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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인터뷰] 이지훈(존 Z.) 연방판사, 미 연방판사 된 광부-간호사의 아들…이지훈 연방판사의 과거 현재 미래

"하버드법대 졸업후 연방판사 생각"
"갈 길 멀지만 인간애 갖춘 판사되고파"
"젊은 날 내가 꿈꾸는 분야 멘토 찾아라"

시카고에는 두 명의 한인 연방판사가 있다. 지난 13일 취임식을 가진 이지훈(44•미국명 John Z. Lee)판사와 이보다 1년 앞서 취임한 김영배(미국명 Young Kim) 판사가 주인공이다. 두 명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아버지가 파독광부였고 판사로 임용되기 전 연방 기관을 거친 점, 아시안아메리칸변호사협회, 한인변호사협회를 통해 커뮤니티봉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점 등이다.

시카고 이민역사의 큰 축을 이룬 독일 광부의 아들 둘이 연방판사로 임명될 만큼 한인이민역사가 깊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 17일 오후 아직 정리도 덜 될 만큼 취임식의 설렘과 분주함이 남아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이지훈 판사는 시종 차분한 어조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했다.

-지난 주 취임식을 가져는데 공식 업무는 언제 시작했나.

“취임식에 앞서 지난달 4일부터 연방판사로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식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수석판사로부터 300건이 넘는 사건을 받았다. 19일에는 연방판사로는 처음으로 시민권 선서식을 이끌게 된다.”



-연방판사가 하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

“연방법을 다루는 사건을 맡는다는 점이 큰 차이다. 이민을 포함해 반독점, 특허 등은 연방법이다. 또 사건이 두 개 이상의 주에 걸쳐 있고 7만5천달러 이상의 피해액을 낸 사건도 연방법원에서 처리한다. 같은 연방판사인 Magistrate Judge는 임기가 8년이지만 나와 같은 지역 연방판사(District Federal Judge)는 종신제고 연방상원 의원의 추천과 대통령의 지명, 연방상원의 인준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 다르다. 현재 북일리노이 연방법원에는 20명의 지역 연방판사와 Magistrate Judge, 파산판사 등을 합치면 70명이 소속돼 있다.

-부모가 파독광부와 간호사였다가 어렸을 때 시카고로 이주했다.

“독일에서 태어났고 잠시 한국에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후 네 살 때 시카고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보석스쿨에 다니는 동안은 일리노이주 퀸시에서 살기도 했다. 아버지는 로렌스와 켓지길에서 보석상을 오랫동안 경영하셨다. 알바니팍과 피터슨팍에 살았고 고등학교는 로욜라아카데미를 졸업했다. 8학년때 현재 의사인 아내를 만났는데 부모님끼리 서로 아는 사이여서 친해졌다. 자녀는 14살 케이틀린과 10살 노아, 둘이다. 두 명의 남동생은 스탠포드대와 노스웨스턴대에서 기계공학과 경제학을 각각 전공했다.”

-취임식 당시 영어 이름을 갖게 된 사연과 유치원에서 생긴 일을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에 처음 가는 날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평범한 이름 중에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존을 골랐다. 유치원에서 갈 때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는데 빈 시리얼 박스를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콩이 든 캔을 가져갔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여분의 시리얼 박스를 주셨다. 이러한 경험들이 나 자신을 보다 겸손하게 만들었다. 이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는 판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변호사를 거쳐 연방판사가 된 계기는.

“하버드대에 진학해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자연스럽게 로마시대 철학자이자 변호사였던 시세로(Cicero)를 알게 됐고 법률을 통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 뒤 법대에 진학했다. 법대 졸업 후에는 워싱턴 D.C.의 연방법무부에서 환경문제와 관련한 일을 하게 됐다. 이후 로펌으로 옮겼지만 이는 다시 공직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연방판사가 되려고 한 것은 법대 졸업후부터 가졌던 생각인 셈이다. 참고로 또 다른 한인 연방판사인 캘리포니아주의 루시 고는 하버드 법대 2년 후배로 워싱턴 D.C.의 연방법무부에서 같이 소속됐었다.“

-딕 더빈 연방상원이 추천을 했는데.

“상원의원이 조직한 추천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서류검토와 심층면접을 통해 추천을 받았다. 더빈 의원은 이전에 몇번 만나 인사를 나눈 적만 있던 사이였다. 몇명의 후보자가 지원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후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연방상원에서 인준을 받았다. 내부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내가 지명을 받게 됐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아시안을 비롯한 소수계 연방판사의 숫자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연방판사가 되기를 바라는 한인 예비법조인들에게 해줄 조언은.

“멘토가 중요하다.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이미 진출해 활약하고 있는 멘토를 찾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자주 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나도 현재 북일리노이 연방법원의 제임스 홀더만 수석판사를 아시안아메리칸변호사협회 소속으로 만났었고 지속적으로 알고 지냈다. 또 로펌의 파트너와 연방법무부, 아시안아메리칸변호사협회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 역시 큰 도움이 됐다. 아울러 이미 연방판사가 됐던 영 김, 에드몬드 장 연방판사도 내가 판사가 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인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될 생각은.

“환영한다. 사무실로 전화를 해도 좋고 이메일을 보내도 좋다. 그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이제 막 취임을 했지만 어떤 판사가 되고 싶은가.

“일반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판사, 인간애를 가지고 법률을 다루는 판사로 기억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했다. 갈 길이 멀다.”

<글•사진=박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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