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6·25 참전용사들의 마지막 소원
그러더니 이 회장 일행이 쓴 모자를 가리키며 어떤 분들이냐고 묻더란다. 이 회장은 “백인 여성에게 ‘우리는 참전용사들’이라고 말했더니 ‘나라를 위해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더라. 그러더니 자신이 커피값을 내겠다고 했다”며 “모르는 사람인데도 우리가 한 일을 인정해 주는 그 한마디를 들으니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경험을 또 했단다. 그것도 LA한인타운에서였다.
이 회장은 “참전유공자회 회원들과 커피를 마시러 로데오 갤러리아 몰 안에 있는 베이커리에 들어갔다. 우리가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쓴 게 이상했는지 종업원이 우리를 보더니 어떤 분들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참전용사라고 했더니 나중에 합류한 회원들의 커피값을 받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이어 이 회장은 “한인타운에서 한인으로부터 그런 대우를 받은 게 처음이었다. 그 젊은 직원의 마음 씀씀이에 회원 모두가 정말 감사해 했다”고 덧붙였다.
6·25참전유공자회와 월남전참전자회 회원들은 외출할 때면 가능한 한 제복을 입고 다닌다. 한국의 국가보훈처가 2년 전 제작한 제복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참전유공자들도 모두 받았다.
이 회장은 “한국 정부가 모든 참전유공자 가정에 제복을 보내줬다. 제복이 담긴 가방에는 ‘당신은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더라.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당시 심정을 들려줬다.
아이보리색 사파리 재킷에 남색 바지, 흰색 반소매 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회원들의 모습은 예전 주머니와 어깨 부위에 기장과 훈장이 달린 조끼를 입고 다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밝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6·25참전유공자회 임원들의 평균 연령은 80세 후반이었다. 감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최병길 유공자의 경우 올해 95세를 맞았다. 그는 불과 15세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고 했다. 권영구 수석 부회장은 40밀리 포탄 2개를 짊어지고 경주에서 밤새 이동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육군협회 최만규 회장은 “한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는 생존 참전유공자는 830여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가주에 150여명 정도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LA지역도 공식 회원 수는 70명이지만 실제 활동하는 분은 30여명 정도다. 그래서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전했다.
6·25참전유공자회는 최근 LA한인타운에 참전비를 세우는 프로젝트 추진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오렌지카운티에 세워진 6·25 참전비는 미군 이름들만 기록돼 있어서 한인타운에 별도의 참전비를 세웠으면 하는 희망이지만 누가 끝까지 남아 진행할 수 있을지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금 미국에 한류가 널리 퍼지는 것을 보면 참전유공자들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이 목숨 바쳐 싸웠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런 역사를 후손들에게 좀 더 알렸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소멸하는 단체다. 그나마 지금은 종종 만나서 안부를 나누지만 언젠가는 헤어지고 결국은 단체도 사라질 것”이라며 “하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슬픔은 없다. 다만 우리가 없어져도 한국전쟁의 역사는 끝까지 남았으면 좋겠다”고 담담히 말했다.
한국전쟁이 더는 ‘잊힌 전쟁’이 되지 않도록 한인 커뮤니티도 고민하고 참여해야 할 문제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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