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꿈꾸는 분야 멘토 찾아라"…이지훈 일리노이주 종신 연방판사
109년의 미주 한인 이민 역사상 종신제 연방판사 자리에 오른 한인은 3명에 불과하다. 샌프란시스코 제9항소법원에서 근무했던 고 허버트 최(1916~2004·한국이름 최영조) 판사와 2010년 임명된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 루시 고(43·한국이름 고혜란) 판사, 그리고 지난 13일 취임한 일리노이주 북부지방법원 이지훈(44·미국이름 존 이) 판사다. 그런 점에서 이 판사의 취임은 미주 한인사회 전체의 경사인 것이다. 17일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법원에서 이 판사를 만났다. -지난 주 취임식을 했는데, 공식 업무는 언제 시작했나. “취임식에 앞서 지난달 4일부터 연방판사로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식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수석판사로부터 300건이 넘는 사건을 배당받았다. 19일에는 연방판사로는 처음으로 시민권 선서식을 이끌게 된다.” -연방판사가 다루는 재판은 무엇인가. “이민을 포함해 반독점·특허 등 연방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다. 또 사건이 2개 이상의 주에 걸쳐 있으면 연방법원에서 처리한다." -부모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인데. “독일에서 태어난 후 잠시 한국에서 외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네 살 때 시카고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미국에서 보석스쿨을 거쳐 보석상을 오래 운영하셨다. 8학년 때 현재 의사인 아내를 만났는데, 부모님끼리 서로 아는 사이여서 친해졌다. 자녀는 14살 캐슬린과 10살 노아, 둘이다. 두 명의 남동생은 각각 스탠퍼드대와 노스웨스턴대에서 기계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취임식 당시 미국이름을 갖게 된 사연과 유치원에서 생긴 일을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에 처음 가는 날 미국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평범한 이름 중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존을 골랐다. 유치원에 갈 때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는데, 빈 시리얼 박스를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콩이 든 캔을 가져갔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여분의 시리얼 박스를 주셨다. 이러한 경험들이 나 자신을 보다 겸손하게 만들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판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변호사를 거쳐 연방판사가 된 계기는. “하버드대에 진학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자연스럽게 로마 시대 철학자이자 변호사였던 시세로(Cicero)를 알게 됐고 법률을 통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 뒤 법대에 진학했다. 법대 졸업 후에는 워싱턴 DC의 법무부에서 환경 문제와 관련한 일을 하게 됐다. 이후 로펌으로 옮겼지만 이는 다시 공직으로 가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연방판사가 되려고 한 것은 법대 졸업 후부터 가졌던 생각인 셈이다. 또 다른 한인 연방판사인 루시 고는 하버드 법대 2년 후배로 법무부에 같이 소속됐었다." -딕 더빈 연방상원의원이 추천을 했는데. “더빈 의원이 구성한 추천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서류검토와 심층면접을 통해 추천을 받았다. 더빈 의원은 이전에 몇번 만나 인사를 나눈 적만 있던 사이였다. 몇 명의 후보자가 지원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과 연방상원의 인준을 받았다. 내부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내가 지명을 받게 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아시안을 비롯한 소수계 연방판사의 숫자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연방판사가 되기를 바라는 한인 예비 법조인들에게 해 줄 조언은. “멘토가 중요하다.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이미 활약 중인 멘토를 찾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자주 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현재 같은 법원의 제임스 홀더만 수석판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인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될 생각은. “환영한다. 사무실로 전화를 해도 좋고 e-메일을 보내도 좋다. 그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어떤 판사가 되고 싶은가. “일반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판사, 인간애를 가지고 법률을 다루는 판사로 기억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했다. 갈 길이 멀다.” ◆종신제 연방판사=연방의원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지명한 후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와 본회의 인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법원 9명, 항소법원 179명, 지방법원 677명, 국제무역법원 9명 등 총 874명이 재직 중이다. 지방법원 판사 연봉은 17만4000달러다. 시카고=박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