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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빌려온 시간

[신호철]

[신호철]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붙네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잘못된 시간이 사라지고 있네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는 일이란  
내 마음의 잡초를 걷어낸 후에라도  
서로의 발자국을 확인해야만 했네  
 
 
꽃향을 따라 나비가 길을 내듯  
불 밝힌 오두막을 향해 길을 내어야했네  
머물 수 없는 어둠의 울타리를 넘어야 했네  
 
 
“괜찮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네  
비장한 가을 하늘은 높아만 가는데  
한 걸음 발을 뗄때마다 이명은 사라지지 않네  
 
 
내게는 빌려온 시간이 있네  
그 시간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네  
지나 보니 내 것이 아니었네  
 
 
내가 어둠의 청색이 가라앉는 동안 길을 내었네  
먼동이 트고, 하루가 밝아오는 언덕에 서네  
바람은 지나온 시간을 밀어내고 있네  
 
 
 
창밖을 봅니다. 희끗희끗 눈발이 날립니다. 먼 나라, 꿈도 꿀 수 없는 하늘에서 빈들로 여린 동작으로 눈이 내립니다. 시야에 꽉 찬 풍경은 하얀 눈의 여백으로 일상의 풍경을 한 폭의 동양화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첫눈입니다. 밖으로 나가 눈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목적도 없이 발끝이 닿는 곳으로 갑니다. 발자국이 찍힌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았습니다. 이 발로 그 긴 시간을 걸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제자리인데 나는 눈길을 걸으며 다시 태어납니다. 내 볼을 만지는 눈은 어느새 녹아 눈물이 됩니다.  
 
내 것이라 여겼던 시간이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담을 쌓고 작은 창문을 내고 그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던 바깥세상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함께라는 말을 잊어 버리고 살아왔던 시간이 거기 있었습니다. 함께라는 말. 그 말은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함께였던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차마 그 손을 놓아줄 수 없을 겁니다. 눈길을 걸으며 지나온 나의 시간으로 눈을 돌립니다. 나의 시간이 아닌 시간을 살아온 날들이 보입니다. 그 시간이 낯설어집니다. 꼭 빌려온 시간같이 느껴집니다.  
 
그리운 사람과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함께 뜨거운 커피를 나누고 싶습니다.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짙은 회색의 하늘을 보고, 서로의 걸어온 길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이 번쩍 뜨이는 반가운 사진을 찍고, 아쉬워 돌아오는 밤길을 함께할 수 있는 그런날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 좋아요” 활짝 웃는 그리운 얼굴이 차창을 따라옵니다. 다시 아침은 오고 또 날이 저물어 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신기한 별 하나 떠 있습니다. 잠든 나를 비추는 그 별은 아침이 되면 하얗게 부서져 무너집니다.  
 
이별이란 단어와 이별하는 날을 꿈꾸어봅니다. 어느 날 함께였던 모든 것들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 위로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새하얀 눈이 내리고,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의 밤이 지나고 나면 동쪽 하늘 언저리에 당신의 아픔을 덮어줄 푸른 새벽이 올 것임을 압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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