멩이를 묘목 주변에 깔아주었다. 가져간 가위로 묘목을 동그랗게 멋도 내주었다.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시는 것 같다. 떠나오면서 노을이 물든 서쪽 하늘을 보며 운전했다. 차가 신호등에 멈출 때마다 노을을 찍었다. 삶은 노을같이 아름답고도 처절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검푸른 하늘에 영롱한 별들을 생각했다. 귀를 자르고도, 붕대를 얼굴에 감고도 웃을 수 있었던 화가의 생과 어린 네 자녀를 앞에 두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올곧은 어머니의 생이 오버랩되었다.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당신의 이름을 오는 내내 불러보았다.     명치끝이 아파와서     1   너에게 가는 길은   더딘 걸음이어도 좋았네   당신의 손에서 빚어낸 선물처럼   감추어진 무언가 찾아낸 아이처럼   마음과 몸으로 느끼는 향기   가을이, 낙엽이, 풍경이   선물인가 했었네   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니   그건 바로 당신이었네     붉은 가을 앞에 서서   온몸이 붉어져도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시선을 견디어 내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었네   오늘은 꿈꾸고 싶은 것이 되어   돌아오는 노을이 되겠네     2   나는 속이 비워 넘어진 나무같아요 명치끝이 아파와서 손으로 문지르다 보니 손바닥에 묻어나는 얼굴 달도 많이 야위었어요 제 몸을 깎아 붙인 눈썹 같아요 잃어버린 것을 찾아 나선 저녁 엉켜진 덤불 아래서 파도가 머물고 간 모래톱에서 실핏줄같이 엇갈린 푸른 기억을 보았어요 서 있는 시간 내내 해는 기울고 지문처럼 찍힌 발자국이 서러워요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한 저녁 가던 길 돌아와 자세히 보면 아! 알고 계셨네요 당신의 시간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걸 그 길을 수도 없이 지나면서 지는 꽃잎에 눈물만 훔치던 당신 하루가 저무는 저녁 내내 붉은 노을로 돌아오고 있어요 오래전 당신이 걸었던 인생길같이 구불구불 그려놓은 당신의 무늬는 당신을 찾아가는 하늘길이 되었어요     3   고요는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도 오지   흙탕물의 침잠 시간에도 오고   낙엽 쌓인 보도블록 위에도 내려앉지   꼭 고요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어느 순간 지금이라고 명명되어진 그때   고요는 불현듯 오지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슬로비디오처럼   조용히 내려오지 소리도 없이   그것이 슬픔이듯 기쁨이듯   조용히 온몸을 채우며 오지   묵직하게 뻐근하게 그렇게 오지     4 남프랑스 아를에는 고흐의 숨결이 남아 있네 미시간 호숫가 *Rosehill에 당신의 숨결이 남아 있듯이 아를의 밀밭을 걸으면 흙바닥에 묻어나는 황색 물감 라 마르탱 광장 2번지 고흐의 노란 집엔 나무 침대, 베개 둘, 의자 둘, 탁자 하나 액자 6개가 걸려 있네 침대맡에 창문도 하나 있네 그 창문을 통해 아를의 기차역이 보이네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를 보네 그 창문에 서면 그의 중얼거림이 들리네 싸이프러스 나무위로 *별이 빛나는 밤이 오네 침묵이 대답이 되는 시간들이 별빛처럼 내리고 귀를 잘라버린 아픔과 참담히 거기 서있네 붕대로 싸맨 얼굴로 웃고 있는 막무가내가 뭉클하네 겨울 찬바람이 불기 전 어머니 묘소를 찾았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등을 어루만지네 서쪽하늘 노을이 붉게 번지네 삶은 노을같이 아름답고도 처절했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처럼 별이 뜨고 별이 지는 일처럼 하루가 오고 하루가 지고 있네 Rosehill에 번지는 붉은 노을이여 멀리서 외로움과 맞설 아를의 푸른 밤이여 무슨 수로도 잊을 수 없는 당신을 부르네 낯설은 땅에 누운 고마운 당신과 아를의 밀밭 길을 걸어 사라지는 별빛 같은 당신 내 속에서 잠들고 눈을 뜨는 긴 숨 같은 이름들이네  *어머니가 묻힌 묘지 *정신병동에서 그린 고흐의 작품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서쪽하늘 노을 어머니 묘소 미시간 호숫가

2024-11-1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긴 잠

나무에 기대어 앉았습니다   낙엽 하나 두울 날립니다   두 발을 뻗고 누웠습니다   그는 등을 내어줍니다   그의 숨결이 등을 통해 들립니다       푸른 하늘이 눈부실 때까지   봄의 연두가 살아날 때까지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아는 만큼만 이야기하고   모르는 것은 그대로 놓아두렵니다   새봄의 새싹을 위해   무거운 겉옷을 벗어야 할 때   힘 빼고 두 손을 모아야 할 때   지울 수 없는 사계절 기억을   나무는 제 몸 속 깊은 곳에   한줄의 그리움으로 각인합니다   잠깐 피었다 지는 아쉬움이 아니라   짧게 말하고 오래 견뎌내는   익숙함을 넘어선 그건 믿음입니다   보지 않고서도 말할 수 있는   찬란한 어느 봄날을 꿈꾸며       하늘을 밀고 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앙상한 나무는 긴 잠을 청합니다 나무는 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인내와 사랑을 보여 줍니다. 어떤 나무는 500년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나무는 우리 선조들의 살아온 시간과 환경 속에서 그 당시의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말없이 한 자리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아쉬움의 순간들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어떤 나무는 심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명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무는 살아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뿌리를 뻗어 나가야 합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 올려 가지와 잎에 수분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나무는 힘들어하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수분뿐 아니라 적당한 양의 햇빛도 필요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살아가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에너지를 동물은 섭취한 음식물을 통해 몸속에서 소화함으로 얻습니다. 반면에 식물은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입의 기공에서 흡수된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햇빛을 이용해 양분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을 우리는 광합성작용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듯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나무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일부에게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죽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동물도,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살아남기 위해 제 몸의 일부를 떼어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으로 썩어 가는 다리를 잘라 내기도 하고, 한 쪽 팔을 떼어 내기도 합니다.   언덕을 오르다 쓰러져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버티고 서 있던 그 나무가 쓰러지고만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무의 속이 휑하니 비어 있었습니다. 아마 나무는 결심한 듯 자신을 쓰러트리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무가 보인 결단이고 마지막 사랑이라 생각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나무뿌리 근처에서 물기를 먹은 새 가지들이 올라오고, 연둣빛 잎사귀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쓰러진 나무의 등을 만져 주었습니다. “이제 긴 잠을 자려무나. 윗몸을 쓰러뜨리고 뿌리를 살리기로 한 너를 사랑해. 꿈을 버리지 않은 너를 기억할게. 햇볕 따스한 어느 봄날 우리 만나기로 해. 그때 힘 있게 뻗어 나갈 너를 기다릴게.” 언덕을 내려오면서 낮은 바람에 손 흔드는 작은 잎사귀들을 돌아보며 찬란한 어느 봄날을 꿈꾸어 보았습니다. 확연히 키가 커져 알아볼 수 없을까 봐 돌멩이 하나 놓아두었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뿌리 근처 사계절 기억 연둣빛 잎사귀들

2024-11-1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에게 거는 최면

가을을 반납했다는 G 작가의 글을 접하고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시간과 계절을 내려놓았을까? 암 투병과 함께 지긋지긋한 통증에 약효가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통증이 가시면 글을 쓰고 있다는 G 작가를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있다. 가을을 반납하고서라도 써야 할 그 무엇에 박수를 보낸다. 아무쪼록 그 글의 완성이 책으로 엮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이 온다   우수수 낙엽이 날려도 먼동이 트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햇살이 눕는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누군가는 짙은 커피 향에 취해   떠나는 계절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그리울 때 갈대는 땅으로 눕는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꿈과 현실의 갈래길에서 한길을 택해   언덕을 내려오다 쓰러진 나무를 보았다   거기 나는 속이 텅 빈 나무처럼 땅으로 눕는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꿈은 꿈 자체로 아름답다. 기쁨과 슬픔의 조건조차 현실을 인식하는 우리 내면의 의식에서 빚어진다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상의 결과가 그 가치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함부로 타인의 인생을 평가한다거나 스스로의 삶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본다. 늘 사람을 대할 때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사고로 대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망이 아닐까 한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직 이 지구상에 존재하므로 세상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흰’을 읽고 있다. 소설이라기보다 짧은 수필의 연결 같기도 하고 자세히 읽다 보면 깊은 시 같기도 했다. 흰 것들에 대한 기억과 사유들을 덤덤히 적어 간 그의 글 속에서 인간의 진진한 삶의 고뇌와 덤으로 살고있는 아픔과 고마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속도보다는 방향의 진의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빨리 결론지으려는 조급함이 때론 방향감을 상실한 채 표류하기도 하기에 우리는 자연의 변화처럼 천천히, 바른 방향으로 그렇게 물들어 가야 한다. 글을 읽는 내내 차분하지만, 영감이 자유로운 그의 내면을 송두리째 접할 수 있었다. ‘흰’의 마지막 소제목 ‘모든 흰’의 내용은 이러했다.     당신의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 낮에 뜬 반달의 서늘함을 볼 것이다. 언젠가 빙하를 볼 것이다. 각진 굴곡마다 푸르스름한 그늘이 진 거대한 얼음을, 생명이었던 적이 없어 더 신선한 생명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올려다볼 것이다. 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겨울 해가 드는 창의 정적 속에서 볼 것이다. 비스듬히 천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최면 새벽 언덕 노벨 문학상 시인 화가

2024-11-0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푸른 점 하나

이층 끝 방을 화실로 꾸몄다. 폭신한 매트와 방 안 가득 장난감에 쌓여있던 그 방을 정리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손주 둘, 손녀 둘의 사랑방이었던 그 방을 정리 해야겠단 생각은 아이들이 하나둘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던 작년 여름이었다. 그와 맞물려 한국에서의 전시가 예상치 못하게 잡혀 그림을 그릴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챙겨야 할 장난감들은 박스에 넣어 아이들 집으로 보내주었다. 드로잉 테이블을 들여놓고 이젤과 그림 도구들을 정리했다. 창문 옆으로 쉴 수 있는 작은 소파를 들이고 턴테이블과 LP를 챙겨놓으니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얼마가 될 지 모르지만, 이곳이 나의 피난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 집을 지어 이사 올 때 심었던 매화나무가 이 층 창문을 훌쩍 지나칠 만큼 키가 자랐다. 매년 하얀 매화를 너무 한가득 피워 봄을 알려주었던 나무는 이제 스스로 나뭇잎을 다 내려놓았다. 어느 사이 잎을 떨군 가지마다 붉고 작은 열매가 빼곡히 자리 잡았다. 아마도 꽃이 진 자리마다 한 여름을 지나면서 조금씩 맺은 보람인 듯싶다. 동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아침마다 햇볕이 가득히 들어온다. 햇살 아래 작은 열매는 붉은 보석 같이 반짝인다. 드로잉 테이블을 창문과 마주한 덕에 붉어지는 나무의 변화를 날마다 바라볼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오늘은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루가 다 지나가고 창문마다 불이 켜지고 저마다의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간혹 잊고 사는 티끌 같은 존재 푸른 점 하나로 날 사랑할 일이다. 그러나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맹세하거나 정의하지 않을 일이다. 다만 내게 주어진 길 걸으며 만나게 될 사람들을 위해 내 분량을 덜어낼 일이다. 그리하여 가벼워진 몸으로 당신에게 날아갈 일이다. 푸른 점 하나로 나의 페르소나를 벗어내고 있다. 아니 가벼워지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붓끝에 물감을 찍어 하늘을 그리고, 언덕을 그리고, 들꽃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서정을 그린다. 우리의 시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기억하고 난 후, 기다리고 난 후, 아니면 사랑하고 난 후였을까?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가 기억하는 그날은 수년이 되어 흘렀다. 밤새 기다리다 아침이 와도 때론 무뎌지고 닳아 없어진 어처구니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날아갈 일은 나만의 고요를 찾는 일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이 밤의 고요는 새벽의 고요와 사뭇 다르다. 혼돈과 고요의 차이는 종이의 앞면과 뒷면의 차이 같다. 혼돈 속의 고요. 고요 속에 혼돈. 요란한 강물의 물들을 바다로 다 흘려보낸 후 찾아오는 적막과 흡사하다. 서둘러 도착해야 할 거대한 미시간 호수의 고요가 그립다. 훅 불면 사라질 티끌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할 존재이다. 맹세한다는 부질없음을 내려놓는다. 한없이 가벼워져 푸른점 하나로 날아 오른다. 우리 모두 흙으로 돌아간 후 기억이나 하겠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쏟은 시간과 열정과 땀방울을. 그럼에도 날 사랑할 이유는 오직 하나 독특한 나를 세상에 보낸 당신의 사랑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그리고 밝아올 새벽의 고요를 기다리겠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드로잉 테이블 미시간 호수 그림 도구들

2024-10-2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밀가루 반죽

요즈음은 참 좋은 세상이다. 대부분의 음식이 포장으로 판매되어 잠깐 끓이거나 마이크로웨이브, 에어프라이어의 버튼 하나로 먹거리가 준비된다. 맛도 있고 시간도 절약되어 사람들의 손이 이전보다 많이 가벼워졌다. 음식을 만들고 요리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음식은 역시 정성과 시간을 들인 손맛이 아닐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준 칼국수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매운 고추와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마늘을 다져 넣은 양념장을 얹어 먹는 칼국수의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멸치와 채소를 우려 만든 국물도 맛있거니와 면의 쫄깃한 식감이 입안에 느껴지는 감칠맛은 요즘은 흔히 느낄 수 없는 손맛이었다.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아 밀가루 반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판에 붙지 않게 밀가루를 살짝살짝 뿌려주는 게 내 소임이었다. 어머니는 눈짓으로 여기에 뿌리라 하면 나는 손에 움켜쥐었던 밀가루를 때에 맞춰 뿌리곤 했다. 반죽은 어머니의 손에서 주물러지고 치대지고 간간이 뿌려지는 밀가루 투척과 함께 긴 막대를 이용해 골고루 밀어내다 보면 떡 덩이 같았던 반죽은 신기하게도 얇고 넓적한 판이 되어있었다. 이내 얇게 펼쳐진 반죽을 둘둘 접어 쓰윽쓱 썬 칼국수가 준비되었다. 잘했다고 손뼉 치는 손에서 밀가루가 펄펄 날려도, 얼굴에 분칠을 해도 마냥 기뻤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다니던 교회는 언덕 위에 있었다. 교회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망졸망 집들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 버스 정거장과 시장이 보였다. 시장 앞쪽으로 상가가 있는데 왼쪽 귀퉁이에 중국집이 있었다. 성가 연습을 마친 후 가끔 중국집에서 회식을 했다. 단연 짜장면, 짬뽕이 인기 메뉴였다. 주문이 들어가면 이내 반죽을 탁자 위에 탁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소리가 큰 지 그 소리가 식당 내부에 가득했다. 그 집의 면발은 쫄깃하다고 소문이 나 동네의 맛집이 되었다. 정말 쫄깃하고 식감이 있었다. 좀 시간이 지나도 불지 않고 탱탱했다. 나이가 지극한 주인은 늘 하얀 앞치마를 목에 걸고 요리를 만들면 아내는 손 빠르게 그 음식을 손님에게 서빙했다. 식탁 위에 놓인 짜장면 짬뽕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던 것을 기억한다.   시카고에 정착해 살아간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간다. 그 덕에 여러 나라의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아프리카 자메이카 음식도, 히말라야 아래 작은 동네의 네팔 토속 음식도, 동유럽 폴란드 음식도 프랑스, 이탈리아 음식도 입에 붙을 만큼 입맛이 국제화가 되었다.     그 중 밀가루 음식인 파스타는 입에 잘 맞는 음식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는 매일 파스타를 먹었고 이제는 시카고 어디에서나 쉽게 파스타를 만나게 된다. 칼국수의 맛이 다 같은 식감이 아니듯 파스타 역시 다 같은 맛이 아니다. 그냥 만드는 것 같아도 장인의 숨결과 손의 온도를 버무려 지문 같은 파스타가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예술의 경지와 견 줄만하다.     단지 음식을 만드는 일 외에도 모든 일에는 열정이라는 에너지와 정성이라는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손의 따스함과 코끝의 향기를 더해 음식도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작은 밀가루 반죽이 여러 모양과 색깔의 파스타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일상에서 만들어 내는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는 것도 밀가루를 반죽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손의 열정과 따뜻한 마음의 자세라면 어머니의 칼국수 맛처럼 그 삶도 맛갈나는 일상이 되지 않을까? 파스타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향기로운 시간들로 피어나지 않을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밀가루 반죽 밀가루 반죽 밀가루 투척과 이내 반죽

2024-10-21

[문장으로 읽는 책]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우리는 삶을 얼마나 너절하고 변변찮고 형편없이 영위하고 있는가! 우리 중 대체 누가 이 대가가 하듯 신과 숙명 앞에 나설 수 있을까. 저렇게 탄원과 감사를 외치며, 뼈저린 존재를 내세워 저렇게 위대하게 항거하면서. 아,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하리라. 다른 모습이어야 하리라. 좀 더 하늘 아래 나무 아래 거해야 할 것이며, 좀 더 묵묵히 혼자 아름다움과 위대함의 비밀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음악 애호가였고, 문학에도 음악이 주요 키워드였던 헤르만 헤세의 음악 글 모음집이다. 인용문은 에세이 ‘고음악’의 일부. 외딴 시골집에 사는 그가 비 오는 저녁 도시의 고음악회를 다녀온 얘기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미지와 풍경, 스토리를 떠올리는 헤세는 그 음악적 인상을 풍부한 언어로 눈에 선하게 옮겨놓는다. 이 글은 이렇게 끝난다. “느긋하게 마지막 비탈을 올라 모두가 자고 있는 집에 들어서니, 느릅나무가 창문 너머 말을 걸어온다. 이제 나는 기쁘게 쉬러 간다. 다시 한동안 삶을 살아가며 그 운명에 기꺼이 농락당해도 괜찮으리라.”   헤세에게 음악은 ‘순수한 현재’이자 ‘미적으로 지각 가능하게 된 시간’ ‘순간과 영원의 동일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문장으로 읽는 책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음악적 인상 풍경 스토리

2024-10-0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 가을엔

이 가을엔 / 처음 듣는 언어를 배우려 하오 / 서로 다른 몸짓으로 / 움직이는 나무 그늘 아래 / 열병을 앓으며 붉어지려 하오 / 가까이 바라보는 계절 속에서 / 잃어버린 것들을 찾으려 하오 // 이 가을엔 / 여린 색들을 잃은 후 / 잘리고 떨어진 자리마다 / 검고 딱딱한 살이 돋고 / 다른 얼굴로 말을 걸어오는 / 답답한 우울을 벗으려 하오 // 이 가을엔 / 푸른 잎 흔들며 이별을 물어오는 / 가을 숲으로 떠나려 하오 / 매달려 흔들린 시간보다 더 아픈 / 영원으로 맞닿은 노스텔지어 / 붉어지는 계절이 지나는 하늘 가득 / 긴 꼬리 태우는 별똥별 여운 / 빛나지 않음으로, 잊혀져야 하는 / 빠르게 결론지으려는 조급함에서 / 작은 일도 오랜 시간과 과정을 거쳐 / 되는 일임을 배우려 하오 // 이 가을엔 / 꽃 피우고서도 한참 지난 후에야 / 열매 맺는 과일나무처럼 / 두 번의 생명을 한 계절에 피우고서도 / 붉은 마음 장렬하게 토하는 / 삶의 뒤안에서 너 하나만을 위해 / 하늘 언어로, 붉게 물든 온몸으로 / 긴 여행을 떠나려 하오       가을이 오는 언덕에는 벌써 황톳빛 갈대가 바람에 온몸을 잔뜩 누입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을 향기는 코끝을 스쳐 잠긴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지난 계절의 더위와 끈적이던 피부의 물기를 단번에 증발해 줍니다. 생각하기 싫었든 아니 생각나지 않았든 잃어버린 기억의 순간들을 되찾고 싶습니다. 이른 아침 잠깐 내린 비로 하늘은 까마득히 높아지고 하늘하늘 흔들리는 나무의 잎들은 아침 햇살에 눈부십니다. 맑고 깨끗해진 거리의 잔디와 가을 국화와 코스모스도 한결 푸르게 살아납니다. 이렇게 걷다 보면 말끔히 얼굴을 씻은 호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호수에 비칩니다. 호수를 돌아 나지막한 언덕을 오릅니다. 여린 노란색으로부터 진홍의 열정, 타오르는 듯 붉은 단풍까지 물들기 시작한 언덕에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숲은 아름답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숲의 겸허한 마음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웁니다.     나무는 정직합니다. 속살까지 시원해지는 아침 바람은 나뭇잎의 색깔을 바꿔놓습니다. 봄날 피어날 연두의 새잎을 위해 붉게 익어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내려놓을 준비를 합니다. 사람보다 먼저 알고 사람보다 먼저 행동합니다. 사람보다 먼저 깨어나 가을비를 맞고, 사람보다 먼저 익어갑니다. 앙상해진 나무, 잎을 떨군 자리마다 검고 딱딱한 잎눈을 만들고, 가지의 어딘가엔 꽃눈을 만들어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 있는 나무가 아니라 숨겨진 뿌리로부터 끊임없이 물을 찾아 잔뿌리를 내리고 마른 줄기에 수분을 공급합니다. 어느 봄날 연둣빛의 기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작은 일에도 참지 못하고 지금 당장 결말을 지어야 편안한 사람의 생각보다 깊고 뜨겁습니다.     이 가을엔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 합니다. 모든 일을 빠르게 결정지으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불평 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언덕 나무를 찾아가 배우려 합니다. 별똥별의 긴 꼬리가 사라지는 밤하늘을 봅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다 안다고 말하는 오류를 벗고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행하는 빈들의 기적, 뿌리를 기억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있기에 당신이 있고, 내가 없다면 당신도 없다는 내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숲을 찾아가 무리 지어, 혹은 외로이 자신을 드러내는 들꽃을 만나보겠습니다. 이 가을엔 사람의 언어보다 땅의 언어, 하늘의 언어를 배우고 싶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당신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을 가을 향기 가을 국화 하늘 언어

2024-10-07

LA 풍경에 작가 성찰 담았다…8인 작가 그룹전 ‘비욘드 LA’

  갤러리웨스턴(관장 이정희)이 오는 18일부터 11월 1일까지 ‘비욘드 LA(Beyond LA)’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8인의 작가 그룹전이다. LA라는 도시 안에서 받은 영감을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들은 미국과 해외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장소를 지원하고 활동을 돕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참여 작가는 데이비드 에딩톤, 마이클 프레이타스 우드, 비니 캐만, 페기 시버트, 벤 자스크, 박다애, 채리티 마린, 김원실 작가다.     이정희 웨스턴갤러리 관장은 “LA에서 살아가는 8인 작가들의 다양성과 각자의 삶의 경험, 독특한 도시 풍경에 대한 성찰이 반영된 전시”라며 “현대 예술이 있는 대도시 LA에서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LA를 바라보는 시각에 개성이 꽃피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에딩톤은 LA리버와 그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을 소재로 작품을 작업하고 있다.     마이클 프레이타스 우드는 LA 도심의 극심한 차량 정체를 보면서 그 차들이 발산하는 빛과 범퍼들을 소재로 ‘만다라 LA’라는 제목으로 선보인다.   김원실은 한인 작가로서 느끼는 은혜받은 한인타운의 성공과 밝은 모습 그리고 그 반대 면의어둠 속에서 힘든 이민생활을 겪는 천사의 부재를 느끼는 힘든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엮어냈다. 박다애는 뒷마당 나무들이 빨리 자라는 모습을 보고 가지치기를 하며 그 가지들에 물감을 묻혀 빗자루로 쓸듯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다.     오프닝 리셉션은 18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열린다.     ▶주소:210 N. Western Ave. #201, LA     ▶문의:(323)962-0008   이은영 기자그룹전 비욘드 작가 그룹전 비욘드 la 도시 풍경

2024-10-06

[아름다운 우리말] 아린 남산 풍경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이 기쁨이기도 하고, 아픔이기도 하고, 아련함이기도 합니다. 직접 가보는 곳도 있고, 생각 속에만 있기도 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곳도 있습니다. 가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과 멀리서 바라보는 감정은 각각 다릅니다. 거리가 보여주는 감정의 차이이기도 하고, 마음의 아릿함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제가 있는 학교의 연구실은 교수회관이라고 부릅니다. ‘회관’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오래된 느낌입니다. 어린이회관이나 문화회관, 마을회관 등이 생각납니다. 교수회관은 실제로도 오래된 건물이어서 감상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교수회관에서 학교의 중앙도서관이 바로 연결되는 특이한 구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수들의 연구실을 둘러 베란다처럼 생긴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면 마음속 잡생각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구실 밖의 공간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입니다. 심지어 교수 중에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마도 대부분일 겁니다. 저도 이곳에 나가본 게 오래되지 않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어마어마한 곳입니다. 경희대에서 벚꽃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귀한 곳이기도 합니다. 봄에 혼자 벚꽃 잔치를 즐기면 왠지 마음이 부유해진 느낌입니다. 저를 찾는 제자들에게 이 귀한 광경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녁놀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입니다. 정말 멋진 곳이죠.   한편 여기에서 보이는 풍경 중 저의 마음을 울리는 장소도 있습니다. 바로 남산타워입니다. 남산타워는 서울타워나 엔 타워로 부르기도 하지만 제게는 남산타워라는 이름이 친숙합니다. 제게 남산타워는 때로는 첨탑으로, 때로는 바늘로 다가옵니다. 뾰족하네요~ 아슬아슬한 느낌입니다. 사실 저는 남산타워에 올라가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남산타워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25년을 살았습니다. 어릴 때 제 기억은 모두 남산과 남산타워입니다. 그 근처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녀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가에는 ‘남산’이 들어가 있습니다. 남산이 저의 고향인 셈입니다.   남산타워는 남산에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고향을 상징합니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남산타워에 올라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남산에는 자주 올라갔습니다. 문득 남산에 올라가 웅변 연습을 하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목소리가 큰 것은 그때의 산 공부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산에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께 혼난 후에 남산으로 간 적도 있고, 왠지 기분이 울적해도 남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은 저에게는 피난처이기도 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죠. 다시 그때를 돌아보면 남산은 즐거운 기억과 아린 기억이 엉켜있습니다. 장사가 잘 안되어 힘들어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나 모든 게 싫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제 모습이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저는 연구실에서 공부하다가 답답하면 남산타워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가만히 그쪽을 바라봅니다. 노을이 질 때면 감성이 더 몰려듭니다. 첨탑이 더 뾰족하게 보이는 날이면 왠지 예전의 저로 돌아갑니다. 그때를 잘 이겨내고 자라난 제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고생 많았다, 잘 지나왔다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조만간 남산타워를 올라가 봐야겠습니다. 타워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새로운 기억이 될 듯도 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남산 풍경 남산타워 아래 남산 풍경 모두 남산

2024-10-0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수에 주름이 생기는 이유

한 줄 나이를 먹으며 / 나무도 키가 크고 / 너도 깊어지곤 했지 /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 흩어진 물방울을 모으려 하면 / 쏟아지는 비가 되어 돌아오곤 했지 / 흠뻑 젖은 호수 위로 / 겹겹이 작은 파문을 만들고 / 네 위로 흐르던 하늘 / 보이지 않는 너의 심연 속으로 / 자꾸자꾸 내리다 보면 / 그대라는 마음 떨구지 못해 / 마음 한구석 화석으로 남아 /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재촉하곤 했지 / 책장을 넘기며 궁금한 널 찾아내려고 / 거울 속 길들여지지 않는 너를 향해 / 한 줄 주름을 그리곤 살아야 했지 / 만날 수 없는 네가 더 소중하고 그리워 / 하늘 먼 길 네게로 가곤 했지 / 호수엔 주름 하나 깊어지고       비가 내리는 호수를 향해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호수는 비가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하늘은 둥근 호수를 향해 비를 뿌리고 있구나. 둘 중 누구 하나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구나.“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호수엔 파장이 셀 수도 없이 번져 간다. 파장은 모든 기억과 시간을 가장자리로 밀어내려 한다. 불가항력의 원칙처럼 끊임없이 밀려지다 보면 호수의 턱에 걸치게 된다. 어느 사이 파장은 다시 호수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빗방울이 떨어진 곳으로부터 동그랗게 번지고 있다.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가장자리에서 다시 중심으로 반복하고 있다. 와중에도 물결 사이 사이로 하늘이 비친다. 그렇게 하늘은 호수로 내려와 앉고, 호수는 하늘이 된다. 서로에게 자신을 비추고 투영해져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내 이마엔 주름이 세줄 그어져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어느 날 거울을 보다 발견하게 되었다. 눈가에 잔주름도, 입가에 팔자 주름도, 목에 늘어진 주름도 보게 되었다. 거울에 비친 주름은 그날 생긴 게 아닌 것을 알기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더듬어야 했다. 햇빛에 눈을 찡그렸던지, 이마를 누르고 잠을 잤던 습관 때문인지 나도 모른다. 단지 오랜 시간 지나면서 훈장처럼, 상처처럼 만들어진 흔적, 나뭇잎에 단풍이 들듯 세월이 천천히 만들어간 결과임에 틀림이 없다.     호수의 주름과 거울에 비친 이마의 깊은 주름을 보았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피카소의 고독했던 ‘청색시대’를 떠올렸다. 그의 창작기간 중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 청색의 하늘과 푸른 호수의 시간에 나는 푸른 얼굴을 가지고 기타를 치는 한 노인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그 작품명은 ‘늙은 기타 연주자’이다. 마티스에게 빨강이 중요한 색이듯 구스타프 클림트에게는 황금색이, 초창기 피카소는 청색이 중심이었다. 피카소의 청색은 특별하고도 개별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청색은 밤의 색이고 바다의 색이며 하늘의 색이었다. 나는 이것에 호수의 색을 더하고 싶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생명과 열정을 표현하는 따뜻한 색이라면, 파란색은 깊고도 차가우며 허무와 빈곤, 그리고 절망에 직면한 고독의 색이었다. 블루는 캔버스에 칠해진 색을 넘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고독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고독 없이는 어떤 예술도 창조될 수 없다. 나는 나 스스로 고독을 지켜 왔다.”라고 그는 독백했다. 노인의 깊은 주름이 오늘 호수에 주름이 생기는 이유가 된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호수와 하늘이 하나로 투영되듯이 그는 깊고도 우울한 청색의 시간을 이겨내며 호수에 주름이 생겨난 이유를 알아차린 세기의 화가가 아니었을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수 주름 호수 위로 팔자 주름 오늘 호수

2024-09-30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을 들꽃

종일 구부려 일하다     네가 생각나   잔뜩 엎드린 너를 보려고   나도 잔뜩 엎드려 본다      너의 걸음과 나의 걸음의 행간   가까운 듯하였는데 여전히 멀어   네 소리가 듣고 싶어   네 옆에 산다   소음과 발길이 끊어진 들녘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들리고   나는 너를 보고 있다   하늘이 호수를 내려다보듯   어느새 웃고 있는 너의 모습   온 세상 사람이 웃어도   너의 웃음만 내게 들린다       고개 든 날보다 고개 숙인 날이 좋아   온종일 너를 향해 고개 숙인다   엎드린 네가 아프면 어쩌나   네 모습 자세히 보려고   기억 사라지지 않게 자꾸만 본다       습관처럼 고개 드는 것보다 고개 숙이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들이 보이고 그들에게 애착이 간다. 때론 활짝 핀 꽃보다 꽃을 피우고 난 후 고개 숙인 들꽃이 더 아름답다. 사람의 인적이 끊긴 나지막한 들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들꽃. 화려하지 않고 탐스럽지도 않지만 다소곳이 피고 난 후 낮게 엎드린 모습에 나의 시선도 자꾸 너처럼 낮아진다. 언제 자랐는지 키를 키운 갈대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들이 부끄럽게 숨겨져 있다. 갈대숲을 헤치며 다가가면 부끄러워 고개 돌린다. 그렇듯 들꽃 한 송이를 발견하면 내 안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빛나는 별빛이 몰려와 어느새 나는 푸른 밤하늘이 된다. 너는 꼭 다른 행성의 별들이 떨어져 피운 다섯 모서리의 작은 별 조각 같다. 아직 따뜻하고 부드러운 별빛 같다. 내 손에 너를 감싸면 조그만 네 얼굴엔 홍조가 띤다.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너는 가을 들꽃이다.     더위를 물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마른 풀밭에 생기가 돈다. 어디서 날아와 풀이 되었나? 무엇이 그리워 들꽃이 되었나? 꽃이 피고 또 질 때면 숲의 모든 눈들은 풀꽃을 본다. 숲의 모든 귀들은 작은 꽃들의 나직한 속삭임을 듣는다. 누구의 손이 스쳐 간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숲속 모두에게 고마움의 편지를 쓴다. 지켜주고 안아주는 숲의 사랑을 느낀다. “조금만 더 견디어 내. 이제 하늘의 선물이 갈증 난 네 목을 적셔줄 테니까” 숲의 가슴은 넓고 포근하여 가을 길을 예비하는 단비를 맞이한다. 아주 작은 들꽃 하나에도 하늘의 선물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 가을 들녘에 생기가 돈다. 서로에게 기대어 들꽃 한 송이 피어난다.     바쁜 하루가 지나간다. 종일 구부려 일하다 네가 보고 싶어 너에게 간다. 어느 들, 어느 모퉁이에 구부려 핀 너는 밀려오는 파도의 잔상을 기억해 내고, 그 안에 아직 남겨져 있는 더운 숨을 느낀다. 기억의 순간 참지 못하고 오열하는 눈물을 본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침묵의 바다로부터, 무념의 숲으로부터. 바람에 스쳐 흔들리는 갈대 사진을 동봉해서 함께 피어난다. 가을이여 가을 들꽃이여 간절하면 보인다 지나쳤는데 간절하면 들린다 무심했는데 간절한 시간, 간절한 마음에 네 목소리가 들리고, 네가 보인다 나의 그리운 이여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을 들꽃 가을 들꽃 가을 들녘 들꽃 하나

2024-09-2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는 밤   숨소리 같은, 이어지는 초침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며 바다로 갔어       사막의 긴 그림자를 안았지   온기가 남아있는 모래 톱으로   두발을 재촉하는 손짓을 보았어   떼어지지 않는 발이 천근이었어   긴 그림자의 아침을 깨우는 노래   마주 보는 하나로 다 가진 빈들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렸어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 펼치고 / 삼층천을 품은 비밀의 정원에서 / 소리없는 울음 후 찿아온 한줌의 햇살 / 난생 처음 가진 소박한 꿈 / 빈들의 기적은 이렇게 시작되었지 / 비우고서야, 내려 놓은 후에야 / 들을 수 있는 바람의 소리, / 별들이 내려앉은 꿈의 들꽃 / 바람따라 흔들리는 들풀의 춤 사위 / 주고만 싶은 들녘의 가슴은 타오르는데 / 지친 허리를 펴서라도 너를 안아야했어 / 언제, 어디에서, 어디쯤 우린 기억될까 / 한잎 단풍속으로 가을 발자국 들려 오는데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고   사라져 가는 그의 숨소리 같은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는   바다로 갔어       계피향 가득한 Oat creamer를 잔뜩 넣은 커피 한모금에 온몸이 따뜻해진다. 하루가 밝아오는 새벽은 늘 다시 세상을 맞이하는 조용한 기대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이층 계단을 내려오며 먼저 눈이 가는 곳은 하늘이다. 구름이 덮혀 있나? 아니면 한점 떠 있지 않나? 밝아오는 하늘색을 살핀다. 아직은 붉은 먼동이 번진다. 커피 한잔 들고 덱크로 나와 뒤란을 걷는다. 눈이 마주친 꽃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씨를 뿌려 모종부터 키운 백일홍이며, 스스로 도생한 과꽃도 살랑 흔들며 눈맞춤을 한다.   하루가 지고 하루가 열리는 것. 아직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빈들에 문이 열리고, 지나간 시간들의 아득한 기억으로 문이 닫힌다. 일상 맞이 하는 하루라는 시간. 무심한 초침의 기계음처럼 반복해 오고,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 꿈속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하루의 시간이 열린다. 덱크의 문을 열고 나오면 하루가 열리듯, 부지런한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 숲이 되어진다.     나의 어깨에도 날개가 자라나 깊은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도 숲이 되고 싶다. 바람의 소리며, 바닥까지 눕는 들풀의 순종을 배우고 싶다.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을 이어 빈들은 거대한 켄버스가 된다. 햇살의 따스함으로 생명이 자라 각색의 들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울창한 숲을 이룬다.     우리의 날들도 그러했다.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지 않으면 자랄 수 없는 한줌의 씨앗이었다. 제 일어나라는 바람의 소리와 햇살의 따뜻한 위로가 없었다면 빈들로 문을 열고 빈들로 문을 닫아야 했다. 보상이 없는 선물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은 시간, 생각하지 못한 장소에서 매일 매일 감춰진 행복의 두루마리를 내려주었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이끄는 그곳으로 손을 잡기만 하면 비밀의 정원과 손짓하는 호수를 만나게 된다. 행복하여야 하리. 그리하여 들꽃이 되고, 붉은 노을 언덕이 되고, 출렁이는 바다가 되어야 하리.       문이 닫히고 한밤이 될 때 /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없을 때 / 아무도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 선물로 받은 그 시간을 빠짐없이 기억해내 / 목이 좁은 호리병에 넣어 바다로 갈꺼야 / 거기서, 흔들리는 파도에 떠내려 / 작은 오두막, 당신의 손에 닿을꺼야 / 나는 다시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 되어, / 작고 하얀 들꽃이 되어 / 당신의 손에 드리워진 선물이 될꺼야 / 출렁이는 파도에 내려 앉은 붉은 노을이 될꺼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리병 바다 퀼트 조각 커피 한모금 노을 언덕

2024-09-1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보다 힘이 있고   움직이는 것이   정지된 것보다 강하다       부드러운 싹이 동토를 뚫고   가느다란 뿌리가   바위를 무너트린다       강한 바람은   옷을 여미게 하지만   부드러운 햇살은   겉옷을 벗게 한다       움켜쥔 꽃봉오리를 피운 것은   외압의 힘이 아니라   내면의 자율이다       부드러운 깃털을 가진 새는   날갯짓의 수고보다   바람에 기대어 날기에   두려움이란 힘을 빼고   나를 맡기면   더 높이, 더 멀리 날 수 있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경계를 긋거나   담을 세우지 말라   이것들은 돌아서 당신을 가두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것이다   마침내 당신의   언어를 빼앗기게 된다      어떤 강한 말보다   조용한 문필의 힘이 강하다   그리고 명사보다 동사가 강하다   그리하여 명명되지 않은 시간에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는   바람에 기대어 긴 날개를 펴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갔다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새       미시간 호수를 산책하다 여러 무리의 새들을 보았다. 하얀 깃털이 불어오는 바람에 한껏 부풀어 있다. 바다 갈매기도 보이고 작은 물새도 간혹 눈에 띄었다. 모래 위 세 갈래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덩치가 꽤 큰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다. 호수 가까이 날다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새를 보면서 두 발로 디딘 땅을 떠나 결코 날 수 없는 내가 초라해 보였다. 수면 위 높은 하늘로 날아간 새는 한동안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편안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 물음은 나에게 던진 물음이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걷고 있냐고.    독서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방과 후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깜깜한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 읽은 책 중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빠져 몇 번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 속에 나왔던 신의 이름, ‘아프락사스’를 기억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새는 힘겹게 싸운다. 마침내 나를 감싸고 있는 알, 세상을 벗어나 신에게로 날아가는 한 마리 새의 날갯짓을 상상해 보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수고와 노력도 이와 같지 않은가.     바보 갈매기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바보 갈매기의 이름은 알바트로스이다. 조류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새는 타조이지만 타조는 날 수 없는 새이기에 세상에서 날 수 있는 짐승 중에 가장 큰 것은 단연 알바트로스이다.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무려 3미터가 넘는다. 길고 폭이 좁은 날개를 편 채 바다 표면에 생기는 풍속 차를 이용해 날아오르는 알바트로스는 날갯짓을 하지 않고서도 어느 새보다 더 멀리 날고 더 높이 오른다. 커다란 날개로 미끄러질 듯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단 한 개의 알을 낳아 암수 교대로 알을 품는다. 새끼는 성장이 느리지만 수명은 30년 이상이나 산다. 한 마리의 짝과 평생 어울려 다니는 독특한 생태가 특이하다. 아마도 함께 기대어 하늘을 나는 데에는 한 마리의 짝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알바트로스가 지상에 내려앉으면 큰 날개가 오히려 장애가 되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일단 하늘에 오르면 폭풍우 속에서도 가공할 만한 용기와 담력으로 고도의 추진력과 힘을 얻어 속도와 높낮이를 자율 하는 능력도 준비되어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볼 때 시련과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삶은 그 속에서 견디며 단련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에게 찾아온 어떤 시련과 폭풍우 속에서도 다듬어지고 단단해져서 더 높이 더 멀리 역경을 헤치며 날아오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바보새 알바트로스처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알바트로스 갈매기 바보새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바다 갈매기

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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