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신호철]

[신호철]

겨울 찬 바람이 불기 전에 Rosehill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비석 주변에 쌓인 낙엽도 쓸어주고 얼마 전에 묘 옆에 심은 작은 도장 나무 묘목에 물도 줄 겸 어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무언의 대화였지만 역시 어머니는 내 속에 살아계셨다. 나를 안으실 땐 늘 내 손을 잡으시고 다른 손으로 등을 어루만져주셨다. 그 손이 무척 그립다. 어머니를 닮은 작고 동그란 돌멩이를 묘목 주변에 깔아주었다. 가져간 가위로 묘목을 동그랗게 멋도 내주었다.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시는 것 같다. 떠나오면서 노을이 물든 서쪽 하늘을 보며 운전했다. 차가 신호등에 멈출 때마다 노을을 찍었다. 삶은 노을같이 아름답고도 처절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검푸른 하늘에 영롱한 별들을 생각했다. 귀를 자르고도, 붕대를 얼굴에 감고도 웃을 수 있었던 화가의 생과 어린 네 자녀를 앞에 두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올곧은 어머니의 생이 오버랩되었다.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당신의 이름을 오는 내내 불러보았다.  
 
명치끝이 아파와서  
 
1  
너에게 가는 길은  
더딘 걸음이어도 좋았네  
당신의 손에서 빚어낸 선물처럼  
감추어진 무언가 찾아낸 아이처럼  
마음과 몸으로 느끼는 향기  
가을이, 낙엽이, 풍경이  
선물인가 했었네  
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니  
그건 바로 당신이었네  
 
붉은 가을 앞에 서서  
온몸이 붉어져도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시선을 견디어 내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었네  
오늘은 꿈꾸고 싶은 것이 되어  
돌아오는 노을이 되겠네  
 
2  
나는 속이 비워 넘어진 나무같아요 명치끝이 아파와서 손으로 문지르다 보니 손바닥에 묻어나는 얼굴 달도 많이 야위었어요 제 몸을 깎아 붙인 눈썹 같아요 잃어버린 것을 찾아 나선 저녁 엉켜진 덤불 아래서 파도가 머물고 간 모래톱에서 실핏줄같이 엇갈린 푸른 기억을 보았어요 서 있는 시간 내내 해는 기울고 지문처럼 찍힌 발자국이 서러워요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한 저녁 가던 길 돌아와 자세히 보면 아! 알고 계셨네요 당신의 시간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걸 그 길을 수도 없이 지나면서 지는 꽃잎에 눈물만 훔치던 당신 하루가 저무는 저녁 내내 붉은 노을로 돌아오고 있어요 오래전 당신이 걸었던 인생길같이 구불구불 그려놓은 당신의 무늬는 당신을 찾아가는 하늘길이 되었어요  
 
3  
고요는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도 오지  
흙탕물의 침잠 시간에도 오고  
낙엽 쌓인 보도블록 위에도 내려앉지  
꼭 고요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어느 순간 지금이라고 명명되어진 그때  
고요는 불현듯 오지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슬로비디오처럼  
조용히 내려오지 소리도 없이  
그것이 슬픔이듯 기쁨이듯  
조용히 온몸을 채우며 오지  
묵직하게 뻐근하게 그렇게 오지  
 
4
남프랑스 아를에는 고흐의 숨결이 남아 있네 미시간 호숫가 *Rosehill에 당신의 숨결이 남아 있듯이 아를의 밀밭을 걸으면 흙바닥에 묻어나는 황색 물감 라 마르탱 광장 2번지 고흐의 노란 집엔 나무 침대, 베개 둘, 의자 둘, 탁자 하나 액자 6개가 걸려 있네 침대맡에 창문도 하나 있네 그 창문을 통해 아를의 기차역이 보이네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를 보네 그 창문에 서면 그의 중얼거림이 들리네 싸이프러스 나무위로 *별이 빛나는 밤이 오네 침묵이 대답이 되는 시간들이 별빛처럼 내리고 귀를 잘라버린 아픔과 참담히 거기 서있네 붕대로 싸맨 얼굴로 웃고 있는 막무가내가 뭉클하네 겨울 찬바람이 불기 전 어머니 묘소를 찾았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등을 어루만지네 서쪽하늘 노을이 붉게 번지네 삶은 노을같이 아름답고도 처절했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처럼 별이 뜨고 별이 지는 일처럼 하루가 오고 하루가 지고 있네 Rosehill에 번지는 붉은 노을이여 멀리서 외로움과 맞설 아를의 푸른 밤이여 무슨 수로도 잊을 수 없는 당신을 부르네 낯설은 땅에 누운 고마운 당신과 아를의 밀밭 길을 걸어 사라지는 별빛 같은 당신 내 속에서 잠들고 눈을 뜨는 긴 숨 같은 이름들이네  *어머니가 묻힌 묘지 *정신병동에서 그린 고흐의 작품 (시인, 화가) 
 

신호철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