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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인연

인연   시간이   저만치 흐르고 있었다 나는 매일 종착역을 향해   걷고 있었고     어느 것 하나   무게의 추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기에   가슴에 담아보려다 빈 손짓만 했다     아직 피지 않은   작약의 꽃봉오리에 반해 반나절을 뜰에서 놀았다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모나지 않게, 찌르지 않게     파도는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가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다는 그렇게 부서지는데     설레는 물결 숨 가쁜 기대로   온종일 뜬눈이다 이슬과 함께 머리 들 당신이 보인다       가벼워지려고 나비를 따라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자리. 그 자리에 바로 네가 있었다. 작은 꽃을 좋아하는 너는 꽃을 다듬는 내내 자리를 지켜주었다. 쇠파리에 물려도 꼼짝없이 버티고 서있던 덕분에, 나비야 나비야를 불러준 덕분에 야생화를 채집 할 수 있었다. 후에 그가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아프고 간지러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려운 자리엔 항상 네가 이야기처럼 서 있었다. 야생화를 뒤란에 심으면서 고마운 그의 마음을 생각했다. 내년 이맘 때 보라, 분홍의 꽃들이 싱그러운 날. 그 때 일을 기억할 수 있으려나? 빨갛게 부어 오른 그 상처를 호호 불어 줄 수 있으려나?   Memorial Day 전후에는 늘 꽃을 심고 다듬어준다. 매년 피어나는 꽃들을 그대로 놓아두면 천방지축 난장판이 된다. 다듬어주고 너무 많이 번진 부분은 뽑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꽃들과 뒤엉켜 볼 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노랑은 노랑대로, 보라는 보라대로, 분홍, 하얀꽃은 그들대로 뭉쳐 있을 때 더 정리가 되어 보인다.     처음 정원을 가꿀 때는 높낮이를 계산하지 않고 심다 보니 다음 해 자리를 바꿔주느라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낮은 것은 앞쪽에 높은 것은 뒷쪽에 심어야 한다. 바람과 비에 쓰러지기 쉬운 꽃들은 받침대를 세워주고 꽃망울이 너무 많이 맺은 작약은 한 대궁에 두 세 개만 남겨두고 잘라 주어야 한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뻗어나간 가지들을 그대로 두면 이듬해면 나무의 형태가 엉망이 된다. 그때마다 잘라 주어야 한다. 잎사귀가 유난히 많이 자란 가지도 다듬어주고 나무 밑둥에서 뻗어나온 가지는 미련 없이 제거해야 나무가 곧게 자라게 된다.     정원을 가꾸면서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꽃들과도 인연이 없으면 서로의 정원에서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애지중지 키워도 다음해 봄 싹을 내지 않는 꽃들도 있었다. 나무 아래에서는 시름시름 해도 햇빛이 잘 드는 남향에 심으면 다음해 무섭게 꽃대를 들고 일어나는 것들도 있었다. 그것을 나는 꽃과의 인연이라고 말하겠다.     사람들 과의 인연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끝까지 갈 것만 같았던 친구도 어느 날 서로의 길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우연히 만났어도 그 인연이 오래 깊이 유지되기도 하는 것을 살면서 느끼고 있다. 인연은 서로의 눈에 띄는 것이다. 인연은 서로의 마음에 오래 남아 서로의 풍경과 일상에 어우러지는 것이다. 부족하거나 남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서로에게 채워지는 것이다.     이른 봄 눈 속을 헤집고 피는 꽃들도 있다. 가냘프고 나직한 잎을 달고 자라는 것들은 그들대로 서로에게 기대 봄을 부르고 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목련의 애처로움은 그 목이 꺾여 땅 위에 떨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과꽃이 그렇고 국화가 또 그렇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그 색을 잃지 않는 일편이 있다.     꽃과 사람만이 아니다. 풍경 또한 그렇지 않을까. 풍경도 인연이다. 살아 가는 동안 풍경과의 인연은 우리의 걸음을 그리로 향하게 한다. 늘 그 자리에서 인연을 기다리며 봄에는 연두로 초록으로 자라고, 보라로 노을지는 지고 지순한 풍경이 되어준다. 장대비를 쏟으며 폭설을 뿌리기도 하고 잔잔한 파도로 출렁이기도 한다.   오늘도 당신과의 인연으로 새벽이 오고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노을이 졌다. 별이 뜨고 나는 그 별빛 아래 풍경처럼 서 있다. 꽃들이 한없이 어여쁜 이유도, 네가 소중한 이유도, 발걸음이 자꾸 같은 풍경으로 향하는 이유도 바로 인연 때문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인연 인연 시간 동안 풍경 나무 아래

2024-06-03

[이 아침에] 인연

나는 사람은 물론 사물과의 관계에서도 인연은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 인연을 소중히 생각한다.     주 정부 산재보험기금에서 31년 일하고 퇴직했는데, 실은 입사 1년 만에 다른 부처로 승진되어 그곳을 떠났었다. 승진하게 되면 승진시험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이 빠져야 하는데, 누군가의 실수로 내 이름이 계속 남아 있었다. 두 달 후, 산재보험기금에서 자리가 있으니 오라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승진시켜 주었던 부처에서 별문제로 삼지 않아 다시 돌아가 30년 근속을 하게 되었다.     운전 면허증이 아직 종이로 발행되던 시절의 일이다. 면허증을 주머니에 넣어 둔 채 옷을 빨아 면허증이 휴지가 되고 말았다. 면허증을 재발급받기 위해 DMV에 갔다. 까다로운 직원에게 걸렸던 모양이다. 면허증 뒷면에 장애인 운전장치가 설치된 차량만 운전할 수 있다는 제한 문구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내 면허증에는 그런 문구가 없어 무효라 다시 주행시험을 보아야 한다며 면허증을 발급해 주지 않으려 했다. 시험을 보려면 약속을 잡아 다음날 다시 오라고 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다가왔다. 내게 운전을 가르쳐 주었던 운전학교 선생이었다. DMV에 인원이 부족해 임시직으로 주행 시험관을 하고 있었다. 전후 사정을 듣더니 나보고 따라 나오라고 해, 그 자리에서 주행시험을 치르게 해 주었다.     인연은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맺어지는 것도 있다. 아내의 차를 사던 때의 일이다. 집 근처 도요타 딜러에 가니 마음에 드는 은색 캠리가 있었지만, 직장 동료가 잘 아는 딜러가 있다고 도요타를 사려면 자기에게 연락하라던 말이 생각났다. 다음날 그가 잘 안다는 딜러에 갔다. 아내가 원하는 색의 차는 리버사이드에 있어 가져와야 한다고 해서 한참을 기다렸다.     차가 준비되었다고 해 나가 보니, 컵 홀더에는 커피가 흘러있고 세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집 근처 딜러에 전화하니 은색 캠리가 아직 팔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산 캠리를 아내는 10년 넘게 탔다.     그런가 하면, 애를 써도 이어지지 않는 인연도 있다. 엘튼 존과의 인연이 그러하다.   10년 전의 일이다. 엘튼 존의 어바인 콘서트 티켓을 사놓고 학수고대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 전날, 갑자기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하룻밤 잘 자고 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다음날은 더 심해져 결국 약을 먹고 잠에 빠져 콘서트장에 가지 못했다. 힘들게 구했던 표 두 장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2022년, 은퇴를 앞둔 엘튼 존이 미국 공연을 하며 다저스 구장에 온다고 했다. 1년 전에 티켓 두 장을 일찌감치 사 두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코로나에 걸렸다. 금요일 오후부터 목이 좀 칼칼하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불안했던지, 한밤중에 일어나 감기약을 찾아 먹고 마스크를 끼고 잤다. 다음 날 아침, 검사해 보니 음성. 늘 주말에 하는 집 안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점심에는 월남 국숫집에 가서 국수도 한 그릇 먹고 왔는데, 오후에 앓아눕고 말았다. 다시 검사하니 선명하게 두 줄이 나타났다. 양성이다.     인연도 악연도 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주어진 인연에 감사하고, 악연에 상처받지 않으며 살려 노력할 뿐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인연 운전 면허증 면허증 뒷면 승진시험 합격자

2023-08-2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인연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머리는 허옇게 변했어도, 등은 구부정해도 조심스런 발걸음엔 삶의 연륜이 묻어나 뒤를 따라 걷는 발걸음 위로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담겨져 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이의 시간은 뛰어 넘더라도 유년의 천진한 시절을 지나면서 키가 자라고 생각의 폭도 넓어졌음에 틀림이 없다. 혈기 왕성했던 꿈 많은 청년의 삶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작된 시카고에서의 이방인의 삶은 그야말로 하루를 쪼개서 이틀을 살았고, 학교와 직장을 넘나드는 피곤하고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 그때는 잠을 잘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져 버리는 느낌을 느끼곤 했었다. 눈을 뜨면 일터로 나갔고 밤이 깊어서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일에 매달리며 중년의 시간을 보내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물질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곤 했었다. 성공한 삶인 듯 했지만 실패한 삶이었고 실패가 결국 성공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는 동안 인연의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구부정한 허리로 걷고 있는 노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백세시대인데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되뇌어보지만 한 사람의 생애는 수많은 인연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 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인연에 관한 글이 생각난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만날 수 없어도 일생 마음 언저리에 살고 있어 사람이 있다. 좋은 날에도, 좋지 않은 날에도 그와의 인연을 생각하면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고 아름다워서 다시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지만 마음에 꽃등처럼 길을 밝혀주는 사람이 있다.     사실 인연인 사람은 어려울 때 드러나게 된다. 스쳐 지날 사람은 그때 떠나려 하고 오래 머무를 인연은 그때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려 한다. 사람과의 인연으로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인연이 된 윤동주의 〈별을헤는밤〉은 아직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어 밤하늘을 쳐다볼 때나 친구들 이름이 생각날 때면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온다. 이 나이에도 잊혀지기 보다 더 또렷이 기억나는 싯귀이다.     윤동주 시인의 인연은 친구 정병욱이다. 그 인연은 우리에게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후 잊혀질 뻔한 소중한 시들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인연이 또 있으랴.     우리의 삶 속에도 더 사랑하고 더 안아주고 더 깊이 삶을 나누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 우린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반가운 인연의 끈으로 남겨진 삶의 부분을 가꾸어 나가기를 원한다. 그와 함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꽃을 피우며 살고 싶다. 우리에게 부닥쳐오는 희노애락의 삶을 통해 만들어갈 소중한 인연, 함께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만나기를 소원한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인연 동안 인연 윤동주 시인 발걸음 위로

2023-08-07

'우블스' 인연 한지민, 정은혜 작가 참여한 '2023 聯:연을 잇-다' 展 엔버갤러리 방문

배우 한지민이 21일 압구정동에 위치한 엔버갤러리에서 열린 '2023 聯:연을 잇-다' 전시를 찾았다. 앞서 한지민은 정은혜 작가와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처음 인연을 맺고 정은혜 작가의 영화 '니얼굴' 시사회에 깜짝 방문하는가 하면, 전시회 '포옹전'을 관람하는 등 '우블스'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한지민은 이날 정은혜 작가와 함께 엔버갤러리의 작품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특히 자신과 정은혜가 그려진 그림 앞에서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난 8일 시작된 ‘2023년 聯:연을 잇-다’는 오는 7월 2일까지 진행되며, 정은혜 작가를 비롯한 발달장애 예술노동자 23인의 다양한 작품과 세계관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 '2023 聯:연을 잇-다'는 전시명에서 드러나듯 발달장애인, 온전한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해 무용한 존재가 된 그들이 예술 작품이라는 연결고리로 세상과 연을 잇는다는 의미로 접근한다.     '장애인'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사회적 욕구를 가진 그들이 예술 창작 활동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과정과 그들만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펼쳐진 새로운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앞서 한지민은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인생을 그린 영화 '김복동'에 내레이션 참여를 하는가 하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의료용 방호복 3000여벌을 기부하고, 지난해 3월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우크라이나 어린이 돕기 긴급구호와 올해 ‘튀르키예·시리아 지진피해 어린이 긴급구호’에 1억원을 기부한 바 있다.   지속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며 좋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한지민은 인터뷰를 통해 "은혜 작가는 굉장히 심플하고 정의로워서 오히려 제가 많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작품 활동 당시 은혜 작가에게 '김우빈 배우가 좋아, 내가 좋아?"라고 장난으로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나는 비교하지 않아. 누구든 다 예쁜거야. 다 소중한 거야."라는 대답을 해서 깜짝 놀랐다. "고 말하며 정은혜 작가와의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어 "은혜 작가랑 있으면 은혜 작가 세상에 내가 들어감으로써 더 가벼워지고 밝아지는 기분이 들어 좋다."며 "이번 전시처럼 다른 발달장애 친구들도 다양한 도전과 참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20일에는 양평군 윤순옥군의회의장이 엔버갤러리에 방문한 바 있다.    이동희 기자 (lee.donghee.ja@gmail.com)한지민 정은혜 인연 한지민 정은혜 작가 이날 정은혜

2023-06-22

[이 아침에] 엄마의 오래된 인연

친정아버지가 소천하셔서 한국을 방문했다가 오래된 흑백사진을 찾았다. 엄마는 삼선교 한옥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의대생 두 명에게 문간방을 세 놓았다고 한다. 지금의 내 딸보다 훨씬 어린 앳된 새댁인 엄마가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고 졸업식에 참석한 사진이다. 군의관을 마친 두 분은 미국으로 유학하러 가고 항공 우편으로 얼마 동안 소식을 전하다가 우리 가족이 삼선교를 떠나며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쾌활, 씩씩하던 엄마는 아버지 없는 집에서 유튜브나 보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여러 차례 가르쳐드려도 소용이 없더니 ‘임영웅’ 팬이 되며 전화기 사용이 능숙해졌다. 쪼그라든 이 노인이 빛바랜 사진 속 어 여쁜 새댁이라니, 세월이 야속하다.   60년이 다 되어가니 미국에서 자리 잡고 잘 살겠지, 엄마가 궁금해하신다. 내가 두 분을 인터넷으로 찾아볼까, 하니 엄마가 활짝 웃었다. 멀리 살아 항상 걱정만 끼치는 아픈 손가락인 내가 엄마 인생 갈피에 기분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메릴랜드와 테네시에 살고 계신 두 분과 통화가 되고 엄마가 미국에 오시기로 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보다 훨씬 어린 아기였던 나와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이 동행하기로 했다. 두 분을 만난다는 기대만으로도 엄마는 활기를 찾으셨다. 중부시장에 가서 멸치, 북어, 김 등의 건어물을 사고 명란젓을 홈쇼핑에 주문하셨다. 알록달록 고운 수세미 뜨기도 시작했다.   메릴랜드에서 80세가 넘은 연세에도 현역 정신과 의사인 K 선생님은 한인사회에서 정신건강 강연으로 이미 유명인사였다. 골프장이 시원하게 보이는 호텔 방을 잡아주고 이틀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방학으로 집에 가 있는 동안 방세를 면제해 준 일, 화폐개혁으로 쌀을 못 사 먹을 때 엄마가 쌀을 준 일이 고마웠다고 하셨다.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이지만 마음이 따스해지는 훈훈한 추억담은 물자가 흔한 요즘보다 많으니 아이러니하다. “충청도 시골 출신이 이 정도 성공했으니 만족합니다.” K 선생님의 긍정적 마음가짐이 행복의 비결인 듯하다.   마침 자녀들을 방문하러 LA에 오시는 테네시의 H 선생님 부부까지 만나기 위해 엄마는 나와 LA로 오셨다. 엄마의 졸업선물인 미제 면도기를 미국에 가져와 오래도록 사용했다고 말씀하시며 엄마와 내 선물을 챙겨오셨다. 작년에 은퇴 후 아프리카 선교에 힘쓰고 계신단다. 하루 동안의 짧은 만남이 아쉬웠으나 남가주로 이사를 계획하신다니 훗날을 기약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전문인의 삶을 살며 한국인의 성실과 끈기를 알리며 민간외교를 톡톡히 하신 두 분이다. 구글 덕분에 멋진 인생 선배 두 분을 만났다. 한국 방문했을 때 두 분 모두 삼선교 옛집을 방문했다 하니 나도 다음번 한국 여행 때 찾아 가보려 한다.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엄마의 오랜 인연을 찾아 두 분을 만난 것이 기적 같다.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효도를 한 기분이다. 인터넷을 통한 개인 정보 유출이 악용되기도 하지만, 옛날을 추억하고 미래를 기약하는 훈훈한 만남을 가지니 인터넷의 순기능이 고맙다. 최숙희 / 자유기고가이 아침에 엄마 인연 새댁인 엄마 엄마 인생 삼선교 한옥

2022-11-27

[이 아침에] 엄마의 오래된 인연

친정아버지가 소천하셔서 한국을 방문했다가 오래된 흑백사진을 찾았다. 엄마는 삼선교 한옥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의대생 두 명에게 문간방을 세 놓았다고 한다. 지금의 내 딸보다 훨씬 어린 앳된 새댁인 엄마가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고 졸업식에 참석한 사진이다. 군의관을 마친 두 분은 미국으로 유학하러 가고 항공 우편으로 얼마 동안 소식을 전하다가 우리 가족이 삼선교를 떠나며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쾌활, 씩씩하던 엄마는 아버지 없는 집에서 유튜브나 보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여러 차례 가르쳐드려도 소용이 없더니 ‘임영웅’ 팬이 되며 전화기 사용이 능숙해졌다. 쪼그라든 이 노인이 빛바랜 사진 속 어 여쁜 새댁이라니, 세월이 야속하다.   60년이 다 되어가니 미국에서 자리 잡고 잘 살겠지, 엄마가 궁금해하신다. 내가 두 분을 인터넷으로 찾아볼까, 하니 엄마가 활짝 웃었다. 멀리 살아 항상 걱정만 끼치는 아픈 손가락인 내가 엄마 인생 갈피에 기분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메릴랜드와 테네시에 살고 계신 두 분과 통화가 되고 엄마가 미국에 오시기로 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보다 훨씬 어린 아기였던 나와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이 동행하기로 했다. 두 분을 만난다는 기대만으로도 엄마는 활기를 찾으셨다. 중부시장에 가서 멸치, 북어, 김 등의 건어물을 사고 명란젓을 홈쇼핑에 주문하셨다. 알록달록 고운 수세미 뜨기도 시작했다.   메릴랜드에서 80세가 넘은 연세에도 현역 정신과 의사인 K 선생님은 한인사회에서 정신건강 강연으로 이미 유명인사였다. 골프장이 시원하게 보이는 호텔 방을 잡아주고 이틀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방학으로 집에 가 있는 동안 방세를 면제해 준 일, 화폐개혁으로 쌀을 못 사 먹을 때 엄마가 쌀을 준 일이 고마웠다고 하셨다.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이지만 마음이 따스해지는 훈훈한 추억담은 물자가 흔한 요즘보다 많으니 아이러니하다. “충청도 시골 출신이 이 정도 성공했으니 만족합니다.” K 선생님의 긍정적 마음가짐이 행복의 비결인 듯하다.   마침 자녀들을 방문하러 LA에 오시는 테네시의 H 선생님 부부까지 만나기 위해 엄마는 나와 LA로 오셨다. 엄마의 졸업선물인 미제 면도기를 미국에 가져와 오래도록 사용했다고 말씀하시며 엄마와 내 선물을 챙겨오셨다. 작년에 은퇴 후 아프리카 선교에 힘쓰고 계신단다. 하루 동안의 짧은 만남이 아쉬웠으나 남가주로 이사를 계획하신다니 훗날을 기약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전문인의 삶을 살며 한국인의 성실과 끈기를 알리며 민간외교를 톡톡히 하신 두 분이다. 구글 덕분에 멋진 인생 선배 두 분을 만났다. 한국 방문했을 때 두 분 모두 삼선교 옛집을 방문했다 하니 나도 다음번 한국 여행 때 찾아 가보려 한다.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엄마의 오랜 인연을 찾아 두 분을 만난 것이 기적 같다.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효도를 한 기분이다. 인터넷을 통한 개인 정보 유출이 악용되기도 하지만, 옛날을 추억하고 미래를 기약하는 훈훈한 만남을 가지니 인터넷의 순기능이 고맙다.  최숙희이 아침에 엄마 인연 새댁인 엄마 엄마 인생 삼선교 한옥

2022-11-20

"낚시도 좋지만 인연이 더 중요하죠" 애인낚 낚시 동호회

애틀랜타 인터넷 낚시클럽, 일명 '애인낚'은 이름 때문에 오해를 많이 사기도 한다. 카페 회원 3000명 중 낚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호회에 가입한 타주와 한국 거주자들이 20%에 달한다.   '동호회 회장'보다는 '카페 매니저'가 더 익숙한 최재정 스티븐스 로펌 사무장은 애인낚에서 닉네임인 '방게'로 통한다. 애인낚 회원들은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른다.   최 매니저는 24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낚시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전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낚시를 접했다는 그는 "좋은 낚시꾼들을 만나고 싶어서 카페를 개설했다"고 본래의 취지를 설명했다.     애인낚은 지난 2011년 개설된 이래 낚시가 취미인 회사원들, 주재원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입한 딸까지 다양한 회원들이 오갔으며, 현재까지도 소그룹으로 함께 낚시를 나가고 온라인 카페에서 정보 공유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회원들은 서로 낚시 스폿을 공유하고 잡고 싶은 어종에 맞는 장비를 조언하며, 초심자들의 시작을 돕기도 한다.   최 매니저는 "다들 낚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카페에서 만들어지는 인연을 더 중요시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낚시를 스포츠로서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직접 잡은 생선의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해 낚시의 세계로 빠지는 사람도 많다. 최 매니저는 "삼치, 갈치 등 직접 잡은 것들은 먹어보면 마트에서 파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최 매니저는 직접 잡은 생선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남획하거나 물고기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낚시법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은 물고기는 방생한다거나 필요 이상 포획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지키며 낚시를 하고 있으며, 회원들에게도 이를 널리 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 매니저는 "매년 물고기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며 "남획은 하지 말아야 하며, 낚시하면서도 물고기의 생명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어종마다 잡을 수 있는 개수와 크기 등 규정이 정해져 있음을 언급하며 이러한 규칙을 애인낚을 통해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최 매니저는 "미국에서는 지역에 따라 잡히는 어종이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어종이 있는 곳으로 가면 대부분 다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지아가 낚시 환경으로서 어종이 다양하거나 최상의 지역은 아니지만, 가까운 플로리다나 미시시피로 가는 것을 추천했다.     그는 "도밋과의 쉽스헤드(Sheepshead)라는 어종이 지금 철이다. 특히 미시시피에서 잡은 것은 굴의 향이 느껴진다"며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마지막으로 낚시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월마트나 배스 프로샵에서 파는 저렴한 장비로도 충분히 시작이 가능하다"며 "장비나 낚시 스폿 등에 대한 질문이 있다면 우리 카페를 찾아와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카페 주소=cafe.naver.com/fishingbuddy 윤지아 기자낚시도 인연 카페 매니저 낚시 스폿 카페 회원

2022-10-24

[독자 마당] 부부의 인연

벌써 인생 80의 중턱을 달리다 보니 신문을 보면 부고란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얼마 전에 친지 두 쌍의 부부가 세상을 떠났다. 신기한 일은 두 커플 모두 하루 또는 몇 시간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부부의 장례식을 같은 날 치렀다.   오늘은 참으로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배우 강수연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80을 넘어 세상을 떠나면 아무도 ‘아깝다’ 하지 않고 묵묵히 조의만 표하지만 여배우 강수연의 사망 소식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안타깝게도 한창 일할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애도를 한다.     타인의 죽음이 슬픔지만 가족간의 사별은 더욱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이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즉 부활 후에는 남편, 아내, 자식이라는 개념도 없어지고 모두가 천사와 같이 되는 것이다. 즉 모두가 천사처럼 생활하면서 즐겁고 평화로운 일상만 있을 뿐, 세상에서 같이 부부로, 자식으로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부간의 인연은 세상에서 뿐이다. 세상 무대에서 남편과 아내로 만났다가 그 연극이 끝나면, 그 사명이 끝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부부의 인연은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러므로 결혼 서약의 효력도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배우자를 잃는 것이라고 한다.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 크나큰 슬픔이다.     하지만 슬픔에 함몰되어 본인에게 주어진 마지막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남은 생애 동안 하고 싶은 일, 꼭 해야 할 일을 찾아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부부 인연 여배우 강수연 사망 소식 남편 아내

2022-05-17

[대통령과 풋불 인연] 케네디, 구단주 압박 흑인 풋볼 시대 열어

풋볼에서 정치권도 빠질 수 없다. 역대 대통령들과 각별한 관계를 정리해봤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풋볼의 규정을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루즈벨트는 1905년 백악관 미팅에서 풋볼 규정 하나를 제도화했다. 바로 ‘전방 패스’ 룰이다.   그 이전까지 풋볼에서는 전방 패스와 후방 패스가 난무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플레이는 현대 풋볼보다 훨씬 거칠어 부상자가 속출했고 대학풋볼 선수들의 사망률도 높았다. 루즈벨트는 주요 대학에 풋볼 규정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전방으로만 패스할 수 있는 규정이 나왔고 미국대학체육협회(NCAA)라는 조직 탄생의 배경이 됐다.   ▶리처드 닉슨= 수퍼보울 우승팀을 처음으로 백악관에 초대했다.   ▶존 F. 케네디= 흑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케네디는 흑인에게 NFL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조지 프레스턴 마샬 구단주에게 흑인 선수들도 기용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1962년에 바비 미첼이라는 사상 첫 흑인 NFL 선수가 탄생했다. 케네디는 또 1961년 스포츠 중계법 제정에 힘을 썼다. NFL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스포츠리그가 된 데에는 이 법의 역할이 컸다.   ▶린든 B. 존슨= 1966년 NFL과 AFL의 합병을 이뤄내 수퍼보울이 탄생했다. 원용석 기자대통령과 풋불 인연 케네디 구단주 케네디 구단주 흑인 풋볼 대학풋볼 선수들

2022-02-11

[이 아침에] 인연을 찾는 법

누구든 한 분야에 오래 일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고 달인이 된다. 사람을 소개하며 좋은 인연을 맺도록 하는 것을 ‘업’으로 사는 나 역시 그렇다.   인생의 3분의 2는 타인과 짝을 맺어 누리는 결혼생활이고, 그 결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의 출발점은 ‘짝’을 만나는 것.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이민사회다. 따라서 짝을 고를 모집단이 적다. 짝을 고르고 만나는 것이 훨씬 더 힘이 든다는 얘기다. 짝으로 선택할 숫자가 많지 않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빼버리면 일단 반쯤은 성공이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그 노하우를 소개한다. 누구를 선택하지 않으면 될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진실성이 부족하고 목적의식이 강한 사람’ 이런 사람은 버려라. 왜? 허상에 빠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허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대개 3가지 특징이 있다.   1. 언제나, 표정이 굳어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시적으로 표정이 굳기는 한다. 하지만 늘 굳어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2. 처음에는 매우 상냥하고 매우 친절하다.   상대방의 관심을 끌고 환심을 사기 위한 일시적 행동에 속지 말 것을 당부드린다. 몇 차례 사귐을 지속해보면 포장된 겉모습이 벗겨지고 다시 굳어진 본 모습이 드러난다.   3. 바탕이 인색하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맞선뿐만 아니라 대개의 약속에도 ‘식사 약속’을 않는다. 맞선은 언제나 호텔 커피숍 3시다. 헤어지는 시간은 5시. 이것은 식사하지 않으려는 꼼수다. 식사 비용을 아끼려는 인색함 그 자체다. 또 몇 번 만난 뒤에는 공원 벤치로 가자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케이스일까? 이것 또한 인색함이다. 이런 사람은 외양이 빼어날지라도 결혼 생활은 불문가지.   덧붙여 맞선을 볼 때 꿀팁을 소개하겠다.   1. 키가 작은 분은 천장이 높은 장소를 선택하지 말라. (시각적으로 더 작아 보인다)   2. 얼굴에 약간의 잡티가 있으면 저녁 시간 반드시 조명을 등지고 앉아라. (피부의 잡티가 커버되기 때문이다)   3. 노총각, 노처녀 재혼 커플은 반드시 첫 미팅은 로맨틱한 장소에서 저녁에 하라. (햇빛 쏟아지는 낮에 제과점에서의 만남을 상상해보라)   4. 어깨가 좁은 남자는 체크무늬 상의를 입으면 좁은 어깨가 커버된다. 서 헬렌 / 뉴저지 전문직 결혼 상담소 소장이 아침에 인연 식사 약속 저녁 시간 식사 비용

2021-12-19

[삶의 향기] 오래된 인연에 감사하며

 며칠 전 한 스님과 통화하다 환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스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 동생이 결혼을 해서 조카가 태어났는데, 얼굴 생김새는 물론이요, 커갈수록 하는 행동이 어머니와 꼭 닮았다는 얘기였다. 말투와 행동이 어머니 살아생전처럼 똑같이 하는데, 아마도 모친의 환생인 듯싶다며 스님은 신기해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코웃음 칠 소리겠지만, 사실 이런 얘기는 불가에 흔하다. 환생을 따지지 않아도 먼저 떠나간 소중한 인연이 다시 태어나 내게 온 것 같다는 얘기 말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 겪어보고 느끼는 것이 더 강렬해서 자신도 모르게 ‘혹, 그 인연인가’ 하게 되는 일이 더러 있다. 내 삶의 편린들만 돌아보아도 인연이란 참! 알 수가 없다.   전생 일은 금생을 보면 알 수 있고, 내생 일도 금생을 보면 알 수 있다던데, 전생의 나는 뭐였으려나? 빙글빙글 또 망상 속을 서성였다. 전생까지는 모르겠고, 얼마 전 기이한 인연을 만나긴 했다. 일본 유학시절, 우연히 내 이삿짐을 날라준 유학생들을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내가 사는 청룡암에 별채를 개조하여 최근에 다실로 꾸몄다. 이름하여 ‘환희당(기쁘고 행복해지는 집)’이다. 다실이 완성된 후, 이곳에 옛 신중탱화(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의 그림)를 꺼내 모셨다. 예전에 살던 스님이 오래된 탱화를 떼어내고 새로 조성하여 법당에 모시는 바람에, 옛 탱화는 천에 싸인 채 벽 뒤에서 삭아가고 있었다. 요사채(스님들 처소) 보수공사를 하다가 궁금하여 꺼내보았는데, 과연 복원작업이 시급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는 스님께 탱화 봐줄 분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함께 온 교수님들이 놀랍게도 20년 전 내 이삿짐을 날라주었던 그 유학생들이었다.   반가움에 한참을 추억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들이 처음 그린 작품이 우리 절에 모신 새 신중탱화였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탱화 밑을 살펴보니, 과연 그분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신들이 처음 그린 불화가 이곳 신중탱화였고, 이제 다시 복원할 불화 역시 자신들이 직접 떼 낸 이 암자의 신중탱화인 셈이다.     게다가 무슨 인연인지 20년 전 딱 한 번 만나 이사를 도와준 스님이 하필이면 이 절을 맡고 있으니, 인연이 기이하다.   요즘엔 세상이 하도 빨라서 과보도 LTE, 아니 5G 속도로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생에 지어 이생에 받는 과보가 아니라, 돌아서면 받는 그런 신속한 인과의 시대를 우리가 산다고 말한다.     물론 20년이면 그리 빠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게 무슨 인연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피천득 선생의 유명한 ‘인연’도 있지만 요즘엔 다들 냉철해서 그런지 만남과 이별도 폐기처분하듯 빨리 흘려버리는 듯싶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들어야 할 품이 작지 않듯, 좋은 인연에도 많은 공이 필요하다. 인과가 빠르든 느리든 적어도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가 필요할 테고, 그래야 인연의 끝도 좋은 법이다.   현대인들은 고운 인연을 맺으려 해도 퍽 예민해한다. 농담 건네기도 쉽지 않고, 운치 있는 망상을 나누기도 어렵다. 물론 번거로운 일들과 코로나에 대한 스트레스, 아름다운 산과 강·바다도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어 답답할 테니, 이해는 간다.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이르길 “우리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작은 일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가끔은 모든 것을 너무 개인적인 지적으로 받아들여 아픔과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했다.     맞다. 나만 보아도 인생의 많은 날들을 피로에 지쳐 까다롭게 굴었던 것 같다. 신경초처럼 과민해서 좋은 일이 없는데, 가시 돋친 채 산듯하다. 우리 모두 따사롭게 만물을 보듬는 저 맑은 해처럼, 풍요로운 가을 달처럼 넉넉하게 서로를 비추며 살았으면 좋겠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삶의 향기 인연 감사 스님들 처소 어머니 살아생전 추억 이야기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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