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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또 다른 ‘이강원’…늘 우리 주변에 있다

LA한인타운의 한글 간판들은 한인에게 민족적 동질감을 안겨준다. 한인 노숙자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8가와 사우스 카탈리나 스트리트 인근 한 골목에는 윤애복(65) 씨가 맨 바닥을 매트리스 삼아 살고 있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외진 골목이 그녀의 거주지다. 악취가 가득하다. 페트병, 폐지, 버린 가구 등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대변 때문에 걸음을 떼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역설적이지만 이 골목은 그녀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LA시 공무원들은 몇 번이나 셸터 이주를 권유했다.   한번은 윤 씨가 공무원들에게 이주할 의사를 밝혔다. 공무원들은 그 말에 즉시 그녀의 옷과 소지품을 챙겼다. 멍하게 있던 윤 씨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옮기게 될 셸터가 어디에 있죠?”   “여기서 6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요.”   그녀는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노숙자가 원하지 않으면 강제로 이주시킬 수 없다. 시정부 규정 때문이다. 윤 씨는 쓰레기 가득한 그 골목길에 다시 혼자 남아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왜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냥 여기가 좋아요. 다른 곳은 싫어요.”   쓰레기가 널려 있고 악취가 나는 골목인데도 그곳을 벗어나는 게 싫은 듯했다.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한 이질감 때문일까. 타인종이 많은 한인타운 밖으로 나가는 건 두려움이다.   가장 익숙하다고 느끼는 그 골목에서 정작 그녀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존재다. 주변 업주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업주 입장에서 노숙자는 껄끄러운 이방인이다.   참을 만큼 참았는지 한 업주가 소리쳤다.   “제발 여기를 떠나. 죽더라도 여기서 죽지 말고 다른 데 가서 죽어.”   무정한 말을 듣고도 그녀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고개만 숙인 채 길바닥만 응시하고 있다. 하루이틀 일이 아닐 터다.   냉정 이면에는 인정이 공존한다. 일종의 연민이다. 한인 문화의 특성이 그렇다.   식당을 찾았다가 윤 씨를 보고 음식을 따로 투고해서 가져다주는 이들도 있다. 인근 업주들은 쫓아내고 싶지만, 한편으론 마지못해 돕는다. 더러 주머니 속 잔돈도 건네준다.   11월의 LA 바람은 제법 차다. 길을 가던 중년의 한인 남성이 물었다.   “저녁 식사했어요?”   세 끼를 챙겨 먹을 리가 없다. 윤 씨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웅얼거렸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그녀는 떡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 남성은 지갑에서 2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인근 식당에서 떡국을 투고해서 건넸다. 식당 주인도 노숙자가 먹을 음식이라 좀 더 넉넉하게 담았다고 했다.   떡국을 받아 든 그녀는 한국어 무가지를 찾아 바닥에 깔았다. 단순히 음식 받침 용도는 아니다. 음식을 먹던 그녀가 갑자기 신문에 적힌 날짜를 가리키면서 요일을 물었다. 하루하루 길거리에서 생존하느라 시간을 인지할 여유조차 없는 게 분명하다.   윤 씨 주변엔 늘 한국어로 된 무가지가 있다. 한인타운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연결고리일지도 모른다.   본지가 현재 영문 기사로 준비 중인 한인타운 노숙자 시리즈의 한 부분이다. 지난달 그 첫 번째 스토리로 노숙자 사역을 하다가 노숙자로 전락해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이강원 목사의 삶을 보도했다. 후속 취재를 통해 이 목사가 한인타운에 머물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아있는 노숙자들의 삶을 통해 찾고 있다.   한인타운은 노숙자들에겐 역설이 반복되는 곳이다. 그들은 심적, 정서적, 문화적으로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배척 당하고 소외되고 있다. 상반된 감정이 뒤섞인 공간에 놓여있는 셈이다.    이 목사도 그렇게 살다가 끝내 노숙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채 죽어야 했다. 이는 또 다른 ‘이강원’이 우리 주변에서 언제라도 숨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도, 대안도 고민할 수 있다. 길거리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이유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이강원 한인타운 노숙자 한인 노숙자 이강원 목사

2024-12-17

[중앙칼럼] 이룰 수 없는 ‘아메리칸 드림’

지난 4년 동안 부동산 시장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주택가격은 팬데믹 동안 치솟았고 임대료, 모기지 금리 급등으로 이어졌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2년째 침체기다.     침체의 문을 연 것은 ‘주택소유주 잠금 효과’다. 지난해 주택소유주의 약 90%가 6% 미만의 모기지 금리를 누렸다.     7% 가까운 모기지 금리에 저금리 주택소유주들이 집을 매물로 내놓는 것을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 여파로 주택 매물은 턱없이 부족하다. 적은 매물 공급으로 지난 9월 기존 주택판매는 14년래 최저 수준이었다. 주택구입자들이 모기지 하락을 기대하거나 대선을 앞두고 관망세를 유지한 것도 한몫했다. 대선이 끝난 후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내놓은 부동산 공략으로 내년 주택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선두주자는 낙관론을 내놓은 부동산 업계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는 내년 기존 및 신규 주택판매가 증가하고 주택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쳐서 오를 일만 남았다는 전망이 대세다. 과연 그럴까.     트럼프 당선인이 내놓은 부동산 정책은 신규 주택 건설 촉진, 저렴한 주택 공급 증대, 불법 이민자 대량 추방, 관세 인상, 세금 감면 및 공제, 건설 및 주택 규제 완화 등이 골자다. 이중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오히려 득이 되지 않는 공약도 있다.       현재 전국에서 부족한 주택 수는 400만 채에 이른다. 주택 위기를 뚫고 나갈 간단한 해결책은 신규 주택을 많이 짓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저렴한 주택 건설을 위해 연방 정부 토지를 개방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연방 토지는 시골 지역에 집중돼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특히 저렴한 주택 공급 증대는 대선 공약인 이민노동자 대량 추방과 상충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 건설 노동자의 31%가 이민자로 추산된다.     불법 이민 단속이 시작되면 불법 노동력에 의존해온 건설업계는 노동력 부족에 이어 임금 상승이 예상된다. 이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주택구매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관세 역시 건축 비용을 높일 거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건설 관련 원자재에 10~20% 일괄 관세를 부과하면 주택비용과 주택 리모델링 자재 비용 상승은 당연하다.       반면 주택 건설 규제 완화 및 세금 감면 및 공제는 부동산 시장에 순풍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트럼프 당선자의 첫 번째 대통령 임기가 끝날 무렵 저렴한 주택 건축을 위해 규제 장벽을 제거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주택이나 아파트 건설에 대한 규제 부담을 줄이면 소비자 비용이 낮아질 것으로 봤다. 실제로 단독주택 비용과 다세대 주택비용의 상당 부분이 지방, 주 정부 및 연방 차원 규제 비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공화당이 상원에 이어 하원까지 양원을 모두 휩쓸어 백악관과 의회를 공화당이 장악하는 ‘레드 스위프’가 현실화됐다.     트럼프 당선자가 2017년 서명한 세금 감면 및 일자리 창출법(TCJA)의 세금 규정을 확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표준 공제액을 두 배로 늘리고 주 및 지방세(SALT) 공제액을 제한하는 것이 포함된다. TCJA의 또 다른 세금 규정은 보너스 감가상각이다. 이는 아파트 개발자와 투자자가 소유 첫해에 더 많은 감가상각을 공제할 수 있게 해 임대 주택의 신규 개발을 더욱 장려한다.     새로운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 도시에서 중간 가격의 단독주택을 사려면 연간 10만8000달러의 수입이 필요하다. 가구당 평균 소득은 8만4072달러로 필요한 수입이 30% 이상 높다. 소득보다 턱없이 높은 주택 가격에 서민에게 주택 구입은 이룰 수 없는 ‘아메리칸 드림’이 되었다.     새해 시작되는 트럼프 임기 2기에는 ‘서민’이 실질적으로 주택구매가 가능한 부동산 정책이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아메리칸 드림 내년 주택시장 주택소유주 잠금 신규 주택판매

2024-12-16

[중앙칼럼] OC한인회장 추대 논란에 부쳐

오렌지카운티(OC) 한인회 차기 회장 추대 논란 시비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OC한인회(회장 조봉남), OC한인회 비상사태 수습위원회(위원장 대행 타이거 양, 이하 비대위)쪽과 OC한인회 정상화 추진위원회(공동 대표 노명수·안영대·김종대·이태구·정철승, 이하 한추위), OC한인회 전직 회장들의 모임인 오한회(회장 안영대)의 대립 국면이 쉽게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다 양측 주장이 워낙 첨예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대로 논란의 핵심은 비대위가 조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한 것이 OC한인회 정관에 어긋나는지 여부다.   한추위와 오한회의 주장은 “OC한인회 정관은 회장을 선거로 선출한다고 명문화했으며, 정관 그 어디에도 비대위가 회장을 추대할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OC한인회와 비대위 측은 “한인회가 비대위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정관과 선거관리 시행세칙을 따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비대위가 차기 회장을 선출 또는 추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비대위 시행세칙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차기 회장을 추대했으니 합법”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처럼 양측 주장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추위의 김종대 공동 대표는 “조봉남 회장 개인의 연임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한인회가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정관에 따라 선거를 통해 차기 회장을 선출한다면 조 회장이 당선돼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인회와 비대위 측은 인제 와서 회장 선거를 치를 이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 28대 한인회 임기도 이젠 보름 정도 남았다.   한추위가 지난 9일부터 서명 운동을 시작했지만 서명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한인회 측이 선거를 치르도록 강제할 힘은 없다. 이는 한추위 측도 알고 있다. 김 공동 대표는 서명 운동에 참여한 이들에게 “나중에 이 문제가 법정으로 갈 때, 한인들의 서명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니 많은 이가 서명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한인회와 비대위 측도 이미 법적 다툼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 대행은 지난 6일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결국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대위의 권석대 위원도 “비대위가 회장을 추대하는 과정의 합법 여부를 변호사를 통해 검토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현 28대 OC한인회의 임기는 오는 31일 종료된다. OC한인회에 따르면 비대위 체제는 연말까지 유지되며, 내년 1월 1일부터는 조 회장이 이끄는 29대 한인회가 새로 출범한다.   한추위와 오한회는 한인회장을 선거 없이 추대한 것은 정관에 어긋나기 때문에 29대 한인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현 상태가 유지되면 새해 초, 한인회를 대상으로 한 법적 조치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OC한인회가 1979년 설립된 이후 45년이 지날 때까지 한인회장 선출 방식에 관한 문제로 법정 다툼이 벌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전직 OC한인회장은 “그동안 모범적인 한인 커뮤니티로 이름난 오렌지카운티에 망신살이 뻗쳤다. 지금이라도 법적 해결이란 단계까지 가기 전에 원만하게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인회를 둘러싼 논란과 법적 다툼은 전국 곳곳에서 이미 여러 차례 벌어졌다. OC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다. OC 한인사회가 간직해온 자긍심을 계속 지켜나가는 길은 이제 벌어진 일을 어떻게 수습하고 해결할 것인지, 그 과정에 달렸다. 어찌 보면 OC 한인사회의 역량은 이제 막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정 법으로 시비를 가를 수밖에 없다면 양측 모두 법원의 판단을 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약속하고 판결 이후 수습 방안도 미리 고민하길 바란다. 그래야 한인회를 둘러싼 혼란이 장기화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한인회장 추대 oc한인회 정관 추대 논란 한인회 차기

2024-12-15

[중앙칼럼] 김 후보, 유 후보 ‘백서’부터 써라

선거가 끝났다.     당선됐다면 당선될 이유가 많아 보일 것이며 낙선했다면 낙선한 이유가 더 많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당선됐다면 낙선할 조건과 환경은 미미하게 치부될 것이지만, 고배를 마셨다면 잘될 이유들은 주목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낙선 한인 후보들에게는 ‘고생했는데 아쉽네...’ 정도의 덕담이 대세를 이룬다. 힘을 모아줬지만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후보로 뛴 사람이 제일 힘들겠지’로 선거 결과는 쉽게 잊힌다.     하지만 부진했던 성적을 개인의 실패만으로 볼 것인가. 매번 그런 식이라면 한인사회의 정치력 발전에는 그보다 큰 독이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한인사회 내 단체, 언론, 기업 등은 한인 후보라는 이유로 주머니를 연다. 자원봉사로 힘을 보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선거는 개인 역량이 아닌 ‘커뮤니티 활동’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이런 공감대가 있다면 낙선한 후보들은 재출마를 저울질하기 전에 왜 패배했는지 ‘백서’부터 써야 할 것이다. 캠페인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진행됐으며 어떤 요소들이 당락에 영향을 줬는지 가감 없이 정리해야 할 것이다. 선거는 개인의 역량만큼이나 커뮤니티 전체의 노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객관적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도전할 누군가도, 커뮤니티를 이끌어갈 2세들도 이런 내용은 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LA 한인타운이 속한 연방하원의 데이비드 김과 LA 시의회에 도전한 그레이스 유는 실패의 원인을 우리 내부에서 냉정하게 찾아볼 것을 권한다. ‘경쟁 후보가 더 돈을 많이 모아서’, ‘현역 프리미엄이 강해서’, ‘네거티브 공략이 판을 쳐서’ 등 외부의 요인들을 찾기보다는, 우리 후보가 가진 약점은 보완됐는지, 강점은 최대한 활용됐는지, 왜 한인들과 기업들은 기대보다 움직여주지 않았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인데 세 번 모두 똑같은 이유로 낙선했다면 발전이 없는 것 아닌가. 이유를 알면서도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캠페인 자체가 실패를 예고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동시에 후보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하지 않는다면 2세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과 그런 인물을 육성하는 노력도 한인사회에서는 매우 절실하다. 꿈만 꾸지 말고 이런 내용을 시스템으로 만들자. 우리 스스로 검증을 통해 최선을 발굴하자는 말이다.     학계에도 당부하고 싶다.     한인사회가 소수계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하는 연구 작업이 진행되면 좋겠다. 투표에 참여한 비율과 정치적 참여 의식이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어느 정도에 머물고 있는지 분석해주기 바란다. 다른 커뮤니티는 어떻게 성공과 실패를 교훈 삼고 있는지 비교도 해달라. 중국계와 일본계가 이런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앞으로 이웃인 베트남계도 한 차원 높은 정치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미 시와 카운티에서 큰 힘을 발휘해온 그들은 이를 더욱 공고히 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며 다만 한인사회에도 희망적이었던 것은 ‘소수계의 약진’이 두드러진 선거였다는 점이다. 항상 스윙보트 역할에 그쳤던 아태계 유권자들도 전면에 나섰고 라틴계와 흑인계의 표심이 대선에서도 당락을 갈랐다고 한다. 정당들도 이젠 소수계 후보들의 경쟁력에 주목하고 있다. 백인 남성 중심이던 정치권의 빗장이 풀리고 있는 느낌이어서 반갑다.     당선자에게 기울이는 관심보다 낙선의 이유를 분석하고 재발을 막는 노력은 더더욱 중요하다. 아직 한인사회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후보 백서 소수계 후보들 경쟁 후보 후보 자신

2024-12-01

[중앙칼럼] 피할 수 없는 죽음, 인간의 존엄

칠순 무렵의 아버지는 장수에 진입한다는 기쁨보다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다. 100세 시대라지만 당시 아버지 친구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서다. 할아버지가 돼 친구 장례식에 가면서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는 듯했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와 남은 사람의 공허가 겹친 셈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 80.5세, 여성 86세로 집계됐다. 신이 허락해 시니어가 칠순을 넘긴다면 10~16년은 더 살 수 있다. 이들 시니어에게 남은 생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남은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도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되고 있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웰빙(Well-Being)과 웰에이징(Well-Aging)에 신경 쓰는 이유다.     특히 본인 스스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웰다잉(Well-Dying)’은 외면하기 어려운 주제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인 시니어들 스스로 ‘죽음을 미리 준비하자’는 공감대가 부쩍 확산한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60대 후반의 강대흔 씨는 “의식 없는 연명 치료 등 살 수 있을 때까지 살고자 하는 것은 조금 욕심인 것 같다. (준비 없이)나만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이기적이다. 내 가족, 친구, 커뮤니티를 생각한다면 ‘내가 원하는 죽음은 어떤 모습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시니어 스스로가 본인의 죽음을 준비하던 한국인 정서는 시골에 남아 있다. 어릴 적 할아버지는 환갑잔치 후 본인의 영정 사진으로 사용할 초상화를 미리 준비했다. 묫자리도 봐놨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뒤 본인이 계획한 대로 장례를 치렀다.   최근 장례 준비에서도 한 단계 나아간 웰다잉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한인 사회에서는 시니어들이 주축이 된 소망소사이어티라는 단체가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강조하는 이 캠페인은 “죽임을 당하지 말자”고 강조한다. 수동적인 생의 마무리를 거부하는 주체적 의식인 셈이다.     ‘존엄한 존재’로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아래 내 의지로 죽음을 맞이하자가 웰다잉 운동의 핵심이다. 고령화 시대의 부작용에 따른 현실적 문제점도 무시할 수 없다.     연명 치료 시 삶의 존엄과 경제적 부담, 배우자나 부모를 너싱홈 시설로 보내는 문제, 그에 따른 남은 가족의 죄책감은 생각보다 크다.       웰다잉 운동에 공감한 한인 시니어 1만8000여 명이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Healthcare Directive)를 작성했다. 스스로 맞이하는 죽음에 동의해서다.     이들은 ‘임종 전 의료결정(기도 삽관, 기관지 절개, 인공호흡기 치료, 인공영양법, 심폐소생술 등)’과 ‘임종 후 장례 결정(장기기증, 매장·화장·시신 기증 등 장례방식)’여부에 직접 서명해 법적 효력까지 갖췄다.     소망소사이어티 유분자 이사장(89)은 “고령화 시대의 전환점을 맞았다. 치매, 중증질환 등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됐을 때를 생각해 보자”며 존엄한 죽음을 제안한다. 유 이사장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죽음을 겸허하게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지혜로운 일”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60대에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했다는 박준구(90) 할아버지는 “내 죽음을 대비하니 늙는 동안 마음이 안정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며 심리적 위안을 장점으로 꼽았다.   웰다잉 캠페인 현장에서 만난 시니어들은 ‘지혜’를 엿보게 해줬다.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에는 겸허함마저 배어 있다. 사전의료지시서 작성자 중 시신 기증에 서약한 시니어도 1800명 이상이다. 시신 기증 서약자 중 70%가 의학발전 등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숭고함까지 느껴지는 저승 갈 채비에 감사와 존경을 전한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존엄 한인 시니어 이들 시니어 사실 시니어

2024-11-28

[중앙칼럼] ‘미국 우선주의’는 국민 잘살게 하는 것

11월 대통령 선거가 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공화당은 대선의 압도적 승리는 물론 연방 상·하원 선거에서도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해 ‘레드 스윕(Red Sweep)’을 달성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입법부의 강력한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더해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당시 9명의 연방대법관 중 3명을 임명한 바 있어 연방대법원 역시 보수 색채가 짙다. 한마디로 트럼프 당선인은 상원에서 의원 6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사안을 제외하면 원하는 일을 거침없이 할 수 있게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를 사퇴하고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을 때만 해도 여론은 해리스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관심이 쏠린 7개 경합주에서 해리스 후보의 연설은 근로 계층 유권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줬다.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은 근로 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1월 선거 결과를 보면  부유층은 민주당을 선택했지만, 근로 계층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더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당선인은 백인 근로 계층의 표심을 얻어 집권 1기에 성공했다면, 이번에는 흑인과 라티노 근로 계층의 표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대승을 거뒀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패배 원인으로 엘리트 정치인들이 정체성에만 몰두한 채 경제 악화로 신음하는 서민들의 마음은 알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가 훨씬 나은 경제 공약을 발표했던 것도 아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GA)’라는 슬로건은 이미 8년 전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완패한 것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거나 8년 전 패배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고 민심도 정확하게 읽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즉, 인플레이션과 소득 정체 등 경제 위기로 무너지는 서민들의 일상을 등한시한 게 민주당의 참패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민들의 힘든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게 렌트비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세입자 5명 중 1명은 렌트비로 소득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또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35%는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paycheck to paycheck)’ 형편이다. 연 소득이 15만 달러가 넘는 가구 중에서도 10%가량은 동일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월마트의 3분기 깜짝 실적 발표에서도 나타난다. 월마트 측은 3분기 영업 실적 호조 이유로 고소득층 고객 증가를 꼽았다.   LA를 포함한 가주 주요 도시에서는 절도 사건이 끊이지 않고 강력 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범죄 증가에는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진 것도 일조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먹고 살기 힘드니 생계형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민들의 힘든 삶과 공화당의 압승을 보며 예전에 봤던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05년 개봉했던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다. 내용은 6·25한국전쟁 당시 오지 산골 마을에 우연히 북한군, 한국군, 미군이 함께 모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쟁의 참상을 판타지적인 요소로 풀어내려 한 휴머니즘 영화다.   영화 속 북한군 장교는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촌장의 리더십에 놀란다. 그는 촌장에게 비결을 묻는다. 촌장의 답은 간단했다. "뭐를 마이 멕여야지 뭐"라고. 다시 말해, 배를 곯지 않게 하는 것이 리더십의 제일 큰 덕목이라는 말이다. 백성을 잘살게 해야 나라가 평안해진다는 공자와 맹자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2기 정부에 바란다. 모든 국민이 배부르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길 말이다. 진성철 / 경제부장중앙칼럼 미국 우선주 트럼프 당선인 근로 계층 도널드 트럼프

2024-11-25

[중앙칼럼] 트럼프 꽁무니만 좇다가 끝난 대선

트럼프의 꽁무니만 좇다가 끝나버렸다. 이번 대선의 결말을 축약하면 그렇다.   지난 4년뿐인가. 첫 대선 당시 트럼프가 등장했을 때부터 민주당은 그랬다.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부터 탄핵도 두 번이나 시도했다. 물론 의혹을 증명하지도 못했다.불분명한 혐의로 시비만 걸다 끌어내리지도 못했다. 심지어 2020년 대선 때는 이겼는데도 백악관을 떠난 트럼프를 물고 뜯는 데만 혈안이었다.   앞장서서 판을 깐 건 주류 언론이다. 수년간 줄기차게 내뱉은 건 극우, 막말, 범죄자, 반이민, 백인 우월주의 같은 레토릭뿐이다. 급기야 ‘트럼프=히틀러’ 공식까지 꺼내 들었다. 주야장천 메신저를 공격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 사이 민주당의 정책은 실종됐다. 메시지는 ‘오바마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었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등을 상징하는 DEI(Diversity·Equity·Inclusion)만 외쳤다. 사회 전반을 해석한 도구는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뿐이었다.   허울만 좋았다. 현실에선 뜬구름 같은 이슈였다. 민주당의 메시지는 변한 게 없는데, 민심은 변했다. 국가 부채는 역대 최고 수준이 됐고, 인플레이션은 극심해졌다. 치솟은 개스비, 장바구니 물가가 더 와 닿는 이슈가 됐다.    민주당 상원의원을 지낸 정치 평론가 클레어 맥캐스킬은 최근 MSNBC의 모닝 조(Morning Joe)에서 대선 결과를 두고 자조 섞인 푸념을 했다.   “트럼프가 우리보다 이 나라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시사 주간지 타임의 전 편집장 리차드 스텐겔은 9일 칼럼에서 “언론이 트럼프를 다루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유권자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며 “언론은 트럼프라는 나무 때문에 숲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지적이다. 언론이 트럼프를 다룬 게 잘못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잘못 다뤘기 때문에 잘못된 거다.   선거 전 미디어연구센터(MRC)가 600개 이상의 대선 관련 보도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에 대한 보도 가운데 부정적인 것이 85%였다. 반면, 해리스에 대해서는 긍정적 보도가 78%로 조사됐다. 트럼프를 공정하게 다뤘다고 볼 수 있는가.   대중은 더는 주류 언론을 믿지 않는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대선 직전 실시한 조사에서 주류 언론을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1%뿐이다.     일례로 LA타임스는 선거 전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1880년대부터 지난 1972년까지 대선 때마다 지지 후보를 발표했던 매체다. 이후 한동안 중단했다가 지난 2008년 때 버락 오바마를 공식 지지했다. 이후 줄곧  민주당 후보만 지지해왔다.   사연은 이렇다. 논설위원들이 잇따라 사표를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유주인 패트릭 순시옹이 대선 후보의 공개 지지를 막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편집권 침해 같지만, 오히려 공정성을 상실한 건 그들이다.    순시옹은 공개 지지 대신 각 후보의 정책, 계획, 향후 4년간 미칠 잠재적 영향을 긍정과 부정의 측면에서 모두 가감 없이 평가하자고 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내민 셈이다.   이를 거부한 건 정작 논설위원들이다. 그들이 원했던 공개 지지는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한국 언론은 더 문제다. 편향적인 미국 주류 언론 기사의 논조를 한 번 더 틀어서 베꼈다. 대선 직후 한국의 한 유명 언론사가 분노에 찬 듯한 트럼프의 얼굴을 따서 이렇게 제목을 달았다.    ‘대규모 추방 본격 시동, 취임 첫날 이민자 내쫓을 것’.    불법이란 단어가 빠졌다. 상식적으로 ‘이민자’를 어떻게 내쫓나. 이러한 보도에만 경도되면 패배 원인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8일 ‘선거가 트럼프 지지자에 대해 알려주는 점’이라는 분석 기사를 보도했다. 이 매체는 대학 학위가 없는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몰렸다고 폄하했다.     무려 7600만명 이상이 트럼프에게 표를 줬는데 자성의 목소리는 없다. 트럼프 꽁무니만 좇다가 참패할 만 했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트럼프 꽁무니 러시아 대선 이번 대선 대선 당시

2024-11-19

[중앙칼럼] 베트남계 표심 향방 주목해야

3선에 도전하는 미셸 박 스틸 연방하원의원(공화·45지구)이 데릭 트랜(민주) 후보와 초박빙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의 표 차이는 230여 표에 불과하다. 선거일 이후 한 때 약 7000표에 달했던 표 차는 개표가 진행될수록 줄고 있다. 개표가 완료되기 전까진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2년 전 재선에 나선 스틸 의원은 1만4000여 표 차이로 상대를 누르고 가볍게 승리했다. 불과 2년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 답은 베트남계 커뮤니티에서 찾아야 한다.   2022년 중간 선거에서 스틸 의원은 중국계 제이 첸과 대결했다. 이번에 상대하는 트랜 후보는 베트남계다.   45지구는 전국에서 아시아계 주민 비율이 세 번째로 높은 선거구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인구 74만 명 중 약 39%가 아시아계다. 라티노는 31%, 백인은 24%다.   오렌지카운티와 LA카운티에 걸친 45지구엔 가든그로브, 웨스트민스터, 세리토스, 부에나파크, 사이프리스, 플라센티아, 하와이언가든, 파운틴밸리, 아티샤, 로스알라미토스, 로스무어, 라팔마 전체, 풀러턴, 브레아, 레이크우드 일부가 속한다.   유권자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아시아계는 베트남계다. 전체의 16.7%를 차지한다. 스틸 의원 캠프에 따르면 한인은 3만5000명으로 베트남계의 절반이 약간 넘는 8.5%다.   지난 선거에서 스틸 의원은 공화당원 표에 한인의 결집된 지지, 오랜 기간 공을 들여온 베트남계 커뮤니티의 우호적 표심을 보태는 방식으로 손쉬운 승리를 거뒀다. 그런데 올해는 베트남계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렌지카운티 최초의 베트남계 연방하원의원을 배출할 가능성에 주목한 유권자가 는 것이다.   정치에 관한 한, 오렌지카운티의 아시아계 커뮤니티 중 선두 주자로 꼽혀온 베트남계 커뮤니티는 아직까지 연방하원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반면, 한인 사회는 지난 2020년 스틸 의원과 영 김 의원이 연방하원 선거에서 동반 당선되는 경사를 맞았다.   한인 연방하원의원을 만들기 위해 당적을 초월해 표를 몰아준 한인들은 이번 선거에서 베트남계, 특히 무당파 유권자가 어떤 마음으로 투표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틸 의원 캠프도 베트남계 커뮤니티의 표심 향방을 주시해왔다. 스틸 의원은 선거 캠페인 막판 한인 언론 매체들과 가진 합동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치른 선거 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exciting) 선거이기도 하다”며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베트남계 정계와 친숙한 한 인사는 “베트남계 커뮤니티에선 보트 피플의 기억이 생생한 1세 중심의 친공화당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2세 그룹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45지구 선거에서 가장 우려한 것은 베트남계 유권자가 베트남계 연방하원의원을 만들어보자고 뭉치는 것이었다. 이번에 트랜이 스틸 의원과 박빙 승부를 펼치는 것을 봤으니 앞으로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베트남계 커뮤니티의 표심에 변화가 생긴다면 스틸 의원은 이번에 승리해도 앞으로 베트남계 후보를 상대하게 될 때마다 격전을 치러야 한다. 한인 표 결집 필요성도 절실해질 것이다.   베트남계 표심 결집 효과는 오렌지카운티 곳곳으로 확산할 수 있다. 20만 명에 육박하는 OC 베트남계 인구는 한인 인구의 약 2배에 달하며 이들의 거주지도 카운티 내 여러 도시로 확대되고 있다.   베트남계는 투표도 한인보다 열심히 한다. 4년 전 대선에서 OC 베트남계 투표율은 85%로 전체 투표율 87%에 근접했다. 한인 투표율은 79%로 중국계(81%)보다 낮았으며, 라티노(77%)를 소폭 앞서는 데 그쳤다.   한인사회가 정치력을 키우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다. 누구에게 표를 주든 일단 투표는 하고 보자. 모든 정치인은 표를 주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마련이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베트남계 표심 베트남계 연방하원의원 베트남계 커뮤니티 한인 연방하원의원

2024-11-17

[중앙칼럼] 내가 던지는 한표의 의미

우리는 어떤 이유로 정치인에게 주머니를 열고 어떤 근거로 표를 줄까.     다음 주 민심의 심판을 앞둔 많은 후보의 재정보고를 보면 법적으로 허용된 최고액을 기부한 사람들도 있지만 20~30달러의 소액 기부자도 많다. 아니면 지지 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거나 집 앞에 선거 홍보용 팻말을 설치하는 일에 나서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것을 알면서도, 그의 당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흥미롭다. 왜 그럴까?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믿음과 신뢰를 갖고 군소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그들의 기부나 활동, 그리고 한표의 행사가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 것이다. 표를 많이 받아 당선되는 것도 정치지만 숫자는 적어도 의미 있는 표를 받는 후보도 분명히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는 뜻이다.     11월5일 선거에서 LA 한인타운이 포함된 가주하원 54지구에 출마한 존 이 후보의 후원금 모금 상황은 형편없다. 상대 후보가 100만 달러 가까이 모금하며 세를 과시하는 동안 이 후보가 모은 돈은 그와 같은 또래 직장인의 1년 치 연봉 정도에 불과했다. 그의 후원자 가운데는 20달러 기부자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 후보는 예선에서 돌풍에 가까운 표를 얻었다. 같은 당 소속의 경쟁자를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경쟁 후보가 1만9600여 표를 얻을 때 그는 1만4900여 표를 얻었다. 미시간에서 공부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비영리단체 직원으로 일하던 신출내기 정치인이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경쟁 후보는 이 후보가 한인이라는 사실을 감안, 발 빠르게 한인 인사들의 지지 확보에 나섰다. 선거에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다. 하지만 이 후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공법을 택했다. 그는 유세 막바지인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유권자를 만나고 있다. 그와 잠깐 만날 때면 항상 땀방울이 가득한 얼굴이었고, 전화 통화를 하면 길거리 소음이 들려왔다.      한인이라고 무조건 한인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일 수 있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소위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제시한 정책과 정치적 소신에 공감한다면 ‘낙선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그를 후원하고 그의 메시지를 전파하려고 노력하는 유권자들은 자본이 지배하는 오늘날 미국 선거판에서 보석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한인 정치력 신장을 표방하는 단체에 이 후보 지원 여부를 물었더니 ‘될 사람에게 얼굴도장을 찍는 것이 낫지 않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식의 접근이라면 한인 사회는 항상 얼굴도장만 찍고 돈만 주는 ATM을 자처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 후보에 대한 한인들의 지지는 어떻게든 한인 정치인이 가주 의회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열망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모인 에너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당선이 안 되면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커뮤니티 밖에서는 강력한 결집력과 구심점으로 여기며 주시한다.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같은 목적으로 모이는 한인표는 한인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된다.     선거 때면 한인 유권자들은 또 선택의 갈림길에 설 것이다. 뭔가 용기 있게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새크라멘토와 워싱턴 DC에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세상에 ‘사표(死票)’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지 후보의 당락만큼이나 한인 사회 일원으로 내가 던진 한 표의 의미도 되새겨보면 좋겠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한표의 의미 한인 정치력 지지 후보 한인 사회

2024-10-31

[중앙칼럼] 한국식 정년 규정 큰 코 다친다

한국에서 '정년 연장' 논의가 한창이다. 한국발 뉴스를 접하면 정년 연장은 고령화 사회를 반영하는 시대적 과제처럼 떠올랐다. 특히 70세는 넘어야 노인이라는 공감대가 퍼지면서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와 대구시가 공무직의 정년을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키로 노사 합의하자 정년 연장 논의가 주요 뉴스가 됐다.   한국은 법정 정년이 60세로 규정돼 있다. 사업장에서 노동자 임의 해고를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정규직의 정년을 60세까지 보장하는 것이다. 반면 60세가 넘으면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퇴직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한국의 정년 연장 논의는 세대 간 갈등 양상도 보인다. 중장년층은 더 일할 수 있다며 정년 연장을 희망한다. 중장년층에게 '65세 정년'은 먹고살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반면 청년층은 질 낮은 일자리 증가 등을 이유로 정년 연장에 거부감을 보이는 모습이다. 지난 8일 기준 한국의 청년층(15~29세) 취업포기자는 46만 명으로 전년보다 9만4000명이나 증가했다고 한다. 청년층은 중장년층이 차세대를 위해 일자리 양보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한국의 법정 정년 규정은 미국의 한인 경제권에도 후유증을 낳고 있다. '정년'에 익숙한 한국 지상사나 한인 기업들이 연령 차별 소송을 당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 노동법에 따르면 한국의 법정 정년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 연방 공정고용기회위원회(EEOC) 등 연방과 각 주의 노동법 담당 정부기관이 당장 단속에 나설 사안이다. 법정 정년을 60세로 규정해 퇴직을 일반화하는 제도 자체가 '연령차별(Age Discrimination)'로 손가락질 받을 일이다.     이렇게 분명한 차이를 한국식으로 생각했다가 연령차별에 따른 부당해고로 소송을 당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법원은 고용주 측의 연령차별 행위가 불법적이고 공공방침에 어긋났다며 거액의 징벌적 배상(punitive damages)까지 부과한다.     주찬호 노동법 변호사는 "지상사가 한국 본사에 미국의 연령차별 금지법을 보고해도 본사에선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심지어 소송을 감수하더라도 나이를 이유로 해고를 지시하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소위 '로마법'을 따르지 않았다가 큰 코 다치는 셈이다.   한국의 기업과 노동자는 '미국은 해고가 자유롭다'며 부러움 반 두려움 반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고용주 측의 해고는 자유롭지만 그에 따른 법적 책임도 온전히 져야 한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또한 연령 성별 장애 인종 종교 임신 등을 문제 삼아 해고할 경우 엄청난 액수의 징벌적 배상까지 각오해야 한다.   최근 한국 지상사와 한인 기업의 연령차별 실태를 취재하면서 너무나도 노골적인 행태에 놀랐다. 원고 측이 제기한 소장에는 '나이가 많아 보인다 왜 은퇴하지 않나 젊은 사람이 낫다. 회사를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 등 언어폭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법원은 거액의 합의금 지급과 별도로 1967년 제정된 '연령차별금지법(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 AEDA)' 준수를 강조했다. 고용주 등이 40세 이상 직원을 대할 때 연령을 이유로 차별대우나 해고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월드트레이드센터 LA(WTCLA)와 LA 카운티 경제개발공사(LAEDC)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캘리포니아주 소재 한국 지상사는 총 432개사 고용직원은 약 2만3000명에 달한다. 그만큼 연령차별 소송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 지상사와 한인 기업 모두 연령차별 금지법을 허투루 볼 때가 아니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한국식 정년 정년 연장 법정 정년 연령차별 금지법

2024-10-29

[중앙칼럼] ‘포용적 미국’ 아직 유효한가

매사추세츠공대(MIT) 대런 아제모을루 경제학과 교수, 역시 MIT의 사이먼 존슨  슬론경영대학원 교수,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 등 3명은 사회적 제도가 국가 번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공로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경제적 성공과 실패의 핵심 요소로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를 제시했다. 로빈슨 교수는 남북한의 경제 격차를 언급하며, 한국은 포용적 제도를 통해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룬 나라 중 하나로 평가했다. 반면 북한은 착취적 제도에 장악된 대표적인 나라로 지목됐다. 남북한은 1948년 이후 서로 다른 체제와 제도를 만들었고, 그 결과가 경제력의 차이를 벌어지게 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제시한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는 무엇일까. 포용적 제도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부당한 공권력의 개입을 방지하며 공정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포용적 경제제도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생산성이 향상되어 경제활동이 왕성해지고 그 결과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다. 또한 포용적 시장에서 국민은 자신의 능력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고 이는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한국은 이러한 포용적 제도를 도입하여 경제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착취적 제도는 소수 집단에게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제도를 말한다.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고 경제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도 제공하지 않아서 국가의 지시만 따르면 되는 구조다. 착취적 제도의 전형적인 예가 바로 북한이다. 로빈슨 교수는 소수 엘리트에게 권력이 편중된 전체주의적 독재 체제 때문에 북한은 경제적 번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포용적 제도가 점차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의 양극화가 포용적 제도의 근간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흔들고 있어서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포용적 제도가 가장 잘 구축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분열이 심화하면서 포용적 정치 제도가 위축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의 등장 이후 정치와 사회의 양극화는 더 악화했다. 그는 4년간 미국 대통령을 역임했고 올해 대선에도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 이번 대선 유세 과정에서도 그는 종종 공격적이고 사실과 거리가 있는 언급으로 정치와 사회적 논란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정치 리더의 태도는 ‘우리 편 아니면 무조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확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여기에다 팬데믹 이후 심화한 부의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자산 상위 1%에 속하는 초부유층의 부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자산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포용적 제도를 구축해 성공적으로 유지해 온 미국조차도 이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민주주의가 모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면, 그 실망감이 독재 정치에 대한 지지로 이어져 포용적 제도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경고하고 있다. 존슨 교수 역시 “포용적 제도를 구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 경제는 ‘나 홀로 호황’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지만, 경제와 정치적 양극화가 가속화되면서 선진국의 핵심 요소인 포용적 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는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더 발전하려면 정치와 경제 전반에서 포용적 제도를 더욱 견고히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진성철 / 경제부장중앙칼럼 미국 포용 포용적 경제제도 포용적 제도 착취적 제도

2024-10-22

[중앙칼럼] 에어프레미아 선결 과제

하이브리드 항공사 에어프레미아가 10월 29일로 LA노선 취항 2주년을 맞는다. LA노선에 한국 국적기가 신규 취항한 것이 31년만인 데다가 국적기 직항 옵션이 추가됨에 따라 많은 관심과 기대 가운데 운항에 들어갔다.   에어프레미아는 보잉 787-9 드림라이너 항공기에 좌석이 넓은데도 가격은 저렴해 가성비를 중시하는 여행객들이 몰리면서 후발 신생 항공사임에도 높은 탑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LA노선은 2022년 취항 이래 지난 9월까지 총 1171편 운항을 통해 31만7531명을 수송하며 여객점유율 13.5%를 기록했다.   현재 LA,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미주를 포함해 도쿄, 방콕 등 5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는 에어프레미아는 내년부터는 홍콩, 다낭 등 신규 노선 취항 및 기존 미주 노선 증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인들 이용이 늘면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탑승 후기가 올라오고 있어 궁금하던 차에 지난 여름 모국 방문길에 에어프레미아에 탑승할 수 있었다.   듣던 대로 청결, 쾌적하고 기내 서비스도 좋은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좌석 공간이 여유로워 탑승 내내 큰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앞좌석 한인 부자가 이륙 후부터 내내 좌석을 최대한 뒤로 눕혔는데도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정도다.     앞좌석 엔터테인먼트 스크린 각도 조정이 한정돼 뒷좌석 탑승객도 함께 누워야 편히 볼 수 있었던 점은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수가 적은 점, 1시간 무료로 제공되는 기내 인터넷 서비스를 항공기 사정상 이용할 수 없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수차례 음료 서비스가 제공됐으며 깔끔, 담백한 기내식 등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탑승 경험이었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충분히 다른 국적항공사들과 경쟁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중장거리 운항 노선망에 비해 보유 기재수가 5대로 충분하지 않아 비상시 결항이나 연착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7월 노르웨이 오슬로로 향하던 에어프레미아 항공기가 엔진 결함으로 10시간 만에 회항한 데 이어 8월에는 5대 중 2대가 정비 및 수리로 인해 운항이 어렵게 돼 LA를 포함한 전체 노선 운항 스케줄이 조정된 바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운항 지연 불만 게시물을 찾을 수 있는데 지연 사유는 대부분 ‘항공기 정비’ 또는 ‘항공기 연결 지연’ 등으로 이는 기재수가 충분하지 않아 문제 발생 시 운용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어프레미아 항공기의 엔진은 롤스로이스 엔진으로 GE 엔진보다 저렴하지만, 상대적으로 정비 주기가 짧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당초 롤스로이스사가 여분의 엔진 1기를 제공했으나 경영 차원에서 판매 처분해 정비 또는 문제 발생 시 즉각 대처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에어프레미아는 지난 6월 예비엔진 1기를 구매한 데 이어 연내 추가로 엔진 1기를 더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대한항공으로부터 보잉 787-9 항공기 4대를 임대하려던 계획이 불발됨에 따라 올해 말부터 내년 3분기까지 항공기 리스사로부터 4대를 순차적으로 추가 도입함으로써 내년 말에는 총 9대를 보유하게 된다.   항공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스케줄 운영과 지속가능한 장거리 노선 확장을 위해서는 최소 10대의 항공기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내년 말이면 9대와 예비 엔진 2기로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본보가 실시한 LA노선 3개 국적항공사 선호도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에어프레미아가 깜짝 1위에 올랐을 정도로 미주 한인들의 관심과 성원이 쏠리고 있다.   에어프레미아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 후 존재감을 드러내며 비상하기 위해서는 노선 다변화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정시 운항’ 항공사 이미지 구축을 위해 안정적인 운항 서비스 제공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에어 선결 la노선 취항 드림라이너 항공기 항공기 사정상

2024-10-21

[중앙칼럼] LA타임스가 우리보다 한인을 잘 아나

주류 언론에서 다루는 아시아계 증오 범죄는 피상적이다. 단순 통계로 현상만 설명한다. 질문은 그 지점에서 시작됐다.   ‘과연 증오의 뿌리는 무엇인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본지 기자들은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조사했다. 그러자 근저에 오랜 시간 스며든 차별, 배제, 외면 등의 역사적 사각지대가 서서히 드러났다.   묘지의 모퉁이로 내밀리다 못해 역사에서 지워질 뻔했던 포틀랜드의 중국계 이민자들, 묻힐 땅도 없었던 하와이 한인 이민 선조들의 묘비 이야기는 오늘날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의 역사적 맥락을 담고 있었다.   주류 언론이 세세하게 살펴보지 못하는 지대를 조명하고자 했다. 이는 본지가 올해 초 언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퓰리처 상(Pulitzer Prize)에 도전하게 된 시발점이 됐다.   주로 전국 단위의 이슈 또는 거대 담론을 다루는 주류 언론은 미세한 뉴스의 영역을 살피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소수계 그리고 각 지역의 세부적인 이슈는 더욱 그렇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관심사도 이질적이다.     수년 전부터 언론계에서는 ‘뉴스의 사막화(news desert)’라는 용어가 화두다. 땅덩이가 크고, 수백 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선 더욱 심각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뉴스의 사막화는 언론사가 없는 커뮤니티 또는 뉴스 매체가 줄어 언론의 기능이 상실된 지역을 의미한다. 지역 뉴스의 상실은 정보의 빈곤 상태를 가져온다. 결국 커뮤니티가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뉴스의 사막화 때문에 커뮤니티 이슈를 공론화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지역도 늘고 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해 단절되고 지역 사회 구성원이 커뮤니티 뉴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폐해를 낳는다.   노스웨스턴대 메딜 저널리즘 스쿨이 이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2023년 기준)에 따르면 전국에서 뉴스 매체가 없는 카운티는 무려 204개다. 단 한 곳의 뉴스 매체만 운영되고 있는 카운티도 무려 1562개에 이른다.   하물며 소수계 언론 등을 일컫는 민족 매체(Ethnic Outlets)는 어떻겠는가. 카운티 차원을 넘어 메인, 뉴햄프셔, 와이오밍,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웨스트버지니아 등 단 한 곳의 민족 매체도 없는 주가 많다.   한인 언론은 중요하다.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면 주류 매체가 간헐적, 표피적으로만 다루는 한인 커뮤니티 소식에만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목소리를 대변할 언론을 소유한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전국에서도 이민자가 많이 사는 LA카운티를 살펴봤다. UCLA 임상·중개 과학 연구소(CTSI)에 따르면 LA카운티는 224개 언어, 140개 민족으로 구성돼있다.     가주 지역의 소수계 언론 연구 및 지원 기관인 에스닉 미디어의 자료를 살펴보면 남가주 지역에서 언론을 보유하고 있는 민족은 한인을 비롯한 일본계, 중국계, 베트남계, 아르메니안계 등 고작 25개 민족뿐이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소수계가 언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영향력으로 직결된다. 주류 사회가 소수계 또는 지역 이슈에 대해 외면할 수 없도록 긴장하게 만든다.   그뿐 아니다. 미국에만 200만 명 이상의 한인이 산다. 디아스포라 시대 가운데 재외국민 또는 재외동포 이슈를 한국에 알리는가 하면 미국 사회의 시각을 한인 사회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도 한다.   ‘아스바레즈(Asbarez)’는 LA 지역 아르메니안 커뮤니티 최대 일간지다. 이 신문의 영문판 담당 아라 크라차투리안 편집국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지역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LA타임스나 뉴욕타임스가 과연 아르메니안 커뮤니티 이슈를 ‘아스바레즈’만큼 자세하게 다룰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인 사회 이슈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본지는 ‘함께한 50년, 함께할 50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창간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한인 사회는 다른 민족과 달리 언론을 소유한 커뮤니티다. 함께할 50년은 그 자부심에서 기인한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la타임스 한인 커뮤니티 뉴스 커뮤니티 이슈 지역 뉴스

2024-10-20

[중앙칼럼] 타운 재개발과 한인 상권

최근 그래픽 디자이너 이상모 씨가 출간한 ‘로고LA’에는 이 씨가 지난 50년간 제작한 수백개의 한인 업체 로고가 담겼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이 씨의 라카냐다 홈오피스는 LA한인 상권의 역사박물관이었다. 1970년대 초 한국에서 로고 작업을 한 광고도안, 광고 의약품, 1975년 한인록, 70년대부터 최근까지 광고도안, 출판물, 사진 등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1990년대 컴퓨터 디자인 시대 진입 전인 활판인쇄 시절, 광고 도안 작업은 100% 수작업이었다. 홈오피스에는 이 씨가 직접 광고용 그림을 그리고 광고기사를 써서 수작업한 광고도안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가 지금은 볼 수 없는 진귀한 자료라고 꺼낸 것은 50년 전 발간된 1975년 한인록. 목차부터 한 장 한 장 넘기는 사이 누렇게 변색한 광고 페이지 종이가 으스러졌다. 종이는 50년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그 당시 한인사회 옐로페이지 격인 한인록은 광고 홍보물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긴급전화, 구급차, 한인 언론기관 독자상담실, 교통서비스, 지역 번호와 미주 내 시차, 한인이 많이 사는 지역 표시까지 이민생활의 가이드북이었다. ‘나성’에 막 도착한 누구라도 한인록 한 권이면 집을 구하고, 일을 찾고, 심지어 지인의 주소와 연락처도 찾을 수 있었다.     이 씨에 따르면 70년대 중반 한인 이민 폭증으로 집과 비즈니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면서 부동산 광고도 많았다.  지금도 운영 중인 아주부동산을 비롯해 국제부동산, 소니아석 부동산이 당시 가장 큰 부동산 회사였다. 식당 광고는 ‘가고파’, ‘동원식당’ 등 수가 적었다. 전파사 ‘리스TV’, ‘박스전자’에서 한인들은 가전 살림을 마련했다.     이 씨는 광고 페이지마다 그 당시 한인 업체 이야기를 풀어내며 70년대부터 한인 상권을 소환했다. 한인 상권에 대한 그의 기억은 ‘로고LA’ 책에서 이어진다. 책 속 연대별 업체 로고도 한인 상권의 흥망성쇠를 대변한다.     이 씨가 로고디자인을 가장 많이 한 1980~90년대는 한인 상권의 기틀이 마련되고 발전한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그가 로고 디자인 작업을 한 업체 중 지금도 운영 중인 곳이 25개가 넘는다.  김스전기, 수원갈비, 아주부동산, 베버리웨스턴 덴탈 등도 그중 일부다.       LA한인타운에서 장수 업체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로고LA’에는 이들 업체의 건재함이 살아있다. LA 한인타운 노포식당과 업체 매장들은 2010년대 LA가 재개발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시작된 주상복합 건립 프로젝트로 인해 빠르게 사라졌다.     팬데믹은 한인 상권에 직격탄이었다. 소비자들이 온라인 쇼핑으로 대거 옮겨가면서 한인 상권의 폐업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문을 닫은 노포식당도 전원식당, 베버리순두부, 동일장, 전주돌솥 등 수없이 많다. 1994년 문을 연 전원식당은 수십 년 운영해왔던 8가와 베렌도 코너 ‘센터플라자’ 부지가 7층 주상복합건물로 개발돼 이전했다가 팬데믹 때 문을 닫았다. 역시 8가 선상에 있던 대표적인 노포식당 동일장 자리에는 8층 주상복합 건물 ‘더 파크인 LA’가 들어선다. 전주현대옥 등 수십년간 식당 자리였던 윌셔와 버질 인근의 상가도  8층 주상복합 건물로 탈바꿈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주상복합 건축 붐으로 한인타운에는 3000유닛이 넘는 신규 아파트가 완공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LA한인타운에 주상복합 건물 개발이 늘면서 비한인 거주자와 비즈니스의 유입은 늘고 있지만 한인 업소는 조용히 감소하고 있다.     이 씨는 ‘로고’는 회사나 단체를 대신하는 얼굴이라고 했다. 한인 업체 로고는 곧 한인 이민사이면서 한인타운의 얼굴이기도 하다. 친숙한 한인 업체의 간판과 로고가 사라지는 것은 한 비즈니스의 흥망성쇠를 넘어서 한인 사회 얼굴이 사라지는 것이다.  한인 상권이 주상복합 건축 붐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재개발 타운 la한인 상권 한인 업체 당시 한인사회

2024-10-15

[중앙칼럼] 한인 투표율 80% 벽 부숴보자

11월 5일 대통령 선거 투표가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렌지카운티 선거관리국은 지난 7일 카운티 내 등록 유권자를 대상으로 우편투표 용지 발송을 시작했다. 대다수 유권자는 늦어도 금주 내로 우편투표 용지를 받게 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미국과 전 세계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클 것이다. 많은 유권자가 대선에 관심을 보이는 만큼 OC도 높은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4년 전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이 맞붙은 대선에서 OC의 투표율은 87%에 달했다. 아쉬운 점은 당시 OC 한인들의 투표율은 79%에 그치며 전체 투표율과 큰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OC선거관리국은 대선 이듬해 가주유권자권리법(VRA) 이행 보고서를 펴냈다. 선거관리국은 VRA 규정에 따라 유권자가 신청할 경우, 소수계 언어로 된 투표 용지가 제공되는 한인, 베트남계, 중국계, 라티노 커뮤니티의 투표율을 비교했다. 그 결과, 한인의 대선 투표율은 77%를 기록한 라티노를 제외하고 OC의 주요 소수계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 대선 당시 한국어 투표용지 신청자는 1만5021명이었다. 이들 중 실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1만1899명으로 집계된 것이다.   소수계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인 곳은 85%를 기록한 베트남계 커뮤니티다. 중국계 커뮤니티 투표율도 81%에 달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소수계 중 가장 높은 베트남계 투표율 85%도 OC 전체 투표율보다 2%p가 낮다는 것이다. 백인이 주를 이룬 다른 인종 그룹의 투표율이 얼마나 높았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OC지역 한인은 몇몇 도시에 밀집 거주하는 베트남계, 중국계와 달리, 여러 도시에 흩어져 산다. 이런 특징은 가주, 연방 의회 등 광역 선거보다 규모가 작은 시 단위 선거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현재 한인 시의원이 있는 OC 도시는 어바인, 풀러턴, 부에나파크다. 한인 인구 1, 2, 3위 도시에만 한인 시의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풀러턴과 부에나파크의 경우,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구(모두 1지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점이 있다.   어바인에선 태미 김 시의원이 직선 시장 선거에, 존 박 후보가 1지구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풀러턴에선 프레드 정 부시장이 1지구에서 시의원 재선을 노린다. 풀러턴 교육구 2지구에선 제임스 조 후보가 교육구 사상 첫 한인 교육위원에 당선되기 위해 뛰고 있다.   부에나파크 2지구에선 최용덕 후보가 시의회 입성에 도전한다. 은퇴한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라구나우즈 빌리지가 속한 라구나우즈 시의회 선거에선 이은주 후보가 한인 최초 당선을 노리고 있다.   이번 대선에선 OC 한인 투표율이 80%의 벽을 넘길 바란다. 특히 한인이 출마한 도시에선 한인 유권자들이 꼭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집에서 우편투표 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우표를 붙일 필요 없이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되는 편리한 투표 시스템은 가주 유권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미국의 정치는 로컬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교육위원, 시의원에서 시작해 카운티 수퍼바이저를 거쳐 주와 연방 의회에 진출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한인 교육위원, 시의원이 많아지면 광역 선거에 출마하는 한인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인 정치력을 신장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한인 정치인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인 후보가 없을 경우, 한인 커뮤니티에 관심을 보이고 한인 목소리를 대변할 타인종 후보를 돕고 표를 주는 것이다.   보통의 유권자는 정치 고관심층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한인 커뮤니티를 도울 후보인지 알기 어렵다. 한인 단체 또는 단체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런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효과 극대화는 유권자의 몫이다. 한인 유권자는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 한인 투표율이 높으면 어느 정치인이든 주목하게 돼 있다. 이번 대선이 한인 정치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투표율 한인 커뮤니티 투표율 베트남계 투표율 대선 투표율

2024-10-13

[중앙칼럼] 11월 선거 주민발의안에도 관심을

선거 시즌이다.     치열한 대통령 선거부터 소도시의 주민 조례안까지 유권자 입장에서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만들어준 권리를 마음껏 행사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 하지만 권리 행사에는 필요조건이 따른다. 대통령 후보를 비롯해 각종 선출직 공직자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히 살피고, 주요 발의안이나 조례안의 내용도 잘 파악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가주 유권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주민발의안 33과 36이다. 주민발의안 33은 간단히 정리하면 렌트 컨트롤 규정의 확대 시행이다. 즉, 1995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와 주택도 시나 카운티 정부에 렌트비 인상폭 제어 권한을 주자는 내용이다. ‘렌트 컨트롤’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확대할 것인지 아니면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옳은지를 묻는 것이다. 찬성하는 측은 거대 기업과 건축업자들이 렌트비를 천정부지로 올리며 이득을 취하고 있어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대쪽은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게 되면 적절한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주거난이 가중될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일단 찬성 여론이 소폭 높다는 것이 주요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다. 다만 아직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30%에 가깝다고 하니 막판까지 양측의 치열한 홍보전이 예상된다.   결과가 주목되는 또 다른 발의안은 36이다. 이는 현재 시행 중인 주민발의 47의 효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피해액 950달러 이하의 절도와 마약 범죄도 중범죄 기소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는 팬데믹 이후 급증하고 있는 집단 절도와 강도 범죄 등의 예방을 위한 것이다. 원래 주민발의 47의 취지는 경미한 범죄는 교도소보다는 교화를 통해 사회에 복귀시키자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범죄 급증으로 인한 무질서 상황을 해결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민발의안 36 발의의 배경이 됐다. 시도 때도 없이 편의점을 약탈하는 청소년들, 모이면 군중심리로 무고한 주민들을 폭행하는 자전거족, 마스크도 쓰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며 상점을 터는 대범한 상습 범죄자들을 단죄하자는 것이다.     현재까지 주민발의안 36은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55% 가량이 찬성하고 있으며, 반대는 20%에 불과하다.  반대 측은 범죄자들에게 교도소행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기존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반증이 없다는 것이다. 찬성 측은 ‘가시적인 범죄 억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인구 1000만 명인 LA카운티 검사장 선거도 초미의 관심을 끈다. 연임에 도전하는 조지 개스콘 검사장과 내이선 호크만 도전자의 경쟁은 범죄로부터 도시를 구하는 방법론의 대결이다. 임기 내내 줄기차게 처벌보다는 교화를 강조해온 개스콘 검사장은 유권자들의 심판에 직면해 있다. 반면, 호크만 후보는 기강과 질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현재 여론은 호크만이 우세를 보이는 양상이다. 호크만이 40%대 중반의 지지율을 보이는 반면 개스콘의 지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아직 부동층이 30~40%에 달해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올해 선거는 특히 아태계를 포함한 소수계의 목소리가 더 중요해졌다. 막강한 스윙보트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발의안의 경우 소수계도 입장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주민발의안 33이 대표적이다. 세입자인 아태계가 있는가 하면 건물주인 아태계도 많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주민발의안 36에 대한 아태계의 지지율은 반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한인 사회 정치력 신장을 위해 한인 유권자들도 확실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주민발의 선거 주민발의안 36 주민발의안 33 대통령 선거

2024-09-30

[중앙칼럼] 삶의 활력을 되찾은 시니어들

어릴 때 교회에서 들었던 말 중 아직도 뇌리에 각인된 성경 구절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가 대접받고 싶거든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다.   어릴 때야 그렇게 하라고 하니 외웠을 뿐이다. ‘왜?’라는 물음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는 불문율 같았다. 그렇다고 실천이 함께한 것 같지도 않다. 이기심이 꿈틀대면서, 자아가 강해지면서 실천은 더 쉽지 않다는 현실을 체감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타인을 위한 선행에 나서는 모습을 볼 때면 양심의 찔림을 느낀다. 그런데도 스스로 실천해볼 결단이나 행동력은 스멀스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한인 사회 곳곳에는 남모르게 자원봉사에 앞장서는 ‘귀인’이 많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분들이 아니라, 대부분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이들이다.     특히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놀랍다. 현장 속 그들의 이야기는 일상을 뒤돌아보게 한다.   차승표(74) 할아버지, LA한인회관 1층 복도에 5년째 자리를 잡고 앉아 각종 공과금 서류 등의 상담을 친절하게 해 주는 분이다. 원래 그곳에 있는 분이겠거니 하지만, 사실은 차 할아버지의 굳센 의지와 실천력이 일궈낸 커뮤니티 혜택이다.     차 할아버지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6시에 일어나 LA한인회관으로 향한다. 오후 3시까지 현장을 지키며 한인들이 가져온 갖가지 서류를 읽고, 문제 해결을 도와준다. 찾아오는 이들이 답답함으로 늘어놓는 하소연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하지만 그는 친절함을 잊지 않는다.     차 할아버지는 “영어로 된 편지가 오면 무슨 내용인지 몰라 밤새 잠을 못 이룬다는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그는 공무원 생활로 얻은 행정처리 업무 능력을 은퇴 후 남을 위해 쓸 수 있어 기쁘다며 웃는다.     LA한인타운 시니어&커뮤니티센터에서 자원봉사하는 최기열(77)·정인숙(78)·윤영희(68)·빅토리아 이(69)·이효기(59) 시니어도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자원봉사를 통해 얻는 즐거움과 행복이 더 크다며 웃는다. 이들이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7년에서 최고 13년에 이른다.     최기열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나 스스로가 밝아진다. 죽을 때까지 안내를 맡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정인숙 할머니는 “늙어서 집에만 있잖아? 힘들어…”라며 여걸다운 에너지를 내뿜는다.     이들 모두에게서 즐거움과 생기가 느껴진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한다. 남을 돕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자원봉사는 귀찮고 힘들 거라는 선입견이 잘못됐음을 알려준다.     시니어 자원봉사자의 공통점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삶의 기쁨을 느끼고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보상으로 받는다.   한인 청소년 환경미화 봉사단체 파바월드(PAVA World)를 이끄는 명원식(67) 회장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이후로 봉사와 기부에 올인하고 있다. 그는 “빈손으로 떠날 때까지 합당한 일을 하고 가고 싶다”며 자원봉사와 기부가 남은 삶의 목표라고 했다.     글로벌어린이재단 이정희(67) 전 회장도 시니어가 돼서야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은 “평생 열심히 일했지만 남을 위한 봉사는 안 했다. 생각 없이 골프만 치는 것보다 남을 도우며 생활하면 엄청난 보람을 느낀다”며 실천을 독려했다.     시니어의 자원봉사는 치매 예방 등 건강과 우울감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상위의 욕구 충족도 가능하다. ‘이타적인 삶’을 통한 존재의 의미다. 삶의 활력을 느끼고 싶지 않은가. 자원봉사에 나서보자.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시니어 활력 시니어 자원봉사자들 la한인타운 시니어 할아버지 la한인회관

2024-09-24

[중앙칼럼] 포퓰리즘 공약 남발하는 대선 후보들

올해 대통령 선거도 4년 전처럼 경제 문제가 유권자의 최고 관심사로 부상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경제 공약이 투표 결정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81%로 나타났다. 이는 4년 전의 79%에 비해 2%포인트 높아진 비율이다.     지난 몇 년간 지속한 인플레이션으로 주거비용을 비롯한 생활비가 치솟으면서 유권자들은 경제 상황에 더 민감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의 카말라 해리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모두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심성 경제 공약으로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9월 현재 35조3000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할 공약은 없고 되레 늘리는 공약만 내놓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경제 공약으로 지적되는 것이 자녀세액공제(CTC) 확대와 팁 면세다. 내용은 다소 다르지만 양 후보 모두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책들이다. 왜일까? 둘 다 선심성 공약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적으로는 좋은 공약일지 모르지만 실효성은 떨어지고 재정 적자 폭만 늘리는 나쁜 공약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두 공약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해리스 부통령의 공약은 CTC를 자녀 나이에 따라 대폭 증액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구에 연간 60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2~5세 아동 1명당 3600달러를, 6세에서 16세까지는 3000달러의 세제 혜택을 약속했다. 해리스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으로 소득 기준을 제시했지만, 트럼프 캠프는 소득과 관계없이 미성년 자녀 1명당 50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현행 2000달러보다 최소 1000달러에서 최대 4000달러나 더 많다.   해리스의 CTC 확대안이 시행되면 향후 10년간 1조6000억 달러의 재정 부담이 발생한다는 게 조세재단(Tax Foundation)의 추산이다. 트럼프 안의 경우엔 이보다 더 많은 10년간 3조2000억 달러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또 양 후보 모두 팁 수입에 의존하는 근로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팁 면세도 약속했다. 특히 경합지역으로 꼽히는 네바다주의 경우 10명 중 2명이 팁 근로자로 알려졌다. 팁 면세는 주요 유권자 그룹으로 부상한 히스패닉계의 표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요식업 종사자 25%가 히스패닉계이기 때문이다.   CTC 확대가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세제 혜택이 목적이라면 수혜 대상을 좁혀서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게 조세 권익 옹호 비영리단체의 지적이다. 팁 면세 공약도 허점투성이다. 팁 근로자 3명 중 2명은 연방 소득세를 납부할 정도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팁 근로자 3명 중 1명만 팁 면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세무 전문가들은 “올해 연방정부 부채 이자로만 1조1580억 달러를 지출하게 생겼는데 양당 대선 후보는 이를 축소할 수 있는 공약은커녕 선심성 공약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도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며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공약만 남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가 내놓은 각종 공약을 시행하려면 2025년부터 2034년까지 재정 적자가 5조8000억 달러 더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해리스의 공약 역시 향후 10년간 2조240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증세인데 오히려 양 후보의 공약은 감세나 세액 공제 내용이 많다. 증세를 통한 재정적자 해결이 아니라면 취약계층 대상의 복지 정책 축소와 정부 지원 삭감 등이 불가피하다. 이는 곧 다른 취약 계층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양 후보 모두 사탕발림식 공약 남발은 그만하고 국민을 위한, 그리고 국민에게 정말 필요한 경제 공약을 내놓아야 할 때다.   진성철 / 경제부장중앙칼럼 포퓰리즘 공약 경제 공약 포퓰리즘 경제 재정적자 규모

2024-09-17

[중앙칼럼] 하이브리드차 인기 부활 이유

지난 1997년 최초의 양산형 모델을 선보인 하이브리드 자동차(HEV)가 사반세기 만에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도요타 프리우스는 양산 전부터 내연기관(ICE)과 배터리 구동 모터를 함께 장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갤런당 50마일이 넘는 뛰어난 연비를 자랑하며 자동차업계 혁신 중 하나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도 저유가 시대에 등장한 탓에 소비자들에게 그저 친환경 콘셉트카 이미지로 여겨져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프리우스는 2000년대 접어들어 치솟은 유가 덕분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출시 10년만인 2008년 누적 판매 대수 100만대를 돌파한 프리우스는 2010년 200만대, 2011년 300만대 등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미국에서도 데뷔 연도인 2001년에는 1만5000대 판매에 그쳤으나 2011년 100만대 판매를 기록하는 등 HEV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도요타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이 “우리도 HEV를 생산한다”는 구색 갖추기로 일부 모델만 라인업에 포함하는 데 그치면서 선택의 폭이 좁았다. 게다가 내연기관 모델보다 고가임에도 부족한 주행 성능과 비싼 배터리 교체 비용 등으로 성장세가 주춤했다.     특히 테슬라가 2017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EV 세단, 모델 3가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팬데믹 기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성공하자 각 업체가 앞다퉈 전동화 경쟁에 뛰어들었고 EV 시대 개막 분위기에 결국 HEV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EV는 친환경에 개스비 및 유지비 절약 등 장점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차량 가격에 충전 시간, 주행 가능 거리 제한 등이 소비자에 따라 구매 결정에 걸림돌이 됐다. 공공 충전 인프라 확대가 EV 판매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충전 이슈가 소비자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 데다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비싼 수리비, 중고차 가치 급락 등도 기피 요인이 됐다.   EV 판매 촉진을 위해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7500달러 세액 공제 역시 초기에는 효과를 보았으나 지난해 말부터 강화된 자격 조건으로 대상 모델이 대폭 줄어 EV 판매 증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같이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EV 캐즘(chasm) 상황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이 바로 HEV다. 아이러니하게도 EV 때문에 밀려났던 HEV가 EV 덕분에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HEV는 수요 급증에 따라 지난 2분기 판매량이 31%나 뛰었으며 딜러에서의 판매 대기 기간도 평균 30일로 EV의 81일을 압도했다. 가격에서도 HEV는 평균 4만3142달러로 EV의 5만8619달러보다 1만5477달러, 26.4%가 더 저렴했다.     EV와 내연기관차의 장점을 누릴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찾는 소비자도 늘리면서 평균 거래가격이 6만2985달러로 오히려 EV보다 4366달러가 더 비싼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예상 밖의 HEV 인기몰이에 업체별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2022년에야 전기 SUV를 선보인 도요타는 다른 업체들이 EV에 주력할 때 HEV 모델을 순차적으로 확대해  세그먼트별로 12개가 넘는 HEV 모델을 갖춰 올 상반기 전체 판매량의 38.3%를 차지하며 HEV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반면 EV에 전력하던 제조업체들은 HEV, PHEV 확대에 나서는 한편 기존 판매 전략까지 수정하고 있다. 복스왜건, 메르세데스 벤츠가 EV 전환 목표를 연기한다고 밝힌 데 이어 볼보도 2030년까지 전 라인업 EV화 계획을 포기하고 HEV 판매를 1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포드 역시 20억 달러 손실에도 전기 SUV 계획을 취소하고 HEV로 전환하는 수정안을 공개했다.   1년 앞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HEV 돌풍을 EV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디자인, 기술력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얼마나 신속하게 반영하느냐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열쇠가 될 것이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하이브리드차 인기 내연기관 모델 양산형 모델 도요타 프리우스

2024-09-16

[중앙칼럼] 같은 비극, 다른 반응

뉴저지의 한인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공분했고 이어 규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7월 뉴저지주 포트리에서 경찰 총격으로 숨진 빅토리아 이(25)씨 사건 얘기다.     이 사건은 지난 5월 LA에서 발생한 양용씨 사건과 닮은 데가 많다. 이씨도 정신질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증세가 심해지자 가족은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씨가 마주한 건 구급 대원이 아닌 경찰이었다.   경찰이 온다는 소식에 이씨는 칼을 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 사실을 인지한 가족은 경찰이 접근하지 말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하지만 경관은 현관문을 10여 차례나 두드렸고, 이씨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경관들은 문까지 부수며 진입했다.     이씨는 왼손엔 흉기, 오른손엔 물통을 들고 있었다. 경관은 두려움에 떨던 이씨가 다가오자 가차 없이 발포했다. 이씨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정신적인 아픔을 겪는 환자였을 뿐이다. 경찰은 그런 이씨를 범죄자 다루듯 했다. 경찰 총탄에 또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졌다.   경찰은 과잉대응 논란에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보디캠을 공개하며 원칙대로 대응했고 조사가 진행 중이란 말뿐이었다. 과연 뉴저지의 한인들이 경찰의 대응 규정을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무고한 시민에게 무분별하게 적용했다는 점에 분개한 것이다.   뉴저지 한인회, KCC, 민권센터 등 수많은 한인 단체 관계자들은 곧바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인 사회가 움직이자 여러 아시아태평양계 단체들과 주류 기관들이 목소리를 보태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건 발생 지역 인근인 포트리 커뮤니티센터 잔디광장에는 한인 단체를 비롯해 여러 소수계 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경찰의 정신질환자 대응 절차 검토를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더는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빅토리아 이가 양용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적이다. 양씨는 영주권자, 이씨는 시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를 대리하는 김의환 뉴욕 총영사는 검찰총장실에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당부했다. 포트리시의 마크 소콜리치 시장도 만나 빅토리아 이 사건을 언급하며 시스템 개선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의 개입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 총영사는 미국 내 한인의 60% 이상이 시민권자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는 “국가적 차원을 떠나 인도적 면에서 접근했다. 편지조차 못 보내면 총영사로서 왜 앉아 있겠는가”라며 뉴욕과 뉴저지 지역 한인 사회의 단합된 대응까지 당부했다.   압박 여론이 거세지자 뉴저지 검찰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새로운 프로토콜까지 발표했다. 의분이 결국 변화를 끌어낸 셈이다.    LA 한인 사회는 어떤가. 양용 사건 규탄 집회에 한인 단체장이나 정치인은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한국 국민인 영주권자가 피살됐음에도 영사관 관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거 때만 되면 한인 사회를 찾는 존 이 LA시의원(12지구), 미셸 박 스틸 연방하원의원(45지구), 영 김 연방하원의원(40지구) 등 현역 정치인은 공식 성명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LA경찰국 임시 책임자가 한인인 도미니크 최 국장인데 그에게 부담을 주면 되겠느냐고 말한 전직 한인 단체장도 있었다.     잘못된 공권력 사용으로 인한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가 한인이라서가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더는 억울한 희생이 없도록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라고 목소리를 내자는 말이다.     17일(내일) LA시의회에서는 양용 씨를 기리는 추모 시간을 갖는다. 유가족은 시의원들과 주민들 앞에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발언할 예정이다. 이날 시의회 관람석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한인 사회의 침묵은 멸시를 자초하는 것이고 무관심은 양용에 대한 2차 가해다.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높이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장열 / 사회 부장중앙칼럼 비극 반응 뉴저지 한인회 한인 사회 한인 단체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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