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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전업주부의 소원

윤재현 전 연방공무원

윤재현 전 연방공무원

나는 미국에서 별의별 일을 다 해보았다. 청소부, 접시닦이, 주 정부 안전 검사원, 그리고 연방 정부 안전 감사관으로 은퇴했다. 공무원직에서 은퇴한 다음에는 의료 통역 일을 했다.
 
하루는 ‘왼발이 들먹거리고 저려 잠을 이룰 수 없다’는 환자가 찾아왔다.  나는 의사에게 “My left leg is numb, throbbing, and tingling so much that I can hardly sleep at night”라고 통역을 했다. 아프거나 저리다는 형용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과거 남이 아픈 것을 통역했는데 요즘은 내 다리가 들먹거리며 저려서 잠을 설치는 날이 있다. 잠이 오지 않으면 누운 채 팔과 다리 근육을 긴장과 이완, 즉 힘을 주고 빼기를 한 다음, 단전호흡하면서 ‘내 맘이 편안해’라는 말을 속으로 반복하면 다시 잠이 온다. 밤에 몇 번씩 잠이 깨는 탓에 이 최면술을 반복해야 한다.
 
팔과 다리를 90년 동안이나 사용했으니 이제 고장 날 때가 되었나 보다. 요즘 체중도 줄었다. 배는 나왔으나 팔과 다리는 가늘어져 주름이 보인다. 3일에 한 번씩은 비타민을 한 주먹씩 먹지 않으면 무릎도 쑤신다.  
 


김형석 교수의 말대로 저녁에 침대에 눕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오늘도 아내와 내가 집 앞에서 걷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내가 만든 반찬과 밥을 잘 먹고, 무사고 운전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내가 재작년 뇌졸중을 앓고 건강이 악화하는 바람에 내가 전업주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내게 요리 솜씨가 있는 줄 몰랐다. 특히 김치와 빵을 잘 만든다. 공무원 생활 대신 식당을 운영했으면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글 쓰는 것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다. 나는 글을 쓸 때 파란만장한 과거의 경험을 기록할 뿐, 이에 의미나 해석을 더 하는 상상의 필치(筆致)는 모자란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쓸 소재, 즉 밑천도 점차 고갈되는 것 같다.
 
글은 소재가 고갈되면 쓰지 못하지만, 식재료는 시장에 가면 언제나 풍부하다. 요즘 요리에 대한 관심은 건강식을 만드는 것이다. 음식 재료로는 파, 양파, 마늘, 버섯, 미역, 무, 양배추, 오이, 당근, 고추, 콩나물, 두부, 계란, 고구마, 단호박, 생선을 주로 이용한다.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드는데 유튜브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전업주부의 소원은 단순하다. 아내와 내가 양로원에 가지 않고 이 집에서 내 손으로 밥상을 차려 먹으며, 밤에는 아프거나 쑤시거나 저리지 않고 잠을 자고, 때가 오면 고종명(考終命)하는 것이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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