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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꿈에도 소원은 통일

정부나 단체 행사에서 자주 접하는 순서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제창이다. 이 노래는 북한에서도 부르는 민족의 노래다. 그만큼 한민족은 남북통일에 대한 갈망이 크다. 그런데 최근 통일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을 ‘적대적인 2개의 국가’로 규정했고, 남한에서는 일부 종북 정치인이 이에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보여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한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 통일하겠다며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일으킨 원죄가 있는 집단 아니던가. 그런데도 난데없는 북한의 주장에 호응하는 좌파 정치인들이 한두 명씩 나타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서슴지 않고 있다.     ‘통일’이라는 말은 수십 년 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단어다. 무엇보다 통일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던가. 더 따질 필요 없이 통일은 남북의 사람들이 목청 높여 외쳐온 민족의 소망이다. 우리의 지상 목표요, 최대의 민족적 과제다.   그런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역임한 정치인이 지난달 열린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느닷없이 “통일하지 말자”며 ‘남북 2개 국가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좌파 인사들의 ‘통일 포기’ 발언이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김정은은 ‘북남은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라며 남한은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쳐부숴야 할 철천지원수 적대국이라는 독설을 토했다. 이후 북은 ‘통일 지우기’를 하고 있고 남북이 맺은 모든 합의를 사실상 무효화 했다.     남한의 통일 반대자들은 ‘두 개의 국가’ 체제를 만들기 위해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삭제하거나 개정하고 국가보안법도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또 통일부도 정리하고 우리 정부의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도 내려놓자고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자유당 정부 때 전쟁 중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북진통일’을 부르짖었고, 군사정권 시절엔 ‘반공, 타공, 멸공’등 이념의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문민정부가 들어서 점차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 너그러워지자 북한의 입맛에 맞춘 친북 세력이 나타났고 심지어 종북, 충북적 모습을 보이는 이들도 나타났다.     두 개의 국가론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를 해체하는 것이다. 또 우리 헌법을 부인하고 특히 탈북민의 인권과 혈연을 영구히 단절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종북 좌파인사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친북 여론에 동조하는 사람이 줄어들자 이들은 방향을 틀었다.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북한은 최대한 남북 접촉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좌파 인사들의 통일 포기론은 여기에 동조하는 것이다.     솔직히 남북의 국력 차이는 비교조차 안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통일한다면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길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아는 친북·좌파 인사들은 통일 논의를 무조건 피하고 싶은 것이다.     통일은 헌법적 명령이다. 헌법 3조·4조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규정하고, 국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추구토록 하고 있다. 헌법 66조에는 대통령에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올해 국군의 날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그날 북한 정권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했다. 김씨 왕조의 노예로 살고 있는 북한 동포를 해방하는 길은 오직 통일뿐이다. 통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5000만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여된 헌법적 명령이고 의무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소원 통일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통일 포기 남북기본합의서 체제

2024-10-14

[중앙칼럼] 6·25 참전용사들의 마지막 소원

6·25참전유공자회 이재학 회장이 며칠 전 들려준 이야기다. 수년 전 참전유공자회 회원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맥도날드 매장에 갔다고 한다. 참전유공자회 모자를 쓴 시니어 남성 대여 섯 명이 매장으로 우르르 들어가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가 보다. 매장 안에서 자녀들과 햄버거를 먹고 있던 한 백인 여성이 이 회장 일행에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더니 이 회장 일행이 쓴 모자를 가리키며 어떤 분들이냐고 묻더란다. 이 회장은 “백인 여성에게 ‘우리는 참전용사들’이라고 말했더니 ‘나라를 위해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더라. 그러더니 자신이 커피값을 내겠다고 했다”며 “모르는 사람인데도 우리가 한 일을 인정해 주는 그 한마디를 들으니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경험을 또 했단다. 그것도 LA한인타운에서였다.     이 회장은 “참전유공자회 회원들과 커피를 마시러 로데오 갤러리아 몰 안에 있는 베이커리에 들어갔다. 우리가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쓴 게 이상했는지 종업원이 우리를 보더니 어떤 분들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참전용사라고 했더니 나중에 합류한 회원들의 커피값을 받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이어 이 회장은 “한인타운에서 한인으로부터 그런 대우를 받은 게 처음이었다. 그 젊은 직원의 마음 씀씀이에 회원 모두가 정말 감사해 했다”고 덧붙였다.     6·25참전유공자회와 월남전참전자회 회원들은 외출할 때면 가능한 한 제복을 입고 다닌다. 한국의 국가보훈처가 2년 전 제작한 제복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참전유공자들도 모두 받았다.     이 회장은 “한국 정부가 모든 참전유공자 가정에 제복을 보내줬다. 제복이 담긴 가방에는 ‘당신은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더라.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당시 심정을 들려줬다.     아이보리색 사파리 재킷에 남색 바지, 흰색 반소매 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회원들의 모습은 예전 주머니와 어깨 부위에 기장과 훈장이 달린 조끼를 입고 다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밝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6·25참전유공자회 임원들의 평균 연령은 80세 후반이었다. 감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최병길 유공자의 경우 올해 95세를 맞았다. 그는 불과 15세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고 했다. 권영구 수석 부회장은 40밀리 포탄 2개를 짊어지고 경주에서 밤새 이동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육군협회 최만규 회장은 “한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는 생존 참전유공자는 830여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가주에 150여명 정도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LA지역도 공식 회원 수는 70명이지만 실제 활동하는 분은 30여명 정도다. 그래서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전했다.    6·25참전유공자회는 최근 LA한인타운에 참전비를 세우는 프로젝트 추진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오렌지카운티에 세워진 6·25 참전비는 미군 이름들만 기록돼 있어서 한인타운에 별도의 참전비를 세웠으면 하는 희망이지만 누가 끝까지 남아 진행할 수 있을지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금 미국에 한류가 널리 퍼지는 것을 보면 참전유공자들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이 목숨 바쳐 싸웠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런 역사를 후손들에게 좀 더 알렸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소멸하는 단체다. 그나마 지금은 종종 만나서 안부를 나누지만 언젠가는 헤어지고 결국은 단체도 사라질 것”이라며 “하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슬픔은 없다. 다만 우리가 없어져도 한국전쟁의 역사는 끝까지 남았으면 좋겠다”고 담담히 말했다.     한국전쟁이 더는 ‘잊힌 전쟁’이 되지 않도록 한인 커뮤니티도 고민하고 참여해야 할 문제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참전용사 소원 참전유공자회 회원들 참전유공자회 모자 25참전유공자회 이재학

2024-06-23

[손원임의 마주보기] 나의 버킷리스트 코첼라와 소매치기

사람들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담은 버킷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단어의 유행은 어찌 보면 2007년도에 화제가 된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의 영향인 듯하다.     이 영화는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시한부 인생이 되었음을 알고 나서, 버킷리스트 여행을 떠나며 겪는 이야기들을 감동적으로 그린 코미디 드라마 영화다.     나도 물론 버킷리스트가 있고 그 중 하나가 코첼라였다. 코첼라(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 있는 인디오(Indio)의 사막 지대 코첼라 밸리에서 행해지는 음악 축제다. 1999년에 시작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축제로서 매년 4월 중순 주말인 금, 토, 일의 삼일에 걸쳐서 2주 동안 진행된다.     나는 드디어 2024년 4월 둘째 주, 12~14일에 코첼라에 딸과 함께 갔다. 코첼라 밸리는 산과 사막 지형, 팜트리가 한데 어우러져 특이하고 절묘한 광경을 자아냈고, 날씨는 예상보다 선선했다. 물론 한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씨름을 했고, 어두운 밤에는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서 한기를 느꼈다. 다행히도 코첼라축제 지역은 잔디가 깔려 있어 걷기가 아주 편했다.     우리는 10개(야외 8/어두컴컴한 실내 2)의 무대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공연들과 각종 이벤트들을 종횡무진으로 다니느라 얼마나 바빴는지 호텔에서 먹은 아침을 제외하고는 그 축제 삼일 동안 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스럽고 매우 히피스러운 분위기였다.     여기저기서 아주 크게 빵빵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는 저절로 흥을 돋우었고,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아티스트 라인업(lineup)은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장애인 전용 구역도 편리하게 잘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금요일 밤에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의 공연을 앞에서 잘 보려고 메인 스테이지쪽으로 가까이 걸어가고 있었다. 주위는 어느새 어둑어둑하니 깜깜해져 있었고 많은 인파 속에 몸이 끼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남자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며 주의를 끌었고, 나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은 순진하고 착하게도(!) 다들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보며 그의 핸드폰을 찾아주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 나를 옆에서 살짝 치는 기분이 들었고, 나는 아차 하며 내 가방을 보았다. 아이고, 맙소사! 이미 내 “스마트폰”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가방을 연 채로 모자를 넣고 그 위에 핸드폰을 얹혀 놓았기 때문에 소매치기를 당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정말 찰나의 순간 속에서 발생했다. 그때 느꼈던 아주 이상하고 묘하게 섬뜩한 기분은 아직도 느껴질 정도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후 분실물 센터에 가보니 소매치기 당한 사람들로 줄이 벌써 한참이나 길었다. 내가 너무 방심했다.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 속에도 도둑은 있기 마련이다.     나의 소원, 버킷리스트 코첼라는 내게 아주 새롭고 기쁨에 찬 경험을 안겨주었지만, 나로부터 아주 소중한 사진들과 추억, 정보를 앗아간 매우 슬픈 시간이기도 했다. 와우! 코첼라 첫날 밤의 핸드폰 소매치기 사건! 결국 인생사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따라다니는 법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버킷리스트 소매치기 소원 버킷리스트 버킷리스트 여행 핸드폰 소매치기

2024-05-28

[열린광장] 전업주부의 소원

나는 미국에서 별의별 일을 다 해보았다. 청소부, 접시닦이, 주 정부 안전 검사원, 그리고 연방 정부 안전 감사관으로 은퇴했다. 공무원직에서 은퇴한 다음에는 의료 통역 일을 했다.   하루는 ‘왼발이 들먹거리고 저려 잠을 이룰 수 없다’는 환자가 찾아왔다.  나는 의사에게 “My left leg is numb, throbbing, and tingling so much that I can hardly sleep at night”라고 통역을 했다. 아프거나 저리다는 형용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과거 남이 아픈 것을 통역했는데 요즘은 내 다리가 들먹거리며 저려서 잠을 설치는 날이 있다. 잠이 오지 않으면 누운 채 팔과 다리 근육을 긴장과 이완, 즉 힘을 주고 빼기를 한 다음, 단전호흡하면서 ‘내 맘이 편안해’라는 말을 속으로 반복하면 다시 잠이 온다. 밤에 몇 번씩 잠이 깨는 탓에 이 최면술을 반복해야 한다.   팔과 다리를 90년 동안이나 사용했으니 이제 고장 날 때가 되었나 보다. 요즘 체중도 줄었다. 배는 나왔으나 팔과 다리는 가늘어져 주름이 보인다. 3일에 한 번씩은 비타민을 한 주먹씩 먹지 않으면 무릎도 쑤신다.     김형석 교수의 말대로 저녁에 침대에 눕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오늘도 아내와 내가 집 앞에서 걷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내가 만든 반찬과 밥을 잘 먹고, 무사고 운전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내가 재작년 뇌졸중을 앓고 건강이 악화하는 바람에 내가 전업주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내게 요리 솜씨가 있는 줄 몰랐다. 특히 김치와 빵을 잘 만든다. 공무원 생활 대신 식당을 운영했으면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글 쓰는 것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다. 나는 글을 쓸 때 파란만장한 과거의 경험을 기록할 뿐, 이에 의미나 해석을 더 하는 상상의 필치(筆致)는 모자란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쓸 소재, 즉 밑천도 점차 고갈되는 것 같다.   글은 소재가 고갈되면 쓰지 못하지만, 식재료는 시장에 가면 언제나 풍부하다. 요즘 요리에 대한 관심은 건강식을 만드는 것이다. 음식 재료로는 파, 양파, 마늘, 버섯, 미역, 무, 양배추, 오이, 당근, 고추, 콩나물, 두부, 계란, 고구마, 단호박, 생선을 주로 이용한다.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드는데 유튜브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전업주부의 소원은 단순하다. 아내와 내가 양로원에 가지 않고 이 집에서 내 손으로 밥상을 차려 먹으며, 밤에는 아프거나 쑤시거나 저리지 않고 잠을 자고, 때가 오면 고종명(考終命)하는 것이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전업주부 소원 전업주부 역할 정부 안전 다리 근육

2024-02-1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새날

새날   날이 밝아오고 있다 / 나는 네게 무엇이었는가 / 눈길을 걸어야겠다 /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로 / 내 발이 녹고 눈이 녹을 때까지 / 불꽃처럼 타오르리라 / 다시 네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게 / 활 활 태우며 살아가리라 / 남은 재 한 줌까지   음력 설이다. 하늘 저편 지구의 반대편 사람들은 바쁘다. 새로운 해가 떴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떠난다. 차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북이 걸음을 걸어도 기어코 떠나고야 만다. 하늘의 반대편 이곳 시카고는 조용한 설을 맞이하고 있다. 신문이나 SNS를 통해 정보를 얻지 않으면 구정인지도 모르고 지나게 된다. 고향이 너무 멀어서일까? 너무 오래 이곳에 살아서일까? 소리 없이 새로운 하루가 이곳에서도 움트고 있다.   해가 뜨는 것과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은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구 위 모든 나무와, 들녘의 꽃들과,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와, 빌딩의 숲들과, 그 사이를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들 모르게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거대한 우주의 하늘 속에서 매일 기울어진 체 스스로 돌고 있다는 사실은 입증되어진 지 오래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서로 부딛히지도 않고 서로의 거리를 유지한 채 잘 살아가고 있다.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서로 밀쳐내면서 기막힌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을 지나고 있는 오늘 새벽 창가에 눈이 내렸다. 얇은 솜이불을 펼쳐 놓은 듯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얼마 후 먼동이 트고 하루가 밝아 올 것이다. 밤과 낮의 구별은 단순히 공간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먼 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바라봄의 위치에 따라 밤이 될 수도 한편으론 낮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판단은 우리의 시선에 따라,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진실이 되고 거짓이 될 뿐이다.   벽난로에 불을 부친다.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나무가 탄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 침잠해 있던 마음의 열정이 다시 일어난다. 나무를 뒤집어 주면 더 활 활 타 오른다. 삶의 열정이 식어 질 때 무섭게 타오르던 불꽃도 사그라질 것이다. 불꽃같이 타오르는 새날이 되기를 마음 속에 다짐해 본다. 일 년을 불꽃같이 살아간 후에 다시 새날 앞에 설 것이다.   설을 맞으면서 사람들은 소원 하나쯤은 모두 가지고 있다. 가족의 행복을 소원하기도 하고, 무너져 내린 건강을 회복하기 원할 것이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를 소원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도모하기를 원할 것이다. 꿈이란 의지로 세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새싹이 자라나듯, 꽃이 피어나듯, 낙엽이지듯, 오늘같이 눈이 내리듯, 구름이 바람에 흐르듯이 내 안에서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생명력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아침이 오고 있다. 새날에 대한 기대와 감사가 함께 다가오고 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얼마나 견딜 수 없는 설레임인가?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일 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음은 또한 얼마나 귀한 일들인가. 나에게도 작은 소원이 있다. 내 속에 생각과 언어들을 꾸밈 없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원하고 있다. 창밖에는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아침은 샤프란 향기처럼 내 마음을 채우고 있다. 자주 찾는 호수에 나가 그리운 사람에게 그리움을 전해야겠다. 어서 일어나라고.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새날 미시간 호수 소원 하나쯤 하늘 저편

2023-01-25

[삶과 믿음] 현대인의 마음공부

옛날 중국의 어떤 동네에 한 약장사가 나타났습니다. 시장에 서서 그는 자기가 파는 환약이 참으로 신령하고 효험이 있고, 이 환약 한 알을 먹고 소원 하나를 말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약장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장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우선 이 약 한 알을 공짜로 줄터니 소원이 무엇인가를 말해 보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사가 잘 되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했고, 장애인 자식을 가진 한 여인은 자기 자식이 정상인이 되는 것이라 했고, 한 청년은 멋진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어떤 꼬마에게 니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꼬마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 소원은 그 환약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것이에요!” 말했습니다. 환약 한 알에 한 가지 소원만 이루어진다고 하니, 환약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면 환약을 수 없이 만들어서 모든 소원을 다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실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신기의 영약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달라지면 예를 들어 마음을 잘 돌려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잘 용서하고, 너그러워지고, 보다 긍적적으로 되면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 마음이 바꾸어져서 나쁜 버릇이 고쳐진다면 예를 들어 더 부지런해 지고, 어떤 분야에서 더욱 지혜로와지거나 삶에서 용기있게 여러 선택을 잘 하게 되면, 우리 주변 환경이 개척되고 우리 인생이 점점 성공적으로 됩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결국 우리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이 짓는 것이다.” 이가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이요, 진리의 실상입니다. 우리 마음이 바뀌어 질 때 우리 인생과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18세기 초까지 유럽에서는 일부 계층 사람들을 제외하고 태반의 사람들이 극히 궁핍한 생활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유토피아가 실현된다고 당시에 생각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고, 의식주 기본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유토피아가 곧 실현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진국에서도 사람들 태반이 유토피아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우리의 소득이 몇십 배 증가했지만, 사람들의 행복이 몇십 배 증가했을까요? 우울증과 자살율은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 특히 이 ‘마음공부’가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의 불행의 원인이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잠 잘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비교심, 화, 좌절, 경쟁심으로 말미암은 불안과 좌절 등 우리 불행의 태반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채찍질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채찍질해야 한다는 것은 알아도 정작 우리 인생에서 어떤 문제가 있으면 이를 나의 ‘마음’에서 찾기보다 주변 환경에서 찾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21세기의 화두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내 인생과 운명의 주인공이 되는 이 나의 마음을 심각히 한번 생각해 보고 이를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피부와 몸을 가꾸는 것 처럼….   어떤 산에 두 명의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둘 다 체력도 비슷하고 같은 시간 동안 일을 했는데 한 나무꾼이 왜 자기 친구가 항상 더 많은 나무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친구를 보니, 그는 쉬는 시간에 도끼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잘 선 도끼로 일을 하니, 같은 시간에 훨신 많은 나무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선과 명상 혹은 기도를 해서 우리 마음을 맑히고, 경전 공부 등을 통해 우리 마음을 밝히면, 날썬 도끼로 나무를 하는 것 처럼 우리 인생이 더욱 풍요롭고 성공적으로 될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마음공부 현대인 우리 마음 소원 하나 오늘날 선진국

2022-08-18

[기고] 아직도 ‘통일은 우리의 소원’ 인가

흔히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분단국가로 현존하는 나라가 더 있다. 키프로스, 아일랜드가 분단된 상태이며, 중국도 엄밀히 말하면 분단국가이다.     반대로 분단국에서 통일을 성취한 국가로는 독일, 베트남, 예멘이 있다.  독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평화적 통일을 이루었지만,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통일되었고, 예멘은 내전을 치르다가 합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분단국가(Divided Nation)란 본래는 하나의 국가였으나, 어떤 역사적 계기로 인해 복수의 지역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통치 기구가 공존하는 불안정한 국가를 말한다.       우리 세대는 어렴풋이 6·25 전쟁을 경험했고, 남과 북의 분단 현실(이산가족, 실향민, 이념 등)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다. 전쟁 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란 동요를 수도 없이 부르며 자랐다. 5·16 쿠데타 후에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말을 엄숙히 암기해 가면서 중,고교를 마쳤다. 그만큼 남북통일과 민족중흥은 우리 세대의 시대적 과제였다.     한국인이라면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1990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될 때, 한국에도 통일의 열망이 한껏 고조되었었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 천연자원에 남한의 자본과 기술력을 합친다면 ‘통일은 대박이다’ 라는 선언이 나오기도 했다.  서독 정부도 동독의 값싼 노동력, 토지개혁, 지하자원, 낙후된 공장 시설의 재건 등 양독의 경제부흥 시너지 효과를 추산하며 오직 희망과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에 따라 발 빠르게 동독지역에 공장을 짓고 시설을 이전한 기업들이 증가했지만, 동독의 청년들은 앞다투어 서독으로 계속 이동해 갔고, 노인층만 남은 동독엔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벌어졌다. 당초 기대와는 정반대 현상이 초래되었다.   서독은 갑자기 몰려오는 청년인구의 과부화로 실업률을 감당하지 못하자 직장마다 동독인 취업 할당제가 부여되었다. 필자는 2000년부터 5년간 독일 주재 근무를 하면서 통독 후의 경제, 사회, 문화의 격차를 실감하면서, 우리 회사에 함께 근무했던 동독인들의 의식구조, 행동과 능력, 경쟁력 등이 서독인보다 현저히 낮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통독 후 10년이 지났지만, 동독지역은 여전히 폐허로 무성한 잡초와 유실된 도로망, 교량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동독에 투자했던 시설들은 결국 해체되어 다시 중국으로 이전하는 막대한 손실도 발생했다. 현재 독일은 통일된 지 32년째이다. 그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엄청난 비용과 국민적 희생을 불러왔다. 사실상 동독을 생각보다 훨씬 비싸게 구입한 셈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우리의 소원은 평화’ 라고 동요를 개사해 부른다. 그들도 통독의 30년 사례를 보고, 통일의 대가와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섣부른 통일로 자칫 함께 망하는 길보다 ‘각자도생 (各自圖生)’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결혼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듯 통일도 부담스럽게 여긴다. 통일 없이도 평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군사력, 경제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타협이나 굴종으로 또는 어떤 대가를 주고 얻은 평화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젊은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통일의 비전이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기대가 낮고,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관심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들에겐 ‘국가에 대한 희생’에 주춤하며 ‘생존 개인주의’ 가 핵심 가치관이 되었다.       세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화되면 통일정책과 교육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이 더는 적대적 대결이나, 경쟁적 소모는 지양하고 각자도생에 충실하도록 변해 가야 할 것이다.   이보영 / 전 한진해운미주본부장기고 통일 소원 평화적 통일 동독인 취업 독일 베트남

2022-08-10

[글마당] 소원 교향곡

30여 년은 부모님 덕에 공부했다. 30여 년은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 키우며 작업했다. 남은 삶은 내가 선택한 작업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집을 떠나 공부하며 여행하고 직장 다니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세상 떠돌다 보니 자기가 태어난 곳이 제일 좋다며. 그렇다면 내가 집을 떠날 수밖에 없다.   2014년 초 나는 브루클린을 떠나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로 왔다. 와서 보니 가격이 높은 홀푸드만 있고 내 수준에 맞는 장 볼 곳이 없었다. 나는 IKEA와 Trader Joe‘s를 좋아한다. 생각날 때마다 트레이드 조가 가까이에 들어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오픈했다.     이왕이면 한국 마켓도…. 조금 걸어가야 하지만 한아름도 들어왔다. 다시 내가 가끔 즐겨 먹는 Shake Sake 햄버거가 들어오기를 바랬다. 드디어 나의 산책로 반경 안에 오픈했다.     이번에는 재미 삼아 코로나 백신 맞은 증명을 보여주면 무료로 도넛을 준다는 ’krispy kreme 도넛 가게야 들어와라‘ 중얼거렸더니. 올봄에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오픈했다. 아쭈, 원하면 다 들어오네. 다시 한번 더 Target이 들어오면 어떨까 했더니만, 올가을에 떡하니 서너 볼록 떨어진 홀푸드 앞에 오픈했다. 내 사랑 아이키아가 들어오기를 원하지만, 넓은 쇼룸을 갖춰야 하기에 힘들 것 같다.      “엄마, 나 이벤트에 당첨돼서 돈 받았어요.”     작은 아이가 자랑스럽게 말하길레 나도 위에 열거한 가게들을 말하면서 “엄마가 원했던 가게들이 동네에 다 들어왔다. 신기하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하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좋은 작품과 글을 쓰고 싶은 것인데 차마 주문을 외울 수가 없다. 이 두 가지가 엄마에게는 제일 중요한 일인데.”   “엄마가 원하던 세 가지가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안될 거예요.”   “리필이라는 것도 있는데. 다시 원하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글쎄요. 한 5년 즈음 후에나 효력이 발생할지? 시효기간이 지나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5년 후에 다시 원하는 것을 주문해 보라는 뜻은 그 기간 엄마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아이의 충고가 아닐까?     내가 원했던 가게들이 장바구니 끌고 걸어가는 거리 안에 생겨서 삶이 편해졌다. 그러나 정작 늘 꿈틀거리며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며 내 마음을 뒤흔드는 그림과 글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과 노력에 달렸기 때문에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쓸데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폭포수의 물줄기 같은 일상사를 정리하고 오직 한곳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내 작업을 겨냥해 똑똑 떨어지게 몰두해야겠다.     독자님들, 어려웠던 2021 잘 마무리하시고 포근하고 건강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교향곡 소원 소원 교향곡 도넛 가게 기간 엄마

2021-12-31

전종준 변호사, 5차 헌법소원 제기

이중국적 한인 청년들의 사회적 진출을 막는 선천적 복수국접법의 피해가 혼혈 2세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전종준 변호사(사진)는 18일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소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천적 복수국적 폐지를 위해 지난 13일 제5차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본지 10월 15일 A-3면> 전 변호사에 따르면 이번 소원의 청구인인 크리스토퍼 샨 멀베이 주니어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2세로 현재 17세다.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되는 국적이탈 준비절차(부모 국적이탈·부모 결혼증명·본인 한국 출생신고) 때문에 국적이탈 의무마감일(18세 되는 해 1월 1일~3월 31일)을 지킬 수 없는 상태다. 기한 내 국적이탈을 하지 못한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병역의 의무를 완료하지 않을 시 한국 국적법에 따라 만 38세까지 국적이탈을 할 수 없다. 멀베이 주니어는 성명서를 통해 “공직 진출을 원하는 내 꿈이 파괴될 것”이라며 “한국 법이 왜 내 꿈을 파괴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전 변호사는 “2016년 1월 1일부터는 그간 부계주의였던 것이 부모양계주의로 확대 적용되면서, 출생시 어머니만 한국 국적이어도 선천적 복수국적이 된다”며 “국제결혼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혼혈 2세에게까지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구인과 같이 성도 미국 성, 외형도 미국인, 한국호적에도 없는 혼혈인 2세들은 한국에서 살고하 하는 자가 아니고 병역기피의 목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적 이탈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변호사는 이어 “홍준표 전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선천적 복수국적법을 두고 ‘사이비와 진짜 동포들을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오히려 동포들에게 국적이탈 기간을 3월까지 연장하는 혜택’을 준다고 했고, 헌법재판소도 판결에서 이를 인용했다”며 “하지만 이른바 ‘홍준표법’인 복수국적 법안이 통과될 때 ‘한국 호적에 없는 해외동포 2세는 병역과 무관하다’는 대통령 시행령 16조 3항이 삭제됐다”며 혼혈인들에게 가중된 부당함을 강조했다. 이번 5차 소원은 미주 최대 온라인 포럼장인 ‘미시 USA’에서 청구인 모집 기사를 본 멀베이 주니어의 어머니에 의해 성사됐다. 노스 캐롤라이나에 거주하는 멀베이 주니어는 미성년자로서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을 걱정한 아버지의 만류로 이날 기자회견에는 불참했다. 전 변호사는 FBI나 경찰, 군대 등 ‘공직’에 진출하기 위해 작성해야 하는 신원조회서(Questionnaire for National Security Positions)를 들어보이며 “‘공직 진출의 제한’은 ‘극히 우연적인 사정’이라는 이유로 지난해 9월 제기한 네번째 헌법소원을 각하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 변호사에 따르면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영향을 받는 미주 한인 청년의 수는 약 20만 명이다. 유현지 기자

2016-10-18

올해 만 18세 복수국적자 국적이탈 마감 기한 3월말

올해 만 18세(1998년생)가 되는 복수국적자 남성의 한국 국적이탈 기한이 내달 말 마감된다. 따라 국적이탈을 희망하는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오는 3월 31일까지 거주지 재외공관을 통해 국적이탈 신고를 마쳐야 한다. 주미대한민국대사관 영사과에 따르면 주어진 기간 내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병역 의무를 마치거나 면제, 제2국민역(전시 근로소집에 의한 군사 지원업무 의무만을 가진 자)을 판정받지 않는 한 만 37세(1979년 이전 출생자는 만 35세)까지 국적이탈이 제한된다. 단, 부모가 외국에 영주할 목적 없이 체류하는 상태에서 원정출산한 복수국적자는 국적법에 따라 병역을 마치지 않은 이상은 만 37세까지 국적이탈을 할 수 없다. 미국 시민권자인 부나 모를 둔 국적이탈 희망자의 경우 부모의 한국 국적상실신고를 먼저 완료해야 정상적으로 국적이탈 신고를 할 수 있다. 국적이탈 신청 구비 서류는 국적이탈신고서·국적이탈사유서·외국거주사실증명서(영사관 내 비치·본인이 직접 작성 후 서명), 미국 출생증명서 원본·사본, 한글번역본(공증 필요 없이 본인이나 부모가 번역 후 서명), 미국 여권 원본 및 사본, 부나 모의 영주권 또는 시민권 원본 및 사본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부의 기본증명서, 모의 기본증명서 등 총영사관에서 신청 가능한 증명서 4종이 필요하다. 국적이탈 대상자의 기본증명서상 이름과 미국 출생증명서상 이름이 다를 경우 동일인 증명서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모든 신청서 및 서류는 신청인이 만 15세 이상일 경우 직접 총영사관에 방문해 제출해야 하며, 만 15세 이하인 경우 신분증과 가족관계를 증명할 자료를 지참한 부모, 4촌 이내 대리인이 대신 제출할 수 있다. 주미대한민국대사관 영사과 박승언 영사는 “신청 마감이 2달여 남은 3일을 기준으로 총 16건의 국적이탈 신청이 접수됐다”며 “미국 시민권자인 부모가 한국 국적상실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자녀의 국적이탈 신고가 제한되는 등의 조건이 있는 만큼 신고에 앞서 꼼꼼히 따지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적이탈과 관련한 이 밖의 사항은 주미대사관 웹사이트(usa.mofa.go.kr)나 대한민국 병무청 웹사이트(mma.g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문의: (202) 939-5600(영사과) ▷주소: 2450 Massachusetts Ave NW, Washington, DC 20008(주미대사관) 유현지 기자 yoo.hyunji@koreadaily.com

2016-02-05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 기간 제한 부당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 기간을 제한하는 현행 한국 국적법은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헌법소원이 또다시 ‘각하’됐다 워싱턴DC 전종준 변호사는 지난해 9월 버지니아주 거주 폴 사군을 대리해 헌법소원 심판청구(사건번호 2014헌마788)를 접수했다. 이에대해 한국 헌법재판소는 26일(한국시간), ‘기각’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9명의 헌법재판관 중 4명(재판관 박한철, 김이수, 이정미, 안창호)이 헌법소원에 찬성했지만 5명의 재판관이 반대해 5:4로 각하됐다고 설명했다. 선천적 복수국적과 관련한 전 변호사의 헌법소원 제기는 2013년부터 시작돼 이번이 4번째였다. 그러나 전 변호사는 “앞으로도 2세 한인 동포들에게 불합리한 헌법을 고치기 위해 헌법소원 제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4전5기’의 뜻을 밝혔다. 폴 사군은 18세로 태어날 당시 부모가 모두 영주권자로 공직사회 진출을 꿈꾸고 있지만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대한 한국 국적법으로 인해 불편과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 국적법 제 12조(복수국적자의 국적선택의무) 제 2항은 선천적 복수국적자로 남자인 경우는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31일까지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않으면 만 38세까지 국적이탈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이같은 내용은 병무자원 확보와 고의적 병역면탈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한인 2세들에게는 불편만 초래하는 부당한 규정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 재판소는 “복수국적자에 대하여 제1국민역에 편입된 때부터 3개월 이내에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지 않으면 병역의무를 해소한 후에야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할 수 있도록 한 국적법 제12조 제2항 본문, 제14조 제1항 단서가 청구인들의 국적이탈의 자유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하지만 “청구인들의 국적이탈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재판관 박한철, 이정미, 김이수, 안창호의 반대의견, 국적이탈의 자유는 거주·이전의 자유의 내용이 아니라 헌법 제10조에서 도출되는 것이라는 재판관 강일원의 별개의견이 있었다”고 헌법재판소 발표문은 덧붙였다. 전 변호사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 실제로 한국군 복무도 어렵고, 대부분의 미주 한인 2세는 국적이탈에 관한 한국 국적법 규정을 알지 못하고 또한 한국정부도 통보를 해 준 적이 없어 적법절차 위반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전 변호사는 “국적이탈을 원해도 만 18세가 넘어버리면 20년 동안 그것마저도 봉쇄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전 변호사는 ”특히 사관학교나 공직에 진출시에 이중국적 여부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도 많아 국적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반대의견’을 냈던 재판관들은 “법률조항들에 서 정한 기간 내에 국적을 이탈하지 못한 복수국적자에 대해, 단기간 내에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 등을 엄격하게 소명하도록 하고, 관할관청에서 병역면탈의 의사에 대해 엄격히 심사한다면 복수국적을 이용한 병역면탈에 대한 우려를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등의 의견을 밝혔던 것으로 나타나, “새로운 헌법소원이 제기될 경우, 승소할 가능성도 높다”고 일부 법률 관계자들은 밝혔다. 박세용 기자 park.seyong@koreadaily.com

2015-11-27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이탈 제한 헙법소원 각하

재외국민에 대한 각종 한국 내 혜택이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거주 재외국민 유아에 대한 재정지원 배제는 차별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반면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 기간 제한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제기된 헌법소원은 또 기각됐다. ◆보육료·유아학비=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6일(이하 한국시간), 한국에 거주하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재외국민 유아에게도 보육료와 유아학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인권위는 "재외국민 유아를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인권위법상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이라며 “보건복지부장관과 교육부장관에게 재외국민 유아도 보육료와 유아학비 지원대상에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인권위에는 올 3월 오모(75)씨로부터 일본에서 태어난 재외국민 외손자가 2012년부터 한국에서 거주하고 대한민국 국적과 유효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 받고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지만 보육료 지원에서 배제되고 있어 부당하다는 내용의 진정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인권위는 "한국 내 거주 재외국민 유아를 무상보육·무상교육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명시적 규정은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0~5세의 영유아에 대해 부모(보호자)의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보육료를 지원하고 교육부는 유치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취학 직전 3년의 유아를 대상으로 부모(보호자)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유아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5 대 4 판결=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 기간을 제한하는 현행 한국 국적법은 기본권 침해에 해당된다는 헌법소원이 또다시 ‘각하’됐다. 워싱턴DC 전종준 변호사는 지난해 9월 버지니아주 거주 폴 사군을 대리해 헌법소원 심판청구(사건번호 2014헌마788)를 접수했다. 이에 대해 한국 헌법재판소는 26일 기각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9명의 헌법재판관 중 4명(재판관 박한철·김이수·이정미·안창호)이 헌법소원에 찬성했지만 5명의 재판관이 반대해 5 대 4로 각하됐다고 설명했다. 선천적 복수국적과 관련한 전 변호사의 헌법소원 제기는 2013년부터 시작돼 이번이 네 번째였다. 그러나 전 변호사는 “앞으로도 2세 한인들에게 불합리한 법을 고치기 위해 헌법소원 제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4전5기’의 뜻을 밝혔다. 태어날 당시 부모가 모두 영주권자였던 폴 사군은 18세로 공직사회 진출을 꿈꾸고 있지만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대한 한국 국적법으로 인해 불편과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 국적법 제 12조(복수국적자의 국적선택의무) 제 2항은 선천적 복수국적자로 남자인 경우는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31일까지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않으면 만 38세까지 국적이탈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이같은 내용은 병무자원 확보와 고의적 병역면탈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한인 2세들에게는 불편만 초래하는 부당한 규정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복수국적자에 대하여 제1국민역에 편입된 때부터 3개월 이내에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지 않으면 병역의무를 해소한 후에야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할 수 있도록 한 국적법 제12조 제2항 본문, 제14조 제1항 단서가 청구인들의 국적이탈의 자유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하지만 “청구인들의 국적이탈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재판관 박한철, 이정미, 김이수, 안창호의 반대 의견, 국적이탈의 자유는 거주•이전의 자유의 내용이 아니라 헌법 제10조에서 도출되는 것이라는 재판관 강일원의 별개 의견이 있었다”고 헌법재판소 발표문은 덧붙였다. 전 변호사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 실제로 한국군 복무도 어렵고, 대부분의 미주 한인 2세는 국적이탈에 관한 한국 국적법 규정을 알지 못하고 또한 한국정부도 통보를 해 준 적이 없어 적법절차 위반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전 변호사는 "국적이탈을 원해도 만 18세가 넘어버리면 20년 동안 그것마저도 봉쇄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특히 사관학교나 공직 진출 시에 이중국적 여부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도 많아 국적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일·박세용 기자

2015-11-27

[독자가 묻고 기자들이 답합니다] 선천적 복수국적자 한국 방문 고민 없애주는 '묘약'

재외국민 2세 제도 활용하면 영주 귀국신고 때만 병역 의무 국적이탈 신고 시기 놓쳤을 땐 국외여행허가 받으면 괜찮아 Q 미국서 태어난 아들의 국적이탈 시기를 놓쳤습니다. 한국에 가면 군대에 가야 하나요? A국적이탈 시기를 놓친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이라도 몇 가지 보완적 제도를 잘 이용한다면 영리 목적의 장기간 체류가 아닐 경우 한국 방문에 큰 제약이 없습니다. 가능한 활동은 연령이나 방문 목적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본인이 출생할 당시 부 또는 모가 한국 국적이었을 경우 자동으로 한국 국적이 부여돼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 사람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이 국적이탈입니다. 문제는 국적이탈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제한돼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복수국적자가 성인이 됐을 때 본인 의사에 따라 국적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국적선택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만 20세가 되기 전에 복수국적자가 된 사람은 만 22세가 되기 전 만 20세 이후에 복수국적자가 된 사람은 그 때부터 2년 내에 국적을 선택하도록 돼 있습니다. 다만 '원정 출산'에 해당될 경우에는 병역의무가 해소돼야만 국적이탈을 할 수 있으며 만 15세 미만일 경우 부모나 법정대리인이 대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출생한 선천적 복수국적자도 만 22세까지만 국적선택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 만 18세가 되는 해 1월 1일을 기해 제1국민역에 편입되고 그 해 3월 31일까지 한국 국적을 이탈하지 않으면 병역의무가 부과됩니다. 이 날을 지나면 병역을 면제받거나 제2국민역으로 편입되는 만 38세가 될 때까지 국적이탈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남성의 경우에는 국적선택(국적이탈 또는 국적보유의사 신고) 시한이 사실상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 31일이 됩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만 22세가 될 때까지 국적선택을 할 수 있고 이 기간이 지나면 한국 국적이 상실되지만 2011년 법 개정으로 자동 국적상실 조항이 폐기돼 법무부 장관이 국적선택명령을 내린 후 1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주어지므로 실제로는 만 23세까지 국적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국적보유의사를 신고하고 '(한국 내) 외국 국적 불이행 서약'을 할 경우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한국 국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남성은 병역을 마치고 2년 이내에 국적보유의사 신고와 '외국 국적 불이행 서약'을 하면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국적이탈도 이 기간 내에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서약을 한 후에는 2회 이상 외국 여권으로 한국에 출.입국 할 수 없고 외국 여권으로 한국에서 거소신고 등을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국적이탈 시기를 넘긴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이 37세 이전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징집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들도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몇 가지 제도가 마련돼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한다면 차선책이 될 수 있습니다. ◆재외국민 2세 제도=재외국민 2세 제도는 외국에서 출생하거나 6세 이전에 부모와 출국해 17세가 되는 해 12월 31일까지 국외에서 계속 거주하며 영주권이나 외국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재외국민 2세로 인정 받으면 한국에 영주 귀국신고 시에만 병역 의무가 부과됩니다. 재외국민 2세 자격은 공관에서 확인을 받게 됩니다. 원래 재외국민 2세는 한국 내 활동에 제한이 없었으나 2011년부터 1994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들은 18세 이후 한국 내 체류기간이 통산 3년을 넘게 되면 재외국민 2세 자격이 박탈됩니다. 한편 18세 전에 한국 체류 기간이 1년의 기간 중에 60일을 초과할 경우에는 국외에서 계속 거주한 것으로 보지 않아 재외국민 2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매년 방학 중 한국의 가족을 방문해 60일 이내 머물다 온 경우에는 영향이 없지만 60일을 초과하면 문제가 됩니다. 다만 한국의 초.중.고교에서 통산 3년 내로 수학한 경우에는 이 기간을 국외 거주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영향이 없습니다. 재외국민 2세 확인을 받게 되면 여권에 '출국확인제외대상' 날인을 받게 돼 지방병무청에서 별도 관리하게 되며 자격을 유지하는 동안 병역 의무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재외국민 2세는 한국 내 교육기관 수학이나 취업을 출생연도에 따라 최소한 3년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국외여행허가=선천적 복수국적자 중 국적이탈 시기를 놓친 사람을 포함해 만 24세가 되는 한국 국적 남자는 그 해 12월말까지 국외여행허가(병역연기허가)를 신청해야 합니다. 24세 전에는 국외여행허가가 없어도 한국 여권을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신청 자격은 본인이 영주권을 취득한 경우 영주권(시민권)을 취득한 부모와 함께 거주할 경우 부모와 같이 5년 이상 거주한 경우 유학생 등입니다. 병역 미필자가 정해진 기간에 국외여행허가를 받지 않으면 병역기피자로 분류됩니다. 국외여행허가를 받으면 1년 중 총 6개월 미만 한국 체류(한국 유학일 경우 재학기간은 불산입) 및 총 60일 미만 취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병역의무 대상자가 국외여행허가를 받지 않고 미국 여권을 이용해 한국에 입국하거나 영리활동을 하다 적발되면 최악의 경우 출국금지와 함께 강제징집 당할 수도 있습니다. ◆모국수학 제도=재외동포에게 모국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한국 내 교육기관에서 수학하는 기간 동안에는 계속 체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대상은 국외여행허가 등으로 37세까지 병역을 연기 받은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입니다. 단 대학부설 어학원을 포함해 대학 이상의 학위가 인정되는 학교에 재학해야 합니다. 병무청이 국내 각급학교에서 명단을 통보 받아 모국수학생으로 관리하므로 본인이 따로 신청을 하거나 별도의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재외국민 2세 자격이 없더라도 병역을 연기 받은 사람은 이 제도를 이용해 한국 내 교육기관으로 유학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 교육기관을 졸업.수료.휴학.퇴학 또는 제적된 후 1년의 기간 내 통산 6개월이상 체재하거나 수학기간 중에 부.모 또는 처가 1년의 기간 내 통산 6개월 이상 한국에 체재할 경우 모국수학 중에 영리활동을 할 경우에는 병역의무가 부과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재외동포(F-4)비자=시한 내에 국적이탈을 하더라도 큰 제약 없이 한국 내 활동이 가능합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선천적 복수국적자를 포함해 미국 국적 동포들은 투자나 학력 심사 후 승인 받을 수 있는 재외동포(F-4) 비자를 이용하면 한국 내 취업.체류가 가능하고 3년마다 갱신하면 계속 거주할 수 있습니다. 또 F-4 비자 소지자는 일정 요건을 갖추면 영주비자(F-5)도 발급받아 사실상 한국 정착도 가능합니다. 박기수 기자 park.kisoo@koreadaily.com

2015-05-08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이탈 신고 마감일 코앞…생일 안지나도 '만18세 되는 해 3월 31일까지'

신고 미필자 한국 입국때 강제로 입대 시키지 않아 3개월 이상 체류땐 문제 선천적 복수국적자 남성은 오는 3월 31일까지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만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마감일을 넘기면 만 38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까지 국적이탈 신고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한국 입출국시에도 불편이 따를 수 있다. 누가 해야 하나 선천적 복수국적자인 남자로 올해는 1997년생이 해당한다.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속지주의를 채택한 미국에서 한국인 부모를 두고 출생해 한국과 미국 시민권을 모두 갖는 사람이다. 단 개정 국적법에 따르면 1998년 6월 14일을 기준으로 이전 출생자는 부계혈통에 따라 출생 당시 아버지가 한국 국적자(영주권자 포함)인 경우에만 한국 국적자가 된다. 이후 출생자는 양계혈통이 인정된다. 올해 대상자인 1997년생이라면 먼저 출생시 부친의 국적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자신이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해당하는 지를 몰라 벌어진 해프닝도 있다. 지난해 9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 신고 제한이 기본권에 침해한다며 한국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소송이 이런 오해로 '원천무효'가 됐었다. 당시 소송을 낸 한인은 1997년생이었지만 출생 당시 아버지가 미국 시민권자였기에 복수국적이 아닌 미국 시민권자였던 것. 안 하면 군대 끌려 가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혹시라도 한국에 갔다가 공항에서 곧바로 군대에 끌려 갈 수도 있다는 데 사실이냐'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LA 총영사관의 김현채 법무 영사는 "국적이탈 신고를 안 했다고 해서 당장 군대에 끌려 가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한국에 3개월 이상 장기 체류를 하게 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여권이나 비자 발급 등에도 불편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장기체류가 불가능한 만큼 유학이나 취업 등에도 역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김 영사는 "'미국 시민으로서 비자를 발급받아 입출국하면 되지 않나'라고 묻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국 사람이기도 한데 외국인에게만 내주는 비자를 발급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군대 문제와 관련해서는 병무청에서도 "신고미비로 입국시 공항에서 군대로 끌려가는 일은 예전에도 없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병무청 관계자는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고 미비로 병역기피 의혹을 살 경우에는 일정 기간 내에 출국할 것을 권고받을 수는 있다"고 전했다. 출생신고가 중요 출생신고만 돼 있다면 절차는 수월하다. 하지만 부모들이 자녀의 출생을 한국 호적관서(읍.면.동사무소)에 신고하지 않는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출생 당시 부모가 모두 미국 시민권자라고 하면 별일이 아니지만 한국인 부모라면 자녀는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되기 때문에 국적이탈 신고를 앞두고 곤란을 겪게 된다. 김 영사는 "한국인 부모를 두고 미국에서 출생했다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객관적 실체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런 경우 국적이탈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호적관서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적이탈을 위해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모순이 있기는 하지만 법률적으로 해당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는 게 김 영사의 부연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신고 마감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시간이 빠듯하다. 총영사관 민원실 직원은 "출생신고를 재외공관을 통해 하게 되면 절차상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한국의 친인척이나 지인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며 "총영사관을 통할 경우 한 달이 걸리는 것에 비해 지인을 통하면 바로 등록 및 서류 발급이 되기 때문에 촉박한 상황에서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반려 케이스도 있어 최근 총영사관 민원실로 복잡한 국적이탈 신고 문의가 있었다. 부친의 이름이 한국 호적과 미국 시민권 증서상 서로 다르게 올라 있어 동일인임을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였다. 이런 경우는 신고인이 부친이 동일인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류 자체를 접수할 수 없다는 게 영사관 측 설명이다. 김 영사는 "이런 경우 카운티 해당 관서에 가서 동일인임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받아야만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까다로운 일이라 총영사관에서 적당히 인정해 달라는 요청도 많지만 도와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설사 총영사관 측에서 민원인의 요구대로 접수를 받는다고 해도 구청이나 법무부 차원에서 서류가 반려될 수 있다고 했다. 잊으면 곤란한 내용들 국적이탈신고는 재외공관에서만 신청 가능하며 15세 이상이라면 반드시 본인이 직접 신고해야 한다. 신고 전 최소 3개월 이상은 미국 주소지에 머무를 필요도 있다. 한국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모든 출입국 기록들이 확인되기 때문 자칫 병역기피만을 목적으로 한 국적이탈 신고 대상자로 분류될 수 있다. 국적이탈 신고 기간도 만 18세 되는 해에 시작되는 게 아니라 출생 후부터 18년 동안의 시간이 있는 만큼 충분히 고민하고 늦지 않게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 밖에 국적이탈과 관련한 서류 준비 등은 총영사관 홈페이지(usa-newyork.mofa.go.kr)나 법무부 이민 웹사이트(immigration.go.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문호 기자

2015-03-10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이탈 신고…15세 이상은 본인이 꼭 해야

"15세 이상은 반드시 신고자 본인이 와야 합니다. 가족관계증명서(과거 주민등록 등본), 기본증명서(과거 주민등록 초본) 등은 창구에서 바로 떼는 게 아니라 신청 후 최소 3~4일이 걸린다는 점도 숙지바랍니다."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의 국적이탈 신고가 부쩍 늘어난 요즘 LA총영사관 민원실에는 신고를 하러 왔다가 구비 서류 미비 등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LA인근 거주자라면 재방문이 용이하지만 원거리 거주자들은 이로 인한 시간과 비용 낭비가 만만치 않다. 김현채 법무영사는 "지난해 7월 개정된 국적법 시행령에 따라 15세 이상은 국적이탈 신고시 꼭 본인이 와야 함에도 부모 등이 대리로 올 때가 있다. 또, 가족관계증명서나 기본증명서 등은 한국 대법원의 승인까지 거친 내용이 다시 공관으로 오는 것임에도 창구에서 떼서 곧바로 접수하려는 경우가 있다"며 "민원인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려고 노력하지만 이런 경우는 도와줄 수가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선천적 복수국적자로 올해 만 18세가 되는 남성은 오는 3월 31일까지 재외공관을 방문, 국적선택을 해야 한다. 병역 이행을 할 계획이라면 문제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간 내 반드시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 나중에 불이익이 없다. 민원실 관계자들은 "국적법과 관련 업무는 예년에 비해 순조로운 편"이라며 "영사관 방문 전 공관 홈페이지( http://usa-losangeles.mofa.go.kr)를 참고해 필요한 서류들을 미리 준비한다면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영사관측은 올해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이탈 신고 마감이 아직 두 달 여 남아있지만 가능하면 서두를 것을 당부했다. 만약 신고자가 한국에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다면 출생신고부터 해야 하고, 출생 당시 부모의 혼인신고 상태를 입증해야 하는 등 절차가 다소 복잡하고 서류 준비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문호 기자

2015-01-28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이탈 2배 증가

한국 국적을 포기한 선천적 복수국적 미국 동포가 지난해 두 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지난 26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미국 동포의 한국 국적상실은 998건으로 2013년 525건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은 지난 2011년 925명까지 늘었다가 2013년 525명까지 다시 줄었으나 지난해엔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최근 국적법 개정운동 등으로 미국 동포들 사이에 국적이탈 제도가 많이 소개된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미국 시민권 취득에 따른 한국 국적상실은 지난해 1만161명으로 집계돼 처음으로 1만 명을 돌파했다. 미국 동포의 국적상실 신고는 지난 2009년 8396건에서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11년 9560명으로 9000명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는 1만 명을 넘는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적이탈과 국적상실 등으로 한국 국적을 포기한 미국 동포는 1만1159명으로 6.3% 증가했다. 미국 동포의 한국 국적 포기는 2011년부터 조금씩 감소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대폭 증가세로 돌아선 것. 뉴욕총영사관에는 지난해 국적이탈 205건, 국적상실 1368건이 신고됐다. 전체 한국 국적 포기자는 1만9472명으로 국적 취득자(귀화·국적회복) 1만4200명보다 5000여 명 많았다. 국적 취득 신청자는 1만7079명이었다. 국적 포기자가 국적 신청자보다 많은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 국적 포기자 가운데 미국 국적을 취득·선택한 사람이 전체의 57.3%를 차지했으며 특히 국적이탈자 1322명 가운데는 미국 동포가 75.5%를 차지했다. 한편 지난해 12월말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미국 국적 동포는 4만6426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불법체류중인 사람도 722명에 이르렀다. 박기수 기자 kspark206@koreadaily.com

2015-01-28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이탈 급증, 총 1만명 넘어

한국 국적을 포기한 선천적 복수국적 미국 동포가 지난해 두 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지난 26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미국 동포의 국적상실은 998건으로 2013년 525건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은 지난 2011년 925명까지 늘었다가 2013년 525명까지 다시 줄었으나 지난해엔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최근 국적법 개정운동 등으로 미국 동포들 사이에 국적이탈 제도가 많이 소개된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미국 시민권 취득에 따른 한국 국적상실은 지난해 1만161명으로 집계돼 처음으로 1만 명을 돌파했다. 미국 동포의 국적상실 신고는 지난 2009년 8396건에서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11년 9560명으로 9000명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는 1만 명을 넘는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적이탈과 국적상실 등으로 한국 국적을 포기한 미국 동포는 1만1159명으로 6.3% 증가했다. 미국 동포의 한국 국적 포기는 2011년부터 조금씩 감소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대폭 증가세로 돌아선 것. 뉴욕총영사관에는 지난해 국적이탈 205건 국적상실 1368건이 신고됐다. 전체 한국 국적 포기자는 1만9472명으로 국적 취득자(귀화.국적회복) 1만4200명보다 5000여 명 많았다. 국적 취득 신청자는 1만7079명이었다. 국적 포기자가 국적 신청자보다 많은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 국적 포기자 가운데 미국 국적을 취득.선택한 사람이 전체의 57.3%를 차지했으며 특히 국적이탈자 1322명 가운데는 미국 동포가 75.5%를 차지했다. 한편 지난해 12월말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미국 국적 동포는 4만6426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불법체류중인 사람도 722명에 이르렀다. 박기수 기자/ kspark206@koreadaily.com

201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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