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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 꽃눈

하얗게 덮인 눈 속에서도 움을 트려고 / 몸을 뒤척이는 나목이 되자 /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 / 죽은 자 같지만 살아있는 자 /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 같이 보이지만 / 모든 꿈을 다 가진 한 그루 나목처럼 살아가자 / 버리면 얻게 되고, 낮아지면 높아지는 빈들 / 겨울나무가 속으로 속으로 뿌리내리며 / 찬바람에 울었던 것처럼 / 속으로 속으로 우리도 울자   눈 덮인 창가에 앉아 편지를 쓴다 / 썼다 지워버린 편지를 다시 쓴다 /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가슴으로 쓰고 있다 / 눈이 녹고 봄이 오면 / 그때도 편지를 쓸 수 있을까 / 연두의 잎눈이 보석처럼 어리울 때 / 목련이 긴 목을 내리고 / 슬피 나를 바라볼 때도 나 그대 앞에 / 엎드려 목 놓아 울 수 있을까 / 호흡으로 겨울 숲은 잠드는데      새해를 맞은 지 두 주가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면 내게 허락된 삶의 마지막이 코앞에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멍해졌다. 창밖엔 가는 눈이 벌써 몇 시간째 내리고 있다. 나무의 잔가지를 채우고 차가운 땅을 부드러운 손길로 덮어 주고 있다. 저기 먼 하늘도 건너편 집 지붕도 멀리 보이는 숲도 언덕으로 오르는 좁은 길도 하나같이 하얀 풍경 속에 잠겨 있다. 사람의 마음속보다 더 깨끗하고 환한 눈이 내리고 있다. 무엇을 덮으려 하는 것일까? 상처 나고 주름진 깊은 골을 천천히 어머니의 손길처럼 쓸어내리고 있다.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 속에는 작고 큰 상처들로 인해 깊은 흔적들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상처는 때로 나를 혼돈과 방황 속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때로는 그 고난을 극복하고 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스티그마라는 단어는 성경 갈라디아 6:17에 단 1번 나오는 단어이다 ”흔적“으로 번역되어 나오지만 ”낙인“이란 말로도 옮겨져 있다. 흔적이나 낙인이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바울이 그 스티그마란 말을 통해 자신이 예수의 종이요. 예수가 그의 주님임을 생생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닥친 견딜 수 없는 고난 그 자체가 바로 스티그마라는 단어이고 그리스도의 흔적이 고난이라는 삶의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도 깊은 골로 새겨져 있다는 말이다. 바로 그 고난은 오히려 축복이 되어 견디어내고 마침내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있게 됨을 말하고 있다. 여전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세상은 온갖 아픔과 고통의 깊은 골을 하얀 눈에 맡기고 있다. 내 안에 새겨진 스티그마, 그리스도의 흔적 같이.     지쳐 잠드는 것이고   흔들려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다   짜맞추는 게 아니라   가슴을 치는 일을   받아 적는 일이다   깨달음을 위해 애쓰기보다   길을 걷다 눈에 띈 들꽃을   노래하고 그리는 것이다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쓰이는 것이다   지나온 걸음 속에서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를   그저 부르는 것이다   사랑과 그리움, 절망을   아파하고 안아주는 일이고   널 보내지 못한 나를   꾸짖는 일이다   세상을 향한 날 선 독백마저   오늘 부딪치며 살아가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요   당신께 드리는 용서인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성경 갈라디아 시인 화가 보호 아래

2025-01-1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 올려다보고, 가끔 내려 보기도 하면서

1 한없이 가라앉았던 날이 있었네 / 여름이 막 시작되었고 초록의 세상이었지 / 귀 언저리 초록의 작은 기포 떠다니고 / 침잠해 가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네 / 맑은 유리잔에 물 한 잔 건네주었네 / 물 한 모금의 삼킴이 목 너머 흐를 때 / 너는 내게로 와 출렁이는 호수가 되었지     2   꽃이 진 곳에 빨간 열매 맺히고 있었네 / 바람에 꽃잎처럼 떨어지던 가을이 오고 있었고 / 손잡으려다 놓쳐버린 날들도 가고 / 새장을 빠져나온 가슴이 아픈 새들은 / 긴 날개 펼치며 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네 / 내려다보이는 호수 위, 푸른 실핏줄 같은 은하 / 너는 내게로 와 흐르는 푸른 별이 되었지     3   창밖엔 눈 내리고, 찬 바람 불고 / 맑고 향기로운 언덕은 흰 눈을 쓰다듬고 / 손이 얼고 발이 붙어도 파도치는 미시간 호수가 좋았네 / 홀로여도 외롭지 않은 빈 해변 동무 되어 놀다가 / 너를 담고 돌아오는 길, 올려다본 하늘 가장자리 / 한 편의 시가 눈처럼 날리며 가슴을 파고들었지 / 너는 내게로 와 선물처럼 흰 눈으로 뿌려졌지     4   봄은 고양이 걸음처럼 살며시 오고 / 뿌리로 자란 만큼 손톱만큼씩 움튼 새싹 / 무채색 세상 속에서 연둣빛으로 변해가는 언덕 너머 / 긴 얼굴 목련이 서럽고, 널 향해 살기로 작정한 / 꽃이 피던 그날, 꽃잎 떨어지던 아픈 날도 / 널 가슴에 품고 걸었던 / 나의 숨 쉬는 동안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었지 하늘 향해 뻗은 소나무야, 움츠린 솔잎아 / 그 푸른 정수리, 빨간 열매, 찬 바람 겨울 오면 / 흰 눈 위 각혈처럼 쏟아놓은 후회 같아 / 거울 앞에 서면 나이 먹는 것들의 이유가 서러워 / 그중 깊은 주름 몇 개, 깊은 발자국 따라 / 썰물처럼 눈물 지우며 네게로 간다     또 한 살이라는 명패와 함께 푸른 뱀의 해를 맞은 지도 여러 날이 지나간다. 살처럼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었지만 바라볼 수는 있었다. 이제는 쉼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좇아 뛰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땀 흘리는 내게 물 한 잔 건네주던 손길이 있었다. 쉬어 가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자유라는 명제를 슬며시 내 손에 쥐여주고 뒤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을 보고 알았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시간을 거슬리는 삶은 바른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시선을 시간에만 집착해 있다면 시간은 우리와 함께 걷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시간을 놓아준다? 그리고 내 삶에 자유 한다? 시간에 얽매이면 마음도 초조해져서 되는 일도 그르칠 때가 많이 있다. 시간을 잃어버릴 때가 나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지난 며칠 써 놓았던 시들을 정리했다. 이곳저곳에서 시를 찾아 모으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저물어왔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귀담아들어 본 적이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나를 밀어 넣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무료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놓아주어 자유케 하라 그리하면 하루는 내게 기대하지 못한 선물을 준비하고 나의 걸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루는 나에게 한송이 꽃으로, 쏟아 내리는 비로, 출렁이는 호수로, 흩날리는 흰 눈으로, 밤하늘 흐르는 푸른 별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깊은 숲, 작은 집에 불이 켜질 것이다.    깊은 숲,   작은 집엔   너의 별,   너의 음악,   너의 눈물,   너의 떨림,   너의 웃음 가득하고    나를 비추고,   나를 설레이고,   나를 토닥이고,   나를 재우고,   나를 안아주는,   같은 하루가 아닌   새날을 맞이한다     하얗게 내려지는   기대와 설렘으로 받은 도화지   산을 보다 산이 되고   호수를 보다 호수가 되고   별을 보다 별이 되어지는   도화지 가득 하루가 담겨   깊은 숲,   작은 집에   불이 켜진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미시간 호수 하늘 가장자리 언저리 초록

2025-01-0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안개비 호수

호수가 하늘을 안는다 / 수평선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소리 / 경계에서 사라진 호수 / 안개 자욱한 하늘 계단을 오르고 있다 / 걸어온 발자국은 지워져 버렸기에 / 앞에 남겨진 길 하나, 하늘에 오르는 / 너에게 가는 길만 남았다 // 밀려오는, 밀려가기도 하는 우리는 / 숨 막히는 세상을 살다 / 숨이 트이는 이곳에 왔다 / 저녁으로 가는 시간을 지우며 왔다 / 호수 향해 뻗은 나무의 잔가지 틈새로 // 안개비가 내린다 / 하늘은 가늘고 긴팔을 내려 / 호수의 속삭이는 얼굴을 매만진다 / 출렁이는 얼굴 위로 미끄러지는 비의 왈츠 / 수천의 군무 되어 춤추는 호수의 물방울은 / 너의 흐르는 눈물 같아 가슴을 쓸어내린다 // 물결 위로 들려오는 하늘 소리 / 비 오는 호수 위 내려앉은 하늘길 따라 / 나는 네게로 가고, 너는 내게로 온다 / 누구라도 새로운 것에서 설렘을 찾으려 한다면 / 익숙함에서 오는 설레임은 만날 수 없다 / 호수와 하늘의 구분은 사라진 지 오래다 // 네게로 향한 설렘은 안개 속으로 / 밀려오는 물방울 속에 가득하다 / 호수가 하늘을 안고 잠들었다     안개비 내리는 호수는 신비하다. 호수의 색마저 옥빛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끼워져 있던 둥글고 도톰한 옥반지를 보고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바로 그 옥색이 되살아난다. 안개 비가 내리는 호수는 몽환적이다. 호수 끝에 맞닿은 하늘마저 옥색으로 바뀌고 있다. 호수는 하늘로 향해 풀어지고. 하늘은 호수를 향해 그 경계를 지우고 있다. 그러니 호수와 하늘은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호수가 하늘을 품은 건지, 하늘이 호수를 품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하나가 된 옥색의 호수와 옥색의 하늘이었다.     안개 비 내리는 호수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하늘가에까지 출렁이는 물결을 볼 수 없다. 다만 발밑에 부서지는 흰 파도의 거품만 보였다 사라질 뿐이다. 너와 나의 인생길이 그렇지 않은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개 속을 거니는 것처럼 손을 뻗어도 너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가까운 곳 같으나 참으로 먼 곳 같기도 한 그곳.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일생을 걷고 간혹 뒤돌아보기도 하고 오랜 침묵 속에 말을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였는데 길이 사라지기도 하고 길을 잃었다 낙심하였는데. 누군가의 손이 나를 이끌어 선명한 킬 위로 인도 할 때도 있지 않았던가.     안개비 속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걸어온 그 길 뒤로 되돌아 걸으면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네게로 향해 걷고. 너는 내게로 걸어오고 있다. 다만 안개가 그 모습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안개가 걷히면 익숙함에서 오는 설렘은 저 수평선 너머로부터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같이 온몸 속에 스며드는 당신의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떨어져 있는 너를 볼 수 없기에 너의 걸음을 따라갈 수 없었네. 너의 생각을 안다고 위로했지만 그건 흐르는 물같이 붙잡을 수 없었네. 손에 쥔 모래처럼 내 손을 빠져나갔네.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보네. 발을 적시고 무릎까지 잠겨오는 너를 다시 만나네.    안개 속에서는   너를 볼 수 없네   너에게 다가갈 수 없네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조금 움직여도 괜찮아   짧게 말해도 괜찮아   우리는 흐린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먼 곳이어도   가까운 곳이어도   손잡을 수 없는 우리는   감추어진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돌아온 걸음만큼   다시 돌아서 걸으면   안개 속에 호수와 하늘이 만나듯   우리도 만날 수 있으니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안개비 안개비 호수 하늘 소리 하늘 계단

2024-12-30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찬 바람이 불기 전에 Rosehill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비석 주변에 쌓인 낙엽도 쓸어주고 얼마 전에 묘 옆에 심은 작은 도장 나무 묘목에 물도 줄 겸 어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무언의 대화였지만 역시 어머니는 내 속에 살아계셨다. 나를 안으실 땐 늘 내 손을 잡으시고 다른 손으로 등을 어루만져주셨다. 그 손이 무척 그립다. 어머니를 닮은 작고 동그란 돌멩이를 묘목 주변에 깔아주었다. 가져간 가위로 묘목을 동그랗게 멋도 내주었다.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시는 것 같다. 떠나오면서 노을이 물든 서쪽 하늘을 보며 운전했다. 차가 신호등에 멈출 때마다 노을을 찍었다. 삶은 노을같이 아름답고도 처절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검푸른 하늘에 영롱한 별들을 생각했다. 귀를 자르고도, 붕대를 얼굴에 감고도 웃을 수 있었던 화가의 생과 어린 네 자녀를 앞에 두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올곧은 어머니의 생이 오버랩되었다.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당신의 이름을 오는 내내 불러보았다.     명치끝이 아파와서     1   너에게 가는 길은   더딘 걸음이어도 좋았네   당신의 손에서 빚어낸 선물처럼   감추어진 무언가 찾아낸 아이처럼   마음과 몸으로 느끼는 향기   가을이, 낙엽이, 풍경이   선물인가 했었네   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니   그건 바로 당신이었네     붉은 가을 앞에 서서   온몸이 붉어져도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시선을 견디어 내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었네   오늘은 꿈꾸고 싶은 것이 되어   돌아오는 노을이 되겠네     2   나는 속이 비워 넘어진 나무같아요 명치끝이 아파와서 손으로 문지르다 보니 손바닥에 묻어나는 얼굴 달도 많이 야위었어요 제 몸을 깎아 붙인 눈썹 같아요 잃어버린 것을 찾아 나선 저녁 엉켜진 덤불 아래서 파도가 머물고 간 모래톱에서 실핏줄같이 엇갈린 푸른 기억을 보았어요 서 있는 시간 내내 해는 기울고 지문처럼 찍힌 발자국이 서러워요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한 저녁 가던 길 돌아와 자세히 보면 아! 알고 계셨네요 당신의 시간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걸 그 길을 수도 없이 지나면서 지는 꽃잎에 눈물만 훔치던 당신 하루가 저무는 저녁 내내 붉은 노을로 돌아오고 있어요 오래전 당신이 걸었던 인생길같이 구불구불 그려놓은 당신의 무늬는 당신을 찾아가는 하늘길이 되었어요     3   고요는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도 오지   흙탕물의 침잠 시간에도 오고   낙엽 쌓인 보도블록 위에도 내려앉지   꼭 고요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어느 순간 지금이라고 명명되어진 그때   고요는 불현듯 오지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슬로비디오처럼   조용히 내려오지 소리도 없이   그것이 슬픔이듯 기쁨이듯   조용히 온몸을 채우며 오지   묵직하게 뻐근하게 그렇게 오지     4 남프랑스 아를에는 고흐의 숨결이 남아 있네 미시간 호숫가 *Rosehill에 당신의 숨결이 남아 있듯이 아를의 밀밭을 걸으면 흙바닥에 묻어나는 황색 물감 라 마르탱 광장 2번지 고흐의 노란 집엔 나무 침대, 베개 둘, 의자 둘, 탁자 하나 액자 6개가 걸려 있네 침대맡에 창문도 하나 있네 그 창문을 통해 아를의 기차역이 보이네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를 보네 그 창문에 서면 그의 중얼거림이 들리네 싸이프러스 나무위로 *별이 빛나는 밤이 오네 침묵이 대답이 되는 시간들이 별빛처럼 내리고 귀를 잘라버린 아픔과 참담히 거기 서있네 붕대로 싸맨 얼굴로 웃고 있는 막무가내가 뭉클하네 겨울 찬바람이 불기 전 어머니 묘소를 찾았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등을 어루만지네 서쪽하늘 노을이 붉게 번지네 삶은 노을같이 아름답고도 처절했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처럼 별이 뜨고 별이 지는 일처럼 하루가 오고 하루가 지고 있네 Rosehill에 번지는 붉은 노을이여 멀리서 외로움과 맞설 아를의 푸른 밤이여 무슨 수로도 잊을 수 없는 당신을 부르네 낯설은 땅에 누운 고마운 당신과 아를의 밀밭 길을 걸어 사라지는 별빛 같은 당신 내 속에서 잠들고 눈을 뜨는 긴 숨 같은 이름들이네  *어머니가 묻힌 묘지 *정신병동에서 그린 고흐의 작품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서쪽하늘 노을 어머니 묘소 미시간 호숫가

2024-11-1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시를 쓰는 것도 가끔 어색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건만 이 나이에 아직 내 것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린다고 다 그림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시를 쓴다고 다 시가 되는 것도 아니기에 이제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하나? 시도 때도 없이 시를 쓰고, 다가오는 풍경을 놓칠세라 마음 졸이며 살아 왔건만 찡하게 가슴에 다가오는 시 한 편 못쓰고 있다. 쓰고 지우고 또 쓰기를 반복하지만 그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햇빛 드는 양지쪽에 앉아 자라나는 들꽃들이 예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곤 하였다. 그 옆에 앉아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지고 세상 근심 걱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들꽃의 청순한 매력에 꽂히게 된다. 그렇게 마음에 담겨진 풍경과 사물을 스케치하고 머리에 스치는 아이디어를 놓칠세라 분주히 펜을 움직여보기도 하고, 카메라의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어 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묵직한 것들을 남기지 못하고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세월이 유수 같아 이젠 점점 무엇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더 없이 하루 하루가 소중히 여겨진다. 한걸음 한걸음이 몇 개 남지 않은 퍼즐을 완성할 수도, 아니면 빗겨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럴수록 초조하지 않기로 했다. 목표만 보고 걷기로 했다. 내가 스스로 만든 그림자 때문에 놀라지 말고 우회하지 말고 오히려 무심히 보기로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편해졌다.   2019년 가을 첫번째 시집 〈바람에 기대어〉가 시와 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얼마나 기뻤던지 어깨를 펴고 살았다.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파릇이 살아나는 봄날에 출판기념회를 준비했는데 갑작스레 코로나 팬데믹 상태가 되어버렸다. 결국 대전 문화원에서의 간단한 출판기념회를 한 것으로 시카고에서의 계획은 자연히 무산되었다. 후에 돌아보니 얼마나 잘 된 일인 지, 멋 모르고 했더라면 얼마나 쑥스러운 일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두번째 시집 〈시화집〉이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시 70편과 그림일기처럼 그린 그림 40점을 모아보았다. 한국의 역랑 있는 선생님들 덕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발문은 정윤찬 시인이, 표사에 김종회교수, 나호열 시인, 김혜주 시인께서 글을 보내주셨다. 시카고 변방의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시시한 시인 신호철을 위해 기꺼이 보내주신 글들을 읽다 보니 노을처럼 붉어지는 눈시울을 훔칠 수밖에, 저린 가슴으로 고마움을 보낼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막 보내온 김혜주 시인의 글을 소개해 드린다.(시인, 화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높이로 몸을 낮게 숙이고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말을 전해준 시인이다 다가올 수 없는 것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남겨두는 순연한 세계, ‘지금’이라는 진실로 푸르게 취하며 그림 속의 풍경을 몽롱하게 연민하고 자신의 세계를 숙성시킨 문장들 현실의 무거움이 내제되어 있는, 기억과 상처마저 은근하고 솔직한 기쁨으로 마주하던 시간들을 시카고의 호수와 바람과 노을의 시간으로 위무하며 잃어버릴뻔 했던 고국의 향기와 사랑이 시심에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김혜주 시인-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김혜주 시인 정윤찬 시인 시인 신호철

2023-04-2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코스타리카로 여행지를 선택한 이유는 자연을 느끼고 그 속에서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 위해서였다. 코스타리카에서 쓰는 인삿말 중에 “프라 비다(pura vida)!”, 즐거운 삶!이라는 말이 있다. “코모에스타”는 안녕하세요라는 일반적인 말이지만, 프라 비다는 삶을 즐기자라는 의미로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국민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프라 비다!”라고 하면 엄지를 치켜세우며 좋아한다. 도무지 바쁜 것이 없어 게으른 것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여유로운 것이라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을 가진 작은 나라인데 그 중 1/4이 국립공원으로 조성되고 나머지의 반이 산악밀림지대이고 그 나머지 땅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햇빛이 좋고 비가 적당히 내려서인지 울창한 밀림에 6500여종의 식물과 950여종의 조류 외에도 여러 종류의 동물들, 셀 수 없는 곤충들, 수백종의 난에서 피는 꽃들은 열대의 화려한 색감과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조류학자, 식물학자, 사진작가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함께 사파리를 떠나기도 하고 온천욕을 즐기기도 하고, 일정이 끝나면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코스타리카의 수도는 산호제이고 중간에 형성된 산맥을 통해 리몽이란 도시를 통해 대서양으로, 하꼬라는 도시를 통해 태평양으로 갈수 있지만 일행은 밀림 사파리를 마친 후 강을 타고 내려와 강의 끝에서 태평양을 만났다. 마침 수면으로 지는 태양으로 인한 윤슬이 바다를 향한 강 끝자락에 펼쳐졌다. 은빛 비늘처럼 반사되는 강 끝에서 방향을 틀어 맹그로브 숲이 우거진 밀림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배의 엔진 소리가 꺼지고 숨소리조차 잠재운 고요 속에 머무르는 동안 사람들은 분주함과 소란함에서 떠나 잊고 살았던 나를 대면하는 시간을 마주하였다.     그곳에 내가 있었다. 그곳에 자유가 있었고 그리움이 더 이상 아픔이 아니라 충만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펄럭이며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은 신선한 바람과 낮은 하늘로 다가왔다. 숨마저 멈춰버린 맹그로브 숲에선 만져지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하늘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얼마 후 별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하늘가로 보랏빛 노을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풍경 속에서 힘든 그대 이름을 부르고 있다. 어서 일어나라고. (시인, 화가)       *맹그로브 숲의 고요     물이 찰랑임을 멈출 때, 숨도 멈추고 말아 / 물은 물을 잠재우고, 나는 나에게 저무는 고요 / 다리 긴 도요새는 정물처럼 숲 가운데 숨었다 / 맹그로브 뿌리에 물고기가 산란하고 / 산소를 뿜어내는 뿌리와 친해지는 시간 / 강 기슭은 하얀 날개를 덮어 하늘이 되었다 / 빌딩의 숲이 답답하다던 너의 푸념 / 정글의 숲으로 이어지는 아! 자유 / 강은 적막으로 오는 소리 없는 징후       별들의 눈물을 보았다 / 수면을 닿을 듯 날아 노을로 가는 / 밤볕이 들고, 별빛이 흘러 / 새들의 잠자리가 되는 맹그로브 숲 / 가슴에 와 닿지 않으면 쉼은 숨으로 쉴 수 없기에 / 바다를 만나는 강의 끝에서 부르는 너의 이름 / 물이 찰랑거릴 때 숨은 다시 멈추고 / 소리 없이 찿아드는 적멸의 소리 / 알지 못하는 것들의 희미함에 옆에 있어도 / 그리운 맹그로브 숲의 고요     노을이 한꺼번에 지면 안되는 거야 / 밤이 한꺼번에 찿아오면 안되는 거야 / 가난한 사람들의 우산처럼 / 자유의 한계와 너라는 통증을 견디고 있는 중 / 나는 닫혀 있고 너는 열려 있다면 / 나는 열려 있고 너는 닫혀 있다면 / 나즈막한 사람들의 착한 숨소리 / 반 나절은 네게 기대고, 반 나절은 내게로 기우는, / 그리하여 쉬지 않고 그리워할 수 있으니     신호철신호철 풍경 맹그로브 뿌리 조류학자 식물학자 엔진 소리

2023-01-30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네게로 갈 거다

네게로 갈 거다   우리 만나면 펑펑 울어보자 벗은 몸뚱이 겉옷 걸치고 쓸쓸한 거리 새싹 피워 네게로 갈 거다     하얀 고무신   모시 적삼 차려 입고 두루마기 날리며 울긋불긋 단풍 진 하늘길 따라 네게로 갈 거다     푹푹 빠지는 고향길   잊혀지려는 네 이름 석자 기억해 내며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네게로 갈 거다     우리 만나면   지난 세월 아쉬워 말고 남은 시간 절절하게 나의 등 내어 줄 네게로 갈 거다     나무가 비를 맞고 있습니다. 무심히 비를 맞는 듯 하지만 나무는 오랜 시간 비를 기다렸습니다. 먹구름이 비가 되어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구름도 오랜 시간 나무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나무와 비는 서로를 기다리다 오늘 만나고 있습니다.    몇 일 후면 나는 시카고를 떠나 3주동안 한국을 다녀 옵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리웠던 친구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윽한 가을풍경이 펼쳐진 큰 창가에 앉아 막 내린 커피 한잔 나누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려합니다. 페북을 통해 알게 된 작가들도 만나고 늘 그리웠던 전시회도 다녀올 예정입니다. 몇몇 문학단체들의 모임과 특별히 경주에서 3박4일동안 진행되는 세계작가대회에 참석해 좋은 시간을 가지려합니다. 음성도, 모습도, 마음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 하고 같이 먹고, 자고, 강연도 듣고, 토론도 하며 어울려 사는 훈훈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겁니다.    모든 것들의 만남은 그리움과 진심이 우선이어야합니다. 그리움은 켜켜이 쌓여진 시간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기쁨을, 진심은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해주는 명징한 단초가 될 것입니다. 찬바람이 머물던 그늘에도 새싹이 돋아 나고, 초록의 잎사귀에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서로의 마음 속에 하얀 눈이 소리 없이 쌓여갈 것이란 확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네가 되고 그대는 내기 되어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서로를 공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풍경이 되어 마음 속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익숙하지 않은 생활을, 전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될 것입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순간들이 이제 곧 다가 올 것입니다.     제대로 잘 산다는 게 별것 아닙니다. 나무가 비를 맞듯이 내게 오는 상황을 가감없이 받아 들이며 사는 것입니다. 주변의 모든 것들로부터 빚진 자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꽃이 피는 것도, 강물이 소리 내 흐르는 것도, 내가 언덕길을 오르는 것도 모두 다 저를 회복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잠들었던 세포를 흔들었던 바람에도, 싹을 키워준 따스한 햇빛에도, 뿌리내리게 해준 대지에도, 나무를 적시는 빗방울마저 모두 빚진 자로 살아야 할 이유가 됩니다.     이 땅의 모든 삶은 서로에게 빚진 삶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울긋불긋 단풍이 지는 것도 빚진 자의 마지막 삶을 고마워하는 표현입니다. 작은 화분에 담긴 동그란 선인장이 자기 머리 위에 작은 선인장을 하나 더 만들고 있습니다. 화분에 옮겨져 이곳에 살게 된 빚진 자의 감사 표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세상은 불행하지도 슬프지도 않고 모든 것들이 선을 이루며 아름답게 변합니다.   이 가을 한국에서 같이 머리를 마주할 친구들과, 또 고국의 둥그런 풍경들과, 못다한 사연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그 곳에서 나는 어떻게 빚진 자의 삶을 표현하고 서로에게 꽃 피울 수 있는 시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새들도 길을 내고 날아가는 저 하늘 높이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구름처럼 떠 다니다가 비로 촉촉히 뿌려줄 것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늘 바람과, 햇살과, 별들이 반겨줍니다. 언덕을 오르다 어깨에 메인 짐을 내려 놓고 길가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봅니다. 계절이 지나면 앙상해질 나무들은 저마다의 색을 만들며 춤추고 있습니다. 한참을 오르다 올려다 본 하늘에 색 바랜 사진 속 친구들이 나를 부릅니다. 때마다 찾아드는 그리움은 잠 못 들었던 많은 날들을 떠 올리게 하지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바라 볼 날들이 이제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시간 나무 이야기 보따리 거리 새싹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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