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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오래된 인연에 감사하며

 며칠 전 한 스님과 통화하다 환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스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 동생이 결혼을 해서 조카가 태어났는데, 얼굴 생김새는 물론이요, 커갈수록 하는 행동이 어머니와 꼭 닮았다는 얘기였다. 말투와 행동이 어머니 살아생전처럼 똑같이 하는데, 아마도 모친의 환생인 듯싶다며 스님은 신기해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코웃음 칠 소리겠지만, 사실 이런 얘기는 불가에 흔하다. 환생을 따지지 않아도 먼저 떠나간 소중한 인연이 다시 태어나 내게 온 것 같다는 얘기 말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 겪어보고 느끼는 것이 더 강렬해서 자신도 모르게 ‘혹, 그 인연인가’ 하게 되는 일이 더러 있다. 내 삶의 편린들만 돌아보아도 인연이란 참! 알 수가 없다.
 
전생 일은 금생을 보면 알 수 있고, 내생 일도 금생을 보면 알 수 있다던데, 전생의 나는 뭐였으려나? 빙글빙글 또 망상 속을 서성였다. 전생까지는 모르겠고, 얼마 전 기이한 인연을 만나긴 했다. 일본 유학시절, 우연히 내 이삿짐을 날라준 유학생들을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내가 사는 청룡암에 별채를 개조하여 최근에 다실로 꾸몄다. 이름하여 ‘환희당(기쁘고 행복해지는 집)’이다. 다실이 완성된 후, 이곳에 옛 신중탱화(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의 그림)를 꺼내 모셨다. 예전에 살던 스님이 오래된 탱화를 떼어내고 새로 조성하여 법당에 모시는 바람에, 옛 탱화는 천에 싸인 채 벽 뒤에서 삭아가고 있었다. 요사채(스님들 처소) 보수공사를 하다가 궁금하여 꺼내보았는데, 과연 복원작업이 시급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는 스님께 탱화 봐줄 분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함께 온 교수님들이 놀랍게도 20년 전 내 이삿짐을 날라주었던 그 유학생들이었다.
 
반가움에 한참을 추억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들이 처음 그린 작품이 우리 절에 모신 새 신중탱화였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탱화 밑을 살펴보니, 과연 그분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신들이 처음 그린 불화가 이곳 신중탱화였고, 이제 다시 복원할 불화 역시 자신들이 직접 떼 낸 이 암자의 신중탱화인 셈이다.  
 
게다가 무슨 인연인지 20년 전 딱 한 번 만나 이사를 도와준 스님이 하필이면 이 절을 맡고 있으니, 인연이 기이하다.
 
요즘엔 세상이 하도 빨라서 과보도 LTE, 아니 5G 속도로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생에 지어 이생에 받는 과보가 아니라, 돌아서면 받는 그런 신속한 인과의 시대를 우리가 산다고 말한다.  
 
물론 20년이면 그리 빠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게 무슨 인연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피천득 선생의 유명한 ‘인연’도 있지만 요즘엔 다들 냉철해서 그런지 만남과 이별도 폐기처분하듯 빨리 흘려버리는 듯싶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들어야 할 품이 작지 않듯, 좋은 인연에도 많은 공이 필요하다. 인과가 빠르든 느리든 적어도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가 필요할 테고, 그래야 인연의 끝도 좋은 법이다.
 
현대인들은 고운 인연을 맺으려 해도 퍽 예민해한다. 농담 건네기도 쉽지 않고, 운치 있는 망상을 나누기도 어렵다. 물론 번거로운 일들과 코로나에 대한 스트레스, 아름다운 산과 강·바다도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어 답답할 테니, 이해는 간다.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이르길 “우리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작은 일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가끔은 모든 것을 너무 개인적인 지적으로 받아들여 아픔과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했다.  
 
맞다. 나만 보아도 인생의 많은 날들을 피로에 지쳐 까다롭게 굴었던 것 같다. 신경초처럼 과민해서 좋은 일이 없는데, 가시 돋친 채 산듯하다. 우리 모두 따사롭게 만물을 보듬는 저 맑은 해처럼, 풍요로운 가을 달처럼 넉넉하게 서로를 비추며 살았으면 좋겠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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