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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아린 남산 풍경

조현용 교수

조현용 교수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이 기쁨이기도 하고, 아픔이기도 하고, 아련함이기도 합니다. 직접 가보는 곳도 있고, 생각 속에만 있기도 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곳도 있습니다. 가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과 멀리서 바라보는 감정은 각각 다릅니다. 거리가 보여주는 감정의 차이이기도 하고, 마음의 아릿함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제가 있는 학교의 연구실은 교수회관이라고 부릅니다. ‘회관’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오래된 느낌입니다. 어린이회관이나 문화회관, 마을회관 등이 생각납니다. 교수회관은 실제로도 오래된 건물이어서 감상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교수회관에서 학교의 중앙도서관이 바로 연결되는 특이한 구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수들의 연구실을 둘러 베란다처럼 생긴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면 마음속 잡생각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구실 밖의 공간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입니다. 심지어 교수 중에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마도 대부분일 겁니다. 저도 이곳에 나가본 게 오래되지 않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어마어마한 곳입니다. 경희대에서 벚꽃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귀한 곳이기도 합니다. 봄에 혼자 벚꽃 잔치를 즐기면 왠지 마음이 부유해진 느낌입니다. 저를 찾는 제자들에게 이 귀한 광경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녁놀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입니다. 정말 멋진 곳이죠.
 
한편 여기에서 보이는 풍경 중 저의 마음을 울리는 장소도 있습니다. 바로 남산타워입니다. 남산타워는 서울타워나 엔 타워로 부르기도 하지만 제게는 남산타워라는 이름이 친숙합니다. 제게 남산타워는 때로는 첨탑으로, 때로는 바늘로 다가옵니다. 뾰족하네요~ 아슬아슬한 느낌입니다. 사실 저는 남산타워에 올라가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남산타워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25년을 살았습니다. 어릴 때 제 기억은 모두 남산과 남산타워입니다. 그 근처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녀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가에는 ‘남산’이 들어가 있습니다. 남산이 저의 고향인 셈입니다.
 
남산타워는 남산에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고향을 상징합니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남산타워에 올라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남산에는 자주 올라갔습니다. 문득 남산에 올라가 웅변 연습을 하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목소리가 큰 것은 그때의 산 공부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산에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께 혼난 후에 남산으로 간 적도 있고, 왠지 기분이 울적해도 남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은 저에게는 피난처이기도 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죠. 다시 그때를 돌아보면 남산은 즐거운 기억과 아린 기억이 엉켜있습니다. 장사가 잘 안되어 힘들어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나 모든 게 싫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제 모습이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저는 연구실에서 공부하다가 답답하면 남산타워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가만히 그쪽을 바라봅니다. 노을이 질 때면 감성이 더 몰려듭니다. 첨탑이 더 뾰족하게 보이는 날이면 왠지 예전의 저로 돌아갑니다. 그때를 잘 이겨내고 자라난 제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고생 많았다, 잘 지나왔다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조만간 남산타워를 올라가 봐야겠습니다. 타워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새로운 기억이 될 듯도 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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