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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눈꽃 향기

시간을 촘촘히 채우며 / 나비가 꽃에 앉듯 사뿐이 내렸다 / 마른 갈대 숲에도, 앞집 지붕 위에도 / 우리집 벚나무 붉은 열매 위에도 / 잠들은 당신의 창가에도 소리없이 내렸다 / 어디에나 누구에든 / 소음과 함성과 절제된 어느 상황에도 / 공평히 내렸고 같은 무게로 쌓였다 // 하늘 가득 흰 꽃이 내렸다 / 사랑이 떠나고 미움이 가득한 세상 / 아무것도 모르는듯 흐트러짐 없이 내렸다 / 우리 모두는 제 길로 떠나 갔지만 / 같은듯 다른 생각으로 멀어졌지만 / 너에게도 나에게도 눈이 내렸다 / 거리에도 나무에도 소복이 쌓였다 / 들에도 언덕에도, 저 편백 나무 숲에도 / 하얀 하늘이 내려 앉았다 / 솜털같은 포근한 세상이 내렸다 // 눈을 뜨고 나갈 채비를 한다 / 먼길 떠나는 새들의 울음도 멈친 새벽 / 어둠은 채 가시지 않았는데 / 검은 때를 벗고 하얀세상으로 걸어야겠다 / 너의 향기 가득한 눈꽃 세상으로  
[신호철]

[신호철]

  
창가에 앉아 바깥 세상을 바라 본다. 온 땅을 덮은 하얀 눈은 바라보는 나의 마음까지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하얀색은 무색이 아니다. 어느 곳에 칠해져도 하얀색은 새로운 여백을 창출해낸다. 답답한 풍경을 시원한 한폭의 수묵화로 바꾸어 놓는다. 색이 아니면서도 가장 강렬한 색이기도 하다. 나무를 온통 눈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지붕의 색을 순식간에 하얗게 바꾸어놓아 온 동네를 눈세상으로 만들어 놓는다.  
 
잠 못 이루는 당신의 창가에도 소복히 쌓인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당신의 시야에서 색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온통 백색의 세상이다. 이렇듯 단번에 세상을 바꿔 놓는 것은 아마도 눈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유기적인 힘도, 어떤 힘센 사람의 노력도, 첨단 장비의 효과도 아닌 그저 부드럽고 소리 없이 천천히 세상을 바꾸어 놓는 하얀 눈. 참으로 놀랍다. 패인 웅덩이를 덮어주기도하고, 꺾인 가지를 감싸기도 한다.  
하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의 미움도, 상처도 하얗게 차유되는 듯하다. 높낮이도 없고 밝고 어두움도 없는듯, 눈은 우리에게서 공평과 절제와 겸손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다. 저기 서 있는 편백나무도 새롭게 흰꽃을 피웠다. 가지마다 소담히 피워낸 눈꽃은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도 꽃을 피운다. 잠깐 피었다. 사라질 꽃이지만.그 꽃이 우리에게 주는 편안함과 고요함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서 찌든 불신과 허망한 묵은 때를 하얀 눈으로. 씻어야겠다. 하얀 눈꽃향기로 가득 채워야겠다.  
  
어떤 말은 굴러 가는 말이 있고  
어떤 말은 마음에 와 박히는 말이 있더라  
어떤 말은 생각 위로 떠 다니는 말이 있고  
어떤 말은 생각 속으로 잠겨오는 말이 있더라  
어떤 말은 숨겨 지는 말이 있고  
어떤 말은 꿈에서라도 들려지는 말이 있더라  
셀 수 없는 말을 내뱉고 돌아오는 길  
가슴에 남겨진 말 하나 거둘 수 없더라  
창가에서 마주한 눈꽃세상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 주더라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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