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춤추는 나무
문 하나가 닫히면 문 하나가 열린다. 해가 지면 잠깐의 시간을 두고 다시 해가 뜨고, 별이 지고 나면 하루가 지나고 다시 별이 뜬다. 그는 무릎을 살짝 구부려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쓰고 있던 모자를 허리 아래로 내리며 답례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언덕 구릉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나는 언덕을 내려오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이별을 아쉬워했고, 그는 바람에 잔가지를 흔들며 나에게 다음 약속을 기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가 춤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장 남지 않은 잎사귀를 안은 채로, 좌우로 가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가 춤추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눈 내리던 어느 날에는 눈꽃을 피우며 둥글게 움직이고 있었다. 온종일 피운 눈꽃은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셨다. 평면으로 내린 눈을 입체로 꽃피우는 나무는 신기하리만큼 깊이가 있었다. 펼쳐 보이기도 하고 담아 내기도 하는 언덕 위 나무는 해마다 키가 자랐고 이제는 내 키를 훨씬 넘어서 그의 끝까지가 하늘에 닿았다.
자세히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춤추고 있다. 호수의 파도도 춤추고 있고 하늘에 구름도 춤추고 있다. 꽃이 피어나는 것도, 나뭇잎이 움트는 것도, 비가 내리는 것도 춤추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들길을 걷다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세찬 바람에 꺾이지 않는 갈대를 보다 결론지은 것은 ‘갈대는 춤추고 있다’였다. 왜 우리는 춤추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반응하지 못하는가? 봄이 온다고 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무수한 봄이 지나가도 내 안에 봄은 꽃 피지 않을 것이다.
흥에 겨워 바람에 춤추는 언덕 나무처럼, 바람에 눕는 갈대의 춤사위처럼 우리도 춤추면 된다. 나무의 밑동을 껴안고 같이 흔들리면 된다. 너와 나 부둥켜안고 춤추면 된다. 춤추며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모래를 휘저으며 덩실덩실 춤추면 된다. 그러면 동화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니까.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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