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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11월을 빛낸 사람들

어느덧 올해의 열한 번째 달을 맞이하고 보니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세월여류의 풍악 소리가 들려오니 그 소리에 허전한 마음을 달래보련다. 벌써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다. 앵글로색슨족 후손들은 11월(November)을 ‘바람의 달(the wind month)’이라고 불러 세월의 빠름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제 이달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중요한 일들을 살펴보자. 맨 먼저 1815년 11월 1일, 세계 최초로 에테르(ether)를 마취제로 사용한 의사 크로포드 W 롱이 조지아주 데니엘스빌에서 태어났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의대를 1839년에 졸업했으며, 그의 이름을 딴 ‘크로포드 W 롱 의학 박물관’ 이 조지아주 제퍼슨에 있다.   다음은 1920년 11월 2일, 최초의 정규 라디오방송 KDKI가 피츠버그에서 처음 전파를 탔다. 그리고 1825년 11월4일에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수로가 탄생했는데 바로 ‘이리 운하(Erie Canal)’다.  이 운하는 허드슨 강에 위치한 프로이와 알바니에서 서쪽으로 버팔로까지 그 길이가 363마일에 이른다.  그리고 1869년 11월6일에는 프린스턴대와 럿거스대 간의 첫 대학 풋볼경기가 열렸다.     그리고 1954년 11월11일엔 재향군인회가 처음으로 모임(Veterans Day)을 가졌고, 연방의회는 1800년 11월17일 워싱턴DC에서 처음 열렸다. 미국과 파나마가 파나마 운하 건설에 합의한 것은 1903년 11월18일이다.         유명 인물로는 미국의 지휘자 유진 올만디가 1899년 11월18일 태어났다. 올만디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한 뒤 1927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올만디는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필라델피아에서 스토코프스키에게 지휘자 공부를 사사했으며 1938년부터 1940년까지 교향악단의 지휘자를 했다. 올만디는 여러 나라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그의 연주는 여러 곳에서 녹음이 이뤄졌다.     그리고 1805년 11월 19일에는 수에즈 운하를 개척한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태어났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이 있었던 날은 1863년 11월19일이었다.     그런데 11월 22일이란 같은 날짜에 프랑스의 국부 샤를 드 골 대통령은 1890년 태어났지만,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괴한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29년 11월 29일 또한 특이한 날이다.  이날 미군 해군 소장 리처드 E 버드는 3명의 다른 비행사들과 함께 남극의 하늘을 비행하는 역사적인 일을 해냈다.     마지막으로 해는 다르지만 11월30에 태어난 두 사람의 소설가가 있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소설가 조너단 스위프트가 1832년, 마크 트웨인은 1835년 이날 태어났다.   꽃의 빛깔과 모양이 매우 아름다운 11월의 국화처럼 우리 모두 아름다운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늘 간직하자.    윤경중 / 목회학 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광장 파나마 운하 지휘자 공부 지휘자 유진

2024-11-19

[열린광장] 말 같은 말 좀 하고 삽시다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열심히 전화로 말을 하고 나면 과연 저 아이들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 했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그 말 한마디로만 해석하고 이해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 말을 하기까지의 생각, 기다림, 눈길, 몸짓 등이 어우러져 나오는 것이 말 한마디인데, 다 듣고는 ‘don’t worry, I know’라는 짧은 대답으로 끝이 나면 오히려 마음은 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이들과 통화를 하고 나서 어떤 때는 “이놈들아!  너희가 내 말을 듣기는 했겠지만, 내 마음의 소리는 못 들었을 것”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물 한잔 들고 창가로 향하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이 내 모습을 보았다 한들, 내 마음은 알 도리가 없겠지요.     나는 너희들과 ‘말 다운 말’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너희는 아느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 세상은 휴대폰 하나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더구나 편리한 문자 메시지 전달 수단의 등장으로 말의 필요성은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체온을 느끼는 만남의 기회는 점점 줄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려움을 당한 친지나 이웃에게 몇 줄 위로의 글을 날려 보내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탓인지 상대방이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화란 한번 시작하면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첫 시작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유튜브’라는 동영상 플랫폼은 무슨 이야기와 사건이 진실인지 분간을 못 하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물론 유튜브가 주는 유익한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좋은 내용이 폭포수처럼 너무 많이 쏟아지는 탓에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인공지능(AI)의 등장입니다. AI로 만든 아이들 얼굴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들려주며 “우리 아이들 아닌 우리 아이들”이라고 한다니 세상은 참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얻고 사는지?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해답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도 목사님도 가만히 보면 모든 것에 해답을 주지 못하고 피하기도하는 것 같습니다.     종종 혼자서 또는 둘이서 조용한 공원을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을이 옷깃을 열고 다가왔습니다.     변성수 / 교도소 사역 목사열린광장 동영상 플랫폼 눈길 몸짓 휴대폰 하나

2024-10-29

[열린광장] 시월과 옥토버(October)

한 해의 열 번째가 되는 달 시월(10월)이다. 한자로 十月이라고 쓰는데 중국어로 ‘스위에’ 라고 발음하기 때문에 ‘십월’에서 받침 ‘ㅂ’이 탈락하고 중국어와 비슷한 ‘시월’이 되었다고 한다.     영어로 시월은 옥토버(October)라고 부르는데 그레고리안 달력으론 한 해가 열 달이었지만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가 ‘The Twelve Tables (로마법 초기의 12 조문)’를 바탕으로 한 해를 12개의 달로 만든 탓에 여덟 번째  옥토버가 열 번째 달이 되고 말았다. 옥토버도 라틴 말의 ‘8’에서 유래했지만 8의 복합명사인 다른 낱말들(수학의 8각형 octagon, 음악의 8도 음정 octave)처럼 8이라는 숫자로 부르지 않고 ‘10번째 달’ 이라고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튼 시월은 한국어나 영어나 이름부터 매우 특이한 달이다.   시월 초하루는 한국에서는 ‘국군의 날’이지만 미국에서의 ‘옥토버 1’는 1896년 연방 우정국의 직접 우편배달 시스템인 ‘Rural Free Delivery (R.F.D)’가 시작된 날이다.  한국에는 시월에 중요한 기념일들이 더 있다. 초사흗날은 개천절이고, 초아흐렛날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 한글날이다.     10월에 태어난 미국 대통령도 여럿 있다. 먼저 한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가 1924년 10월 1일에 태어났다. 올해 100세가 된 그는 대통령 퇴임 후에 더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제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858년 10월 27일에 태어났고, 제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890년 10월 14일에 출생했다.       한국의 대통령과 시월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10·26 사태’가 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의 총격에 숨진 사건이다.    그리고 시월에는 유독 훌륭한 음악가, 화가, 작가들이 많이 태어났다. 미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유진 오닐이 1888년 10월 16일에 태어났고,  이탈리아의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출생일은 1813년 10월 10일이다.  또 1881년 10월 25일에는 스페인의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그리고 1885년 10월 11일에는 프랑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프랑수아 모리악이 각각 태어났다.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한 것도 시월이다. 그는 1492년 10월 12일 바하마 제도에 도착, 아메리카 땅을 처음 밟았다. 이날을 기념하는 것이 ‘콜럼버스 데이’다.  LA시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콜럼버스 데이’ 대신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부르고 있다.   1879년 10월 19일에는 토머스 에디슨이 세계 최초로 전구 실험에 성공했다. 그리고 1517년 10월 31일에는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그 유명한 95개 조의 격문을 게시함으로써 종교 개혁이 시작됐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광장 october 옥토버 시월 초하루 대통령 퇴임 대통령 지미

2024-10-17

[열린광장] 한국말은 까다로운가?

“교수님!  한글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글인 것 같은데 왜 한국말은 까다로운지 잘 모르겠어요.” “글쎄다.”     연세대학교에 다닐 때, 한글 맞춤법의 권위자였던 고 최현배 교수에게 한 질문과 그에 대한 최 교수님의 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한글은 두말할 것 없이 세계 최고의 글자다. 웬만한 소리는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우수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별로 높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글자 때문이 아니라 까다로운 한국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첫째, 한국말은 말 자체가 무척 까다롭다. 높임말이 있고, 받침이 있는 낱말과 없는 낱말이 있고, 같은 글자도 띄어 쓰거나 붙여 쓰는 경우가 있다.     둘째, 한국말을 연구하는 학자들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최 교수님의 “글쎄다”란 답변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한국어 학자들은 낱말을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보다 낱말의 ‘유래나 과학적 구조’ 분석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 낱말의 말본이 너무 까다로워 낱말의 옳고 그름이나 맞춤법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장교로 복무하며 군 교육기관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강의했고, 예편한 뒤에는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강의했다. 20여 년 동안 목회를 하며 설교문을 썼고 책도 두 권 펴냈다. 그리고 요즘도 글을 쓰고 있지만  “어! 이게 맞는 말인가?” 할 때가 종종 있다. 맞춤법에 맞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과거 공부했던 것과 달라진 것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 기사의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英 프 獨’ 이란 낱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내용을 읽어 봤더니 ‘영국과 프랑스, 독일’ 세 나라를 줄여 이렇게 쓴 것이었다. 우리는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프랑스라고 쓰지만 과거 프랑스 친구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그 친구는 “불어에는 프랑스란 낱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인들 모임에 가면 자주 듣는 것이 ‘파이팅’이라는 말이다. 아마 영어의 ‘fight’에서 유래한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이런 말을 빌려다가 용기를 북돋워 준다는 말인가!     우리 한국말엔 훌륭한 격려의 말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아자!”다. 파이팅에 비할 수 없는 아주 멋진 말이다.   끝으로 우리말로만 된 재미있는 글을 하나 소개한다. ‘넓은 들에 있는 콩밭의 콩들을 잘 훑은 뒤 집에 따 놓은 팥과 버무려 죽을 쑤어 핥아보니 그 맛이 기막히다. 이게 콩죽이냐 팥죽이냐?’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광장 한국말 한국말 때문 우리 한국말 한국어 낱말

2024-10-06

[열린광장] 처벌 미흡한 증오범죄자

지난 2021년 발생한 애틀랜타 스파 총기 난사 사건은 다시 한번 증오범죄(Hate Crime)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사망자 8명 가운데 한인 4명을 포함, 아시아계 여성이 6명이나 됐다. 증오범죄는 인종, 국적, 성별 등을 이유로 행해지는 범죄를 뜻한다.     그동안 증오범죄의 위험성은 많이 알려졌지만 범죄자 처벌과 피해자 지원 문제는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아시아계 여성을 6명이나 살해한 스파 총격범 로버트 애런 롱의 재판에서도 ‘증오범죄’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것이 좋은 예다. 그의 재판이 열린 체로키 카운티 법원이 종신형을 선고했지만 개운치 않은 부분이다. 담당 검사는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로 기소할 수 있지만, 특정 인종(아시안) 증오범죄로 기소할 수는 없다”고 말해 한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총격범은 총기 난사 범죄를 저질렀던 풀턴 카운티에서는 증오범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으나 3년째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검찰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인해 증오범죄 피해자들이 깊은 좌절감을 호소하고 있다. 바텐더로 일하는 태국계 이민자 쿠니(Kunni)는 근무 중 인종차별적 발언과 함께 페퍼 스프레이 공격을 받았다. 그는 “범인을 증오범죄로 기소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그는 “검사는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사례로 2021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비차 라타나팍디(Vicha Ratanapakdee) 사건이 있다. 당시 84세의 고령자였던 비차는 용의자 안토인 왓슨에게 떠밀려 넘어져 사망했다. 왓슨은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증오범죄 혐의는 추가되지 않았다. 피해자인 비차의 딸은 “피해자에게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제 아버지 사건은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증오범죄 기소의 어려움과 법 집행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샌프란시스코 검찰의 에린 웨스트 부검사장은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사건이 증오나 편견을 범행 동기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로 인해 연간 기소된 증오범죄 발생 건수에 대한 데이터가 부정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증오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방법 개선과 신속한 사법처리 절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증오범죄 예방 활동을 하는 ‘스톱 AAPI 헤이트’의 만주샤 쿨카르니 변호사는 ▶정확한 증오범죄 데이터 수집, ▶경찰의 증오범죄 식별 및 보고 체계 개선, ▶피해자 치유를 위한 다각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증오범죄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기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실제로 혐오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애틀랜타 총격사건 발생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증오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한인은 많지 않다. 증오범죄를 당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과 홍보도 부족하다.     한마디로 그동안 바뀐 것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정부와 사법 당국은 증오범죄 예방을 위해 처벌 강화 등 올바른 대처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한인 사회는  다른 커뮤니티와의 연대를 통해 정치권과 정부, 경찰에 증오범죄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종원 / 변호사열린광장 증오범죄자 처벌 증오범죄 혐의 증오범죄 피해자들 그동안 증오범죄

2024-09-11

[열린광장] 시니어의 인지 능력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세상이다. 피트니스 센터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돌아섰는데 벽에 걸어두었던 가방이 없어졌다. 청소원이 치웠나, 아니면 누가 훔쳐갔나. 아무튼 큰일 났다. 가방에는 지갑, 전화기, 자동차 열쇠 등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두리번거리며 찾다 보니 건너편 사우나 벽에 내 가방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가방이 열려있다. 지갑부터 열어보았다. 신용카드는 물론 현금도 그대로 있었다. 전화기와 자동차 열쇠도 그대로였다.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누가 이 장난을 했을까. 장난이 너무 심했다.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가방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수수께끼가 풀렸다. 벤치에 앉아 있던 한 시니어가 “그 가방이 당신 것이었소?”라고 묻는 게 아닌가. 그는 가방이 본인 것인 줄 알고 건드렸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69세인데 정신이 맑지 않고 판단력이 흐려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항상 자동차 열쇠와 전화기를 어디 놓아두었는지 몰라서 에어 택(air tag)이라는 추적 장치를 가지고 다닌다며 보여주었다.     얼마 전 내게도 황당한 일이 있었다. 늘 다니는 약국 앞에 차를 주차하고 문을 닫고 나왔는데, 차가 뒤로 굴러가는 게 아닌가. 이곳 주차장은 약간 경사가 있다. 얼른 달려가 차 문을 열고 보니 기어가 후진(R)에 있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주차(P)로 바꿨다. 주차 중에 통화하다가 기어 바꾸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이는 인지 능력의 문제다. 만약 그때 지나가는 자동차나 사람이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시니어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끔 말실수도 한다. 종종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때와 열 때를 구분하지 못한다. 두 달 전쯤 폭염 속 농장 노동자를 위한 직업 안전 규정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구글을 통해 검색했더니 ‘농사는 힘들다’는 내 글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내 글이 나온 경위를 따졌다. 구글 검색으로도 내 글을 볼 수 있으면 좋아할 일이건만  오히려 불평을 한 셈이다.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될 것을 입을 열어 무식이 탄로 난 꼴이 됐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명언 가운데 ‘It is better to remain silent and be thought a fool than speak out and remove all doubt.(입을 열어 무식을 확인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무식을 의심받아라)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긴다.     아직 남의 가방을 내 가방이라고 인지할 정도로 정신이 몽롱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인지 능력 유지를 위해 매일 한 시간 운동, 한 시간 독서를 하고 있다. 앞으로는 벽 대신 가방을 보며 샤워를 해야겠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시니어 인지 인지 능력 자동차 열쇠 지갑 전화기

2024-09-08

[열린광장] 우주 탐험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한다. 이의 실현을 위해 그는 2026년에 인간을 화성에 보내고 궁극적으로 화성 이주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머스크의 꿈은 이미 지난 2006년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파피용’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 소설은 14만4000명의 지구인이 태양 빛을 추진 동력으로 하는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그들이 지구를 떠나는 이유는 해수면 상승, 지진, 해일, 신종 돌연변이 바이러스,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에 더는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주여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밀폐된 공간에서 생태계 순환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와 사업가가 폐쇄된 인공 생태계를 만드는 실험을 진행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애리조나주의 오라클에 건설했던 1.3 헥타르 규모의 폐쇄된 인공생태계인 ‘바이오스피어 2(Biosphere 2)’를 들 수 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인간을 지구 위의 다른 생태계와 물질교환을 하지 않는 고립된 환경에서 살게 하려는 것이었다.     최근엔 우주 비행사들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2015년 우주 비행사들이 주로 붉은색과 파란색의 발광다이오드(LED) 빛으로 재배한 베지-원(Veg-01)이라 불리는 한 묶음의 로메인 상추가 우주에서 첫 번째로 수확한 채소로 소개되었다. 우주 비행사인 스콧 켈리와 키엘 린드그렌, 일본인 우주 비행사 기미야 유이 등 3명이 이 로메인 상추를 살균한 후 올리브 기름과 이탈리아 발사믹 식초로 드레싱을 해서 인류 최초로 우주 공간에서 식사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붉은 상추, 2017년에는 양배추와 꽃을 재배했으며, 그 후부터는 매년 조금씩 큰 식물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크 벤데하이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약 4개월 동안 칠레 고추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근무하는 우주 비행사들을 위해 약 6개월 분량의 음식과 야채, 그리고 과일을 주기적으로 공급한다. 하지만, 상추나 당근 같은 야채들은 빨리 소비될 뿐 아니라 다음 운송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NASA는 우주 비행사들에게 비타민이나 영양분을 공급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식물 재배를 우주 공간에서 실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은 장기적인 우주 탐험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특히, 2030년대 화성으로의 우주 여행이현실화할 경우 비행사들에게 초록색의 식물들을 재배케 함으로써 스트레스 해소 등 심리적 안정감도 갖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주 비행사들이 식물을 재배하면 마치 자신의 집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뿐 아니라 자신이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주선 내에서 재배한 신선한 야채는 포장 식품에 의존해서 긴 우주여행을 떠나는 비행사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건강식품이 된다. 특히, 토마토와 붉은 상추는 우주 비행사들에게 산화 방지 성분을 제공해 우주 공간에서 육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인 행복감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우주 공간에서 비행사들을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는 작용도 한다. 이러한 우주에서의 식물 재배는 인간을 더 먼 우주 공간에 있는 또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서게도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 하루하루 더 낯설게만 느껴지는 지구를 떠나도록 부추길지도 모른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열린광장 가능성 우주 우주 비행사들 우주 탐험 우주 공간

2024-08-20

[열린광장] 형형색색의 미의식

“다양성은 아름답다.(Variety is beautiful)”  미국의 이름난 하버드 크리스천 교회 그렉 로리 목사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일 년 열두달의 이름이 가지각색인 것도 아름답다. 8월(八月)을 중국인은 “빠위에”, 일본인들은 “하찌가쓰”, 한국 사람은 “팔월” 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사람이 태어난 날은 같지만 해가 다른  것도, 발생한 해는 다르지만 날이 같은 일도 아름다움의 결과다.    1945년 미군 폭격기의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끼 원자탄 투하로 많은 생명이 숨지고 도시가 파괴되는 비극이 일어났지만 한국인에게는 해방의 기쁨을 안겨 주었다. 슬픔과 기쁨의 다양성이 아름답게 이뤄졌다. 그런가 하면 1769년 8월15일엔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태어났고, 1914년 8월15일은 파나마 운하가 개통된 날이다.     만물은 다 다르게 생겼다. 이 다르게 생긴 것 때문에  땅덩이는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만 살펴봐도 그렇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생물도 그렇지만 사람의 남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면 지구는 참으로 삶을 이룩할 가치가 없는 천체가 될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창조주는 남녀가 다른 점을 지닌 사람을 만드셨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람은 피부색에 따라서 백인,황인,흑인으로 나뉘었고, 같은 황인이라도 나라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한 나라 안에서도 말씨와 풍속, 사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이런 다른 것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런데 아름다운 것들을 추하게 만드는 일들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성 부부의 합법화라고 생각한다. 이 법은 남녀 존재의 중앙값에도 미치지 못하였음을 느끼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사나운 비바람이 그치고 따스한 햇볕이 비칠 때 곡선을 그리며 나타나는 무지개는 참으로 아름답다. 일곱 가지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느 한 색깔도 다른 색깔에 가려지지 않는다. 일곱 가지 색깔이 앙상블을 이룰 때 무지개는 비로소 그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사람은 하나의 몸이다.  이 몸을 해부해 보면 머리, 심장, 위, 혈관, 피, 또한 피의 체액이 아니겠는가!”   파스칼의 말이다.  사람의 몸은 색깔이 다양한 기관들이 살아 움직여야 제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 몸의 한쪽이 병들어 있으면 몸이 앙상블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 몸은 아름답지 못하다.     국가는 사람의 몸과 같다. 몸의 기관이 병들면 몸도 병이 드는 것처럼  한 고장이라도 병들어 있으면 나라가 병들어 있는 꼴이다.  나라가 병들어 있으면 이는 색맹과 같다. 색맹이 되면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을 가려내지 못한다.  앙상블의 묘미를 터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지각색의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광장 형형색색 미의식 남녀 존재 가지 색깔 히로시마 나가사끼

2024-08-18

[열린광장] 음식 중독의 주범 ‘설탕’ 찾기

어느 때보다 가장 풍족한 시대를 사는 우리의 화두는 더는 배고픔이 아니라, 웰빙 즉 건강히 잘 사는 것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가 중요한 웰빙시대가 열린 지 오래지만, 우리가 웰빙을 추구하면 할수록 더 많은 성인병과 새로운 질병코드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간헐적 단식’의 저자 마이클 모스는 ‘배신의 식탁’과 ‘음식 중독’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의 식탁 선택권이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아닌, 기업의 교묘한 술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혀는 본능적으로 단맛에 약한데, 식료품 기업들이 영업이익을 높이기 위해 단맛에 민감한 우리의 혀를 의도적으로 길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중독이란 단어는 담배, 약물, 게임 등과 어울려 쓰일지언정, 음식이란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음식 중독이란 단어가 좀 과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중독이란? ‘그만두기 힘들어하는 반복적인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식품광고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 ‘또 먹고 싶다’ ‘다시 찾게 된다’의 단어들은 중독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소비자들이 음식 중독에 이르는 중요한 요소는 속도와 기억입니다.     먼저 중독의 중요한 요소인 속도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학자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음식 중독의 주범은 설탕, 소금, 지방인데, 그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설탕이라고 합니다. 설탕을 섭취함과 동시에 우리의 뇌 보상시스템은 0.6초 만에 활성화되어 도파민을 내보냅니다. 도파민은 행복감을 느끼게 만들어 다시 우리는 그 음식을 떠올리며 과다하게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탐닉하게 됩니다. 담배나 약물이 10초 후에 보상시스템인 도파민을 내보낸다고 하는데, 설탕의 보상은 담배나 약물의 보상시스템보다 무려 12~13배의 즉각적인 보상을 하는 것입니다. 설탕이 도파민을 활성화하는 속도가 담배와 약물을 능가하는 중독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빠른 보상시스템은 사람들의 의존성을 높이고, 중독에 이르러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의지와 통제력을 상실하게 합니다.     현대인들의 외식 횟수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외식을 많이 하는 나라 1위입니다. 1주일에 한 번 이상 외식하는 비율이 63%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국인의 하루 설탕 섭취량은 평균 22티스푼이며, 연간 소다를 통해 섭취하는 설탕은 3700티스푼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외식하는 우리는 식당 음식에 사용된 설탕 혹은 액상과당의 양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혈당의 상승과 하강을 겪고, 알 수 없는 피로감에 힘들어서 병원에 가면 당뇨 환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뇨는 혈관 벽을 손상해 심근경색, 망막증, 신부전, 뇌졸중, 피부 괴사 등의 무서운 합병증을 유발하므로 우리가 원했던 웰빙으로 멀어지게 만드는 주범임이 확실합니다.     그다음 중독에 이르는 주요 요소인 기억에 있어서, 어린아이들의 식습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식이 잦은 이 시대 어린아이들의 기억에 설탕으로 범벅된 레스토랑의 음식은 가족들과 행복했던 기억으로 각인됩니다. 위에서 중독의 요소로 기억을 언급했었습니다. 좋은 기억과 함께 그때 먹었던 음식은 맛있는 것으로 기억되어 집니다. 그 행복한 기억에 있던 메뉴와 맛이 좋아하는 음식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어린이 메뉴가 따로 존재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어린이들도 어른들과 같은 양의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섭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외식에 자주 노출된 아이들은 설탕의 지복점(맛있다고 느끼는 설탕의 양)이 높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어릴 적 입맛을 잘 세팅해야만 평생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부터 음식에 들어가는 설탕 관리를 잘해서 설탕의 지복점을 낮추어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체인 레스토랑에서는 어린이에 맞추어진 설탕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다한 설탕 사용으로 설탕 중독에 이르도록 입맛을 길들여야만 식품기업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가 어른들과 같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미래에 음식 중독 관련한 수많은 질병 문제가 언젠가는 터질 폭탄으로 자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인들의 4명 중 한 명은 식품라벨을 확인하고 식품구매를 한다는 통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먹는 음식에 뭐가 들어가는지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높다는 뜻입니다. 이에 발맞춰 Interfaith Public Health Network(종교연합 공공보건 네트워크)에서 설탕 섭취에 관해 경각심을 알리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뉴욕주에 퍼져 있는 체인 레스토랑에 설탕 경고 라벨 표시를 의무화해서, 적어도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들어가는 설탕의 양이 얼만큼인지 인지하여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자는 운동입니다. 속도와 기억을 통해 설탕에 중독된 우리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기 전, 설탕 라벨을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체인 레스토랑도 설탕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조금의 눈치라도 보는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의 혀는 단맛을 탐닉하는 본능에 충실하니, 사회시스템이 설탕 중독 문제의 첫 번째 장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미래 공공보건에 유익함은 당연합니다. 기업들이 우리 가족들의 건강 선택권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부모들이 법안을 만들어 식단 선택권을 확보하는 것이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초석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라 김 / KCS 공공보건리서치센터 디렉터열린광장 음식 중독 설탕 중독 음식 중독 설탕 섭취

2024-08-18

[열린광장] 엄마는 나의 영웅

나는 살갑기보다는 무덤덤한 딸이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다는 핑계도 있지만, 선친이 가족을 가장 힘들게 했던 마지막 1년 동안 아무 도움이 못 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독박으로 수고한 동생에게 자유 시간을 주고 싶었다. 겸사겸사 가족여행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하지만 여러 식구가 움직이려니 마음처럼 엄마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한 달 동안 엄마랑 무엇을 했나 되새겨 보았다. 엄마와 아침 먹고 산책, 아버지 산소 방문, 몇 번의 외식, 임영웅 콘서트를 보러 간 것 말고 특별히 한 것이 없다.     콘서트에 갈 때는 동생 가족이 여행을 떠나 차편이 없었다. 엄마를 모시고 지하철로 가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콘서트 전날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가 집에 없다. 깜짝 놀라 여기저기로 전화를 걸었다. 예행연습 삼아 지하철로 콘서트장에 혼자 다녀오는 길이란다. 구순이 내일모레인 엄마를 보면 사람이 뭔가에 확 꽂히는 건 한순간이구나 싶다.     삶의 열정에는 마침표가 없다더니 바로 우리 엄마 이야기일 줄이야. 집에 돌아온 엄마는 콘서트에 가져갈 배낭을 싸느라 분주하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우산을 챙기고 밤늦은 시간에 끝날 걸 대비한 겉옷과 간식, 방석도 준비한다. 응원봉과 파란 점퍼는 필수이다.   가수의 덕질을 시작하며 더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무기력하던 엄마가 아니다. 이왕이면 우리 영웅이를 도와야 한다며 그가 광고하는 브랜드의 물을 마시고 죽을 배달 받는다. 즐겨 마시는 음료도 은행도 진즉에 그가 광고하는 것으로 바꿨다. 여기저기서 얻은 가수의 입간판과 사진이 집안에 차고 넘친다. 가수에 대한 어떤 뉴스 하나라도 놓칠까 염려하여 전화기를 들고 사신다.   엄마를 부축하고 빗속에서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5만 인파가 한꺼번에 나오는 상암경기장 역은 붐빌 터이니 다음 역인 마포구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라는 안내를 받았다. 고관절 수술을 받아 지팡이에 의지하는 엄마가 언제 다리 아프다고 할지 몰라 아슬아슬했다. 전철 속은 파란 티셔츠를 입은 팬들로 가득 차 있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엄마는 옆에 앉은 아주머니와 콘서트의 여운과 감동을 얘기하느라 바쁘다. 누구의 ‘바라기’가 되는 것은 나와 결이 맞는 대상에 애정과 관심을 쏟고 행복감을 맛보는 것이리라. 나중에 임영웅 굿즈로 받은 우비를 입고 응원봉을 흔드는 엄마의 사진을 보았다. 천진한 어린아이의 행복감이 드러난 사진을 보니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식물이 무성하던 잎과 꽃을 다 떨구고 겨울 나목으로 남는 것처럼 늙은 엄마를 보면 나도 가야 할 늙음이구나 싶어 서글픈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내 인생의 고비마다 주저앉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울타리가 되었던 엄마, 고마워요. 나도 이순의 나이를 지나고 보니 짧은 봄날 같은 우리의 생, 마음 편하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여생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지금까지 건강을 잘 유지해 왔으니 유쾌한 하루하루 재미있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최숙희 / 수필가열린광장 엄마 영웅 우리 엄마 엄마 지금 동안 엄마

2024-08-04

[열린광장] 마이모니데스의 자선 등급

20년간 맥시코  바하 캘리포니아로 의료봉사를 다니며 그들의 금가고 일그러진 삶의 모습도 보게 된다. 어느 날 저녁 한 원주민 집 앞의 공동 쓰레기장을 놀이터 삼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봤다. 아이들의 머리는 텁수룩했고 새까만 얼굴에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맨발의 아이들 중 한 명은 내가 잘 아는 원주민의 6살 된 딸이었다.   측은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으니 머뭇머뭇하면서 “자전거”라 말하고는 말문을 닫았다. 그 말이 귀에 와 닿는 순간, 그 아이의 아버지가 11살때 있었던 자전거 관련 사연이 떠오른다.     26년 전 외딴 바닷가 오두막에 살던 소년은 무능한 아버지로 인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매일 바다로 나가 전복,가제, 조개를 채취했다. 바다와의 만남이 전부였던 소년은 미소를 잃었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의 집 앞에서 바다 낚시를 하며 소년과 친해졌다. 소년에게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책가방과 자전거”라고 했다.     소년이 책가방과 자전거를 받고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선한 목자 병원 진료를 마치고 밤 9시쯤에야 텐트 속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자전거 굴러가는 소리와 소년의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독한 가난이 소년의 동심을 삼키고 있었다.     소년의 배움을 위해 2년 간 학비를 지원했지만 가족 사정으로  교육은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 끝까지 그를 후원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 소년의 딸에게도 자전거를 선물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가 된 소년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너는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해  일곱 식구가 조그만 방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자녀들에게 더는 가난이 없도록 교육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처지가 술만 마시던  무능력한 아버지로 인한 영향이 크다며 울먹였다.     철학자, 과학자,종교가, 그리고 의사로 유대인들이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는 마이모니데스는 자선에는 8가지 등급이 있다고 했다. 그중 그냥 불쌍해서 주는 것이 최하 등급이다. 이어 자선은 하되 인색한 것이 7위다. 그렇다면 최고 단계는 무엇일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자립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자선의 최고 단계다.     새 자전거 바퀴의 자전거 살이 틈으로 아침햇살이 빛나듯이 그들의 얼굴에도 즐거운 미소가 번지기를 마이모니데스는 기대할 것이다.     홈리스의 잠자리를 해결해 주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마이모니데스의 자선  등급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최청원 / 내과의사열린광장 마이모니데스 자선 자선 등급 책가방과 자전거 자전거 바퀴

2024-07-22

[열린광장] 왜 지구를 떠나려고 할까?

“저 멀리. 더 멀리, 보다 더 멀리. 하루하루 더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 지구를 떠나리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에 나오는 항공 우주국 프로젝트 매니저 이브 크라메르가 천체 망원경 렌즈의 고무 구멍에 눈을 박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왜 지구를 떠나려고 할까? 이유는 열역학 제1, 2 법칙에 의한 지구의 종말론 때문이다. 그것은 지구라는 고립된 계에서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언젠가는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인 엔트로피가 끊임없이 증가하여 마침내 지구가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또한, 인류는 지구의 엔트로피 증가 과정을 역전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이것은 이미 결정된 지구의 한계이기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우주 공간의 또 다른 행성을 개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다. 이것은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우주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단지 그 형태만 바뀔 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열역학 제2 법칙은 미래에 어떤 일을 하는 데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양이 점점 손실된다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 의하면 우주의 전체 에너지양은 일정하며 전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열역학 제1, 2 법칙은 우주 이론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우주는 대폭발(Big Bang) 이후 엄청나게 농축된 에너지가 계속 팽창하며 분산됨에 따라 우주는 점점 무질서한 상태를 향해 변화하면서 결국에는 최대 엔트로피 상태, 즉 열 종말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는 우리의 요람인데, 우리가 다 파괴해 버리고 말았소. 이제는 지구를 치유할 수도, 예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도 없소. 집이 무너지면 떠나야 하는 법이오.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라고 나는 믿고 있소.” ‘파피용’에 나오는 억만장자 가브리엘 맥 나마라가 크라메르에게 한 말이다.     인류가 지구를 탈출한 후에 머나먼 우주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연료 확보와 우주선 내 생태계 개발, 그리고 세대의 재생산이라는 필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연료 문제는 무한 에너지인 빛을 이용하면 장기간 우주여행이 가능하기에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식량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주선 내에 밀폐 공간인 아쿠아리움을 만들어 인공 광원, 즉 네온관 시설로 흙과 물, 풀, 나무, 곤충, 물고기, 포유류, 인간이 상호 순환할 수 있는 인공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필수 요건은 세대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다른 태양계에 있는 다른 행성에서,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인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더 먼 우주 공간의 행성을 찾아 나서도록 계속 부추길 것이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이론이 너무 일반적이며 실증적 근거가 부족할 뿐 아니라 지구를 닫힌 계로 보는 전제 자체에 오류가 있다며 비판한다.     과학의 궁극적 목표는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비판 역시 과학적 발전의 중요한 과정이다. 설령 리프킨의 이론에 오류가 있더라도 그의 이론을 무조건 배척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환경 오염, 지구 온난화, 가뭄과 폭우, 대규모 산불, 강력한 태풍과 허리케인은 사실상 엔트로피 이론을 뒷받침하는 자연현상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열린광장 지구 우주 이론 엔트로피 증가 장기간 우주여행

2024-07-21

[열린광장] 병마로 시달리는 우리 이웃

생때같은 여자가 숨졌다. 아침저녁으로 밀짚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우리 집 앞을 걷던 50대 후반의 세 아들의 엄마였다. 남편 말에 의하면 작년 12월 중순 화장대 앞에서 얼굴을 만지다가 뒤로 넘어졌다. 머리를 욕조 언저리에 부딪혔다고 한다. 구급차가 와서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사망 원인은 목뼈 골절.   어깨가 축 늘어지고 수심이 가득 찬 남편을 마주치면 무엇이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 아들도 고개를 푹 숙이고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혼자 중얼거렸다.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 간단한 조치로 예방할 수 있었던 안타까운 사고였다. 화장대 앞에는 반드시 의자를 놓고 앉아야 한다. 욕조도 마찬가지다. 욕조용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 미끄러운 욕조 안에서 넘어져 다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침대 발치에도 높은 방석을 놓아야 한다.   길 건넛집에 살던 70대 초반 어머니와 30대 아들은 올해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말기 위암이었고, 아들은 우울증으로 밖으로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     병마는 또 한 가정을 덮쳤다. 엄마를 잃은 세 아들 집에서 한 집 건너에 사는 70대 초반 잉꼬부부였다. 그들은 항상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런데 한동안 여자의 눈이 초점을 잃고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고 걷는 것을 보았다. 전에는 걷다가 나를 보면 말을 걸고 농담까지 했는데.   하루는 남편 혼자 걷는 모습을 봤다. 아내를 치매 양로원에 입원시켰다고 했다. 기억력 약화로 때로는 남편도 몰라봤다고 한다. 무엇보다 몸의 균형을 잃어 잘 넘어졌단다. 몇 달 안에 사람을 몰라볼 정도로 빠른 치매의 진행 속도에 놀랐다.   미 식약청(FDA)에서 치매 약을 승인했는데 주사약 한 병에 695불이라고 한다. 암보다 무서운 것이 치매다. 전문가에 의하면 매일 1시간 운동, 1시간 독서를 하면 치매 발병 확률이 40%는 낮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운동과 독서가 말보다 쉽지 않다. 요즘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발 운동을 하고, 스트레칭 끈으로 팔 근육 강화 운동도 한다. 허벅지와 다리 그리고 엉덩이 살이 빠지는 노화 현상을 방지하는 운동이다. 아내와 같이 집 앞에서 걷고, 가끔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에도 간다. 올해는 독서에다 신문 구독을 추가했다. 신문이 배달되면 만화를 제일 먼저 본다.     오늘 아침에는 감사하는 사람은 장수한다는 감사 찬양론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두 가지 수필이 눈에 띄었다.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찬양하는 에피소드로 채워진 부고도 많이 읽는다. 나도 이런 식으로 부고를 미리 작성했다. 사람들이 읽으면 “이 사람 웃기네”라고 말할지 모른다. 바로 그것이다. 슬픔보다 웃음이 좋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병마로 이웃 욕조용 의자 치매 양로원 치매 발병

2024-07-15

[열린광장] BMW 공식의 교훈

초등학생 셋이 집으로 가는 도중에 “와”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근처 야구장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모두 야구장엘 가고 싶어 했지만, 그중 한 아이만 입장권을 살 돈이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은 야구장 주변을 살피다 용케도 개구멍을 찾았다. 한 아이가 먼저 개구멍을 통해 들어갔고, 두 번째 아이의 차례가 된 순간 야구장 경비원이 나타났다. 그 순간 이 아이는 꾀를 냈다. 경비원이 오는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엉덩이를  개구멍으로 들이밀었다. 이를 본 경비원은 “벌써 개구멍 같은 데로 빠져나가면 어떡하냐”며 아이의 허리춤을 낚아채 야구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 세상은 돈이 있거나 슬기가 있어야 사람다운 삶을 살 수가 있다. 하지만 돈은 쉽사리 벌 수가 없다. 그러니 개구멍에 엉덩이를 들이민 아이처럼 슬기라도 있어야 한다. 인생의 목표를 야구 경기 관람이라고 한다면 돈이 있거나 슬기가 있어야 야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돈 (물질)은 하나님께서 행복의 조건으로 사람에게 주신 것 (창세기 1:29-30)인데 디아볼로스(사탄)의 훼방 때문에 제대로 갖지 못하는 것이다. 슬기(정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태어난 것이 사람이니 얼마나 슬기로운 존재이겠는가. (창세기 1:27)  이 슬기도 디아스볼로스 때문에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돈이 있고 없음은 다 이 디아스볼로스의 장난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의 힘이 워낙 강할뿐만 아니라 착한 사람보다는 모진 사람 쪽에 서길 좋아하니 착한 사람이 돈을 벌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파라크레토스(예언자)의 말을 전한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물질과 지혜)도 곁들어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 디아볼로스의 힘과는 아랑곳없이 믿음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예언자의 말이다.   BMW의 첫째 공식은 B(belief)〉M(money)&W(wisdom)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둘째 공식 곧 B〈M&W가 더 센 것이다. 그래서 파라크레코스는 경고한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고 한다.  BMW의 첫째 공식이 깨지는 경고다. 그러므로 믿음, 돈, 그리고 슬기에 관한 신앙인의 철학(첫째 공식)을 지녀야 한다.   희랍어로 낙타는 ‘카멜로스’,  밧줄은 ‘카밀로스’다. 낙타가 바늘귀문(예수 당시에 있던 작은 출입문)으로 드나드는 것이 쉽다는 말은 실을 꿸 수 있는 바늘귀를 밧줄로 꿰매기가 쉽다는 말을 잘못 번역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입장권을 구매했거나 슬기로 야구 구경을 한 어린아이들의 이야기가 세상살이를 하는 어른들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광장 공식 교훈 bmw 공식 근처 야구장 야구장 주변

2024-07-14

[열린광장] 신뢰가 가벼워지는 한국사회

신뢰는 공기이고, 물이다. 인간이 물리·화학적으로 공기와 물 없이는 살지 못하듯이 영혼은 신뢰 없이 어찌 살겠는가? 가족의 신뢰, 친지들의 신뢰, 단체와 기관들의 신뢰, 거래의 신뢰, 국가와 사회의 신뢰가 무너지면 얼마나 살벌할까? 심하면 카오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신뢰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더구나 신뢰 체계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마저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정치는 신뢰사회를 규범으로 지키려는 사법을 무너뜨리려 안달이고, 정치세력 간의 난투극은 국민의 신뢰를 난도질하고 있다. 의사들은 주머니를 챙기려 생트집을 잡으며 환자를 떠나 정부를 이기려 하고 있다. 이기심에 절어 친구와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            신뢰를 깨는 주범은 욕심이고, 욕심은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니 결국 인성의 문제 아닌가? 선량한 인품은 불가항력이 아니면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이나 기대를 버리거나 상식을 벗어난 공격으로 상대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다. 누구나 기분이 상하기만 해도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다.     신뢰는 생물이어서 권력과 재력, 위계에 의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순위에서 밀리기도 하지만, 가꾸지 않으면 퇴화하기도 한다. 우정이 그렇고, 조직생활이 그렇고, 사회의 모든 기능 속에 살아있는 믿음이 그렇다. 멀리 있으면 희미해지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금이 가기도 한다.  반대로 벽돌 쌓기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높은 경지의 신뢰가 믿음직스럽고, 야무지게 다지면 무쇠보다 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우의를 지킨 사례는 수없이 많고, 목숨 바쳐 충성한 지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 신뢰 증진은 상호존중과 양보, 희생에서 나온다. 진심으로 존중하는 얼굴에 감동과 신뢰가 붙고, 웬만한 실수도 톨레랑스, 양해와 포용으로 품으면 신뢰는 깊어진다.     어찌 보면 세상은 서로 인정하고 공존함으로써 순기능으로 돌아가는 메커니즘이다. 작게는 일대일 관계에서부터 크고 작은 모임이나 조직, 더 넓게는 공동체와 사회 전체, 국가가 신뢰의 얼개로 엮이어 있으며, 그 신뢰 속에서 구성원들은 안심하면서 생존하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런 체제에 유해한 인물이나 행위는 멀리해야 할 독소가 아닐 수 없다. 신뢰가 차곡차곡 쌓이고 다져지는 세상은 건전하고 발전한다는 원리가 요즈음 한국에서 더없이 절실하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열린광장 한국사회 신뢰 신뢰 국가 신뢰 친지들 신뢰 체계

2024-07-11

[열린광장] 영어,쉽게 배울수 있다는 믿음

영어는 언제나 부담스럽다. 미국에 사는 한 나이에 상관없이 영어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다. 막 이민 온 사람부터 수십년간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단골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이민 고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10여년 간 영어공부를 하고 미국에서도 어덜트 스쿨이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 공부를 해도 말하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반세기 가까이 이민 생활을 해도 1세들에게 영어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이유다.    신은 우리에게 학문을 하고 사물을 이해하는 좋은 머리는 주었지만 외국어를 반복 연습할 수 있는 끈기는 주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끈기만 있었다면 영어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영어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영어 필기시험은 잘 봐도 회화 수준은 다른 민족에 비해 부족하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는 영어를 학문으로 공부하는 것과 말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내게 영어를 배웠던 학생들 가운데 한국식 영어에 완벽하다고 자부하던 영어학원 강사, 고교 영어교사 등이 이를 잘 증명한다. 사실 이들의 문법 실력은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생보다 더 깊고 완벽했다. 그러면서도 말은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영어를 공부하는 것과 말하는 기술의 습득은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생활영어에 사용되는 단어는 그리 많지 않다. 영국 교육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런던 근교의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1800여개였다. 아시아 지역 중학교에서 배우는 단어가 1500~1700개 정도니 별 차이가 없다. 영어지식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문법은 문장을 이해하고 영어로 말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지식만 갖추면 된다.   말하기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누구나 반복해서 연습할 수 있는 끈기만 있으면 된다. 물론 통역사를 한다든지 전문적 수준의 대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관공서에 가거나 병원에 가서 사용하는 영어, 일상생활 영어 정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쉬운 책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겠다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   미국에 살면서 자신을 한정된 세계에 가두어둘 필요가 없다. 이제 많은 1세가 은퇴를 하고 있다.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영어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 목표를 너무 어렵게 잡지 말고 쉬운 생활 영어 정도만 하겠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이번에는 꼭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열린광장 영어 믿음 영어회화 공부 영어 공부 영어 일상생활

2024-07-10

[열린광장] 마우이섬을 다녀오다

아들네 식구와 두 딸과 마우이섬을 다녀왔다. 나의 구순 생일을 기념하는 가족 휴가였다. 일명 ‘골짜기 섬(The Valley Island)’으로 불리는 이 섬은 볼거리가 많았다. 지도를 보면 지형이 사람의 상반신과 비슷하다. 머리 정상에 위치한 카파루아의 호텔로 가려면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라하이나를 지나가야 했다.     고속도로 옆 철조망에 걸려있는 희생자의 사진을 보기가 민망했다. 거의 부녀자들이다. 남자는 노인뿐이었다. 작년 8월 100여 명이 희생된 화재는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게 마련(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이라는 머피의 법칙이 현실화된 것이다.       라하이나는 건조 지대다. 겨울 우기에 자란 풀이 여름 건조기에는 말라 불쏘시개가 됐다. 강풍이 불었고, 떨어진 전깃줄에서 발생한 불꽃으로 인해 불이 붙었다. 비상 대피령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비상 대책 책임자는 회의 참석차 호놀룰루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천재와 인재의 결과다.   마우이섬 해안선은 거의 암벽으로 둘러싸이고, 드문드문 트인 모래밭이 해수욕장이다. 남가주의 모래사장과 달리 발을 디디기 불편할 만큼 울퉁불퉁했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몇 미터 수영하니 숨이 차서 나왔다. 몇 시간을 바닷물에 떠 있는 수영 실력이었는데….     집 잔디밭에서 벼룩에 물린 정강이를 몇 번 바닷물에 담갔더니 가려움증이 없어졌다. 이곳은 태평양 한가운데의 청정지역이다. 찌들은 노욕(老欲)과 울퉁불퉁 솟아나는 명예욕을 배추처럼 소금물에 절였다. 그래도 뻣뻣하다. 아직도 입을 열면 내 자랑 일변도다. 얼마큼 더 절여야 하나.     다음 날 하와이 원주민의 성지 이야오 골짜기를 방문했다. 푸른 밀림 속에 송곳처럼 올라간 1200피트의 산봉우리는 기묘하고 신비스러웠다. 이 골짜기에서 1790년 카메하메하 대왕 군사가 마우이 군사를 격파한 전투가 벌어졌고, 계곡은 시체로 뒤덮혔던 곳이라고 한다.     느닷없이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색의 원주민이 두 손을 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흥얼거렸다. 그 산골짜기에서 죽은 양쪽 용사의 혼을 달래는 주문인 것으로 짐작했다. 나중에 구굴로 검색해 보았다. ‘쿠라 카히레 아카 나우 하아하아(겸손한 사람은 조심해서 걷는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헤 케하우 호 오마 에마 이케 아로하(사랑은 말끔히 씻어주는 이슬과 같다). 아 후이 하우(다시 만날 때까지).’   마우이 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은 피피와이 숲이다. 옆으로 개울물이 흐르고 아름드리 번얀 보리수와 푸는 대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2마일의 축축한 오솔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와이모쿠 폭포가 전개된다. 높이 400피트의 웅대한 폭포에 입이 벌어진다. 대나무 숲속에 폭포가 숨어있었다.     호텔로 가는 길에 시장에 들르니 마우이 산 대나무 젓가락이 있다. 한 묶음 사 집에서 사용하던 중국산 대나무 젓가락과 교체했다. 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을 때마다 푸르고 청순한 마우이섬 대나무 숲이 떠오른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마우이섬 마우이섬 대나무 마우이섬 해안선 대나무 젓가락

2024-07-02

[열린광장] 7월에 있었던 일

프랑스에는 7월 1일 출생자 가운데 유명인이 세 명 있다. 1725년에 태어난 콩 드 로샹보 장군, 1804년엔 출생한 소설가 게올쥐 상, 그리고 1872년의 비행사 루이 블레리오가 그들이다.  반면, 미국에선 7월에 전쟁이 많았다. 1863년 7월에 펜실베이니아에서 남북전쟁의 최후 결전이 벌어졌고, 1898년에는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샌 주엔 힐을 점령하기도 했다.     하지만 7월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달이다. 바로 1776년 7월 4일 연방의회에서 독립선언서(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를 발표한 것이다. 독립선언서는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 중 한 명인  존 핸콕이 가장 먼저 서명을 했다. 그래서 이 날을 미국의 독립기념일 (Independence Day)로 정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세계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전쟁 두 가지가 7월에 일어났다.  첫째,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 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했고, 1937년 7월 7일에는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달에는 또 큰 사건도 많았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에서는 바스티유 혁명이 시작됐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된 이 혁명은 프랑스 왕정이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주 사막에서는 몇몇 과학자들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그 후 8월 6일엔 일본의 히로시마, 8월 9일에는 일본의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써 마침내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났다.  또 1969년 7월 20일에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해 달 표면을 걷는 역사적 일이 있었다. 달 표면을 가장 먼저 걸은 우주인이 그 유명한 닐 암스트롱이다.     한국에서는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체결됐고, 1980년 7월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군사정권 하에서 내란음모 사건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밖에 7이 들어간 격언이나 문구도 제법 있다.  7자가 들어간 어휘를 살펴보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섞여 있어 꽤 재미있다.     7자가 겹친 ‘칠종칠금 (七縱七擒)’은 마음대로 잡았다가 놓아 주었다 하는 비상한 재주를 의미하고, 사업이 계속 실패하거나 잇단 불운으로 갈피를 못 잡을 때는 ‘칠령팔락 (七零八落)’ 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칠월이 되면 으레 장마가 온다는 의미의 ‘칠월 장마는 꾸어서 해도 한다’, 또 수입이 줄어 살기 힘들다는 의미의 ‘칠팔월 은어 끓듯’이라는 한국 속담도 있다. 윤경중 / 목회학 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광장 바스티유 혁명 프랑스 왕정 independence day

2024-06-30

[열린광장] 오페라 투란도트의 감동

푸치니의 투란도트 오페라를 떠올리면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네슨 도르마 (Nessun dorma) 곡 하나뿐이다. 그것도 전부가 아닌 중간부터 시작되는 아리아 한 소절만 알고 있다. 어느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치도 도밍고가 즐겨 불렀고, 발레 수업 시간에도 센터 아다지오나 림바링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음악이어서 이 곡 하나만 친숙하다. 네슨 도르마 하나를 듣기 위해  일 년 전 미리 시즌티켓을 사두었다고도 할 수 있다.   LA 오페라의 투란도트는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공연장은 빈 좌석 하나 없이  꽉 찼다. 오페라를 보러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있다. 내 좌석에 내 이름이 쓰인 카드가 있다는 것이다. 어김없이 ‘Dear Jean Choi, 투란도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가 여러분의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며 2025년 시즌 티켓 좌석 예약을 기대합니다.’ 결국 티켓을 사라는 말이지만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 같아 감동이었다. 집에 돌아와 결국 나는 2025년 시즌 티켓도 예약을 하고 말았다.     푸치니의 12개 오페라 작품 중 라보엠, 투란도트, 토스카, 마농레스코, 나비부인 등은 알고 있다. 그중 투란도트는 중국을 배경으로 푸치니가 미완성 작품으로 남긴 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제자인 프란코 알파고에 의해 1926년 초연이 됐다. 중국 황제의 딸인 얼음공주 투란도트와 그녀의 수수께끼를 푸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핑, 퐁, 팡 대신들의 재치와 익살스러운 모습, 죽음으로 사랑을 지키는 시녀 류의 극적인 이야기가 웅장한 음악과 어우러져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특히 화려한 의상, 수많은 등장인물, 데이비드 호크니가 디자인한 환상적인 무대는 근래에 보기 드문 대작으로 공연 내내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호크니는 89세의 나이지만 지금도 회화뿐만 아니라 아이패드, 판화, 카메라, 복제 등 다양한 수단과 매체를 탐구하고 즐기는 예술가다. 내가 존경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공연 내내 등을 꼿꼿이 세우고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가슴이 꽁당꽁당 뛰는 것을 느끼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네슨 도르마를 들으며 호크니의 무대 배경 앞에서 춤을 추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글리사드 아라베스크 통베 파도브레 피루엣 안디당 턴’. 발레작품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생각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라)’, 푸치니는 이렇게 나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열린광장 투란도트 오페라 투란도트 오페라 오페라 투란도트 얼음공주 투란도트

2024-06-27

[열린광장] 한인 팬도 화제의 연극 만났으면

요즘 서울에서는 일생 꼭 봐야 할 고전 연극 3편이 동시에 무대에 올려져 많은 연극 팬을 설레게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4대 장막극 중 ‘벚꽃동산’ (연출 사이먼 스톤)이 지난 6월 4일 부터  LG아트센터서울에서 먼저 포문을 열었고, 이어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연출 손진책)이 6월 9일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또 다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맥베스’(연출 양정웅)는 7월 19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막을 올릴 예정이다. 이들 연극은 최고의 연출가와 스타 배우들이 완성해 낸 완벽한 공연이라는 평단의 찬사를 듣고 있으며, 공연이 시작된 작품들은 전석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출연진의 면면을 살펴보니 화려하다.‘벚꽃동산’에는 칸의 여왕 전도연과 박해수, 손상규, 최희서 등이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되었고, ‘맥베스’에는 국민배우 황정민과 송일국, 김소진이, ‘햄릿’에는 대한민국 연극상 중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이해랑연극상’의 역대 배우 부문 수상자가 11명이나 출연한다. 이들 중 이호재,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재건, 김성녀, 연출 손진책은 지난 30년 동안 에이콤이 LA 초청 공연을 했던 ‘MBC 마당놀이 심청전’, ‘피의 결혼’, ‘피고지고 피고지고’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지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장수사회’, ‘어머니’, ‘벽속의 요정’ 등의 작품을 통해 한인 연극팬들과도 만났던 연극인들이다. 연극계의 대가들이 총 출동해 고전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 연극들에 대해 한국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 연극 팬들의 관심도 높다.   지난 몇 년 동안 한인 연극 팬들을 위한 몇몇 초청 연극이 있었다. 지난 2018년에는 마당놀이 인간문화재 윤문식이 출연한 극단 시민극장의 ‘싸가지 흥부전’(장명수 각색, 장경민 연출)이, 그리고 2019년에는 수상한 할아버지들의 유쾌한 이야기를 다른 최주봉, 양재성, 윤문식 공동 주연의 ‘할배열전’(김지훤 작, 주호성 연출)이 LA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윌셔이벨극장에서 모든 관객을 울렸던 극단 글로브의 가족연극 ‘동치미’(작 ·연출 김용을)가 우리가 만난 마지막 작품이다. 그때 객석을 가득 메운 한인 연극 팬들은 공연이 끝난 후 한목소리로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좋은 연극을 만나 마음껏 향유하며 연극의 진수를 만끽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의 문화 특구인 대학로에는 120여 개의 소극장이 있어 365일 연극 공연이 있다. 하지만 미주 한인들은 우리말 연극을 접할 기회가 적다. 따라서 한인 연극인들의 공연이나 한국 극단의 초청 공연이 갖는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서울에서 뜨겁게 공연 중인 고전 연극들을 미주의 한인 연극 팬들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한인 팬도 한인 연극팬들 대한민국 연극상 고전 연극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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