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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어슴새벽

첫눈 내리고 찬 바람이 불어 / 나무에 기대어 사는것도 숨이 차올 때 / 촛불 하나 불 밝히면 그게 온 세상 다인 / 당신이라는 호주머니 속에 살고 싶었네 /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픔으로 눈길을 걷네 / 낯선 어둠이 길을 막고 서 있네 / 내안에 흔들리는건 내가 아니었네 // 얼어붙은 단풍잎 하나 집어들다가 /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꿈에서 깨었네 / 맞은편 하늘도 내려앉아 새벽이 아파 오네 / 손에서 바스러지는 낙엽의 마지막 숨 / 하늘이 발밑에 무너져 내린 것이네 // 막다른 길위에도 바람이 스쳐 오네 //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맞이한 별빛도 / 하늘을 나르는 새의 깃털같은 자유도 / 뒹그는 붉은 나뭇잎 하나만도 못해 / 새벽길을 더듬으며 너의 흔적을 찿네 // 빛처럼 내리는 고요의 숲길을 걸으며 // 마지막 길을 함께 못한 회한이 나무처럼 서있네 / 창가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아침은 오는데 / 먼발치로 바라 보는, 가지 못한 길이 서럽네 // 별빛 영롱해지고 파도 잔잔한 날 / 지나온 시간과 함께 다가올 시간도 꼭꼭 싸매 / 당신 바라보는 별빛아래 놓아두기로 했네 / 안녕, 그 고통의 아름다움을 껴안네 // 내려오는 발길에 선물처럼 먼동이 트는데  
 
[신호철]

[신호철]

 
설명하는 지인의 눈은 밝고 빛이 났다. 그 표정이 얼마나 진지했던지 그의 말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들어 보았음직한 단어이었음에도 한 번도 내 입을 통해 말해 본 적 없는 정겨운 단어였다. “맞아, 걷기 좋은 날이면 맞은편 언덕으로 달려 갔던 그 시간” 바로 그 시간이 *어슴새벽이었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어스레하게 밝아오는 길은 하루를 여는 가슴뛰는 시간이었다. 기대 하지 못한 풍경을 만나고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마지막 한 생명의 호흡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가지에 붙어있는 마지막 잎새는 바람에 떨고 있었지만 기꺼이 가지로부터 떨어져 봄에 피어날 새싹을 위해 썩어질 준비를 마친 후 같이 비장해 보였다.  
 
빈들이 되어버린 언덕에 첫눈이 내렸다. 순식간에 세상은 하얗게 변해 버렸다. 보이는 풍경이 하나로 되어 세상의 불협화음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나도 소리없이 입을 막고 눈길을 걸었다. 발밑에 뽀득이는 소리가 좋아 일부러 눈길을 찿아 걸었다. 고요가 맞은 편 숲길에서 걸어 나왔다. 이 고요는 벌거벗은 나무를 껴안고, 까만 씨앗을 품은 들꽃을 쓰다듬고 있었다.  
 
하루의 시간 중 어슴새벽은 늘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깨어나는 시간이고, 품어주는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시간이고 용서하는 시간이었다. 이 순간을 거슬릴 수 없다면 나의 모든 것을 내어 주어 나도 하얀 풍경으로 남아 이시간에 머무르고 싶었다.  
 
 
창가에  
목련노을이 지면  
하루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숨쉬듯 반짝이는  
별이 뜨고  
내 마음 가득 담은  
널 닮은 달도 오르고 말지  
빈들엔 고요의 축제  
하얀 풍경의 시간이  
거기 멈추어 섰네 (시인, 화가)
 
 
*어스레하게 밝아오는 새벽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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